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94 노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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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검늑삼
작품등록일 :
2019.02.22 18:26
최근연재일 :
2019.09.26 1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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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8.02 1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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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9장 : 세사난측(世事難測。세상일은 변천이 심해 미리 알기가 어렵다) (1)

DUMMY

갑오년 삼월 하순 만반의 준비를 갖춘 전봉준과 사천여 명의 농민군은 무장을 출발했다. 그리고 그 다음날 고부의 초입에서 삼백여 명에 달하는 또 다른 농민들을 합류시킨 후 곧장 고부 관아로 쳐들어갔는데, 뒤늦게 합류한 그 삼백여 명은 태인의 최경선이 미리 조직해 놓은 농민군이었다.


그런데 고부 관아에서도 촉각을 곤두세운 채 그 모든 상황을 예의 주시하고 있는 이들이 있었다.


"군수 나리, 지금 바로 앞까지 몰려왔다고 합니다."


"음, 그럼 이쯤에서 안핵사를 깨워야 하겠군."


고부 군수 박원명과 그의 부관인 정만군이었다.


"그런데 고부 나리, 소관은 나리의 깊은 혜안에 따르기는 하지만··· 나리의 심중을 좀체 모르겠습니다. 저리 악독하고 파렴치한 자를 어찌 살려 주려는 것인지 솔직히 소관은 이해가 안 됩니다."


"나 또한 안핵사에게 이가 갈리는 건 자네 못지않네. 하지만 이 고부의 내일을 위해선 어쩔 수가 없네."


정만군이 다소 불만 섞인 말로 의구심을 나타내자 박원명이 알다가도 모를 말로 대답을 대신했다.


"구태여 이렇게까지 해야 하는 이유라도 있는지요? 사실 어제 초저녁 나리께서 술 접대를 할 때만 해도 이 안핵사를 제거하려는 줄로 알았습니다. 한데, 정작 그 때가 다되어 가는 마당에 이제 와서 갑자기 깨워야 한다고 하니 나리께서 무슨 생각을 하고 계신지 소관은 도무지 모르겠습니다."


나흘 전 정만군은 박춘석을 옥에서 빼내 관아 밖으로 내보낸 적이 있었다. 그 박춘석이 어제 점심나절 아무도 모르게 정만군을 찾아왔는데, 물론 전봉준의 근황을 전해 주기 위해서였다. 박춘석이 들고 온 정보에 의하면 도대체 무슨 신통한 재주를 가졌는지 전봉준은 이미 농민군의 대장으로 추대되어 있었고, 무려 사천여 명의 농민군을 이끌고 어느 틈에 벌써 흥덕현까지 올라와 있다고 했다. 그 여세를 미루어 예상컨대 오늘 새벽쯤에는 이곳 고부까지 들이닥칠 게 분명했다.


정만군은 그 모든 정보를 박춘석에게 전해 들은 다음 박춘석을 다시 관아 밖으로 몰래 내보냈다. 그리곤 곧장 군수 집무실로 부리나케 뛰어들었다.


"군수 나리, 전봉준이 무려 사천여 명의 농민들을 이끌고 이곳으로 몰려오고 있답니다."


"허! 사천여 명이나? 역시 예상한 대로 대단한 자가 틀림없었군. 그래, 지금 어디쯤이라고 하던가? 아니, 언제쯤이면 이곳에 당도한다고 하던가?"


정만군의 말을 전해 들은 박원명은 처음엔 흠칫하며 놀랍다는 반응을 보였으나 이내 예상하고 있었다는 듯 담담한 표정으로 바뀌었다.


"현재 흥덕 못미처 있는데, 오늘 늦은 밤이나 내일 새벽쯤이면 이곳에 당도할 것 같습니다. 군수 나리, 이제 어떡해야 하겠습니까?"


"음, 내 자네 말을 듣고 어제오늘 사이에 미리 몇 가지를 생각해 놓은 게 있네. 일단 자네는 지금 바로 안핵사를 찾아가게. 내 미리 파악해 놓은 바에 의하면 지금쯤 아마 두승산 인근 어디에 있을 것이네."


다소 긴장해 보이는 정만군에 비해 박원명은 의외로 침착하고 차분했다.


"찾, 찾아가서 소관이 이 안핵사에게 뭘 전하면 되는지요?"


