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독한 사이보그의 요리 일지

웹소설 > 일반연재 > SF, 판타지

서리꾼2
작품등록일 :
2019.02.21 03:23
최근연재일 :
2019.03.14 05:32
연재수 :
15 회
조회수 :
1,076
추천수 :
7
글자수 :
57,670

작성
19.02.26 14:57
조회
58
추천
1
글자
9쪽

1. 빵이 먹고 싶어 (7)

DUMMY

「뭐야? 설마 진짜 찾은 거야?」

“이거 봐! 비상식량 통밀빵! 총알이 빗발치는 순간에도 맛있는 빵을 드세요! 하단의 버튼을 누르면 갓― 구운 빵이! 완성됩니다!”

「어린이용 전쟁놀이 세트에 들어 있던 게 떨어졌나 봐.」

“전쟁놀이 세트?”

「20세기 무렵에 사용하던 군용 비상식량을 비슷하게 재현한 거야. 빈곤층을 위한 장난감이지.」

“빈곤층을 위한 거라니?”

「마트는 빈곤층을 위한 시장이야. 일정한 수준 이상 되는 가정에서는 자급자족을 하니까.」

“그래? 나 너무 아는 게 없는 거 아니야?”

「생활상은 이식해야 할 정보가 아니라 경험해야 할 정보로 분류했어.」

“이젠 경험할 수가 없잖아.”

「간접경험도 경험이니까. 어쨌든 축하해. 그렇게 먹고 싶어 했던 빵을 구했잖아. 98%의 확률로 구하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나 정말 탐험가에 소질이 있는 것 같아.”


난 손에 든 비상식량을 감격스럽게 내려다보았다. 그리고 이내 고민에 빠졌다. 이것을 언제 어디서 먹어야 할지 고민이 되는 것이다. 아침부터 아무것도 먹지 못해 지금 당장 먹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하지만 다시는 구하지 못할지도 모르는 빵을 이런 조명도 없는 어두컴컴하고 칙칙한 땅속에서 먹는다면 평생의 한으로 남을지도 모른다.


갓 구운 빵의 자태를 밝은 곳에서 감상하고 싶다. 노릇한 갈색 껍질의 감촉을 손끝으로 느끼고 싶다. 반으로 갈랐을 때 피어오를 고소한 냄새가 담긴 김을 남김없이 들이마시고 싶다. 그리고 빵을 반으로 잘라 절반은 한입에 털어 넣고 나머지 절반은 사라지는 것을 아쉬워하며 아주 조금씩 뜯어 먹고 싶다.


「왜 쳐다만 봐? 안 먹을 거야?」

“여기서는 먹지 않을 거야. 나가서 먹을래. 환한 곳에서.”

「음식은 가장 먼저 눈으로 먹는다는 말이 생각나네. 그건 그렇고 애써 만든 화덕이 쓸모없어져서 어떡해?」

“나중에 다른 걸 만들면 되니까 괜찮아.”

「빵으로는 만족하지 못해?」

“무슨 소릴 하는 거야. 앞으로 캡슐은 먹지 않을 거라고 말했잖아.”

「그래, 그래. 마음대로 하라고.」

“얼른 나가자. 빨리 먹고 싶어.”

「더 둘러보지 않고?」

“쓸 만한 로봇이 남아 있을까 봐서? 나중에 다시 오면 되잖아. 당장 내일이라도.”

「알았어. 200년 동안 이곳에 있었는데 하루아침에 사라지진 않겠지.」

“돌아가자!”


난 눈앞의 어두운 정글을 뒤로하고 몸을 돌렸다. 행여나 잃어버릴까 양손으로 통밀빵 비상식량을 소중하게 감싸 쥐고 왔던 길을 되돌아갔다.


출입구로 돌아가는 내내 난 손에 든 빵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바닥에 널린 쓰레기와 얼룩덜룩한 잎사귀의 식물이 자꾸만 발에 걸렸다. 카인이 대신 길 안내를 해주면 좋으련만 카인도 새로운 몸체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바닥을 살피기 바빴다.


그래서 난 넘어지지 않기 위해 바닥을 발로 차면서 걷기로 했다. 마른 잎사귀들이 허공에 날렸고, 부서진 로봇의 잔해들이 날아가 진열대에 부딪혔다.


