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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4 노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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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검늑삼
작품등록일 :
2019.02.22 1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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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9.26 1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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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8.16 1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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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쪽

제 11장 : 호천통곡(呼天痛哭。하늘을 부르며 소리쳐 울다) (1)

DUMMY

칠보 저잣거리 한쪽에 세 사람이 모여 머리를 맞대고 있었다. 그런데 세 사람 중 한 명은 다름 아닌 귀동의 아비인 임경달이었고, 다른 두 사람은 한때나마 고부 입석촌에서 임경달과 함께 살았던 김종삼과 박춘석이었다. 김종삼은 세리의 수탈과 핍박을 견디지 못하고 일 년 전 고향 입석촌을 떠나 산내골 화전촌으로 들어왔었다. 그리고 그때부터 친구인 임경달과 함께 줄곧 산내골 화전촌에서 생활하고 있었다.


그런 그 두 사람이 칠보 저자까지 이리 내려온 이유는 다름 아닌 전봉준과 농민군의 연락책을 맡고 있는 박춘석 때문이었다.


"··· 그래서 그런 내용을 전해 드리라고 해서 이렇게 또 형님들을 찾아오게 되었소."


"어쨌든 예까지 오느라 춘석이 자네가 고생이 많았네. 애 많이 썼네. 그리고 돌아가거든 우리도 이미 준비를 마쳤다고 그렇게 전해 드리게."


"예, 알겠소. 그럼 그 날짜에 태인현에서 다시 보기로 하고, 난 이만 산외골로 넘어가 봐야겠소. 형님들, 그때까지 잘들 계시요."


"알겠네. 자네도 항상 조심히 다니도록 하게."


박춘석이 임경달과 김종삼을 찾아온 이유는 전봉준과 농민군의 탁언을 전하기 위해서였는데, 전봉준은 현재 부안 관아를 점령한 상태에서 관아의 행정과 각종 제반 사항들을 관리 감독하며 그곳의 민생과 치안을 안정시키고 있었다.


"아 참! 경달이 형님, 며칠 전 형님들을 처음 봤을 땐 하도 경황이 없어 미처 못 물어봤는데, 혹시 달포 전쯤에 정읍현 저잣거리를 한번 다녀가지 않았소?"


뒤돌아서서 길을 나서려던 박춘석이 잠시 멈칫하더니 다시 뒤돌아 임경달에게 무두무미한 질문을 건넸다.


"달포 전쯤? 글쎄, 기억이··· 그런데 무슨 일로 그러는가?"


"아, 아니요. 그냥 긴가민가해서 한번 여쭈어 본 거니 신경 쓰지 마시요. 그럼 난 이만 가요."


전봉준과 농민군은 부안의 민생과 치안이 어느 정도 안정되면 바로 전라 감영으로 진격하기 위해 태인현으로 이동할 계획이었다. 그리고 그 계획을 박춘석과 같은 농민군 연락책들을 통해 인근 고을의 농민들에게 전파하고 있었는데, 물론 그 목적은 더 많은 농민들을 봉기에 끌어들이기 위해서였다.


"어이, 종삼이. 우리도 어서 이 사실을 다른 사람들에게 알려야 하지 않겠는가?"


"당연히 그래야지. 우리도 어서··· 어? 잠깐만, 저 관군들이 예까지 웬일이지?"


임경달의 말을 받으며 저자 입구로 향하던 김종삼이 난데없이 나타난 관군들을 보고 그 자리에 우뚝 멈춰 섰다.


"엉? 관군들이라니? 어? 진짜네. 관, 관군들이 이 산간벽촌까지 한 번도 온 적이 없었는데 무슨 일이지? 가만, 저리 바삐 움직이는 걸 보니 예삿일이 아닌 모양인데··· 혹시 우리 계획이 발각된 것인가?"


"어이, 경달이. 우리가 이렇게 가만히 있을 때가 아닌 것 같네. 자네 말대로 혹시 우리 일을 눈치 채고 온 건지도 모르니 우선 저들의 뒤를 살짝 따라가 보세."


"으응? 그래, 그러세."


관군들은 뭔가 다급함을 보이며 바삐 움직이고 있었다. 그런 관군들을 임경달과 김종삼은 한껏 조심성을 유지한 채 뒤밟기 시작했다.


