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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모전참가작 라이트한 옴니버스인 죄와 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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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법군
작품등록일 :
2019.04.01 10:17
최근연재일 :
2019.08.04 06:00
연재수 :
130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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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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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753,5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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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7.09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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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제104화

DUMMY

과거의 기억이 없는 건 불편했다.

내가 누군지 모르고, 어떻게 살아왔고, 무엇을 목표로 했었는지도 몰랐으니 말이다.

하지만 내 행동이나 성격이 무의식중에 나타난 걸까, 다소 불편했어도 그다지 상관없어졌다.

내 기분이 내키는 대로, 자유롭게 곳곳을 여행하면서 살아가는데 별 지장이 없었으니까.


“사, 사람 살려! 누가 좀, 살려주세요···!”


그 당시에도 나는 남쪽의 숲 속 같은 곳을 적당히 돌아다니면서 아영 장소를 찾기 위해 주변을 서성거리고 있었다.

그러던 중 문득 느끼게 된 위화감, 그것은 내가 평소에 들어본 적이 없는 생소한 ‘언어’였다.


“으, 으악?! 어딜 만져, 어딜 만지냐고! 저리 가! 저리 가라고!”


비록 숲 속이긴 해도 막연하게 듣기로는 그리 멀지 않은 곳이었다.

적당히 청각과 직감에 의지한 채 수풀을 헤치며, 나아가자 도움을 요청한 곳에 도달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본 것은 검은 머리의 특이한 복장을 한 남자애가 고블린 무리에게 좋을 대로 다뤄지고 있었다.


“살려, 살려 주세요! 제발! 살려, 으아아?!”


비록 과거의 기억이 없는 나로서는 오로지 상식에만 의지한 채 그 상황을 보고 뭐라고 해야 할지 망설여졌다.

고블린은 이 세계에서 아인이면서 마물로도 분류되는 지능이 무척 낮고 원시적인 종족으로서 각 개체는 크기에 차이가 있을지언정 매우 약하다.

몇 마리가 모인들 무기를 들고 위협만 해도 도망치기 마련인데, 그 남자애는 무기도 없었고 집단으로 모여있는 고블린들에게 좋을대로 희롱당하는 걸 보면 무척 수상쩍게 보였다.


‘혹시 고블린들을 사역해서 희롱당하는 척으로 지나가는 모험가를 낚으려는 수법인가?’


고블린은 지능이 낮은 탓에 마법으로 쉽게 사역을 당해서 대개는 노예나 미끼로 쓰이는 경우가 많은 걸 생각하면 가능성 자체는 충분히 있을 법했다.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기에는 저 남자애의 말이나 표정, 행동 등에서는 진정성이 느껴지기도 했고, 덮치고 있는 고블린들도 진심처럼 보이는 것 같은데 말이지.


“아야야야! 깨물지 마! 깨물지··· 히익?! 저, 저리가! 그거 치워! 으, 으아아?!”


앗, 고블린 여러 마리가 힘을 합쳐서 꽤 커다란 바위를 들어올렸다.

아마 저 바위로 남자애를 기절시킬 작정인가 보다.

그보다 이 쯤 되니 슬슬 장난이나 속임수의 영역을 넘어가는 것처럼 보이는데?

더 큰 일이 일어나기 전에 내가 나서야겠다.


“피어(공포).”


인간이나 아인에게는 효과가 약하지만, 들짐승이나 지능이 낮은 마물에게는 효과가 큰 ‘피어(공포)’는 불필요한 싸움을 피하게 하는 유용한 마법이다.

특히 모습을 숨긴 상태에서 갑작스럽게 발하는 이 마법은 고블린들에게 강력한 효과를 끼치며 남자애를 덮치려던 행동을 일시에 중단시키는데 성공했다.

그렇게 고블린 중 한 녀석이 도망가자, 나머지 고블린들도 겁에 질린 채 남자애를 두고 다들 도망가기 시작했다.


“하하하! 꽁무니 빠지게 도망가는 꼴이라니, 웃기지 않··· 어, 어라?”


그런데 어째서인지 고블린들에게 둘러싸였던 남자애도 기절해 있었다.

고블린들에게 죽을지 모르는 상황이라 그런 건지, 아니면 내 피어(공포)의 영향을 받아서 그런 건지 모를 일이지만, 덕분에 이대로 두고 가는 게 껄끄러워졌다.


“으음··· 이거 난감하게 됐네. 하필 기절할 줄이야.”


나는 그 남자애를 등에 짊어지고, 다시금 수풀을 헤치며 나아갔다.

그리고 쉴 곳을 찾는 와중에도 남자애가 오히려 함정의 미끼인 것은 아닐지 염두에 두기 시작하자 갑자기 생각하는 게 귀찮아졌다.

비록 이 모든 것이 함정이라 해도, 나는 아무런 문제도 없을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뭐, 어떻게든 되겠지. 정말 이게 함정이라면 그 장본인을 흠씬 두들겨 패주면 될 뿐인 일이니까.”


