지상 최강의 좀비가 된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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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이호비
작품등록일 :
2019.01.12 21:51
최근연재일 :
2019.08.20 2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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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3.20 2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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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13. 강해져야 할 때,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영웅

DUMMY

[네가 바란다면 모든 것을 알려주도록 하지.]


“너는 누구지?”


[네가 죽음을 거슬렀기 때문에 나와 대화를 나눌 수 있다는 거다, 네가 날 불러들인 거야. 분명 이 몸에 대해서도 생각 해 낼 수 있을 거라 믿어.]


잿빛가루의 공간에서 또 다시 광기의 바다로 빨려 들어가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잠재의식 속으로 들어온 내 몸은 빠르게 광기에 잠식되어 간다.


적응과는 거리가 멀었다.

순전히 광기가 날 집어삼키는 행위를 벌이고 있는 것이다.

일방적으로, 내가 손을 쓸 틈도 없이.


변질되어가는 정신과 육체에 의해 자연스레 광기의 흐름에 몸을 맡기자 어느 새 심연 속으로, 그리고 기억의 파편들이 떠오르기 시작한다.


---


드넓은 창공에서 한 여인이 은의 갑주를 착용한 채 12장의 반투명한 천을 나풀거리며 대지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한 손에는 장창을 쥐고 있었고, 그 창날의 끝에는 무언가의 표식이 새겨진 깃발이 걸려있었다.

다른 한 손에는 태양의 열기를 머금은 새하얀 단창을 쥐고 있었다.


오른편의 하늘에는 거대한 여성의 형상이 떠올라 여인을 자애롭게 바라보고 있었고, 왼쪽편의 하늘에는 거대한 남성의 형상이 떠올라 거만하게 내려다보고 있었다.


여인의 발밑으로는 무릎을 꿇고 우러러보고 있는 한 은발의 청년이 있었고, 그 남성의 뒤로 수많은 인간들과 타 종족들이 두 손 모아 기도를 올리고 있다.


광야를 가득 메운 행렬에 창공의 여인은 깃발을 매단 장창을 더욱 높이 치켜들기 시작한다.

태양의 빛을 담아 대지위로 내리쬐자 인간들은 무언가에 홀린 듯 그 광경을 바라보며 눈물을 흘린다.


창공의 여인은 천천히, 대지위에서 하늘을 향해 위용을 뽐내듯 솟아오른 메마른 언덕위에 올라서고 한 쪽 무릎을 꿇어 보인다.


태양의 빛을 머금은 장창을 힘차게 꽂으며, 단창을 옆에 내려놓았다.


여인의 행동에 오른편의 하늘에서 내려다보고 있던 여성의 형상이 내려와 손길을 내밀어보였고, 왼쪽편의 하늘에서 내려다보고 있던 남성의 형상은 사라져버렸다.


“어머니.”


여인의 곁으로 은발의 청년이 다가와 똑같이 무릎을 꿇어 보인다.


“아들아, 너는 생각하고 고뇌하며 세상에 변화를 촉진시킬 힘을 가진 아이다. 부디 그 힘을 올바른 곳에 쓸 수 있도록 하여라.”


여인은 단창을 은발의 청년에게 건네며, 장창에 등을 살짝 기대기 시작했다.


“저 혼자만의 힘으로 가능할까요. 솔직히 저는 불안합니다. 어머니와 달리 저는 불완전한 존재이지 않습니까.”


태양의 힘을 머금은 창의 유지에 의해서 청년의 머리가 조금씩 금발로 물들어가고 있었다.


“어찌 너 혼자라 말하는 것이냐, 뒤를 돌아 보거라. 너를 믿고 따르는 수많은 생명들이 있지 않느냐. 네가 바란다면 이 세상에 살아 숨 쉬는 모든 존재들이 등을 떠받쳐 주리란 것을 의심치 말거라.”


은은하게 빛을 발하는 은발의 머리카락이 여인의 뺨 위에서 미끄러졌다.

피를 적셔놓은 것처럼 붉은 눈동자가 점점 색을 잃어가기 시작했지만 미소는 잃지 않았다.


