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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모전참가작 라이트한 옴니버스인 죄와 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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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법군
작품등록일 :
2019.04.01 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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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8.04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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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8.02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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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8화

DUMMY

“거 참말로 얼척이 없구마. 지 딸내미가 가출했다고 징징거리는 꼰대나 지 잘못이 어쩌고하면서 틀어박혀 있는 가시나나 아주 기냥 쇠고집도 고런 쇠고집들이 없데이.”


무형이 불만스러운 듯 투덜거리자 나란히 걷고 있던 아르튀르가 마지못해 대답했다.


“···무형, 그 부분은 우리가 이해해줘야 해. 방금 전에 들었던 예시처럼 바론 백작님이나 아칸 경은 각자 소중한 것을 잃어버리셔서 잠시 절망하고 있을 분이지. 그 분들이 원래대로였다면 좀 더 진중성 있게 대해주었을 거야.”


아르튀르는 가나가 말해준 예시를 떠올리며 제국 근위기사단장으로서, 그리고 그 밖에도 소중한 것들을 염두에 두면서 새삼스럽게 공감하게 되었다.


“비록 정확한 생사를 확인할 수 없다고 해도 바론 백작님은 하나뿐인 혈육을 하루 만에 잃게 된 셈이니 그 충격이 매우 크시겠지. 그게 설령 백작님을 대신해서 추후 샬롯 백작령을 이끌어야 할 차기 영주라는 차원이 아니라 해도, 단순히 유일하게 남은 가족··· 하나뿐인 자식이라는 관점에서도 말이지.”


만일을 위해 아르튀르가 제국에서 조사한 바에 따르면 샬롯 백작령의 가족사는 비극적이었다.

백작령의 영주라는 풍족한 지위를 제외하더라도 바론 백작은 가족을 사랑하는 자상하고 인자한 아버지였다고 한다.

하지만 딸인 엘리자베트가 이능작가가 되어버린 시점에서 아내가 사망했고, 딸은 과거의 기억을 통째로 소실하게 되어 크나큰 충격을 견디지 못하고 식음을 전폐하는 것도 모자라 모든 업무를 중지하고 병상에 누웠다고 하니 말이다.


“···그리고 아칸 경에 대해서는 실은 제국에서도 자세한 정보를 얻을 수 없어서 잘 모르겠지만, 분명 바론 백작님과 비슷한 경위로 소중한 무언가를 잃어버렸다고 봐야 하겠지.”


그러자 아르튀르의 대답을 줄곧 듣고 있던 무형은 머리 뒤의 깍지를 풀고 좌우의 허리춤에 걸려있는 검들 위에 손을 올려놓으며 별 것 아니라는 듯 한숨을 쉬면서 말했다.


“에효! 와 인생들을 그리 어렵게 사는지 모르겠네. 이미 한 달이나 지난 일을 가꼬 뭘 그리 쪼잔하게들 궁시렁거리노? 즐거우면 ‘즐거운 갑다’, 힘들면 ‘힘든 갑다’라고 술 한 잔 땡기면서 맘 편히 묵으면 될 일 아이가.”


상대의 의중을 헤아려 주려는 아르튀르에 비해 무형은 다소 기분이 나쁘더라도 금방 잊어버리려는 듯 손으로 술을 마시는 듯 시늉을 하면서 아르튀르에게 한 잔을 권했다.

그 몸짓을 흘낏 보고 있던 아르튀르가 작게 코웃음을 치면서 말했다.


“후후··· 정말 너라는 친구는, 세상일에서 해방되어 있는 게 마치 한결같은 어린애 같아서 정말 부럽네. 하지만 안타깝게도 아직 해야 할 일이 조금 남아있어서 말이지.”


그러자 아르튀르와 무형의 뒤를 따라서 조용히 걷고 있던 미르딘이 헛기침을 하며 말했다.


“···크흠! 바론 백작을 개심시키는 것도, 아칸 경을 회유하는 것도 실패한 이상··· 이제 샬롯 백작령에 남아있는 볼 일이라면 그 녀석을 만나는 일이겠지.”

“그 녀석이 뭐꼬? 내는 들은 게 없데이.”

