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생자가 너무 많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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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3.20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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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8.03 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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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지

DUMMY

따뜻한 햇살이 비치는 오후, 한 청년이 저택의 안뜰에서 티타임을 즐기고 있었다.


그런 청년의 곁에는 두 명의 남자와 여자가 각각 밸런스 좋게 서있었는데, 중년의 미를 간직한 집사와 다른 젊은이들이 이루어내는 조화가 한 폭의 그림과 같았다.


특히나 중심의 청년이 빼어난 외모를 지니고 있어, 그는 그 조화 속에서도 유독 튀어보였다.


저택의 고용인들, 가문에 용건이 있어 찾아온 외부인들까지 모두가 하나같이 청년을 힐긋 쳐다보았다.


그런 와중에 청년이 입을 열었다.


“차의 향이 좋군.”

“감사합니다. 도련님.”


집사, 슈트론이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오히려 고마워해야 할 건 나인 걸. 언제나 이런 차를 대접해주는 집사가 있다는 건 나에게 있어서 큰 행운이야.”

“도련님...”


감격한 얼굴이 된 중년의 집사에게서 시선을 떼며 케인은 차의 표면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거울 보듯 응시했다.


‘이제야 좀 봐줄 만하군.’


처음 환생했을 땐, 진짜 끔찍해서 못 봐줄 정도였다. 이게 대체 돼지인지 사람인지. 그런 주제에 무가武家의 핏줄이라니.


‘내가 선택한 거긴 하지만.’


그래도 생각했던 것과 실제로 겪는 것엔 많은 괴리가 있었다. 이 정도야 견딜 만하지, 라고 생각했던 게 생각 이상으로 끔찍했다고나 할까.


그래도 이젠 먼 과거의 이야기다.


뒤룩뒤룩 살찌고 병든 몸뚱이. 바닥에 떨어진 평판. 그 모든 것을 딛고서 자신은 당당히 이 가문의 대공자로서 인정받게 되었으니까.


처음엔 끔찍했으나, 모든 걸 이겨낸 뒤에 남은 과실은 만족스러울 정도였다.


케인은 자신의 곁에선 부하들을 돌아보았다.


환생한 직후부터 자신에게 충성을 다해왔던 집사, 슈트론. 그는 그동안 변한 자신의 모습을 통해 더욱 더 자신에게 깊은 충성을 바치게 되었다.


기사, 펠츠. 그는 괴수토벌작전에서 부상을 입은 뒤 자신에게 목숨을 구해지고부터 새롭게 충성을 다짐한 사람이다.


요즘은 자신의 검술지도를 받으면서 자신에 대한 동경까지 더해지며 이젠 완전한 자신의 사람이 되었다고 할 수 있겠다.


‘거기다 재능까지 있으니 조금 더 갈고닦으면 나중에 쓸 만해지겠어.’


평판을 올리기 위해 했던 일이 자신도 예상하지 못했던 큰 이득이 되어 돌아온 경우였다.


‘그리고 벨체...’


케인의 시선이 긴 흑발을 늘어뜨린 한 여인을 향했다.


여인을 케인과 눈을 마주치자 부드러운 미소를 지어보였다.


마치 그녀의 주위만 환해진 것 같은 화사한 분위기에 케인은 슬쩍 입 꼬리를 끌어올리려는 자신을 돌아보았다.


‘벨체. 처음 봤을 땐 이렇게 될 줄 정말 상상도 못했지.’


케인은 당시의 상황을 떠올렸다. 웬 돼지의 몸뚱이로 환생한 것도 짜증나는데, 거기다 한 술 더 떠 이 돼지 놈이 살아생전에 저질렀던 악행까지 전부 다 자신이 짊어져야 했다.


자신이 저지르지도 않은 일 때문에 누군가에게서 살기를 느껴야 했던 나날들.


당시엔 너무 억울하고 화가 나기도 했지만, 그걸 참아내며 끊임없이 달라진 자신을 보여주다 보니 이젠 자신에게 욕을 하는 사람보단 이렇게 웃어주는 사람이 더 많아지게 되었다.