「무슨 짓이야?」

“넘어질까 봐.”

「바닥을 잘 보고 걸으면 되잖아.」

“떨어뜨릴까 봐 무서워서 눈을 못 떼겠어.”


그 순간 발에 차인 로봇의 머리가 카인을 스치고 날아갔다.


「너······.」

“아, 미안해. 위험하니까 뒤에서 따라와.”

「그러다가 멀쩡한 로봇까지 부수면 어떡해.」

“그럼 옆이나 머리 위로 와.”


카인은 불만스러운 듯 보였지만 별말 없이 머리 위로 자리를 옮겼다. 난 다시 바닥을 걷어차며 걸었고, 카인은 내가 멀쩡한 로봇을 부수는 것을 막기 위해 더욱 집중해서 바닥을 살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정글을 지나 돌버섯 밭까지 돌아오기까지 걸린 시간은 들어갈 때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난 조금 조바심이 나서 보폭을 조금 넓히는 대신 더욱 바닥을 강하게 차며 걸었다.


발끝에 무엇인가 걸릴 때마다 따개비처럼 벽면의 진열대에 달라붙은 돌버섯들이 후드득 떨어졌다. 200년 동안 조용히 잘 살고 있던 버섯들에게는 미안한 일이다. 하지만 너희는 수가 많잖아. 빵은 하나뿐이니까 이해해줘.


「어렵게 살아남은 생물들을 멸종시키지 말아줘.」

“어렵게 살아남았으니까 이 정도로 되진 않을 거야.”

「하여간 인간이란. 지구의 해충이란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지. ······어? 조심해!」

“뭐? 뭔데? 뭐, 뭐, 으악!”


어둠 속에서 검은 실루엣이 튀어나왔다. 그것은 양팔을 머리 위로 올린 채 나를 위협하며 달려오고 있었다. 날카로운 앞발톱이 소중한 통밀빵 비상식량을 찢으려고 다가오는 것 같았다. 난 반사적으로 발을 들어 올려 괴생물체를 걷어차려고 했다.


「안 돼! 멈춰!」


카인의 다급한 외침에 깜짝 놀란 난 발을 거두며 몸을 틀어 공격을 피했다. 괴생물체는 방향을 트는 법을 모르는지 옆을 지나쳐서는 그대로 허공을 향해 양팔을 내리쳤다. 전혀 아플 것 같지 않은 공격이었다. 피하지 않았어도 괜찮았을 것 같다.


“왜 멈추라는 거야?”

「귀여운 너구리판다잖아.」

“아, 그러고 보니······.”


카인의 말을 듣고 유심히 앞을 보니 그제야 괴생물체의 정체가 눈에 들어왔다. 동글동글한 얼굴에 하얀 눈썹과 볼터치, 뾰족한 귀가 귀여운 너구리판다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날 노려보고 있었다.


머릿속에서 너구리판다에 대한 정보들이 떠올랐다. 가장 인기 있고 보편적인 애완동물 중 하나로, 개량을 거쳐 인간과 친숙한 성격을 갖고 있고 자연사에 이르기까지의 수명은 약 20년이다.


“······내 머릿속에 왜 이런 정보가 있는 거야? 왜 너구리판다가 이식해야 할 정보로 분류됐어?”

「귀엽잖아. 인간은 귀여운 것을 좋아하는 본능을 가졌어. 방금 내가 널 멈추지 않았다면 평생의 트라우마로 남게 됐을 거야. 귀여운 너구리판다를 발로 터트려서 죽였다는 죄책감으로 매일 악몽을 꿨겠지.」


반박할 수 없다. 괴생물체의 정체가 너구리판다라는 사실을 알고 나니 도저히 때릴 수가 없다. 지금도 적개심을 보이며 당장 달려들 것처럼 자세를 잡고 있는데도 밉지 않다. 오히려 귀엽다. 심지어 저 포동포동한 앞발에 맞으면 기분이 좋을 것 같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그때 너구리판다가 다시 몸을 곧추세우며 달려들었다. 자기보다 몸집이 큰 인간을 제압하겠다는 듯 앞발을 있는 힘껏 머리 위로 들어 올렸지만 전혀 위협적이지 않았다.