“···이제 만나러 가는 분은 롤랑 경이라고, 아칸 경과는 다른 의미에서 유명한 분이셔.”


미르딘과 아르튀르가 어두운 표정을 지으며 대답하자 무형은 갑작스럽게 우울해진 분위기를 바꾸기 위해 가벼운 농담을 던졌다.


“아함~ 내는 그른 시시껄렁한 얘기는 인자 기찬타. 빨리 술이나 한 잔 땡겼다가 냉큼 자버리고 싶데이.”


그러자 아르튀르가 무형을 바라보면서 조심스럽게 대답했다.


“···미안하지만, 그럴 수는 없어. 아까라면 몰라도 이번만큼은 네 도움이 필요하거든.”

“그건 또 뭔 소리고?”

“···쯧쯧. 어째서 이번 샬롯 백작령에 너 같은 망나니까지 함께 데려와야 했던 것인지 생각을 하거라. 방금 아르튀르가 했던 말과 연관시켜서 제국의 정치와 상관없는 제삼자가 끼어들 수 있는 일이라면 뭐가 있겠느냐.”


그 말을 듣고 나서야 무형은 이해가 된 듯 서서히 미소를 지을 수 있었다.


“아하··· 대강 알겠고마, 내를 그런 식으로 써묵을 셈으로 데려온기가?”

“···친구로서 정말 미안해. 하지만 이것만큼은 제국 소속의 기사로서 반드시 지켜야 해서 말이야···.”

“아아··· 개안타. 어차피 내도 쪼매 심심했었고, 나중에 술이나 제대로 쏘면 상관없데이.”


그렇게 아르튀르 일행이 샬롯 백작령을 빠져나와 도착한 곳은 롤랑의 집 앞이었다.

무형이 먼저 문을 다가가 두드리려 하자 느닷없이 아르튀르가 어깨를 잡아서 멈춰 세우며 말했다.


“···처음에는 일단 나와 스승님에게 맡겨 줘. 설령 네가 나서게 된다고 해도 나는 끝까지 내 의지를 관철하고 싶어.”

“쯧쯧쯧··· 그런 녀석에게까지 기사로서 예의를 다하려 하다니, 아직도 멀었군.”


뒷짐을 지고 있던 미르딘이 혀를 차면서 아르튀르에게 쓴 소리를 했고, 이에 아르튀르는 고개를 숙여 미르딘에게 사과한 다음 롤랑의 집 앞으로 가서 문을 두드렸다.


“실례합니다, 안에 계십니까?”


문을 두드리는 아르튀르도, 미르딘도, 그리고 물러서 있는 무형도 집 안에 롤랑이 있다는 걸 간파하고 있었다.

즉 아르튀르의 말은 어디까지나 대면을 위한 형식에 불과할 뿐인 단순한 요청이다.

그러자 잠시 후 눈가를 비비며 어려보이는 외형의 소녀, 롤랑이 문 너머로 대답했다.


“으으으··· 감히 이 몸의 얼마 없는 귀중한 수면을 방해하다니, 대체 누구냐.”

“···갑작스럽게 방문 예정도 없이 찾아와서 수면 시간을 방해한 무례를 사죄합니다. 저희들은 롤랑 경의 소문과 인지도를 듣고 제국으로부터 파견된 사람들입니다.”


그러자 문 너머에 있던 롤랑이 조그맣게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빌어먹을! 하필 이 몸의 잠이 덜 깨있어서 이런 어처구니없는 실수를 허용하다니, 지긋지긋한 제국 놈들 같으니!”

“그렇게 말씀하시는 당신이 롤랑 경이시죠? 그 동안 경에게 찾아왔던 병사들처럼 이번에도 용무가 있어서 왔습니다만, 이번만큼은 매우 중대한 사안인지라 부디 말씀을 드려주신다면 감사하겠습니다.”


잠시 후 롤랑이 문을 슬그머니 열자 아르튀르가 환한 미소를 지어보였고, 그 미소를 바라보고 있던 롤랑이 작게 숨을 삼키며 말했다.


