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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4 노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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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검늑삼
작품등록일 :
2019.02.22 1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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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9.26 1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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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8.20 1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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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쪽

제 11장 : 호천통곡(呼天痛哭。하늘을 부르며 소리쳐 울다) (3)

DUMMY

* * *



작은 방 안에 사람들로 꽉 들어차 있었다. 아랫목에 이경륭이 누워 있었고, 그 바로 옆에는 진혁이 앉아 있었다. 윗목 쪽으로는 귀동을 비롯해 서진과 서연, 그리고 임경달과 송유석이 몸가짐을 가지런히 한 채 앉아 있었다.


이경륭이 마지막 힘을 다해 진혁의 손을 마주잡았는데, 입가엔 희미한 미소를 띠고 있었다.


"진혁아, 나라 안이 앞으로 더 어지럽고 극도로 혼란스러워질 것이다. 쿨럭, 그래서 하는 말이니 잘 듣거라··· 잘 먹고 잘살기 위해, 즉 개인의 영달을 위해 다른 나라로 가서··· 나른 나라 국민으로 사는 것도 안 되지만, 난세를 피하고자 다른 나라로 도망치는 것도 안 된다. 쿨럭, 나라 꼴이 그런다고 너도 나도 등지면 이 나라가 어찌 살아남겠느냐. 쿨럭, 그러나 우리 귀동이를 위해서 반상의 구별이 없는 다른 나라 같은 우리 조선 땅······."


"······."


"··· 북방의 동쪽으로 가면 두만강이 있고, 그 두만강 하류 쪽에 큰 섬이 있다. 쿨럭, 그 간도는 엄연히 우리 조선 땅인데 아국(러시아)과 가까이 있어 조정에선 계륵과 같이 취급하는 땅이다. 그래서 관리도 두지 않는 곳이고··· 어쨌든 그곳은 우리 조선 땅이니 우리 조선 사람 누군가는 그 땅을 지켜야 하지 않겠느냐. 그러니··· 우리 귀동이 데리고 그곳으로 가거라. 그러면 우리 귀동이 서연 처자와 혼인하기 위해 양반 족보 살 필요도 없을 테고··· 쿨럭, 그럼 지금처럼 돈 벌기 위해 저리 밤낮으로 약초 캐는 고생도 안 해도 될 테니······."


"······."


"··· 그러니 내 무덤은 만들지 말고··· 쿨럭, 내가 숨을 거두거든 지체하지 말고 곧장 화장하거라. 그래야 네가 우리 귀동이 데리고 홀가분하게 떠날 수 있을 게 아니냐. 꼭 그리해서 이 아비의 마음을 편하게······."


이경륭의 한마디 한마디가 이어졌다. 그럴 때마다 모두의 눈에서 하염없는 눈물이 흘러내렸다. 그중에서도 윗목에 앉아 있는 귀동과 임경달, 그리고 서연은 더더욱 많은 눈물을 흘렸는데, 귀동과 임경달은 이경륭이 보여 주는 그 자애로운 사랑 때문에 눈물을 흘렸고, 서연은 귀동의 갖은 고생이 자신 때문이라는 사실을 알고 그 가상함과 고귀함에 눈물을 쏟아 내고 있었다.


"진혁아, 비록 어수선하고 혼란스러운 세상이지만··· 너 하고 싶은 대로 하며 후회 없이 살거라. 이 아비는 네가··· 쿨럭, 그렇게 후회 없이 행복하게 살기를 바랄 뿐이다. 그건 예나 지금이나··· 그리고 이제 곧 저승에 가더라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아버지······."


"··· 진혁아, 이 아비의 아들로 태어나 줘서 고맙다. 그리고 그동안 이 아비와 부자지간으로 살아 준 것도 고맙다. 이 아비는 예전에도 너를 사랑했고, 지금도 너를 사랑하고 있으며, 이제 곧 다른 세상으로 가더라도 그것만큼은 변치 않고 앞으로도 영원히 너를 사랑할 것이다. 사랑하는 아들아··· 잘 있거라······."


이경륭의 눈빛에서 생명의 빛이 급격하게 꺼져 가자 진혁의 동공이 크게 흔들렸다. 그리고 잠시 후 힘없이 떨어지는 이경륭의 손을 가볍게 받혀 드는 진혁의 입술 끝이 파르르하게 잔 경련을 일으켰다.


'안 돼!'


진혁은 벌벌 떨리는 손끝을 이경륭의 코 앞에 살며시 대 보곤 이내 굵은 눈물방울을 떨어뜨리며 망연자실한 모습을 보였다.


