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생자가 너무 많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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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3.20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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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1.20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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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방벽

DUMMY

일반인과 마스터, 그리고 그랜드마스터를 나누는 가장 큰 기준은 신체도, 마력도 아닌 ‘격’이다.


격이란 무엇인가? 격이란 자격이며, 위치이며, 권능이기도 하다.


마치 권력자가 아랫사람을 부리듯이, 높은 곳에 있는 물체가 그 위치에 걸맞은 에너지를 지니듯이, 격은 자신을 타인보다 위에 존재하도록 만든다.


단순한 물리적인 위치가 아니라 개념적인 우위를 만들어낸다.


최강의 창과 방패가 있다. 창은 방패를 뚫을 수 있을까? 방패는 창을 견뎌낼 수 있을까?


이 의문의 승패를 결정짓는 것은 바로 ‘격’의 차이다. 다르게는 ‘개념’의 우위다.


‘최강’이라는 개념이 더 절대적인 쪽, 그리하여 상대의 개념을 무시할 수 있는 쪽이 승리한다.


그렇기에 격을 올린다는 건 곧 신성神聖을 갈고닦는 것이 된다.


마스터가 그 대표적인 예시다.


수면에 비친 달과 같이 자신이 인정하지 않는 모든 개념으로부터 자신을 벗어나게 만드는 ‘불가침성.’


그리고 자신의 개념을 강제할 수 있는 ‘절대성.’ 이게 바로 격과 ‘길’의 본질이다.


그렇게 격을 올리다보면, 벽을 뚫고 뚫어 신성을 갈고닦다보면 언젠가 보이게 된다.


진짜 신이 되는 길이.


그러나 여태껏 이 방법으로 신이 된 자는 없었다.


“신의 벽이라는 거창한 이름이긴 하지만, 이것을 실제로 증명한 사람은 없습니다. 막연히 추측만 할 뿐이죠.”


케세리안 주교가 씁쓸하게 웃었다.


“세계수는 새로운 우주를 창조해내는 데엔 성공했지만 신대...1회차 우주의 그 무량함마저 구현해낼 순 없었습니다. 세계의 크기가 작아지고 자연스럽게 세계가 담아낼 수 있는 용량 또한 줄어들었죠.”


신대엔 수많은 신들이 존재했으나 지금은 그 신들이 손에 꼽을 정도로 적은 이유였다.


세계가 작아짐으로써 벽을 초월해 승천昇天하기 위한 최소조건이 너무나 높아져버린 것이다.


이러한 폐해를 알렌은 가문의 기록을 통해 알고 있었다. 어떤 의미에서 오르니오 가문은 그 누구보다 신이 되는 길을 갈구해왔으니까.


육체, 기술, 신념. 모든 것은 신이 되기 위한 발판이다.


문제는 그것을 이루어낸 놈이 지금껏 없었다는 거고.


더 큰 문제는 지금 알렌이 그것을 이루어내야 하는 상황이라는 것이다.


대방벽의 괴수들, 환생자들, 미치광이 신까지. 때려죽일 놈들은 많은데 힘이 부족하다. 진짜 신이라도 되지 않는 이상은 저 셋을 제거하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그래서 그랜드마스터들 사이에 차이가 큰 겁니다. 이 세 번째 벽을 뚫지 못해서 계속 자신을 연마하다보니 끝이 없기 때문이지요.”

[그건 그렇지.]


전생에 광신도한테 들을 만큼 들었다며 하품이나 쩍쩍 해대던 검왕이 반응을 보였다.


그 또한 세 번째 벽을 뚫기 위해 스스로를 극한까지 몰아갔던 무인이었기에.


그 과정 속에서 결국 벽을 뚫지는 못했지만 지울 수 있는 방법은 찾아냈다.


“뭐. 여기서 주목해야 할 건, 세 번째 벽과 더불어 그 벽까지 가는 과정입니다. 세 번째 벽은 세계가 만든 벽입니다. 하지만 나머지 두 개의 벽은 아니지요. 누가 만들었을까요?”

“신체의 신 아닙니까?”

“예. 맞습니다. 그 이유는 바로 신체의 신이 우리 인간들을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벽은 모든 존재들에게 공통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악마가 그렇다. 종이 다르면 ‘초월’의 과정 또한 달라질 수밖에 없다.


“우리들의 벽은 신이 만들어놓은 징검다리입니다.”


무엇을 위한 다리인가?


“용신의 파편이라고 할 수 있는 신체의 신은 바깥으로의 탈출을 엄격히 금지하며 안쪽의 자원을 집중하고 있습니다. 부족하면 외계의 존재들을 끌어와서라도.”


신체의 신이 보이는 행동의 목표는 결국 원점으로 회귀한다.


자신의 본질, 불완전성을 타파하기 위한 것.


“언뜻 복잡해보이지만 결국 본질을 무시할 수는 없지요. 신체의 신은 만들려고 하는 겁니다. 새로운 신, 자신의 후계자를.”

“그것이 본질과 무슨 관련이 있는 겁니까?”

