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제국사

웹소설 > 일반연재 > 대체역사, 퓨전

완결

동기진
작품등록일 :
2019.01.19 10:52
최근연재일 :
2021.10.20 19:50
연재수 :
102 회
조회수 :
294,333
추천수 :
6,826
글자수 :
621,570


작성
19.03.18 20:00
조회
2,633
추천
67
글자
13쪽

이장용

오·탈자 지적을 바랍니다.




DUMMY

본래 고려의 역사에서 가장 황금기를 꼽자면 11C 문종 때라 할 수 있다.

그리고 그 문종과 더불어 그 황금기를 구가한 인물이 바로 이자연李子淵(1003~1061)이다.

현보顯甫(이장용李藏用, 1201~1272의 자字)는 바로 그 이자연의 6대손으로 그의 아버지 이경李儆(?~1221)은 이장용의 어머니와 혼인을 하기 전에 젊은 날의 치기로 집안의 종과의 사이에 아들을 하나 얻었는데 그가 바로 이장용의 배다른 형인 이광수다.

이장용은 학문에 뜻이 있었으나 이광수는 학문과는 담을 쌓고 살더니 급기야 이경이 죽기 이태 전에 아비인 이경에게서 한몫의 재산을 받아 서경으로 이주해 장사에 투신했다.


현보는 그렇지 않아도 진양후의 노심초사로 마음이 심란할 때 서경에서 그의 맹형孟兄(孟이란 본래 첫째라는 의미지만 흔히 첫째면서 이복형일 때 쓰인다.)에게서 한울루스의 일로 찾아오겠다는 전갈이 왔으니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사실 은근하게 소문이 퍼진 일이지만 몇 해 전 몽골의 사신 저구유가 국경 근처에서 피살된 사건은 진양후가 벌인 일이었다.

그 당시 고려는 몇 해 전의 거란의 유민들이 국경을 침범한 일로 인해 몽골과 동하에 감사를 드린다며 얼마간의 예물을 바친 일이 있었다.

문제는 그 예물 일로 몽골의 사신이 몇 차례 개경을 방문했는데 그들의 패악질이 지나쳤다는 것과 이를 조정에서 수수방관했다는 것이다.

이로 인해 개경의 민심은 사나워졌고 아직 권력기반이 충실하지 못했던 진양후로서는 이런 민심의 동향에 민감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자칫 그런 민심을 등에 업고 또 다른 무신들의 정변이 있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벌인 일이 저구유 사건이었다.


몽골의 사신이 국경에서 죽는다면 백성들은 천벌을 받았다며 좋아라 할 것이고 그로 인해 사나워진 민심도 조금은 잦아들 것이 분명했으니 말이다.

일을 벌일 때는 당연 몽골이 이 사실을 모를 줄 알았다.

또한 이 일을 동하에게로 넘겨 그들이 벌인 것처럼 할 생각이었다.

그렇지만 몽골에 바보만 있는 건 아니니 당연 알려지게 되었고 곧 몽골이 대군을 이끌고 고려의 강역을 침범할 듯하니 진양후는 노심초사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어느 날 문득 압록수 이북에 한울루스라는 몽골의 지방정권이 들어섰다는 소문이 서북면을 중심으로 퍼지기 시작한다.

진양후로서는 그 한울루스라는 정권에 관심이 가지 않을 수 없었다.

당연 서방 출신의 문신들에게 소문을 수집하도록 했다.

그렇지만 그 소문이라는 게 너무 해괴하고 황당하니 도무지 한울루스가 어떤 곳인지 알 수가 없는 일이다.


들리는 소문에는 한울루스의 칸은 하늘에 기도만 하면 다 죽어 가는 이도 벌떡 일어난다는 것도 있었고 한울루스의 백성들은 모두가 중이 되려는지 머리를 바짝 잘라버린다는 말도 있었으며 또 한울루스의 모든 백성들은 반드시 글을 배워야 한다는 소문도 있으니 듣고 웃어넘길 수도 없고 그렇다고 그 소문을 그대로 믿기에는 또 너무 황당무계한 것이다.

그래서 이장용은 상인인 그의 맹형에게 도움을 청한 것이다.

아무래도 상인이라면 한울루스에의 출입이 자유롭지 않겠는가 하는 마음에서 말이다.