한편 점심나절에 송유석을 앞세우고 태인을 떠났던 조민수와 별동대원들은 오후 나절이 되자 칠보 초입에서 그 모습을 나타냈다. 그리고 잠시의 시간이 지나자 조민수와 관군들은 칠보 저자를 지나 산내골로 향하는 협로에 들어서고 있었다.


"어이, 송가 노인네. 지금 제대로 안내하고 있는 거 맞아? 허튼수작하면 알지? 네 놈 모가지는 둘째 치고, 네 놈 두 딸년이 먼저 황천길을 간다는 거 말야."


"헉, 헉. 예, 예··· 알고말고요, 무관 나리. 이제 몇 걸음만 더 올라가면 오두막이 보일 테니··· 헉, 헉. 이 소인의 두 딸년은 꼭 풀어 주십시요."


헉헉거리며 산길을 오르던 송유석은 조민수의 위지협지에 그렇잖아도 흥건히 흐르는 땀 위에 식은땀을 더해야 했다.


"그래? 거의 다 왔단 말이지? 음, 그럼 모두 멈춰 보거라. 너희 두 총수는 화승에 불을 붙이도록 하고, 너희 두 궁수도 시위에 화살을 재어 놓거라."


송유석의 이야기를 들은 조민수가 부하들을 멈춰 세운 뒤 총수와 궁수에게 먼저 명령을 내렸다.


"예, 부장 나리!"


"자, 듣거라. 이제 조금만 더 올라가면 작은 오두막이 나타날 터인데, 그곳에 우리를 물먹인 것도 모자라 엿까지 먹인 놈들이 있다. 너희들도 알다시피 살려 둘 필요 없다고 위에서 이미 결정이 난 놈들이다. 그러니 보이는 대로 모두 죽여라. 알겠느냐?"


계속해서 조민수의 추상같은 명령이 이어졌는데, 그 내용 또한 서슬이 퍼렇다 못해 살벌하기 그지없었다.


"예, 부장 나리!"


"삼돌이는 총수, 궁수 각 한 명과 창수 다섯 명을 데리고 먼저 출발해 저기 보이는 저쪽 능선 쪽으로 올라오도록 하거라."


"예, 알겠습니다. 부장 나리."


조민수의 서슬 퍼런 명령에 삼돌이가 별동대원 일곱 명을 데리고 먼저 출발했다. 그렇게 관군 여덟 명이 산속으로 사라지자 남은 건 송유석과 조민수, 그리고 별동대원 일곱 명이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송유석이 마치 찬비 맞은 강아지마냥 바들바들 떨고 있었다.


'아, 이렇게 아둔할 수가 있단 말인가? 서진이와 서연이만 빼고 모두 죽이라는 명령이 내려졌다고, 그때 분명 그렇게 들었으면서··· 허, 이런 낭패가 있나?'


후회는 아무리 빨라도 항상 늦는 법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송유석이 예상한 대로 조민수가 들고 있던 장도를 뽑아 들었다.


차앙!


"네 놈의 목도 당장 쳐야 하지만, 네 놈이 혹시 우리를 속이고 엉뚱한 곳으로 안내했을 수도 있으니 우선은 살려 주마. 하나, 이곳에 남겨 두고 가면 도망칠 게 뻔할 테니 그걸 방지하는 차원에서 네 놈의 한쪽 발은 잘라 놓고 가야겠다."


'이렇게 악랄한 자한테서 벗어나려고 했으니 그야말로 아둔패기가 따로 없었구나. 후우, 이왕지사 이렇게 된 것··· 죽기 전에 사람다운 짓이라도 한 번은 해야 하지 않겠는가.'


뒤늦게 현실을 직시한 송유석은 후회막심이었다. 하지만 이제 와 땅을 쳐 봤자 물은 이미 엎질러진 뒤였고, 그런 마당이라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혹시라도 있다면 이경륭이나 진혁이 살 수 있도록 조민수 곁에 달라붙어 활로를 마련해 주는 것밖에 없었는데, 그럴려면 자신이 어떻게든 오두막까지 동행을 해야만 했다.


"저, 무관 나리. 한 가지 청이 있습니다. 어차피 죽을 목숨이면 혼자 죽기 뭐하니 저들과 함께 죽고 싶습니다. 그러니 이 소인이 저 오두막까지 안내할 수 있게 해 주십시요."


