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도와 패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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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등록일 :
2019.04.01 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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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7.18 0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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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쪽

24장 내일의 시 5화 항거

DUMMY

5. 항거






세레즈 병사는 코네세타인들이 휘두른 삽에 복부가 찍혀 갈라진 배에서 쏟아져 내린 내장을 부여잡은 채 헐떡였다. 흘러내린 피가 웅덩이를 이룰 정도인데도 숨이 끊어지지 않았다. 다른 인부 하나가 곡괭이를 들어 그 병사의 머리를 찍었고, 그는 이마에 곡괭이 날이 박힌 채 절명했다. 참혹하기 이를 데 없는 광경에 절로 구토가 솟았다. 르메아는 토기가 오르는 입을 손으로 막았다. 무자비한 광경에 눈물이 치솟았다.


슈레디안의 최초의 살인 이후, 코네세타인들은 하나의 거대한 물결이 되었다. 모두가 미쳐 돌아가는 것 같은 혼돈 속에서, 르메아는 슈레디안의 목소리를 들었다.


“르메아, 사람들이랑 같이 마구간으로 가서 말을 풀어줘라. 도성으로 연락이 가도록 내버려 두면 다 죽는다.”


먹은 게 없어 역류한 위액과 타액으로 더럽혀진 손을 옷깃에 문지르고는 르메아는 비틀비틀 일어났다. 슈레디안의 말이 맞았다. 이 사태의 원인이 세레즈 측의 가해행위에 있었다손 치더라도 원래 팔은 안으로 굽게 마련이었다. 이 일이 외부로 알려지면 그들은 군대를 보내어 자신들을 진압하려 들 터였다. 르메아가 고개를 끄덕이며 주위 사람들의 손을 끌었다.


“모두 형의 말대로 마구간으로 가요!”

“가자!”

“말을 풀어줘야 한다!”


슈레디안은 바로 고개를 돌려 세 번째 막사의 책임자를 돌아봤다.


“알도씨는 지금 당장 막사 사람들과 함께 봉화대를 접수하세요. 몇몇 병사들이 그리로 가더라도 결코 봉화를 피우도록 허용해서는 안 됩니다.”


슈레디안은 차분한 음성으로 사람들이 해야 할 일을 차례차례 일러 주었다. 말을 가르칠 때와 마찬가지로 그의 얼굴에는 한치의 주저도, 혼란도 없었다. 지시는 신속하고 명료하게 이어졌다. 말 선생도 선생인지라 슈레디안의 가르침에 익숙해진 이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곧바로 움직였다.


“루카스씨는 막사 사람들과 함께 채석장 남쪽 출구를, 얀씨는 서쪽 출구를 봉쇄하세요. 목책을 끊어 문을 막고, 오늘 밤 안에는 그 누구도 드나들지 못하게 해야 합니다.”


평소 노역장에 머무는 코네세타인들을 지켜주기 위하여 무자비한 세레즈와 몇 번이고 부딪히면서 수개월에 걸쳐 저들의 권리를 하나하나 되찾아주었던 슈레디안이었기에, 그를 향한 인부들의 눈빛에는 더할 수 없는 신뢰가 담겨 있었다. 그들은 이 헌신적이며 열정적인 젊은이를 기꺼이 저들의 지도자로 받아들였다. 한순간의 분노에 휩싸여 저지른 무자비한 폭력 행위가 조직과 체계를 갖춘 저항으로 탈바꿈하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나머지 분들은 저와 함께 관사로 갑니다. 제가 검을 다룰 줄 아니 지휘와 선두 접전을 맡겠습니다. 검이나 창, 혹은 다른 무기를 사용하실 수 있는 분들은 저와 같이 앞에 서시고, 사무엘씨와 어르신들은 부싯돌로 횃불을 만들어 세레즈 처소에 불을 놓아주세요.”

“알았네!”

“모두 세레즈 병사들의 무기를 회수하여 움직이세요! 지체하여 저들에게 달아날 여유를 주면 안 됩니다. 관사에 머무는 세레즈군은 우리의 백 분의 일도 안 되니 모두 힘을 합치면 한 시간 내로 점령할 수 있어요!”

“그래, 어서 가자!”

“세레즈에게 본때를 보여주자!”

“우리 모두를 위해 나가자! 코네세타, 만세!”


슈레디안이 피로 물든 검을 하늘 높이 들어 올리자 수천의 사람들이 함성을 내질렀다. 오랫동안 뼈를 깎는 심경으로 참아온 전투의 시작이었다.



*



슈레디안과 검을 다룰 줄 안다는 소수의 사람들이 채석장 근처에 세워진 세레즈 주둔군의 숙소에 뛰어들자 사람들은 슈레디안의 약속대로 건물에 불을 놓았다. 안으로 들어간 소수를 제외한 나머지 코네세타인들은 불길에 휩싸인 건물을 포위한 채 화염을 피해 도망쳐 나오는 ㅇ들을 머릿수로 제압하기로 말을 맞춰둔 후였다.


채 일각도 지나지 않아 슈레디안이 광산 책임자의 수급을 들고 나왔으며, 그 뒤로 몇몇 세레즈 장교들이 적지 않은 부상을 입은 채 다른 인부들의 손에 끌려 나왔다. 슈레디안이 이끄는 코네세타인들이 모두 무사히 다 나왔을 때에는 이미 숙소 앞에는 탈출에 실패한 몇몇 하사관들이 포박된 채 삼엄한 감시 아래 부복해 있었다.