잠시의 시간이 지나고 진혁은 또다시 이경륭의 몸을 흔들어 보았지만 이경륭의 몸은 역시 아무런 미동도 보이지 않았다.


결국 이렇게 진혁은 아버지 이경륭을 떠나보냈다. 그로 인해 항상 자신을 걱정하던 아버지 이경륭의 걸걸한 잔소리도 이젠 두 번 다시 들을 수 없게 되었고, 자신을 대견스레 바라보며 잔잔히 짓는 그 미소도 더 잇아 볼 수 없게 되었다. 그 사실을 현실로 받아들인 진혁이 모든 움직임을 멈추고 이경륭의 얼굴만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아버지······.'


작은 방 안은 더없이 고요했다. 그리고 방 안의 광경은 마치 한 장의 그림처럼 모든 게 정지해 있었다. 물론 그림처럼 보이는 그 광경은 실제론 느낌일 뿐이었다. 다시 말해 시각적인 정보를 제대로 전달해 주지 못해 생긴 착오의 현상이었다.


여하튼 착란의 현상으로 인해 시간이 그렇게 멈춰지고 있었고, 공간도 그대로 굳어지고 있었다.



* * *



쏴아아아!


바람 소리가 들렸다. 아마도 저 멀리에서 불어온 바람이 수간두옥 뒷편에 있는 대나무 숲을 스쳐 가는 모양이었다.


이윽고 진혁이 방 안에 있는 사람들을 밖으로 물렸다. 마치 석상이라도 된 것마냥 꽤 오랫동안 굳어 있던 진혁이 어느 순간 갑자기 사람들을 물리곤 이미 이승을 떠난 이경륭에게 깨끗한 옷을 갈아입혔다. 그렇게 깨끗한 옷으로 갈아입힌 후 진혁은 이경륭을 안아 들고 집 밖으로 향했다. 해는 이미 서산 아래로 사라지고 날이 어둑어둑해져 있었다.


그로부터 한참 후 진혁은 수간두옥 옆에 있는 넓직한 바위 위에 서 있었다. 그 바위는 가끔씩 아버지 이경륭과 함께 올라 이런 저런 담소를 나누었던 장소였고, 며칠 전엔 서진에게 춘향가 중 사랑가를 배웠던 장소이기도 했다. 그곳에 지금 진혁뿐만 아니라 귀동을 비롯해 서진과 서연, 그리고 임경달과 송유석이 함께하고 있었다. 물론 낭순이도 그들과 같이 진혁의 옆을 지키고 있었다.


진혁은 눈물이 글썽한 눈으로 바로 앞에 누워 있는 아버지 이경륭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경륭은 깨끗한 옷으로 갈아입혀진 채 커다란 장작 더미 위에 반듯한 자세로 누워 있었는데, 그 광경은 언뜻 스님들의 장례인 다비식을 연상케 했다. 그래서인지 이경륭의 모습도 마치 해탈이라도 한 것마냥 참으로 편안하게 보였다.


그렇게 한동안 아버지 이경륭을 바라보던 진혁이 마침내 그 어떤 결심이 섰는지 눈물을 한번 훔치곤 들고 있던 부시쌈지에서 부시와 부싯깃, 부싯돌을 천천히 꺼내 들었다. 그리고 장작 더미 아래에 있는 밑불 거리에 부싯깃을 두고 부시로 부싯돌을 서너 차례 내리쳤다. 그러자 어느 순간 불똥이 일더니 그 불똥이 부싯깃에 옮겨 붙고, 그 불은 곧 밑불 거리에도 옮겨 붙었다.


화르르륵!


잠시 후 밑불에서 장작 더미로 옮겨 붙은 불은 거대한 불꽃으로 변하며 주변을 점차 화염에 휩싸이게 했다. 그렇게 장작 더미는 사방으로 불똥이 튀며 맹령하게 타들어 갔고, 그와 더불어 이경륭 또한 이 세상에 나와 걸었던 반백 년의 흔적을 그 불꽃에 태우며 말끔히 지우고 있었다.


그 광경을 하염없이 지켜보던 진혁은 마침내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쓰러지듯 주저앉은 진혁은 보기에 너무나도 안쓰러워 차마 그 모습을 똑바로 바라볼 수가 없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결국 얼마 되지 않아 진혁은 꺽꺽거리며 장마철 도랑 물보다 더한 눈물을 쏟아 내기 시작했다.