그렇게 생각하며 남쪽의 숲 속을 빠져나오니 넓은 들판이 나타났다.

인기척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자연 그대로의 상태라 정비가 안 된 수풀이 들쭉날쭉 했었지만, 오히려 이 점이 남자애를 눕힐 수 있는 침대 역할이 될 것이리라.


“읏차. 어디 보자, 다친 곳은··· 그다지 없어 보이고, 그냥 기절한 거니까 조금만 놔두면 멋대로 일어나겠···.”

“···으, 우와아아악! 살려주세요! 살려주세요! 살려주··· 세··· 요?”


어지간히도 무서웠던 탓일까.

남자애는 얼마 지나지 않아서 얼굴이 파랗게 질린 채 다시 깨어났다.

그리고 나를 보면서 서서히 침착해지는 지 조용해졌다.


“안녕?”

“···아, 안녕, 하세요.”


남쪽 숲에 온 지 며칠 만에 사람과 대화를 해봤다.

좀 특이한 차림의 이상한 남자애였지만, 그래도 타인과 대화를 할 수 있는 게 마냥 기쁘기만 한 건 아니다.

이 남자애의 정체라든가, 고블린들에게 습격 받는 이유 등도 궁금하고, 무엇보다 어떻게 남쪽에 있을 수 있는 지가 의문이었다.


“···저기, 아까 그 괴물들은··· 아직도 근처에 있나요?”

“아아, 고블린들? 죽이기 귀찮아서 겁을 줘서 도망치게 했어.”


내가 ‘죽인다’는 말을 입에 담았던 순간, 남자애가 잠시 움찔하며 경계했다.

혹시 나를 나쁜 사람 내지 수상한 사람으로 여기고 있을 지도 모르겠다.

시제로 나도 이 남자애를 의심하고 있는 상황이니 말이다.


“뭐 일단 자기소개부터 하자, 내 이름은 ‘가나 아칸’이라고 해. 너는?”

“···‘이시우’라고 합니다.”


이시우라니, 좀 특이한 이름이네.

확실한 건 내 이름을 듣고도 놀라지 않는 걸 생각하면 서방국 사람은 아니라는 거다.

그러고 보니 동방국 사람들이 비슷한 형식의 이름이었던가?


“응, 그렇구나. 그럼 어떻게 불러야 하지? 나는 가나라고 불러도 되고, 아칸이라고 불러도 되고, 아무래도 상관없지만 말이야.”

“···그, 그럼 저는 그냥 편하게 ‘시우’라고 불러주세요, 가나··· 씨.”


새삼스럽지만 이시우, 아니 시우에 대한 호기심이 끊이지 않았다.

평소라면 그러려니 하고 넘어가거나 무시해야 할 텐데, 상식 밖의 만남이 의외로 강렬한 탓일까.

예상 외로 시우에게 흥미가 생겼다.


“그럼 시우야, 아까 전에 고블린들에게 습격을 당하고 있었는데··· 이 그렇게 된 건지 이유를 물어도 될까?”

“저, 저도 잘 모르겠어요. 저는 그냥 학교가 끝나고 집으로 가는 도중에 갑자기 주변 경치가 바뀌면서 그··· 고블린이라는 괴물들 위로 떨어졌는걸요.”


나에게는 시우의 말이 거짓말처럼 들리지도 않았고, 그렇다고 진실이라고 단정 짓기에는 상황이 너무나 어이없었다.

설마하니 인간이 남쪽에서 집을 짓고 살 수 있을 리도 없을 테고, 이건 혹시나 누군가의 소환마법에 당해서 함정에 빠진 걸까?

그렇다면 이 주변에서, 혹은 남쪽에서 소환마법을 다룰 만한 종족은 끽해야 마녀들 정도겠지만···.


“뭐, 아무튼 운이 안 좋았다고 생각하렴. 그런데 아까 집에 가는 중이라고 했었지, 위치가 어디야?”

“앗, 네. 제 집 주소는···.”


그 직후 나는 내 귀를 의심해야 했다.

처음 듣는 장소, 처음 듣는 지명, 내가 그 동안 느꼈던 위화감이 이제야 확실해졌다.

아무리 나라고 해도, 과거의 기억이 없는 나라고 해도, 시우에게서 들은 말들은 이 세상의 것들이 아니었다.

나는 ‘문장력’ 덕분에 시우의 목소리와 언어를 간단하게 인식할 수 있어도 독자적인 의미나 뜻은 알 수 없었다.

결국 시우의 알아들을 수 없는 집의 지명이나 위치를 도중에 끊어야 했다.


“···아, 응. 있잖아, 시우야? 도중에 말을 끊어서 미안한데, 어떻게 된 일인지 알 것 같으니 내게 조금만 시간을 줄래?”

“···엑? 네···.”


만일 이게 마녀들이 심심풀이로 벌이는 질 나쁜 장난이나 실험이 아니라면, 남아있는 가능성은 하나 밖에 없었다.