"내 오늘 작은 주연을 베풀 예정이니 공무를 좀 일찍 마치고 참석해 줬으면 한다고 전하게."


"예? 지금 이 시점에서 주연을요? 군수 나리, 어찌 그런 생각을······."


뜬금없는 박원명의 말에 정만군이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의아함을 내비쳤다. 하지만 곧바로 이어진 박원명의 말에 입을 다물어야만 했다.


"마저 듣도록 하게. 안핵사가 주연에 꼭 참석해야 하는 이유가 있네. 그러니 나머지는 모두 내게 맡기고 자네는 안핵사가 주연에 참석할 수 있도록 내 말을 꼭 전해야만 하네. 알겠는가?"


"소관은 군수 나리께서 시키시는 일은 뭐든지 다 완수하겠습니다. 하지만 왜 그래야 하는지 그걸 알면 소관이 일을 보는 데 있어 좀 더 수월하지 않겠습니까?"


박원명의 알쏭달쏭한 말이 선뜻 이해되지 않는지 정만군이 점점 더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궁금함을 내보였다. 그러나 박원명은 평소와 달리 말을 아꼈다.


"안핵사가 그동안 빼돌린 고부 군민들의 재물을 지켜주고 싶어서 그러네. 그러니 우선은 그리만 알고 어서 서둘러 움직이게나."


고부 군수 박원명은 안핵사 이용태가 군민들에게 강탈한 재물을 어떻게든 군민들에게 다시 돌려주고 싶은 마음이었다. 그래서 나름 꾀를 낸 게 바로 이것이었는데, 다름 아닌 전봉준이 쳐들어올 때까지 이용태가 도망치지 못하도록 붙들어 두는 거였다. 물론 이용태를 붙들려는 게 아니라 이용태가 그동안 강탈한 재물을 붙들어 두려는 게 그 목적이었다.


하지만 그 꾀에는 작은 문제가 하나 있었다. 시간을 잘못 맞추면 전봉준과 농민들에게 자칫 이용태가 붙잡힐 수도 있었는데, 만일 그렇게 되면 이용태의 생살여탈이 전봉준과 농민들에게 넘어가 까딱하면 이용태가 처형될 수도 있었다.


만에 하나 그리되면 이곳 고부는 다시 한 번 피바람이 부는 대규모 환란을 겪어야만 했다. 그리될 수밖에 없는 게 조정에서 파견한 고위 관리가 농민들에게 살해됐다고 가정했을 때 그 파장은 어마어마할 수밖에 없었고, 조정에서도 가만히 있을 리 만무했기 때문이다. 소탕이란 명분으로 대규모 토벌군이 내려오는 건 두말할 필요가 없었고, 무엇보다 일벌백계 차원에서 대대적인 탄압과 숙청이 이루어질 게 불을 보듯 뻔했다. 다시 말해 다른 고장에 경각심을 심어 주기 위해서라도 이곳 고부를 본보기로 삼아 엄하고 혹독하게 토벌할 게 명약관화했다.


'그뿐만이 아니라······.'


그런 토벌이 있을 때마다 으레 뒤따르는 부수적인 비리나 폐단 등 부작용 또한 엄청날 게 뻔하디뻔했다. 그런 만큼 이용태가 때려죽이고 싶을 만큼 미운 게 사실이지만, 한편으론 전봉준과 농민들한테 붙잡히면 절대 안 되는 그런 모순된 상황이었다.


그런 까닭에 박원명은 불가부득 꾀를 낼 수밖에 없었고, 그 꾀가 바로 이용태를 살려 주되 고부 군민들에게 빼앗은 재물은 그대로 놔둔 채 몸뚱어리만 빼내 맨몸으로 도망치게 하는 거였다. 사실 어제 저녁 주연을 빙자해 이용태에게 술을 먹인 이유도 전봉준이 쳐들어올 때까지 옴싹달싹 못하게 옭아매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그 결과 전봉준과 농민들이 아주 가까이까지 몰려왔는데도 술에 취한 이용태는 현재 깊은 잠에 빠져 세상모르고 자고 있었다. 결국 고부 군민을 위해 박원명이 짜낸 꾀는 이제 이용태를 깨우기만 하면 그 모든 막이 내려지게 되었다.


"내 이런 계획 때문에 자네한테 어제 그런 명을 내렸고, 마음에 없는 주연도 그래서 베푼 것이네."


