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쪽 하늘에 뜨는 별, 天南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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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Ly
작품등록일 :
2019.01.24 0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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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4.15 2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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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1.24 06: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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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쪽

프롤로그. 나는 어디로 가는 걸까?

DUMMY

세계가 들어서자 눈이 시릴 정도로 많은 카메라 플래시가 행사장 곳곳에서 터졌다. 그를 기다리고 했던 수많은 팬들의 비명도 함께 터져 나왔다.


이런 상황에 익숙한 세계는 포토월에 서서 여유롭게 미소 띤 얼굴로 팬들과 카메라를 향해 손을 흔들어 주었다.


이세계. 작은 얼굴에 꽉 들어찬 선이 굵은 이목구비, 186의 훤칠한 키에 시원하게 뻗은 다리, 구릿빛 피부에 탄탄한 근육까지 완벽한 비주얼을 자랑하는 그는 데뷔 10년 차 탑 오브 더 톱스타다.


“오빠 얼굴에 김 묻으셨어요.”


“뭐? 잘생김?”


“오빠 왜 브라운으로 염색하셨어요?”


“너한테 잘 보이려고?”


엄청난 확률을 뚫고 선정된 100명의 팬들은 저마다 세계의 기억에 남길 멘트와 선물 준비해 그를 향해 줄지어 나아갔다. 세계는 그런 팬들에게 보답하듯 팬들에게 받은 각종 화관, 토끼 모자, 가면 등을 쓰기도 했고, 경호원들이 저지에도 불구하고 악수를 건네는 등 다정한 팬서비스로 팬들에게 감동을 안겼다.


그렇게 길고 길었던 팬 사인회 끝나자 세계는 자리에서 일어나 팬들을 향해 깊게 고개 숙여 인사했다. 톱스타임에도 불구하고 낮은 자세로 진심을 다해 팬들을 대하는 그의 모습에 팬들은 더 깊게 반했고, 더 이상 오를 곳 없어 보였던 세계의 인기는 날이 갈수록 치솟았다.



***



“야! 뭐해? 안가?”


차에 탄 세계는 매니저를 향해 소리를 빽 질렀다.


“오늘 형님이 받으신 선물만 얼른 트렁크에 넣고 출발하겠습니다.”


“야! 그걸 왜 내 차에 실어? 다 구질구질하니까 버려.”


세계의 짜증 섞인 윽박에 매니저는 머뭇거리며 말했다.


“형님. 이거 여기다 버리면 팬들 사이에 소문납니다. 제가 따로 잘 처리하겠습니다.”


“아 몰라. 알아서 하고, 빨리 가자고!!”


“네네. 이제 다 실었습니다. 출발하겠습니다.”


매니저는 조심스럽게 트렁크를 닫고, 잽싸게 운전석으로 뛰어 얼른 차에 올랐다.


“형님 그럼 이제 세트장으로 출발하겠습니다.”


“무슨 소리야! 지금 9시야. 나 밤늦게 촬영 안 하는 거 몰라?”


세계는 발로 운전석을 걷어차며 매니저를 향해 짜증을 퍼부어댔다.


매니저는 이제 세계의 신경질 섞인 짜증에 놀라지도 당황하지도 않는다. 1년 전엔 그도 놀라고 당황했었다. 대중이 아는 이세계는 매너 좋고 스윗한 사람이었으니까. 그가 이토록 성질 더럽고, 겉과 속이 다른 사람인 줄 몰랐으니까.


그러나 이제 그는 세계를 어떻게 다뤄야 하는지 안다. 매니저는 세계를 살살 달랬다.


“감독님이 이건 밤에 찍어야 진짜 멋있게 나오는 씬이라, 꼭 밤에 찍어야 한다고 하셔서요. 제가 대본 봤는데 이 액션신 형님 하시면 반응 무조건 터져요. 12시 전에는 꼭 끝내주신다고 하셨거든요. 그러니까 이번 한 번만 좀...”


