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필여고생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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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자드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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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3.01 0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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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4.04 1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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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개의 머리(3)

DUMMY

그 날 밤.

모두가 한 곳에 똘똘 뭉쳤다.

“불침번은 1시간 20분씩 돌아가면서 하고 오전 7시 20분에 일어나는 거야. 알겠지?”

사람 숫자에 맞춰 나름 합리적으로 조정한 시간이었다. 불침번을 서서 제대로 대응만 한다면 충분히 잘 수가 있었다. 겁에 질려 잠을 덜 잘 필요는 없었다.

“그럼 처음 순서는 내가 설게.”

나는 솔선수범을 내보였다.

“응, 부탁할게.”

“수고해.”

불침번이 있다는 사실만으로 다들 안심한 얼굴로 잠이 들었다.

밝기를 조정한 흐릿한 핸드폰 조명 아래, 나는 어둠 속에서 불침번 역할에 충실히 임했다. 어차피 여기 있는 녀석들은 크러셔와 싸우기 위한 훈련을 받고 있으므로 대항 수단이 없는 건 아니었다.

하다못해 주먹에 마나를 두르고 휘두르면 싸울 수 있었다.

현재 제이스는 약간 무리를 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상부에서는 좀 더 침착하게 대응하라고 했지만 조바심이 난 바람에 멋대로 일을 진행시켜버린 거였다.

뭐, 이걸로 끝은 아니었다.

제이스는 이번 일이 실패하고 나서도 완전히 물러나지 않는다. 그의 바로 위에 있는 상관이 제법 자비롭게 기회를 더 주기 때문이었다.

“이제 뭐든 정해진 대로 된다는 법은 없어.”

나는 신경을 곤두세우고 크러셔가 나타나나 안 나타나나 집중하였다.

-툭.

머리 위로 무언가가 떨어져서 손을 가져다대니 작은 쪽지였다.

[보일러실로 올 것.]

딱 봐도 제이스가 쓴 쪽지였다. 그런데 이런 식으로 쪽지를? 무슨 생각이지?

순식간에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쪽지가 말한 대로 보일러실로 가야 하는 걸까? 이대로 다른 녀석들을 깨워서 몰려갈까?

아냐, 아니다.

지금 놈은 우리 상황을 손바닥 보듯 훤히 살피고 있다. 우리가 뭉쳐서 섣불리 움직이지 못하고 있을 뿐이지. 게다가 시간까지 녀석에게 불리하니 가면 갈수록 좋지 않다. 그 타개책으로 나를 부른 건가?

너무 뻔한 술책이군.

나는 가지 않는 길을 택했다. 굳이 반응하여 새로운 기회를 줄 수는 없었으니까.

-툭.

[오지 않으면 이곳을 폭파시켜 무너트리겠다.]

내 생각을 읽은 것인지 엄청난 협박을 해왔다.

“이, 이 자식이···”

미친 건가? 지금 하는 짓거리도 충분히 미친 짓이긴 한데 갈 때까지 가보자 이거냐.

입술을 꾹 깨물었지만 달리 방법이 안 떠올랐다. 이게 진짜면 그대로 죽음이니 시키는 대로 할 수밖에 없었고 거짓이라 해도 이놈이 충분히 미친 짓할 자신이 있다고 어필한 거라서 버티기를 하기가 애매해졌다.

“젠장.”

결국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슬쩍 뒤를 돌아보니 다른 녀석들은 잘도 곯아떨어져 있다. 정신적으로 피곤한 일들이 닥쳐왔으니 지친 탓이겠지.

조용히 자릴 빠져나오고서 보일러실로 이동했다.

“자, 시키는 대로 왔다.”

보일러실은 조용했다. 얼핏 보기엔 아무도 없는 듯 했으나··· 어둠 속에서 불온한 기운이 감지되었다.

-그르릉.

새빨간 눈빛이 한 쌍 솟아났다.

“나왔냐.”

나는 가지고 온 막대기에 마나를 불어넣었다.