그렇게 진혁이 울자 노령산도 울었고, 숲과 나무와 땅과 울었다. 그리고 하늘도 울었다.



* * *



절기가 입하를 지나며 계절이 봄의 끝 자락과 여름의 첫머리에 겹치자 기온도 부쩍 올라 온 세상이 만화방창에서 녹음방초로 변해 가고 있었다. 산마다 푸른 잎이 우거진 나무가 가득했고, 들녘의 보리도 이삭에 속살을 찌우며 그 푸르름을 더해 갔다.


부안에서 태인으로 이어지는 대로 주변도 마찬가지였다. 지평선이 보일 만큼 너른 들녘은 온통 푸른빛이 가득했고, 푸른 물결로 넘실거리고 있었다.


"총대장, 어찌하실 생각이요? 군사의 숫자에서 우리가 월등히 앞서니 그냥 이대로 밀어부치는 게 어떻겠소?"


"그건 불가하오. 김 총관령 말대로 우리의 숫자가 열 배가 많은 만큼 승리는 분명 우리가 쟁취할 수 있소. 하나, 그렇게 하면 우리도 많은 사상자가 발생할 수밖에 없소. 기실 저들과 싸워서 이기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우리의 사상자를 최대한 줄이는 게 아니겠소."


다소 과격한 성품이라 줄곧 강경 노선을 주장하는 김개남이 전봉준에게 즉각적인 싸움을 제안했는데, 하지만 전봉준의 생각은 그런 김개남의 생각과 많이 달랐다. 사실 김개남이 주장하는 싸움은 준비 없이 하는 싸움이라 보나마나 막싸움이 될 게 뻔했고, 그런 싸움은 승패의 여부를 떠나 양쪽 모두에서 많은 사상자가 발생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 만큼 그런 막싸움은 불가피한 상황이 아니면 가급적 지양해야 했다.


"그럼 혹여 총대장이 생각하고 있는 계획이 있소? 언제까지나 이렇게 길바닥에 주저앉아 있을 순 없지 않겠소."


김개남이 다시금 말문을 열었다. 그런데 당면한 현실이 답답하다는 듯 말투가 다소 퉁명스러웠다.


"김 총관령이 먼저 말을 꺼냈으니 이 기회에 내 생각을 여러분께 말씀드리겠소. 우선 연락책들이 전해 온 정보를 종합해 보면 저들은 별초군과 보부상들로 이루어진 군사들이라고 하오. 별초군은 전라 감영이 있는 전주 인근 출신들이 대부분일 것이고, 보부상들 또한 대처에서 대처로 이어진 대로만 훤히 꿰고 있을 뿐이라 이 지역을 자세히 아는 군사는 저들에게 없다는 얘기가 되오."


"총대장, 그게 중요한 거요?"


전봉준이 허두를 떼자 역시나 성격 급한 김개남이 잘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반문을 건넸다. 그런데 이번엔 좌중에도 김개남과 같은 표정을 짓고 있는 이들이 더러 눈에 띄었다.


"당연히 중요하오. 지피지기라는 말도 있듯이 상대를 많이 알면 알수록 싸움에서 유리한 것이 아니겠소. 역설적으로 상대가 우리에 대해 모르면 모를수록 우리가 그만큼 유리하다는 말도 되오. 그건 비단 군사적인 면만 해당되는 게 아니고, 싸움터도 그에 해당되는 만큼 우리는 우리가 잘 아는 촌구석으로 저들을 끌어들여 싸우는 게 유리하오."


"그럼 총대장, 그렇게 하면 되지 않겠소?"


"그게 말처럼 쉬운 게 아니오. 그렇게 하려면 저들을 우리가 원하는 촌구석으로 끌어들여야 하는데, 그럴려면 저들을 유인할 특별군이 필요하오. 그런데 문제는 그 임무가 유인인 만큼 많은 숫자를 보낼 수 없다는 것이고, 그로 인해 너무 위험하다는 것이오."


"총대장, 그런 임무라면 내가 맡을 테니 나에게 맡겨 주시요."


역시 이번에도 총관령 김개남이었다. 김개남은 성격이 다소 급한 만큼 화통한 기질도 갖추고 있었기에 전봉준의 말이 끝나자마자 앞뒤 따져 볼 것도 없이 제일 먼저 자원하고 나섰다.


"김 총관령, 그 마음 참으로 고맙소. 사실 그렇잖아도 그 적임자로 이미 내 김 총관령을 점찍어 두고 있었소. 허허허."


