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딸은 엘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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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약멘탈
작품등록일 :
2019.02.23 2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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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6.12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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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5.07 1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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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93

DUMMY

어린이 대공원에 오기 전,

점심때 뭘 먹으면 좋을까 싶어 미리 찾아봐 뒀던 고깃집.


가게 이름도 ‘고기’다.


공원에서 얼마 멀지도 않은 데다가, 숙성 고기를 사용한다고 해서 그 맛이 어떨지 궁금하기도 했다.


자랑하듯 보이는 걸어 놓은 고깃덩어리들이 창문을 통해 보이고, 창에는 숙성 고기는 예술품이니 어쩌니 하는 문구가 길게 적혀있다.


물론, 가게 안은 어린이날이라 그런지, 아니면 원래 그런지 몰라도 사람이 한가득한 데다가 고기 굽는 냄새도 솔솔 풍겨온다.


“저기, 애피라는 이름으로 예약했었는데요.”


점원이 살짝 당황한 얼굴이 됐다가, 날 보더니 안심한 듯한 얼굴이 되어 입을 열었다.


“아, 아... 네. 이쪽으로 오세요. 네 분 맞으시죠?”

“네.”


불판 앞에 앉는데, 어린이용 의자도 따로 준비되어있다.


“애피는 여기 앉으면 되겠다.”

“응!”


척척 올라와서 앉으니 나랑 보는 눈높이가 얼추 비슷해지려 한다.


메뉴는 이래저래 많은데, 대부분 술 종류가 차지하고 있고 정작 고기 메뉴는 돼지고기 세 종류와 소고기 여섯 가지로 되어있다. 거기다가 양념으로 된 메뉴는 전혀 취급하지 않는 듯하다.


이렇게 메뉴를 보는 동안, 애피는 발을 앞뒤로 동동 굴러가며 방긋방긋 웃었다. 물론 애피뿐만이 아니다. 말숙이도, 흑우도 표정이 매우 밝다.


특히, 말숙이는...


“뭐 드실 거예요? 한우죠? 네? 한우죠?”


잔뜩 흥분해선, 두 손을 얼굴 근처까지 올리면서 파이팅 포즈까지 취했다.


“아니, 우선... 숙성 고기부터 좀 먹어보자. 그런데 왜 그렇게 한우를 찾아?”

“전에 요튜브 보는데 외국인들이 한우를 그렇게 맛있게 먹더라고요. 막 제일 맛있는 고기라고 그러던데요? 저희, 먹어본 적 없잖아요.”


외국인이라니... 네가 할 말은 아닌 거 같은데.


“지난번에 드셨던 소갈비 찜이 한우였습니다만...”

“어? 어... 언제? 너무 오래돼서 기억도 안 나는데?”


이번엔 말숙이 말이 맞다. 하지만 당장 먹을 건 한우가 아니다.


주문은 숙성 특목살 4인분.


4인분이라 해도, 일반 고깃집에 비하면 그 양이 훨씬 적은 편이다.


그래서 그럴까.


주문하자마자, 바로 밑반찬과 함께 커다란 접시를 각자 자리에 턱턱 내주는데 이게 뭔가 물어보니 앞접시란다.


게다가 접시엔 초록색 덩어리 두 개와 소금이 있는데, 소금에 분홍색이 섞여 있다. 예전에 TV에서 본 기억이 있다. 히말라야 어쩌구 하는 분홍색 소금.


초록색은 뭔가 물어보기도 전에, 직원이 웃으면서 곧바로 설명을 해주는데 하난 생와사비 다른 유즈코쇼라 하는 유자 껍질을 이용해 만든 소스라면서 아이도 먹을 수 있을 거라고 했다.


그리고 같이 나온 밑반찬으로는 갈치속젓, 된장, 명이나물 무침, 백김치, 파절이, 오이피클, 무말랭이가 나왔는데 백김치가 나온 것도 특이하지만 명이나물은 그 접시부터가 남달랐다.


