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지

 공모전참가작 라이트한 옴니버스인 죄와 벌

웹소설 > 일반연재 > 라이트노벨, 판타지

스법군
작품등록일 :
2019.04.01 10:17
최근연재일 :
2019.08.04 06:00
연재수 :
130 회
조회수 :
2,982
추천수 :
25
글자수 :
753,562

작성
19.07.13 06:00
조회
19
추천
0
글자
13쪽

제108화

DUMMY

‘오늘로 벌써 몇 주째더라, 일주일이 넘어간 건 확실한데 자세한 날짜는 까먹었다.’


그래도 다행인 건 시우랑 점장이 정신을 차리고 일상으로 돌아갔다는 점이다.

그리고 미셸의 일에 대해서는 위안이 될지 모르겠지만, 돈을 좀 보내주기로 했다.

물론 내 지갑에서 나가는 게 아니라 마족 숭배자 놈들을 길드에 넘겨버리면서 얻게 되는 보수의 일종이었지만 말이다.


‘슬슬 마족 숭배자 놈들을 토벌하는 것도 질려오고, 이젠 미셸이 있는 곳에 도착할 법도 한데 말이지.’


그렇게 속내를 털어놓고 있는 지금조차도 마족 숭배자 놈들을 쓰러뜨리고서 잠시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지금까지의 수에 비해서 수십 배 이상이나 되는 인원들이 대기하고 있던 터라 아무리 나라고 해도 좀 지쳤으니 말이지.

이 정도로 많은 수의 마족 숭배자들이 모여 있다는 건 그만큼 중요한 곳이라는 반증이 아닐까, 하고 이번에야말로 멋대로 기대를 해본다.


‘···역시 저 성에 있는 걸까.’


이곳은 혹시 외딴 곳의 영지가 아닐까 싶을 정도로 지금까지 봐왔던 저택과는 규모부터가 다른 거대한 성채, 마치 샬롯 백작령의 성처럼 크고 웅장했다.

하지만 내가 그 동안 이능작가로서 서방국 곳곳을 돌아다니면서 돌아봤던 영지들 중에서 이토록 불길하고 꺼림칙한 기운이 흘러나오는 성을 본 적은 없었다.

아직까지 내가 그 밖에도 가본 적이 없는 영지가 남아있었다는 걸까, 아니면 마족 숭배자들에 의해 최근에 새로 생긴 성채인 걸까.


“뭐, 자세한 건 저곳의 성주를 만나면 알게 되겠지.”


그렇게 적당히 휴식을 취하니 다시금 의욕이 솟구쳤다.

셀 수도 없을 정도로 수많은 마족 숭배자들로 이루어진 산맥을 뒤로 하고, 나는 아무런 거리낌 없이 성채의 정문으로 다가갔다.


“오오··· 이거 어쩌면 바론 아저씨네 성보다 더 큰 게 아닌가?”


그런 놀라움도 잠시, 성채의 정문을 넘어가자마자 내가 기억을 잃은 이후부터 처음으로 소름이 돋았다.

마치 먹이를 노리는 맹수의 사냥감이 된 것 같은 오싹한 기분, 그리고 지금까지 겪어본 적이 없는 미칠 듯한 흥분과 투쟁심에 자칫 이성이 날아갈 뻔 했다.


‘···대체 뭐지, 이렇게까지 압도적인 존재감과 무시무시한 마력이라니?!’


기억을 잃기 전의 나라면 몰라도, 기억을 잃은 후의 나는 북쪽을 제외한 대륙의 대부분을 다녀봤다고 자부한다.

서방국 최고의 마법사라 불리는 대마법사 할아버지도 만나봤고, 동방국에서 소문이 난 떠돌이 검사와도 검을 섞어봤으며, 심지어 남쪽 깊숙한 곳으로 들어가 악마를 포함한 다양한 아인들과 만나기도 했었다.

하지만 이런 감각은, 마치 이 앞에 어떤 강자가 기다리고 있을지 호기심에 가슴이 마구 떨려왔다.


“하, 하하··· 아하하하! 대체 누구인지 모르겠지만, 좋다 이거야! 이 베테랑 이능작가 가나 아칸 님이 얼마나 대단하신 분인지 평가해주지!”


나는 어떤 위험이 있을지 몰라도 무작정 뛰었다.

정문을 기점으로 해서 정원으로 보이는 곳을 지나쳐, 성채의 출입문을 걷어차고 내부로 들어가는데 성공했다.

성채의 내부는 바론 아저씨의 성채와 비슷했었나, 사실 그런 건 그다지 별 관심이 없었다.


“어디냐, 숨어있지 말고 어서 썩 나와!”


