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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쿠량수불
작품등록일 :
2019.03.14 21:20
최근연재일 :
2019.07.30 23:31
연재수 :
39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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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549
추천수 :
417
글자수 :
212,356

작성
19.06.25 1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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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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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2쪽

양아치를 만났다

DUMMY

용수는 메시지를 보고, 반항하려던 것을 멈췄다. 흰 머리 청년이 그가 얌전히 있는 걸 보고 흐뭇하게 웃었다.


“상황 판단이 빠르군”

“인류요? 어디 소속이시죠?”

“블러드 연합이야. 귀를 보시게.”


청년의 귀에는 붉은 보석이 박힌 귀걸이가 있었다. 핏방울 같은 보석에 새겨진 봉황 문양. 4등급이라는 뜻이었다.


“4등급이시군요. 결례를 범했습니다.”

“괜찮네. 죽을 뻔한 것치곤 굉장히 침착하군?”


둘이 얘기하는데, 오크의 눈동자가 돌아가서 그들을 바라봤다. 몸이 천천히 움직이다, 장벽을 살짝 쳤다. 둥-하고 묵직한 타격음이 울려 퍼졌다. 흰머리 청년은 얼굴을 굳혔다.


“5등급 중에서도 성숙한 놈이군. 가만히 나뒀다간 4등급으로 올라가겠어”

“4등급이면 범우주적 재앙 아닙니까.”

“그래. 내가 투력 사용자였으면 어찌어찌 잡아 보겠지만, 마력사용자라 상성이 좋지 않아.”

“어쩔 수 없네요.”


청년은 손을 휘지어 마력진을 몇 개 더 그렸다. 방벽을 치던 오크가 굳어 버리고, 용수와 청년의 몸이 반투명하게 변했다.

용수는 바닥난 마력과 체력이 차오르는 것을 느꼈다.


“됐네. 빨리 움직이세.”

“알겠습니다.”


둘을 빠르게 도주했다.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아 오크의 고함소리가 들렸는데, 그때에는 이미 충분히 달아난 상태였다.


“이 정도면 충분한 것 같네만, 방심하긴 이르네. 속도를 조금 더 높이세.”

“네. 그런데 성함이 어떻게 되시는지요. 생명의 은인이신데 여태 몰랐습니다.”

“하르텔이라 부르게. 자네는 아티팩터로 알고 있는데 맨몸으로도 잘 달리는군.”

“아카데미에서 받은 훈련 덕이죠. 지쳐 쓰러질 때까지 굴리지 않습니까.”

“하하, 맞네. 거기 교관들이 좀 독하지.”

“지금도 쓰러질 것 같긴 한데, 그 때 생각하면서 억지로 버티고 있습니다.”


빈말이 아니었다. 용수의 육신은 이미 지칠대로 지쳐서, 하르텔이 보조를 하고 있는데도 점점 느려지고 있었다.

하르텔은 그의 몸이 경련하는 것을 보더니, 안쓰러워서 혀를 쯧쯧 찼다.


“조금만 더 버티게. 덧씌운 차원을 벗어나면 바로 포탈을 열겠네.”

“포탈이요? 설마.”


용수가 경악해서 하르텔을 바라봤다. 그는 이곳에 있을 만한 인물이 아니었으니까. 붉은 피를 가진 종족에선 찾아보기 드문, 차원을 다루는 마력사용자. 지구라트의 참모. 마도사명 무디.

하르텔은 이제야 눈치챘냐는 듯 용수를 보며 히죽거렸다.


‘이름이 안 알려졌다고 해도, 이렇게 유명한 사람을 왜 몰라봤지? 애초에 4등급은 지구라트에 몇 없잖아.’


용수는 놀라서 청년의 얼굴을 훑다가, 결례임을 깨닫고 얼른 사과했다.


“죄송합니다. 참모님을 뵙습니다.”

“그러지 않아도 된다니까.”


하르텔은 손사레를 쳤지만, 입가엔 만족스러운 미소가 감돌았다. 인사를 받아서 기분이 좋아졌음이라. 용수가 연예계를 헤쳐 나가며 익힌 육감이 속삭였다. 점수를 딸 완벽한 타이밍이라고.


“지구라트의 리빙레전드인 하르텔님을 뵙는데 어찌 이러지 않겠습니까. 세상에. 자손 대대로 이 얘기를 해 줄 겁니다.”


“허허, 거 참. 엘리스가 자네를 왜 구해주라 했는지 몰랐는데, 이토록 재기 넘치는 젊은이라서 그랬군.”


엘리스? 그녀는 용수가 살던 도시가 고블린의 침공으로 무너졌을 때, 그를 구해준 은인이었다.


“엘리스님이요?”

“그래. 자네한테 추적기를 달아 놨는데, 위치를 보니 위험할 것 같다면서 내게 연락을 하더군.”

“그분께는 항상 도움만 받는군요.”

“알면 잘하게.”


