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딸은 엘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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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약멘탈
작품등록일 :
2019.02.23 21:16
최근연재일 :
2019.06.12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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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5.12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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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8

DUMMY

손을 다 딴 이후에도,

엄지와 검지 사이를 연결하는 부분을 꾹꾹 눌러줬다.


“악! 아아악! 아파요!”

“많이 체해서 그래. 살살 했어.”

“안 체해도 이건 아플 거 같은데요! 으! 아악!”

“나한테 해봐. 난 안 아프니까.”


말숙이에게 손을 펼쳐 보였더니, 이를 꽉 악물고 있는 힘껏 내 손을 눌렀다.


“으, 으윽...”

“아프죠!?”

“그렇게 세게 하는데 누가 안 아프겠냐!”

“어쨌든 아픈 거 맞잖아요!”

“그래서 속은 좀 어때?”

“손이 아파서 그런가... 조금 괜찮아진 거 같아요.”


입술 색이 살짝 핏기가 돌아오긴 했지만, 여전히 창백하긴 마찬가지다. 그래도 이렇게 금방 회복되기 시작한 걸 보면, 얼마 지나지 않아선 금방 멀쩡해질 것 같다.


“그거 봐. 효과 있잖아.”

“...아주 조금만이요.”


고집은.


“어쨌든 효과는 있으니까 계속해주면 더 좋아지겠네. 이젠 혼자서 해봐.”


자리에서 일어났다.


“가시게요?”

“왜?”

“아니, 그냥요...”

“내가 여기 있어 봐야 더 해줄 거도 없잖아. 쉬고 있어.”

“네... 저기...”

“왜 또.”

“신경 써주셔서 고마워요.”


잠시 말문이 막혔다.


뭐라고 해주는 게 좋을까... 머릿속에서 무수히 많은 말들이 떠오르고 맴돌았지만, 좀처럼 적당한 말을 고르지 못했다.


“뭐... 고맙긴.”


말은 이렇게 해도 입가엔 절로 웃음이 나와서인지, 말숙이도 살짝 웃어 보였다.


방을 나와 거실로 나와 소파에 앉았다. 애피가 집에 없으니 아무것도 할 게 없는 것처럼 느껴진다. 폰을 봐도 대화는 이미 며칠 전에 멈춰있어 정적 상태다.


다들 바쁘게 지내고 있는 거겠지...


폰을 다시 집어넣고 멍하니 앉아서 뭘 하고 있으면 좋을지 생각해보다가 결국, 그대로 드러누웠다. 차라리 이럴 거면 방에 들어가서 TV나 보는 게 나을까... 싶다가도, 금세 귀찮게 느껴졌다.


으음...


음...


.

.

.


“아빠~!”

“으... 애피 왔구나?”


눈을 떠보니 애피가 생글생글 웃고 있다.


“응! 아빠 왜 여기서 자고 있어?”

“기다리다가 잠들었나 봐. 잘 갔다 왔어?”


애피가 고개를 세차게 끄덕이고선, 엉금엉금 소파에 무릎을 대고 올라오더니, 내 몸 위에 찰싹 달라붙었다.


“맛있는 거 많이 사 왔어?”

“응! 고기랑 야채랑 또... 우유랑 사이다! 계란도 사 왔어! 그리고 우유도 초코우유랑 커피우유 사 왔어~”


응? 초코우유야 그렇다 치고...


“커피우유는 왜?”

“아빠가 커피우유 좋다고 했으니까, 초코우유는 애피 꺼. 커피우유는 아빠 꺼!”

“그럼 말숙이랑 흑우는?”

“으으음~ 딸기우유!”

“여러 가지로 사 왔구나?”

“응!”

“과자 같은 건?”

“샀어~ 전에 먹은 바나나슛이랑 초코렛!”

“그렇게 두 개만 샀어?”

“아니! 많이 샀어~ 이만큼 많이 샀어~”


음... 우유도 종류별로 다양하게 사 왔으니, 과자도 여러 가지로 사 왔겠지...


“손발은 씻었고?”

“아니! 이제 씻어야 해~”

“그럼 어서 씻고 오자.”


옆으로 다리를 먼저 조심스럽게 내리고선 그대로 애피를 들어안으면서 몸을 일으켰다.


“참, 흑우는?”

“흑우 언니는 사 온 거 정리한다고 했어. 애피, 도와주려고 했는데 언니가 괜찮으니까 아빠 깨워달라고 했어.”

“그랬구나. 말숙이는?”

“말숙이 언니도 자고 있었어~”

“안 깨웠나 보네?”

“응~”


애피의 말에 대답하면서 안아 든 채로 욕실에 갔다.


간단하게 세수도 하고, 손도 씻기고, 발도 씻겨주면서...


“간질간질~”

“아하하~! 안돼~ 간지러워~”


실은 비누칠을 하는 건데 애피가 하도 간지러워하다 보니, 가끔은 이렇게 장난치듯 말해주면 애피도 꺄르르 웃으면서 참 좋아한다.


“됐다~”

“응!”