‘벨체는 마법에 대한 재능이 있으니, 조만간 마도학회에 추천서를 넣어서 마탑에 넣어줘야겠어. 아니면 아예 마탑의 마법사를 과외선생으로 붙여주거나.’


권력 좋다는 게 뭔가. 자신이 끝끝내 몸을 포기하면서까지 힘 있는 귀족가문의 대공자로 태어나고 싶었던 건 바로 이 때문이었다.


이미 전생에서 그 권력이 단순한 무력보다도 더 광범위하게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걸 알게 되었으니까.


가끔 마법보다도 더 마법 같은 게 바로 권력이란 힘이었다.


“저기, 도련님.”

“응? 왜 그래 블랑?”


잠시 과거를 회상하며 감격에 젖어있자니, 벨체의 바로 옆에 서있던 여인, 블랑이 먼저 말을 걸어왔다.


붉은 눈이 매혹적인 그녀가 말했다.


“아까 전에 가주님께서 말씀하셨던 일 말인데요.”

“대련일정?”

“예. 어쩌실 생각이신지....”


블랑이 고개를 끄덕이며 물었다. 케인은 다시 차를 한 모금 입에 머금으며 생각을 정리했다.


‘알렌 오르니오.’


케인은 자신이 아직 몸을 완전히 개조하기 전에 보았던 한 청년을 떠올렸다.


자신...이 몸의 원주인과 같은 나이에 완전히 다른 인생을 살던 녀석.


‘소꿉친구라고 했던가? 열등감이 들 만하군.’


집사에게서 듣길 같은 무가 출신인데도 도저히 따라잡을 수 없는 그 격차가 케인이 삐뚤어진 원인 중 하나가 되었다고 했다.


‘하긴 오르니오 가문이라면 당연한 일이지. 무식하고 개망나니이긴 하지만...강한 건 인정해.’


물론 그렇다고 자신이 꿀릴 건 없다.


저쪽이 위대한 가문의 후손이라면 이쪽은 환생자다. 이미 전생에 마스터의 경지를 밟고 온 반칙과도 같은 축복을 받은 자.


‘미궁도시를 말아먹고 악마와 싸우다 다쳤다고 했었지? 운도 참 없군. 곧 있으면 나와의 대련인데.’


가문의 사업도 깨지고, 대련에서도 자신에게 깨지게 되면 녀석의 인생은 좀 좋지 못한 쪽으로 굴러 떨어지게 될 것이다.


‘그동안 미친 듯이 단련한 게 좀 아쉽게 됐어. 응? 아니다.’


그 순간 케인의 머릿속에 한 줄기 번개가 스쳐 지나갔다.


케인의 입 꼬리가 슬쩍 올라갔다.


‘그래. 어차피 깨지게 될 거 좀 더 쉬다 오라고 친구.’


케인은 집사를 시켜 편지와 쓸 것을 가져오게 했다.


“어디...다친 친구에게 보낼 편지로는 어떤 말이 적당할까?”

“오르니오의 대공자에게 편지를 쓰실 생각이십니까?”

“어. 아무래도 악마에게 당해서 누워있는 모양이니까 대련은 저쪽으로서도 피하고 싶은 일이겠지. 그러니 미리 이쪽에서 권유를 해두려고. 대련은 공정해야 하찮아? 다친 사람이랑은 할 수 없지.”


집사, 슈트론과 기사인 펠츠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공정한 대결을 숭상하고 쓰러진 친구를 위해 직접 편지를 쓰는 그의 행동은 그야말로 기사의 참된 귀감이라고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오, 도련님. 어찌 이리도 대견하신 일을...”

“당연한 일을 할 뿐이야.”


말은 그렇게 했지만, 실상은 조금 달랐다.


‘이렇게 해야 잡음이 안 생기지.’


혹여나 환자에게 대결을 강요했다고 여겨지면 곤란하다. 그러나 이런 물질적인 증거를 미리 만들어놓으면 나중에 딴소리가 생기지 않는다.


