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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4 노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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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검늑삼
작품등록일 :
2019.02.22 1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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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9.26 1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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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9.11 14: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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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6장 : 안분지족(安分知足。제 분수를 지키며 만족할 줄 안다) (1)

DUMMY

"귀동 아우, 내 옆에서 절대 떨어지면 안 돼. 알겠지?"


"예, 진혁 형님. 그런데 너무 먼 것 아니예요? 얼핏 봐도 이백 보쯤은 될 것 같은데요."


"관군들의 무기 성능이 워낙 좋아서 원래는 더 멀리 떨어져야 하는데, 저 바위만큼 완벽한 엄폐물이 없을 것 같아 여기서 멈추는 거야. 봐, 완전 철옹성이 따로 없잖아. 게다가 이 우형의 힘이 달리기 어쩌겠어. 이 정도 거리가 내 힘의 한계인 걸. 쩝!"


진혁과 귀동은 관군들의 주둔지를 크게 우회하고 있었다. 그런데 둘 다 뭔지 모를 커다란 짐을 등에 지고 있었다.


"그런데 진혁 형님, 이 화살을 모두 날리고 나면 녹초가 될 게 뻔한데 혹시 관군들과 싸우게 되면 어떡해요? 그땐 이 소제가 나서서 진혁 형님을 지켜 줘야 하나? 흠흠!"


귀동이 자신의 등짐을 가리키며 진혁에게 한마디를 건네곤 그 즉시 턱을 치켜들고 거들먹거렸다. 그로 보아 등에 멘 짐은 화살인 듯했고, 모종의 임무 수행 중인 것 같았다.


"우쒸, 자꾸 그렇게 싸움질에 연연해 댈 거야? 그러다 정말 큰코다친단 말야. 하긴 내 잘못이지. 내가 괜히 창술을 가르쳐 줘서······."


귀동의 거들먹거림에 진혁이 심히 걱정된다는 표정으로 엄히 다그쳤다. 그러나 귀동은 진혁이 그러거나 말거라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의 말만 해 댔다.


"진혁 형님도 그때 이 소제의 활약상에 대해 전해 들었잖아요. 이 소제가 그때 그 정찰 대원들에게 얼마나 큰 힘이 되었는데요?"


"귀동 아우··· 그 화살 다발 나에게 넘겨주고 감영으로 다시 돌아가."


도저히 안 되겠다는 듯 진혁이 비장의 패를 꺼내 보였다. 그러자 귀동이 곧바로 꼬리를 내리며 입을 앙다물었다.


"예? 쳇! 알았어요. 그런 소리 안 할게요."


"쳇? 방금 혀 찬 것 맞지? 확실히 많이 컸어. 배식소에서 일하면서 분명 몰래······."


"아쒸, 진혁 형님! 사람을 뭘로 보고··· 자꾸 그러면 이 소제도 선봉에 서겠다고 확 자원해 버릴 거예요!"


"아, 알았어. 쳇! 이젠 위지협지까지 해 대고 확실히 많이······."


그렇게 진혁과 귀동이 관군들의 주둔지를 우회해 산등성이를 오르고 있을 때 산 아래에서도 농민군과 관군 간의 전면전을 목전에 두고 긴장감이 감돌고 있었다. 한껏 팽배해진 긴장감 속에 관군들은 산기슭을 배후에 두고 포진해 있었고, 농민군은 그 산기슭을 드넓게 에워싸 포위하는 형국을 취하고 있었다.


"총대장, 어제 많은 이들이 희생되었소. 오늘도 많은 희생이 뒤따를 게 기정사실일 게요."


"후우, 알고 있소."


"하지만 총대장, 기필코 저놈들을 무찔러야만 하오. 그래야만 그들의 넋을 달래 줄 수가 있소."


"그렇소, 총대장. 청국 군대가 언제 우리 조선 땅을 밟을지 모르는 만큼 오늘은 무슨 일이 있어도 저들과 결판을 내고 곧장 한양으로 진격해야 하오. 그렇게 하는 것만이 어제 희생된 이들의 넋을 위로하는 길이 아니겠소."


총관령 손화중과 총참모 김덕명이 결연한 어조로 오늘 전투에 대해 그 중요함과 결의 등을 언급했고, 그러자 총대장 전봉준의 얼굴이 그 즉시 침울해졌는데, 어제의 전투가 되새겨졌기 때문이다. 아니, 좀 더 자세히 얘기하면 어제 관군들을 향해 돌진하던 농민군들이 관군들의 공격에 픽픽 쓰러지던 모습이 또다시 떠올랐기 때문인데, 어찌 보면 이러한 정신적 고통도 한 조직을 이끄는 우두머리의 숙명일 수 있었다.


"나 또한 잘 알고 있소. 하지만 그리하려면 우리 측 사상자가 나온다는 게 마음에 걸릴 뿐이오. 여러분도 어제 직접 보지 않았소? 저들의 강력한 중화기 앞에선 우리의 모습은 한없이 작아지며 무기력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속절없이 쓰러져 가는 우리 군사들을 봐야 한다는 게 나에게는 더할 수 없는 고통이자 고역이오."


어제의 그 광경은 그야말로 수라장이 따로 없었다. 관군들이 쏘아 대는 포탄에 농민군들이 공중으로 떠오르며 갈기갈기 찢겨졌고, 관군들이 갈겨 대는 기관총에 농민군들이 그 자리에서 픽픽 쓰러지며 나뒹굴었다. 그 광경을 지켜봐야 했던 농민군의 총대장 전봉준은 자신의 마음도 그처럼 갈기갈기 찢겨졌고, 자신의 이성이나 정신도 그렇게 픽픽 쓰러져 가며 전장 한복판에서 나뒹굴었다.