이게 뭔가... 싶은 수준의 반짝반짝 빛나는 철판 접시다.


뒤이어 고기 또한 깜짝 놀랐는데, 숙성이라고 해서 색이 좀 어두울 줄 알았는데 그렇게 어둡지도 않고 굉장히 두툼한 고기를 가져와 불판 위에 점원이 직접 올려줬다.


고기뿐만이 아니다.


버섯도 커다란 버섯을 하나 통째로 올리고, 절반으로 잘라놓은 마늘이 담긴 철제 접시 역시 불판 위에 올렸다.


“고기는 제가 구워드릴 테니까, 그냥 두시면 되고 필요한 밑반찬은 언제든지 말씀해주세요.”


점원이 잠시 자리를 뜨고,


“와... 좋은 곳이네요. 그냥 가만히 있다가 먹기만 하면 되나 봐요. 으믓! 으, 이 톡 쏘는 건 언제쯤 익숙해질까요...”

“으므믓! ...아하하! 안 익숙해질 거 같아~”


같이 주문한 사이다를 애피랑 말숙이가 거의 동시에 마시고선 눈을 꼭 감고 몸을 부르르 떨어댔다.


“글쎄, 그만큼 혀가 민감한 거 아니야? 난 아무렇지도 않은데.”

“아... 그럴 수도 있겠네요.”


이렇게 둘이서 사이다를 마시는 동안 흑우는 앞접시를 물끄러미 보다가, 젓가락으로 와사비를 콕. 찍어선 입에 가져다 댔다.


그러고선,


“윽!?”


곧바로 눈을 동그랗게 뜨고선, 한 손으로 입을 가렸다.


“왜 그래?”

“...매우 강렬합니다.”

“조금씩 고기랑 찍어 먹으면 괜찮을 거야.”

“어서 구워져라... 구워져라...”


말숙이가 고기를 빤히 바라보면서 주문 외우듯 말하고 있으니,


“아!?”


애피가 뭔가 생각난 듯한 얼굴로 외쳤다.


“응? 왜 그래?”

“살라맨더!”


아, 그러고 보니... 그런 방법이 있었나. 하지만, 그러다 고기가 다 타버리거나 하면... 아니, 고기도 고기지만 큰불이 나기라도 하면...


하고 생각하는 사이, 이미 살라맨더 네 마리가 불판 위에 나타나 춤을 추기 시작했다. 게다가, 내가 걱정했던 것과 달리, 불이 크게 일어나거나 하지도 않고 고기가 타지도 않았다.


“오... 익는다.”


오히려, 윗부분이 골고루 잘 익기 시작했다.


“어? 혹시 뒤집으셨어요?”


범퍼카 때도 그랬지만,

다른 사람들 눈엔 정령이 안 보이는 모양이다. 마치, 내가 처음 정령을 만나기 전 나 혼자만 정령의 빛을 보지 못했던 것처럼.


“아니요. 그냥 냅뒀는데요.”

“아... 뭐지? 다른 때보다 빨리 익네... 잠시만요.”


점원이 아리송한 얼굴로 고기와 버섯을 가위로 두툼하게 잘라 이리저리 집게로 휘휘 저어주더니, 잘 익었다 싶은 부위를 가장자리로 밀어내줬다.


“안에 있는 건 좀 있다가 드시면 되고, 나머지는 지금 바로 드셔도 돼요. 맛있게 드세요.”

“고맙습니다!”


애피가 활짝 웃으며 인사하니, 점원도 방긋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아빠~ 고기 뭐랑 먹어?”

“음... 한 번씩 다 찍어 먹어볼까?”

“응! 알았어~ 쌈은...?”

“여기는 쌈 싸 먹는 게 아닌가 봐.”

“그렇구나~”


애피가 고개를 끄덕이고선 조심스럽게 고기를 한 점 집어 빤히 바라본다.


“고기 크다~”


그 사이, 말숙이는 고기에 버섯과 마늘을 올리고, 그 위에 와사비를 젓가락으로 살짝 찍어 바르고선 명이나물을 덮어 한입 크게 벌려 입안에 넣어 우물우물 씹더니, 만족스러운 얼굴을 했다.