물기를 다 닦아주자마자, 애피가 내가 와락 안겨 와선 볼에 뽀뽀를 쪽. 하고 나도 애피의 말랑말랑한 볼에 입을 맞춰준 뒤, 번쩍 들어올려 밖으로 나왔다.


“아빠, 어디 가?”

“응? 주방에 가서 흑우한테 인사하려고. 그리고 애피가 아빠 마시라고 사 온 커피 우유도 마실 거야.”

“응! 그러면 애피도 초코우유 먹을래~”

“좋은 생각인데?”

“응!”


주방에 가보니, 커다란 장바구니가 여럿 놓여있고 흑우는 열심히 냉장고에 사 온 물건들을 넣어 정리하고 있었다.


“아, 일어나셨습니까?”

“응. 이번엔 뭘 엄청 많이 사 왔네?”


특히 커다란 뼈가 눈에 띈다. 살점이 좀 붙어있는 데다가 길쭉한 걸 봐선, 꼬리뼈인 듯한데... 꼬리곰탕이라도 할 셈인가?


“이번에 애피 님께서 드시고 싶은 게 많으시다 해서 평소보다 조금 더 양이 많습니다.”

“과자나 우유 같은 거?”

“뼈!”

“응?”


흑우가 귀여워죽겠다는 듯한 미소를 간신히 유지하면서 입을 열었다.


“뼈를 뭐에 쓰는 건지 제게 물어보셔서... 직접 해서 보여드리기로 했습니다.”

“아... 그런데 오래 걸리지 않아? 못해도 하루는 필요할 거 같은데... 엄청 고생하겠네.”

“애피 님을 위해서라면 그 정도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미소... 인 것 같다. 입이 좀 헤벌쭉하긴 하지만, 눈을 감고 있어서 그렇게 부자연스럽진 않다.


“힘든 거야?”

“음... 응. 많이 힘들걸?”


아무래도 제대로 된 설명 없이 정말 무작정 보여주겠다고 사 온 모양인지, 애피가 헉. 하고 놀란다.


“힘든 거 안 돼~ 흑우 언니, 이거 하지 말자. 응?”

“안됩니다. 이미 사 왔으니, 맛있게 드시는 것만이 제 수고에 감사하실 수 있는 일. 그러니, 애피 님께서는 완성된 음식을 드실 준비만 해주시면 됩니다.”

“응?”


애피는 좀처럼 이해하지 못하고, 멍하니 흑우를 바라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해하는데 시간이 좀 걸린 듯하다.


그리고 항상 이렇게 장 봐온 것들을 혼자 정리하는 걸 볼 때면 뭔가 도와주고 싶은데 그때마다 자신이 물건을 둬야 어디에 뒀는지 쉽게 찾는다면서, 괜찮다고 해서 뭘 도와줄 수가 없다.


그러니 이 상황에선...


보자, 우유가...


“뭐 찾으시는 거라도 있으십니까?”

“아, 애피가 초코우유랑 커피우유 사 왔다고 해서.”

“네. 그거라면 저쪽 장바구니에 있을 겁니다.”


아직 정리가 안 된 장바구니 하나를 가리켰다. 전에도 그랬지만, 이렇게 물어볼 때마다 척척 알려주는 게 참 신기하다...


“흑우도 뭐 마시고 나서 해.”

“...그렇다면 저도 초코우유로 하겠습니다.”

“아, 응. 그런데...”


도대체 몇 개를 사 온 거야.


하나, 둘, 셋... 열여덟 개. 초코우유만 열여덟 개다. 게다가 유통기한은... 어, 오늘이 며칠이더라. 보자... 다음 주까지.


딸기우유도 마찬가지로 열여덟 개. 그에 비해 커피우유는 여섯 개. 대충 보아하니, 커피 우유만 내 몫으로 산 거 같다.


그래도 전부 제일 작은 거라, 다 못 먹고 버리는 일은 없을 거 같다.


“여기, 애피 거랑 흑우 거. 그리고 이건 내 거.”


우유를 받은 애피는 이리저리 살펴보고선 위아래로 열심히 흔든 뒤, 입구를 열기 시작했다. 어디가 앞인지 뒤인지 확인한 거다.


처음 애피가 초코우유를 마셨을 때도 그랬다. 누가 가르쳐 준 적도 없는데, 살펴보고 글씨를 읽더니 곧잘 열고 마셨었다.


“잘 먹겠습니다~”


꼴깍. 꼴깍. 애피의 목에서 우유 넘어가는 소리가 들려오고 동시에 귀도 쫑긋쫑긋 움직인다.


흑우 역시, 우유를 가볍게 흔들어 마시는데 한꺼번에 다 마시지 않고 아주 조금씩 입안에 흘려 넣으면서 마신다. 말숙이 같았으면 이미 한꺼번에 벌컥벌컥 다 마셨을 거다.


“후우... 역시 달고 맛있습니다.”

“응! 초코우유 너무 좋아! 아빠는? 커피우유 맛있어?”

“엄청 맛있어. 마셔볼래?”