난 가볍게 너구리판다의 공격을 피했다. 그 뒤로도 난 무엇인가에 홀린 사람처럼 움직이지 않고 제자리에서 너구리판다의 공격을 피하기만 했다.


한 번만 만지고 싶다는 충동이 요동쳤다. 뾰족한 귀를 쓰다듬고 싶다. 동글동글한 얼굴을 쓰다듬고 싶다. 뭉실뭉실 털이 난 꼬리를 쓰다듬고 싶다.


「피티! 정신 차려!」

“······어?”


카인의 목소리가 환청처럼 들려왔다. 너구리판다의 움직임에 너무 매혹되어 있었던 걸까. 정신을 차리고 보니 어느새 수십 마리의 너구리판다가 주위를 포위하고 있었다.


“귀여운 녀석들이 이렇게 많이······.”

「마냥 귀여워하기에는 수가 너무 많지 않아? 그 빵 지킬 수 있겠어?」


난 깜짝 놀라서 손을 내려다보았다. 통밀빵 비상식량을 쥐고 있었다는 사실조차 잠시 잊고 있었다. 귀여움에 현혹되어 소중한 것을 눈 뜨고 빼앗길 뻔했다.


“이런 요망한······.”

「정신 차리고 빨리 밖으로 뛰어!」


카인은 공중으로 높이 솟아오르더니 빠르게 출구를 향해 날아갔다. 그때 주위를 포위하고 있던 너구리판다들이 일제히 허리를 세우고 일어났다. 그리고 양팔을 들고 뒤뚱거리며 달려들었다.


난 비상식량을 든 손을 머리 위로 번쩍 올린 채 눈을 질끈 감고 카인의 뒤를 따라 달렸다. 눈을 감지 않으면 이 기분 좋은 늪에서 빠져나올 수 없을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아앗······.”


너구리판다의 포위망을 뚫기 직전 한 마리 너구리판다의 공격이 허벅지를 때렸다. 묘하게 푸근하면서도 부드러운 감각에 그만 기분 좋은 비명을 질러버렸다. 순간 한 대만 더 맞고 싶다는 충동이 일었다. 실제로 잠깐 멈칫하기도 했다. 하지만 손에 든 빵을 생각하자 가까스로 유혹을 이겨낼 수 있었다.


너구리판다들은 추적을 쉽게 포기하지 않았다. 등 뒤에서 수십 마리의 발소리가 들려왔다. 짧은 다리로 달려오는 너구리판다 무리를 상상하니 당장이라도 고개를 돌리고 싶었다. 카인의 말이 맞았다. 인간에게는 귀여운 것을 좋아하는 본능이 존재한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1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고독한 사이보그의 요리 일지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15 2. 살을 구워 먹는다고? (5) 19.03.14 51 1 10쪽
14 2. 살을 구워 먹는다고? (4) 19.03.12 49 0 9쪽
13 2. 살을 구워 먹는다고? (3) 19.03.07 27 0 10쪽
12 2. 살을 구워 먹는다고? (2) 19.03.05 30 1 8쪽
11 2. 살을 구워 먹는다고? (1) +1 19.03.01 63 0 9쪽
10 1. 빵이 먹고 싶어 (9) 19.02.28 50 0 7쪽
9 1. 빵이 먹고 싶어 (8) +1 19.02.27 43 0 9쪽
» 1. 빵이 먹고 싶어 (7) +1 19.02.26 59 1 9쪽
7 1. 빵이 먹고 싶어 (6) 19.02.25 63 0 9쪽
6 1. 빵이 먹고 싶어 (5) 19.02.24 61 0 10쪽
5 1. 빵이 먹고 싶어 (4) 19.02.23 69 0 9쪽
4 1. 빵이 먹고 싶어 (3) 19.02.22 85 0 10쪽
3 1. 빵이 먹고 싶어 (2) 19.02.21 95 0 9쪽
2 1. 빵이 먹고 싶어 (1) 19.02.21 103 1 9쪽
1 프롤로그. 고독한 요리사의 탄생 +1 19.02.21 229 3 4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