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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모전참가작 라이트한 옴니버스인 죄와 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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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법군
작품등록일 :
2019.04.01 10:17
최근연재일 :
2019.08.04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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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7.18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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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3화

DUMMY

가히 무한에 가까운 삶을 살아오면서 차 한 잔의 시간이 무척이나 귀중하고 즐거운 것은 새삼스럽게 말할 필요도, 생각할 필요도 없었다.

인간 형태로 지내기에 지나치게 넓은 성 내에서 나에게 남아있는 즐거움이란 그리 많이 않았으니 말이다.

단지 일정 주기로 행해지는 필수적인 모임을 제외하곤 말이다.


“마왕군단장 쇼타 님, 정기 회의에 출석하실 시간입니다.”

“···알겠네. 이번에도 차 한 잔의 여유를 즐길 시간이 없어서 안타깝군.”


나는 보고를 하러 온 전용 오토마타, 시스의 손을 잡고 언제나처럼 가볍게 날아올랐다.

그리고 도착한 곳은 정기적으로 회의가 이뤄지는 장소, 마왕성이다.

여전히 대기 중의 마나가 자욱하고, 보기에도 음침한 탓에 마음에 들지 않는 곳이다.

그런 마왕성 문 앞에는 본 적 없는 악마가 경비를 서고 있었다.


“어서 오십시오, 쇼타 님. 이미 다른 군단장들이 전부 모여 있으니 서둘러 회의실에 출석해주시기 바랍니다.”


오늘은 웬일로 군단장들이 이토록 일찍 모인 것인가.

분명 또 뭔가 안 좋은 일을 꾸미고들 있는 거라 생각한다만, 그렇기에 내가 차 한 잔의 여유를 즐길 사이도 없이 정기 회의에 출석해서 중재해야만 하니 말이다.

그들이 적당히 해준다면, 내가 차를 마실 시간이 조금이나마 늘어날 텐데.


“···그리고 송구스럽게도 동행하고 있는 오토마타는 이곳에서 대기해주셔야겠습니다.”


역시 신입다운 발언이다.

하지만 그 요구는 나로서는 들어줄 수 없었다.


“시스는 다른 오토마타와 달리 섬세한 부품으로 이루어져 있네. 내가 손을 잡아서 외부의 마나를 막아주지 않으면 체내의 부품들이 짙은 마나에 곧바로 열화 할 정도로 말이지. 시스는 그저 나와 동행할 뿐이니 넘어가주지 않겠나?”


고작 악마 한 마리가 내 말을, 문장력을 거역할 리가 없었다.

이곳의 전임자도, 그리고 그 전임자도 마찬가지였다.

아무튼 대부분의 악마들은 내 말에 복종해야 하니 말이다.


“···알겠습니다, 동행을 허락하겠습니다. 다만 출석을 서둘러주시기 바랍니다.”

“고맙네, 그럼 수고하게.”


애당초 마왕성에 경비 따위가 필요할 턱이 없지만, 가나 아칸이 두 차례나 마왕성으로의 침입을 허용한 이후부터 이런 불필요한 과정을 거쳐야 하니 나로서는 다소 불편해도 참아야 한다.

그래서 성 내부에 들어가도 출입을 허가받은 일부 악마나 다크 엘프가 아니면 대부분의 언데드나 오토마타는 바깥의 경비를 서고 있으니 이는 나만의 특례라고 할 수 있겠지.


“죄송합니다, 쇼타 님.”

“허허허. 네 탓이 아니다, 시스. 이런 건 그저 장난치기 좋아하는 악마들의 심술이란다.”


그렇게 시스의 오해를 푸는 동안 이미 몇 번이고 반복해서 걸어온 계단을, ‘무한 회랑’을 올라가서 ‘제물의 방’을 지나고, ‘마광 예배당’에 도착하면 목적지인 ‘회의실’에 도달한다.