"그런데 총대장, 이진혁 타격장이 너무 위험하지 않겠소?"


전봉준이 침울한 얼굴로 어제의 처참했던 전투를 떠올리며 진저리를 치고 있을 때 김개남이 다소 뜬금없는 한마디를 건넸다.


"후우! 위험한 줄 뻔히 알면서도 이 타격장의 출전을 만류할 수가 없었으니, 그 또한 내 마음이 편치 않소. 만일 이 타격장의 활약으로 저들이 혼란을 겪게 되면 그 틈을 이용해 우리 농민군이 전투의 주도권을 쥘 수도 있을 텐데··· 그나저나 아무 일 없이 무사해야 할 텐데 심히 걱정이오."


당금의 상황이 막막한지 전봉준이 한숨부터 내쉬었다. 그리곤 진혁을 언급하며 기대와 걱정을 동시에 내비쳤는데, 그만큼 농민군의 상황이 녹록치 않다는 증거였다.


"총대장, 나도 이진혁 타격장이 걱정되기는 마찬가지요. 하지만 이진혁 타격장은 남다른 능력을 가지고 있고, 또 그동안 여러 차례에 거쳐 우리에게 그 능력을 몸소 증명해 보였잖소. 그러니 이번에도 우리 모두 이진혁 타격장을 한번 믿어 봅시다."


"그럽시다, 총대장. 김 총관령 말마따나 비록 나이가 어려 애동대동한 이 타격장이지만 그동안 우리에게 보여 준 능력이 한두 가지가 아니지 않소. 그리고 무엇보다 우리는 불가능할 거라고 여겼던 것들을 이 타격장은 그때마다 마치 보란 듯이 해결하지 않았소? 그러니 이번에도 이 타격장을 믿고 우리는 우리의 전투에만 매진하도록 합시다."


전봉준이 진혁에 대해 걱정을 내비치자 김개남과 손화중 등 농민군 간부들도 자신들의 생각을 내보였다. 그런데 그들의 발언을 면밀히 들여다보면 하나의 공통점이 있었다. 그들의 발언 대부분이 자신들의 걱정을 일소하기 위한 것들인데, 다만 그 걱정을 해소하는 데 있어 주체가 자신들이 아닌 진혁이라는 사실이었다.


사실 전봉준뿐만 아니라 농민군 간부들의 내면에도 진혁에 대한 기대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이처럼 농민군에게 있어 진혁이 차지하고 있는 비중은 대단히 컸고, 그만큼 진혁이 중요한 인물이라는 사실이 다시 한 번 명백하게 증명되고 있었다.


"알겠소. 나 또한 여러분처럼 우리 이 타격장을 믿어 보도록 하겠소. 여하튼 공격 준비를 모두 마친 것 같으니 총대장으로서 명령을 내리겠소. 자! 모두 진격하시오!"


마침내 전봉준의 총공격 명령이 떨어졌고, 그렇게 농민군 총대장의 명령이 내려지자 농민군은 또다시 사지나 다름없는 전장으로 진격하기 시작했다.




* * *




토벌군 진영도 분주하기는 매한가지였다. 긴장감이 팽배한 가운데 전투 준비에 여념이 없었는데, 하지만 어제 전투의 승리 때문인지 들뜬 분위기도 없지 않았다.


"각 부대장들에게 묻겠네. 오늘의 전투 양상은 어제와는 분명히 다를 터, 그에 대한 대비책과 준비는 철저히 하고 있는가?"


토벌군을 이끌고 있는 초토사 홍계훈이 긴장감과 초조함을 여실히 드러내며 각 부대장들을 다그쳤 댔다.


"예, 초토사 영감. 저 반란군 놈들은 어제 무턱대고 덤벼들다 된통 당했던 만큼 오늘은 어제처럼 무작정 밀고 들어오지는 않을 겁니다. 그런 만큼······."


홍계훈의 다그침에 제오군 부대장 유남흥이 나서 뭔가를 얘기하려다 도중에 갑자기 말을 멈췄다. 홍계훈이 대뜸 말허리를 자르고 나섰기 때문인데, 어찌 된 게 상대방의 말허리를 꺾는 것은 얼마 전이나 지금이나 전혀 변한 게 없었다. 그런 걸 보면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가고, 제 버릇은 개도 안 준다는 속담이 딱 맞는 말 같았다.


"그건 유 부장 자네 말이 응당 맞는 말이네. 허면, 우리가 어떤 대비를 해야 할지 그에 대해서도 생각한 게 있는가?"


"예, 초토사 영감. 어제와는 다른 진형을 갖추고, 전술도 어제와 다른 전술을 구사해야 한다는 게 소장의 생각입니다."


넌지시 묻는 홍계훈의 질문에 마치 예상하고 있었다는 듯 유남흥이 그 즉시 대답을 했다.


"음, 좀 더 자세하게 얘기해 보게."


"예, 어제 우리는 어린진의 진형을 갖춘 다음 강력한 중화기를 앞세워 전술을 운영했습니다. 그 효과는 대단했고 실제로도 반란군 놈들에게 막대한 피해를 입혔습니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저놈들이 전술이나 전략에 무지했기 때문에 가능할 수 있었습니다."