“아 씨발 진짜 짜증 나게 하네. 왜 같은 이야기 두 번 하게 만들어? 안 간다고. 어?”


세계의 입에서 거친 쌍욕이 터져 나왔다. 팬들에게 다정한 척, 착한 척, 멋진 척. 온갖 척을 다 하느라 이미 지칠 대로 지친 세계에게 매니저의 능숙한 조련은 통하지 않았다.


상황파악을 끝낸 매니저는 차에서 내려 조연출에게 전화를 걸었다.


“네, 감독님. 아...이걸 어떡하죠? 지금 갑자기 형님 컨디션이 안 좋아서요. 네네. 위경련이 오신 거 같아요. 지금 병원 갔다가 댁에서 좀 쉬셔야 할 것 같은데...네네, 네 아우 죄송합니다.”


매니저는 이제 이런 거짓말도 능숙하다. 그는 잠시 본인이 배우를 해야 하는 게 아닌가 생각하다 이러다 또 욕먹겠다는 생각에 얼른 다시 운전석에 올라 시동을 켰다.


“야! 오늘 어디가 물이 좋냐? 어? 어디?”


뒷자리에 앉은 세계는 매니저를 본척만척하곤, 친구들과 통화하기 시작했다.


‘오늘 진탕 마시겠군. 내일도 죽었다.’


매니저는 내일 오전 촬영을 걱정하며 주차장을 빠져나갔다.



***



‘띠리릭’


벌써 오후 12시다. 더는 늦어지면 안 된다는 생각에 주차장에서 대기하던 매니저는 단단히 마음을 먹고 세계의 집으로 들어갔다.


현관에서 이어지는 복도에는 몇 년 전부터 세계가 경매로 수집한 그림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처음 이 집에 왔을 때, 매니저는 뭣도 모르고 그림을 만졌다가 세계에게 귀에서 피가 날 정도로 쌍욕을 먹었었다. 그 뒤로 그는 그림에 눈길조차 주지 않는다. 매니저는 빠르게 복도를 지났다.


미술품들이 전시된 하나의 갤러리 같은 복도를 지나면, 한 벽면을 통유리창으로 채운, 높고 넓은 거실이 나왔다. 거실 창으로 내려다본 한강은 그가 교통체증으로 꽉 막힌 도로에서 보던 한강과는 사뭇 다른 느낌이었다.


‘강도 사람을 차별하네. 이렇게 비싸고 좋은 데서 보니까 존나 예쁘네.’


매니저는 잠시 한강을 내려다보다 다시 정신을 차리고, 세계의 방으로 발길을 돌렸다.


벽, 천장, 바닥 등 온통 새하얀 세계의 집은 문과 손잡이마저도 새하얀 색이었다. 커다랗고 새하얀 문 앞에 서서, 새하얀 손잡이를 잡은 그는 크게 심호흡을 하곤, 방 안으로 들어갔다.


암막 커튼 때문에 아직 한밤중인 방안엔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세계가 얇은 시트로 겨우 하반신만 가린 채 잠들어 있었다.


매니저는 먼저 암막 커튼부터 열어 재꼈다. 햇빛이 눈이 부시게 방안으로 쏟아져 들어왔다. 햇빛은 세계의 벗은 몸 구석구석 붙어있는 탄탄한 근육을 더 돋보이게 만들어 주었다.


‘그렇게 술을 처마시는데도 저 근육 좀 봐.’


매니저는 새삼 불공평하다고 생각했다.


갑작스럽게 쏟아진 햇빛에 세계는 몸을 뒤척였다. 그럴 때마다 그의 굴곡진 바디라인이 의도치 않은 섹시함을 뿜어댔다.


다시 매니저는 심호흡했다. 그리고 세계에게 다가가 그의 잔뜩 화가 난 등근육에 손을 대고 그를 흔들어 깨우기 시작했다.


