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트한 옴니버스인 죄와 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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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법군
작품등록일 :
2019.04.01 10:17
최근연재일 :
2019.08.04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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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4.07 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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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제11화

DUMMY

“먀, 먓! 가, 갑자기 움직이지 먓!”

“무, 무리다!”

“먓! 먀아아앗!”

“크, 윽! 미, 미안하다!”

먀우의 비명에 그 동안 쌓여 있었던 무수한 노고의 시간들이 순식간에 무너져 내렸다.

“먀아아~ 냐의 귀중한 상품들이, 그 동안 애써서 눌러 놓았는데! 먀아아!”

먀우의 앞에는 마차 하나와 커다란 짐수레 하나가 있었지만, 저마다 판매해야 할 여러 상품들을 한 번에 실을 생각이었는지 밧줄로 애매하게 고정시킨 탓에 균형이 크게 무너져서 뒤늦게 먀우와 대화를 나누던 남자가 무게를 지탱하려 했으나 실패한 모양이었다.

“먀! 북방국 사람이라도 인간은 인간이냐! 그것도 남자 주제에 왜 이렇게 힘이 없냐!”

“이건 누가 봐도 무리가 아닌가, 고양이! 이 정도나 되는 무게를 잠시나마 버텼던 우리가 오히려 대단하지 않나?!”

먀우는 고개를 절로 흔들고, 대화를 나눈 남자는 두통이 일어나는 지 미간을 주무르며 대꾸했다.

“먀? 냐한테 그런 말을 해도 되는 거냐?”

먀우는 짐승이 먹이를 노리는 것 같은, 매섭고 날카로운 눈빛이 되어 남자를 노려보았다.

“지금까지 냐가 너희들에게 준 그 위장용 옷들이랑 식재료, 운송에 이르러 여러 가지 생활에 필요한 필수품이나 그 구하기 힘들다는 기호품조차도 원래라면 상상도 못할 가격에 넘겨주고 있는데 말이냐!”

그 남자는, 일찍이 스스로 월영단의 간부라고 자칭한 뚱뚱한 남자를 제압 했었던 ‘중사’이며, 이전과는 달리 지금은 서방국 특유의 가죽과 천을 덧대어 움직이기 쉬운 평상복을 입고 있었다.

“큭! 이런 걸레 같은 게 이곳의 옷이라니, 서방국의 의류 수준이 저급하다는 건 소문을 접해서 어느 정도는 파악했다고 생각했지만, 설마 이 정도로 수준이 낮았을 줄이야!”

중사는 이를 갈며 투덜거렸으나 더 이상은 아무런 반론조차 하지 못하고 있었다.

“냐의 기억에 의하면 분명, 얼마 전에 북방국 근처에서 만난 ‘리더’인지 하는 인간이 마음대로 부려먹어도 좋다고 한 걸로 아는데 말이냐~?”

“무, 물론, 우리도 리더에게 협력하라는 명령을 받았으니 따르겠지만, 방금처럼 어쩔 수 없는 우연이라든가 인간으로서 할 수 없는 불합리한 일 같은 것까지 따를 순 없다! 이쪽도 나름대로 최소한의 권리 정도는 있을 터!”

중사가 그렇게 자신의 의견을 내세웠지만, 곧이어 먀우 곁으로 다가온 누군가가 보고 했다.

“먀우 공, 명령대로 목록에 적힌 물품들의 적재가 완료됐습니다.”

“엇, 그래냐? 좋냐. 그럼 다음 지시까지 휴식 시간이냐.”

그는 분명 중사라는 남자에게 월영단의 제압 보고를 했었던 자였다.

“이 멍청아! 지금 누구에게 보고를 올리는 거냐! 눈앞에 멀쩡하게 상급자가 있는데!”

그러자 부하로 생각되는 자가 느닷없이 전신이 경직되며, 우렁찬 목소리로 외쳤다.

“죄, 죄송합니다! 중사님! 하지만 해당 명령은 중사님을 거칠 필요가 없다고 먀우 공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뭐, 뭣?! 이 고양이 놈이, 내 부하를 함부로 쓰지 말란 말이다! 적어도 쓰려면 나와 얘기를 하고 쓰던가!”

먀우는 귀찮다는 듯 고개를 갸웃하며 말했다.