“아들아, 내 육신은 힘을 잃어가지만 이 땅위에 거름이 되어 너와 세계를 바라보는 한 그루의 거목이 되리라. 지금 흐르는 눈물은 대지에 풍요를 적셔줄 강을 이루리라.”


“어머니······.”


태양의 힘을 머금은 단창이 서서히 식어나가기 시작했다.

은발은 어느 새 완전히 금발로 변모했고, 청년은 무릎을 꿇은 채 고개를 들지 못하고 있다.


“아들아, 슬퍼 울지 말거라. 나는 죽지 않으니 살아남는 것이리라. 이 땅위에 새 생명으로 가득 들어찰 그 날까지······.”


여인은 몸을 들썩일 정도로 심한 기침을 내뱉기 시작했다.

청년은 불편하지 않도록 옆에서 행동을 거들어주었고 은의 갑주를 벗겨주었다.


“이제 단창을 높이 치켜들고 믿음을 심어주거라. 창공을 바라보며 맹세하여라. 모두가 들을 수 있도록 너의 이름을 외쳐 보거라.”


그 말을 끝으로 여인은 눈을 감았다.

가지런히 모은 두 손의 위로 어느 새 작은 새싹이 피어올라 있었다.


청년은 한 동안 일어나지 못했다.

평온한 얼굴로 눈을 감은 자신의 어머니를 바라보며 그렇게 단창을 움켜쥐었다.


죽지 않으니 살아남으라, 긴 전쟁에 있어 그것은 축복이 아닌 저주와도 같았다.


“어머니 이제 편히 쉬십시오.”


마음을 다잡은 청년은 자리에서 일어섰다.

혼돈으로 가득 들어찬 세상에서 구원을 바라는 것은 인간만이 아니었다.

생명을 지니고 태어난 수많은 존재들이 한 마음 한 뜻으로 청년을 바라보고 있었다.


천천히 자신의 어머니를 등지고 앞으로 걸어 나갔다.


물러설 곳은 없었다.

물러서서도 안 된다.


청년은 단창의 끝을 창공에 드리웠다.

하늘을 우러러보며 광야를 향해 크게 외치기 시작했다.


“나, 유하여제의 피를 이어받은 창공의 아들, 멜 프론락텀의 이름으로 맹세하노라. 빛바랜 광야에 영광이 내릴 그날을 위하여 죽어도 죽지 않고 끝까지 살아남아 긴 전쟁의 끝을 고하리라!”


인류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영웅이 한 약속에 수많은 함성과 갈채가 터져 나왔다.


“오늘부로 이 땅은 모든 생명의 근원지, 세계수의 영토로 지정하겠노라!”


---


“파로에! 어떻게 합니까?!”


“······.”


잠재의식 속, 심연의 존재로부터 기억의 파편을 엿본 나는 곧 현실로 돌아올 수 있었다.

단순히 용무가 끝났기 때문에 돌려보내 준 것일까.

오랜 시간 자다 일어난 것처럼 머리가 멍해져왔다.


“멜 프론락텀.”


“도, 돌아오신 겁니까?”


호들갑을 떨던 마이즈가 초점이 흐릿한 내 두 눈을 바라보며 물어왔지만 정신은 기억속의 한 장면을 떠올리기 바빴다.


은의 갑주를 착용한 여인과 금발의 청년.

수많은 종족들에게 갈채를 받으며 하늘을 향해 포부를 던진 자의 이름은 멜 프론락텀이었다.


기시단 프론락텀,

파로에 프론락텀.

그리고 멜 프론락텀.


나도 모르게 중얼거린 그 이름에, 파로에를 바라보니 떨리는 눈동자로 날 바라보고 있는 중이었다.


“······.”


“······.”


또 다시 어색한 침묵이 긴 꼬리를 만들며 지나가기 시작했다.

갑작스런 기억의 파편에 의해서 나는 정리를 하는 것만으로도 벅찬 상황이었다.

나와 어떤 연관이 있는 것일까.

복잡해진 머릿속을 정리하면서도 내 두 눈은 여전히 파로에를 향하고 있었다.


“기······.”


“정신이 돌아오셔서 다행입니다.”


파로에가 내게 말을 건네려고 한 것 같았는데, 눈치 없이 마이즈가 끼어드는 바람에 자연스레 넘어가 버리고 말았다.


