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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모전참가작 라이트한 옴니버스인 죄와 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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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법군
작품등록일 :
2019.04.01 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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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8.04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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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7.19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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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4화

DUMMY

“···엘리자베트야, 요즘 며칠 동안 기운이 없어 보이는 구나. 좀 쉬는 게 어떻겠느냐?”

“기분 탓입니다, 아버님. 샬롯 가의 영애가 고작 이런 사사로운 업무들 따위에 지칠 리가 없으니까요.”


줄곧 이어지는 격무에 부녀지간은 오랜만에 마주앉아 휴식할 수 있었다.

엘리자베트의 아버지, 바론 드 샬롯은 평상시에는 백작령의 영주로서 매일 방문해오는 수많은 귀족들이나 심지어 사용인들 앞에서조차도 엄격하고 냉정한 모습으로 모범을 보이지만, 유독 딸인 엘리자베트 앞에서만 약한 모습을 보였다.

그래서 백작령 내에서 바론에게 붙은 암묵적인 별명은 ‘딸바보’였다.


“물론 귀족으로서의 긍지를 갖고 사사로운 업무에조차 집중하려는 자세는 자랑스럽게 생각한단다. 하지만 굳이 휴식 시간의 아빠 앞에서까지 그렇게 강한 척을 해도 서로가 곤란하지 않겠느냐?”


바론이 엘리자베트를 걱정하는 마음은 진심이었다.

원래대로라면 백작령의 영주인 바론이 모든 업무를 떠맡아서 처리해야 했을 테지만, 안타깝게도 엘리자베트는 백작령의 영애로서 태어난 것도 모자라 이능작가로서 국가에 귀속되어 있는 만큼 귀족으로서 져야 할 책임이 전혀 없다고 할 수 없었다.

태어난 환경에 의해서, 그리고 후천적인 요인에 의해서 생겨난 막중한 책임은 나이를 떠나서 항상 부담을 주기 때문이다.

그런 엘리자베트가 여유롭게 차 한 잔을 마시며 대답했다.


“아버님의 호의는 질릴 정도로 잘 알고 있습니다만, 그렇다고 귀족이 아닌 일반적인 가정의 자식들처럼 어리광을 피우면서 기대라는 건 제 나이에 좀 아니지 않습니까?”


엘리자베트의 대답에 바론은 실망을 금치 못 했다.

왜냐하면 엘리자베트의 지적이 그야말로 바론이 바라는 바였으니 말이다.


“그, 그야 그럴 수도 있겠다만··· 단지 아빠는 네가 평소에도 여유를 갖고 업무에 임하는 게 어떻겠느냐는 말이었단다.”


바론의 아내가 세상을 뜬 이후로 엘리자베트는 변해버렸다.

그것이 어머니의 기억을 비롯한 과거의 기억을 잃어버린 영향인지, 혹은 홀로 남은 현재의 바론을 지탱해주기 위하여 애써 의연한 모습으로 도와주려는 것인지는 바론으로서 감히 생각할 수도 없었다.

귀족으로서 무엇 하나도 부족하지 않을 만큼 호화롭고 행복한 삶을 살게 해주려고 다양한 방면에서 엘리자베트를 애지중지 키웠지만, 그 동안 엘리자베트가 지어준 미소는 단 한 번도 진심인 게 없었다.


“···그렇군요, 평소부터 여유를 갖고 임하라는 말씀인가요. 하지만 지금의 저는 이능작가로서 백작령의 보호라는 국가적인 중책을 맡은 이상 언제 발생하게 될지 모르는 비상시를 대비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바론은 엘리자베트의 대답을 듣고 마음속에 앓고 있던 상처가 다시 벌어진 것처럼 아파왔다.

마치 번개처럼 하늘에서부터 떨어진 의문스러운 빛줄기가 아내와 엘리자베트를 덮쳤을 때, 바론은 두 가지의 소중한 것을 잃어버렸었다.