“허어··· 번지르르한 말투에서 짐작했었다만, 설마 어중이떠중이 병사 따위가 아니라 제국의··· 아니 서방국 최고라 칭송받는 기사가 마중을 나올 줄이야.”

“···그러한 이명에 걸맞을 수 있도록 글로리아에 몸과 마음을 바쳐 줄곧 정진하고 있습니다만, 아직까지 멀어서 부끄러울 따름입니다.”


그리고 롤랑이 아르튀르 너머에 있는 사람을 바라보면서 한껏 조롱이 섞인 비아냥을 내뱉었다.


“오호~ 설마 거기 있는 그 분은 마탑의 살아있는 전설이자 모든 마법사들의 우상이신 미르딘 스승님이 아니십니까? 제가 제국을 떠난 후로 수십 년 만에 뵈는데, 그 동안 용케도 늙어죽지 않으셨군요?”

“···비록 겉모습은 젊다 못해서 꽤나 어려졌다만, 그 고약한 말버릇은 예나 지금이나 여전하구나.”


롤랑은 마지막으로 미르딘의 옆에 팔짱을 끼고 있는 무형을 바라보면서 흥미롭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그리고 옆에는 동방국의 인간, 이도류··· 설마 음유시인들이 그토록 애찬하는 무형이신가?”

“···엇? 아르라든가 영감은 우쨌든, 설마 내까지 알고 있나? 말빨도 그렇고 거 요망한 가시나데이.”


문틈으로 슬그머니 보고 있던 롤랑은 잠시 동안 침묵하다가 한숨을 쉬면서 말했다.


“하아··· 오늘따라 왜 이렇게 성가신 손님이 많은 건지··· 비록 마음에 들지 않지만, 당신들 같은 유명한 사람을 이대로 내치는 것도 그러니 들어와서 차라도 한 잔···.”

“롤랑, 간악한 꿍꿍이로 우리를 현혹하려 들지 마라. 지금 당장 그 집에서 나와서 우리들의 얘기를 듣지 않는다면, 험한 꼴을 보게 될 것이야.”

“스, 스승님···?!”


롤랑의 말을 도중에 끊어버린 미르딘의 말에 아르튀르는 당황했고, 롤랑은 작게 혀를 차면서 대답했다.


“쳇··· 빌어먹을 괴짜 영감탱이 같으니, 이미 눈치 채고 있었군?”

“나 또한 더 이상은 예전처럼 네놈의 계략에 놀아날 정도로 무지하지 않다. 이번만큼은 방심하지 않을 테니 순순히 바깥으로 나오너라.”


그렇게 일방적인 통보를 받은 롤랑은 출입문 근처에 널려있는 옷가지를 주워서 겉에 걸쳐 입고는 출입문 바깥으로 걸어 나왔다.

그 모습을 안절부절 지켜보던 아르튀르가 어중간하게 웃어 보이며 말했다.


“대, 대답에 응해주실 생각을 해주셔서 감사하···.”

“그딴 입 발린 형식적인 말보다는 조금이라도 빨리 용건을 듣고 싶군. 이 몸의 연구 시간만큼이나 수면 시간도 귀중하니 말이지.”


그러자 아르튀르가 그 동안 보였던 웃음이 점차 사라졌고, 미르딘은 한껏 경계 태세를 취한 채 긴장하고 있었으며, 무형은 허리춤에 찬 두 자루의 검에 손을 올려두고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아르튀르가 무언가를 단단히 결심한 것처럼 당당하게 말했다.


“롤랑 경, 이 아르튀르 르 블랑! 근위기사단장으로서 제국을 대표해서 당신에게 도움을 요청하고 싶습니다! 지난 수 년 동안 줄곧 이어졌던 남쪽과의 소규모 전쟁이 점차 격해지는 와중에 최근 들어서 마왕군의 기세가 급속도로 성장하고 있습니다! 이대로라면 머지않아 남쪽의 경계선이 붕괴하여 글로리아에 크나큰 혼란이 닥치리라 생각합니다! 그러니 지난날의 과오는 잠시 잊고 글로리아를 위해 경의 능력을 빌려주기 바랍니다!”


