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트한 옴니버스인 죄와 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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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법군
작품등록일 :
2019.04.01 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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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8.04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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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5.25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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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9화

DUMMY

말이 없는 무명을 대신해서 장부가 연맹의 입국 담당자에게 절차에 따라 차례대로 수속을 밟았다.

그 와중에 국경 경비들에게 전서구로 정기 보고를 받은 후부터 연맹에 이르기까지 어느 정도 시간이 걸렸는데, 장부 일행이 연맹 지부가 아니라 곧바로 연맹 본부에 도달할 수 있었던 것에 대해 의문을 품긴 했지만 말이다.


“하, 하하하! 그 부분에 대해서는 일행들의 비밀이 있는지라 부디 이해해주시기 바랍니다!”


말은 적을수록 좋다고 하던가, 비밀이 많은 자에게 함부로 이것저것을 캐물으려 하는 것은 무인들에게 있어서 결코 좋지 않았기에 입국 담당자는 그러려니 넘어갔다.

그렇게 연맹을 빠져나온 장부와 무명은 다시금 시우가 있는 객잔을 향해 걸어가려 했다.


“···멈춰라. 소졸, 무명.”


무명은 그렇다쳐도 장부의 예전 이름인 소졸인 것을 꺼내서 멈춰 세운 것은 본 적도 없는 평범한 남자였다.

그러나 그 남자에게서 뿜어지는 의도적인 살기에 장부도 무명도 경계하고 있을 무렵이었다.


“어허··· 감히 이곳이 어디라고! 이 몸이 대력창 양산박인 줄 알고 이토록 흉흉한 살기를 피우려 드는 건가!”


애창을 등에 짊어진 채 성큼성큼 다가오는 근육질의 중년 무인, 양산박이 장부와 무명에게 다가오며 시비를 걸고 있는 남자를 번갈아 보았다.


“비록 무슨 일인지 모르겠으나 정 소란을 피우겠다면 이곳이 아닌, 다른 곳에서 해주게!”


그렇게 양산박이 장부와 무명, 그리고 의문의 남자를 중재하려 했고, 점차 이목이 집중되자 의문의 남자는 혀를 차며 조용히 말했다.


“···쳇! 할 수 없지, 따라 와라.”


결국 장부와 무명은 의문의 남자를 따라 연맹을 벗어나고, 저잣거리를 가로질러서, 언젠가 본 적이 있는 것 같은 익숙한 뒷골목으로 걸어가더니 급기야 만유성 외곽에 있는 작은 숲에 도달하게 되었다.


“···언제까지 걷는 거야? 이제 슬슬 인피면구를 벗고 정체를 밝히시지?”


줄곧 잠자코 걷기만 하던 장부가 말하니, 앞서 가던 남자가 말 그대로 얼굴을 뜯어내니 전혀 다른 남자의 얼굴이 드러났다.

인피면구 아래에 가려진 맨 얼굴에 커다란 십자 상처가 새겨진 그 남자를 본 장부는 입술을 깨물며 중얼거렸다.


“···자네였나, 만침살.”


드러난 이의 정체는 만 개의 침을 다루어 상대를 죽이기에 붙어버린‘만침살’이라는 별호를 지닌 남자.

특징이라고는 얼굴에 커다란 십자 모양의 상처가 유일하며, 그조차 인피면구로 가려진 탓에 확인이 어렵고, 이름이 알려지지 않아 은밀하게 움직이기 용이한 일류 살수였다.

그의 정체를 파악한 장부가 조용히 침을 삼키며 말했다.


“···이제 알겠군. 서방국에서 우리들의 일이 단주께 알려진 모양이지?”

“그렇다. 그 동안 아무런 소식이 없다가 최근 연맹으로 끌려온 바보 같은 놈들이 있어서 말이야···.”


일류 살수인 만침살은 일반인으로 변장하여 온갖 감정이나 기를 지운 채 독을 바른 침을 찌르는 것으로 암살을 성공시킨다.

그러나 장부와 무명 앞에 선 만침살은 살기를 지우지 않았다.

그것을 깨달은 장부는 만침살이 얼굴을 드러낸 순간부터 긴장하고 있었다.