하나는 아내의 목숨, 그리고 다른 하나는 엘리자베트의 기억이었다.


“···그, 그렇지. 잘··· 알고 있구나.”


그것만으로도 죽을 것처럼 괴로운 마당에 하필 국가로부터, 즉 서방국으로부터 엘리자베트가 샬롯 백작령을 보호할 것을 강제로 명령한 것이다.

그리고 상정 외의 국가적 위기 상황이 될 경우, 담당하고 있는 백작령을 지키기 위해서 목숨을 바칠 것을 강요하여 그곳의 영주인 바론에게 컨트렉(계약)을 새기라는 서방국의 지시는 아버지인 바론에게 무척 힘들고 고된 결단이었다.


“그건 그렇고 오히려 저보다는 아버님께서 여유를 가져야 하는 건 아닌지?”


갑작스러운 화제 전환에 바론은 괴로운 기억을 애써 잊으며 반문했다.


“으, 응? 그게 무슨 뜻이냐···?”

“아무리 아버님께서 제게 숨기시려 해도 영지 내의 분위기로도 충분히 알 수 있습니다. 그 동안 귀족들의 지나친 출입과 서방국에 널리 퍼진 외화 문제는 서로 연관되어 있으니까요.”


엘리자베트의 말을 들은 바론은 깜짝 놀랐다.

그 동안 엘리자베트에게 괜한 걱정을 끼치고 싶지 않았던 탓에 줄곧 숨기면서도 빠르게 해결할 수 있도록 은밀하게 계획을 짜서 한창 실행 중이었는데, 하필 엘리자베트에게 사건의 연관성을 들켜버린 것이다.


“각 영지의 귀족들이 평상시 업무조차 놔두고 이곳을 방문하는 이유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어서 아닙니까? 최근에 찾아온 제국 측의 사절단은 물론, 아버님보다 귀족으로서의 격이 아래인 분들이라도 시간이 남아서 백작령을 일부러 방문하는 건 아닐 테니 말이죠.”


실제로 샬롯 백작령으로 타 귀족이 자주 찾아오는 이유 중 하나는 서방국의 숨은 실세인 바론 백작의 영향이 컸으며, 국내 정세에 대한 조언이나 정보 공유를 위해서라도 바론에게 과도하게 기대는 면이 없는 건 아니었다.

그렇게 말하던 엘리자베트가 이야기의 핵심을 찔렀다.


“그럼 달리 예상할 수 있는 건 서방국 전체로 퍼져 있는 외화 문제이거나 이능작가인 저에게 볼 일이 있는 거겠죠?”


과연 귀족의 영애다운 통찰력이라고, 바론은 딸인 엘리자베트의 예상에 흐뭇해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초조했다.

길드에 소속된 상인들이 그 권리를 버리면서까지 유랑상인으로 전향해서 국외로 탈주하는 일과 더불어 얼마 전에는 남쪽과 밀접하게 접해있는 영지로부터 마물들의 습격주기가 주의에서 위험 수준으로 올라갔다는 보고마저 듣게 되었다.

이토록 국내와 국외의 정세가 불안한 마당이기에 엘리자베트가 눈치를 채는 것도 당연한 것이리라.


“하, 하하하! 역시 내 딸이로군! 설마하니 아빠가 그 동안 열심히 숨겨온 것들을 아무런 주저도 없이 파고들 줄이야!”

“···아니, 굳이 저에게 숨기려고 하시지 않아도 이런 것 정도는 제가 아니라도 누구라도 알 수 있지만 말이죠.”


그렇게 말하는 엘리자베트의 의견은 진실이었다.

설령 최근에 일어난 롤랑의 소동을 제외해도 평화로운 일상을 보내던 샬롯 백작령의 영지민들은 급격한 물가의 상승 때문에 불만을 쏟아내고 있었으니 말이다.

