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트한 옴니버스인 죄와 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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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법군
작품등록일 :
2019.04.01 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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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8.04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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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7.01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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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제96화

DUMMY

이미 어둑해지는 숲 속에서 허공에 떠오르는 불빛에 의지한 채 수풀을 해치며 나아가는 두 사람.


“니제르, 여기가 대체 어디야? 여긴 분신체의 영상으로 봤었던 곳이 아니잖아?”

“···쿨럭! 지금, 나에게 말 걸지 마. 안 그래도 죽은 자의 피 때문에, 엉망인 몸에 무리까지 해서 용케 데려다 줬단 말이야.”


앞장서서 숲 속을 헤쳐 가는 가나와 뒤에서 토혈이 섞인 기침과 함께 느리게 따라오는 니제르.

몇 분 전에 가나가 니제르에게 이시우가 있는 장소로 안내하라고 협박을 했었고, 니제르는 지금에서야 간신히 상태가 회복된 참에 무리하게 전이를 사용해야만 한 것이다.


“···어휴! 마녀 주제에 근성 없긴, 그 동안 살아온 세월이 얼만데 겨우 그 정도 밖에 못해?”

“···다시 말하지만, 나를 마녀라고 부르지 마! 그리고 이 정도도 나니까 가능한 거라고! 다른 인간 마법사나 마녀였다면, 진즉 죽은 자의 피 때문에 영창은 고사하고, 시도하기도 전에 기절했을걸!”


니제르가 가나 뒤를 따라가면서 필사적으로 반박했지만, 가나는 듣는 등 마는 등 무시했다.

그러자 니제르가 갑자기 걸음을 멈추며 소리쳤다.


“···아무튼 이제 됐지?! 도착할 곳에서 다소 거리가 있다고 해도 결국은 데려다주긴 했으니까! 난 이곳에서 적당히 휴식을···.”

“하하하! 그게 무슨 소리야?! 당연히 너도 따라와야지!”


앞장서서 걷고 있던 가나가 갑작스레 뒤로 돌아서 니제르의 검은 드레스를 움켜쥐자 니제르는 가나에게 붙잡힌 채 힘없이 질질 끌려갔다.


“···이, 이게 무슨 짓이야! 놔, 놓으라고! 안 그래도 가만히 있어도 힘들어 죽겠는데, 더 이상 나보고 뭘 어떻게 하라고?!”

“하하하! 설마 내가 이번 일의 발단이자 원흉을 그렇게 간단히 놓아줄 것 같아?! 게다가 진수련에게 이능작가의 정보를 듣지 못했으니, 덤으로 내게서 이능작가에 대한 정보를 들어야겠거든?”


니제르가 검은 드레스를 반대로 잡아끌려고 애를 쓰려 했지만, 최악에 가까운 몸 상태로 가나와 힘겨루기를 시도하기에는 한없이 일방적인 추세로 끌려다녀야 했다.

이곳까지 오느라 무리를 한 마당에 더 이상 문장력이나 마력을 운용하지 못하며, 힘으로도 가나에게 지는 판국에 니제르가 할 수 있는 건 더 이상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았다.

결국 니제르는 가나에게 붙잡혀서 허무하게 따라다녀야 했다.


“흠~ 분신체로부터 전송되는 지도에 따르면 이쪽이 맞는 것도 같은데 말이지~ 앗, 저기 불빛이 보인다!”


숲 속을 헤치며 나아가던 가나가 발견한 곳, 그곳에는 모닥불의 불빛이 주변을 환하게 밝히고 있었다.

그것은 지금처럼 가나의 마법으로 만들어진 인공적인 빛이 아닌, 불규칙적으로 흔들리는 자연의 불이었다.


“어이~ 시우야~ 나 왔다~!”


그렇게 외치는 가나가 숲 속을 빠져나가려 할 때, 문득 발길이 멈추게 되었다.

막상 뒤를 돌아보니 니제르가 근처 나무에 손을 뻗어서 나가지 못하게 버티고 있었다.


“에이, 새삼스럽게 왜 이래?”