"허, 그렇소? 총대장이 나를 그리 높게 평가하고 있었다니 그야말로 기쁘기 이를 데가 없소. 하하하!"


전봉준이 자신의 심중을 여과 없이 드러내며 허심탄회하게 밝히자 김개남 또한 그에 한껏 호응하며 전봉준의 뜻을 기꺼이 받아들였다.


"좋소. 사실 김 총관령을 점찍어 두고 있었지만, 제일 고심하고 있었던 바였는데··· 우리 김 총관령이 좌고우면하지 않고 대번에 받아들였으니 내 나머지 생각도 그저 편안한 마음으로 부담 없이 이야기하겠소. 나는 저들을 다른 지역보다 구릉이 많은 곳으로 유인한 다음 한밤중을 이용해 공격할 생각이오."


전봉준과 농민군은 현재 부안과 태인 중간 지점에 주둔하고 있었다. 이들의 원래 예정과 계획은 부안의 민생과 치안이 안정되면 곧바로 태인으로 이동한 후 태인에서 다른 고을의 농민들을 합류시킬 예정이었다. 그런 다음 금산(원평)과 금구, 금천을 거쳐 전라 감영이 있는 전주성으로 진격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전라 감영의 영장 이광양이 별초군과 보부상으로 구성된 천삼백여 명의 군사를 이끌고 자신들을 토벌하기 위해 태인을 들러 부안 쪽으로 향했다는 소식을 듣고 향후 대책을 강구하기 위해 중간 지점인 이곳에 잠시 주둔 중이었다.


"총대장, 싸움 장소와 시간을 그리 정한 이유를 들어 볼 수 있겠소? 나뿐만이 아니라 모두가 궁금해 하는 것 같은데 말이요."


또 다른 총관령 손화중이었다. 전봉준과 김개남의 대화를 귀 기울이며 듣고 있다 전봉준이 밝힌 싸움 장소와 시간에 대해 질문을 건넸는데, 아마도 그리 정한 전술적 배경에 궁금증이 인 모양이었다.


"아, 그건 날짜 때문이오. 오늘이 초닷새라 달이 반월도 되지 않는다는 건 여러분도 잘 알 것이오. 그만큼 달빛이 밝지 않으니 구릉 여기저기에 엎드려 있기만 하면 우리 농민군 전부를 어둠의 그림자에 쉽게 매복시킬 수가 있소. 우리가 그렇게 매복하고 준비를 갖추고 있을 때 김 총관령이 저들을 유인해 오면 아마 싸움은 해보나마나 그걸로 끝날 게요."


"역시 총대장이요. 총대장의 계획을 들어 보니 이보다 더 완벽한 계획은 없는 듯하오. 어서 총대장의 계획을 마저 들어 봅시다."


"맞소, 총대장의 계획대로 지형적 이점을 싸움에 잘 활용하면 우리 농민군 사상자도 적을 것이고, 잘하면 일방적인 싸움이 될 것 같기도 하오."


전봉준이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하자 모여 있던 농민군 간부들은 이구동성으로 찬동하고 나섰다. 개중엔 전봉준의 생각을 병법적으로 확대 해석하는 간부들도 더러 있었다.


"좋소, 여러분들이 그리 열렬한 반응으로 찬동해 주니 내 겸손함을 잠시 내려놓고 내 계획을 마저 다 털어놓겠소. 우선 김 총관령이 맡을 특별군은 오백 명으로 편성할 생각이오. 그리고 그들을 뺀 나머지 농민군은 모두 네 개 부대로 나눠 세 개 부대는 디귿 자 형태로 매복하고, 나머지 한 개 부대는 저 멀리 뒤로 빠져 있다가 저들이 모두 매복한 곳으로 유인되면 그때 바로 뒤를 막아 디귿 자에서 미음 자 형태가 되도록 포위할 작정이오. 그렇게만 되면 천지가 개벽하지 않는 한 우리의 승리가 분명할 것이오."


"허허허, 우리 총대장은 그야말로 화수분이 따로 없소이다. 어찌 그리 짧은 시간에 그 많은 걸 생각하셨소이까?"


"그러게나 말입니다그려. 정말이지 대단하기만 합니다그려. 허허허."