"왜? 그동안 그놈들과 함께 지내며 하찮은 정이라도 생긴 것이더냐? 그래서 그놈들과 같이 죽고 싶다는 것이냐? 좋다. 네 놈이 그걸 원한다면 그리해 주마. 자, 이놈을 다시 앞장세우고 우리도 올라간다."


'나를 용서치 마시요. 내 두 딸년을 살리려니 이리할 수밖에 없었소. 은인께 지은 죄는 내 저승에 가서 달게 받을 테니··· 혹여 기회가 주어지면 필히 도망치시요.'



* * *



아침부터 내리던 봄비가 점심나절까지 계속 이어지자 이경륭은 문밖출입을 삼간 채 방 안에서 서책을 읽는 걸로 소일하고 있었다. 그렇게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서책을 들여다보다 어느 순간 소피가 마려워 밖에 나와 보니 비는 어느새 그쳐 있었고, 하늘도 말끔히 개어 있었다. 그런데 비가 갠 주변 풍광은 그 어딜 봐도 한 폭의 산수화가 따로 없었다. 그 절경에 토방에 서서 잠시 만끽하던 이경륭이 부지중에 시선을 산 아래로 옮기다 갑자기 눈을 커다랗게 떴다. 그리곤 그 즉시 눈매를 가늘게 좁히더니 산 아래를 뚫어지게 노려보았다.


잠시 후 산 아래에서 시선을 거둔 이경륭이 서둘러 방 안으로 들어가 활과 전통을 챙겨 나왔다. 그런데 툇마루에서 잠깐 멈칫하더니 다시 방 안으로 들어가 작은 농을 뒤져 단총을 꺼내 들었다. 꺼내 든 그 단총은 며칠 전 추격당할 때 최상광으로부터 획득했던 바로 그 단총이었는데, 이경륭은 단총 여기저기를 확인해 보곤 곧장 자신의 도포 안쪽에 갈무리했다. 그런 다음 지체 없이 마당을 가로질러 수간두옥 밖으로 뛰쳐나갔다.


이처럼 이경륭이 다급하게 행동하는 이유는 산 아래 오솔길을 빠르게 올라오고 있는 조민수와 관군들 때문이었다.


'만만치 않은 자라고 여기긴 했는데, 그렇다고 예까지 쫓아올 줄이야. 그런데 모두 해서 여덟 명? 아니지, 절대 그럴 리가 없지. 최소한 다섯 명에서 열 명 정도는 더 왔을 텐데, 그들은 어디 있지? 오른쪽 능선은 절벽이나 마찬가지니, 그럼 왼쪽 능선인가? 일단은 지켜보는 게 상책이겠지. 그러다 여차하면 산내골 화전촌으로 삼십육계 주위상책인 줄행랑을 놓으면 되는 거고······.'


이경륭이 간발의 차이로 빠져나와 그런 생각을 하는 사이 조민수는 여전히 송유석을 앞세운 채 수간두옥의 작은 마당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그리고 앞서 떠난 관군 여덟 명도 집 뒤안의 싸리울타리를 때맞춰 넘어오고 있었다.


잠깐 사이 자그마한 수간두옥이 사방팔방으로 포위되자 조민수가 부하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총수와 궁수는 사방 경계를 늦추지 말고, 창수는 두 명씩 짝을 지어 집 안팎을 수색하다 놈들을 발견하면 그 즉시 사살하도록 해라."


"예, 부장 나리!"


그렇게 수유의 시간이 지나자 방 두 칸과 부엌 하나가 고작인 집안 수색은 금세 끝났고, 마지막으로 울타리 밖을 수색하던 창수 두 명이 싸리문을 들어서며 조민수에게 보고를 했다.


"부장 나리, 집 주위엔 아무도 없습니다."


"집 안을 수색했던 너희들은 무슨 흔적을 찾지 못했느냐?"


조민수는 수색 결과가 영 마음에 안 든다는 듯 인상을 잔뜩 찌푸리며 불쾌한 기색을 내보였다.


"방 안에 온기가 남이 있고, 서책이 펼쳐진 채로 그대로 놓여 있는 걸로 보아 방금 전까지 사람이 있었던 것은 분명합니다, 부장 나리."


"서책? 이 산골짜기에, 이 오두막에서 서책이라··· 도대체 이놈들 정체가 뭐야?"


방 안에 서책이 펼쳐 있다는 말에 조민수가 점점 더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이내 송유석을 불렀다.