"군수 나리, 소관의 생각이 짧았습니다. 나리께서 그리 살뜰히 군민들을 생각하고 계신 줄 미처 몰랐습니다. 송구합니다."


박원명에게 모든 이야기를 전해 들은 정만군은 이제야 비로소 모든 게 이해된다는 표정을 지으며 박원명을 향해 고개를 깊숙히 숙였다.


"이 또한 내 나름대로 전봉준 그자에게 배운 것이네. 자네도 처음 이곳 고부에 와서 두 눈으로 직접 보지 않았는가? 난리가 난 곳인데도 불구하고 다른 고을 못지않게 민생이 안정되어 있고, 치안도 잘 유지되고 있지 않던가··· 자, 이젠 안핵사를 깨워 현 상황을 일러 주도록 하게. 나도 사람인지라 그동안 쌓인 것을 좀 풀려면 안핵사가 꽁지 빠지게 도망치는 모습이라도 좀 봐야 할 것 같네."


"알겠습니다. 군수 나리. 지금 바로 이 안핵사를 깨워 이 모든 상황을 일러 주고 오겠습니다."


그길로 박원명의 집무실을 나서는 정만군은 뭐가 그리 통쾌한지 입가에 유쾌하게 보이는 미소를 달고 있었다.



* * *



"자, 여러분! 저기 보이는 곳이 바로 고부 관아요. 하지만 겉으로 보이는 것만 관아일 뿐 그 안은 사실 복마전이나 다름없는 곳이요. 그런 만큼 우리는 지금부터 마귀가 득실거리고 있는 저곳을 향해 진격할 것이요!"


"와아아! 나아가자!"


"와아! 마귀를 무찌르자!"


"그전에 우리 모두 명심할 게 하나가 있소. 그건 어떠한 일이 있어도 관리나 관원들을 함부로 죽여선 안 된다는 것이오. 물론 우리 중에는 저곳에 있는 관리가 관원들을 철천지원수로 여기고 있는 사람들도 분명 있을 것이오. 하지만 아무리 피에 젖은 원한이 있더라도 우선 당장은 참아야 하오. 그렇다고 그들을 용서한다는 말은 절대 아니오. 그들의 죄는 우리가 정한 창의의 뜻에 따라 분명히 묻을 것이오. 그러니 사무치는 원한이 있더라도 대의를 위해 그것만은 꼭 지켜주기를 바라는 바이오. 자, 여러분! 이제 명령을 내리겠소. 저 악의 산실을 쳐부수러 다 함께 진격합시다! 모두, 나를 따르시오!"


"와아아! 진격하자!"


"와아! 이용태를 처단하자!"


세상이 뒤집어지고 있었다. 시대가 흐르고 있었다. 부정과 부패로 얼룩진 시대에서 격변의 시대로 나아가고 있었다. 이제까지의 부조리한 질서와 반칙이 송두리째 흔들리며 새로운 질서와 정의가 태동하고 있었다. 그 중심엔 농민들이 있었다. 그리고 그 농민들의 중심엔 전봉준이 있었다.


그날 밤 늦은 시각에 고부 관아는 전봉준과 농민군에 의해 부지불식간에 점령당했다. 하지만 이 민란의 원흉이나 다름없는 안핵사 이용태는 고부 군수 박원명의 도움 아닌 도움으로 이미 도망치고 난 후였다. 물론 그동안 고부 군민들에게 수탈했던 재물은 박원명의 바람대로 고스란히 남겨 둔 채 자신의 몸뚱이 하나만 간신히 빼내 그야말로 꽁지가 빠지게 줄행랑친 것이다.


"이용태가 그자가 도망칠 수 있도록 군수께서 도와준 게 사실이오?"


"그렇네. 그리하지 않으면 안 되었기에 내가 그리했네."


농민군의 지도자로 추대된 전봉준이 안핵사 이용태에 대한 소재를 추궁하자 고부 군수 박원명이 순순히 인정하며 시인을 했다. 상황이 상황인 만큼 조금은 위축될 만도 한데 박원명은 이미 이 상황을 각오하고 있었다는 듯 비교적 담담한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그 이유가 무엇인지 물으면 대답해 줄 수 있으시오?"


"못해 줄 것도 없네. 고부 군수로서 우리 고부 군민들이 더 이상 핍박 받지 않고 시련을 겪지 않도록 예방하기 위해서였네."