용수가 대답을 하려 했는데, 하르텔의 멈추더니 그의 손을 잡았다.


“됐어. 이제 차원문을 열 수 있겠어.”


그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발 밑에 포탈이 생겼다. 몸이 가라앉나 싶더니, 딱딱한 바닥에 안착했다. 거대한 성벽과 성문이 보였다.


‘여기가 전초기지 크루스.’


인류가 지구라트를 지키기 위해 설립한 전초기지. 사령탑이자 물류의 유통지. 그 위상처럼 크기 또한 대단했다.


“나는 4등급에 오를 수도 있는 오크가 있다고 알려야 겠네. 아마 척살팀이 결성될 텐데, 참가하겠는가?”


토벌전에 참여한다면 그만한 커리어도 없을 것이다. 지구라트 연합원의 정예들만 모일 테니, 인맥을 쌓기도 좋을 것이고, 오크 사살에 성공하면 마력의 성장도 이룰 수 있을 테고. 그는 아티팩터이니 전방에 서지 않고 후방지원만 할 테니, 전형적인 로우리스크 하이리턴 상황이었다. 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네.”

“그래. 그럼 기지에서 기다리고 있게. 며칠 안 걸릴걸세.”

“감사합니다.”

“엘리스한테 생색도 대신 내주고.”

“알겠습니다.”


용수가 웃음기를 참으며 말했다. 하르텔은 마음에 들었는지 마주 웃으며 사라졌다.

용수는 기지로 들어가려 하니, 경비병이 신분증명서를 요구했다. 용수는 아공간에서 ID카드를 꺼내 보여줬다.


“김용수. 인류 중 황인종. 5급 아티팩터. 이상 없군.”

“고생하세요.”


경비병의 검문을 가볍게 통과하고, 기지 안으로 들어갔다. 영화에서나 보던 미래도시가 나타났다. 전형적인 중세 용병차림의 사람부터, 의수를 단 요정종. 신체의 일부를 로봇으로 바꾼 사람들이 돌아다녔고, 블러드 연합의 동맹인 제노족도 몇몇 보였다. 익살스러운 제노족 중 하나는, 요정종이 타고다니던 자가부상장치에서 운행에너지를 빼먹는 묘기를 부리고 있었다. 인간들은 환호를 보내며 돈을 던졌고, 제노족은 얼굴은 대신하는 디지털 화면에 부끄러워 하는 이코티콘을 띄웠다.


[블러드 연합의 전초기지에 도착했습니다.]

[보상이 지급됩니다.]

[지구로 귀한하시겠습니까?]


‘이제는 귀환 여부까지 물어보네.’


고민할 것도 없다. 드라마고 영화고 연습 할 게 얼마나 많은데. 용수의 두근두근 지구라트 대모험은 아직 시작할 때가 아니다.


“돌아간다.”


* * *


드라마 촬영은 순조롭게 이어졌다. 배우들은 화목했으며, 강아라와 신가현도 겉보기에는 친해 보였다. 주연배우들의 팬덤이 제법 되는 덕분에, 푸드트럭이나 커피트럭 등도 꾸준하게 이어졌고, L프로덕션의 직원들도 성실해서 좋았다.


‘대기하느라 지루한 것만 빼면 완벽해.’


용수의 분량이 많지는 않지만, 매 회차마다 감초처럼 얼굴을 비춰야 하는 통에 촬영장에 자주 와야 했다.

하지만 심심해서 사람들하고 이야기를 하는 것도 한두 번이지.

주연들은 자주 촬영하러 가고, 다른 조연들은 용수만큼 자주 출연하지를 않아서, 혼자 대본을 보고 있을 때가 많았다. 매니저 성호와 같이 있는 것도 처음엔 괜찮았지만 몇 주 동안 붙어서 살고 있으니 더 이상 할 이야기도 없었다.


“형 그거 알아?”

“그거 십 분 전에 써먹었다.”

“혜수가 요즘 한비 케어하느라 골머리 앓던데, 알고 있어?”

“혜수랑 한비가 누구였지?”

“미친, 장난이지? 좀 있으면 데뷔할 우리 애들이잖아.”

“당연히 농담이지. 어떻게 우리 리더랑 막냉이 이름을 까먹겠냐.”


한다고 해도 이런 대화나 할 뿐이었다.

하지만 오늘. 매니저 성호는 콧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새벽까지 대기하다 돌아갔던 때와는 달리, 오늘 밤에는 왕이되는자 세트장으로 가기 때문이다.


“그렇게 좋아?”

“당연하지. 내가 얼마나 심심했는데.”

“나랑 대본연습 하는 게 그렇게 심심했어?”

“그건 좋았는데, 분량이 얼마 없으니 몇 시간 꼴랑 하면 끝이었잖아.”

“다른 매니저랑 노는 것도 재밌었다며.”

“그거도 한두 번이지. 다들 자기 배우 케어한다고 바쁜데 나만 놀고먹자니 눈치 보이잖아.”