-컹컹!

가차 없이 달려들었지만 이미 대비를 하고 있던 터라 몸을 틀어 공격을 피하고 막대기를 내려쳤다.

“깽!”

“이 놈!”

기세를 타서 손놀림에 박차를 가했고 곧 곤죽을 만들었다.

하지만.

“크르르, 크르릉!”

거의 죽음에 이르러 바들거리던 크러셔가 금방 몸을 회복하여 일어나는 게 아닌가?

“젠장.”

또다. 죽여도 다시 살아난다. 이게 어찌된 일이지?

극도의 긴장 상태로 근육이 움찔거렸다. 어떻게든 생각을 정리해 보려 했지만 좀처럼 되지가 않았다. 아마도 명확하게 내 기억 속에 남은 게 아니기 때문이겠지. 저런 형태의 것은 내가 알지 못해.

“컹!”

“흡!”

정신을 차리고 다시 한 번 반격을 가해 쓰러트렸다.

“흥, 이대로는 끝나지 않겠군.”

천장에서 탁한 목소리가 들렸다. 제이스로 짐작이 되었지만 정체를 숨기려는 듯 제대로 된 목소리는 아니었다.

“나와라.”

두 개의 음영이 새로이 떠올랐다.

“뭐?”

놀랍게도 케르베로스 타입 크러셔 두 마리가 더 나타났다.

-크르르.

-크르릉.

-크앙.

세 마리가 동시에 나를 포위하며 위협적인 소릴 냈다.

“알겠다.”

나는 의미심장한 목소릴 흘리며 웃었다.

“진(眞) 케르베로스로구나.”

나중의 나중에 가서야 등장하는 놈이라 기억이 가물가물했다.

제기랄.

그런 놈이 왜 여기서 나와? 제이스 이 미친놈이 진짜 작정하긴 했구나!

“이걸 알고 있다니, 역시 너는 보통이 아니구나.”

아차. 괜히 자극해버린 건가.

“그래, 이 녀석은 진 케르베로스다. 셋이자 하나. 하나이자 셋. 세 개의 머리가 곧 하나이니 셋이 아니면 죽지 않는다. 세 마리를 동시에 한 번에 제거하지 않으면 죽지 않는 매우 골치 아픈 녀석이지.”

제이스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채 말하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내 통제 아래 있다. 나의 명령 한 마디면 이 녀석들을 너를 갈기갈기 물어뜯어 버릴 거다.”

“굳이 이러는 이유가 뭐야!”

모르진 않았으나 굳이 나불거릴 필요가 없어서 당황한 척 연기하였다.

“나는 너도 위험 요소라고 판단했다. 유세준만으로도 벅찬데 너까지 있으니 그에 걸맞는 준비를 하는 게 맞겠지.”

“너는 누구냐!”

“나? 알 필요는 없지. 해치워라.”

이런 씨. 이 자식이 진짜 나를 죽이려고 마음먹었단 말이야?

신호를 받은 괴물들이 나에게 달려들었다.

“크윽!”

어떻게든 저항해 보았으나 세 마리나 되니 역부족이었다.


[도움이 필요해?]


고통에 찬 신음을 내뱉는 내 시야에 유유히 떠다니는 책이 보였다.

닥쳐.

마음속으로 외쳤다. 또 포인트를 뜯어내려고? 나는, 나는 반드시 남자로 돌아갈 거라고.

“으, 으윽.”

뜸을 들이는 사이 공격은 계속 됐고 옷이 군데군데 찢어지며 피가 흐를 정도의 부상을 입었다.

“한 가지 묻지.”

도중에 공격을 중지시킨 제이스가 내게 말했다.

“살고 싶나?”

“······.”

“눈빛이 사납기 짝이 없지만 두려움이 보이는군.”

빌어먹을 자식. 내 속을 꿰뚫어 봤네.

“살고 싶다면 한 가지 제안이 있다.”