‘서방국의 기나긴 역사를 통틀어도 그 발견과 수가 한 손에 꼽을 정도로 적다고 알려진 이계로부터의 역소환··· 즉 ‘이계인’인가···?!’


평범하게 생각하면 결코 떠올릴 수 없는 가능성.

그러나 하필 내가 알고 있는 지인 중에는 시우와 같은 처지의 사람이 한 사람 정도 있었기 때문에 지금과 같은 가능성을 떠올릴 수 있었다.

무엇보다 이계인일 가능성을 제외하면 더 이상 타당한 이유가 떠오르지도 않으니까 말이다.

문제는 시우에게 이 현상을 어떻게 설명하면 되는 지였다.


“음··· 시우야, 혹시 이 세상에는 방금 전 고블린들처럼 평소에 상상도 할 수 없는 온갖 놀랍고 신비한 것들이 돌아다니고 있다고 하면 믿어줄 수 있니?”

“···아, 아니··· 그런 걸··· 갑자기 말한들···.”


역시 믿어주지 않는다.

시우가 어떤 세계에서 소환된 건지 모르는 이상 되도록 피하고 싶었지만, 여기에서는 겁을 먹게 하더라도 확실하게 설명해야 할 것 같다.


“그럼 마법은 알고 있니, 내가 지금부터 네 앞에서 마법으로 불을 피워볼게.”

“에, 엑···?!”


근데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좀처럼 감이 안 잡히네.

우선 화력은 대충 모닥불을 피울 때 정도로 해볼까.


“플레임(화염).”


나의 체내에서 연소된 마력이 한 순간에 불꽃으로 바뀌어서 손바닥 위로 타올랐다.

그리고 그걸 멍하니 바라보고 있는 시우가 걱정스러웠다.

과연 시우는 마법을 접하고 어떻게 받아들일까, 혹시 그대로 기절하거나 졸도하는 게 아닐까.


“괴, 괴, 괴···.”


괴물, 이라고 불리기라도 하면 역니 나라도 마음이 아프다.


“괴, 굉장해요! 대체 뭐죠, 이거?! 설마 정말로 마법?!”


어쩐지 다른 의미로 예상외의 반응이긴 하지만, 적어도 겁을 먹거나 풀죽는 것보다는 낫겠지.


“으, 응. 일단은 마법을 알고 있는 것 같아서 다행이네. 지금 시우가 보고 있는 것처럼 이 세계는 고블린 같은 마물도 있지만, 이렇게 마법을 사용할 수도 있는 세계란다?”

“서, 설마··· 이, 이세계 소환?! 내가?!”


어라, 설마 시우가 이계로의 소환까지 알고 있을 줄은 몰랐다.

아니지, 잠깐만··· 이세계? 뭔가 한 글자가 더 많은 것 같은데?


“혹시 가나 씨가 저를 부른 겁니까?!”

“···나? 아니, 아냐. 내가 그런 걸 할 수 있을 리가 없잖아? 설령 할 수 있다고 쳐도 내가 마녀도 아니고, 너 같은 남자애를 고블린들에게 내던져서 희롱당하는 걸 감상하는 악취미는 없다고?”


그렇게 생각하면 마녀들이 범인이라고 단정 지을 수도 없겠다.

다른 것도 아니고 무려 이계로의 소환이라니, 나는 물론이고 설령 남쪽 숲에 사는 모든 마녀들이 한데모여서 달려든다고 해도 이계로의 소환 같은 게 가능할 리가 없다.

어쩌면 시우는 데우스 신의 장난이라든가, 심심풀이 때문에 이곳으로 소환된 걸지도 모른다.


‘···그렇게 따지면 데우스 신의 취향이··· 아니, 이런 건 신성모독에 들어가니 깊게 생각하지 말자.’


아무튼 지금은 그런 걸 생각할 때가 아니라, 시우를 안심시켜서 좀 더 정보를 모아야 했다.


“아마도 시우는 전생에 무슨 대죄라도 저지른 건지 운이 엄~청 안 좋아서 이곳에 소환된 모양이야.”

“···엑, 설마 그 정도인가요···.”


앗, 설마 내 나름대로 안심시키려던 게 아예 시우의 기를 죽여 버린 것 같다.


“하, 하지만 그렇게 기죽을 필요는 없어! 지금은 당장 네가 원래 세계로 돌아갈 수 있을지 없을지는 몰라도, 너에게 도움을 줄 수 있을 만한 지인을 개인적으로 알고 있으니까! 그 사람한테 간다면 뭔가 방도가 보일 거야!”

“아··· 그, 그런가요. 가, 감사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시우를 데리고서 조금이라도 빨리 남쪽 위험지대의 경계를 빠져나가야겠다.

남쪽의 일부 아인들이나 대부분의 마물들은 인간이라면 적대 의식이라든가 먹이 등으로 사족을 못 쓰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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