유남흥이 언급한 어린진이란 물고기의 비늘처럼 중앙부가 푹 들어간 진으로 언뜻 보면 사람인 자 모양을 갖추고 있었다.


"그건 그렇지, 사람인 자의 어린진은 숫자가 적은 우리가 펼칠 진형은 아니었지. 다행히 저놈들이 진법에 대해 몰랐으니 망정이지··· 헌데, 그 효과 만점인 진형을 오늘은 왜 쓰지 말자는 건가?"


"이유는 간단합니다. 어제 수백 명이 죽어 나갔는데, 저놈들이 간밤에 가만히 있었겠습니까? 분명 이를 갈아 대며 되새겨 봤을 겁니다. 아마 모르면 몰라도 범의 아가리나 다름없는 그 사람인 자의 가랑이로는 두 번 다시 몰려들지 않을 겁니다. 틀림없이 어린진을 파훼할 수 있는 타개책도 마련됐을 거고, 그런 만큼 오늘 공격은 그 양상이 어제와는 판이하게 다를 겁니다."


사실 어제 전투에서 농민군의 피해가 극심했던 것은 순전히 유남흥 때문이었다. 토벌군은 어제 전투에서 유남흥이 제안한 어린진을 형성한 뒤 그 안으로 농민군을 유인한 다음 화력을 집중시켰다. 그로 인해 농민군은 힘 한번 제대로 써 보지 못하고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다.


"음··· 하면?"


홍계훈이 다시금 짧게 물었다.


"오늘은 분명 무작정 달려들지 않을 겁니다. 미루어 짐작컨대 여러 곳으로 분산하여 몰려올 게 틀림없습니다. 그런 만큼 숫자가 적은 우리로선 원진을 구축하고 똘똘 뭉쳐서 대응해야 마땅합니다."


유남흥은 오늘 전투도 한 치 앞을 먼저 내다보고 그 대비책을 제시했다. 하지만 오늘 전투에서도 어제 전투 때처럼 탁출하게 맞아떨어질지는 미지수였다.


"지금까지 제오군 부대장인 유남흥 부장의 생각을 들어 봤는데, 다른 부대장들의 생각은 어떤가?"


홍계훈이 유남흥의 이야기를 들어 본 후 매우 흡족하다는 표정을 지어 보이며 좌중의 부대장들에게 의견을 물었다. 물론 형식적인 질문이라는 게 훤히 보일 정도로 확연하게 티가 났는데,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좌중에서 한 사람이 일어섰다.


"초토사 영감, 소장이 한 말씀드리겠습니다. 반란군 놈들이 여러 패로 나뉘어 몰려오면 유 부장의 말대로 해야겠지만, 만일 그렇지 않고 어제처럼 한 무리로 뭉쳐 몰려온다면 그댄 자칫 큰 낭패가 될 수도 있습니다."


제삼군 부대장인 허유식이었다. 그는 그렇지 않았을 때를 가정하여 자신의 속내를 매우 신중하게 피력했는데, 그 또한 일리가 다분했고, 몹시 중차대한 문제였기에 홍계훈은 갈등이 일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 갈등은 시작과 동시에 멈춰야만 했다. 회의장 막사의 천막이 걷히며 정찰 부대장이 들어왔기 때문이다.


펄럭!


"초토사 영감, 반란군들의 공격 조짐이 보이고 있습니다."


"빌어먹을 놈들 같으니라고, 에엥! 그래, 그놈들 숫자는 얼마나 되더냐? 아니, 그보다 그놈들 진형은 어떻더냐? 어제와 같은 진형이더냐?"


정찰 부대장의 보고에 홍계훈은 심사가 뒤틀린다는 듯 모마땅한 소리를 내며 이것저것을 연거푸 물었다.


"반란군의 숫자는 얼추잡아도 팔천 명은 넘는 것 같고, 진형은 어제와 달리 여러 패로 나뉘어서 움직이고 있습니다."


"음, 역시 유남흥 부장의 선견지명은 탁월하군. 자, 놈들의 의중이 이리 확인된 만큼 방금 전 유남흥 부장이 말한 대로 신속히 원진을 구축하도록 하게."


홍계훈이 이끄는 토벌군에 이처럼 장기판의 한나라 장량이나, 삼국지연의의 촉나라 제갈량 못지않은 유남흥이라는 책사 아닌 책사가 있었다. 그로 인해 토벌군은 얼마 되지 않는 병력임에도 불구하고 어제 전투에서 크나큰 승리를 쟁취할 수 있었고, 오늘도 어제 못지않는 큰 승리를 거두리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하지만 토벌군에 유남흥이 있었다면, 농민군에는 진혁이 있었다. 그리고 유남흥이 똑똑하다면, 진혁은 그 똑똑함에 눈치까지 더한 영리함을 갖추고 있었다. 요컨대 진혁은 어제의 전투를 반면교사 삼아 오늘의 전투를 이미 예상하고 있었고, 그런 만큼 관군이 원진을 구축할 거라는 것도 이미 꿰뚫어 보고 있었다. 물론 관군이 원진을 구축하도록 농민군의 진형에 살짝 꼼수를 부린 것도 없지 않았다.




* * *




타타타탕! 타타타타탕······.


쉬이익! 쉬이이익······.