“형님! 일어나셔야 합니다. 형님! 촬영하러 가셔야 합니다.”


세계가 꿈쩍도 하지 않자 매니저는 더욱 세계 그를 흔들어 깨웠다.


“형님......”


“ 야!!!!!!!!!!!!!!!!!!!!!!!!!! ”


결국, 세계가 소리를 지르며 일어나 앉았다.


“야!!! 누가 맘대로 내 집에 들어오래? 어? 너 이거 주거침입죄야.”


“형님, 오늘은 꼭 촬영장에 가셔야 합니다. 오늘은 가셔야 이번 주 방송 나가요.”


“아!!! 씨발 나 이제 드라마 안 해!!! 영화만 할 거니까, 드라마 대본 같은 거 받지도 마. 그거 가져오면 내가 아주 너 죽여 버릴 거야!!!”


“네네, 앞으로는 그렇게 할 테니까, 이번만 네? 방송 펑크 나면 형님 이미지에 타격받습니다.”


세계는 매니저의 ‘이미지 타격’이란 말에 미간을 잔뜩 찌푸린 채 침대에서 일어나 욕실로 향했다.



***



“안녕하십니까?”


세계는 미소 띤 얼굴로 촬영장에 들어서며 감독에게 인사를 건넸다.


“세계 씨 이제 몸 괜찮아? 얼굴이 좀 핼쑥한데?”


새벽까지 술을 퍼부었던 세계는 그 여파로 얼핏 아픈 사람처럼 보이도 했다. 세계는 감독의 말에 자연스럽게 아팠던 사람처럼 연기하며 죄송한 척, 사람 좋은 척 또 ‘척’하는 거짓말을 이어갔다.


“아, 네 갑자기 몸이 안 좋아져서요. 아우 어젠 너무 죄송했어요.”


“아니야. 그게 뭐 세계 씨 잘못인가. 것보다 세계 씨. 오늘 이 씬 정말 중요한 씬이니까 잘 한번 해보자고.”


“네! 열심히 하겠습니다.”


“자, 세계 씨만 준비되면 촬영 들어갈게요.”



***



검은 슈트를 입은 세계가 어두운 창고 안으로 뚜벅뚜벅 걸어 들어왔다. 이미 몇 번의 싸움이 있었던 듯, 와이셔츠는 풀어 헤쳐져 움직일 때마다 그의 성난 가슴근육이 스치듯 지나가고, 얼굴 곳곳엔 상처가 나 있다.


세계가 들어서자 각목을 들고 있던 덩치 큰 조폭 일당들이 세계를 향해 달려들었다. 세계는 재빠르게 날아드는 각목을 잡아채고, 날렵하게 킥을 날렸다.


미리 맞춰둔 합에서 한 치의 오차도 없는 완벽한 액션씬이였다.


“컷!! 오케이”


“감독님! 괜찮았나요? 다시 한 번 갈까요?”


“난 좋았는데? 마지막 눈빛 너무 좋았어. 이런 눈빛 연기는 세계 씨 아니면 힘들지. 카메라 세팅 다시 할 동안 좀 쉬어. 37씬 이어서 갈 거야.”


카메라 뒤에서 촬영하는 모습을 지켜본 매니저 역시 그의 연기력만큼은 인정했다.


‘성질은 지랄 같지만, 연기는 잘한다니까.’라고 생각하기 무섭게 세계가 매니저를 향해 눈빛을 쏘아댔다.


“수고하셨습니다. 형님”


“야, 이거 은제 끝나. 피곤해 뒈지겠다.”


세계는 남들이 듣지 못하도록 이를 악물고 매니저를 향해 작게 속삭였다.


“형님 피곤하시니까 차에서 조금 주무시는 게······”


“야! 여기는 대기실도 없어?”


소리를 빽 지르려던 세계는 주변을 살피고 급히 목소리를 낮췄다.