그곳에는 신입인 악마 문지기의 말처럼 마왕군단장들이 한 자리에 모여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안녕하십니까, 쇼타 님. 지난 회의와 마찬가지로 오늘도 잘 부탁드립니다.”

“허허허··· 그래, 그래. 나도 잘 부탁한다, 루시아.”


마왕군단장, 다크 엘프 루시아.

좋게 말하면 연장자에 대한 예의와 무인으로서 강직하고 겸허한 마음을 가졌다고도 말할 수 있지만, 달리 말하자면 틀에 박힌 것처럼 딱딱하고 강자 앞에서 자신을 한없이 낮추는 불쌍한 처자다.

그나마 다크 엘프로 타락하기 전에는 타인을 위할 줄 아는 상냥한 편이었는데, 참으로 아쉬울 따름이다.


“캬하하하하! 어이, 할아범! 오늘도 그 장난감을 데려와서 자랑이야?”

“딱히 그대들 앞에서 자랑하려던 의도는 아닐세. 하지만 그 넓디넓은 성에 시스를 혼자만 놔두는 것도 불쌍하지 않겠는가?”


마왕군단장, 리치 라이베리아 크펠레.

일찍이 남쪽 숲의 마녀 출신이었지만, 오랜 벗에게 배신당해서 그 원한과 분노를 양식으로 삼아 스스로에게 저주를 내려서 언데드가 되어버린 가엾은 존재다.

리치로 되살아난 이후에는 배신했다던 오랜 벗에게 복수하기 위한 일념으로 그 피붙이인 미셸이라는 소녀를 납치하자는 계획을 제안한 것도, 그리고 인격이 붕괴할 정도의 고문을 되풀이한 것도 그 이유라 한다.


“후후후··· 그렇죠, 그래서는 불쌍할 테죠! 제 아무리 생명이 없는 오토마타라고 해도, 스스로를 봉인한 마왕님처럼 혼자라는 것은 실로 외롭고 쓸쓸하니 말이죠! 누군가가 곁에 있어주는 것만으로도, 그리고 쓸쓸하실 마왕님의 곁에 한 분이라도 더 있어주려는 의도는 훌륭하니 말이죠!”

“···그렇게 말해주니 고맙군.”


마왕군단장, 아크데몬 모트.

본래는 천상계에 있는 데우스 신의 위치에 근접한 신 중 하나였지만, 무슨 이유에서인지 스스로를 아크데몬으로 격하하고 마왕의 수하를 자처한, 나조차 모든 내막을 알 수가 없는 정체불명의 고위 악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마왕의 최측근에 있으려는 동시에 루시아를 타락시키고, 라이베리아를 오로지 말로서 마왕군에 회유한 요주의 인물로서 내가 감시를 해야만 하는 존재란 것이다.


“···아무튼 내가 온 것으로 군단장이 모두 모였으니 다들 정기 회의를 시작하도록 하지.”

“캬하하하하하! 그럼 나, 나나나나나나나나! 내가 먼저 보고하지! 이번에 엄청 좋은 물건이 두 가지나 손에 들어온 참이거든?!”


처음은 라이베리아인가?

평소에는 루시아가 남쪽 숲의 근황을 털어놓는 것으로 소소하게 시작하는 편이지만, 어지간히도 좋은 소식이 있는 것 같군.


“궁금해? 그야 궁금하겠지! 그 엄청 좋은 물건이라는 건 바로 이능작가인 설녀와 그 서방국에서도 유명한 엘리자베트 아가씨란 말이지! 캬하하하하!”


이능작가인 설녀라··· 짐작이 가는 존재가 없는 건 아니지만, 부디 아니길 빌고 싶군.

하필 라이베리아가 눈독을 들인다는 소리는 보나마나 무척 안 좋은 일이 될 테니 말이지.


“···허허허. 나는 줄곧 성 안에만 갇혀있는 터라 설녀는 그렇다고 쳐도 엘리자베트라는 아가씨는 잘 모르겠군.”

