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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등록일 :
2019.04.01 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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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38,271

작성
19.11.09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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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글자
11쪽

193. 11막 3장 - 백룡의 길 (5) | Isaac

DUMMY

"글린다 양?"

"왜요? 저보고 살쪘다고 말하는 마법사님?"

제기랄. 어제부터 이 모양이다. 내가 말만 걸면 까칠한 반응을 보인다.

물론 내가 잘못했다는 건 알고 있다. 여자한테 살쪘다고 한 게 잘한 건 아니지. 그래도 그건 나름대로 정신을 깨워보려고 한 건데.

글린다를 바라보며 한숨을 쉰다. 머리를 긁적이며 모닥불을 바라본다.

"불이나 볼 정도로 할 일이 없으십니까? 그렇게 여유로우면 저 좀 도와주시면 안 됩니까?"

"싫어."

인테아 등산 닷새째. 백룡을 만나기까지 하루 남은 시점. 우리는 적당한 동굴에 모여서 새로운 하루를 준비하고 있다.

"너무하신 거 아닙니까? 제가 여러분을 위해 식사 준비하는 거 안 보입니까?"

그렇다. 에스나는 시키지도 않았는데 요리를 하고 있다. 그래 봤자 솥에다가 이것저것 넣고 끓이는 수준이지만. 참고로 저 솥은 이 휴식처에 놓여 있던 것이다.

"누가 하라고 했나?"

에스나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는다. 솥을 젓는 국자가 빨라진다.

"자꾸 그렇게 나오시면 안 드릴 겁니다."

"난 안 먹어도 상관없는데."

국자가 딱 멈춘다. 너무 신경을 긁어버렸군. 에스나가 고개를 들어 나를 바라본다. 쏘아보는 눈동자가 매섭다.

"왜?"

아무것도 모른다는 표정으로 에스나를 바라본다. 에스나는 혀를 차고 다시 솥에 집중한다.

"진짜 너무하십니다."

"아무나 한데 무겁다고 말하는 사람이라서 그래."

언제까지 저럴까. 글린다한테 이렇게 스트레스를 받을 줄이야. 진짜 말을 조심해야겠다.

글린다의 말이 불러일으킨 어색한 침묵. 에스나는 잠잠히 솥을 저을 뿐이다.

"다 됐습니다. 고기 스튜입니다."

에스나의 말이 얼어붙은 공기를 깨트린다. 에스나는 그릇에 스튜를 담아준다. 저 그릇과 국자도 휴식처에 있던 것이다. 다른 재료들도 있던 거고.

"잘 먹을게."

글린다가 나무 그릇을 건네받는다. 안에는 하얀 국물에 고기 조각이 조금 떠 있다.

"이게 스튜?"

숟가락으로 스튜를 뒤적이던 글린다가 입을 연다. 황당함이 묻어 나는 말이다.

"스튜라면 스튜인 겁니다. 재료도 부족하니 그냥 먹읍시다."

에스나는 내 몫의 그릇을 넘겨주며 대답한다. 그래. 재료도 부족하니 그럴 수 있지.

글린다도 별다른 말 없이 스튜를 먹기 시작한다.

고요한 식사가 시작되었다. 동굴 밖에서 들려오는 바람 소리가 잔잔한 음악이 되어준다.

"그냥저냥 괜찮네."

그릇을 깨끗하게 비운 글린다가 감상평을 남긴다. 에스나는 그 평가가 불만인지 눈살을 약간 찌푸린다.

"설거지는 어떻게 해?"

"밖에서 눈을 퍼 담아서 합니다."

에스나도 대답을 하며 그릇을 내려놓는다. 나는 마지막까지 그릇을 잡고 있다.

"그러므로 설거지는 아이작에게 맡기겠습니다."

"나?"

숟가락을 내려놓으며 에스나를 바라본다.

"네. 원래 마지막에 먹은 사람이 설거지하는 겁니다."

"그렇죠. 부탁할게요. 여자한테 무겁다고 하는 마법사님."

두 사람 죽이 척척 맞네. 어쩔 수 없겠다. 설거지하지 뭐. 처음 하는 거지만 문제없을 거다.

그릇에 남은 스튜라고 주장하는 음식을 마무리한다. 에스나와 글린다의 식기까지 챙겨 솥에 집어넣는다.

한숨을 쉬며 솥을 들고 자리에서 일어난다. 모닥불은 힘을 잃고 붉은빛만 겨우 내뿜는다.

"설거지하러 가십니까?"

불 가에 앉아 있는 에스나가 말을 걸어온다.

"하라며."

"예. 그럼 부탁하겠습니다."

그렇게 말하고 다 꺼져가는 모닥불을 바라본다. 글린다는 관심도 없다는 듯 돌아보지도 않는다. 화를 풀 방법이 필요하겠다.

나중에 생각하자. 일단 설거지부터. 묵직한 솥을 들고 동굴 밖으로 나선다.

폭풍이 많이 가라앉았다. 오늘은 편히 갈 수 있겠군. 그건 일단 설거지를 하고 생각하자.