박원명의 알쏭달쏭한 말에 전봉준이 고개를 한 번 갸웃거리더니 재차 구체적인 설명을 요구했다.


"좀 더 자세히 설명해 줄 수 있겠소?"


"마저 설명하기 전에 내가 먼저 자네한테 하나 묻겠네. 만약 자네들이 이용태 그자를 잡으면 어찌 처사하려고 했는가? 그자를 살려 줬을 것 같은가?"


"아마 그자만큼은··· 그리되진 않았을 것이오."


박원명이 만약이라는 예를 들어 이용태의 생살여탈에 관해 묻자 전봉준이 살려 주긴 아마 어려웠을 거라는 말로 되도록 솔직하게 대답을 해 줬다.


"그럼 그 차후는 생각해 보았는가?"


"무슨 말이오?"


박원명이 차분한 어조로 한 가지를 더 묻자 전봉준이 알 수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그 말뜻을 반문으로 물었다.


"이용태 그자를 죽이면 조정에서 가만히 있을 거라 생각하는 것인가?"


"이미 이렇게 엎질러진 물인데 차후의 상황인들 어차피 다 똑같을 게 아니오. 뭐 특별히 달라질 게 없다고 생각되는데··· 혹시 뭐 다른 게 있소?"


박원명의 말뜻을 알아들은 전봉준이 자신의 생각을 스스럼없이 밝히며 되물었다. 혹여 자신이 뭘 놓치고 있나 싶어 염려하는 마음에서 물어본 것인데, 하긴 아무리 슬기로운 사람일지라도 많은 생각을 하다 보면 한 가지쯤은 실책이 있을 수도 있었다.


"음, 그것만은 자네가 잘못 생각하고 있네. 물론 자네 말대로 일이 이리되었으니 전라 감영이나 조정에선 당연히 관군을 파견하겠지. 하지만 이용태 그자가 죽었다면 토벌이라는 명분은 고부 군민 전체에게 향했을 것이네. 그러나 이용태 그자가 죽지 않았으니 토벌이라는 명분은 고부 전체가 아닌······."


전봉준이 궁금함을 담아 질문을 건네자 박원명이 자신의 생각을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해 줬다. 다만 뒷말은 입 밖에 내기 난처한지 슬며시 얼버무렸다.


"그럼······."


박원명이 얼버무린 뒷말을 전봉준이 바로 알아차리고 이내 말을 받앗다. 하지만 전봉준 또한 말을 잇지 못하고 도중에 입을 다물었다.


"맞네. 자네와 자네를 따르는 농민들에게 맞춰지겠지. 자네한테는 미안한 말이네만, 대신 우리 고부 군민들은 핍박과 시련에서 조금이라도 비껴갈 수 있지 않겠는가. 내 생각이 너무 이기적이라고 생각하는가?"


"아니오··· 오히려 군수의 그 마음 고맙게 생각하오. 농민들을 대신해 고맙다는 말을 군수께 전하오. 고맙소."


고부 군민들을 위하는 박원명의 진심과 진정성이 오롯이 전해져 오자 전봉준은 그에 상응하는 감사의 마음을 예우를 다해 박원명에게 표했다.


"과찬이네. 그러니 거두어 주게··· 그리고 내친김에 하나만 더 묻겠네. 자네 앞으로 이 고부를 어찌할 생각인가?"


"나와 우리 농민들이 어찌해 주면 좋겠소. 혹여 군수께서 바라는 것이 있으면 말해 보시오."


"나는 자네를 막지 못한 책임이 있으니 이미 삭탈관직 상태나 진배없네. 비록 그런 신세지만 그래도 고부 군수로서 한 가지 부탁을 하자면, 자네를 비롯해 자네를 따르는 농민들을 우리 고부 군내에서 물려 주었으면 하네."


자신이 건넨 질문을 전봉준이 진중히 받아들이자 박원명이 자신의 마음이자 바람을 허물없이 내보였다.


"지금 당장은 그리할 수 없지만, 군수의 마음을 존중하고 헤아려 조만간 그리하도록 하겠소. 물론 고부군에 있는 동안도 가급적 고부 중심에서 최대한 멀리 떨어진 곳에 주둔시키도록 하겠소."