“으우으음~!”

“말숙이 언니~ 맛있어?”

“으웅! 응!”


말숙이가 고개를 세차게 흔들면서 손을 휘저어 애피에게 빨리 먹어보란 듯 움직였다. 그러자, 애피도 고기를 호오오~ 하고 불고선, 소금에 살짝 찍어서 입에 물었다.


고기가 커서 한입에 다 들어가진 않았지만, 꽤 부드러운 모양인지 금방금방 입안으로 들어간다.


그러면 어디 나도...


나랑 흑우가 거의 동시에, 애피를 보다가 고기를 같이 한 점 들어올린 채로 눈이 마주쳤다.


그래서 웃으면서 고기를 살짝 들어올렸더니, 흑우 역시 가벼운 미소를 자연스럽게 지어 보이며 살짝 들어올려 보이고선, 소금에 살포시 찍어서 입안에 넣었다.


놀랍다.


돼지고기가 이렇게 부드러울 수 있다니... 부드러운 것뿐만 아니라, 큼직하게 잘라서 고기 씹는 맛이 제대로다.


그뿐만이 아니다.


소금 역시 일반 소금과 달리 아주 작은 알알이 씹히는 느낌이 고스란히 드는 데다가, 파채나 백김치, 피클 같은 밑반찬...


그 어떤 걸 고기에 같이 곁들여 먹어도 정말 잘 어울리는 게 여태 먹어봤던 다른 고깃집들보다 더 월등히 맛이 좋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고기가 순식간에 사라지고...


“여기 한우...”


말숙이가 애타게 원하던 한우를 주문하기로 했다.


가격을 보는데 새우살이라 적힌 메뉴가 제일 비싸다. 게다가 일일 한정이라 옆에 적혀있다. 보나 마나, 새우처럼 생겼다고 해서 새우살이겠지 싶다.


“새우살로 4인분 주세요.”


그렇게 나온 새우살은 조금 전 잠깐 와서 굽고 왔다 갔다 하던 돼지고기와 달리 아예 한자리에 점원이 멈춰 서서 계속 이리저리 살펴보며 구워줬다.


“이상하네...”

“왜 그러세요?”

“다른 자리보다 여기가 더 빨리 익는 거 같아서요. 나온 지 얼마 안 돼서 바로 익네요. 이런 적이 없었는데...”


말하면서 곧바로 잘라서 바깥으로 빠르게 옮겼다.


“좀 빠른 거 같지만, 이 정도면 드셔도 될 거예요. 맛있게 드세요.”


붉은 빛깔이 돈다.


“아빠, 이거 아직 빨개...”

“괜찮아. 소고기는 생으로 먹기도 하거든.”


근데 이거... 숙성인가? 모르겠다. 먹으면 안 될 걸 팔진 않겠지...


“정말?”

“응. 그럼 아빠가 먼저 먹어볼까?”


애피가 날 바라보다가 결국 고개를 살짝 끄덕이면서 배시시 웃으며 몸을 살짝 꼬았다.


하지만 나보다도 빠르게 말숙이가 먼저 아무런 거리낌 없이 곧장 소금을 찍어서 덥썩 입안에 넣더니, 몇 번 씹지도 않고 눈을 엄청 크게 떴다.


“와... 이거, 빨리 드셔보세요. 빨리요!”


허겁지겁 먹는 게 아니라, 먹어보길 권한다니... 별일이다. 싶어 입에 넣고 씹었다.


몇 번 씹으니 살이 탄력 있게 통통 튀면서 육즙을 뿜어내 고기의 단맛이 줄줄 흘러나온다. 와, 이런 맛이 다 있나...


“애피야, 어서 먹자. 정말 맛있어.”


애피가 고개를 끄덕이고선 천천히 고개를 입안에 넣어 몇 번 씹어보더니, 귀가 쫑긋 위로 올라가선 내려올 생각을 안 하고 입은 쉬지 않고 계속 움직인다.