“자네 정도라면 우리 둘을 만난 시점에서 아무 망설임 없이 죽였을 텐데, 그러지 않은 걸 보면··· 뭔가 이유가 있는 모양인가?”

“···단주의 명이다. 연맹에 끌려간 놈들은 죽이되, 끌려가지 않았던 놈들은 데려오라더군.”


그 말을 들은 무명은 크게 놀라며 거구임에도 재빨리 도망치려 했다.


“이 바보···! 움직이지 맛!”


장부가 신속하게 무명의 팔을 잡아채고 멈추려 들자 만침살에게서 한층 더 살기가 피어올랐다.

그의 손에는 수십 개에 이르는 미세한 침들이 있었고, 조금이라도 멈추는 게 늦었다면 장부로서는 그 앞을 상상하고 싶지 않았다.


“후후후··· 안타깝군, 정말 안타까워. 무명 놈이 그대로 도망갔더라면 단주의 명과 상관없이 내 독단으로 죽였을 텐데 말이지?”


장부는 알고 있었다.

월영단 내부에서 만침살은 일류의 살수이면서, 월영단주조차 인정하는 쓰레기 처리반이었다.

아마 연맹에 끌려갔다는 놈들도 만침살에 의해 살해되고, 증거는 아무 것도 남지 않은 채 여유롭게 일반인이나 무인 틈으로 섞여 들어갔으리라.


“도망쳐라, 저항해라! 월영단의 명예를 더럽힌 놈들에게 처벌을, 그리고 그런 그들이라도 단주는 유용하게 써먹을 수 있도록 조치를 취하겠지.”


동방국에서는 일반적으로 살수는 무인에 비해서 약하다는 인상이 있지만, 월영단 중에서도 일류 살수인 만침살은 개인으로도 다수의 월영단 무인을 제압할 수 있을 정도로 출중한 실력을 지닌 고수이기도 했다.

설령 만침살이 양 손에 침을 들고 있지 않다고 해도 장부와 무명으로서는 변변치 않은 저항조차 제대로 할 수 없었으리라.


“···부디 살기를 거둬주게. 잠자코 자네를 따라가서 단주님을 뵙도록 하지.”


그러자 만침살은 양 손에 있던 침들을 거두며 불만스럽다는 듯 혀를 찼다.


“쳇. 역시 그렇게 나오는 건가? 정말 시시하군.”


결국 장부와 무명으로서는 죽기 싫으면 얌전히 만침살을 따라가야 했다.

한편으로는 아직까지 객잔에서 기다리고 있을 시우에게 미안하다고 생각하지만, 장부로서는 이것도 어떤 의미에서는 당연하다면 당연한 결과였다.


“···어차피 나나 자네나 이렇게 될 운명이겠지. 월영단주에게 거스른다면 실력을 막론하고 일방적으로 지워지는 인생···.”

“갈! 나는 네놈들 같은 패배한 쓰레기가 아니다! 그러지 않기 위해서 지금도 살기를 억누르면서 단주에게 네놈들을 데려가는 중이란 말이다!”


신경질적으로 대답하는 만침살이었지만, 그토록 강하다고 조직 내부에서 정평이 난 그여도 월영단주에게만은 두려움을 느끼고 있었다는 게 장부로서는 웃길 따름이었다.

그야말로 천외천.

세상은 넓고, 고수는 많았다.


“여기가 이번에 정해진 은신처다.”


만침살에게 안내받은 곳은 숲 속 외곽에 지어진 조그만 오두막이었다.

겉보기에는 그리 크지 않은 은신처였지만, 그토록 흉흉한 살기를 흩뿌리던 만침살이 안내한 곳인 만큼 장부와 무명은 장난일 가능성은 없으리라 판단하고 오두막의 문을 열었다.


“···어, 아니?!”


바깥에서 본 오두막의 크기와는 전혀 다른 내부.

마치 유령에게 홀린 것 같은 생각마저 할 정도로 내부는 수십, 아니 수백 명이 족히 드러누워도 될 정도로 드넓은 공간이었다.

그렇게 끝없이 펼쳐진 공간 속에서 누군가의, 아니 어느 여성의 목소리가 들렸다.


“···호오? 난 또 누군가 했더니 너희들, 아직까지 살아있었니?”