“쇼타 님, 그럼 제가 보충해서 설명드리겠습니다. 라이베리아 님이 말씀하시는 건 아마도 인간들이 모여서 사는 ‘서방국’이라는 나라의 ‘엘리자베트 샬롯’이라는 이능작가인 인간 여자일 겁니다. 그 실력은 그 가나 아칸과 동등하다는 소문이 있더군요.”


음, 루시아의 설명을 들으니 이거 또 골치 아프게 됐구먼.

다른 사람도 아니고 하필 가나 아칸과 비교가 되는 인간을 찾아내다니, 이로서 마왕군의 전력이 지금까지와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강대해질 것 같구먼.


“친절한 설명 고맙구나, 루시아. 헌데 라이베리아여··· 그대는 대체 이능작가들을 모아서 무슨 일을 꾸미는 겐가?”

“캬하하하하! 그거야 당연히 마왕님의 부활이지! 언제까지 모트 녀석에게만 마왕님의 부활을 맡겨둘 수는 없잖아?! 세상의 이치를 초월하는 문장력이야말로 마왕님의 봉인을 풀 수 있을 중요한 열쇠가 될 거라고?!”

“···오오, 오오오오! 실로 감격스러운, 너무나 감사한 말씀입니다! 분명 추후에 마왕님께서 눈을 뜨신다면 크펠레 경의 눈부신 노고를 치하하겠죠!”


이거 안 좋군, 이대로는 모트 녀석마저 눈독을 들이게 되어서 그 설녀와 엘리자베트라는 인간이 타락하기라도 한다면 나로서는 막아낼 도리가 없게 된다.


“···확실히 의도 자체는 훌륭하다고 보네만, 과연 그게 전부일지는 모르겠군?”

“···앙? 그게 무슨 말이야, 할아범. 설마 질투하는 거야?”

“아니, 조금 묘해서 말일세. 이 늙은이가 제대로 기억하고 있다면, 그대에게는 마왕님의 부활 이외에도 달리 이뤄야 할 개인적인 목적이 있어서 그 쪽으로 더욱 더 신경을 쓰는 줄 알았네만?”


허허허. 내 예상대로 라이베리아에게서 짙은 사기가 발생하는 것을 보니 정곡을 찔린 모양이군.


“어이, 할아범. 지금 나한테 시비 거는 거야?”

“그럴 리가, 나는 그저 그대가 개인적인 이유로 공통의 목적에서 벗어난 일을 벌이게 되는 건 아닌지 걱정이 될 뿐이라네.”


라이베리아의 존재 의의는 복수인 만큼 그 부분을 파고들면 쉽게 조종할 수 있다.

다만 문제가 되는 것은 역시 모트 녀석이다.


“으음~ 확실히 마왕님의 부활은 저희 마왕군단장 전원의 목표랍니다. 하지만 지금에 이르러서 서두를 필요는 없습니다! 어차피 마왕님의 부활은 시간문제이며, 크펠레 경께서 도중부터 개인적인 이익을 추구한들 그 누구도 뭐라 탓하지 않으니 말이죠?”

“···흥! 능구렁이 할아범 같으니!”


겉으로는 정열적으로 마왕의 부활을 노리면서도 정작 분위기가 흐려질 때는 그 누구보다 차분하게, 그리고 침착하게 상황을 진정시킨다.

그래서 모트 녀석만큼은 아무리 나라고 해도 그 어떤 방법으로도 흔들어 놓을 수 없으니 중립적으로 대하기가 여간 까다로운 게 아니다.


“···그럼 소란이 진정된 것 같으니 슬슬 제가 발언하도록 하겠습니다.”

“오오, 그러려무나. 루시아의 근황 보고도 중요하니 말이지.”


유일하게 내가 마왕성에서 호의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것은 그나마 루시아 뿐이다.

엘프 시절과는 달리 모트 녀석에게 타락한 탓에 꽤나 성격이 바뀌었지만, 그래도 여전히 엘프 시절의 지성을 갖고서 접할 수 있으니 말이다.