"어이, 송가 노인네. 이진혁이라는 놈이 네 놈과 두 딸년 때문에 임귀동이라는 놈의 집에 가서 기거한다고 했지? 그놈 집이 산내골 화전촌이라고 했나? 지금부터 네 놈은 우리에게 그곳을 안내해야겠다."


"저, 무관 나리. 저 산길을 통해 오가는 것만 봤을 뿐이라 소인은 그곳을 정확히 모릅니다."


집 안에 아무도 없다는 걸 확인하는 순간 송유석은 안도하는 심정으로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런데 곧바로 산내골 화전골을 안내하라고 하자 또다시 가슴이 철렁하며 내려앉았다.


"무슨 잔말이 그리 많은 것이냐? 어서 앞장서거라. 만일 네 놈이 앞장서지 않으면 네 딸년들이 죽는다는 것만 명심하거라. 그래도 나서지 않을 테냐?"


"아, 아닙니다. 무관 나리, 앞장서겠습니다."


송유석은 조민수의 협박과 위협에 못 이기고 다시금 앞장을 서야만 했다. 하지만 송유석은 산내골 화전촌을 직접 가 본 적이 한 번도 없었고, 단지 진혁과 귀동이 이 산길로 오가는 것만 봤을 뿐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산길을 알고 있는 척하며 앞장서야 하는 건 두 딸내미를 살리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는데, 한마디로 선택의 여지조차 없는 불가피한 상황이었다.


그렇게 송유석이 앞장서고 조민수와 관군들이 그 뒤를 따르고 있을 때, 이경륭 말고도 그들의 일거수일투족을 지켜보는 눈이 더 있었다. 바로 임경달과 김종삼이었다.


"어라? 저놈들이 왜 저 길로··· 어이, 경달이. 아무래도 안 되겠네. 저놈들을 먼저 앞질러 가서 일단 사람들을 불러 모아야 할 것 같네."


"그러세. 도대체 무슨 일인지 모르겠지만 아무래도 느낌이 심상치가 않네. 저놈들이 뭣 때문에 이곳까지 왔는지 그 경위도 모르겠고, 더구나 다시 돌아갈 생각은 하지 않고 오히려 우리가 사는 화전촌 쪽으로 발길을 돌리고 있으니··· 종삼이, 어서 서두르세."


거리가 떨어진 곳에서 관군들의 동태를 살피고 있던 임경달과 김종삼이 조심스럽게 뒤로 물러난 뒤 곧바로 다른 산길로 내달리기 시작했다. 그들의 터전인 화전촌으로 먼저 달려가 사람들에게 이 사실을 알리기 위함인데, 그래야만 피할 사람은 피하고 맞설 사람은 맞설 수 있는 준비를 갖출 수가 있었다.


한편 이경륭은 조민수와 관군들의 동태는 물론이고 반대편 산자락에서 관군들을 지켜보다 사라진 임경달과 김종삼의 존재도 이미 알고 있었다.


'음, 두 딸을 미끼에 꿰어 협박하는 게 틀림없군. 그러니 저렇게 꼼짝달싹도 못하고 이리저리 질질 끌려 다니지. 그나저나 큰일이군. 저 상황을 보면 서진 처자나 서연 처자도 붙잡혔다는 건데··· 그런데 귀동 아범은 관군들이 몰려온 걸 어떻게 알고 온 거지? 그리고 저놈들은 왜 돌아갈 생각은 하지 않고 화전촌 쪽으로··· 아, 우리 귀동이도 그때 함께하고 있었구나. 이런, 그렇다면 그야말로 큰일인데 어떡한다?'


상황이 느닷없이 변해 급박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사실 이경륭은 조민수와 관군들을 처음 봤을 때만 해도 자신만 잠시 집에서 피해 있으면 유야무야 끝날 거라 그리 단순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시간이 점차 지나면서 자신의 그런 만사무심이 얼마나 잘못된 것인지 피부로 느껴지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현재 눈앞에서 펼쳐지고 있는 광경은 미처 생각지 못한 상황으로 자신의 안일한 생각과는 그야말로 천양지차를 보이고 있었다. 그만큼 현재 상황은 마치 날줄과 씨줄처럼 복잡하게 얽혀 악화 일로 치닫고 있었는데, 그걸 증명이라도 하듯 산중 전체가 팽팽한 긴장감으로 감돌고 있었다.