“먀, 먀? 이해가 안 된다냐. 왜 일부러 귀찮고 시간 걸리게 빙빙 돌아가려는 거냐? 냐한테 묻고, 나한테 보고하는 게 더 빠르지 않냐?”

“이런 멍청한 고양이 같으니, 이게 북방국의, 아니 우리들의 명령체계다! 또한 만일의 사태에 부하 놈이 어디 있는지 내가 파악을 못해서야 무슨 수로 대처하겠나?!”

중사는 무척 화가 난 건지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고, 그걸 가만히 듣고 있던 먀우는 여유롭게 손을 할짝거리며 고양이 세수를 했고, 그 사이에 부하는 어쩔 줄 모르게 그대로 굳어져 있었다.

“그래, 알았냐. 냐는 길드 놈들처럼 꽉 막힌 부류가 아니냐. 앞으로는 말하고 움직이게 하겠냐.”

“좋다. 거기, 상병! 언제까지 굳어져 있을 거냐! 돌아가서 휴식을 취해라! 다음 일이 정해지면 부르겠다!”

“아, 네! 감사합니다!”

상병이라 불린 부하는 더 이상 엮이기 힘들다고 판단한 모양인지 명령이 떨어지자 곧바로 동료들이 있는 곳으로 달려갔다.

그러자 중사는 다시금 미간을 지그시 누르며 말했다.

“하아. 설마 상병씩이나 되는 녀석이 아직까지 저렇게 기합이 빠져서 단순한 명령체계에도 혼란을 느끼다니.”

“먀하하! 뭐, 그런 건 신경 쓰지 마라냐!”

그 후 먀우가 덥수룩한 털로 뒤덮인 손으로 중사의 어깨를 톡톡 치며 말했다.

“너가 신경 써야 할 건, 여기에 무너져 내린 냐의 상품들이냐. 빨리 치워냐.”

“큭! 제길!”

중사는 다시금 이를 갈면서 ‘이 정도 계급까지 올라갔는데, 이게 대체 무슨 고생이냐!’면서 투덜거렸고, 멀쩡하게 휴식을 취하고 있었던 부하들이 마지못해서 달려오자,

“먀? 너희들이 도와줄 필요는 없냐. 저건 냐가 주는 벌이냐. 만일 도와준다면 앞으로 휴식 시간 같은 건 안 줄 거냐?”

그러자 부하들은 턱짓으로 상급자를 부리는 먀우의 말을 들어야 할 지, 아니면 원래의 상급자인 중사를 무리하게 따를 것인지 혼란스러웠고, 결국 이도저도 아닌 형태로 곁에서 응원하기 이르렀다.

“중사 님! 힘내기 바랍니다!”

“일찍이 ‘작업의 왕’이라 불렸던 전설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겁니다!”

“중사 님! 파이팅 하십시오!”

혼자서 묵묵하게 짐들을 싫어 나르는 중사는 그 말들을 듣고 인간으로서는 도저히 생각할 수 없는 살기를 내뿜으며 조용히 읊조렸다.

“이놈들, 나중에 연병장 10바퀴다. 그리고 마지막에 파이팅이라 한 놈은 다나까 안 한 말투 때문에 추가로 10바퀴를 더 돌려주마.”

결국 중사 혼자서 짐 정리를 마치고, 기적적으로 밧줄로 단단히 매듭을 지어 놓아서 결코 흔들리지 않게 고정시켜 놓았다.

그리고 그걸 줄곧 지켜보고 있었던 먀우는 빵을 우물거리며 말했다.

“암먐. 수고했냐. 와서 점심이냐 먹으라냐.”

중사는 비가 오듯 이마에 흐르는 땀을 소매로 닦아내며 먀우에게서 주먹만 한 조그만 빵 하나를 받았다.

“고작, 이거 하나인가?”

“먀먀먀! 실은, 생각보다 지출이 많이 나가게 생겨서 말이냐. 이번에 잡은 포로들의 식량도 있고, 목표가 되는 놈들이 잡히기 전까지 리더라는 자가 지원해 주는 것만으로는 이 정도가 최선이냐.”

그렇게 말하며 먀우는 어느 새 빵을 더 먹었는지 빵 부스러기조차 입 안으로 털어 넣으며 말했다.