이어진 전봉준의 이야기에 좌중은 또다시 전적으로 찬동하는 모습을 보였다. 개중에 일부 간부들은 흥분이 되는지 다소 격한 반응을 보이기도 했는데, 하긴 그럴 만도 한 게 전봉준의 이야기는 모두가 하나같이 철두철미한 계산이 깔려 있어 우선적으로 일리가 다분했다. 뿐만 아니라 병법적인 면에서도 매우 훌륭한 전술적 가치가 포함되어 있었기 때문인데, 그런 만큼 농민군 간부들이 그런 반응을 보이는 건 어찌 보면 지극히 당연한 일이었다.


"총대장, 특별군을 내게 맡길 생각까지 했다면 다른 생각도 이미 다 끝났을 터··· 어서 속 시원히 전부 다 밝혀 보시요. 내 성격이 급해서 그런지 궁금해서 도저히 못 참겠소."


성격 급하기로 둘째 가라면 몹시 서운해 할 김개남이었다. 그러나 한 고을의 동학 접주를 맡을 만큼 머리가 꽤 똑똑하고 공부도 상당했기에 상황 판단이 매우 빠르고 정확했다. 뿐만 아니라 지금처럼 돌아가는 상황 전반에 대해 금세 파악할 줄 아는 그런 다재다능한 능력까지 겸비하고 있었다.


"허, 김 총관령에게 이리 허무하게 들통 났으니 지체치 않고 남아 있는 내 계획을 모두 밝히겠소. 먼저 저들을 유인할 장소는 고부 황토현이오. 황토현은 논보다 밭이 많아 구릉이 많고, 주변에 작은 야산도 있고 우리 계획엔 최적의 장소일 듯 싶소. 그리고······."


"······."


"······?"


"지금부터는 모두 잘 들어 주시오. 먼저 저들을 유인할 특별군은 김개남 총관령이 맡아 오백의 군사를 이끌고 나갈 것이오. 내어 주는 군사의 수를 오백으로 적게 책정한 건 저들의 수가 약 천삼백 명 정도로 파악되어 그리 정한 것이오. 아마 그 정도 숫자면 저들은 우리 특별군을 숫자적으로 얕잡아 볼 게 분명하고, 물불 안 가리고 달려들 게 불을 보듯 뻔하오. 물론 특별군 숫자가 적어 위험이 뒤따르겠지만, 저들을 유인하기 위해선 감수해야 할 고육지계인데··· 어떻소, 김 총관령. 괜찮겠소?"


"예, 총대장. 걱정 마시요. 설령 그보다 더한 것이라도 해도 내 맡을 용의가 있소."


"고맙소, 역시 김 총관령이오. 자, 그다음으로 제일군, 제이군, 제삼군은 손화중 총관령, 김덕명 총참모, 김경선 영솔장이 맡아 줘야겠는데··· 다들 괜찮겠소?"


"총대장, 나 손화중을 비롯해 김 총참모와 최 영솔장은 모두 준비가 되어 있으니 명령만 내리시요."


"좋소, 그럼 제일군은 이천의 군사와 고부 지리를 잘 아는 행동장 김도삼을 붙여 줄 테니 손화중 총관령이 맡아 고부 상학촌에 매복하고 있으시오. 제이군 역시 이천의 군사와 행동장 정일서를 내어 줄 테니 김덕명 총참모가 맡아 고부 도계촌에 매복하고 있으시오. 제삼군 또한 마찬가지로 이천의 군사와 행동장 최경선을 붙여 줄 테니 최경선 영솔장이··· 아, 행동장과 동명이인인가? 그거 참, 공교롭소. 허허허. 어쨌든 최경선 영솔장이 맡아 배들평 쪽에 매복하고 있으시오. 난 나머지 사천의 군사를 이끌고 디귿 자 형태의 입구에 매복하고 있다가 김 총관령이 저들을 디극 자 형태의 황토현으로 유인하면 그때 바로 나가서 그 입구를 막아 미음 자 형태로 만들겠소. 자, 여기까지가 내 생각인데 수정해야 할 게 있거나 궁금한 게 있으면 말들 해 보시오."


"······."


"······."


전봉준이 자신의 계획을 꽤 장구하게 설명한 뒤 말끝에 토를 달았다. 혹시 자신의 계획에 잘못된 점이 있으면 바로잡고, 자신의 계획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한 사람이 있으면 부연 설명을 하기 위해서였는데, 하지만 좌중은 그사이 꿀이라도 먹었는지 모두가 벙어리마냥 입을 굳게 닫고 아무런 말이 없었다.


"왜들 그러시오? 혹여 내 계획이 형편없소? 아니면 내 얘기가 논리적이지 못해 이해하기가 힘든 것이오?"