* * *



화전촌으로 진입하는 산골짜기의 작은 협로에 일단의 두 무리가 마주하고 있었다. 화전촌 쪽을 향하고 있는 무리는 조민수와 관군들이었고, 그 반대편에는 임경달과 김종삼을 비롯한 화전촌 사람들이었다. 그런데 화전촌 사람들은 모두가 하나같이 푸릇푸릇한 죽창으로 무장을 하고 있었다.


"무관 나리, 우리 촌락은 걷어 가고 뜯어 갈 게 아무것도 없는데 어찌 예가지 찾아오신 겁니까요?"


화전촌 사람들을 대표해 김종삼이 앞으로 나와 조민수에게 찾아온 용건부터 먼저 물었다.


"허! 네 이놈들! 천한 상것들 주제에 고개는 물론이고 허리까지 바짝 숙여야 하거늘. 감히 고개를 빳빳이 처들고 뭐라? 걷어 가고 뜯어 가? 지금 나를 하찮은 도둑으로 몰아 능멸하려는 것이냐?"


조민수는 앞을 가로막은 촌맹들에게 대수롭지 않다는 표정으로 호통을 쳤다. 하지만 겉으로만 그럴 뿐 속으로는 촌맹들을 대면한 직후부터 바짝 긴장한 상태였다.


"그럼 무엇 때문에 이런 산간벽지까지 찾아오신 겁니까요?"


"하, 요놈들 봐라? 내 사실은 이진혁이라는 놈과 임귀동이라는 놈을 잡으려 왔는데··· 의외로 생각지도 못한 월척이 걸려들었구나. 네 놈들 손에 들려 있는 죽장창을 보니 네 놈들은 전봉준 그놈과 한패이거나, 아니면 그놈에게 합류하려고 했던 놈들이구나. 여봐라! 모두 전투 태세를 갖추거라!"


조민수의 입에서 뜬금없이 임귀동이란 이름이 튀어나오자 임경달은 순간 가슴이 철렁하며 뜨끔했다.


'흐익! 우리 귀, 귀동이를 잡으러 왔다고?'


사실 관군들을 처음 봤을 때만 해도 임경달은 도둑이 제 발 저리는 심경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농민군 합류 계획이 들통 나 관군들이 몰려온 줄 알았기 때문인데, 하지만 그런 예상을 무색하게 관군들이 이경륭의 오두막으로 향하자 그때부터 뭔가 이상한 느낌이 스멀거리기 시작했다.


'아니나 다를까······.'


결국 이렇게 임경달의 애초 예상이 보기 좋게 빗나가며 이 난감한 상황까지 도래하고 만 것인데, 그런 마당에 관군의 입에서 귀동의 이름이 거론되었으니 임경달의 가슴이 철렁하며 뜨끔한 건 당연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당면한 현실이 절대 한가롭지가 않은 만큼 설사 가슴이 철렁하며 뜨끔했다고 해도 지금은 가슴을 부여잡고 있을 상황이 결코 아니었다.


"우리도 모두 뭉쳐서 다 같이 죽창을 똑바로 내뻗으시요! 관군들이 저런다고 겁먹을 필요 없소이다!"


"그렇소! 숫자는 우리가 훨씬 많소. 더구나 고부에서도 부안에서도 이미 우리 같은 상놈들이 저 관군들을 이겨서 모두 쫓아냈다고 하지 않소. 그러니 우리도 얼마든지 저 관군들을 쫓아낼 수 있소이다!"


"와아아!"


"쫓아내자!"


임경달이 먼저 나서 관군들과 맞설 것을 선동하자 곧이어 김종삼이 맞장구를 치며 촌락 주민들에게 호응과 동조를 간구하고 나섰다. 그러자 화전촌 주민들이 너도 나도 죽창을 앞으로 쭉 내뻗으며 함성을 질러 댔는데, 그 기세가 제법 드높고 등등했다. 하긴 화전촌 사람들도 고부 관아와 부안 관아의 사정을 익히 들어 알고 있었고, 더욱이 며칠 후 전봉준이 이끄는 농민군에 합류하기 위해 한창 결의를 다지는 중이었기에 그럴 수밖에 없었다. 더구나 이들 대다수는 관리나 관원들에게 모든 걸 빼앗긴 사람들이었다. 다시 말해 관리나 관원들에게 뼈가 저릴 만큼 고통을 받고, 이가 갈릴 만큼 수탈을 당한 사람들이라 이들이 이처럼 기세등등한 건 어쩌면 지극히 당연한 현상이었다.