“···이게 새삼스럽다고?! 난 저 꼬마랑 싸웠단 말이야! 이제 와서 무슨 낯짝으로···!”


하지만 더 이상은 들어줄 수 없다는 듯 가나는 니제르의 검은 드레스를 잡은 채 급기야 머리채마저 잡고 끌어내려 했다.


“···아, 아야! 아야야야!”

“패자한테 낯짝이고 뭐고 있을 것 같아? 지금도 너한테 그나마 옛 정이 남아있기에 망정이지, 안 그랬으면 진즉 살려줄 생각도 없었어! 그러니까 고집은 그만 부리고 이리 나왓···!”


결국 머리 가죽이 뜯어지기 직전까지 버티던 니제르가 가나에 의해 억지로 끌려나왔고, 모닥불 앞에서 몸을 녹이고 있는 시우와 마주하게 되었다.

시우는 날이 저무는 것을 보고 더 늦기 전에 불이라도 피워야겠다는 생각에 이른 모양인지 쭈그리고 앉아 몸을 녹이고 있었다.


“···오셨어요, 가나 씨?”

“아하하~ 늦어서 미안해. 이 녀석이 만든 독이 꽤 성가셔서 좀 고생했어!”


그렇게 모닥불 앞까지 데려와 니제르를 내던지는 가나.

그리고 그 모습을 냉정하게 바라보는 시우 사이에 묘한 긴장감이 감돌았다.


“···역시 가나 씨랑 아는 사이셨군요?”


니제르가 끝까지 침묵하자 그 옆에 있던 가나가 자리에 앉으며 말했다.


“하하하! 자랑은 아니지만, 이 녀석과는 아~주 예전에 남쪽에서 캠프 할 때 우연히 만난 사이거든! 먹을 거 구할 생각에 돌아다니다가 만나서 이것저것 나눠 받았거든!”

“···그런가요.”


시우의 대답을 끝으로 더 이상 대화가 이어지지 않았다.

그런 분위기가 거북하고 답답했던 가나가 뭔가 대화를 이어갈 수 있는 주제를 찾으려던 중 문득 봉합 자국이 있는 시우의 손목을 보았다.


“···그러고 보니 분신체의 영상으로는 손목이 잘려나갔는데, 토리가 용케 치료해줬네?”


하지만 그런 가나의 질문에 시우도, 그리고 어디엔가 있을 토리조차도 대답해주지 않았다.

그것이 이번 사건의 흑막인 니제르에 대한 경계심인지, 혹은 지금까지의 상황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없었던 가나에 대한 모종의 반항 심리인지 가나로서는 알 수 없었다.

그래서 가나는 대화 상대를 시우에게서 니제르로 변경했다.


“···아, 맞다! 이제 슬슬 모든 걸 원래대로 돌려야지, 니제르?”

“계속해서 바보 같은 소리를··· 아까도 말했지만, 그런 건 내 몸 상태가 정상일 때 요구해 줘.”

“음··· 그러면 네가 모아온 이능작가의 정보에 대해서 알려줘! 몸 상태가 엉망이라도 말은 할 수 있잖아? 그러니 좋은 건 서로 공유하자고~?”

“큿··· 아무리 패자 취급을 한다고 해도 그것만큼은 절대로 알려줄 수 없어! 그걸 죄다 불었다간 나를 해치려 들려고?!”

“에이~ 나는 너처럼 그렇게 냉혹하지 않다고? 그래도 내가 좋은 말로 할 때 미리 말해두는 게 좋을 걸? 안 그러면 문장력 써서 억지로 머릿속 들여다 볼 테니까.”

“저, 저항해주겠어! 나도 마녀의 자존심이 있지! 적대관계였던 자한테 그리 쉽게 알려줄 것 같아?! 끝까지 저항해서 포기하게 만들 테다!”


그런 화기애애한 것처럼 보이는 대화를 무심하게 듣고 있던 시우가 가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가나 씨, 저 니제르라는 마녀 때문에 저랑 함께 온 장부 씨랑 무명 씨가 죽었어요.”


그러자 분위기는 단번에 가라앉았다.