자신의 몸을 돌보지 않고 오만하게 자신의 앞에 선다면 정면에서 박살내고 다음으로 갈 발판으로 만들어 주리라.


만약 대련을 피하고 일정을 미룬다면? 상관없다. 그 경우에도 자신의 평판은 수직상승 할 테니까.


지금 주변에서 눈을 빛내고 있는 녀석들처럼 자신의 기사도를 칭송하겠지.


‘어디...이 기회를 단순히 얘들의 교류로만 만들 순 없지. 가주...아니, 아버지께 말해서 오르니오 쪽 가주에게도 알리고, 사람들한테도 소문을 퍼트려야겠어.’


그래야 효과가 더 확실해질 테니까.


‘대련이 기다려지는군.’


케인이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멀리서 본다면 그것은 그림의 한 폭으로 보이겠지만, 그 안에 담긴 의도는 현실의 전형적인 귀족의 것이나 다름없었다.


케인은 어서 빨리 시간이 흘러갔으면 했다.


*


“우와...진짜 그림이다, 그림.”


세탁물을 나르던 한 하녀가 청년의 얼굴을 떠올리며 중얼거렸다.


“왜 진즉에 저 얼굴을 몰라봤을까?”


그 중얼거림을 그녀의 동료가 받아쳤다.


“왜긴 왜야. 살 때문이지.”

“얘가 진짜. 깨는 소리 할래?”


하녀가 뒤를 홱 돌아보며 쏘아붙였다. 또 다른 하녀는 그저 피식 웃어 보이며 그 시선을 받아넘겼다.


“그럼 거짓말 할까? 예전에 너도 말했잖아. 너무 뚱뚱해서 저게 사람인지 돼지인지도 모르겠다고.”

“이런 미친...!”


하녀는 재빨리 바구니를 바닥에 놓고서 번개와 같은 속도로 친구의 입을 틀어막았다.


그리고 혹시나 주변에 누군가 엿듣는 사람이 없나 두리번거렸다.


“입 조심 안 해? 케인 대공자님이 들으셨으면 어쩌려고?”

“글쎄? 공개처형?”

“얘가 자꾸 살벌한 소리를 하네. 우리 대공자님은 이제 그런 거 안 해. 착해지셨다고. 저번에 부상당한 기사 분들 직접 의무실까지 업어주시는 거 못 봤어?”


그렇다. 위대하신 케인 대공자께선 잃어버렸던 외모와 함께 지금껏 보여주지 않았던 그 선량한 마음까지 되찾게 된 것이다.


단순히 무력과 외모뿐만이 아니라, 마음씨까지 갖춘 완벽초인. 그야말로 동화 속 백마 탄 왕자 뺨을 좌우로 후려치고, 다리로 돌려 치시는 분 아닌가.


“너 한 번만 더 우리 대공자님 욕하면 내가 가만 안 둬. 말조심 해. 알았어?”


이건 단순한 위협이 아니라, 그녀 자신의 친구를 위해서이기도 했다. 예전이라면 모를까 지금의 대공자께선 사람들의 기대와 선망을 한 몸에 받으시는 분.


함부로 욕했다간 가주님은 물론이고 대공자님을 따르는 기사들도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친구의 얼굴은 점차 험악해져갔다. 장난이 아니라 진심으로 화가 난 것 같았다.


“너야말로 입 조심 좀 해. 우리 대공자님? 외모 좀 바뀌고 하는 짓 좀 바뀌니까 사리분별이 안 돼? 저놈한테 그동안 당한 사람이 얼만데. 이제 와서 침 튀겨가며 저놈 발가락이나 핥겠다고?”


친구는 하녀의 손을 잡아서 거칠게 떼어냈다. 하녀가 당황해서 말했다.


“야...너 왜 이래?”

“글쎄? 웬 귀신한테 홀린 것처럼 다들 당했던 것도 잊고 과거 따윈 그냥 아무렇지도 않게 버리려는 것처럼 보여서, 조금 흥분한 것 같네.”


친구는 금방 표정을 풀었다. 하지만 그것은 겉으로만 보이는 변화일 뿐, 그녀의 내면은 아직도 뜨겁게 끓고 있었다.