그렇게 화전촌 주민들이 원독에 찬 눈빛으로 기세등등히 맞서자 양쪽은 서너 발자국 거리를 두고 팽팽하게 대치한 형국이 되었고, 그 사이로 일촉즉발의 긴장감이 감돌며 살벌한 분위기가 연출되었다.


"내가 명령하면 총수 너희 둘은 제일 앞에 버티고 있는 저 두 놈부터 먼저 사살해라. 그리고 궁수 둘은 뒤로 빠져서 엄호 사격 준비를 하고, 나머지 창수들은 제자리를 굳건히 지킨 채 저 죽장창을 든 허섭스레기 같은 놈들이 떼로 몰려올 것을 대비하라. 알겠느냐?"


"예, 부장 나리!"


눈앞에서 전개되는 상황이 마치 헝클어진 실타래처럼 복잡하게 꼬여 가자 조민수는 직감을 했다.


'오늘은 아무래도 득보다 실이 많을 것 같군.'


그만큼 현 상황이 미처 예상하지 못했던 방향으로 급선회하고 있었다. 그렇다고 해서 타개할 방법이 전혀 없는 것도 아니었다. 원래 집단이라는 것은 강력한 구심점 아래 뭉쳐지면 그 어떤 단체보다 강력한 응집력을 발휘하게 되지만, 그 반대로 구심점을 잃게 되면 그 즉시 모래알처럼 산산이 흩어지는 게 집단의 특성이었다. 그런 만큼 저 앞의 두 놈만 부지불식간에 처리하면 나머지는 구심점을 잃고 오합지졸이 될 게 불을 보듯 뻔했다.


'가장 앞에 서 있는 저 두 놈만 처리하면, 그럼 그때는 식은 죽 먹기지.'


만일 그렇게만 되면 숫자적으로 불리한 상황이 급반전되는 건 그야말로 시간 문제였다.


'그럴려면 기회를 노려야 해, 기회를··· 그래, 지금이다!"


임경달과 김종삼이 무슨 말인가 주고받으며 전방 경계를 잠시 소홀히 했다. 그러자 그 모습을 냉철한 눈빛으로 주시하던 조민수가 그 틈을 놓치지 않고 곧바로 총수 두 명에게 명령을 내렸다.


"지금이닷! 총수는 저 두 놈부터 먼저 쏴라!"


조민수에게 명령을 받은 총수 두 명이 그 즉시 한쪽 무릎을 꿇어앉고 전방을 향해 사격 자세를 취했다. 그러나 그 순간 또 다른 변수가 끼어들었다.


쐐애액!


퍼억!


"크으윽······."


처음에 들린 파공음은 이경륭이 날린 화실이 공기를 가르며 날아오는 소리였다. 그다음 들린 음향은 날아온 화살이 총수 한 명의 몸에 틀어박히는 소리였고, 마지막 가래 끓는 소리는 화살을 맞은 총수가 고통에 겨워 내뱉은 신음 소리였다.


탕!


"아윽!"


총소리는 또 다른 총수가 화승총을 발사해서 난 소리였고, 뒤이어 들린 비명 소리는 임경달이 내지른 소리였다. 그 내막인즉 날아온 총알이 어깨를 스치고 지나가자 그 따끔한 고통에 임경달이 비명을 지른 건데, 그나마 천만다행으로 총알이 몸통을 비껴간 건 총수의 겨낭이 흔들린 덕분이었다.


사실 임경달에게 화승총을 쏜 총수는 옆에 있던 다른 총수가 화살에 맞고 쓰러지자 그로 인해 이미 동요된 상태였다. 그렇다 보니 총구의 겨냥이 흔들릴 수밖에 없었고, 그런 상태에서의 사격이라 결과가 좋을 리가 없었다.


쐐애애액!


또다시 화살이 날아오는 파공음이 들려왔다.


퍽!


"커억!"


먼저 들린 음향은 화살이 몸에 박히는 소리였고, 뒤이은 신음 소리는 화살에 맞고 신음을 게워 내는 단발마였다. 물론 화살은 이경륭이 날린 거였고, 화살이 틀어박히는 소리와 고통에 찬 신음 소리는 모두 임경달에게 화승총을 쏜 그 총수에게서 비롯된 거였다.