물론, 줄 생각은 없다. 그냥 어떻게 나오는지 보고 싶을 뿐이다.


“응? 전에 아빠가 애피, 그거 먹으면 잠 못 잔다고 했는데?”

“맞아. 잘 기억하고 있네?”

“응~ 중요한 거야! 실수로 커피우유 먹으면 안 되니까. 꼭 기억해야 해.”


이러니, 머리를 쓰다듬어주지 않을 수가 없다.


애피는 내 손길을 받으면서 방긋 웃는 얼굴로 초코우유를 마저 마셨다. 그리고 애피가 다 마셨을 때쯤, 흑우도 거의 동시에 다 마시고선 가만히 날 바라본다.


“내가 마시는 거 기다리는 거야?”

“그렇습니다.”

“그러지 말고, 손에 든 거 나한테 줘. 내가 씻어서 버릴 게. 이런 거라도 내가 해줘야지.”


흑우는 잠시 생각하는 듯, 눈을 옆으로 돌렸다가. 옅은 미소를 띤 채로 다시 나와 눈을 맞추며 내게 손에 든 우유 팩을 건네줬다.


“감사합니다...”

“감사하긴, 오히려 내가 뭘 더 도와줘야 하는 건데. 이런 거 밖에 못 해주니 미안하지.”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주인님을 돕는 일은 곧 제 기쁨이며...”

“또 그런다.”

“...마찬가지이십니다.”


나랑 흑우가 서로 웃으면서 말하고 나니, 애피가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우리 둘을 번갈아 본다.


“아빠랑 흑우 언니랑 이상해~”

“왜?”

“맨날 고맙다고 하고 미안하다고 하고 그러면 또 그렇게 말하지 말라고 그래. 이상해.”

“그렇지? 아빠도 이상하다고 생각하긴 해. 애피도 다 마셨으면 아빠한테 줘.”


도리도리.


“으으응~ 애피가 할래!”

“그럼 우리 둘이 같이하면 되겠다.”

“응!”

“저는 정리를 마저 하겠습니다.”


흑우에게 고개를 끄덕여 대답하고선, 애피와 싱크대 앞으로 가서 우유 팩 안을 물로 깨끗이 씻어서 물기를 털어낸 다음, 납작하게 접었다.


“다 했어~”


옆에서 같이 남은 물기를 탈탈 털고 난 애피가 발판에서 내려와 자신이 씻은 우유 팩을 잘 접어서 소중한 물건이라도 되는 것처럼 두 손으로 꼬옥 쥐고선 분리수거 상자까지 가져갔다.


“됐다~ 이제 말숙이 깨우러 가야겠다.”

“응. 언니 괜찮아졌으면 좋겠다.”

“괜찮을 거야.”


사용인 실 문에 노크해도 대답이 없다. 여전히 자고 있는 모양이다.


안으로 들어가 보니, 침대에서 잠옷 차림으로 이불을 다 차 던지고선 자고 있다. 얼굴색을 보아하니 상태는 꽤 괜찮아진 것 같다.


“애피가 깨워볼까?”


끄덕끄덕.


“말숙이 언니~”


애피가 말숙이 팔을 두 손으로 흔들었다. 그러자, 말숙이가 끙끙 앓는 소리를 내다가 천천히 눈을 뜨고선 이쪽을 바라본다.


“으으으흥... 애피 왔구나?”

“응. 언니, 괜찮아?”

“꺼어억...”


애피가 말숙이 얼굴에 가까이 다가가 말하는데, 느닷없이 트림했다.


“아구!?”


깜짝 놀란 애피가 고개를 도리도리 저으며 뒤로 물러나고, 그런 애피가 넘어지지 않게끔 몸을 붙잡아줬다.


“아, 미안해.”

“응... 놀랐어...”

“뭐 좀 먹을 수 있겠어?”

“어... 잘 모르겠어요. 속은 좀 괜찮아진 거 같은데... 또 그럴 수도 있잖아요.”

“그래, 뭐... 체한 게 바로 좋아지진 않으니까. 음... 혹시 모르니까 소화제라도 마셔둘래?”

“아니요. 괜찮아요.”


말숙이가 웃으면서 손사래 쳤다.


“오늘 저녁은 그냥 안 먹을게요.”

“으음... 괜찮겠어?”

“한 끼 안 먹는다고 안 죽잖아요.”

“그래... 뭐, 그래도 배고파지면 말해. 죽이라도 준비해 줄 테니까.”

“알았어요. 고마워요.”

“아, 그리고 애피랑 흑우가 초코우유랑 딸기우유 잔뜩 사놨으니까 마시는 거 잊지 말고.”

“그럴게요.”


말숙이가 고개를 끄덕이고선 자리에서 빠르게 일어났다.


“언니~”


그리고 애피가 막 일어난 말숙이 다리를 와락 붙잡고 안았다. 그러자, 말숙이가 심각한 얼굴로 애피를 내려다보며 입을 열었다.


“어, 언니는... 화장실 좀... 가고 싶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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