"··· 고맙네. 난 패잔한 관리로서 내 부관과 함께 전라 감영으로 가 이 사실을 고해야 하니 붙잡지 않을 것 같으면 길을 좀 열어줬으면 하네."


박원명이 마지막 한마디를 건네며 미련 없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하지만 그 표정 한 켠에 서운해 하는 기색이 살짝 엿보이는 건 인지상정상 어쩔 수 없는 상태감정이었다.


"나 또한 고맙소. 이 나라의 모든 관리들이 군수의 반만이라도, 아니 십 분지 일만이라도 닮아 준다면 더 이상 바랄 나위가 없겠소. 가시는 길, 조심해서 가시오."


전봉준이 박원명을 향해 고개를 숙이며 진심으로 예를 표했다.


"저번처럼 우리 고부 군민들을 위해 다시 한 번 애를 써 주게. 부탁하네."


사실 박원명은 군수로 발령 받고 이곳 고부로 내려온 후 자신의 예상과 너무 다른 고을 모습에 내심 깜짝 놀랐었다. 어찌 된 게 난리가 난 고을이라고 믿기지 않을 만큼 행정이나 치안 등 체제가 흠잡을 데 없이 안정되어 있었다. 뿐만 아니라 고을을 이루는 촌락들은 모두가 하나같이 정갈하게 정돈되어 있었는데, 비록 한참이 지나 뒤늦게 알게 된 사실이지만 그 모든 게 전봉준 때문이라는 걸 박원명은 여러 흔적을 통해 알 수 있었다. 그런 적이 있었기에 마지막 부탁을 전봉준에게 건넨 것인데, 물론 그 사실을 기반에 둔 부탁이라는 건 두말할 나위가 없었다.


실제로 저번 봉기 때 조병갑이 나 몰라라 하고 도망친 후 고을의 구실아치들마저 잠적해 버리자 가뜩이나 엉망이던 고부군의 행정과 치안은 더더욱 엉망진창이 될 수밖에 없었다. 그때 전봉준이 나서 고부군의 제반 업무를 대신 처리했는데, 그는 군내 각 촌락을 수시로 돌며 고부군의 치안을 안정시키는 일에 우선을 두었다. 그와 동시에 조병갑의 악정을 하나하나 조사하여 일일이 바로잡아 나갔고, 특히 불합리하게 빼앗긴 세금을 군민들에게 다시 돌려주며 고부군의 민생을 다스리는 데 최선을 다하고 다녔다.


"내 분명 그리할 테니 걱정하지 마시오. 그럼······."


고부를 걱정하며 떠나는 박원명에게 전봉준은 다시 한 번 고개를 숙여 보이며 예를 취했다. 이렇게 해서 두 번째 일어난 고부 민란은 그 서장을 연 지 하루 만에 일단락의 막을 내렸다.


박원명과 그의 부관 정만군이 그렇게 고부 관아를 떠나자 전봉준은 고부군의 제반 업무를 장악한 뒤 제일 먼저 옥문부터 열었다. 옥문을 열어 이용태가 무고하게 잡아넣은 사람들부터 풀어 주었는데, 개중에는 박춘석의 아비인 박인환과 그의 식솔들도 푸함되어 있었다.


그다음 무기고를 열어 그사이 다시 채워진 무기를 다시금 거둬들였다. 물론 다시 거둬들인 무기는 농민들에게 나눠 주어 그들을 무장시키는 데 사용했다.