“여기가 창고라 대기실이······”


“아 피곤해. 존나 피곤해. 야 빨리 차 문 열어. ”


세계는 어쩔 수 없다는 듯 검지를 홱 홱 돌리며 매니저를 쏘아댔다. 매니저는 미리 창고 앞에 주차해 놓았던 밴으로 재빠르게 달려가 차 문을 열었다. 세계를 밴에 올라타자마자 다시 욕지거리는 시작했다.


“야! 옷은 왜 또 이 모양이야? 나 얼어 뒈지라고 이런 거야?”


“오빠 그게 아니라, 이게 연결 의상이라...”


스타일리스트는 세계의 눈치를 보며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아 짜증 나. 야! 언제까지 대기해야 하는지 알아보고 와.”


세계의 짜증이 극에 다다랐다.



***



“수고하셨습니다!”


촬영이 끝나자, 세계는 얼굴 만반에 선한 미소를 띠고 감독에게 인사를 했다. 그리곤 뒤돌아서기 무섭게 굳은 표정으로 매니저를 향해 눈빛을 쏘아댔다.


‘진짜 배우 아무나 하는 게 아닌가 봐.’


매니저는 1년을 봐왔지만, 여러 의미로 세계가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야! 뭘 그렇게 멍하게 있어? 문 열어!”


세계는 매니저를 향해 익숙하게 윽박질렀다. 매니저는 더 큰 소리 나기 전엔 얼른 차에 올라타 차 문을 열었다. 세계가 자리에 앉자 시동을 걸고 출발하기 전, 세계를 향해 조심히 말을 건넸다.


“형님, 출발하겠습니다. 근데...저기...형님. 안전벨트......하셔야 합니다.”


“뭐?”


피곤한 듯 눈을 감고 있던 세계는 눈을 뜨며 어이없다는 듯 되물었다.


“아니...그게, 이제 전 좌석 안전벨트 안 하면 과태료 나옵니다. 요즘은 특별 단속 기간이라...”


결국, 세계의 입에서 참고 있던 욕지거리가 튀어나왔다.


“야. 씨발 그거 얼만데? 그게 얼만데 니가 나한테 이래라 저래라야?”


매니저는 아차 싶었지만 이미 엎어진 물이었다.


“죄송합니다.”


세계는 더 화내기도 귀찮다는 듯 다시 눈을 감으며 경고했다.


“야! 나 잘 거니까 운전 부드럽게 해. 액셀 막 밟지 말고 어? 알았어?”


“네.”


매니저는 오늘 유난히 더 날카로웠던 세계 덕분에 진이 다 빠져나갔다.


그저 세계가 깨지 않길... 제발 깨서 욕하지 않길...


그는 더 조심히 신경을 써가며 서울로 향했다.



***



“꽝!!!!!!”



갑작스러운 굉음과 함께 충격이 전해졌다. 감당할 수 없을 정도의 큰 충격에 매니저의 몸이 앞으로 홱 쏠렸고, 머리는 핸들을 향해 헤딩했다. 이게 무슨 상황인지 어안이 벙벙해진 매니저가 겨우 고개를 들어 앞을 보았다.


터진 에어백과 깨진 앞유리 사이로... 도로 위, 쓰러져있는 사람의 형체가 보였다.



***



다음 뉴스입니다. 배우 이세계 씨가 오늘 오후 7시 서울 외곽순환도로에서 교통사고로 숨졌습니다. 뒤에서 오던 25톤 덤프트럭이 앞서가던 이 씨의 차량을 들이받은 것으로 보이는 데요. 경찰은 현재 사고 현장의 폐쇄회로를 토대로 정확한 사고 경위를 조사 중입니다. 보도에 김유택 기자입니다.



***



R:255, G:255, B:255. 순도 백 퍼센트의 화이트. 지금 이곳에는 다른 어떤 색도 보이지 않는다. 끝없이 이어진 흰색의 향연. 어디까지가 벽인지, 바닥인지, 천장인지 공간의 구분을 할 수 없다.