그러다 마침내, 꿀꺽.


“맛있지?”

“응! 엄청... 엄청 맛있어~ 고기 빨간데도, 맛있어...”

“아, 같은 한우여도 이렇게 맛이 다를 수 있군요. 놀랍습니다...”

“살라맨더도 먹어봐~ 맛있어!”


애피가 고기 한 점을 살라맨더에게 건넸다. 하지만 살라맨더는 전혀 관심이 없는 듯 고개를 도리도리 저으면서 몸도 같이 흔들었다.


“애피야, 정령은 고기 안 먹어~ 그러니까 그건 언니가 먹을 게.”

“응? 응~ 언니, 아~”

“어... 뭐라도 찍어서 주면 안 될까?”

“응! 알았어~”


애피가 고개를 끄덕이고선, 앞접시를 한참 내려다보더니, 생와사비를 찍었다. 그러고선 다시...


툭.


들어올리려다 그대로 놓쳤다.


“아!? 으으음...”


깜짝 놀란 애피는 잠깐 앞접시를 바라보다가, 고개를 한번 끄덕이고선 다시 고기를 집어올렸다. 아니나 다를까, 고기엔 생와사비가 꽤 많이 묻어버렸다.


“언니, 아~”

“그거 좀... 초록색이 많지 않아?”

“응? 응... 아까 떨어트렸어... 그래도 말숙이 언니, 잘 먹으니까...”

“으, 으응. 그렇긴 해도 그건 좀...”

“왜. 혹시 모르잖아. 더 맛있을지도.”

“그러면 직접 드셔보시는 게 어때요?”


말숙이가 웃으면서 나한테 떠넘긴다.


“그러지 뭐.”

“네?”

“애피야, 아빠가 먹어줄게. 아~”

“괜찮아?”

“응. 괜찮아.”


애피가 조심스럽게 내게 고기를 건네고 나는 그대로 받아먹었다.


알싸한 맛이 먼저 입안을 가득 채우고, 그리고 살짝 쏜다. 크흐으음... 하지만 그것도 오래가지 않고 고기의 단맛과 더해져 깔끔하게 씻어내렸다.


“맛있네.”

“정말!?”

“응. 그래도 애피는 좀 매울 수 있으니까 소금이랑 먹자. 알았지?”

“응~ 알았어.”


그리고 이 모습을 지켜본 말숙이가 내 눈치를 살펴보더니, 냉큼 고기를 한 점 집어서 와사비를 듬뿍 찍어 입에 넣었다.


“읍!?”


놀란 얼굴과 원망의 눈빛. 하지만 그것도 잠시, 도로 입가에 미소가 번지면서 행복한 얼굴로 변했다.


“어때?”

“어... 처음만 빼면 이것도 나쁘지 않은 거 같아요. 오히려 그 처음 때문에 더 맛있게 느껴지는 거 같기도 하고...”


...그럴 리가. 뭐든 적당한 게 좋은 거다.


.

.

.


어마어마한 가격.

그래도 음식의 품질이나 서비스만큼은 수긍이 가는 그런 가격이었다.


“맛있게 먹었다. 그치?”

“응! 많이 빵빵인데, 기분 좋은 빵빵이야.”

“그럼 이제 배도 빵빵해졌으니까 다시 놀러 가자.”

“응!”


그렇게 다시 어린이 대공원의 놀이동산. 사람이 무진장 많이 몰렸다.


“와... 엄청 많네.”

“정말이요. 아까랑 비교도 안 되게 많네요. 줄도 엄청 길고...”

“한번 타는 데 시간도 오래 걸릴 것 같습니다.”

“어쩌지...”


걱정스러운 마음에 애피를 바라봤지만, 나와 달리 애피는 이런 상황에서도 밝게 웃었다.


“괜찮아! 애피, 기다리면서 구경하는 거도 좋아~ 재밌어~”


작가의말

멍청한 실수를 해서 연재가 늦어졌습니다...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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