“···소졸과 무명, 부단주님을 뵙습니다.”


장부와 무명이 무릎을 꿇자 그들의 그림자 속에서 솟아오르는 검은 계통의 음침한 여성, 니제르 하우사였다.

그렇게 등장한 니제르가 말없이 손가락을 튕기자 장부와 무명은 그 자리에서 완전히 모습을 감추게 되었다.


“여, 여긴?!”


그 직후, 장부는 주변의 풍경이 바뀐 것을 알아챘다.

그런 감각은 마치 그 이능작가라는 진수련이라는 여인이 이동시킬 때와 똑같은 감각이었다.

그곳은 어느 고귀한 자의 사무실처럼 소소하지만 정갈하게 정리정돈이 되어있는 방이었다.


“월영단주, 당신이 일전에 명령했던 그 부하 놈들이야.”


어느 새 옆에 서 있는 부단주, 니제르의 말에 장부와 무명은 이제껏 겪어본 적이 없을 정도로 극도로 긴장했다.

탁자에 놓인 차를 홀짝이고 있는 여유로워 보이기까지 한 청년, 그가 월영단주였다.


“호오? 설마하니 소졸, 무명. 자네들이 살아남았을 줄이야. 의외로군.”


네모반듯한 무테안경을 쓴 약관에서 이립 사이의 시원스런 표정의 깔끔한 도포 차림의 젊은 청년.

비록 실눈이긴 하지만, 그의 눈빛은 무릎을 꿇고 있는 장부와 무명에게 향해 있었다.


“서방국의 일은 만침살에게서 대략적으로 전해 들었네. 실패했다면서?”


그 한 마디에 무명은 전신이 덜덜 떨리고, 이가 딱딱거렸다.

커다란 덩치가 특징인 무명이었지만, 월영단주의 기백은 그보다 수십 배는 족히 넘어갈 정도로 거대하고 거스를 수 없었다.

마치 눈빛만으로 사람을 말려죽일 것 같은 기세였기에 옆에서 가만히 듣고 있던 니제르가 비꼬는 것처럼 말했다.


“아~ 아~ 이렇게 겁만 주다가 죽이려고? 아니잖아, 그치?”

“앗, 아하하! 그렇지, 부단주 말대로 진정해야겠지. 자네들에게도 미안하네, 미안해. 아까는 고의가 아니었네.”


마시던 차를 탁자에 내려놓고 자리에서 몸을 일으킨 월영단주.

겉으로 보기에는 순박한 인상의 서생이었을 테지만, 장부나 무명에게는 그야말로 명부를 들고 있는 사신이 다가오는 것과 다름없는 상황이었다.


“소졸, 무명. 서방국에 잡히지 않고 줄곧 살아남은 자네들이기에 뭔가 유용한 정보가 있겠지?”


월영단주가 말하는 그 유용한 정보한 바로 불로불사에 대한 것을 말한다.

이미 국내에서, 즉 동방국에서 수집할 수 있는 자료는 전부 수집했고, 조사한 마당에 남은 것은 서방국과 북방국, 남쪽 위험지대 뿐이었다.

하지만 북방국은 기이하게도 아무런 정보도 접하지 못하였으며, 남쪽 위험지대는 마물과의 싸움만으로도 충분히 벅찬 상황이었다.


“···최근 들어서 서방국의 어떤 협력자가 배신을 한 마당이라 내 기분이 무척 좋지 않다네.”


장부와 무명으로서는 서방국의 어떤 협력자가 누구인지 모르겠지만, 하필 월영단주의 심기를 건드려서 이토록 가시방석에 앉히게 된 것에 큰 원망을 품었다.


“애초에 자네들에게 내린 명령은 물자 확보를 빙자한 정보 수집이란 말이지? 귀중한 물자를 확보할 정도로 유능한 상인이라면 다양한 정보를 갖고 있을 테니 말이야.”


그 결과에 부합되는 게 그 당시 소재가 얼마 없었던 먀우였지만, 장부와 무명은 그 상인 대신 손님이었던 가나에게 눈독을 들인 탓에 화를 피했고, 결과적으로 지금의 상황에 처하게 되었으니 이것을 두고 불행인지, 다행인지 모르겠다.