* * *



조민수와 관군들이 송유석을 앞장세운 것만 봐도 저들의 목적이 무엇인지 당각에 알아차릴 수가 있었다.


'보나마나 나와 진혁이에 대한 체포 내지 사실이겠구나.'


하지만 어느 순간 상황이 이상한 방향으로 꼬이더니 시간이 지날수록 자꾸만 악화 일로로 치달았다. 그러다 끝내 생각지도 못한 상황에 직면하며 애꿎은 화전촌 사람들까지 저렇게 개입되어 화를 당하게 생겼으니 비록 마음에 없는 염불이지만 생각하고 자시고 할 겨를이 없었다.


결국 그런 까닭에 불고전후하고 대뜸 나선 것인데, 다행히 북방 군영에서 굴러먹던 가락이 여구히 살아 있었다. 그 덕분에 정확한 상황 분석과 그에 맞는 적절한 판단으로 빠르게 대처할 수 있어 화전촌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었다. 특히 화전촌 사람들의 구심점 역할을 하는 임경달과 김종삼에 대한 급습을 미연에 방지할 수 있었던 건 조민수의 전술적인 부분을 웬만큼 꿰뚫어 본 노련함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어쨌든 이경륭은 속사로 화살 두 발을 날린 뒤 그 길로 곧장 내달렸다. 그리고 잠시 후 난전이 한창인 싸움터로 지체 없이 뛰어들었는데, 그사이 싸움터는 수라장이 따로 없을 만큼 참혹하게 변해 있었다. 관군들의 창에 찔린 화전촌 사람들이 여기저기에 스러져 있었고, 화전촌 사람들이 가차 없이 내지른 죽창에 관군들도 신음을 흘리며 사방에서 나뒹굴고 있었다. 그렇게 쓰러지고 꼬꾸라져 이곳저곳에 나뒹구는 그들의 몸에선 어김없이 붉은 선혈이 튀고 있었다.


이경륭은 거침없이 싸움터에 뛰어든 다음 먼저 바닥에 떨어져 있는 창부터 주워 들었다. 그리곤 눈앞에서 창을 내지르며 달려드는 관군을 향해 창을 마주 내질렀다. 그 찰나와 같은 시간에 벌어진 상황은 그야말로 절체절명의 순간이었는데, 하지만 관군이 먼저 내지른 창은 이경륭의 왼쪽 어깨를 살짝 스쳤고, 관군보다 한발 늦게 내지른 이경륭의 창은 관군의 목에 정확히 꽂혀 있었다. 선발제인의 묘미였다.


이경륭은 어깨의 창상엔 아랑곳하지 않고 곧바로 창을 회수했다. 그래야만 하는 이유가 있었다. 바로 옆에 있는 임경달이 위기일발의 위기에 처해 있었기 때문인데, 임경달은 총알이 스친 총상 때문에 죽창을 제대로 찌르지도, 휘두르지도 못하고 있었다.


그처럼 부상으로 인해 쩔쩔매고 있는 임경달을 관군 하나가 유심히 지켜보다 어느 순간 기회를 포착하곤 그 즉시 창을 힘껏 내지르며 파고들었다. 그러나 그 관군의 창은 임경달의 몸에 미처 도달하지 못하고 중간에 갑자기 멈춘 다음 서서히 허공으로 향했다가 다시 땅바닥을 향해 급격하게 떨어졌다.


투두둑!


그리고 그와 동시에 신음 소리가 들려왔다.


"커어억······."


이경륭이 그 관군의 행동을 미리 예측하고 자신의 창을 신속하게 내지른 결과였다. 그러나 그 덕에 임경달은 무사할 수 있었지만, 대신 이경륭은 그에 대한 대가를 치러야만 했다.


탕!