차가운 바람을 맞으며 눈을 모아 솥에 집어넣는다. 맨손으로 눈을 잡아 벅벅 솥을 문지른다. 잘 닦이지는 않아도 대충 쓸 만은 해질 거다.

으으. 추워. 차가운 날에 차가운 눈을 만지니 손이 꽁꽁 얼어간다. 빨리하고 들어가자.

"저보고 살이 쪘다고 말한 마법사님. 이제 출발할 거에요."

제기랄. 그냥 부르면 되지 꼭 쓸데없는 말을 붙여버린다. 한숨을 쉬고 솥과 그릇에 남은 물기를 털어낸다.

"다 했어요!"

동굴을 바라보며 소리친다. 솥과 그릇들을 챙겨 안으로 들어간다. 에스나와 글린다는 배낭을 메고 출발준비를 모두 마친 상태다.

들고 있던 것들은 동굴 한쪽에 잘 내려놓는다. 벽에 기대놓은 배낭을 메고 밧줄을 허리에 두른다. 두 사람도 밧줄을 자기 허리에 튼튼히 조여 맨다.

"그럼 출발하겠습니다. 다섯 시간 정도면 정상에 도착할 겁니다."

"생각보다 빠르네?"

"폭풍이 줄어들어서 그렇습니다. 더 심해지면 늘어날 겁니다."

말을 마친 에스나가 앞으로 걸어나간다. 그 뒤를 따라 우리도 다리를 움직인다.

단단한 눈을 밟으며 산을 오른다. 확연하게 약해진 바람과 부딪히며 앞으로 나간다.

가끔 글린다가 휴식을 요청하면 에스나가 금방 휴식처를 찾아낸다. 육포를 씹으면서 잠시 쉬었다가 다시 걷는다.

지루하다. 그냥 걷고만 있다. 뭔가 말을 할 만한 분위기도 아니다.

"저기 에스나."

"왜요? 힘이 없어서 저처럼 가벼운 사람을 들고 무겁다고 하는 마법사님?"

이런 식이다. 뭔가 입을 열면 글린다가 날카롭게 끼어든다. 이제 그만해 줬으면 한다.

한숨을 쉬고 계속 앞으로 걸어간다. 글린다의 화를 푸는 건 나중에 생각하자. 몸을 쓰면서 생각을 하는 건 힘든 일이다.

점점 힘이 들기 시작한다. 호흡도 거칠어지고 다리도 무겁다. 꽤 걸은 거 같은데 언제 도착하려나.

"에스나! 언제 도착하는 거야!"

뒤쪽에서 글린다가 힘차게 외친다. 폭풍이 거의 멎어서 소리 안 질러도 되는데.

"이제 금방입니다. 한 시간도 안 남았습니다."

가끔 생각하는 건데. 에스나는 뭘 보고 시간을 측정하는 걸까? 현재 위치를 알만한 거라고는 바위와 눈뿐인데.

의문은 제쳐놓고 걸음을 옮긴다. 이제 하늘의 모습도 보이기 시작한다. 아직은 먹구름이지만 곧 파란 하늘이 나타날 것이다.

바람이 많이 줄어들었다. 눈은 아예 그쳤고. 올라가기 한결 수월해졌다.

"에스나. 배고파."

"점심은 정상에 도착해서 해결합시다."

에스나의 대답에 글린다가 혀를 찬다. 그 소리가 들릴 정도로 바람이 줄어들었다.

"에스나. 물 마시고 싶어."

"알아서 마십시오."

글린다는 나를 괴롭히는 것처럼 에스나를 괴롭히는 중이다. 에스나도 글린다를 보고 무겁다고 했으니 당연한 거지. 에스나도 지지 않고 열심히 반격하기는 한다.

에스나는 한숨을 내쉬고 앞으로 걸어간다. 글린다도 더 말을 걸지는 않는다. 그런 아슬아슬한 평화를 유지한 채 우리는 나아간다.

"에스나! 두 사람은 찾았나!"

아래를 보고 걷는 데 누군가 위쪽에서 소리친다. 고개를 들어 정상 쪽을 바라본다. 하얀 갑옷을 입은 백룡 기사가 서 있다.

"예! 찾았습니다!"

백룡 기사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바위 너머로 사라진다.

"도착한 거야?"

"네. 다 왔습니다."

생각보다 얼마 안 걸렸다. 30분 정도? 드디어 귀찮고 귀찮았던 등산이 끝이 났다.

백룡 기사가 사라진 바위까지 올라간다. 몸을 돌리자 모닥불을 피워놓고 앉아 있는 백룡 기사들이 보인다.

"백룡 기사 에스나. 아이작과 글린다를 데리고 도착했습니다."

보고를 마친 에스나는 몸에 묶인 밧줄을 풀어버린다. 나와 글린다도 에스나를 따라 밧줄을 정리한다.

밧줄을 배낭에 집어넣는 사이 백룡 기사 하나가 에스나에게 다가온다. 투구를 벗은 그 얼굴에는 서리가 끼어있는 수염이 달려 있다.

"다른 기사들은 전부 백룡과 만났네. 우리만 움직이면 돼."