세계는 발 딛는 것도 두려워 멍하게 선 채로 하얀 공간을 둘러보았다.


우리 집보다 더 새하얀 여긴, 대체 어디지?


“24781945 고객님 여기로 오세요!”


어디선가 명랑하고 친절한 목소리가 들렸다.


갑작스러운 목소리에 세계는 깜짝 놀라 고개를 돌렸다. 아까까진 분명 보이지 않던 사무용 데스크가 보였고, 그곳에 흰색 슈트를 입고 앉아있는 한 남자가 보였다.


“여, 여긴 어디야?”


알 수 없는 장소, 알 수 없는 인물에 두려워진 세계는 잔뜩 잠긴 목소리로 물었다.


“여기요? 하... 뭐라고 설명하면 쉬울까요? 음... 그쪽 세계 사람들은 여길 사후세계, 혹은 저승세계라고도 하더라고요.”


남자는 또랑또랑하게 밝은 목소리로 설명했다.


“사후? 저승? 야, 너 지금 장난해. 너 뭐야. 뭐 하는 놈이야?”


생각지 못한 답을 들은 세계는 매니저에 늘 그랬듯 소리를 빽 질렀다. 그러나 하얀 슈트의 사내는 전혀 당황하지 않고 여전히 명랑한 목소리로 자신을 소개했다.


“저는 사 팀장이라고 합니다.”


“어디 방송사야? 팀장은 됐고, 국장 오라고 해. 무슨 몰카를 이따위로 하고 있어!”


“저희 회사는 국장이란 직책은 없고요. 제 위로 부장님 이사님 상무님 전무님...”


“야! 너 지금 나랑 장난해?”


세계는 사 팀장의 말을 끊고 다시 소리를 질렀다. 길길이 날뛰는 자신과는 달리, 그러거나 말거나 그저 발랄하게 답하는 사 팀장 덕분에 세계는 더 기가 막혔다.


“난 사전에 고지 안 된 촬영 못 해. 컨디션도 지금 완전 바닥이고. 가서 우리 매니저 좀 불러와.”


“24781945 고객님! 그 매니저란 분은 이쪽 세계로 못 와요. 그럼 큰일 나요.”


이 새끼가 진짜 계속......


휴- 이세계. 일단 좀 진정하자. 어디선가 카메라가 돌고 있을지 모르니까.


세계는 끓어오르는 화를 누르며 이를 악물고 말했다.


“알았어. 뭐? 이거 뭔 방송인데? 내가 어떻게 해야 하는지 설명을 해봐. 빨리하고 가게. ”


세계는 검지를 홱 홱 돌리며 빨리 설명을 하라며 사 팀장을 닦달했다.


“가끔 24781945 고객님 같은 분들이 계세요. 어쩔 수 없죠. 원랜 보여드리면 안 되지만....”


사 팀장이 ‘탁! 탁!’ 두 번의 핑거스냅을 하자마자 세계의 눈앞에 투명 모니터가 생겼다. 세계가 놀랄 틈도 없이 다시 사 팀장이 핑거스냅을 하자 바로, 영상이 플레이 됐다.


“오늘 오후 세상을 떠난 배우 이세계 씨의 빈소에 동료 연예인과 국내외 팬들의 조문이 잇따르고 있습니다.”


“추운 날씨에도 수백 명의 팬이 장례식장을 찾아 고인의 마지막 길을 추모했습니다.”


“빈소를 향한 팬들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세계의 사망소식을 전하는 각종 뉴스들, 세계의 빈소가 차려진 장례식장의 모습이었다.


수많은 사람이 세계를 위해 울고 있었고, 그의 명복을 진심으로 빌어주고 있었다.


“내가......죽었다고?”