진혁은 빌밧치는 총탄에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저 쉴 새 없이 화살을 날리고 있었는데, 그게 가능할 수 있었던 건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사실상 소리만 요란할 뿐 실상은 전면에 있는 커다란 바위가 날아오는 총알을 모두 다 막아주고 있었기 때문인데, 그렇게 산 중턱에서 바위 너머 산 아래로 날리는 화살이라 비거리도 평지보다 더 길었고, 더욱이 가속력까지 붙어 그 파괴력은 결코 만만치가 않았다.


사실 진혁과 귀동이 지고 온 등짐은 전부 화살이었다. 각자 백여 개 이상씩 지고 왔으니 아무리 못 잡아도 이백 개가 훌쩍 넘는 화살이었다. 그런데 지금 바닥에 놓여 있는 화살은 전부 합쳐 오십여 개가 전부였다.


"에구, 에구··· 도저히 안 되겠다. 좀 쉬어야지, 후우!"


몹시 아프거나, 놀라거나, 반갑거나, 힘들거나, 원통하거나, 기가 막히거나 할 때 내뱉는 '에구'라는 말을 앞세우며 진혁이 주저앉았다.


"진혁 형님, 여기 물··· 물이라도 좀 드세요. 이럴 줄 알았으면 창술뿐만 아니라 궁술도 좀 배워 두는 건데, 만약 그랬다면 이럴 때 진혁 형님도 도울 수 있고 꽤나 요긴하게 써먹을 텐데······."


전신에 땀이 흠뻑 젖은 진혁에게 물을 건네주며 귀동이 안타까운 표정으로 몇 마디를 중얼거렸다.


"우쒸, 이것도 싸움질의 일종이거든! 그리 착하디착하고 순하디순한 우리 귀동 아우가 어찌 이리 변했는지 몰라. 변해도 너무 변했어. 툭하면 싸움질할 구실만 찾고 말야."


귀동이 중얼거린 몇 마디 말 중에 일부만 알아들은 진혁이 대번에 뭐라 하며 귀동을 닦달해 댔다. 그러나 곧바로 이어진 귀동의 무람없는 말에 진혁은 본전도 못 찾고 겸연쩍은 표정을 지어야 했다.


"아쒸, 아니라고요! 이 소제는 진혁 형님이 너무 애면글면하는 것 같아서··· 단지 그게 마음에 걸려서 한 말이라고요. 이 소제의 마음도 몰라 주고··· 진짜로 확 선봉에 자원할까 보다."


"그, 그런 거야? 미, 미안해. 어쨌든 귀동 아우는 지금도 그렇지만 앞으로도 이런 싸움질은 안 하고 그냥 무던하게 지냈으면 좋겠어. 그게 이 우형의 바람이야. 그리고 이 우형이 귀동 아우에게 창술을 가르쳐 준 건 약초 캐러 산에 들어갔다가 혹시 산짐승 만났을 때나 대비해 가르쳐 준 거지, 지금처럼 사람을 상대로 살상하라고 가르쳐 준 게 아니란 말야."


진혁은 미안한 마음에 뒤늦게나마 어르고 눙치는 말로 귀동을 달랬다.


"그건 이 소제도 안다고요. 진혁 형님의 그 마음을 이 소제가 어찌 모르겠어요? 그리고··· 그건 이 소제도 마찬가지예요. 이 소제도 진혁 형님이 이런 위험한 싸움질하지 않고, 앞으로도 험한 일 겪지 않았으면 하는 그런 바람뿐이라고요."


귀동이 약간 울먹이는 목소리로 자신의 속마음을 진혁에게 전했다. 그러자 진혁이 뭔가를 생각하더니 잠시 후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런데 진혁의 입술을 비집고 나온 말은 다소 뜬금없는 내용이었다.


"귀동 아우, 그래서 하는 말인데··· 우리 총대장님께 얘기하고 집으로 돌아갈까?"


"예? 그, 그럼 춘장 어르신의 복수는 어떻게 하고요?"


진혁이 건넨 말에 귀동이 살짝 놀란 표정을 짓더니 이내 담담한 표정으로 바뀌었다.


"그야 뭐, 굳이 복수 같은 것 안 해도··· 아버지가 이해해 주시지 않을까?"


사람을 죽였다는 것은 그 어떠한 경우에도 정당화나 합리화가 될 수 없었다. 그런 만큼 아무리 복수라고 해도 관찰사를 죽였다는 사실로 화젯거리 삼을 순 없었고, 그렇다 보니 진혁은 그 사실을 지금껏 숨겨 올 수밖에 없었다. 물론 친동생 같은 귀동에겐 더더욱 그 사실을 숨길 수밖에 없었다.


"하긴 다른 분도 아니고, 춘장 어르신이라면 아마 벌써 다 이해하시고 남았을 거예요. 아니, 애시당초부터 그런 마음은 갖지도 않았을 거예요. 춘장 어르신이라면······."


"그러셨겠지?"


"당연하죠··· 그런데 진혁 형님, 이미 다른 사람들도 상당수가 집으로 돌아갔는데 우리까지 돌아가도 괜찮을까요?"


"하기야 한두 사람씩 시나브로 빠져나가면 종국엔 아무도 안 남겠지."


사실 귀동의 말대로 현재 농민군의 숫자는 처음 전주성에 입성할 때보다 현저히 줄어든 상태였다. 그리된 데에는 여러 이유가 있었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큰 이유는 뭐니 뭐니 해도 죽음에 대한 공포 때문이었다. 물론 가족에 대한 그리움이나 농사에 대한 미련 등으로 귀향한 사람들도 있었지만, 그들은 극소수에 불과할 뿐 떠난 사람 중에 대다수는 죽음에 대한 공포를 이기지 못한 사람들이었다.