“최근 남서쪽과 남동쪽 부근의 아인들에게서 지원 요청이 끊이질 않습니다. 남서쪽 부근에 접해있는 동방국은 정체모를 마법 생명체가 발생했고, 남동쪽 부근에 접해있는 서방국은 연금술과는 다른 기반의 새로운 문물이 출현하여 각각 고전하고 있다고 합니다.”


서방국과 동방국의 마찰은 언제나 있는 일이며, 또한 아인들이나 마물들이 지원 요청을 보내는 것도 언제나 같은 일상이다.

하지만 정체모를 마법 생명체와 연금술과는 다른 기반의 새로운 문물이라는 건 신경이 쓰인다.


“어허··· 인간들도 저마다 살아남기 위해 궁리를 한 모양이군? 그렇다면 다들 이번에는 어쩌면 좋겠는가? 먼저 루시아부터 말해 보거라.”

“네! 전황의 보다 상세한 분석을 위해서 척후를 보내야 하는 게 마땅하다고 생각합니다! 적들이 새로운 기술을 바탕으로 본격적인 공세에 나서기 전에 저희들도 그에 대항해서 반격할 수 있는 기반을 미리 만들고 대처해야 합니다! 구체적으로는 제 휘하의 다크 엘프 암살자들의 수를 기존의 두 배 정도로 늘리고, 미끼를 위한 언데드들의 수는 기존의 다섯 배를 늘려서···.”


그 순간 갑자기 라이베리아가 사기를 내뿜으면서 맹렬하게 항의했다.


“···하아?! 방금 다섯 배라고 말했어?! 지금 장난 해?! 내가 소환하는 언데드들이 그렇게 무슨 도장이라도 찍는 것처럼 간단한 것 같아?! 아무리 언데드들끼리 연쇄적으로 소환시켜도 다섯 배라는 수는 어려운 걸 넘어서 무리라고! 무엇보다 내 마력이 버티질 못한단 말이야!”


물론 이것도 충분히 예상한 반응이다.

서방국과 동방국으로 보내지는 아인이나 마물들은 라이베리아가 소환한 언데드들의 사기에 밀려나서 어쩔 수 없이 쫓겨나는 형국이니 이 이상 수를 늘린다고 한다면 라이베리아의 부담이 몇 배는 더 많아지니 말이다.

남쪽 숲의 서쪽과 동쪽만이 아니라 중앙마저 언데드들을 보내야 한다면, 그야말로 대군 중의 대군이 필요할 테지.


“그러면 아까 전에 그대가 자랑하던 이능작가들을 이용하는 건 어떻겠나, 마침 둘이라고 하니 각각 남서쪽 방향과 남동쪽 방향으로 보내서 가세하면 그럭저럭 어떻게든 되지 않겠나?”

“그, 그건··· 에, 에잇! 닥쳐, 할아범! 그 녀석들은 주위에 깔려있는 언데드들 따위보다 훨씬 더 특별하다고! 그런 별 거 아닌 일에 쓸 정도는 아니야! 그, 그러니 당분간은 내가 언데드들을 더 만들어보도록 하겠어! 대신 다섯 배는 무리니까 세 배 정도로 줄여!”

“···알겠습니다. 그럼 언데드들의 수를 통상에서 세 배로, 그리고 이번에는 모트 님의 휘하에 있는 악마들도 빌리고 싶습니다만···.”

“후후후··· 좋을 대로 써주시기 바랍니다. 다만 제 악마들이 본격적으로 힘을 발휘하는 것은 마나가 보다 충만해지는 밤이어야 할 겁니다?”


이걸로 당분간은 인간들과 마족들이 대등하게 싸우게 될 것이다.

하지만 역시 근본적인 문제를, 마왕의 부활을 어떻게 해서든 막아내는 게 좋겠지.

그 때까지 시스에게 더 많은 것을 보여주고, 더 많은 것을 가르쳐 주는 게 유일한 방법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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