가뜩이나 길드 소속의 상인들이 국외로 달아나는 마당에 그 동안 별 다른 문제가 없었던 유통과 보급에마저 지장이 생겨나고, 길드의 신용도는 날이 갈수록 하락할 수밖에 없었으며, 그러한 상인들의 빈 자리를 채우기 위해서 현역에서 활동 중인 모험가만이 아니라 이미 전선에서 물러난 고령의 사람들도 채용하려는 상황이니 누구라도 알 수 있을 혼란스러운 상황이다.


“크, 크흠! 확실히, 엘리자베트의 말처럼 국내 정세가 좋지 못하다는 것은 영주로서 부정할 수 없겠지만, 이 일에 대해서만큼은 네가 참견할 일이 아니구나.”


엘리자베트의 지적도 정확했지만, 바론의 의견도 정당했다.

아무리 엘리자베트의 샬롯 백작령의 영애라고 해도 국내 정세나 운영은 바론에게 모든 책임이 일임되어 있기에 엘리자베트로서는 참견할 수도 없는 영역이니 말이다.


“···뭐, 그건 그렇죠. 하지만 그 밖의 다른 일··· 외부에 벌어지는 소규모 전쟁은 어떻게 되는 거죠?”


엘리자베트가 말하는 소규모 전쟁이라는 것은 남쪽 위험지대와 밀접한 경계에 접해 있으면서 각종 마물들의 침공을 막아내는 것을 말한다.

비록 서방국은 동방국과는 별 다른 교류조차 없었지만, 남쪽으로부터 수시로 침공을 가하려는 마물의 존재는 국가를 위협하는 외적으로서 수호의 임무를 맡은 이능작가에게는 무시하지 못 할 중요한 사안이었다.

그걸 엘리자베트가 지적하자 이번에도 바론은 침착하게 대응했다.


“···크흠! 그것도 걱정할 필요 없단다. 어차피 샬롯 백작령보다 한참 아래에 위치해있는 영지들의 문제이니 말이지. 그곳의 방비는 마물의 침공을 염두에 두고 있지만, 이렇게 주기적으로 대략적인 상황에 대해 보고하는 게 관례라서 말이니··· 일일이 그런 것들까지 신경을 쓰는 건 시간낭비란다.”


하지만 바론의 말과는 달리 사실은 조금 달랐다.

수시로 마물들의 침공이 끊이지 않는 것은 평상시와 같았지만, 문제는 그 수에 대해서였다.

기존에는 마물과 아인들의 연합이었다면, 최근 들어서 여기에 언데드들마저 대량으로 증가해서 몰려오는 터라 기존의 방식으로 막아내는 것에 어려움이 따르기 시작한 것이다.

이미 서방국 각지의 교회에 도움을 요청하는 것은 물론, 국가의 수호를 명령받은 이능작가의 호출도 몇 번이나 올라왔으니 말이다.

물론 여기에 엘리자베트도 포함되었다.


“···자, 모처럼의 휴식 시간에도 이런 재미없고 답답한 이야기는 그만 두자꾸나! 모처럼 아빠와의 대화인 만큼 뭔가 재미있거나 즐거웠던 일은 없느냐?”


갑작스럽게 화제를 돌리려는 바론의 말에 엘리자베트는 작은 미소를 지으면서 호응해줬다.


“후후후··· 그것도 그렇군요. 그럼 아버님의 요청대로 재미있거나 즐거운 이야기를 하도록 하죠.”


그 대답을 듣게 된 바론의 표정이 밝아졌다.

비록 진심으로 우러나오는 미소는 아니어도 답답한 화제를 돌리기 위해서라면 어느 정도는 엘리자베트의 주제에 어울려줘도 상관없기 때문이다.


“오오! 그래, 그래! 이 아빠에게 무슨 얘기를 해줄 테냐?”

“네, 그러면 얼마 전에 가나 아칸과 같이 온 이시우라는 소년에 대해서 말씀하도록 하죠.”


그러자 바론의 표정이 급속도로, 그것도 보란 듯이 구겨졌다.

