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경. 상해. 봉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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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하산
작품등록일 :
2019.04.01 1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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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6.24 2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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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6.05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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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하대란 시대 4)

DUMMY

탄광 소요사태를 조사하던 군통의 푸순 지부장은 이번 일이 우발적 사고가 아니라는 의심이 들었다. 각각 수 km씩 떨어진 여러 현장에서 반복된 문제들을 단순사고로만 보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결국 문제 현장들의 감독들이 모두 흑룡회 소속 낭인이란 사실이 밝혀졌다. 흑룡회는 일본 정계의 흑막, 두산만이 설립한 극우단체 『현양사』의 해외조직. 우국지사를 자처하는 현양사는 대륙진출을 외치며 손문, 김옥균 등 외국 혁명가들을 후원하고 동학운동에도 참여한 행동파 조직이다.

둥베이로 진출한 낭인들을 규합해 『흑룡강까지 대화혼을 떨치겠노라.』호언장담하며 흑룡회를 만든 그들은 관동군(대련의 일본군, 산해관 동쪽이 관동주라 생긴 호칭.)의 비호 하에 아편 거래를 비롯한 암시장의 이권에도 개입했다. 그 과정에서 토착세력인 방회들과 충돌이 잦은 흑룡회를 군통은 오래 전부터 주목해왔다.

현지어에 능통해 군부대 통역으로 일하는 이들은 심리전 전문가였고 군이 나서기 거북한 첩보활동이나 암살 임무를 대행하기도 했다. 편협한 국수주의로 무장된 이들의 정체는 정계와 군부를 업고 공공연히 폭력을 휘두르는 극우 테러조직이었다.


보고를 접한 나는 둥베이의 모든 산업체를 대상으로 흑룡회원 실태를 조사했다. 직장인과는 거리가 먼 이들이 탄광에 대거 취업했다는 건 심상히 넘길 일이 아니었다.

이윽고 드러난 결과는 놀라웠다. 대경 유전과 항공제작소 등 기간 산업체는 물론 대련의 철도 연구소 산하업체까지 없는 곳이 드물었다. 나는 의아했다.

‘도대체 왜 취업한 거야? 이런 녀석들이...’

자유분방한 낭인들의 행보는 일반인과 판이하게 다르다. 차분히 대화를 나누다가도 수 틀리면 순식간에 돌변해 폭력적으로 나오기 일쑤. 훗날 야쿠자로 불리는 부류들의 원조가 바로 이들, 현양사 회원이고 대륙 낭인들이다. 한 마디로 근면과 노력을 요구하는 직장생활에 적응할만한 자들이 아니었다. 그런데 왜...?


둥베이와 일본의 최근 동향을 짚어보던 나는 이윽고 고개를 끄덕였다. 식민지 조선에서 둥베이로 이주해오는 조선인들은 갈수록 늘어가고 있었다. 그들이 정착한 연해주와 간도의 마을들은 독립 운동가들의 병참기지로 서서히 변해갔다. 또한 이주해온 조선인들이 농민만은 아니었다. 농촌을 벗어나 도시나 공단에 취업한 조선인도 많았다.

별다른 기능이 없어 단순 노무자로 취업한 그들은 힘든 농사로 단련된 끈기와 성실로 좋은 평가를 받았다. 초급 간부인 십장이 차츰 늘어갔고 현장 책임자급인 감독도 생겼다.

관동군 참모부는 센징들의 둥베이 진출을 우려했다. 이들은 농민들보다 취업한 조선인의 동향에 촉각을 곤두세웠다. 조직생활을 해본 자들은 주먹구구식이 아닌 체계적 독립운동에 나설 가능성이 보다 높았기 때문이다.


“센징들이 둥베이에 발붙이지 못하게 하라.“

관동군으로부터 흑룡회에 하달된 지침이었다. 상명하복의 조직생활에 익숙하고 주먹깨나 쓰는 낭인들은 우격다짐이 통하는 거친 현장에서 환영받았다. 게다가 선진국으로 대우받는 일본인은 우선채용 대상이었다. 폭력으로 현장을 장악한 흑룡회원들은 승승장구하면서 단시일 내에 간부로 승진했다.

