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지

 공모전참가작 라이트한 옴니버스인 죄와 벌

웹소설 > 일반연재 > 라이트노벨, 판타지

스법군
작품등록일 :
2019.04.01 10:17
최근연재일 :
2019.08.04 06:00
연재수 :
130 회
조회수 :
2,820
추천수 :
25
글자수 :
753,562

작성
19.07.31 06:00
조회
14
추천
0
글자
12쪽

제126화

DUMMY

샬롯 백작령의 영주이자 주인인 바론 드 샬롯 백작은 딸인 엘리자베트 샬롯이 가출한 지 대략 1개월 동안 제대로 먹거나 마시지도 못하고, 심지어 잠도 편히 못 자서 엄격하고 진중했던 평소의 모습과는 전혀 다른 비참한 몰골이 되어 집무실 의자에 앉아 멍하니 있을 뿐이었다.

적어도 1개월 전에는 엘리자베트의 가출 소식을 인정하기 싫어서 화를 내면서 날뛰기라도 했지만, 그것도 며칠 후에는 점차 잠잠해지다가 끝내 넋이라도 나간 사람처럼 가만히 앉아있을 뿐이었다.


“···주인님, 세바스티아 알프레드입니다. 오늘은 예정대로 제국에서 방문하기로 한 손님이 있습니다만,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그 동안 바론은 집무실에 앉아 대부분 멍하니 있던 태도를 고칠 수밖에 없었다.

다른 일은 몰라도 무려 제국에서 온 손님을 함부로 대했다가는 귀족 인생 자체가 끝나버릴 지도 모르니 말이다.

이제 바론에게 있어서 딸인 엘리자베트만큼이나 중요한 것은 그 동안 평생을 일궈 온 백작령 밖에 남지 않았기 때문이다.


“···들어오도록 해라.”

“예···.”


입실 허가가 떨어지자 집무실의 문이 열리면서 사용인 세바스티아 알프레드가 길을 비켜주었고, 그 뒤에 대기하고 있던 제국 측의 손님으로 추정되는 세 사람이 바론 앞으로 다가가며 그 중 선두에 선 자가 대표로 말했다.


“저희 일동 위대한 데우스 신의 광휘 아래 서방국 글로리아의 영광스러운 백작령의 주인, 바론 드 샬롯 백작을 뵙니다. 저는 제국 근위기사단장 ‘아르튀르 르 블랑’입니다.”


바론을 앞에 두고 투구를 벗은 아르튀르라 이름을 댄 짧은 금발의 미청년은 순백색의 미스릴 전신 갑옷을 소리 없이 움직여 무릎을 꿇어 정석에 가까운 인사를 올렸다.

먼 곳에서 온 손님으로서 정중하면서도 예의바르지만, 자신을 낮추려는 태도나 말투가 보이지 않으면서도 기사단장으로서 당당한 기백을 발산하는 훈훈한 인상을 주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이쪽이 제국의 마탑 출신으로 저의 스승이자 대마법사라 불리는 ‘미르딘’ 옹이십니다.”


아르튀르의 소개를 받아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는 새하얀 수염의 노인은 아르튀르와는 대비되는 것처럼 전신이 검은 계열의 로브를 입고 있었다.

말수가 없는 것과 더불어 새까만 로브에서는 형언하지 못할 신비로움이 느껴졌으며, 아르튀르의 스승이자 대마법사라는 직함을 소개 받으니 말조차 함부로 붙일 수 없는 엄격함마저 풍기는 것 같았다.


“마지막으로 이쪽은 얼마 전에 우연한 계기를 통해 제국에서 알게 된 동방국의 지기인 ‘무형’이라 합니다.”


마지막으로 소개받은 남성은 양 허리에 각기 다른 검을 각각 한 자루씩 차고 있는 정장 차림의 이국적인 면모의 젊은 사내였다.

하지만 원래부터 정장을 즐겨 입는 게 아니었던 모양인지 마치 답답하다는 듯 옷깃을 잡아끌거나 바지 밑단을 올려두는 등 다소 예의나 형식에 어긋나는 행동을 보일 때가 있었다.


“여어~ 댁이 바론인가 하는 양반이가? 만나서 반갑데이!”


무형의 입으로부터 경악할 만한 말이 나오자 아르튀르가 서둘러 무형의 입을 틀어막으며 우물쭈물 변명했다.