"빠르게 하겠습니다."

윌턴의 말에 대답한 에스나는 우리를 바라본다. 빨리하라는 독촉이다. 한숨을 내쉬고 밧줄을 배낭에 쑤셔 넣는다.

"끝."

"그럼 바로 움직이세."

행동이 상당히 급해 보인다. 뭔가 문제라도 있는 걸까. 우리는 멀어져가는 윌턴을 따라 정상을 향해 걸어간다.

"윌턴 씨. 궁금한 게 있는데요."

뒤쪽에서 따라오는 글린다가 가장 앞의 윌턴에게 질문을 던진다.

"질문하게나."

윌턴은 뒤도 돌아보지 않으면 말을 꺼낸다.

"백룡은 어떻게 생겼나요?"

내가 본 백룡은 하얀 머리카락의 청년. 원래 모습은 아니었지만, 상당히 인상에 남는다. 일단 나한테 공부를 가르친 악의 축이기도 하고.

"백룡은 거대한 드래곤의 모습을 가지고 있지. 드래곤이 어떻게 생겼는지는 알고 있겠지?"

"만나기도 한 걸요."

톨 레이나에서 만났지. 생각보다 약했지. 그때 쓴 천사의 세레나데를 생각하니 속이 쓰리다.

"백룡은 하얀 드래곤이라고 생각하면 편할 걸세."

하얀 드래곤이라니. 정말 백룡이구나.

"편의상 백룡이라고 부르지만, 본명은 카슈라마즈지."

"이름도 있어요?"

"대부분의 지성체는 이름이 있지. 자네가 이름이 있는 것처럼."

글린다는 잘 모르겠다는 표정을 짓는다.

"직접 보면 알게 될 걸세."

윌턴은 말을 잇지 않는다. 그저 묵묵히 앞으로 걸어갈 뿐이지.

하늘이 파랗게 변해간다. 먹구름들이 멀리 흩어진다. 햇빛이 얼어붙은 인테아에 내려온다. 멋진 풍경이다.

"자. 다 도착했네."

앞서가던 윌턴이 멈춰 선다. 넓게 펼쳐진 평원이 눈앞에 나타난다. 깔린 눈들이 햇빛을 반사한다. 눈이 좀 따갑다.

"우와. 장난 아니네요."

글린다는 주변을 둘러보며 감탄을 표시한다. 확실히 장난 아닌 풍경이지. 뭔가 설명을 하고 싶지만, 표현력이 부족할 정도다.

"카슈라마즈! 당신의 종이 이 자리에 모였습니다!"

윌턴의 외침이 넓은 평원에 퍼져나간다. 그리고 하늘에서 강한 바람이 불어온다.

"으윽."

글린다가 신음을 내뱉으며 팔로 얼굴을 가린다. 이 바람은 자연적인 바람이 아니다. 강했다가 약했다가 하는 것이 규칙적이다. 마치 날갯짓처럼.

날갯짓? 백룡은 드래곤이고 드래곤은 날개가 있지. 눈을 가늘게 뜨고 하늘을 올려다본다.

작고 하얀 점이 보인다. 이쪽으로 다가오는지 점점 커진다. 먼지 크기에서 눈동자 크기로. 눈동자 크기에서 주먹 크기로. 머리 크기만큼 커졌을 때는 그 모습이 확실하게 보인다.

양쪽으로 펼쳐진 거대한 날개. 기다란 목과 꼬리. 강철보다 단단해 보이는 팔과 다리. 백룡이 우리에게 날아오고 있다.

"마법사님! 저 좀 잡아줘요!"

날갯짓 소리가 들릴 때쯤에는 글린다가 휘청일 정도로 바람이 강해졌다. 다가오는 백룡은 훨씬 커졌고.

글린다를 붙잡으며 백룡을 바라본다. 가까워진 백룡은 크기를 짐작할 수 없을 정도다. 톨 레이나에서 본 드래곤 보다 두 배는 커 보인다.

그 거대한 몸집이 우리 앞에 내려앉는다. 그 동작만으로도 주변에는 폭풍이 일어난다. 눈송이가 사방으로 휘날린다.

"왔구나. 아이들아."

꿈속에서 들은 것과는 다른 목소리. 땅을 진동시키며 전신으로 느껴지는 목소리.

"오랜만입니다. 카슈라마즈."

카슈라마즈는 거대한 얼굴로 우리를 바라본다. 대검 같은 이빨과 얼음 같은 눈동자가 보인다.

"그래. 그럼 한 번 이야기를 나눠보자꾸나."

차가운 눈동자가 나를 향한다. 아. 이런 존재랑 이야기 나누고 싶은 생각은 없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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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 201. 12막 2장 - 마법의 끝을 본 자 (1) | Isaac +2 19.11.19 63 5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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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 199. 12막 1장 - 백룡의 몰락 (3) | Isaac +2 19.11.16 90 5 12쪽
198 198. 12막 1장 - 백룡의 몰락 (2) | Glinda +2 19.11.15 72 5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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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 194. 11막 3장 - 백룡의 길 (6) | Isaac +2 19.11.11 70 5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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