아르튀르의 말을 잠자코 듣고 있던 롤랑은 아르튀르를 시작해서 미르딘, 그리고 무형을 흘낏 훔쳐봤다.

평상시라면 제국의 병사들이 찾아왔었겠지만, 지금은 서방국에서도 이름을 날리는 유명하면서도 강력한 인지도를 자랑하는 사람들이 셋이나 모여 있었다.


“···역시 이 몸을 찾아오려면 그런 이유여야겠지. 앞서 제국을 위한다며 말하고 있지만, 제국의 더러운 돼지 같은 귀족 놈들은 자기 목숨만큼이나 부와 명예를 우선시하니 말이지?”


롤랑의 비아냥이 섞인 험한 말에도 세 사람은 침묵했다.

앞으로 벌어질 일이 어떤 방식으로 흘러가게 될지 어렴풋하게나마 예감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만일 이 몸이 승낙하게 되면 얻게 되는 게 뭐지? 더러운 귀족 놈들이 그 동안 꽁꽁 싸매고 있는 돈인가, 아니면 아무런 쓸모도 없는 작위나 명예? 그도 아니면 다시금 마탑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과거의 기록을 적당히 조작해주려는 건가?”


그 말을 들은 아르튀르는 불안한 표정을 유지하면서도 열심히 웃으려 하면서 대답했다.


“로, 롤랑 경의 조력만 얻을 수 있다면, 그리고 그 결과 남쪽과의 전쟁에서 승리하게 된다면··· 무엇이든지! 경이 더 이상 과거에 얽매이지 않도록 저희 제국은 그 무엇이든 줄 겁니다!”

“호오··· 무엇이든? 제국을 대표한다고 선언한 그 아르튀르 경의 말이라면 분명 믿어도 되겠지.”


그제야 아르튀르의 표정이 조금씩 밝아졌고, 마침내 롤랑이 본심을 대답하게 되었다.


“그럼 이 몸이 도움을 주는 대신 매주 살아있는 인간의 소체를··· 그렇지, 보다 다양한 실험에 쓸 수 있도록 각 나이별 남녀들을 최소한 수십 명 단위로 보내주고, 마탑 내부에 금지된 학술서나 흑마법을 사용할 수 있는 개인적인 공간을, 그리고 연금술 관련 설비들을···.”

“그만··· 이제 그만하면 됐다, 아르튀르. 이 녀석은 마탑 시절에 있던 예나 지금이나 전혀 변한 것이 없구나.”

“스, 스승님···?!”


이야기를 듣고 있던 미르딘이 조용히, 그러면서도 분노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자 롤랑도 손가락을 튕기며 말했다.


“역시 그렇겠지. 이 몸의 목적을 들어줄 생각도 없는 제국 놈들에게 선행으로 도움을 준다는 건 생각할 필요도 없는 우행의 극치. 그럴 바에는 지나가는 노인네를 붙잡고 식사라도 권하는 게 그나마 기분은 더러울지언정 이 몸의 배라도 채울 수 있겠지.”


롤랑이 손가락을 튕기며 말하는 도중, 롤랑의 집이 점차 주변의 지형을 끌어 모으면서 거대한 골렘의 형태로 변하고 있었다.

몸체 부분은 여전히 집의 모양을 유지하고 있었지만, 그 밖에 팔이나 다리 등은 지면이나 근처 숲의 나무들을 한데모아서 이어붙이는 것처럼 변해가고 있었다.

그러자 아르튀르가 마지막으로 롤랑을 바라보며 말했다.


“부, 부디 다시 생각해주시기 바랍니다! 이것은 글로리아만이 아니라 경의 사활마저 걸려있는 중대한 문제입니다! 제 아무리 경께서 과거에 인간의 도리에 어긋나는 짓을 벌이셨다고 해도 제국은 기회를 주려고 한단 말입니다!”

“···아하하! 그럴 필요 없다! 이미 이 몸은 제국 놈들에게 아무런 흥미도 없고, 이에 더해서 어떤 메리트도 없다고 단정을 지었으니 말이지! 어차피 자네들이 온 시점에서 이렇게 될 운명이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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