비록 직접적으로 대화를 나눈 적은 적었어도, 짧게나마 같이 여행을 한 동료이자 친구였던 자들의 죽음에 대해 시우는 굳이 직접적으로 화제를 꺼내서 지적한 것이다.

시우가 말한 그 말의 의미를 모를 정도로 가나는 바보도 아니고, 어리석지도 않았기에 애써 대답했다.


“···으, 응. 일단 분신체로 보긴 했는데 말이지···.”

“그럼 왜 그렇게 저 마녀에게 친근하신 건가요.”


시우는 가나에게 조용히 화를 내고 있었다.

시우 본인에게 몇 번이나 도움을 주고, 애써 목숨을 지키려 한 동료의 죽음을 앞에 두고도 이번 사건의 흑막이라는 자와 친근한 대화를 나누는 가나의 모습이 무척 불쾌했다.


“아, 아니··· 니제르는 예전부터 알고 지낸 친구고···.”

“···알고 지냈던 친구라 해서? 그건 너무 뻔뻔하지 않나요? 게다가 장부 씨나 무명 씨만이 아니라 진수련 씨도, 진화랑 씨도, 동방국의 수많은 사람들도 피해를 입었어요.”


주관적으로도, 객관적으로도 니제르가 벌인 짓에 대한 피해는 막심하며, 또한 악랄하기 그지없었다.

그런데 고작 친구라는 이유로 무마시켜 주려는 것은 단순히 생각이 없거나 어이가 없는 것을 넘어서 미친 짓에 가까운 궤변이었다.

그러자 할 말이 있다는 듯 니제르가 대신 대답했다.


“그래서 꼬마야, 그게 무슨 문제라도 있는 거니?”

“···뭐, 라고···!”


니제르의 어이없는 대답에 분노한 시우가 제자리에서 일어서자 니제르는 작게 미소마저 지으며 말했다.


“나는 한때 남쪽 출신의 마녀란다? 그 당시에 재미삼아 죽였던 마물이나 아인들에 비하면 동방국이란 나라의 인간들에게 한 짓은 아무 것도 아닌 걸?”

“···인간은 마물이나 아인들과 달라!”


그러자 모닥불을 앞서 두고서 두 사람 사이에 끼게 된 가나는 작게 한숨을 쉬며 지켜보게 되었고, 시우의 반박에 니제르는 우스운 듯 비꼬며 대답했다.


“···어머, 갑자기 당연한 소릴 왜 하는 거니? 같은 종족이라도 외형이나 능력, 특성, 모두 다 다르단다?”

“내 말은 그게 아니야! 인간들은··· 저마다 숭고한 의지를 갖고 열심히 살아가는, 존중받아 마땅한 인류의 일원이라고!”


이번에도 그 말에 니제르가 대꾸했다.


“그러니? 그러면 이번에 희생된 인간들은 그저 운이 안 좋았을 뿐이네.”

“운이, 안 좋았다고?! 전부 다 네가 저지른 짓이잖아! 이 마녀야!”


시우의 외침을 듣고 니제르 또한 제자리에서 일어났다.

비록 니제르의 체내에는 아직까지 죽은 자의 피가 있는 탓에 그 이상의 짓을 할 수조차 없었지만, 시우를 향해 살기를 흩뿌리는 것 정도는 할 수 있었다.


“그래, 꼬맹아? 내가 저지른 짓이지! 하지만 그 밖에도 월영단주라든가, 월영단의 잔당 놈들도 있단다? 그건 착각하지 말아줬으면 좋겠는데?”

“···그게 뭐! 그렇다고 네가 저지른 짓이 조금이라도 가벼워 질 것 같아?! 너는 여전히 희대의 악녀이자 사악한 마녀라고! 이 세상에 존재해서는 안 되는 악독한 범죄자, 아니 악마 그 자체야!”


그러자 니제르의 손이 재빠르게 움직였고, 옆에서 지켜보던 가나가 니제르의 손을 후려쳤다.

마치 무심하게 모닥불을 바라보고 있던 것 같은 가나였지만, 니제르는 가나의 반응을 살피면서 시우에게 대답했다.