성채 내부에 메아리가 울렸지만, 성주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분명히 어딘가에 있었다.

이 압도적인 존재감과 무시무시한 마력은 결코 숨길 수 없었으니 말이다.

그래서 나는 별 수 없이 수고스럽게 찾아다닐 필요 없이 탐색마법을 사용하기로 했다.


“리딩···.”

“그럴 필요 없다네, 왜소한 인간이여.”


목소리가 들리는 쪽은 어이없게도 나의 바로 앞, 방금 전까지 아무도 없었던 곳이었다.

그곳에 있는 것은 남자인지 여자인지 모를 정도로 무척이나 아름답고 단정한 모습의 아이였다.

그 금발의 머리칼과 황금빛 눈동자는 명백하게 인간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는데다 무엇보다 근엄한 말투에 맞지 않는 발랄한 목소리는 물론이고, 언뜻 느껴지는 어마어마한 기백에 어울리지 않는 평범한 옷차림 등 아이의 모든 것이 내 인식과 미묘하게 어긋나 있었다.


“네··· 네가 이 성의 주인이구나?! 그런 아이 같은 모습을 하고서 미셸을 납치하다니, 대체 무슨 꿍꿍이야?!”


하지만 눈앞의 아이는 아무런 대답도, 일체의 표정도 짓지 않고 나를 줄곧 바라봤다.

마치 나를 품평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 기분이 나빴지만, 거역할 수 없는 분위기가 나를 압박하는 것 같았다.

잠시 동안 침묵이 이어진 후 아이가 대답했다.


“···잠시 실례했네. 그대는 선한 인간으로 보이는군.”

“에, 엑···?”


그렇게 내 대답도 무시하고서 내린 결론이 이렇게 기운 빠지는 말이라니, 갑자기 적의가 수그러들었다.

하지만 결코 긴장을 풀지 않았다.


“그, 그러는 너는 악마야? 지금까지 이런 강한 존재감은 마왕 이외에는 느껴본 적이 없는데?!”


나는 기억을 잃은 후 단 한 번, 봉인된 마왕을 만나봤다.

계기는 ‘세상의 끝’이 어디일까, 하는 호기심에서 비롯된 당돌함이었다.

마왕성에서 몰려드는 악마들의 제지를 뿌리치고 봉인의 제단으로 다가갔을 때, 그제야 비로소 느껴졌던 그 놀라우리만치 압도적인 존재감은 결코 잊을 수 있었으니까.

그러자 아이가 내게서 방향을 틀더니 별 거 아니라는 듯 대답했다.


“그런 대화는 우선, 그렇지··· 이런 곳보다 조용하고 아늑한 곳에서 차나 마시면서 해야 하지 않겠나?”


그 순간 내가 서 있던 공간이 갑작스레 바뀌었다.

나와 아이가 서 있는 곳은 방금 전에 있던 거대한 성채 내부에 비하면 아기자기한 크기의 손님용 대접실 같았다.

이미 따뜻한 차가 테이블 위에 준비되어 있었고, 아이는 몸에 맞는 의자에 앉아 내게 권했다.


“그대가 이곳에 찾아온 이유를 알고 있네, 또한 진정으로 무엇을 바라는지도 방금 전에 알았으니··· 앉지 그러나?”

“아··· 으, 응. 알았, 어···.”


나는 확신할 수 있었다.

방금 전은 공간이 바뀐 게 아니라 나와 아이가 이동한 것이며, 마법을 부린 수작이 아니라 문장력을 사용해서 전이한 것이라는 걸 말이다.

그렇다는 말은 이 아이의 모습을 한 무언가도 이능작가라는 뜻이다.

테이블 위에 놓인 차를 여유롭게 마시는 아이는 황금빛 눈동자로 나를 바라보며 대답했다.


“그럼 내 소개를 하지. 비록 진명은 망각한 탓에 옛 지인에게 하사받은 ‘쇼타’라는 가명을 사용하겠네. 나는 그대가 알고 있는 ‘드래곤’이라는 존재네만, 아무래도 드래곤 중에서도 상위종에 해당하는 무언가인 것 같네. 잠시나마 잘 부탁하네.”

“어, 응··· 나는 ‘가나 아칸’, 보시다시피 인간이야.”


드래곤, 그건 아무리 나라도 알고 있는 매우 유명한 종족의 명칭이다.

각종 문헌이나 신화 상에서 보이는 강대한 힘과 마력으로 하여금 신의 대리자, 혹은 분신으로도 묘사되는 지상 최강의 생명체다.

그런 드래곤에 무려 상위종이라니, 그런 건 서방국의 역사를 통틀어도 언급이 된 적이 없었다.