그리고 이제야 형이 소식을 가지고 오니 당연 반갑기 그지없다.

“일단 이 책을 먼저 살펴봐라.” 이장용이 책을 살펴봤지만 도무지 처음 보는 글자다.

“이건 어느 나라 글자랍니까? 혹 몽골의 글잡니까?”

“아니야. 그게 우리 고려의 글자라고 한다. 너는 모르니 읽지 못하지만 머리가 좋으니 아마도 여기서 내가 잠시 설명하는 것으로도 쉽게 익힐 수 있을 것이다. 내 설명해 주랴?”

“예, 형님이 그리 말씀하시니 한번 들어나 보겠습니다.”

“자, 책을 보면 여기 그림이 있지. 사람 머리와 그 입에 그리고 혀를 그린 그림.”

“예”

“이게 우리 고려인이 말을 할 때 혀와 입의 모양이 어찌 변하는지를 보여주는 그림인데, 가령 여기 그림대로 ‘가’라는 말을 하면 혀가 이런 모양으로 바뀌는 거지. 너도 한번 소리내 해 봐라.”

“지금 여기서요.”

“당연하지. 거기 한울루스의 학교라는 곳에서도 그리 가르치더라. ‘가’라고 말을 하면서 혀가 어찌 바뀌는지 살펴보면 과연 여기 그림대로 혀의 모양이 바뀌는 거야.

그리고 그 ‘가’의 초성이 바로 여기 혀의 모양을 본 떠 만든 글자라고 한다.

여기 여린입천장소리라고 적혀 있는데 바로 그 소리가 그렇다는 의미다.

아무튼 나는 그 달래라는 여선생이 가르쳐주는 대로 따라했더니 불과 이틀 만에 이 책을 읽을 수 있을 정도로 모든 글을 배우고 왔다.

세상에 이런 글이 있다면 내가 어찌 학문을 소홀히 했겠느냐.

그거 뿐인줄 아냐.

뒤에는 한수라는 숫자가 있는데 이 숫자는 정말 우리 상인들 입장에서는 가히 천지개벽이라 할 수 있을 정도의 숫자랄 수 있다.

더구나 그 한울루스의 칸이라는 이가 하느님에게 우리 고려인들이 모두 쉽게 읽고 쓸 수 있는 글과 수를 달라고 해 얻은 것이라고 하니 과연 그 한글과 한수라는 말처럼 이건 분명 하늘의 글과 수일 것이다.”


이장용은 난생 처음 그의 맹형에게서 글을 배웠지만 과연 형의 말대로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단 하루 만에 그 글과 수를 모두 배웠으니 말이다.

그리고 정말 쉬웠다. 글이고 수고 말이다.

다만 글을 읽다보면 그 한글이라는 것은 뜻이 전혀 없는 기호에 불과하니 많은 부분 의미파악이 힘들다는 점이 문제로 보일 뿐이다.

그렇지만 그것도 자신과 같이 제대로 된 글을 아는 이들에게나 해당되는 일이지 자신의 맹형이나 그보다 못한 다른 상인들에게는 아주 훌륭한 글이 아니겠는가 하는 생각은 지울 수 없다.

상인이 쓰는 글에 백미라고 쓰여 있다면 그것이 白米지 白眉는 아닐 테니 말이다.

아니 그것도 그저 흰 쌀이라고 쓴다면 모르려야 모를 수도 없는 것이고.

‘흠, 과연 고려인의 글이긴 하구나. 한자어를 쓰면 헷갈릴 수 있지만 그저 고려말을 쓰면 헷갈릴 일도 없겠는데.’


“그 외에 다른 것은 없었습니까?”

“웬걸. 모든 게 우리 고려와는 다르더라. 아니 말은 같은 말을 쓰고 먹는 것도 뭐 비슷하기는 한데 거기 있는 사람들 중에 상당수가 저 색목인이더라. 심지어 피부가 검은 사람도 있고.

그런데 그 사람들이 모두 고려말을 하더라고. 뭐 아직은 서툴기는 하지만. 그리고 이것 봐라.”

“아니 이건 유리로 만든 잔이 아닙니까?”