세계는 눈앞에 보이는 영상들을 믿을 수 없다는 듯 나지막이 혼잣말을 내뱉었다.


그런 세계의 기분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듯 사 팀장은 서류를 보며 청랑하게 말했다.


“24781945 고객님은 운이 참 좋으세요. 저분들 덕분에 다행히 제1세계는 피하게 됐으니까요.”


“그건 또 무슨 소리야?”


의미를 알 수 없는 사 팀장의 말에 정신을 차린 세계는 날카롭게 물었다. 그러자, 사 팀장은 마치 보험약관을 설명하는 상담사처럼 다다다다 말을 쏟아냈다.


“원래 세계는 아홉 세계로 되어 있죠. 제9세계가 고객님이 알고 계신 단어로 설명하면 ‘천국’이고요. 제1세계가 ‘지옥’이죠. 그러니까 쉽게 설명하면 제1세계부터 제9세계까지 단계별로 어떤 인생을 지냈나에 따라 왔다 갔다 하는 거예요. 불교에서는 육도윤회(六道輪廻)라고도 하고 기독교에서는 음부(陰府)와 연옥(煉獄) 같은 걸로 설명하긴 하던데. 뭐 암튼 원랜 병행되어 있는 아홉 개의 세계를 왔다 갔다 하는 거죠. 인간은.”


“육도윤회? 연옥?”


한꺼번에 쏟아진 많은 정보를 이해하느라 정신없는 세계와는 상관없이, 사 팀장은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음... 24781945 고객님은 지금까지 제7세계에 계셨는 데요. 조금만 잘하셨음 제8세계 가는 건데, 이번엔 개차반 같은 인생을 보내셨네요.”


“뭐 개차반?”


개차반이란 소리에 세계가 다시 버럭 했지만, 역시나 사 팀장은 아랑곳하지 않고 말을 이어 갔다.


“이 정도면 최소 제2세계 정도는 가야 마땅한데요. 수많은 분들이 24781945 고객님의 명복을 지극하게 바라주셔서 제4세계로 배정받으셨어요. 이거 진짜 운 좋으신 거예요.”


사 팀장은 이제 일이 끝났다는 듯 서류를 내려놓았다. 세계는 다급하게 물었다.


“제4세계? 4세계는 어딘데?”


“글쎄요. 뭐 직접 가보시면 알겠죠.”


얼빠진 채로 서 있는 세계를 향해 계속해서 사 팀장은 말을 이었다.


“자, 저기 문 열고 나가시면 돼요. ”


“문? 문이 어딨다고...”


두리번거리는 세계의 옆으로 실금 같은 하얀색 문이 생겼다.


“자, 24781945 고객님. 문 열고 가세요. 그럼 안녕히!”


세계는 아직 이 모든 상황이 혼란스럽기만 했다. 자신이 죽었다는 것도, 그저 하얗기만 한 이곳도, 사 팀장이란 사람도 모든 것이 환상 같았다.


멍하게 서 있는 세계를 향해 사 팀장은 여전히 친절한 말투로 재촉했다.


“저기 좀 빨리 가주시겠어요? 저는 또 다음 고객님 만나야 해서요.”


사 팀장의 말에 세계는 문손잡이에 서서히 손을 가져다 댔다. 손잡이를 잡은 세계의 손이 덜덜 떨렸다. 문을 열 듯 말 듯 한참을 망설이던 세계는 다시 손잡이에서 손을 뗐다.


“못 가! 나 못 가! 거기가 어딘 줄 알고 가!”


세계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가야 한다니까요. 어서 빨리 가세요.”


“못 가! 아니 안가!”


입씨름을 하던 사 팀장은 결국 자리에서 일어나 문을 향해 걸어왔다. 그가 손잡이를 잡고 문을 열려고 하자, 세계는 필사적으로 손잡이를 잡고 반대쪽으로 힘을 쓰며 온몸으로 그를 막았다.