하지만 또 다른 한 편으로는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파로에의 의미심장한 행동에 불안해졌기 때문이다.

지금의 내가 받아들일 수 없는 이야기를 한다면?

만약 그 예상이 빗나가지 않다면 나는 사실을 듣는 것으로 인해 내 자신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자신이 없었다.


“일단 날 이곳에 데려왔다는 것은 목적이 있기 때문이겠지?”


나는 파로에로부터 눈길을 돌려 마이즈에게 물어보았다.

내가 일부러 피하고 있다는 것을 느낀 것 인지, 파로에는 가면을 늘어뜨리며 날 향한 눈동자를 거두어들였다.


“···물론이죠, 우선 제가 했던 말과 달리 일방적으로 이곳으로 불러들인 것에 대해서 머리 숙여 사죄드리겠습니다.”


마이즈는 슬쩍 파로에의 상태를 살펴본 뒤 과도한 몸짓으로 분위기를 돌려보기 위해 애를 쓰기 시작했다.


“사죄를 받아주시겠습니까?”


한 손을 정중히 건네며 용서를 비는 마이즈의 노력에,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받아들였다.


“그래서 용건은 뭐야?”


“원래라면 충분히 생각하실 시간을 드리려했으나, 생각보다 적의 세력이 막강해서 말이죠. 파로에의 돌발 행동으로 이런 자리가 마련되긴 했지만, 위에서는 이번 기회에 좀 더 적극적으로 움직여보자는 의견이 수렴되었습니다.”


스르륵거리는 소리와 함께, 잿빛가루들이 뭉치며 의자와 테이블을 만들어냈다.

그때와 마찬가지로 마이즈는 내게 자리를 권해왔고, 얘기를 들으면서 의자에 앉은 뒤 슬쩍 파로에의 눈치를 살펴보았다.


잿빛의자에 앉으면서도 파로에의 시선은 바닥을 향해 있었다.

내 행동을 의식하고 있다는 것을 누가 봐도 알 수 있는 부분이었다.


[그렇게 신경 쓰이면 말을 걸어, 망설이는 이유를 모르겠군.]


현실 속에서 자연스레 말을 걸어오는 심연의 목소리.

이제는 잠재의식 속뿐만이 아니라 현실에까지 영향을 보이는 것인가?


‘당신 도대체 누구야, 내 몸 안에 어떻게 들어와 있는지는 몰라도 제발 부탁이니 조용히 좀 있어주면 안될까? 이 쪽은 여러모로 복잡한 심경이라서 솔직히 짜증나려고 하거든.’


[본능적으로 거부를 하는 건가, 주어진 현실을 선뜻 받아들인다는 게 어려울 수는 있지만 눈 한 번 딱 감고 받아들여봐, 아주 속이 시원할 테니까. 내가 깨어난 것으로 인해 이미 그럴 운명을 타고 났다는 거니 그만 포기하고 인정해버려.]


‘이해를 못하는 것 같아서 자세히 설명해줄 테니까 잘 들어 이 몸은 내 몸이야,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은 오로지 내가 결정할 문제라고.’


[이번 녀석은 상당히 까다롭게 구는군, 하지만 색달라서 재미는 있단 말이지. 반응을 보면 내가 보여준 기억으로 인해 대충 눈치를 챈 모양이지만 필사적으로 외면하고 있다는 것은···]


‘혹시 네 정체는 멜 프론락텀?’


녀석의 말을 끊으며 질문을 던져보았다.

상대방을 기분 나쁘게 만들 줄 아는 화술을 구사하고 있었기에 괘씸한 마음이 일었다.

내 몸 안에 있는 녀석이라 지금 느끼고 있는 감정을 공유하고 있을지도 몰랐다.


[그럴 리가. 방금 전에도 말했다시피 너는 분명 날 떠올릴 테니까.]


‘뭘 어떻게 기억해낸다는 건지 어이가 없네.’


[세계의 운명을 받아들이고 저항하려들지만, 정작 자신의 운명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무슨 소용이 있지? 지금 가진 힘만으로 녀석들에게 대항할 수 있으리라 생각하나? 앞으로는 네놈의 썩어빠진 정신 상태부터 싹 다 갈아 치워주마.]