“난 저놈이 나한테 한 짓 절대 못 잊어. 그러니까 너도 입 조심해. 나 같은 사람이 이 저택에 나 하나뿐인 건 아니니까.”

“누가...또...?”

“누굴까? 뭐, 그래도 너처럼 사는 것도 나쁘진 않겠네. 잘생기고 권력 있는 귀족한테 예쁨 받을 수 있다면 자존심이고 뭐고 다 버리는 게 사람일지도. 아, 몰라. 빨리 바구니나 들어. 늦으면 또 혼날라.”

“아, 맞다!”


하녀는 그제야 자신의 역할을 깨닫고서 허겁지겁 놓아두었던 바구니를 집었다.


*


“요즘 편지가 자주 오는군.”


붕대에 칭칭 감긴, 기괴한 꼴을 한 채 침대에 누운 알렌이 침대 옆에서 편지를 읽어주는 루시를 보며 말했다.


“그동안 쌓은 업이 깊나보죠.”

“내가 그만큼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있는 존재란 뜻이겠지.”

“음...이 편지는 사랑 때문에 온 게 아닌 것 같습니다만.”

“아, 그건 예외.”


알렌은 스틸란 가문의 인장이 찍힌 편지를 보았다.


“전형적인 평판작업을 할 때 쓰는 꼼수지. 반드시 대련에서 이길 수 있다는 가정 하에 거절해도 그만, 받아들여도 그만이니까. 전형적인 만큼 확실해.”

“오, 이 편지를 쓰신 분은 사실 굉장히 엄청난 강자였나 보군요. 제가 알기론 좀 풍만하신 풍채의 도련님이었는데.”

“글쎄? 아마 지금은 살이 좀 빠졌을 걸?”


알렌은 마지막으로 보았던 녀석의 모습을 떠올렸다.


‘그래. 날 발판으로 삼으시겠다?’


건방진 새끼. 알렌의 얼굴에 음흉한 웃음이 번져갔다.


“좋아. 하자고 대련. 기왕 하는 거 규모도 좀 늘리고.”


아버님께 연락한다는 걸 보니 아예 확실하게 갈 생각인가본데, 그럼 관객이 좀 많아야 하지 않겠는가.


“몸도 나았겠다. 거리낄 건 없지.”


알렌은 몸을 한 번 뒤틀더니 전신에 힘을 주었다. 크게 부푼 근육이 붕대를 밀어내다 못해 아예 갈기갈기 찢어버렸다.


펑, 하고 터진 붕대조각들이 허공으로 흩날렸고, 그 사이로 알렌의 균형 잡힌 몸이 드러났다.


상처하나 없는 몸은 이제 완전히 회복된 것 같았다.


“속옷 안 찢어졌죠?”

“날 뭘로 보고. 신축성 좋은 걸로 샀어. 괜찮아.”


알렌은 굳었던 몸을 조금씩 움직여보며 다음 일정을 떠올렸다.


“대련은 미루지 않고 예정대로. 근데 그 전에...”


알렌의 머릿속에서 한 남자의 얼굴이 스쳐지나갔다.


“자칼 그놈부터 다시 데려온다.”


 그 자식 맡긴 일은 잘 하고 있겠지?


‘또 잠이나 퍼질러 자고 있는 거 아니야?’


작가의말

재미있게 읽으셨으면 좋겠습니다.

많은 선추코 부탁드립니다.

케인...어차피 여기까지 읽어주신 독자님들이라면 환생자라고 해서 인생 이지모드가 아닌 것쯤은 다들 눈치 채고 계실 거라고 생각했기에 하녀들의 대화를 추가했습니다.


쟈우림님 추천글 정말 감사드립니다. ㅎㅎ. 추천에 힘입어 이번주는 일요일에도 연재하는 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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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4 대장인(2) +4 20.01.04 571 19 13쪽
143 대장인 +7 20.01.02 740 24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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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0 업(2) +3 19.12.24 669 28 13쪽
139 +1 19.12.21 710 28 1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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