그리고 조직의 지침에 따라 중국인과 조선인들 간의 갈등을 조장했다. 분란을 두려워하는 고위 간부들은 소수의 조선인들을 내보내는 것으로 사태를 마무리했고 그런 식으로 쫓겨나는 조선인들은 점점 늘어갔다. 그런 꼴을 당하지 않으려면 나서지 않고 조용히 지내는 게 상책이었다. 기골 있는 몇몇 청년들이 그런 식으로 사라지면서 눈치를 보기 시작한 조선인들의 직장 내 존재감은 엷어졌고 중국인들은 기세등등해졌다. 그러나 막상 중국인들도 뒤에서 회심의 미소를 짓고 있는 현장감독의 정체는 까맣게 몰랐다.


“이걸 어떻하지? 우리가 개입해야 하나?”

“어차피 외국인들 사이의 일인데 우리가 굳이 나설 필요가...”

작림은 문득 말을 멈춘다. 나 역시 조선인이라는 사실이 떠오른 모양이었다.

나는 손을 흔들었다.

“강산이 두 번 바뀌는 세월을 이 땅에서 보냈네. 조선보다 청에서 보낸 세월이 더 길지. 그러니 엉뚱한 생각일랑은 말아주게.”

‘그 긴 세월 동안 우리는 늘 함께 했었지.’ 작림은 고개를 주억였다. 내심을 들켜 무안한 눈치였다.

“이번 일의 쟁점은 조선인과의 분규가 아냐. 일본인들의 방약무인한 짓거리가 문제지. 자신들도 외국인인 주제에 조선인과 중국인을 이간질하다니...”

“저리 설치는 건 다 믿는 구석이 있어서겠지.

주인을 불러내려면 개를 때리라 했으니 어디 한번 해볼까?”

우리는 음흉한 미소를 나누며 헤어졌다.


둥베이의 산업체들에 있는 흑룡회 출신들은 일제히 대기발령을 받았다. 이유는 거친 언행. 분개한 현장 감독들이 노무과로 몰려갔다.

“왜 우리가 대기발령인가?”

기세가 자못 험악했다. 하지만 작달막한 키의 노무과장 왕웨이는 이런 일이 있을 줄 알았다는 듯 여유만만하게 상대했다.

“자네들의 폭력성 때문에 직장 분위기가 나빠졌어. 더 이상 좌시할 수 없다는 방침이다.”

“거친 현장에서 이렇게 해주세요 따위가 통한다고 생각하나? 직장 분위기를 망치는 건 현장도 모르면서 사무실에서 펜대나 굴리며 감 놔라 배 놔라 간섭하는 너 같은 자들이야.”

대표로 나선 스즈키는 제법 반듯한 논리를 펼치며 왕웨이를 몰아붙였다. 그러나 상대가 나빴다. 왕웨이는 노무관리로 잔뼈가 굵은 백전노장이었다.

“그래? 흑룡회에서 이런 것도 가르치나?

그럼 오야붕한테 물어봐. 체면 깎인 중국인이 어떤 행동을 하는지.”


스즈키는 말문이 막혔다. 자존심을 긁어 말다툼을 벌이고 적당히 겁주는 것으로 끝낸다는 각본이 왕웨이의 엉뚱한 대응으로 엉망이 되어버렸다. 둥베이로 떠나오는 스즈키에게 현양사의 선배는 훈계했었다.

“중국인이 체면을 들먹이면 일단 조심하라. 그들은 체면에 목숨을 건다. 그들은 법도 하늘도 없음(무법무천 無法無天)은 용납한다. 오히려 영웅호한으로 대접하기도 한다. 그러나 정과 의리 즉 정의情義가 없다면 체면 모르는 인간으로 치부한다. 무법무천하고 후안무치 해도 친구는 생기지만 정의가 없는 자는 누구도 받아주지 않는다. 그러니 체면을 잃는 건 정의가 없는 자, 곧 파렴치한이라는 낙인이 찍히는 거다. 그들에게는 심각한 문제다.“

현장 감독들의 항의 방문은 한바탕 해프닝으로 끝났다.


대기발령 사태는 푸순 탄광만이 아니었다. 둥베이 전체에서 수십 명에 이르렀다. 사태가 이 지경에 이르자 조직의 움직임을 감지한 흑룡회 수뇌부는 관동군 쪽을 바라보기 시작 했다. 원세개의 북경정부를 좌지우지 해온 일본에게 후청 정부는 만만한 상대에 불과했다. 우선 일본 대사관이 나섰다.