“고객님 이러시면 안 되는데요.”


“안되긴 뭐가 안 돼!”


그렇게 두 사람은 엎치락뒤치락 손잡이를 붙잡고 한참을 씨름했다. 결국 사 팀장은 별수 없다는 듯 손잡이를 놓았다. 세계는 계속해서 손잡이를 잡고 긴장을 끈을 놓지 않겠다는 듯 사 팀장을 노려봤다.


“알았어요. 알았어요. 그 문으로 안 보낼게요.”


사 팀장은 포기했다는 듯 두 손을 들곤 세계를 달랬다. 사 팀장은 다시 데스크에 앉기 위해 몸을 돌렸다


세계가 사 팀장의 눈치를 살피며 안심하는 사이, 사 팀장은 반대편에 다른 문을 하나 더 만들었다. 그리고 재빠르게 그 문을 열곤, 세계를 세차게 밀어 넣었다.


“안녕히 가세요. 24781945 고객님! ”


일격을 당한 세계는 문 안, 의문의 화이트홀로 빨려 들어갔다.



‘나는 어디로 가는 걸까?’


작가의말

재미나게 보셨나요? 부디 그랬으면 좋겠네요.

연재란 게 쉽지 않지만 즐겁게 해보려고요.

우리 함께 이 이야기의 끝을 보아요.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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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 60화 이치는 비슷하다. 21.04.15 10 0 13쪽
60 59화 들어봤습니다. 그 이름. 21.04.02 15 0 13쪽
59 58화 후회라는 건 그냥 일찍 해버리는 게 나아. 20.10.30 17 0 13쪽
58 57화 곧 그 효과가 나타나게 될 것입니다. 20.09.12 14 0 13쪽
57 56화 오해를 풀고 싶습니다. 20.05.16 41 0 14쪽
56 55화 개똥 같은 소리 20.02.21 29 0 13쪽
55 54화 네가 해다오 20.01.13 27 0 13쪽
54 53화 그녀를 곁에 둘 각자의 방법 19.12.31 27 0 12쪽
53 52화 그게 그토록 궁금하셨나요? 19.12.24 24 0 13쪽
52 51화 없던 병이 더 생기겠군. 19.12.06 30 0 14쪽
51 50화 천 년에 한번 있을까 말까 한 일 19.11.24 33 0 16쪽
50 49화 이대로는 아니 되옵니다. 19.11.17 28 0 14쪽
49 48화 대신 조건이 있습니다. 19.11.10 35 0 12쪽
48 47화 그들의 속내 19.11.01 31 0 13쪽
47 46화 그 아이의 정체를 모르실 것 같은가? 19.10.27 37 0 14쪽
46 45화 모든 것이 비로소 이해되었다. 19.09.28 45 0 14쪽
45 44화 저를 궁으로 보내주십시오. 19.09.20 43 0 12쪽
44 43화 이미 오래전에 끝난 일 19.08.29 36 0 15쪽
43 42화 마마신의 저주 19.08.15 43 0 13쪽
42 41화 불안의 시작 19.08.11 40 0 12쪽
41 40화 붉은 입술 19.07.27 63 0 13쪽
40 39화 안개 속의 자두 19.07.20 53 0 17쪽
39 38화 합궁, 내 꼭 해주지. 19.07.12 77 0 13쪽
38 37화 역시 말렸어야 했다. 19.07.06 48 0 14쪽
37 36화 더 강력한 명분 19.06.28 47 0 12쪽
36 35화 선물이 향하는 곳 19.06.22 60 0 13쪽
35 34화 누구의 편이십니까? 19.06.16 53 0 16쪽
34 33화 생각하고 또 생각해도 정답은 하나 19.06.01 67 0 12쪽
33 32화 익숙하지만, 익숙하지 않은 19.05.26 57 0 12쪽
32 31화 익숙함이라는 것은 때론 무서운 것 19.05.17 73 0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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