‘그야말로 신이나 마왕 급의 엄청난 존재···!’

“그렇게 경계하지 않아도 되네, 그대를 어떻게 할 생각은 조금도 없으니까. 나는 단지 그대에게 사죄하고 싶을 뿐이네.”


나는 쇼타의 말에 의아하면서 경계심이 누그러졌다.

그 동안 내가 누군가에게 사죄를 받을 만한 일을 당했던가, 오히려 그 반대라면 몰라도 말이지.


“그대의 지인, 방금 전에 미셸이라는 이름의 인간에 대해 남쪽 숲을 대표해서 사죄하고 싶군.”


미셸의 일, 그것은 마족 숭배자들과 관련이 되어버린 내 지인의 딸에 대한 것이었다.

역시 이 녀석이 미셸을 데리고 있었던 거구나!


“···미셸은 어디에 있어! 당장 이리 데려 와!”

“가나 아칸이여, 그 전에 진정하고 내 얘기부터 들어주게. 그것이 미셸이라는 인간을 구하기 위한 첫 단계라네.”


과연 이 쇼타라는 드래곤의 말을 들을 필요가 있을까, 싶었다.

갑작스럽게 사죄를 한다는 등 나에게 적의가 없는 것 같았지만, 여전히 무슨 꿍꿍이인지 몰랐다.

벌써 몇 주나 지난 참이라 미셸의 안부가 최고조로 걱정이 되었지만, 그대로 지금은 어떻게든 참아내야 했다.


“···내가 또 화가 나기 전에 빨리 말해, 대체 무슨 속셈이야.”


그러자 쇼타는 찻잔을 내려놓고 사뭇 진지한 표정이 되어서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대도 알다시피 미셸이라는 인간은 그대가 말하는 마족 숭배자, 마왕과 마신을 맹신하는 광신도들에 의해 끌려갔다네. 그 이유는 다름 아닌 스스로를 봉인된 마왕을 해방시키기 위한 제물이기 때문이네.”

“···그건 몇 주 전에 악마 녀석에게 들어서 알고 있어, 그래서 지금 당장이라도 미셸을 구하러 가야 한다고!”


그 순간 다시금 공간이 바뀌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나나 쇼타가 이동한 게 아니었다.

그곳에는 아무런 냄새도 없었고, 아무런 질감조차 없는 허무한 공간이면서 어딘가의 감옥 내부처럼 보였다.


“지금 나와 그대가 보고 있는 것은 문장력으로 일시적으로 발현된 ‘세계의 기록’일세. 이것은 불과 몇 주 전의 이야기라네.”


숲이 불탔다.

수많은 마법들이 쏘아지고, 곳곳에서 시체가 생겨나면서 상황은 갈수록 혼란스러워졌다.

그렇게 세계가, 이미지가 바뀌었다.


“마왕의 봉인을 해제할 수 있는 제물, 그것은 본래 강대한 마력을 가진 생명체··· 즉 강력한 마녀야 했다네. 그 때문에 마녀의 마을은 마왕군에게 침략을 받게 되고, 마녀들은 곳곳으로 흩어져서 숨어서 지내게 되었네.”


이번에는 사지가 구속된 미셸이 있었다.

뭐라는지 들리지 않았지만, 온 힘을 다해 울부짖으면서 발버둥을 쳤다.

그리고 그곳으로 몇 명의 인간과 아인들이 날이 비정상적으로 짧고 기묘하게 생긴 단검 같은 걸 들고 다가왔다.

그렇게 세계가, 이미지가 가속되었다.


“그러나 마녀의 피가 제대로 된 효과를 발휘하기 위해서는 마녀 자체가 살아있어야 하네. 도망친 마녀들을 잡지 못하고, 이미 죽어버린 마녀들도 쓸모가 없게 되자 마녀의 핏줄··· 혈육에게 눈길을 돌리게 되고, 그 결과 미셸이라는 인간과 마녀의 혼혈을 납치해서 산 채로 피만을 뽑아내는 비극적인 참상에 이르게 되었지.”


미셸이 죽기 직전, 회복마법이 사용되었다.

그리고 다시금 피를 뽑아내기 위해 의도적인 상처가 생긴다.

그리고 죽기 직전에 다시금 회복마법이,

되풀이 되는 상처들, 그리고 회복마법, 상처, 마법, 상처, 마법.

그렇게 세계가, 이미지가 반복되었다.


“미셸이라는 인간이 강대한 마녀의 혈육이었던 모양인지 봉인을 풀기 위한 준비는 순조롭게 진행되었어도 정작 미셸이라는 인간의 정신은 버틸 수 없었다네. 그래서 마왕군의 간부 중 하나인 ‘리치’가 좀 더 오랫동안 버틸 수 있도록 미셸이라는 인간에게 여러 가지를 섞었다네.”