좌중이 무반응을 보이자 전봉준이 혹시나 하는 마음에 조심스런 말로 걱정을 내비쳤다. 하지만 그건 한낱 기우에 불과했다.


"허허, 총대장은 어찌 그리 가당찮은 말을 하시는 게요. 딱 보면 모르겠소? 총대장의 계획이 워낙 주도면밀하고 용의주도해 모두 말문이 막혀서 그런 것이 아니겠소. 허허허."


"그렇소이다. 하긴 그 정도면 완전무결한 계획이나 다름없는데, 누가 다른 이견이 있을 수 있겠소. 다들 안 그렇소이까?"


"맞소, 맞소이다. 하하하!"


곧 닥쳐올 싸움에 대비해 전봉준과 농민군이 한창 작전을 구상하며 이렇게 준비하고 있을 때 이광양이 이끄는 천삼백 명의 토벌군은 동진강을 따라 서진하고 있었는데, 현재 초강골(정우)을 넘어서고 있었다.



* * *



"어이, 갑동이. 저 앞을 한번 보게. 저게 도대체 사내놈인가, 아니면 계집년인가? 옷 입은 꼬라지는 분명 사내놈인데, 궁둥짝을 흔드는 궁둥이짓은 영락없는 계집년이니······."


"저 궁둥이짓이 어째서 말인가? 말이야 바른 말이지만 보기 좋지 않은가? 그리고 자네도 뻔히 다 알면서 뭘 물어보는가? 왜, 부러운가? 부러우면 자네도 자네 마누라를 남장시켜 데려오지 그랬나? 허허허."


"허, 이 사람··· 누가 부럽다고 했는가? 대가리 숫자 하나 더 따먹어 봤자 고까짓 것 몇 푼이나 된다고, 에엥!"


"허! 자네야말로 이해 못할 사람이구만. 그게 어찌 몇 푼인가, 이 사람아. 자네도 눈이 있으면 눈을 씻고 사방을 잘 훑어보게. 남장한 여인네들이 어디 한둘인가? 자네 말대로 그깟 돈 몇 푼이면 저치들이 저렇게 자기 마누라나 딸년을 고생시켜 가며 예까지 끌고 왔겠는가?"


이들은 전라 감영에 임시 군사로 고용된 보부상들이었다. 사실 보부상 개인의 힘은 보잘것없고 미약했지만, 그들은 전국 팔도에 기점을 두고 조직망을 운영할 정도로 그 숫자가 엄청났다. 뿐만 아니라 온갖 생활 필수품을 짊어진 채 전국을 떠도는 그들의 노고로 인해 산간 오지나 벽촌에서도 사람이 살아갈 수가 있었는데, 그 때문에 조정에서도 보부상들에게 여러 혜택을 주며 특별한 대우를 해 주고 있었다. 물론 그 여러 혜택과 특별한 대우를 받기 위해 보부상들도 나름의 대가를 지불했는데, 바로 지금과 같은 경우였다. 다시 말해 평상시엔 이곳저곳을 떠돌며 장사를 하다 간혹 나라에 변고가 생기면 그때그때 나라에 임시로 고용되어 나랏일을 돕고 나섰는데, 어찌 보면 필요 불가결의 상부상조나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불시에 모집되어 한시적으로 운영되는 체계다 보니 그에 따른 부작용이나 허점이 뒤따를 수밖에 없었고, 특히 구조적 결함과 운영 미숙에서 발생되는 문제가 많아 그 폐단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물론 그 모든 폐단엔 어김없이 돈이 관련되어 있었고, 그런 불미스러운 사례가 이미 여러 차례 불거졌던 만큼 그에 대한 사실 여부는 굳이 왈가왈부가 필요 없었다.


"아무리 돈이 좋아도 그렇지, 다른 일도 아니고 자칫하면 피가 튀는 싸움을 할지도 모르는데 자기 마누라나 딸년을 데려오다니··· 정신들이 있는 건지, 없는 건지. 에엥!"


"허, 이 사람··· 싸움은 무슨 싸움이 일어난다고 그러는가? 농가성진이 될 수도 있으니 그런 재수 없는 소리는 하지를 말게. 그리고 우리 앞에 관군이 삼백 명이나 있는데 농사나 짓는 촌맹이들이 감히 덤비기나 하겠는가?"


"하긴 그렇지. 나 또한 그런 생각을 했기에 이리 자원해 한 꼽사리 낀 것이고···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저 앞의 저치는 너무 하는 것 같네. 이리저리 궁둥짝 흔드는 계집년을 양쪽으로 둘이나 끼고 말야."