“신체의 신은 아무리 강대한 힘을 지니게 되더라도 그 본질에 해당되는 불완전함을 채울 순 없습니다. 그러니 아예 갈아치우는 것이지요. 자신의 힘을 부여할 만한 존재에게.”

“그리 함으로써 신체의 신에겐 무슨 이득이 있는 겁니까?”

“완전해집니다.”


케세리안이 빙그레 웃으며 말을 이었다.


“그거면 충분해요.”


아무리 채우고 채워도 불완전함을 지울 수 없다면 아예 새로 만들 수밖에 없다.


“잘 이해가 가지 않는군요. 새로운 신을 만들고 그 신에게 자신의 힘을 줘서...”

“본인에 맞춰서 이해를 하려고 하시면 안 됩니다. 방금 전 예시를 다시 들어보죠. 신체의 신은 알렌 공자의 떨어져나간 팔과 같습니다. 그런 팔에게 생존본능이나 자아에 대한 애착 같은 게 있을까요? 팔이 아무리 단단하고 강해져봤자 팔일뿐입니다.”


알렌은 어렴풋이 이해가 될 것 같았다. 하지만 현재의 환생자들과 그 신의 목표가 어떤 식으로 연결되는지는 여전히 알 수 없었다.


“그럼. 그 후계자를 만들어서 힘을 준다. 그게 전부란 겁니까?”

“허허. 아닙니다. 당연히 그 다음이 있지요. 후계자...저희들은 이 미래의 구세주를 초월자라고 부릅니다.”

“초월자?”

“예. 말 그대로 인간을 초월했단 뜻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초월시키는 자란 뜻이기도 합니다. 이 닫혀버린 시대와 세계를 부수고 바깥으로 우리들을 인도할.”


초월자. 용신교가 기다리는 구세주이자 새로운 신. 그 존재가 나타남으로써 세계는 지금껏 없었던 가장 위대한 변화를 맞이하게 되리라.


“그...초월자가 되기 위한 조건 같은 게 있습니까?”

“일단은 세 번째 벽을 뚫는 것이고 두 번째는...신의 마음에 드는 것이겠군요. 결국 힘을 계승해주는 것은 신이니까요.”


거지같은 조건이군. 알렌은 마음속의 목소리가 입 밖으로 튀어나가지 않도록 단단히 붙들었다.


“두 번째가 얼핏 애매모호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용신교에선 그 성향도 나름 좁혀두고 있습니다.”

“신의 마음에 드는 방법 말입니까?”

“예. 어렵지 않습니다. 싸움을 좋아하면 돼요. 정확히는...남을 으깨고 짓밟고 복수하는 걸 매우 좋아하고 자신에게 위협이 될 만한 존재를 도저히 내버려둘 수 없어야 한다고 할까요?”

“그거 혹시 악마 아닙니까?”

[아니. 딱 넌데?]


검왕이 치매가 왔는지 헛소리를 했지만, 알렌은 가볍게 무시했다. 알렌은 자신이 누구보다 모범적이고 선량하며 신사다운 인간이라 생각했다.


“악마라...그렇게 들릴 수도 있겠군요. 하지만 오히려 전 이게 맞다고 봅니다. 용신과 마신의 관계는 새롭게 창조된 우주에까지 이어져있습니다.”


이 우주에 신은 하나가 아니다. 마신의 힘을 이어받은, 마왕이라 불리긴 하지만 사실상 신이나 마찬가지인 또 다른 초월자들이 존재한다.


“마왕들은 또 다시 용신의 신체를 노리려 할 거고, 그럼 초월자는 그들로부터 자신을 지켜야하니 당연히 악마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진 않을 겁니다.”


케세리안이 손으로 깍지를 끼며 이야기를 마무리했다.


“제가 들려드릴 수 있는 이야기는 여기까지가 끝입니다. 혹시 더 질문이 있으신지요?”

“아니요. 없습니다. 유익한 시간이었습니다. 시간을 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허허. 이 늙은이를 너무 치켜세워주시는군요. 그다지 대단한 일도 아닙니다.”


나름대로 유익한 정보를 얻은 알렌이 자리에서 일어나 교단을 나섰다.


*


알렌과의 면담을 마친 케세리안 주교가 그의 빈 자리를 보며 입을 열었다.


“교단의 비밀을 이렇게 알려줘도 되는지 모르겠습니다. 혹여나 이것이 운명에 큰 변동을 일으키는 것은 아닌지.”

“어차피 숨길 수 있는 것도, 숨길만한 것도 아니었습니다. 이 정도의 정보는 오히려 끈을 놓는 데에 도움이 될 것입니다.”


케세리안 주교의 말에 답한 것은 두 눈을 감은 어떤 여인이었다. 그녀의 목엔 기묘한 빛을 머금은 황금색 보석이 박힌 목걸이가 있었다.


“성녀께서 그리 말씀하신다면야.”

“절 성녀라고 믿어주시는 겁니까?”

“당신의 권능을 보고 지식을 들은 순간 전 당신을 성녀의 환생이라고 믿기로 결정했습니다. 그거면 충분합니다. 다만 한 가지...”