“···남쪽 출신 마물이나 아인들의 유일한 규칙은 약육강식, 강한 자만이 살아남을 수 있고 약자는 도태되는 게 법이자 진리지. 그러니 너희 하찮은 인간들이 가진 저열한 사고방식을 마녀인 나에게 강요하는 건 무리란다.”


결국 분노가 폭발한 시우는 어느 새 콜트를 집어 들고서 니제르의 머리를 겨냥했다.

모닥불 앞에 앉아서 휴식한 탓인지 기력은 충분했고, 화가 난 탓인지 쏠 수 있는 마력탄도 다섯 발 이상이나 될 것 같았다.

게다가 눈앞에는 무력화 된 상태의 니제르가 있는 탓에 의도적으로 조준점을 벗어나지 않는 한 쏘는 족족 반드시 적중할 것이다.


“그럼··· 그럼 내가 이렇게 약해진 너를 쏴도, 아무런 문제도 없겠지!”

“···어머, 그건 나에게 쐈던 신기한 무기구나? 결국 그걸로 나를 죽이려는 거니? 그래도 괜찮단다? 한 번 쏴보렴.”


니제르의 말에 시우는 모든 분노를 담아서 방아쇠에 손가락을 걸쳤다.

그러나 결정적으로 방아쇠를 당기지 못한 채 우두커니 서 있을 뿐이었다.


“···왜 그러니, 꼬마야? 나를 죽인다고 말하지 않았니?”

“···닥쳐! 지금, 쏠 테니까!”


콜트의 총구가 사시나무 떨리는 것처럼 마구 흔들렸다.

지금이라면 확실하게 맞힐 수 있고, 그 밖에 다른 사람들의 원한을 풀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 생각한 시우였다.

하지만 어째서인지 방아쇠를 당기려 해도 뭔가가 가로막으려 드는 것처럼 손가락을 그 이상 움직일 수 없었다.


“후후후. 이래서 인간은 약해빠졌다니까? 게다가 그게 너 같은 꼬마라면 더 이상 말할 것도 없지.”


시우는 몇 번이나 그 자리에서 새롭게 다짐했다.

대장부가 죽은 순간에 쏘았던 기억을 떠올리면서, 그 격렬한 분노의 감정을 담아서 재차 쏘기만 하면 되는 일이라고 말이다.

그러자 옆에서 지켜보고 있던 가나가 대답했다.


“···시우는 약한 게 아니야. 그저 순수해서··· 그런 일에 좀 서투를 뿐이야.”


그 직후 모닥불의 불이 사라지고, 그 대신 니제르의 내부가 붉게 타올랐다.


“···끄, 끄아아아악! 아아아아악!”


니제르의 입에서 불길이 쏟아져 나왔고, 고통을 줄이기 위해 지면을 구르는 등 온갖 발악을 하려 했지만, 문장력이나 마력이 봉쇄된 이상 처절한 몸부림만이 고작이었다.

그 모습을 본 시우가 조준하고 있던 콜트를 거두자 가나가 시우를 향해 대답했다.


“···비록 내가 니제르랑 친구긴 해도, 그렇다고 이번 일을 용서하거나 넘어가겠다는 뜻이 결코 아니었어. 이번 사건의 피해자가 동방국 사람들인 만큼 동방국 사람들의 법에 따라 처리하게끔 기다릴 생각이었거든.”

“···그럼 이미 죽어버린 장부 씨나 무명 씨는··· 대체 어떻게 하실 건데요!”


시우의 말에 가나는 지면을 구르며 고통을 호소하는 니제르를 보며 중얼거렸다.


“···물론 그것도 포함해서 동방국 사람들에게 맡길 테지만, 일이 이런 지경까지 오게 된 게 내 탓이기도 하고, 그 두 사람에 대해서는 엘리한테 가서 따로 벌을 받으려고 생각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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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3 제93화 19.06.28 29 0 13쪽
92 제92화 19.06.27 44 0 13쪽
91 제91화 19.06.26 33 0 11쪽
90 제90화 19.06.25 107 0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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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 제75화 19.06.10 22 0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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