"허, 이 사람. 아까부터 연신 투덜거리더니 역시 부러워서 그런 거였구만. 허허허."


"예끼, 이 사람아. 부럽긴 누가 부럽다고··· 그나저나 자네 말을 듣고 유심히 살펴보니 아닌 게 아니라 여인네들이 꽤 되는 듯하구만."


"그럴 만도 하지 않겠는가. 한 사람 몫으로 지급되는 돈이면 네 식구가 반 년은 먹고살 수 있는 돈이니 솔직히 그 돈을 누가 마다하겠는가? 그래서 하는 말인데, 나도 지금 물밀듯이 밀려오고 있다네."


"뭐, 뭐가 밀려온다는 말인가?"


"뭐긴 뭐겠는가? 당연히 후회지··· 이럴 줄 알았으면 나도 마누라뿐만 아니라 두 딸년들까지 모조리 다 데려오는 건데. 허허허."


"예끼, 이 사람아. 그런 쓸데없는 농지거리는 하지를 말게. 그런 어설픈 농도 어울리는 사람이 따로 있는 법이네. 허허허."


이들의 대화 내용은 놀랍게도 모두 사실이었다. 현재 전라 감영의 영장 이광양이 이끄는 토벌군에는 상당수의 부녀자들이 끼어 있었다. 그녀들은 남장을 한 모습으로 보부상군에 편성되어 있었는데, 모두 돈에 목적을 두고 남편이나 아버지를 따라나선 여인네들이었다.


자고로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군대라는 건 남자들의 전유물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처럼 부녀자들이 토벌군 틈에 끼어 있는 건 전적으로 전라 감영의 안일한 오판과 어설픈 꼼수 때문이었다.


며칠 전 보부상들을 끌어 모아 토벌군을 구성할 때 전라 감영에선 있는 사실을 그대로 공표하지 않고 거짓으로 일관했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사실을 그대로 공표했다간 몇 사람이나 모집될지 장담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싸움터에 나가 목숨을 걸고 싸워야 한다고 공표하면 나라의 여러 혜택을 받고 있는 보부상들이라고 해도 그 결과는 볼 것도 없이 뻔했기 때문인데, 그러한 까닭에 전라 감영에선 임시졸판으로 거짓말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그 내용이 매우 그럴듯하고 그럴싸해 제법 많은 보부상들이 술렁거렸고, 그 천금 같은 기회를 놓치지 않은 전라 감영은 무려 천 명이나 모집하는 의외의 성과를 거둘 수가 있었다.


하기야 전라 감영이 보부상들에게 꼬드긴 말은 처음부터 아예 수작을 부리려고 작정한 거라 그 내용이 매우 그럴싸하고 그럴듯할 수밖에 없었다. 어쨌든 그 내용은 크게 네 가지였는데, 먼저 관군들과 섞여 숫자적 위용으로 그 위세만 한번 떨쳐 주면 된다는 게 첫 번째였고, 그리만 해 주면 농민들로 이루어진 반란군들은 모두 도망칠 게 뻔한 만큼 싸움은 절대 없을 거라는 게 두 번째였다. 그리고 만에 하나 싸움이 벌어진다고 해도 싸움은 오롯이 관군들만 할 거라는 말에 보부상들은 시나브로 동요될 수밖에 없었는데, 그게 세 번째였다. 거기에 결정적으로 돈이라는 걸 대가로 가미시키자 그 효과는 말 그대로 직방으로 나타났는데, 그게 마지막 네 번째였다. 물론 제시된 보상 액수가 전례 없이 많다는 건 두말할 나위가 없었다.