“한 가지?”

“한 가지 결정해주셨으면 하는 게 있습니다.”

“무엇입니까?”

“저흰 제국과 아스트리아 중 어느 쪽을 지지해야 하는 겁니까?”


단순히 어떤 나라의 편에 설지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제국과 아스트리아는 단순한 국가가 아니라 신의 의도로 만들어진 하나의 거대한 조각이기에.


두 거대한 조각들이 충돌하려고 한다. 그리고 충돌은 언제나 격렬한 반응을 만들어낸다.


“어쩌면 우린 둘 중 누구도 지지하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용사께서 그리 말씀하셨습니까?”


케세리안 주교는 어떤 남자를 떠올렸다. 어느 날 불현 듯 자신의 앞에 나타난 신의 사자를.


스스로를 광신도로 칭한, 그 누구보다 신과 가까웠던 존재.


그를 알현함으로써 케세리안은 환생과 신에 대한 이야기를 진심으로 믿을 수 있게 되었다.


성녀는 어떤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다만 한 가지만은 확실합니다. 저희들은 인간의 편에 서게 될 것입니다.”

“그거면 됩니다.”


케세리안 주교가 빙그레 웃었다. 인간은 신의 창조물이다. 하지만...괴수 또한 신이 만들어낸 것은 같다.


어쩌면 자신들이 기다리는 초월자가 괴수 쪽에서 나타날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것만은 받아들일 수 없었다.


초월자는 괴수가 아닌 인간이어야만 한다. 비록 그 자가 괴수보다 흉폭하고 악마보다 간악하다 할지라도.


대방벽을 수호해온 인간의 긍지가 그리 말하고 있었다.


“용사께선 현재 무엇을 하고 계십니까? 대방벽에 고대의 기술을 조금씩 공급하고 계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만.”

“그분께선 조만간 엘프의 성지로 갈 예정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말을 들은 케세리안 주교가 안색을 굳히며 딱딱한 목소리로 말했다.


“설마. 오르니오의 초대가주를 만나러 가는 겁니까?”


성녀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움직이는 것은 바다의 표면만이 아니다. 그 깊고 깊숙한 곳. 심해의 밑바닥에서부터 폭발의 조짐이 일어나고 있었다.


*


유예가 끝났다.


알렌은 검 한 자루만을 쥔 채 대지의 경계에 섰다.


그의 앞으로 까맣게 죽은 대지가 지평선까지 펼쳐져 있었다. 풀 한포기, 벌레 한 마리조차 없는 진정한 몰살의 구현이었다.


“좆같군.”


도저히 욕을 안 하고는 버틸 수가 없었다.


땅도 땅이지만, 지평선 끝에 걸쳐있는 거대한 벽. 그 위로 끔찍한 죽음의 형상이 소용돌이치고 있었다.


오르니오의 직계이자 마스터의 경지에 오른 알렌이기에 그 모든 기운을 시각화해서 보는 것이 가능했다.


그렇기에 그만큼 기분이 더러웠다. 아는 만큼 보이는 법이고, 알렌은 아는 것도 보이는 것도 남들보다 압도적이었기에.


저긴 말 그대로 이 세계와는 다른 이계異界. 지옥 그 자체다.


비교가 안 되는 농도의 마나가 하늘과 땅을 꿰뚫고, 생명을 찍어 누른다.


적응하지 못하면 생존 자체가 불가능한 극한의 환경이다.


끔찍한 살의와 투쟁심이 공간을 왜곡시켰다. 벌써부터 괴수의 포효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코끝에 진한 피 냄새가 스쳤다. 그 피에 담긴 맹렬한 전투의 기록 또한.


[이번만큼은....나도 인정. 진짜 대박이잖아?]


육체를 잃었다곤 하나 그랜드마스터의 극한에 다다라 신 앞에 섰던 검왕이다.


저 방벽 너머에 존재하는 세계가 그의 눈에 담겼다.


[우리 때보다 더한데.]


황금의 시대에서조차 저 정도로 가능성이 해금되지 않았다.


장담컨대 저 안에서 태어나고 자란 놈들은 정말 강할 것이다. 강하지 못하면 진즉에 잡아먹혔을 테니까. 아니. 애초에 태어나질 못했을 것이다.


평범한 인간이라면 저기 들어가는 순간 죽는다. 이 까맣게 죽어버린 대지가 그것을 증명한다.


너무나도 강대하고 강렬한 기운은 조금도 생명체에게 우호적이지 않았다.


“망할.”


짜증 가득한 말을 내뱉으면서도 알렌은 경계를 넘어 발을 디뎠다.


작가의말

이것으로 인간계 편이 끝나고 다음 화부터 대방벽의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주인공...구를 때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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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6 환상수(2) +4 19.12.14 773 24 18쪽
135 환상수 +8 19.12.12 819 34 21쪽
134 건국왕(2) +7 19.12.10 824 37 19쪽
133 건국왕 +13 19.11.26 954 42 14쪽
132 공명(2) +7 19.11.23 973 39 1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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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방벽 +6 19.11.20 956 49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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