이에 대해 엘리자베트가 애용하는 부채로 입가를 가리면서 물었다.


“···어머, 아버님? 갑자기 안색이 안 좋아졌네요?”

“아아··· 뭐, 그 이시우라는 소년의 이야기는 좀 그래서 말이다.”


바론은 이시우를 싫어한다, 아니 엄청나게 싫어한다.

그 동안 수많은 귀족들의 자재가 형식적인 인사를 위해서 엘리자베트와 만남을 가졌지만, 엘리자베트는 언제까지나 적당한 거리를 유지한 채 만남을 필요 이상의 단계까지 나아가게 두지 않았다.

설령 그들 중에서 노골적인 청혼이나 돌려 말하는 구애, 그 어떤 입 발린 말이라도 엘리자베트는 단 하나도 허용하게 해주지 않았다.

이시우라는 소년의 경우를 제외하면 말이다.


“후후후··· 그래도 시우는 알고 보면 꽤 재미있는 남자랍니다? 얼마 전에도 제가 사는 저택에 방문해서 알프레드가 입는 집사복으로 얼마나 행복해하던지··· 마치 장난을 좋아하는 개구쟁이 같아서 무척 귀엽더군요.”

“흥! 머리에 피도 안 마른 미천한 이계인의 속셈을 내가 알 턱이 없지 않겠느냐?”


하지만 바론이 이시우를 직접적으로 만난 적은 거의 없었다.

어느 날을 기점으로 갑작스럽게 엘리자베트 쪽에서 순수한 호의를 품게 되었고, 처음에는 엘리자베트가 드디어 이성에게 흥미를 가졌다는 사실에 기뻤다가도 어째서인지 호의 수준에서만 머물면서 신경을 긁는 것 같은 언행에 짜증이 났다.

엘리자베트도, 이시우도 본격적인 연애에 들어가지 않았고, 그렇게 어중간한 위치를 고수한 채 만족하는 것 같아 바론으로서는 딸인 엘리자베트가 한낱 창관의 장난감 취급을 당하는 것에 인내심과 자존심이 박살나는 것 같았다.

그리고 구체적으로는 딸을 그런 애매모호한 상대에게 빼앗기는 게 화가 났다.


“그 어리버리한 이계인이 늙은이의 냄새나는 집사복을 입든 거지가 입던 옷을 입든 아무래도 상관없지만, 감히 내 허락도 없이 엘리자베트 곁에서 시중을 드는 것은 용서 못 한다!”


그러자 엘리자베트는 부채로 입가를 가리는 와중에 작게 미소를 지으면서도 한편으로는 바론의 마음을 돌려놓을 수 없는 터라 안타깝게 생각했다.


“···그게 영주이신 아버님의 명령이라면 어쩔 수 없겠습니다만, 그래도 머지않아 백작령에 찾아올 시우와 조금이나마 대화를 해보는 것은 어떠신지요? 그 때는 저도 함께 참관해서 아버님과 즐겁게 대화를 나눠보고 싶습니다.”


평소의 엘리자베트는 필요한 업무가 아니면 바론과의 면회를 피하는 경향이 컸었지만, 이번에는 사적인 담소를··· 그것도 개인적으로 제안한 것이다.

그것은 곧 매우 희귀하다고 할 수 있는 엘리자베트의 어리광이며 기대였고, 바론으로서는 그걸 마지못해 들어줘야 했다.


“그, 그, 그럼··· 그렇게··· 하자꾸나. 에, 엘리자베트가 원한다면야··· 시간을 비워주도록 하마··· 크윽!”


바론의 이마와 손등에는 격렬한 분노로 핏줄이 불거졌지만, 엘리자베트의 앞에서는 아버지로서 미소를 지어야만 했다.

그 대답을 들은 엘리자베트는 다시금 차를 한 잔을 여유롭게 마시며 대답했다.


“후후후··· 감사합니다, 아버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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