“나는 연이은 실패에 심신이 지쳤다네. 자네들에게만큼은 부디 좋은 소식을 듣고 싶은데 말이지? 응?”


그렇게 말하는 월영단주가 양 손으로 두 사람의 목을 움켜잡았다.

아직까지는 저마다 목을 붙잡히기만 했으며, 월영단주 또한 힘을 줘서 조르지는 않았다.

그러나 장부와 무명은 그 이후의 일에 대해 별 다른 상상을 하지 않아도 예견할 수 있었다.


“···우선 무명, 내게 말해보게.”

“죄, 죄소오오옥···?!”


무명의 목이 월영단주에 의해 조여졌다.

월영단의 정점에 군림하는 지배자의 악력은 일반적인 무인들로는 절대로 버틸 수 없을 정도로 가공할 힘이 담겨져 있었으며, 이는 커다란 덩치와 그에 비례하는 힘을 자랑하는 무명이 전력을 다해 풀어내려 버둥거려도 한 치의 흔들림조차 없었다.


“죄송하다든가 미안하다든가 면목이 없다든가 아무런 수확도 없었다는 말일랑 할 생각도 말게. 그럼 이번에는 소졸, 자네는 어떤가?”


이름을 불린 장부는 옆에서 괴로워하는 무명을 바라보았다.

죽음의 문턱에 점차 가까워지면서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살아남기 위해 버둥거리는 동료의 모습을 말이다.

장부는 이를 악물고 전신의 내력을 내뿜으며 소리쳤다.


“내 이름은 소졸이 아니라 대장부다! 이 빌어먹을 서생 자식아!”


그렇게 무명의 목을 조르는 월영단주의 손을 걷어차는 장부.

그건 마치 모기가 깨무는 것처럼 보잘 것 없는 공격이었지만, 장부가 갖고 있는 의지와 동료애를 보여주는 일격이었다.

어차피 죽을 거라면 적어도 무명을 구하고픈 그의 소망을 엿볼 수 있었다.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네만, 잘 알겠네.”

“커, 커헉?!”


그렇게 장부 또한 일방적으로 목을 졸리며, 무명과 같은 고통을 느끼게 되었다.

갑작스럽게 숨이 막히고, 점차 목이 부러져 나가는 극강의 고통.

하지만 그런 그들의 괴로운 감정에 대해 아무런 감흥도 없는 월영단주는 안타깝다는 듯 말했다.


“···실망이군, 정말로 실망이야. 설마 그 비좁은 산림촌에서 자네들을 구해준 보답이 겨우 이 정도라니.”


월영단주가 과거를 회상하며 그들의 목을 단번에 부러뜨리려 하자 옆에 있는 부단주, 니제르 하우사가 끼어들었다.


“···멈춰라, 월영단주.”


그러자 본인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놀랍게도 두 손에 힘이 빠져나가는 월영단주.


“무슨 짓이지, 부단주.”

“···그렇게 나한테까지 살기를 보내지 말라고? 잠시 확인하고 싶은 게 있으니 말이야.”


아직까지 월영단주의 손에 잡혀있는 장부와 무명의 머리에 손을 짚는 니제르.


“···역시 기분 탓이 아니었어. 문장력이 느껴져. 그것도 나와 동등한 수준의 강력한 문장력이야.”

“···문장력이라니, 이 녀석들에게?”


그러자 두 사람을 내려놓는 월영단주.

그대로 의식을 잃고 쓰러지는 장부와 무명.


“아니, 딱히 이놈들이 이능작가라는 게 아니야. 아마도 외부에서 문장력을 강제로 주입당한 걸 테지··· 내가 한 것처럼 말이지.”

“···그럼 이놈들이 무언가의 정보를 얻고서 문장력으로 입막음을 당했다는 소리인가?”

“그럴 수도 있고, 전혀 아닐 수도 있겠지만, 자세한 건 이놈들에게 걸려있는 문장력을 강제로 해제시켜야 알겠지.”


그 말에 월영단주는 흐트러진 안경을 고치며 냉정하게 물었다.


“···얼마나 걸리지?”

“나와 동등한 수준이긴 해도 어쩐지 경험이 얕아. 아마 하루 정도만 수고를 들이면 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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