“아, 아하하··· 죄, 죄송합니다. 이 친구가 아직 서방국의 예절을 모르는 터라···.”

“나가 모르긴 뭘 모르노, 이런 건 서로 딱딱하니 기냥 연맹에 꼰대들처럼 말해보는기라!”


무형의 말투는 좋게 말하면 허물없었고, 나쁘게 말하면 절조가 없었다.

바론이 그걸 애써 중재하려는 아르튀르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옛날에 엘리자베트가 가나를 데려왔을 때가 떠올라서 문득 중얼거렸다.


“···상관없네, 다들 편하게 부르게.”

“오오! 역시 저 꼰대가 뭘 좀 아는 기다! 아르는 와 인생을 어렵게 사노? 마음 편히 말 트고, 술잔 기울이면 그 때부터 모두 친구데이!”


급기야 정장의 소매마저 걷어붙이자 아르튀르는 안색이 급격히 나빠졌고, 이를 지켜보던 미르딘도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면서 무시하기로 하려는지 눈길조차 맞추려 하지 않았다.

사실 바론에게 있어서 이들이 제국에서 온 손님이긴 해도 그 이상 무엇을 하든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대놓고 반말을 하든, 절조 없는 행동을 하든 다그칠 힘이나 기력도 없었으니 말이다.

지금 바론은 오로지 방문자의 용건을 묻고 빨리 돌려보내고 싶은 마음만이 절실했다.


“···그보다 서방국 안에서도 다섯 손가락으로 꼽을 수 있는 유명한 분이 이런 변경의 영지에는 무슨 일로 오셨나.”


바론의 힘없는 목소리를 듣고 있던 중 무형을 만류하기를 그만두고 아르튀르가 다시금 무릎을 꿇고 예의를 다하며 대답했다.


“저희들은 샬롯 백작령에 감금된 이능작가, 가나 아칸의 감금을 철회하고 석방을 요구하기 위해 찾아왔습니다.”


그것은 바론이 그 동안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충격적인 말이었다.

다른 사람도 아닌 무려 서방국 최고라는 소문이 자자한 가나 아칸의 감금이라면 서방국 최고의 기사라 불리는 아르튀르나 마탑 출신의 대마법사인 미르딘이 동시에 찾아와도 이상하지 않았으니 말이다.


“···그래야 하는 이유가 뭐지, 이건 샬롯 백작령 고유의 문제일세.”


바론의 주장은 이러했다.

제국으로부터 샬롯 백작령에게 주어진 독자적인 권한, 그것이 설령 아르튀르 경이나 미르딘 옹이라 한들 마음대로 명령할 수도 없으며, 하물며 제국은 정식으로 고유마법인 컨트렉(계약)을 받은 각 영지를 수호하는 이능작가들에게 어떠한 명령을 내려서 집합시킬 수도, 해산시킬 수도 없다고 말이다.


“이곳의 주인은 제국이 아니라 나일세. 제 아무리 이름 높기로 유명한 아르튀르 경이나 미르딘 옹··· 아니, 설령 나보다도 지위가 높은 자가 직접적으로 명령한들 들어줄 리 없다네.”


그러자 아르튀르가 제자리에서 일어서면서 굳은 각오로 말했다.


“그걸 알고서 부탁하는 겁니다. 현재 제국만이 아니라 서방국 글로리아 전체에 가나 아칸의 감금 소식이 널리 퍼져서 모든 이들이 불안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 중 가나 아칸의 도움을 받았던 열렬한 지지자들은 이번 사건의 모든 것이 바론 백작의 억지이자 음모라고 곡해마저 하는 정도입니다!”

“···곡해든 모함이든 뭐든 간에 자네들 마음대로 생각하게. 그들이 억지라면 억지일 테고, 음모라면 음모일 테지. 한낱 개인에 불과할 따름인 그들이 나에 대해서 뭐라고 헐뜯든, 뭐라고 생각하든 그 대부분이 사실일 테니 말일세.”


바론은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허무한 속내를 전부 털어놓았다.

만일 평소였다면 화가 났을 상황이라도 너그럽다 못해 어이없게 넘겨버리면서 대충 결론을 지어버렸다.