"아, 생각하면 골치만 아프고 좀 쉬었으니 또다시 쏘아 대 볼까나. 끙차!"


잠시 쉬며 힘을 보충한 진혁이 벌떡 일어났다. 그리곤 바위 너머 산 아래를 향해 또다시 화살을 날려 댔다.




* * *




토벌군들은 바짝 긴장한 상태에서 하늘만 올려다봤다. 개중엔 양호 초토사 홍계훈을 비롯해 각 부대장들도 포함되어 있었는데, 그럴 수밖에 없었다. 원진을 구성하고 있는 진형 안쪽에 장소를 가리지 않고 화살이 떨어졌기 때문인데, 어찌 된 영문인지 저 멀리 산 중턱에서 눈먼 화살이 쉼없이 날아와 까딱하면 그 애먼 화살에 맞아 죽기 십상이었다.


그렇다 보니 사방에서 들이치는 반란군을 제대로 방어할 수가 없었다. 야포를 쏴야 하는 포군들은 아예 손을 놓고 하늘만 올려다봤고, 기관총을 쏴야 하는 사수들도 하늘을 올려다보느라 목표물을 제대로 겨냥하지 못했다. 소총수들도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하늘을 올려다보느라 제대로 사격을 가하지 못했다.


그렇게 토벌군 모두가 하나같이 하늘을 올려다봐야 하는 그런 어처구니없는 상황이 연출되고 있었는데, 하지만 어떻게 해결할 방법이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화살이 날아오는 산 중턱을 향해 아무리 총을 쏴 대도 어찌 된 영문인지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기관총을 비롯해 소총수들까지 총을 그리 쏴 댔는데도 불구하고 화살은 계속해서 날아왔고, 그런 걸로 보아 짐작컨대 튼튼한 엄폐물 뒤에서 쏘아 대는 것 같았다. 그러나 아쉽게도 산 중턱의 그 엄폐물을 깨뜨릴 수 있는 야포는 고각 발사가 불가능해 현 상황에선 있으나마나 한 무용지물에 불과했다.


"젠장맞을 놈, 도대체 어떤 놈인지 그 낯짝을 꼭 한번 보고 싶군. 아니, 간덩이가 얼마나 큰지 그것부터 확인해 보고 싶군. 그나저나 저놈 잡으러 간 군사들은 도대체 뭐하느라 이리 지체한단 말인가? 저놈은 여구히 저곳에서 저리 화살을 쏴 대고 있는데··· 에엥!"


"초토사 영감, 조금만 더 기다려 보시지요. 아마 지금쯤이면 저 산 중턱에 거의 도달할 때가 되었을 겁니다."


"쯧쯧, 날아오는 화살을 보면 분명 한 놈뿐인데··· 그 한 놈의 맹랑한 짓거리에 저리 대가리 처박고 있는 놈들이 수두룩하니··· 야, 이놈들아! 어서 대가리 쳐들고 공격하지 못하······."


쉬이이익!


팍!


초토사 홍계훈이 부하들을 향해 호통을 치다 느닷없이 공기 가르는 소리가 허공에서 들려오자 그 즉시 호통바람을 멈추고 고개부터 처박았다.


진혁이 무작위로 날린 화살은 이처럼 시도 때도 없이 토벌군 진형에 떨어져 내리며 토벌군들에게 위축감과 공포감을 동시에 전포하고 있었다. 그런 상황에 직면하다 보니 토벌군은 밀려드는 농민군에게 제대로 된 공격을 가할 수가 없었고, 결국 그에 대한 대가로 위태롭기 그지없는 사태까지 내몰리게 되었다. 다시 말해 농민군 파상공격을 막아내지 못해 주둔지가 함락되기 일보 직전까지 내몰린 것인데, 토벌군 입장에선 그야말로 위기일발의 비상사태가 아닐 수 없었다.


반면에 농민군을 그렇게 승리를 바로 목전에 두고 있었다. 하지만 전투 막바지에 발생한 뜻밖의 변고로 분루를 삼켜야만 했는데, 그럴 수밖에 없었다. 농민군의 구심점 역할을 하는 총대장 전봉준이 토벌군의 주둔지로 진격하는 도중 총에 맞았기 때문인데, 천만다행히 허벅지에 맞아 생명에는 지장이 없었다. 그러나 뜻밖의 그 변고 때문에 농민군은 망연자실하며 후퇴할 수밖에 없었고, 그로 인해 그날의 전투는 그렇게 끝이 나고 말았다. 농민군 입장에선 실로 애석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어쨋든 그 불우지변으로 인해 농민군은 다 잡은 고기를 놓아주고 후퇴할 수밖에 없었고, 결국 토벌군이 그리 지리멸렬할 때까지 몰아붙이느라 많은 사상자가 발생햇던 그날의 전투는 그렇게 다된 죽에 코 푼 격이 되고 말았다.


그 사실을 까맣게 모르고 있는 진혁은 여전히 토벌군 진형을 향해 화살을 쏘아 대기 바빴고, 그런 진혁을 잡기 위해 출동한 토벌군들도 역시 그 사실을 모른 채 분주하게 산을 오르고 있었다.


그러나 그 토벌군들에겐 반갑지 않은 복병이 기다리고 있었다. 바로 정의석이 이끄는 사십여 명의 총수들과 육십여 명의 궁수들이었는데, 그들은 현재 진혁의 명령에 의해 산 중턱 바로 아래에 매복하고 있는 중이었다.