“신기하지. 이게 고작 쌀 세 가마 가치의 은을 주고 산 거다.”

“예? 그리 싸다고요.”

“그래. 내가 이것을 네게 줄 테니 그 진양후에게 바쳐 빨리 그 권무직에서 벗어나라.

네가 잘 돼야 나도 그 은혜를 입을 거 아니냐.

그리고 너 그 영청 땅에 소금밭을 가지고 있지?”


“아, 예. 그나저나 이 귀한 것을 제가 받아도 되겠습니까?”

“그래. 그래 봐야 내게는 쌀 세 가마니까. 그게 문제가 아니라 너 영청 땅에 있는 그 소금밭을 네게 넘겨다오.”

“예? 소금밭을 뭐 하려고요. 물론 당연 소금때문이겠지만. 그 소금밭이 별로 돈이 안 될 텐데요.

나오는 소금도 많지도 않고 또 거기에서 나오는 소금에는 돌이 많아 다시 끓여야 해 장작값도 은근히 많이드는데요.”

“그게 그 마을에 한울루스의 칸이 살고 또 그 칸의 재무담당관이라는, 이름이 호다두라는 서역인을 만났는데 내가 상인이라는 말을 듣고는 소금밭을 구할 수 없느냐고 하더라고.

자신들이 기술을 댈 테니 나더러 소금밭하고 사람을 대라고 말이야.”

“소금밭에 무슨 기술이요?”

“나도 모르지. 그런데 내가 그 마을을 살펴보니 분명 소금밭에도 뭔가 새로운 기술이 있는 게 분명하다는 결론이야.

현보야! 너 당나귀가 글을 쓴다는 거를 생각해 본 적이 있냐?”


“예? 당나귀가 글을 써요?”

“그래. 지금 네가 보고 있는 그 책도 당나귀가 쓴 글이다. 사람은 그저 그 짐승이 쓴 글을 모아 엮기만 할 뿐.”

“형님, 농은 그만 하시고 말씀을 제대로 해 주세요. 당나귀가 글을 쓴다는 게 말이 됩니까?”

“그렇지. 그럼 소가 글을 쓴다고 할까?”

“형님!”

“아, 농이다. 그렇지만 거기서는 분명 사람이 아니라 짐승을 이용해 그 글을 쓰는 건 사실이다.

뭐라더라... 아! 활자. 맞아, 활자를 만들어 그것을 모아 판본처럼 찍어내는데 그 찍는 일을 짐승을 이용해 하니 짐승이 글을 쓰는 것과 다르지 않지.

아무튼 하루에 자그마치 수백장의 글을 쓰는데 종이가 딸려 더 이상 글을 쓰지 못할 정도라고 한다.

너라면 분명 더 자세히 살피면 그 글들이 모두 똑같이 생겼다는 걸 알 수 있을 거야.”

‘아니 활자라면 근래 조정에서 얘기가 돌던 게 아닌가. 음 과연 사람이 쓴 글은 아니구나.’


“형님, 듣기로 그곳은 모두 머리를 자른다고 하던데 사실입니까?”

“아, 그거는 그곳에서 살거나 그곳에서 배우는 이들에게만 해당된다고 하더라.

다만 그 한글과 한수를 배울 때는 머리를 안 잘라도 되고.

마치 한번 배워보고 맘에 들면 머리 자르고 들어와라 하는 식인 거지.”

“그 말은 그 한수를 배우고 또 다른 배울 게 있다는 말씀입니까?”

“그래. 나는 그리 들었다. 무슨 학을 배운다고 했는데.

아무튼 그 학교를 마치면 보통은 그냥 제 할 일을 하면 되는데 그 학교에서 아주 뛰어난 성적을 거두면 그 칸이라는 이가 직접 가르치는 곳에서 배울 수 있다고 하더라.

아 참, 그 칸이 고려인이라더라. 그 달래라는 여선생의 오라비라고 하던데 정확치는 않다.

아무튼 그 칸이 직접 가르치는데 이제 똥·오줌 가릴 만한 아이부터 다 큰 어른들까지 배운다고 하더라.

나도 이틀 만에 그 한글과 한수를 마치니 그 달래라는 여선생이 거기서 더 배우겠냐고 묻긴 했는데 너도 알다시피 내가 진득하게 앉아 글 읽는 걸 좋아하지 않아 사양했다.