“그 뿐만이 아닙니다. 백작님의 따님이신··· 엘리자베트 양께서 행방불명이 된 것도 모두에게 큰 불안과 문제를 야기하고 있습니다. 본래 엘리자베트 양과 교류 중이었던 타 영지의 이능작가들이나 연줄을 동원해 의탁하고 있던 외부에서 활동중인 대부분의 이능작가들의 소식에 혼선이 일어난단 말입니다! 여기에서 백작께서 뭐라고 말씀을 하셔야···.”

“···엘리자베트는, 내 딸은 이미 이곳을 벗어나 내 손에 미치지 않는 곳에 있을 지도 모르네. 하지만 그래도 나는 딸의 결정을 존중하네. 그래서 내 딸이 벌인 일에 대해서 수습할 생각도 없고, 그럴 필요성도 없지. 이제 됐나?”


아르튀르가 애써 뭔가를 말하려 했지만, 옆에 서 있던 무형이 앞으로 나서면서 말했다.


“···미안헌디, 내 잠자코 듣고보니 쪼가 기분이 나쁘구마? 결론은 단순히 자기네 가시나가 가출한 게 화딱지나서 다른 가시나를 감금한 게 아닌겨?”


그러자 그 동안 허탈한 표정을 짓고 있던 바론에게서 조금이나마 반응이 나타났다.

마치 이미 잿더미가 되어서 어두컴컴한 속내에서 분노의 불길이 조금씩 빛을 발하는 수준이 된 것처럼 무형의 지적에 기분이 상한 것이다.


“···자네들이 그렇게 생각하고 싶다면, 그것도 상관없네. 하지만 용건이 그것뿐이라면 이만 돌아가 주지 않겠나?”

“···쯧쯧쯧. 어리석게도 마음 속 근심에 사로잡혀서 자책하는 꼴이라니, 제국에서 어째서 우리들을 보낸 것인지 진정으로 모르는 모양인지, 아니면 알고서도 외면하는 것인지.”


그 동안 잠자코 있던 미르딘이 아르튀르보다 앞서 나오면서 나이에 걸맞지 않게 맑고 현명한 눈동자로 바론을 노려보며 말했다.


“그대가 벌인 짓은 단순히 스스로를 파멸로 몰아넣으려기 위해 자기 목을 조르는 것이나 다름없는 짓이네. 그 정신 나간 모습을 보이면 설령 순진무구한 어린애라고 울음을 터뜨리면서 도망치려 하겠지. 가뜩이나 글로리아의 상황이 갈수록 나빠지는 와중에 그런 어리석기 그지없는 짓을 벌이는 건 아무 의미가 없을 걸세.”


그 말을 옆에서 듣고 있던 아르튀르가 다시금 제자리에 무릎을 꿇고 간절하게 부탁했다.


“다시금 부탁드리겠습니다. 부디 그녀를 해방시켜 주시기 바랍니다! 현재 글로리아는 남쪽을 경계로 전쟁 중 미증유의 위기를 맞이하여 국민 모두가 불안에 떨고 있는 상황입니다! 부디 영광스러운 글로리아를 위해서라도 넓은 아량을 베푸심이···.”

“···다들 닥치지 못하겠나!”


결국 불씨에 불과했던 바론의 분노가 다시금 격렬하게 타오르며 폭발해버렸다.

제대로 먹지도, 마시지도, 잠도 못 잤던 탓에 안 좋았던 인상이 분노로 울긋불긋해져서 거친 숨을 내쉬고 있었다.

급기야 세 사람의 시선을 한 몸에 받고 있는 바론은 한 손을 들어 고유마법인 컨트렉(계약)의 준비마저 실행하기 직전에 소리쳤다.


“이곳은 내 영지일세! 외부인에 불과한 자네들이나 국민들이 이래라저래라 명령할 수 없단 말일세! 무엇을 생각하건 자네들의 자유지만, 그걸 내게 강요할 생각은 하지 말게! 이곳의 영주인 이 내가 안 된다고 말한 이상 안 되네! 그걸 계속 부정하겠다면, 억지로라도 돌아가게 만들어주겠네!”


바론이 영지 내에서 절대적인 권력을 행사하기 위해 마력을 운용하자 아르튀르, 미르딘, 무형의 주변으로 쇠사슬 모양의 마법이 나타났다.