"음, 설마 했는데··· 역시 타격장님 말대로 놈들이 몰려오는구만. 그나저나 우리 젊디젊은 타격장님은 어찌 그리 앞일을 귀신같이 내다볼 수 있을꼬. 자, 총수들은 화승에 불을 붙이고 궁수들도 준비를 하시요."


내막인즉슨 이랬다. 진혁은 귀동을 대동하고 감영을 나서기 전 총대장 전봉준의 재가를 받아 장성 황룡강 전투에서 함께 활약했던 정의석을 비롯해 총수 사십여 명과 그들을 뒤에서 엄호해 줄 궁수 육십여 명을 데리고 나와 자신이 위치한 산 중턱 바로 아래에 매복시켜 둔 상태였다.


그 사실을 알 리 없는 토벌군 삼십여 명은 진혁이 화살을 쏘아 대는 큰 바위를 향해 정신없이 몰려들고 있었다.


"정 노인, 놈들이 가까이 왔습니다."


"모두 차분히 기다리고 있다가 내 신호에 맞춰 공격하도록 하게."


잠시 후 산속 어느 곳에 일단의 토벌군들이 나타났는데, 그들은 이미 상대가 한 명이라는 걸 알고 있었기에 일말의 망설임도 없었다. 뿐만 아니라 대오도 갖추지 않은 상태에서 추호의 조심성도 없었다.


그런 그들의 출현을 조용히 지켜보던 정의석이 한 손을 올리고 있다가 어느 순간 갑자기 내렸다. 그러자 그 신호만 기다렸다는 듯이 곳곳에 숨어 있는 화승총 총구에서 불을 뿜었고, 그와 동시에 콩 볶아 대는 소리가 산속 깊숙히 요란하게 울려 퍼졌다.


탕! 탕! 탕! 탕······.


요란하게 울리는 총소리에 이어 비명 소리가 난무했다.


"으악!"


"아아악!"


그렇게 한바탕 총성과 비명이 난무하고 나자 이번엔 공기를 가르는 날카로운 파공음이 연이어 들려왔다.


쐐애액! 쐐애애액······.


"크윽!"


"커어억!"


화살이 날아오는 소리와 화살에 맞은 신음 소리가 들리고 이내 또다시 콩을 볶는 듯한 총성이 울려 퍼졌다. 궁수들이 토벌군을 향해 화살을 퍼 부을 때 그사이 총수들이 장전을 마치고 사격을 가한 것이다.


탕! 탕! 탕······.


"크아악!"


"으악!"


나무와 바위 뒤에 매복해 있던 농민군은 토벌군에게 반격할 틈을 주지 않았다. 거의 일방적인 공격을 가했는데, 먼저 총수가 화승총을 발사하고 나면 그다음엔 궁수가 그 자리를 메워 화살을 쏘아 댔다. 그리고 그사이 총수는 재빨리 화승총에 화약과 총알을 장전했는데, 그처럼 유기적이고 반복적으로 이루어지는 공격이라 토벌군들은 반격할 기회조차 잡지 못했고, 결국 그 짧은 시간에 모두 사살되는 불상사를 맞고 말았다.


"사격 중지! 궁수들도 그만 멈추시요!"


무방비로 몰려온 토벌군들이 썩은 고목이 되어 쓰러지고, 썩은 짚단이 되어 꼬꾸라지며 모두가 그렇게 맥없이 드러눕자 정의석이 황급히 나서 총수와 궁수들에게 사격 중지를 명령했다.


"자, 자! 그만하면 되었소! 모두 나와서 저놈들의 무기부터 거두어들이시요! 타격장님이 내려오면 그 즉시 철수해야 하니 시간이 별로 없소이다. 그러니 어서들 서두르시요!"


잠시 후 정의석이 농민군을 독촉해 가며 전리품을 노획하고 있을 때 진혁과 귀동도 전장에 나타났다. 이백여 발이 넘는 화살을 다 소모시킬 때쯤 바로 아래족에서 총성이 들려오자 그 즉시 사격을 멈추고 부랴부랴 내려와 본 것인데, 아니나 다를까 진혁의 예상대로였다.


"타, 타격장님! 어디 다친 데는 없습니까? 우리 귀동이도 어디 다친 데 없느냐?"


정의석이 제일 먼저 다가와 반색을 하며 반겼다. 그런데 유독 귀동을 더 살갑게 챙기는 눈치였다.


"예, 우리는 괜찮습니다. 정 어르신이나 다른 사람들은 괜찮습니까? 어디 다친 사람 없습니까?"


진혁도 정의석을 비롯해 농민군을 쭉 일별하며 그들의 상태부터 빠르게 훑어보았다. 자신을 배후에서 엄호했던 사람들이라 걱정이 되어 살펴본 것인데, 다행히 사상자는 눈에 띄지 않았다.


"예, 타격장님. 저희는 타격장님이 정해 준 자리에서 오로지 타격장님이 시킨 대로만 했기에 이렇게 단 한 사람도 다친 사람 없이 모두 무사합니다. 하긴 뭐, 땅 짚고 헤엄치는 것보다 더 쉬웠으니 말해 뭐하겠습니까?"


마치 자랑이라도 하듯 정의석이 흐뭇한 표정으로 진혁에게 보고를 했다.


"그, 그렇습니까? 정말 다행입니다. 저, 혹시 또 다른 관군들이 몰려올지 모르니 서둘러 이곳을 떠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자, 어서들 움직이십시요!"