또 머리 자르기도 그렇고. 중도 아니라면서 왜 그리 머리를 자르라고 하는지, 원.”


“그런데 그 봇짐에 있는 건 뭡니까? 책같은데.”

“아, 이것도 보여줘야지.

이 책들은 그 한글이라는 글로 쓴 이야기 책인데 워낙 재미져서 내가 한권씩 사왔지.

보자! 이 책은 그 『마고와 세 형제 이야기』군. 이 책은 공짜라고 주더라.

처음에는 재미가 좀 있더니 뒤로 가면 무슨 제사를 지낼 때는 어찌 해야 한다는 둥 점점 재미가 없어지더라고.

아무튼 그 한울루스는 한교라는 신앙을 가진 이들이 모여 사는 곳인데 그 하느님의 얘기를 적은 글이라고 하더라.

네가 마음에 들어 할 거 같아서 얻어오긴 했는데 나중에 글을 배운 다음에 읽어 보도록 해라. 나는 읽기 싫으니.

그리고 이건 『혜초 스님과 손오공』이라는 책이고 이건 『수학이란 무엇인가』라는 책이네.

이건 재미없는 책인데 이거까지 샀구만.

그리고 이건 『아이소포스의 우화』군. 이 책이 정말 재미지지.

그리고 이건 『치기야의 여행기』라는 책인데 정말 놀라운 얘기가 들어 있지.

거기 치기야라고 배를 담당하는 이라고 있는데 아마도 그치가 배를 타고 다니다 겪은 이야기를 모아 놓은 책인 거 같더라고.

손가락만한 사람들이 사는 나라도 가고 또 다른 곳에는 사람을 손바닥 위에 올려놓을 정도로 큰 사람이 사는 나라도 가고 하는 그런 여행기다. 물론 정말 그런 곳이 있는지는 치기야라는 이만 알겠지만.

그리고 이 책은 『어린이를 위한 이야기』군. 이것도 무척 재미지지.

너는 아직 그 한글을 모르니 내가 한 토막 읽어 주랴?”


“예, 한번 들어 봅시다.”

“그래, 그럼 여기 『백설공주와 일곱난장이』와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중 어느 것이 좋겠냐?”

“아무거나, 아니 그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로 하죠.”


현보는 맹형이 들려주는 책의 내용을 들으며 이미 가슴이 벌렁거리고 있었다.

‘아니, 이 책의 내용은 이거 진양후가 한 일을 알고 있다는 얘기가 아닌가.

모든 고려인들이 모르는 척 하더라도 누군가 알고서 몽골에 고변을 했다는 내용을 은유적으로 알리는 내용이 분명하구나. 빨리 진양후에게 알려야겠군.

그럼 이들 한울루스는 무조건 몽골에 충성하는 이들이 아니란 말인가.

제발 우리 조정과 말이 통하는 이들이라면 좋을 텐데.’


현보는 그의 형이 떠드는 이야기가 더 이상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렇다고 당장에 진양후에게 달려갈 수는 없는 일이다.

일단 이 한글이라는 것을 배워야 형이 건네준 책을 읽을 수 있을 것이고 또 그 책의 내용을 숙지해 진영후의 물음에 답을 할 준비도 갖춰야 했으니까.

그런 이유로 일단 한글과 한수를 배우는 데 하루가 걸렸고 또 형이 주고 간 책들을 떠듬떠듬 읽으며 그 뜻을 헤아리니 책을 모두 읽었을 때는 이미 한 달이라는 시간이 훌쩍 지난 다음이었다.




추천은 작가에게 힘이 됩니다.


작가의말

[종이]

종이의 발명에 있어 『이집트의 파피루스와 중국의 종이 중 어느 것이 먼저인가?』 하는 물음이 있다.

이런 질문을 하는 이는 스스로가 무슨 질문을 하는지를 모르는 사람이다.

 

파피루스와 종이 중에 어느 것이 먼저 발명되었냐고 한다면 당연히 파피루스가 먼저 발명되었다.

그럼 『파피루스가 종이인가?』 하는 점에서는 『아니다.』라고 하겠다.