이대로 바론이 마음만 먹는다면 컨트렉(계약)을 행사해서 세 사람을 샬롯 백작령에서 강제로 추방시킬 수도 있으리라.


“이건 뭐꼬?”

“···영주만이 행사할 수 있는 고유마법 컨트렉(계약)일세.”

“바론 백작님! 제발 다시금 진정하고 들어주시기 바랍니다! 하다못해 그 동안 갇혀있을 그녀와 면회라도 할 수 있게 기회를···!”


결국 바론의 참을성이 없어지고 컨트렉이 발동하려던 찰나였다.

아르튀르의 순백색 갑옷이 빛을 내뿜기 시작했고, 미르딘은 어느 새 고급스러운 지팡이를 꺼내들고 있었으며, 무형은 허리춤의 두 자루 검에 손을 댔다.

하지만 그 무엇보다 바깥에서 대기하고 있던 알프레드가 바론의 팔을 잡아서 컨트렉(계약)을 중단시켰다.


“···세, 세바스티아 알프레드! 또 자네인가?!”

“주인님, 이제 그만 하시기 바랍니다. 굳이 멀리에서 찾아와주신 제국의 분들에게 이게 무슨 망신입니까? 그 동안 줄곧 명예로운 샬롯 가를 모셔온 사용인으로서 간과할 수 없습니다.”


그러자 세 사람 주변에 나타났던 쇠사슬 모양의 징조가 사라졌고, 모두가 알프레드를 주목했다.

세 사람은 문을 여는 소리는커녕 다가오는 기색도 느낄 틈도 없이 갑작스럽게 나타난 알프레드에 대해 저마다 각기 다른 인상을 말했다.


“부, 분명 저 분은 샬롯 백작령의 사용인이라고···.”

“···흠. 역시 내 생각대로 평범한 자는 아니었군.”

“아하하하! 저 할배, 상당히 강한 것 같구마! 내 기분이 다 째지는구마!”


알프레드에게 붙잡힌 바론은 이를 갈았지만, 도저히 힘으로는 저항할 수 없었고, 그렇다고 이대로 컨트렉을 사용하려 들었다가는 본인을 포함해서 샬롯 백작령 자체에 무슨 일이 생길지 알 수 없었다.

비록 영주의 심기를 거스른 탓에 강제 추방이라는 변명을 말할 수 있겠지만, 그로 인한 명예 실추와 제국으로부터의 마찰은 만만치 않은 타격을 가져오리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흥! 자네들 마음대로 하게! 하지만 아까부터 줄곧 말한 것처럼 내 의견을 굽힐 생각은 추호도 없다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라이트한 옴니버스인 죄와 벌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공지사항입니다. 19.08.05 17 0 -
130 제130화 19.08.04 13 0 14쪽
129 제129화 19.08.03 14 0 12쪽
128 제128화 19.08.02 29 0 13쪽
127 제127화 19.08.01 15 0 13쪽
» 제126화 19.07.31 15 0 12쪽
125 제125화 19.07.30 19 0 13쪽
124 제124화 19.07.29 17 0 13쪽
123 제123화 19.07.28 16 0 12쪽
122 제122화 19.07.27 16 0 12쪽
121 제121화 19.07.26 18 0 12쪽
120 제120화 19.07.25 17 0 11쪽
119 제119화 19.07.24 17 0 12쪽
118 제118화 19.07.23 40 0 13쪽
117 제117화 19.07.22 51 0 12쪽
116 제116화 19.07.21 30 0 12쪽
115 제115화 19.07.20 25 0 12쪽
114 제114화 19.07.19 25 0 13쪽
113 제113화 19.07.18 26 0 13쪽
112 제112화 19.07.17 18 0 12쪽
111 제111화 19.07.16 24 0 12쪽
110 제110화 19.07.15 24 0 13쪽
109 제109화 19.07.14 20 0 12쪽
108 제108화 19.07.13 18 0 13쪽
107 제107화 19.07.12 28 0 14쪽
106 제106화 19.07.11 23 0 13쪽
105 제105화 19.07.10 23 0 12쪽
104 제104화 19.07.09 22 0 12쪽
103 제103화 19.07.08 26 0 12쪽
102 제102화 19.07.07 22 0 12쪽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스법군' 작가를 후원합니다!

  • 보유 골드: 0 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