"예, 타격장님!"


이렇게 해서 농민군과 관군 간의 오월 초사흗날 전투도 모두 막을 내리게 되었다. 하지만 전주 입성 후 이때까지 세 번의 소규모 전투와 두 번의 전면전에서 농민군은 오백여 명의 사상자가 발생했고, 총대장 전봉준도 왼쪽 허벅지에 총을 맞는 부상을 당하고 말았다.


특히 마지막 전투에서는 고군분투한 진혁의 활약으로 관군에게 커다란 타격을 주며 초토사 홍계훈이 있는 주둔지 안쪽까지 농민군이 밀고 들어갔으나, 애석하게도 전봉준이 총에 맞는 불우지변을 당하는 바람에 끝내 점령하지는 못했다. 그런 이유에서 더더욱 아쉬움이 남는 전투로 두고두고 회자되는 전투였는데, 물론 먼 훗날의 이야기였다.




* * *




두 차례의 전면전에서 큰 피해를 입은 농민군은 급격하게 사기가 떨어지며 그 여파로 전의까지 상실되고 말았다. 더욱이 농민군 모두가 하늘같이 믿고 있었던 총대장 전봉준이 총상까지 당하자 오로지 '새로운 세상을 열어 보자'는 열망만으로 모여든 농민군들 사이에선 슬슬 술렁거림이 일어나기 시작했고, 급기야 어느 순간부턴 농민군을 이탈하는 사람들까지 속출했다.


그런데 설상가상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청국에서 파병한 군대가 마침내 오월 초닷샛날 아산만에 상륙을 했다. 그러나 악재는 그게 전부가 아니었다. 가뜩이나 이래저래 어지러운 판국인데 우리 조선 땅에 군사 파병의 기회만 엿보고 있던 왜국마저 슬그머니 그 틈바구니에 끼어든 것인데, 그 내막인즉 청국과 동시 출병권을 규정한 천진(톈진)조약의 조항을 들먹이며 왜국에서도 청국과 똑같이 군사를 파병해 제물포에 곧 왜군이 상륙할 거라는 소식이 들려온 것이다. 안타까운 사실이지만 당시 약소국이었던 조선은 국제 조약에서조차 이렇게 강대국의 먹잇감이 된 상태였다.


그렇게 작금의 정세가 엉뚱하게 맞물려 돌아가다 보니 관군들을 물리친 후 곧장 한양으로 진격하려던 농민군의 계획은 틀어질 수밖에 없었고, 결국 농민군은 전주성에 틀어박혀 하루하루 허송세월만 보내야 했다.


반면에 초토사 홍계훈은 그 천금 같은 기회를 교묘히 이용해 임금의 윤음과 자신의 효유문을 전주성 안에 있는 농민군에게 연일 떠벌리며 선무 공작을 펼쳤다. 물론 좋게 포현해서 효유문이지 실상은 전봉준과 농민군 간의 이간질이나 다름없었다.


어쨌든 그 내용인즉슨 이랬다.


'너희들이 무슨 죄가 있겠느냐? 죄가 있다면 자신도 모르는 부지불식간에 전봉준의 꼬임에 빠진 게 죄다. 그러니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런 만큼 전봉준으 잡아 오는 자에게는 큰 상을 내리도록 하겠다. 아울러 지금이라도 당장 해산하면 지금까지의 죄는 모두 용서해 주고 두 번 다시 죄를 묻지 않겠다.'


이처럼 여러 문제가 동시 다발적으로 터지며 커다란 난관에 봉착하자 전봉준과 농민군도 어쩔 수 없이 한 발 물러나야만 했다. 그러다 결국 조정과 화해의 약속인 화약을 맺을 수밖에 없었는데, 그리해야만 하는 이유는 두 가지였다. 첫 번째는 농민군 내부의 동요 때문이었고, 두 번째는 청국과 왜국에 군사 주둔의 빌미를 제공하지 않기 위해서였다.


여하튼 그렇게 해서 관군과 마지막 전투를 치르고 나흘 후인 오월 초이렛날 농민군의 총대장 전봉준은 양호 초토사 홍계훈과 이른바 전주화약을 맺게 되었다. 물론 화약의 조건으로 전봉준이 폐정 개혁안을 제시했고, 더 이상 시간을 끌 수 없었던 홍계훈이 그 조건을 수용하기로 흔쾌히 약속했기 때문에 가능할 수 있었다.


당시 전봉준이 화약의 조건으로 내건 폐정 개혁안은 모두 스물일곱 개 조항이었는데, 대부분 농민군이 봉기한 후 여러 차례에 거쳐 공공연히 제시했던 개혁 요구 사항과 중복되는 내용들이었다. 그 내용은 대체적으로 탐관오리의 숙청과 봉건적 신분 제도 타파, 외국 상인의 횡포와 조선 특권 상인의 배척, 물가 등귀의 원인인 미곡 국외 유출 방지 등 당시 조선 사회에 만연해 있던 폐단들이었다.


결국 그렇게 전주화약이 성립되자 농민군 대부분은 각자의 고향으로 발길을 돌렸다. 물론 그 귀향 행렬에 진혁과 귀동도 포함되어 있었고, 농민군에 합류할 당시 함께했던 김종삼과 화전촌 사람들도 역시 포함되어 있었다.


하지만 총대장 전봉준과 스무 명 정도의 농민군 간부들은 해산하는 대신 순창과 남원 등지를 돌며 사태의 추이를 관망하고 있었다.