물론 양피지나 죽간 혹은 비단 따위를 종이로 본다면 파피루스 역시 종이겠지만 말이다.

파피루스는 우리 선조들이-아니 현재의 우리가- 삼베를 만들었듯이 재료가 대마가 아닌 파피루스란 식물로 대체된 것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그 제조과정에 있어서도 삼베와 파피루스는 거의 유사하다.

즉 해당 식물을 삶아서 길게 찢은 후 펴 말린 다음에 직물을 엮듯이 가로 세로로 엮으면(혹은 그저 한 방향으로 붙이면) 삼베가 되고 파피루스가 되는 것이다.

우스운 것은 우리 선조들이 대마를 식용으로 사용했듯 파피루스도 원래 그리고 주된 용도는 식용이었다고 한다.

 

즉 파피루스에는 물리적 형태 변환만이 있을 뿐 화학적 변환이 없다는 점에서 종이가 아닌 것이다.

종이는 단순히 식물의 형태를 바꾼 것이 아니라 식물에서 필요한 물질-섬유질, 곧 셀롤로우즈-만을 뽑아내 기존의 식물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물질로 재탄생된 것이다.

 

종이의 어원이 파피루스에서 왔다고 파피루스가 종이의 기원이라는 이도 있다.

그 말은 너무도 유럽만능주의에 기인한 말이다. 이런 서구지상주의는 배격되어야 한다.

paper라는 단어가 papyrus에서 온 것은 사실이나 종이와 파피루스가 같은 것은 아니다.

그저 지구의 어느 지방에서의 언어 변천을 확대하여 파피루스를 종이의 기원이라 하는 것은 언어도단이다.

 

현재에 이르러 종이의 생산에 있어서 많은 발전이 있지만 그 근본은 채륜이 수집해 정리하고 발전시킨 그 방법에 있다.

즉 식물에서 섬유질을 분리해 얇게 펴 말리는 방법 말이다.

단지 수율을 높이기 위해 약품을 첨가하고 인간이 하는 공정을 기계가 대신할 뿐인 것이다.

따라서 종이의 기원은 채후지蔡侯紙에 있는 것이다.

 

파피루스는 이집트의 주요 수출품이었다가 알렉산드리아의 쇄국정책으로 금수품이 되었다.

다만 6C 경에는 이탈리아 지방에서 파피루스를 재배하기도 했다는 기록이 있다.

이후 서구에서는 기록용품으로 양피지를 주로 사용했고 아마로 만든 카르타 린테아라는 것을 썼다는 기록도 있다.

 

유럽에 종이가 전파된 것은 이슬람의 세력 확장이 이베리아 반도까지 퍼졌을 때이다.

즉 탈라스 전투(751~757)에서 당이 패해 그 포로들이 사마르칸트로 옮겨지면서 중동지방에 제지술이 전파되 시작해 793년에는 바그다드에 제지업이 생겼고, 960년에는 이집트로, 1100년에는 모로코로, 1151년이 되어서야 스페인에 그리고 1276년에는 이탈리아 파브리아노에 제지공장이 생긴다.

이후 1774년에야 미국에서 넝마 표백이 처음으로 실용화되었고, 1800년에는 짚을 원료로 한 소다펄프가 영국에서 처음으로 사용되기 시작하였다.

 

목재펄프가 등장하기까지 세계 모든 나라는 원료난에 시달렸다.

넝마는 각 가정에서 나오는 생활 쓰레기였기 때문에 이를 수집 공급하는 일에 제지업의 성패가 달려 있었다.

(현대도 마찬가지로 제지업의 성패는 자원재활용에 있다. 한국은 종이의 재활용율이 90%가 넘는다고 한다.)

 

지역에 비해 사람 수가 적었던-즉 자원재활용이 잘 안 돼서- 미국이 1829년에 가압식 증해관蒸解管(일종의 밀폐식 압력솥)을 이용하여 소다와 석회로 넝마를 펄프화한 것이 현대 제지공업 발전의 출발이었다.

1840년 독일인 켈러가 쇄목펄프법를 발명하여 제지 산업에 일대 혁신을 가져왔으나 시간당 생산량이 너무 적었다.