"으어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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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4 노령 연재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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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8 총장 : 앙천부지(仰天俯地。하늘을 쳐다보고 땅을 굽어본다) 19.09.26 120 1 11쪽
77 제 18장 : 면종복배(面從腹背。겉으로는 복종하는 체하며 속으로는 배반한다) (3) 19.09.25 40 0 31쪽
76 제 18장 : 면종복배(面從腹背。겉으로는 복종하는 체하며 속으로는 배반한다) (2) 19.09.24 35 0 26쪽
75 제 18장 : 면종복배(面從腹背。겉으로는 복종하는 체하며 속으로는 배반한다) (1) 19.09.23 36 1 32쪽
74 제 17장 : 어궤조산(魚潰鳥散。물고기 떼처럼 헤어지고 새 떼처럼 흩어진다) (4) 19.09.20 45 1 18쪽
73 제 17장 : 어궤조산(魚潰鳥散。물고기 떼처럼 헤어지고 새 떼처럼 흩어진다) (3) 19.09.19 38 1 24쪽
72 제 17장 : 어궤조산(魚潰鳥散。물고기 떼처럼 헤어지고 새 떼처럼 흩어진다) (2) 19.09.18 45 1 25쪽
71 제 17장 : 어궤조산(魚潰鳥散。물고기 떼처럼 헤어지고 새 떼처럼 흩어진다) (1) 19.09.17 58 1 23쪽
70 제 16장 : 안분지족(安分知足。제 분수를 지키며 만족할 줄 안다) (3) 19.09.13 53 2 20쪽
69 제 16장 : 안분지족(安分知足。제 분수를 지키며 만족할 줄 안다) (2) 19.09.12 45 1 24쪽
68 제 16장 : 안분지족(安分知足。제 분수를 지키며 만족할 줄 안다) (1) 19.09.11 51 1 32쪽
67 제 15장 : 만사무석(萬死無惜。만 번 죽어도 아까울 게 없다) (4) 19.09.10 55 1 16쪽
66 제 15장 : 만사무석(萬死無惜。만 번 죽어도 아까울 게 없다) (3) 19.09.09 46 1 23쪽
65 제 15장 : 만사무석(萬死無惜。만 번 죽어도 아까울 게 없다) (2) 19.09.05 49 2 21쪽
64 제 15장 : 만사무석(萬死無惜。만 번 죽어도 아까울 게 없다) (1) 19.09.04 51 2 24쪽
63 제 14장 : 혜분난비(蕙焚蘭悲。혜란이 불에 타니 난초가 슬퍼한다) (3) 19.09.03 45 1 29쪽
62 제 14장 : 혜분난비(蕙焚蘭悲。혜란이 불에 타니 난초가 슬퍼한다) (2) 19.09.02 44 2 22쪽
61 제 14장 : 혜분난비(蕙焚蘭悲。혜란이 불에 타니 난초가 슬퍼한다) (1) 19.08.30 72 2 32쪽
60 제 13장 : 억강부약(抑强扶弱。강한 자를 누르고 약한 자를 돕는다) (3) 19.08.29 74 1 30쪽
59 제 13장 : 억강부약(抑强扶弱。강한 자를 누르고 약한 자를 돕는다) (2) 19.08.28 62 1 29쪽
58 제 13장 : 억강부약(抑强扶弱。강한 자를 누르고 약한 자를 돕는다) (1) 19.08.27 62 2 27쪽
57 제 12장 : 불요불굴(不撓不屈。휘지도 않고 굽히지도 않는다) (4) 19.08.26 61 1 20쪽
56 제 12장 : 불요불굴(不撓不屈。휘지도 않고 굽히지도 않는다) (3) 19.08.23 53 1 15쪽
55 제 12장 : 불요불굴(不撓不屈。휘지도 않고 굽히지도 않는다) (2) 19.08.22 51 1 26쪽
54 제 12장 : 불요불굴(不撓不屈。휘지도 않고 굽히지도 않는다) (1) 19.08.21 54 2 25쪽
53 제 11장 : 호천통곡(呼天痛哭。하늘을 부르며 소리쳐 울다) (3) 19.08.20 69 2 26쪽
52 제 11장 : 호천통곡(呼天痛哭。하늘을 부르며 소리쳐 울다) (2) 19.08.19 65 2 28쪽
» 제 11장 : 호천통곡(呼天痛哭。하늘을 부르며 소리쳐 울다) (1) 19.08.16 72 2 25쪽
50 제 10장 : 공도동망(共倒同亡。넘어져도 같이 넘어지고 망해도 같이 망한다) (4) 19.08.15 59 2 18쪽
49 제 10장 : 공도동망(共倒同亡。넘어져도 같이 넘어지고 망해도 같이 망한다) (3) 19.08.14 72 2 2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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