“······.”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하기도 싫었고 온몸이 상처로 가득해서 그 고통을 참는 것만도 힘에 부치는 상황이었다.

“결혼할 생각 없나?”

“뭐, 뭐? 겨, 겨겨, 결혼?”

난데없는 단어에 큰 소리가 나왔다.

“가, 가가가, 갑자기 무슨 소리야?”

“흥, 그냥 해본 소리다. 귀찮게 하는 것들 때문이지. 어차피 수락할 거라고 생각하지도 않았으니까. 자, 죽을 시간이다.”

-크르릉.

크러셔들이 태세를 전환했다.

“읏.”

이제 정말로 망설일 시간은 없다. 포인트를 지불해서라도 이 위기를 벗어나야 했다.

···라고 생각한 그때, 누군가가 뛰어들었다.

“지슬! 도와주러 왔다!!”

구르듯이 나타난 그는 이 스토리의 주인공 유세준이었다.

“잘 됐군. 너희 둘 다 여기서 처리해주마.”

“뭐, 뭐야? 누구냐?”

“그건 알 거 없다. 너희는 그저 오늘 여기서 죽을 뿐이다.”

나는 유세준의 어깨를 두드렸다.

“일단 저 괴물들을 처리해야 해. 으윽.”

“괜찮아?”

“괘, 괜찮··· 아으.”

죽을 정도는 아니었지만 몸을 움직이긴 곤란한 정도의 부상이었다. 전투불능 상태로 이대로는 짐으로 작용할게 뻔했다.

“오밤중에 갑자기 어딜 가나 했는데 이런 상처가···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말하자면 길어.”

“혹시 움직일 수 있어? 괜찮다면 나머지 애들을 깨웠으면 하는데.”

“미안하지만 일어설 힘도 없어.”

“그래? 하지만 걱정하지 마. 내가 다 처리해줄 테니까.”

싱긋 웃으면서 엄지를 내보이는데, 보통 여자애라면 두근거렸을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담담한 기분으로 끄덕였다.

“자신만만하군. 아무리 네가 대단한 유세준이라 해도 이 녀석들을 이길 수 있을까?”

자신에 찬 제이스의 공격 지시가 떨어지고 ‘진’ 케르베로스들이 달려들었다.

“흡!”

나중에 권갑을 쓰게 될 재목답게 유세준은 양 주먹에 푸른 마나를 두르고 대항하였다.

“핫!”

“깨앵!”

힘차게 주먹을 휘두르자 크러셔들이 퍽퍽 날아갔다.

힘의 차이가 확실하군.

유세준이 주인공답게 그 역량과 재능에 있어서 나를 뛰어넘었다. 하지만 그것만이 아니라 기본적인 전투 능력과 센스에 있어서도 우위에 있었다.

뭐, 녀석의 성장 배경을 생각하면, 어렸을 때부터 불량배들과의 싸움이 많았으니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인데··· 남자라서 그런가··· 주먹질 하나하나에 힘이 실려 있다.

내가 하던 주먹질하고는 다른 강력함이 유세준에겐 존재하였다.

“젠장.”

나는 왠지 모를 부러움과 열등감에 기분이 상했다.

“뭐야··· 왜 자꾸 살아나는 거야?”

신나게 두둘겨 팬 것과 달리 자꾸 살아나니 조금씩 지쳐가는 모양이었다.

“세 마리 한꺼번에 처리하지 않으면 안 돼.”

“뭐? 그런 거였어?”

“하하, 그렇다. 자, 어쩔 거지?”

제이스는 자신의 승리를 직감하는 듯 벌써 이긴 것 마냥 말했다. 물론 현실이 그러했기에 충분히 자만 할만 했다.

“······.”

이대로는 정말 둘다 위험해진다. 역시 포인트를 사용하는 수밖에 없는 걸까.

“으, 으윽!”

그때 무언가 이변이 일어났다.

“제, 제기랄! 어째서 이럴 때! 다, 다 됐는데!”