1844년에는 염소 펄프법과 쇄목 그라인더가 발명되었고, 1853년에 가성 소다 증해에 의한 소다펄프법이 개발되고 그 2년 뒤부터 미국에서 공업화하기 시작하였다.

또한 1854년에는 밀짚을 원료로 한 흰종이白紙 제조법이 성공함으로써, 비로써 품질 경쟁이 시작되었다.

 

[활자와 인쇄]

아마도 최초의 인쇄는 탁본이었을 것이다.

고대에는 글을 아는 이가 적어 쓰여진 글도 적었을 것이고 누군가 바위나 기와 따위에 글이나 문양을 새겨 놓으면 이에 먹을 칠하고 종이를 눌러 그 쓰여진 글이나 문양을 베끼는 것으로 글을 얻었을 것이다.

 

그러다 목판이라는 방법이 만들어졌는데 유물로 남아 있는 가장 오래 된 목판본은 당연 불국사에서 발견된 무구정광다리니경이다.

서양에서 목판이 언제부터 사용되었는지 알 수 없지만 몽골의 침입과 관련 있을 것으로 추정한다.

그 전에는 그저 손으로 필사하는 것이 전부였고 그런 필사가 글을 금가루로 쓴다거나 보석가루로 쓰는 사치도 만든 것으로 보인다.

그러다 구텐베르크가 활자를 이용한 인쇄기술을 만들면서 판본으로 책을 만드는 기술은 꽃도 피우지 못하고 사라진 것으로 보인다.

 

동양에서는 목판본 형태의 책이 오랜 기간 존재했는데 이것이 활자의 발달과 활자를 이용한 인쇄술의 발전을 방해했다.

지배층은 대량의 서적이 유통되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았기에 목판으로 그들에게 필요한 양의 서적만 만들어지기를 바랐을 것이다.

즉 서적 출판이 산업으로써 발전하는 것을 막은 것이 동양의 지배층이었다 할 수 있다.

 

최초의 활자는 B. C. 1700년 경 만들어진 것으로 보이는 크레타 문명의 파에스토스 원반Phaistos Disc이라고 한다.

이것은 점토를 이용해 만들어진 것으로 지구에 존재하는 3대 오파츠(그 시대에 있을 수 없는 유물) 중 하나다.

그러나 엄격한 의미에서 활자는 아니다.

 

최초의 활자는 아마도 중국에서 나왔을 것이다.

옛사람들도 분명 목판의 비효율성을 알고는 있었던 모양이다. 그러니 활자가 탄생하지 않았을까.

중국 북송의 최전성기인 『경력慶歷의 치治』를 이끌었던 인종仁宗(재위:1022~1063) 때에 필승畢昇이라는 이가 진흙으로 만든 교니활자膠泥活字가 있었다지만 그 특성상 곧 사장되었다.

그 후 나무로도 활자를 만들었지만 나무 역시 오래갈 수는 없었다.

나무에 먹물을 발라 강하게 종이에 눌러야 하는데 차라리 목판이 더 좋게 여겨졌을 것은 당연하다.

 

언제부터 금속으로 된 활자가 쓰였는지 정확하지 않지만 기록으로는 고려에서 1234년 상정고금예문을 금속활자로 찍었다는 기록이 있으며 이것이 기록으로라도 남아 있는 세계 최초의 금속활자본이다.

유물로 남은 세계 최초의 금속활자본은 누구나 알듯이 1377년 만들어진 『백운화상초록불조직지심체요절白雲和尙抄錄佛祖直指心體要節』로 흔히 『직지심체요절』 혹은 『직지심경』으로 불리며 서양에서는 『Jikji』로 알려진 우리의 문화유산이다.

 

동양에서 가장 먼저 활자가 만들어졌음에도 활자인쇄가 발달하지 못한 이유는 앞서 언급한 지배층의 문자 독점-사실 이 문제는 서양도 마찬가지다.-도 있었지만 한자라는 문자의 특성도 부정할 수 없다.

일단 문자의 수가 너무 많다는 것이 활자인쇄를 막은 이유인 것은 분명하다.

한자는 글자를 만들 활자틀이 너무 많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한글만 해도 그 알파벳이 아닌 글자 하나씩을 활자로 만들려면 많은 수의 활자틀-수학적 계산으로는 현대 한글에 11,172개가 있어야 한다.-이 필요한데 10만 한자-강희자전(1716)에는 47,035개의 한자가 있다.-라는 말이 있는 한자는 중세에서는 도저히 감당이 되지 않는 일이었을 것이다.