여하튼 그런 절차와 과정을 겪으며 모집된 보부상군은 막말로 어중이떠중이에 얼치기들로 구성되어 지휘 체계도 엉망이었다. 그렇다 보니 이들이 지나는 보리밭은 쑥대밭이 되었고, 촌락은 초토화가 되고 있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이들은 숫자가 많다는 이유로 멀쩡한 길은 놔두고 보리밭을 가로지르며 이동했고, 이들이 지나는 촌락은 먼저 본 게 임자라는 듯 공공연한 약탈이 자행되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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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4 노령 연재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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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8 총장 : 앙천부지(仰天俯地。하늘을 쳐다보고 땅을 굽어본다) 19.09.26 120 1 11쪽
77 제 18장 : 면종복배(面從腹背。겉으로는 복종하는 체하며 속으로는 배반한다) (3) 19.09.25 40 0 31쪽
76 제 18장 : 면종복배(面從腹背。겉으로는 복종하는 체하며 속으로는 배반한다) (2) 19.09.24 35 0 26쪽
75 제 18장 : 면종복배(面從腹背。겉으로는 복종하는 체하며 속으로는 배반한다) (1) 19.09.23 36 1 32쪽
74 제 17장 : 어궤조산(魚潰鳥散。물고기 떼처럼 헤어지고 새 떼처럼 흩어진다) (4) 19.09.20 45 1 18쪽
73 제 17장 : 어궤조산(魚潰鳥散。물고기 떼처럼 헤어지고 새 떼처럼 흩어진다) (3) 19.09.19 38 1 24쪽
72 제 17장 : 어궤조산(魚潰鳥散。물고기 떼처럼 헤어지고 새 떼처럼 흩어진다) (2) 19.09.18 45 1 25쪽
71 제 17장 : 어궤조산(魚潰鳥散。물고기 떼처럼 헤어지고 새 떼처럼 흩어진다) (1) 19.09.17 57 1 23쪽
70 제 16장 : 안분지족(安分知足。제 분수를 지키며 만족할 줄 안다) (3) 19.09.13 53 2 20쪽
69 제 16장 : 안분지족(安分知足。제 분수를 지키며 만족할 줄 안다) (2) 19.09.12 45 1 24쪽
68 제 16장 : 안분지족(安分知足。제 분수를 지키며 만족할 줄 안다) (1) 19.09.11 51 1 32쪽
67 제 15장 : 만사무석(萬死無惜。만 번 죽어도 아까울 게 없다) (4) 19.09.10 55 1 16쪽
66 제 15장 : 만사무석(萬死無惜。만 번 죽어도 아까울 게 없다) (3) 19.09.09 46 1 23쪽
65 제 15장 : 만사무석(萬死無惜。만 번 죽어도 아까울 게 없다) (2) 19.09.05 49 2 21쪽
64 제 15장 : 만사무석(萬死無惜。만 번 죽어도 아까울 게 없다) (1) 19.09.04 51 2 24쪽
63 제 14장 : 혜분난비(蕙焚蘭悲。혜란이 불에 타니 난초가 슬퍼한다) (3) 19.09.03 45 1 29쪽
62 제 14장 : 혜분난비(蕙焚蘭悲。혜란이 불에 타니 난초가 슬퍼한다) (2) 19.09.02 43 2 22쪽
61 제 14장 : 혜분난비(蕙焚蘭悲。혜란이 불에 타니 난초가 슬퍼한다) (1) 19.08.30 72 2 32쪽
60 제 13장 : 억강부약(抑强扶弱。강한 자를 누르고 약한 자를 돕는다) (3) 19.08.29 74 1 30쪽
59 제 13장 : 억강부약(抑强扶弱。강한 자를 누르고 약한 자를 돕는다) (2) 19.08.28 62 1 29쪽
58 제 13장 : 억강부약(抑强扶弱。강한 자를 누르고 약한 자를 돕는다) (1) 19.08.27 62 2 27쪽
57 제 12장 : 불요불굴(不撓不屈。휘지도 않고 굽히지도 않는다) (4) 19.08.26 61 1 20쪽
56 제 12장 : 불요불굴(不撓不屈。휘지도 않고 굽히지도 않는다) (3) 19.08.23 53 1 15쪽
55 제 12장 : 불요불굴(不撓不屈。휘지도 않고 굽히지도 않는다) (2) 19.08.22 51 1 26쪽
54 제 12장 : 불요불굴(不撓不屈。휘지도 않고 굽히지도 않는다) (1) 19.08.21 54 2 25쪽
» 제 11장 : 호천통곡(呼天痛哭。하늘을 부르며 소리쳐 울다) (3) 19.08.20 69 2 26쪽
52 제 11장 : 호천통곡(呼天痛哭。하늘을 부르며 소리쳐 울다) (2) 19.08.19 65 2 28쪽
51 제 11장 : 호천통곡(呼天痛哭。하늘을 부르며 소리쳐 울다) (1) 19.08.16 71 2 25쪽
50 제 10장 : 공도동망(共倒同亡。넘어져도 같이 넘어지고 망해도 같이 망한다) (4) 19.08.15 59 2 18쪽
49 제 10장 : 공도동망(共倒同亡。넘어져도 같이 넘어지고 망해도 같이 망한다) (3) 19.08.14 72 2 2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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