“혹시 냐를 믿지 못하겠다면, 그 동안 적어 둔 가계부라도 보여주겠냐. 하지만 말해두겠냐. 냐는 국가에 상관없이 자유롭다지만, 일개 유랑상인에 불과하냐. 그리고 보아하니 리더라는 자의 조직도 그리 크지 않은 것 같고, 딱히 뒤에 그럴 듯한 후원자도 없는 것 같으냐.”

그러자 중사는 손에 든 빵을 가만히 보고 있다가 눈살을 찌푸리며 할 수 없다는 듯 베어 물었다.

“흥. 그런 건 네놈이 말하지 않아도 알고 있다, 고양이. 리더는, 아니 우리들은 아직 약하다. 하지만 언젠가 반드시 사명을 완수할 것이다.”

그 모습을 본 먀우는 수염을 작게 떨면서도 흥미롭게 바라보고 있었다.

“먀먀먀! 역시, 냐한테 전부를 알려주는 건 무리려냐?”

“하, 사람을 험하게 부리는 구두쇠 고양이 주제에 쓸데없는 동정인가?”

먀우와 중사의 시선이 교차했지만, 그 뿐이었다.

더 이상 서로 아무런 말도 하지 않게 되었고, 먀우는 상품들이 나열된 목록을 눈으로 읽었고, 중사는 손에 든 빵을 전부 먹어치우며 말했다.

“앞서 줄곧 말했지만, 괜히 착각하지 마라, 고양이. 네놈과는 어차피 일시적인 협력에 불과하다. 너는 뒤에서 지원을 하다가 만약 위험해지면 상관없다는 듯 재빨리 빠지면 그걸로 족하다.”

“먀먀! 그건 좀 서운하냐! 상인으로서 신뢰를 받지 못하는 건 뼈가 아프냐! 뭐, 확실히 냐로서는 이익을 두둑하게 챙겨가고 운 좋게 빠져나올 수 있다면 그게 최상의 결과지만 말이냐!”

중사는 손에 있는 빵 부스러기를 털면서 말했다.

“그래. 지금은, 그러면 된다. 고로 다음에 향할 장소는 어디지?”

그러자 먀우는 옆구리에 찬 가방 속에서 지도를 꺼내 들며 말했다.

“먕, 일단 서방국을 빠져 냐와서 중앙에 있는 거대한 산은, 우냐냥. 이건 어쩔 수 없냐. 짐도, 사람도 많으니 북쪽으로 빙 돌아서 동방국으로 향한 다음, 적당히 상품들을 팔고 근처에 있는 예비 기지로 갈 거냐.”

중사는 손가락으로 지도를, 서방국을 가리키며 말했다.

“그런가. 그럼 잠시 질문이다만, 귀환하겠다는 건 당분간 상정한 목표들에 신경을 쓰지 않겠다는 소리인가?”

“그건 아니냐, 오히려 동방국으로 유인하려는 거냐. 리더는 냐한테 좋을 대로 장사를 하면서 주의를 분산시키길 바란다고 했냐. 동방국으로 향하는 건 원래부터 장사를 할 의도도 있지만, 먼저 포로로 잡은 놈들을 가둘 곳이랑 부족해진 식량이나 지원을 받기 위해서기도 하다냐.”

그러자 중사는 잠시 생각에 잠기는 듯 하며 먀우를 노려보았다.

“새삼스럽지만, 정말 리더에게 명령 받은 대로 움직이고 있는 거겠지?”

“먀먀! 냐는 명령 같은 거 안 받았냐. 정말로 자유롭게 움직이라고 했었냐. 그리고 필요하다면 너희들도 얼마든지 부려먹어도 좋다고 했냐. 단지 지금처럼 서로 지원을 해주고 그 목표라는 놈들의 주의만 확실하게 끌어서 분산시켜주면 된다고 했냐.”

그렇게 중사가 의미심장한 눈길을 주자 먀우는 손톱으로 지도에 그려진, 동방국에서 북방국으로 향하는 길목을 하나씩 집으며 말했다.

“먀먀먀! 지금의 목표는 동방국이지만, 최종적으로는 북방국 근처에 돌아가는 거니 부디 안심하라냐. 냐는 신뢰도 중요하고, 목숨도 중요해서 노예 매매 같은 건 절대 취급을 하지 않냐.”

그러자 중사는 의심을 푼 듯 길게 한숨을 내쉬며 대답했다.