 

결국 단지 대·소문자 포함 52개의 활자틀만 있으면 무한정 활자를 만들어 낼 수 있는 서양에서 활자와 인쇄술이 발전하게 되는 것이다.

사실 이런 문제로 한때 한글을 영어의 알파벗처럼 쓰자는 주장이 있었던 적이 있다. 컴퓨터에서 같은 분량의 글을 쓰는데 있어 한글이 더욱 많은 용량을 차지하니 말이다.

물론 지금과 같이 컴퓨터의 저장용량을 걱정하지 않게 된 시점부터 그런 얘기도 사라졌지만.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고려제국사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동기진 작가님께서 별세하셨기에 삼가 알려드립니다. +19 21.10.20 842 0 -
공지 2부 알림 +8 19.05.18 2,030 0 -
공지 지도 추가합니다. +1 19.05.12 2,409 0 -
공지 그림, 삽화 19.05.10 1,545 0 -
공지 알림 +3 19.05.08 1,083 0 -
102 죽음Ⅱ - 1부 완결 +20 19.05.19 2,878 60 17쪽
101 죽음Ⅰ +6 19.05.19 1,706 36 14쪽
100 흥국사에서 +10 19.05.18 1,594 44 15쪽
99 알면서도 +3 19.05.17 1,573 40 14쪽
98 세계관과 자유 +4 19.05.16 1,636 51 14쪽
97 아아! 때가 아닌가 보구나! +2 19.05.15 1,601 52 14쪽
96 최항의 제안 +1 19.05.14 1,660 45 13쪽
95 출병 19.05.13 1,552 49 14쪽
94 정동성征東省 +2 19.05.11 1,664 47 12쪽
93 박작 +2 19.05.10 1,679 52 14쪽
92 전쟁준비 Ⅱ +1 19.05.09 1,653 53 13쪽
91 전쟁준비 Ⅰ +5 19.05.08 1,749 50 14쪽
90 입조 +4 19.05.07 1,697 51 13쪽
89 도량형 +2 19.05.06 1,738 57 13쪽
88 바투의 선물 +2 19.05.04 1,802 54 13쪽
87 2차 순례 +7 19.05.03 1,783 53 13쪽
86 성姓을 가지다 +1 19.05.02 1,881 54 13쪽
85 호패 +4 19.05.01 1,727 50 13쪽
84 각자의 생각 +3 19.04.30 1,726 55 13쪽
83 무위로 돌아간 암살 작전 +4 19.04.29 1,788 57 13쪽
82 정보조직 +3 19.04.26 1,776 51 13쪽
81 제안 +4 19.04.25 1,769 55 13쪽
80 모의 +4 19.04.24 1,771 62 14쪽
79 복귀 19.04.23 1,847 49 13쪽
78 접촉 II +3 19.04.22 1,869 65 15쪽
77 아이누 모시와 아페시르 열도 +1 19.04.20 1,957 60 14쪽
76 좌초 +1 19.04.19 1,888 61 13쪽
75 이안사 +5 19.04.18 1,996 56 14쪽
74 항로 개척 +3 19.04.17 2,035 62 13쪽
73 탐험 +8 19.04.16 2,057 69 14쪽
72 소문 +1 19.04.15 2,101 65 14쪽
71 새졸본 +5 19.04.13 2,100 62 13쪽
70 카라코롬 +2 19.04.12 2,138 66 13쪽
69 계획 +6 19.04.11 2,179 76 13쪽
68 하카타 상인 19.04.10 2,154 68 13쪽
67 류큐 +4 19.04.09 2,223 67 14쪽
66 탐라를 가다 19.04.08 2,226 67 13쪽
65 탐라 진출 19.04.06 2,332 75 13쪽
64 과학과 기술의 발전 +4 19.04.05 2,381 75 13쪽
63 1차 순례 +2 19.04.03 2,406 73 13쪽
62 목화와 경제가 +1 19.04.02 2,381 74 13쪽
61 길에서 +6 19.04.01 2,439 80 14쪽
60 변화의 바람 +3 19.03.30 2,696 74 14쪽
59 대륙을 논하다 +2 19.03.29 2,530 79 13쪽