미셸의 몸으로 조각난 무언가가 옮겨 붙었다.

이어 붙였다, 불어 넣었다, 그리고 강제로 하나로 섞어냈다.

되풀이 되는 고문 같은 작업, 그 때마다 무너지는 것들이 보충되었다.

하지만 미셸만은 결코 바꾸지 않았다.

그렇게 세계가, 이미지가 끝났다.


“···이렇듯 몇 주 동안 줄곧 반복된 그 작업으로 더 이상 그대가 아는 ‘미셸’이라는 인간의 존재는 남아있지 않을 걸세. 현재에 이르러서 미셸이라는 인간의 육체는 물론, 정신도, 심지어 영혼까지도 완전히 달라져 있을 거라 생각하네. 그럼에도 그대가 향하게 될 곳은 과거에 미셸이라는 자가 있던 곳으로 지금까지와는 비교도 안 되는 수많은 마족 숭배자들과 강력한 악마들이 지키고 있는 남쪽 숲 최심부의 마왕성일세.”

“···그래서 그게 뭐 어쨌다고.”


쇼타가 과거의 기록을 보여주면서, 그리고 미셸에게 공감하면서 각오했다.

사태는 내가 생각한 것 이상의 처참하고 참혹한 결과였다.

그 동안의 나는 너무나 상냥했으며, 얼빠졌다는 것을 깨닫고 후회했다.

더 이상 놈들에게 사정을 봐주지 않을 것이리라.


“나는 어떤 사정에 의해 중립을 유지하기로 해서 그대를 직접적으로 도와줄 수 없네만, 그대를 추방한다는 명목으로 마왕성으로 보내줄 수는 있다네. 마왕의 부활을 저지하기 위한 것도 있지만, 인간의··· 그것도 소녀에 불과한 연약한 생명을 도구처럼 다룬 것을 안타깝게 생각하기도 하네.”


그렇게 말한 쇼타는 의자에서 내려와 나에게 다가와 손을 내밀었다.


“그러니 부디 내 몫까지 마족 숭배자들을, 마왕성에 있는 사악한 무리를 토벌해주게.”

“그런 건 당신이 말하지 않아도 이미 그럴 마음이 차고 넘친다고! 그 놈들을 이 참에 그 놈들을 싹 쓸어버리고, 반드시 미셸을 구출해서 돌아가겠어!”


나는 쇼타의 손을 잡으며 선언했다.

그 직후 쇼타에게서 작은 미소를 본 것 같은 기분을 느끼며, 드디어 최종 목적지인 마왕성에 도착하게 되었다.


“이리 나와서 다 덤벼, 이 천하의 빌어먹을 쓰레기 자식들아! 이 베테랑 이능작가 가나 아칸 님이 다 밟아주마!”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라이트한 옴니버스인 죄와 벌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공지사항입니다. 19.08.05 21 0 -
130 제130화 19.08.04 15 0 14쪽
129 제129화 19.08.03 16 0 12쪽
128 제128화 19.08.02 31 0 13쪽
127 제127화 19.08.01 17 0 13쪽
126 제126화 19.07.31 17 0 12쪽
125 제125화 19.07.30 22 0 13쪽
124 제124화 19.07.29 20 0 13쪽
123 제123화 19.07.28 18 0 12쪽
122 제122화 19.07.27 18 0 12쪽
121 제121화 19.07.26 21 0 12쪽
120 제120화 19.07.25 20 0 11쪽
119 제119화 19.07.24 19 0 12쪽
118 제118화 19.07.23 42 0 13쪽
117 제117화 19.07.22 53 0 12쪽
116 제116화 19.07.21 32 0 12쪽
115 제115화 19.07.20 27 0 12쪽
114 제114화 19.07.19 28 0 13쪽
113 제113화 19.07.18 28 0 13쪽
112 제112화 19.07.17 21 0 12쪽
111 제111화 19.07.16 25 0 12쪽
110 제110화 19.07.15 26 0 13쪽
109 제109화 19.07.14 21 0 12쪽
» 제108화 19.07.13 20 0 13쪽
107 제107화 19.07.12 29 0 14쪽
106 제106화 19.07.11 24 0 13쪽
105 제105화 19.07.10 24 0 12쪽
104 제104화 19.07.09 23 0 12쪽
103 제103화 19.07.08 27 0 12쪽
102 제102화 19.07.07 23 0 12쪽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스법군' 작가를 후원합니다!

  • 보유 골드: 0 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