“하아. 일단, 어느 정도 알겠다. 그러면 잠시 리더에게 정기 보고를 하고 오도록 하지.”

“알았냐. 빨리 하고 와냐.”

중사가 먀우에게서 떨어지며 부하들이 있는 곳으로 가자,

“먀먀먀. 역시, 아무리 노력해도 신뢰할 수 없냐. 간단히, 그렇게 남을 믿을 수는 없냐.”

그리고 그에 비해 중사는 부하들과 만나기 전, 어디선가 꺼낸 전자담배로 보이는 것을 입에 물고 깊이 들이마시며 내뱉는 것으로 투덜거리고 있었다.

“씁, 하아. 칫. 리더의 명령만 아니었다면 저 놈의 고양이 놈에게 이리저리 휘둘릴 우리들이 아닌데, 쓸데없이 이런 것까지 꺼낼 정도로 화가 나 있었다니. 젠장, 이건 마치 주인과 애완동물의 관계가 역전된 것 같네.”

중사는 그렇게 한 모금만을 피운 후 다시금 입에서 떼어내 손가락으로 부러뜨리니, 마치 두 동강이 난 전자담배가 컴퓨터 그래픽의 폴리곤 입자처럼 변하여 흔적도 없이 가루가 되어 사라져 버렸다.

그렇게 쉬고 있는 어느 부하 쪽으로 걸어가더니 불만스러운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어이, 통신병. 그만 일어나라. 정기 보고다. 일어나서 주파수 맞춰라.”

그러자 통신병이라 불린 중사의 부하는 졸고 있던 모양인지 화들짝 놀라며, 재빨리 허공에 알 수 없는 번호를 나열하는 듯 쓰는 척을 하더니,

“아, 아. 통신보안. 여기는 알파 2의 칼빈 중사다. 통신보안?”

갑작스레 중사는 먼 하늘을 올려다보며 혼자 중얼거렸고, 알 수 없는 단어들을 쏟아내고 혼잣말에 열중했다.

“그래, 수고한다. 행정병. 정기 보고다. 지금부터 보내는 자료에 목적지 및 위치로 이동을 개시할 예정이다. 그럼 기억 자료를 전송하겠다.”

칼빈 중사라는 사람의 곁에 앉아서 쉬고 있던 통신병은 아직 졸음이 가지 않았는지 꾸벅꾸벅 졸기 시작했고, 그 탓에 칼빈 중사에게 뒤통수를 맞아버렸다.

“인마! 정신 차려! 네놈이 졸면 나 혼자 주파수고, 통신이고, 기억 자료 전송까지 죄다 해먹으라는 소리냐! 앙?!”

“죄, 죄송합니다!”

그렇게 기분이 언짢아 보이는 칼빈 중사는 몇 가지 형식적인 보고를 올린 후 통신이 끝난 모양인지 크게 기지개를 폈고, 곁에서 앉아있던 통신병은 작게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저, 중사님.”

“왜 부르냐, 빌어먹을 잠탱이 통신병.”

통신병은 불안하다는 표정으로 소근거렸다.

“아까 그 먀우라는 고양이 수인이 이쪽을 지긋이 바라보던데, 괜찮은 겁니까?”

“흥. 글쎄다. 이런 시대에 뒤떨어진 구식 통신도 이해할 수 없는 이곳 녀석들에게 신기하다거나 아니면 혼잣말이나 중얼거리는 미친놈들처럼 보이겠지. 어느 쪽이든 상관없다.”

그렇게 투덜거리던 칼빈 중사는 정기 보고를 마치고 다시금 먀우가 있는 쪽으로 걸어가며, 아직까지 중천에 뜬 태양을 원망스럽게 노려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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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11화 19.04.07 47 2 13쪽
10 제10화 +2 19.04.06 44 3 14쪽
9 제9화 19.04.05 31 2 14쪽
8 제8화 19.04.04 26 2 14쪽
7 제7화 19.04.03 62 2 14쪽
6 제6화 19.04.02 43 2 14쪽
5 제5화 +2 19.04.01 45 3 15쪽
4 제4화 19.04.01 59 1 14쪽
3 제3화 19.04.01 64 1 14쪽
2 제2화 19.04.01 146 2 14쪽
1 제1화 +2 19.04.01 293 3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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