전라도에서 그렇게 변화가 진행되는 사이 한양 쪽에서도 변화가 있었다. 청국이 천진조약에 따라 조선 파병을 왜국에 통고했고, 왜국도 즉각 청국에 파병을 통고하는 동시에 자국 거류민 보호를 구실 삼아 오월 초엿샛날 사백사십 명의 왜군을 한양으로 들여보냈다. 뿐만 아니라 사흘 뒤인 오월 초아흐렛날도 왜군을 실은 왜국 배가 제물포에 추가로 도착했다.


그렇게 흑심을 품은 청국과 왜국이 조선 반도를 둘러싸고 미묘한 신경전을 벌이는 가운데 갑오년 여름이 본격적으로 시작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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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4 노령 연재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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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8 총장 : 앙천부지(仰天俯地。하늘을 쳐다보고 땅을 굽어본다) 19.09.26 120 1 11쪽
77 제 18장 : 면종복배(面從腹背。겉으로는 복종하는 체하며 속으로는 배반한다) (3) 19.09.25 40 0 31쪽
76 제 18장 : 면종복배(面從腹背。겉으로는 복종하는 체하며 속으로는 배반한다) (2) 19.09.24 35 0 26쪽
75 제 18장 : 면종복배(面從腹背。겉으로는 복종하는 체하며 속으로는 배반한다) (1) 19.09.23 36 1 32쪽
74 제 17장 : 어궤조산(魚潰鳥散。물고기 떼처럼 헤어지고 새 떼처럼 흩어진다) (4) 19.09.20 45 1 18쪽
73 제 17장 : 어궤조산(魚潰鳥散。물고기 떼처럼 헤어지고 새 떼처럼 흩어진다) (3) 19.09.19 38 1 24쪽
72 제 17장 : 어궤조산(魚潰鳥散。물고기 떼처럼 헤어지고 새 떼처럼 흩어진다) (2) 19.09.18 45 1 25쪽
71 제 17장 : 어궤조산(魚潰鳥散。물고기 떼처럼 헤어지고 새 떼처럼 흩어진다) (1) 19.09.17 57 1 23쪽
70 제 16장 : 안분지족(安分知足。제 분수를 지키며 만족할 줄 안다) (3) 19.09.13 53 2 20쪽
69 제 16장 : 안분지족(安分知足。제 분수를 지키며 만족할 줄 안다) (2) 19.09.12 45 1 24쪽
» 제 16장 : 안분지족(安分知足。제 분수를 지키며 만족할 줄 안다) (1) 19.09.11 51 1 32쪽
67 제 15장 : 만사무석(萬死無惜。만 번 죽어도 아까울 게 없다) (4) 19.09.10 55 1 16쪽
66 제 15장 : 만사무석(萬死無惜。만 번 죽어도 아까울 게 없다) (3) 19.09.09 46 1 23쪽
65 제 15장 : 만사무석(萬死無惜。만 번 죽어도 아까울 게 없다) (2) 19.09.05 49 2 21쪽
64 제 15장 : 만사무석(萬死無惜。만 번 죽어도 아까울 게 없다) (1) 19.09.04 51 2 24쪽
63 제 14장 : 혜분난비(蕙焚蘭悲。혜란이 불에 타니 난초가 슬퍼한다) (3) 19.09.03 45 1 29쪽
62 제 14장 : 혜분난비(蕙焚蘭悲。혜란이 불에 타니 난초가 슬퍼한다) (2) 19.09.02 43 2 22쪽
61 제 14장 : 혜분난비(蕙焚蘭悲。혜란이 불에 타니 난초가 슬퍼한다) (1) 19.08.30 72 2 32쪽
60 제 13장 : 억강부약(抑强扶弱。강한 자를 누르고 약한 자를 돕는다) (3) 19.08.29 74 1 30쪽
59 제 13장 : 억강부약(抑强扶弱。강한 자를 누르고 약한 자를 돕는다) (2) 19.08.28 62 1 29쪽
58 제 13장 : 억강부약(抑强扶弱。강한 자를 누르고 약한 자를 돕는다) (1) 19.08.27 62 2 27쪽
57 제 12장 : 불요불굴(不撓不屈。휘지도 않고 굽히지도 않는다) (4) 19.08.26 61 1 20쪽
56 제 12장 : 불요불굴(不撓不屈。휘지도 않고 굽히지도 않는다) (3) 19.08.23 53 1 15쪽
55 제 12장 : 불요불굴(不撓不屈。휘지도 않고 굽히지도 않는다) (2) 19.08.22 51 1 26쪽
54 제 12장 : 불요불굴(不撓不屈。휘지도 않고 굽히지도 않는다) (1) 19.08.21 54 2 25쪽
53 제 11장 : 호천통곡(呼天痛哭。하늘을 부르며 소리쳐 울다) (3) 19.08.20 68 2 26쪽
52 제 11장 : 호천통곡(呼天痛哭。하늘을 부르며 소리쳐 울다) (2) 19.08.19 65 2 28쪽
51 제 11장 : 호천통곡(呼天痛哭。하늘을 부르며 소리쳐 울다) (1) 19.08.16 71 2 25쪽
50 제 10장 : 공도동망(共倒同亡。넘어져도 같이 넘어지고 망해도 같이 망한다) (4) 19.08.15 59 2 18쪽
49 제 10장 : 공도동망(共倒同亡。넘어져도 같이 넘어지고 망해도 같이 망한다) (3) 19.08.14 72 2 2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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