살벌한 얘기를 아무렇지 않게 꺼내네.

하지만, 여기서 더 강해지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은 사실이었다.

검은 뿔의 악마와 론 우저에서의 마족.


녀석들에겐 무엇 하나 제대로 된 저항 한 번 못해보고 패배한 그 날.

치욕스럽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나는 전사나 기사가 아니니까.

하지만 세계의 운명이 걸린 이상 져서는 안 된다.


어쩌면 지금의 내게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을 녀석이 일깨워주고자 하는 것일 수도 있다.


[네가 거부 반응을 보이는 것은 필연. 이해는 해 줄 수 있어도 종말은 그런 속사정까지 봐주면서 느긋하게 기다려 주지 않는다.]


‘종말이라, 그런 말을 하는 걸보니 적어도 같은 편이라는 거겠지.’


[내가 협조적인 것만 보아도 알 수 있지 않나?]


‘협조적이라고? 거의 반 협박에 가까운 수준이었는데.’


[왜냐하면 이 몸은 상당히 이기적이거든.]


조금씩 녀석의 목소리가 옅어져가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대화는 여기까지인 모양이다.

결국은 녀석의 정체에 대해서 밝혀진 내용은 전혀 없었다.

텅 빈 수확물을 바라보며 허망해진 이 감정을 녀석도 느끼고 있을까?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현실로 돌아오자 마이즈의 얘기가 끝나있었다.

제안을 한 것 같았는데, 녀석과 대화를 하느라 내용을 전혀 듣지 못했다.

나는 머리를 긁적이며 무안해진 마음으로 다시 물어보았다.


“제 얘기가 너무 길었나봅니다, 하하하. 결론만 말씀드리자면 당신이 강해질 수 있도록 저희들이 도와드리겠다는 이야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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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4 15. 금화 한 닢 19.04.04 92 1 11쪽
73 15. 조우 19.04.03 88 1 12쪽
72 15. 여정의 시작, 다시 론 우저로 19.04.02 92 1 13쪽
71 14. 무린, 뿌리 19.04.01 107 1 12쪽
70 14. 무린, 백하단의 그림자 19.03.30 104 1 12쪽
69 14. 무린, 신기 갈루 제 2 단 : 요격모드 19.03.29 100 1 11쪽
68 14. 무린, 신기 갈루 제 1 단 : 포격모드 19.03.28 115 1 12쪽
67 14. 무린, 폭풍전야 19.03.27 112 1 11쪽
66 14. 무린, 태양을 갉아먹는 자 천체 사로스 여왕 19.03.26 110 1 12쪽
65 14. 무린, 베이트리스와 주륙단도 19.03.25 122 1 11쪽
64 13. 강해져야 할 때, 신경사슬 (3) 19.03.23 124 1 11쪽
63 13. 강해져야 할 때, 신경사슬 (2) 19.03.22 131 1 11쪽
62 13. 강해져야 할 때, 신경사슬 19.03.21 133 2 12쪽
» 13. 강해져야 할 때,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영웅 19.03.20 150 1 12쪽
60 13. 강해져야 할 때, 잿빛가루의 공간 19.03.19 122 1 12쪽
59 12. 백설십장, 기시단 프론락텀 19.03.18 149 1 12쪽
58 12. 백설십장, 조율의 공간에서의 격전 19.03.16 129 1 12쪽
57 12. 백설십장, 태초의 인간과 백설십장의 힘 19.03.15 150 1 11쪽
56 12. 백설십장, 치명상을 이끌어내는 육체 19.03.14 149 1 12쪽
55 11. 공백인형, 백설십장 파로에 프론락텀 19.03.13 154 1 12쪽
54 11. 공백인형, 앱솔루트 카운터와 마족 집결 19.03.12 146 1 11쪽
53 11. 공백인형, 죽음을 거부시키는 조건 19.03.11 130 1 12쪽
52 11. 공백인형, 조사 19.03.09 134 1 12쪽
51 11. 공백인형, 몰락 귀족가의 저택 19.03.08 157 1 12쪽
50 11. 공백인형, 론 우저 입성 19.03.07 172 1 12쪽
49 11. 공백인형, 요정령 노바 19.03.06 169 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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