어둠 속에서 들려오는 목소리가 굉장히 다급하게 변했다.

“으악! 진정해라!”

뭔가 스스로 싸우는 듯··· 혼란스러움 그 자체였다.

“사, 사라졌다?”

금방이라도 달려들어 물어뜯을 준비를 하던 세 마리의 크러셔가 먼지처럼 사라져버렸다.

“아무래도 조련사께서 손이라도 물린 모양이네.”

하긴, 진 케르베로스는 제이스 따위가 데리고 다닐 존재가 아니었다. 아마 무언가 모종의 수단을 통해 억지로 이용하던 게 한계가 와서 저런 걸 테지.

“······.”

비명을 지르던 어둠 속의 목소리는 이내 조용해졌다. 나는 직감적으로 제이스가 물러났음을 깨달았다. 분수에 맞지 않는 힘을 운용하다 내상을 입었다는 결말인가.

“하, 하하.”

나는 헛웃음을 터트렸다.

운이 좋은 건지, 나쁜 건지. 뭐, 포인트를 날리지 않고 위기를 모면했으니 좋아해야 맞는 거겠지. 그런데 왜 이리 기분이 더러운 거냐.

“지슬아. 죽는 거 아니지? 응?”

상황이 진정되자 나에게 달려든 유세준이 어깨를 쥐고 흔들어댔다.

“아, 안 죽어. 좀 놔.”

“휴, 다행이야. 그런데··· 일어설 수 있겠어?”

“어찌어찌.”

바닥에 손을 짚고 몸을 일으켰다.

“윽?”

“어, 이봐! 이것 봐.”

유세준이 부축해 주어서 겨우 두 발로 섰다.

“상대는 물러갔을 거야. 이곳의 제어도 풀렸겠지. 빨리 이곳을 나가서 다른 사람들에게 상황을 알리도록 하자.”

“응, 그러자.”

나는 유세준의 어깨에 기댄 채로 걸어가며 한 가지 단어만을 되새기고 있었다.

결혼··· 결혼··· 제이스 그 놈이 왜 그런 소릴 한 거지?

정말 불안함을 넘어 미치게 만드는 마성의 단어였다.

결국 음모를 획책하던 모종의 존재는 물러난 게 확인되었고 우리는 훈련용 기숙사를 나오게 되었다.

그곳에서 있었던 일을 강성민에게 말했고 강성민은 아카데미 측에 보고하여 조치를 취하겠다고 하였지만 큰 기대는 하지 않았다. 어차피 흐지부지될 게 뻔했으니 말이다.

단지 사건을 부풀려서 일으킨 제이스의 처분이 어떻게 될 지가 궁금했다.

본래 스토리에선 그 한 번으로 무너지지 않았고 몇 번 더 유세준을 위협하지만··· 이번엔 진 케르베로스까지 동원했으니 어떻게 될지 알 수가 없었다.

만약 제이스가 처분된다면 다음 적이 나타날 것이고, 그렇지 않다면 더 큰 음모를 꾸밀 테니, 어느 쪽이든 대비가 필요했다.

나는 전치 2주의 부상을 입어 입원하게 되었는데 병원에서 일주일 정도 지내다가 퇴원을 하였다.

병원 생활은 송하나나 아이다가 병문안을 와줬기 때문에 외롭거나 힘들지 않았다.

‘결혼할 생각은 없나?’

퇴원을 하고서도 제이스가 던진 충격적인 발언은 여전히 머릿속에 남아 있었다.


작가의말

늦어져서 죄송합니다. 몸살감기에 걸려서 끙끙 앓다가 공모전이 시작 되어서 다른 글에 신경을 쓰고 있어서 아예 손 댈 생각을 안 하고 있었습니다만, 마지막에 돌아와 달라고 댓글을 달아주신 독자님의 간절함에 감동하여 다음 편을 쓰게 되었습니다. 하루에 한 편씩은 약속할 수 없지만 어쨌든 조금씩 연재를 하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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