58 여몽화약麗蒙和約 +3 19.03.28 2,611 73 14쪽
57 외무사外務司 +2 19.03.27 2,536 75 16쪽
56 화약 시현 +7 19.03.26 2,530 65 13쪽
55 접촉 +1 19.03.25 2,415 62 14쪽
54 이광수 +3 19.03.23 2,468 60 13쪽
53 유혹 +2 19.03.22 2,578 63 13쪽
52 대화 +2 19.03.21 2,525 74 15쪽
51 졸본의 일상Ⅰ 19.03.20 2,592 68 15쪽
50 소금 +1 19.03.19 2,631 73 16쪽
» 이장용 19.03.18 2,634 67 13쪽
48 주고 받다 +5 19.03.16 2,666 76 12쪽
47 테무친 죽다 +6 19.03.15 2,884 64 13쪽
46 군권 +1 19.03.14 2,693 72 13쪽
45 살리고 죽이다 +3 19.03.13 2,643 70 14쪽
44 동하점령 +1 19.03.12 2,734 66 13쪽
43 과학 +1 19.03.11 2,775 66 12쪽
42 화약 +4 19.03.09 2,855 68 14쪽
41 문제는 식량 +1 19.03.08 2,869 65 13쪽
40 나의 처지 +2 19.03.07 2,952 63 13쪽
39 밍캇 19.03.06 2,830 75 13쪽
38 졸본으로 19.03.05 2,938 77 13쪽
37 소르칵타니 +4 19.03.04 2,934 69 13쪽
36 쿠릴타이 +2 19.03.02 2,988 70 13쪽
35 한울루스 +2 19.03.01 2,996 71 13쪽
34 테무친 19.02.28 2,988 72 13쪽
33 이야기를 퍼뜨리다 +2 19.02.27 2,911 76 13쪽
32 텝텡게르 +1 19.02.26 2,874 71 13쪽
31 사기詐欺의 이유 +6 19.02.25 2,980 74 13쪽
30 기도를 하고 의례를 만들다 +7 19.02.23 3,070 78 14쪽
29 테무게 +2 19.02.22 3,069 74 13쪽
28 유덕용 +3 19.02.21 3,081 73 19쪽
27 졸본 +2 19.02.20 3,174 75 17쪽
26 터를 잡다 +2 19.02.19 3,190 71 16쪽
25 고향 19.02.18 3,154 71 15쪽
24 대만 +2 19.02.16 3,084 68 13쪽
23 사탕 19.02.15 2,990 68 13쪽
22 여정 +5 19.02.14 3,040 65 14쪽
21 선물 +3 19.02.13 3,087 73 14쪽
20 바스라를 떠나다 19.02.12 3,084 75 13쪽
19 탈출 +1 19.02.11 3,144 73 14쪽
18 중독 +2 19.02.09 3,153 64 13쪽
17 바부 +4 19.02.08 3,192 60 13쪽
16 고려 마을 +2 19.02.07 3,312 82 13쪽
15 바스라로 옮기다 +4 19.02.06 3,304 67 13쪽
14 아랍으로 가다 19.02.05 3,408 73 13쪽
13 신화를 만들다 +1 19.02.04 3,586 74 12쪽
12 베다 +2 19.02.02 3,757 74 13쪽
11 대고구려 +8 19.02.01 4,075 71 13쪽
10 사명을 가지다 +3 19.01.31 4,021 76 13쪽
9 번민 +3 19.01.30 4,316 71 12쪽
8 이적을 보이다 +2 19.01.29 4,537 78 12쪽
7 고려고약 +5 19.01.28 4,911 85 12쪽
6 영靈을 단련하다 +1 19.01.26 5,220 80 13쪽
5 파미르 탈출 +2 19.01.25 5,949 82 13쪽
4 몸을 차지하다 +1 19.01.24 6,961 93 13쪽
3 다른 차원의 지구 +2 19.01.23 7,925 86 13쪽
2 역사의 변곡점 +5 19.01.22 9,538 95 7쪽
1 프롤로그-전면 수정 +6 19.01.21 12,029 105 14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