그렇게 민란의 후유증과 여파를 수습하며 고부 군내가 웬만큼 안정이 꾀해지자 전봉준은 지체 없이 농민군을 이끌고 고부 관아에서 나와 본진을 백산으로 옮겼다. 백산은 고부군의 가장자리에 위치한 곳이었는데, 그곳이 물색되고 선택된 데엔 여러 이유가 있었다. 물론 그 여러 이유 중에 박원명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한 전봉준의 도의적인 결단이 가장 큰 이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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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8 총장 : 앙천부지(仰天俯地。하늘을 쳐다보고 땅을 굽어본다) 19.09.26 263 3 11쪽
77 제 18장 : 면종복배(面從腹背。겉으로는 복종하는 체하며 속으로는 배반한다) (3) 19.09.25 91 2 31쪽
76 제 18장 : 면종복배(面從腹背。겉으로는 복종하는 체하며 속으로는 배반한다) (2) 19.09.24 60 2 26쪽
75 제 18장 : 면종복배(面從腹背。겉으로는 복종하는 체하며 속으로는 배반한다) (1) 19.09.23 64 2 32쪽
74 제 17장 : 어궤조산(魚潰鳥散。물고기 떼처럼 헤어지고 새 떼처럼 흩어진다) (4) 19.09.20 65 2 18쪽
73 제 17장 : 어궤조산(魚潰鳥散。물고기 떼처럼 헤어지고 새 떼처럼 흩어진다) (3) 19.09.19 65 2 24쪽
72 제 17장 : 어궤조산(魚潰鳥散。물고기 떼처럼 헤어지고 새 떼처럼 흩어진다) (2) 19.09.18 65 2 25쪽
71 제 17장 : 어궤조산(魚潰鳥散。물고기 떼처럼 헤어지고 새 떼처럼 흩어진다) (1) 19.09.17 92 2 23쪽
70 제 16장 : 안분지족(安分知足。제 분수를 지키며 만족할 줄 안다) (3) 19.09.13 80 3 20쪽
69 제 16장 : 안분지족(安分知足。제 분수를 지키며 만족할 줄 안다) (2) 19.09.12 66 2 24쪽
68 제 16장 : 안분지족(安分知足。제 분수를 지키며 만족할 줄 안다) (1) 19.09.11 78 2 32쪽
67 제 15장 : 만사무석(萬死無惜。만 번 죽어도 아까울 게 없다) (4) 19.09.10 77 2 16쪽
66 제 15장 : 만사무석(萬死無惜。만 번 죽어도 아까울 게 없다) (3) 19.09.09 64 2 23쪽
65 제 15장 : 만사무석(萬死無惜。만 번 죽어도 아까울 게 없다) (2) 19.09.05 66 3 21쪽
64 제 15장 : 만사무석(萬死無惜。만 번 죽어도 아까울 게 없다) (1) 19.09.04 71 3 24쪽
63 제 14장 : 혜분난비(蕙焚蘭悲。혜란이 불에 타니 난초가 슬퍼한다) (3) 19.09.03 73 2 29쪽
62 제 14장 : 혜분난비(蕙焚蘭悲。혜란이 불에 타니 난초가 슬퍼한다) (2) 19.09.02 62 3 22쪽
61 제 14장 : 혜분난비(蕙焚蘭悲。혜란이 불에 타니 난초가 슬퍼한다) (1) 19.08.30 92 3 32쪽
60 제 13장 : 억강부약(抑强扶弱。강한 자를 누르고 약한 자를 돕는다) (3) 19.08.29 96 2 30쪽
59 제 13장 : 억강부약(抑强扶弱。강한 자를 누르고 약한 자를 돕는다) (2) 19.08.28 87 2 29쪽
58 제 13장 : 억강부약(抑强扶弱。강한 자를 누르고 약한 자를 돕는다) (1) 19.08.27 91 3 27쪽
57 제 12장 : 불요불굴(不撓不屈。휘지도 않고 굽히지도 않는다) (4) 19.08.26 79 2 20쪽
56 제 12장 : 불요불굴(不撓不屈。휘지도 않고 굽히지도 않는다) (3) 19.08.23 71 2 15쪽
55 제 12장 : 불요불굴(不撓不屈。휘지도 않고 굽히지도 않는다) (2) 19.08.22 73 2 26쪽
54 제 12장 : 불요불굴(不撓不屈。휘지도 않고 굽히지도 않는다) (1) 19.08.21 77 3 25쪽
53 제 11장 : 호천통곡(呼天痛哭。하늘을 부르며 소리쳐 울다) (3) 19.08.20 99 3 26쪽
52 제 11장 : 호천통곡(呼天痛哭。하늘을 부르며 소리쳐 울다) (2) 19.08.19 80 3 28쪽
51 제 11장 : 호천통곡(呼天痛哭。하늘을 부르며 소리쳐 울다) (1) 19.08.16 95 3 25쪽
50 제 10장 : 공도동망(共倒同亡。넘어져도 같이 넘어지고 망해도 같이 망한다) (4) 19.08.15 84 3 18쪽
49 제 10장 : 공도동망(共倒同亡。넘어져도 같이 넘어지고 망해도 같이 망한다) (3) 19.08.14 94 3 2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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