성호가 넉살을 떨자 용수가 피식거리며 노래를 바꿨다. 시뻘건 사춘기의 travel이 흘러나왔다.


“오~ 선곡 센스.”

“이게 전직 아이돌의 선곡이야.”

“같이 여행 갈 여자친구만 있으면 딱 괜찮을 것 같은데.”


성호는 헛소리를 중얼거리더니 노래를 흥얼거렸다. 공항으로 떠났다가 서울 대전 대구 부산 찍고 남행열차까지 부르짖으니, 어느새 세트장이었다.

둘은 똥그란 눈으로 세트장을 둘러보았다. 으리으리한 궁궐에서 현대복장을 입은 사람들이 분주하게 돌아다녔고, 조선시대 의복을 입은 사람들은 옷이 망가질라 얌전히 앉아 있었다.

용수와 성호에게도 스태프가 붙었다.


“암살자 단주역의 김용수씨?”

“네.”

“이쪽으로 오시겠어요?”


스태프는 그들을 이끌고 건물 안에 준비된 분장실로 들어갔다. 그 안에서 코디가 검은색 무복을 들고 나타났다.


“저기 탈의실에서 갈아입으시면 되고요. 처음 입으면 적응 안 돼서 좀 불편하실 수도 있어요. 무게는 가벼워도 부피는 어지간한 패딩보다 두터우니까, 뛰어다니고 그러시다가 장비에 옷이 찢길 수가 있으니, 주변을 잘 살펴주세요.”


코디의 말에 진심이 절절히 담겨 있었다. 꼭 누가 옷을 찢어먹은 듯한 어투였다. 궁금한 건 못 참는 성호가 물었다.


“그런 사람이 있어요?”

“네, 양중기 씨가 하나 처리하셨습니다.”

“진짜요? 그분 황제역이라 곤룡포 아니에요? 그거 하나 값이 엑스트라들 의상 전부보다 비싸다던데”

“그러게요······.”


의상코디가 말끝을 흐리며 코를 훌쩍였다.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힌 게 안쓰러웠다.


“그러니 조심해서 다뤄 주세요. 찢어지면 제가 다시 수선해야 해요.”


용수는 그녀의 다크서클이 눈에 밟혔다. 컨실러를 두텁게 발라서 가리려 했지만, 그래서 더 눈에 띄는, 팬더 같은 눈두덩이.

용수는 말없이 코디의 어깨를 토닥여 줬다. 코디는 손수건을 꺼내 코를 팽 하고 풀었다.


“소중히 입고 반납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용수는 구석의 탈의실로 가서 옷을 갈아입었다.

과연 몸에 착 달라붙는 현대복과는 달리, 부하고 뜨는 느낌이 있어서 적응이 안 됐다.

용수가 나오자 조금 전 코디는 사라지고, 대신 뷰티 아티스트가 그를 반겨 주었다. 그는 연신 감탄을 내뱉었다.


“피부 봐. 어쩜 여배우들보다 훨씬 좋네.”

“감사합니다.”

“관리를 어떻게 하시는 거예요? 같은 남자끼리 좋은 것 좀 공유하고 살자.”

“그냥 식단 조절 열심히 하고 운동 좀 했죠.”

“마스크도 연기 최적화야. 내가 원하는 대로 분위기가 휙휙 바뀌잖아.”

“그런가요?”

“화장도 엄청 잘 먹어. 부럽다. 나는 화장 잘 먹게 하려고 아침부터 팩한다 뭐한다 난리치는데.”

“팩이요?”

“아침에 팩하고 화장하면 잘 먹어요. 몇 만 원짜리 비싼 건 너무 과해서 화장이 뜨고, 한 장에 천 원, 이천 원 하는 거 가져다 쓰세요.”

“우리 애들한테 알려 줘야겠네요.”

“애들? 아, 용수씨네 기획사에서 이번에 아이돌 데뷔한다고 했었죠? 이뻐요?”

“고슴도치라 그런 게 아니라, 진짜 이뻐요.”

“진짜요? 제가 메이크업 해줄 날을 기대하고 있을게요.”


둘이 화기애애하게 떠들다 보니, 메이크업이 끝났다. 거울 속에 냉막한 얼굴을 한 무사가 앉아 있었다.


“좋아! 퍼펙트!”

“와, 라이제이 선생님 실력 장난 아니시다.”

“뭐가 장난 아니에요?”


잔뜩 날이 선 음성이었다. 용수는 목소리를 좇아 고개를 돌렸다. 제일 먼저 화려한 곤룡포가 들어왔다. 그 위로 개구쟁이 같은 얼굴이 있었고, 그 위로 익선관이 반쯤 기울어져 있었다.

양중기는 의자에 앉아 있는 성호를 툭 밀쳐내더니, 원래 제 것이었다는 양 풀썩 주저앉았다. 성호가 황당해서 그를 바라보자 두 손가락을 들어 찌르는 시늉을 했다.


“매니저 주제에 뭘 꼬나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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