“푸순 탄광을 비롯한 산업체들에서 성실히 일하던 일본인들을 차별하는 이유를 묻는다.”

통상아문의 공보관은 접수한 항의공문 사본을 군통으로 보내왔다. 이미 방침이 세워져 있던 군통 측은 즉각 회신했다.

“이는 정부가 나설 일이 아니다. 대기발령은 소속업체들의 자율적 판단이라 들었다. 거친 언행으로 노무자들을 자극해 업무에 심각한 지장을 초래한 자들에 대한 부득이한 조치라는 보고였다.”

미꾸라지 같은 대응에 화가 난 다나카 공사는 버럭 했다.

“고노야로. 괘씸하기 짝이 없군. 서태후 찌꺼기 주제에...!”

흑룡회에 전화로 호통을 쳤다.

“빠가! 도대체 뭘 하고 온 거냐...!?

기껏 짱꼴라 과장 따위에게 쫓겨와? 야마도 다마시는 어따 팔아먹은 거냐?”


한바탕 닦달 당해 입이 댓발이나 나온 스즈키가 패거리를 불러모았다. 흑룡회의 하부 조직, 도박장과 아편굴 기도로 있는 현지인 주먹들이 탄광간부들이 거주하는 사옥지구로 몰려간 것은 그날 밤이었다.

“빚을 졌으면 깊을 일이지 뻔뻔스럽게...!”

“닭을 끼고 약을 빨았으면 돈을 내야지.”

닭이란 매춘부를 가르키는 아편굴의 은어였다. 한밤중에 들이닥친 주먹들의 험악한 기세에 가족들은 겁에 질렸고 순검들이 출동했지만 그들은 빚 받으러 왔노라 당당하게 맞섰다.

터무니없는 얘기였다. 주야로 돌아가는 탄광간부들에게 유흥업소를 기웃거릴 여유 따위는 없다. 가본 적도 없는 도박장 빚을 들먹이자 왕웨이는 이들의 정체를 짐작했다. 아들을 이웃집 유열에게 보내 군통 푸순 지부로 연락하게 했다.

이윽고 몰려온 청방 조직원들에게 제압된 흑룡회 주먹들은 줄줄이 엮여 순검들에게 끌려갔다. 빚의 정체는 금세 드러났고 이들은 구속되었다. 비록 눈 가리고 아옹 식이었지만 직접 나서기를 자제하던 대사관 측 인내심은 한계에 이르렀다.

“빠가! 대체 무슨 일을 이 따위로 하는 거얏!”

분노한 다나카 공사는 관동군 참모부로 연락했다. 급할 때 믿을 것은 역시 유년사관학교 동기생들이 있는 군대뿐이었다.




청일전쟁, 둥베이, 이홍장, 원세개, 명치유신, 서태후, 손중산, 군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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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 황포 군관학교 4 (완결) +14 19.06.24 1,234 29 5쪽
55 황포 군관학교 3) +2 19.06.19 1,049 33 6쪽
54 황포 군관학교 2) +1 19.06.17 1,112 49 11쪽
53 황포 군관학교 1) 19.06.12 1,343 45 6쪽
52 천하대란 시대 7) +3 19.06.10 1,642 42 9쪽
51 천하대란 시대 6) +3 19.06.08 1,512 42 7쪽
50 천하대란 시대 5) +3 19.06.07 1,527 48 8쪽
» 천하대란 시대 4) +1 19.06.05 1,672 56 9쪽
48 천하대란 시대 3) 19.06.03 1,905 46 9쪽
47 천하대란 시대 2) +7 19.05.25 2,305 56 7쪽
46 천하대란 시대 1) +10 19.05.24 2,480 55 14쪽
45 바이칼 4) +5 19.05.22 2,198 44 11쪽
44 바이칼 3) +9 19.05.20 2,373 52 8쪽
43 바이칼 2) +4 19.05.18 2,528 53 10쪽
42 바이칼 1) +13 19.05.17 2,659 65 11쪽
41 자치주 +7 19.05.15 2,743 86 7쪽
40 둥베이 4) +9 19.05.13 2,760 67 7쪽
39 둥베이 3) +14 19.05.09 2,693 76 7쪽
38 둥베이 2) +27 19.05.08 2,881 67 2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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