“더러운 코네세타놈들, 반드시 갈가리 찢어 죽이겠다.”


악을 쓰는 세레즈의 장교 한 명에게, 코네세타 인부 하나가 주먹질을 했다. 코를 맞아 피가 터진 그의 팔을 뒤로 묶으며 그 인부가 씩씩거렸다.


“이놈들을 끌고 가 공터의 형벌대에 사슬로 묶어둡시다.”

“그렇게 하십시오. 그리고 이 수급도 함께 내거십시오. 그리고 몇몇 분들은 저들을 감시하기로 하지요.”


순순히 고개를 끄덕인 슈레디안은 광산 책임자의 수급을 그 인부에게 넘겨주었다.


“모두 수고하셨습니다.”


일단 그렇게 운을 떼어낸 슈레디안은 조금 가라앉은 음성으로 덧붙였다.


“···이제, 우리는 다음 일을 생각해야 합니다.”


그의 말에 슈레디안을 둘러싼 사람들의 표정이 조금 어두워졌다. 미쳐 돌아가는 분위기 속에서 다수의 일원이 되어 상대적으로 약한 이들에게 잔혹한 가해행위를 가하는 것은 그리 어려울 것 없는 일이었다. 원래 다수라는 것은 그 자체로 힘이었고, 그들에게는 항거를 위한 정당한 명문 또한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런 그들도 미래를 생각하자 두렵지 아니할 수 없었다.


“다행히 이번에는 저희 쪽의 큰 피해 없이 일이 일단락되었다고는 하지만, 어차피 제대로 훈련을 받은 것이 아니기에 세레즈 측이 군대를 보내오면 우리는 오래 버티지 못할 겁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는 거요, 젊은선생?”

“세레즈 측에 협상을 제안해야겠지요.”

“버릇처럼 핍박해온 저들이 우리 말을 들으려고나 하겠소?”

“맞소, 학살이나 당하지 않으면 다행이지.”

“저들이라면 우리를 다 죽이려 들거요!”

“그전에 이곳을 탈출하는 것이!”

“하지만 채석장을 나가도 세레즈 군대가 영지 곳곳에 주둔해있소. 들키지 않고 나갈 도리가 없단 소리지.”

“오늘은 어찌어찌 넘긴다 해도, 당장 나흘 뒤가 할당량을 성도로 보내는 날이오. 그게 끊기면 이곳에서의 사달이 외부로 퍼져 나가지 않겠소?”


무리가 시끌시끌해졌다. 곳곳에서 불안 섞인 우려가 터져나왔다. 한동안 그들의 말을 듣고만 있던 슈레디안이 다시 입을 열었다.


“여러분 말씀도 다 맞습니다. 그러기에 저는 세레즈의 도성인 다이레비드가 아니라 이곳 노틸라드의 지구 관사에 협상을 제안해보려 합니다.”

“지구 관사에 말이오?”

“예. 지구 사령관을 만날 수만 있다면, 나흘 안에 이 모든 문제에 대한 해결을 담판 지을 수 있을 겁니다.”

“젊은 선생 말대로 그럴 수 있다면 정말 좋겠지만···.”


노인은 차마, 그것이 가능한 일이겠느냐는 말을 입 밖에 꺼내지 못한 채 말을 흐렸다. 슈레디안은 짧게 심호흡을 했다. 그리고 그간 감추었던 비밀 하나를 털어놓았다.


“제가, 이곳의 지구 관사 사령관인 미드프레드 그론레이와··· 사적인 친분이 있습니다. 그간 저를 믿어주셨던 것처럼, 이번에도 저를 믿고 따라와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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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9 [외전] 청혼 이후 下 20.02.05 136 4 8쪽
268 [외전] 청혼 이후 上 - 미드프레드의 이야기 20.02.03 125 2 7쪽
267 [외전] 청혼 下 20.02.01 97 4 7쪽
266 [외전] 청혼 中 20.01.31 121 3 7쪽
265 [외전] 청혼 上 - 브라우웰&미드프레드 이야기 20.01.30 126 4 7쪽
264 39장 이삭줍기 7화 악우 20.01.29 140 5 8쪽
263 39장 이삭줍기 6화 베케이노의 기다림 20.01.28 125 5 8쪽
262 39장 이삭줍기 5화 자금의 출처 20.01.27 119 4 11쪽
261 39장 이삭줍기 4화 희소식 20.01.24 123 4 7쪽
260 39장 이삭줍기 3화 다시, 시작 20.01.23 128 3 8쪽
259 39장 이삭줍기 2화 태자가 던져놓은 포석 20.01.22 133 3 7쪽
258 39장 이삭줍기 1화 귀환 20.01.21 124 4 7쪽
257 38장 적의 적 7화 적의 적을 사용하는 법 下 20.01.20 130 5 8쪽
256 38장 적의 적 6화 적의 적을 사용하는 법 上 20.01.18 135 5 8쪽
255 38장 적의 적 5화 전쟁이란 늘 최악의 상황을 가정하는 20.01.17 135 7 8쪽
254 38장 적의 적 4화 자리가 사람을 만드는가 +2 20.01.16 141 6 10쪽
253 38장 적의 적 3화 아직은 버릴 수 없는 패 +2 20.01.15 130 6 8쪽
252 38장 적의 적 2화 공짜가 아닌 성의 20.01.14 117 7 7쪽
251 38장 적의 적 1화 늦은 선물 20.01.13 128 5 8쪽
250 37장 붉은 바람 6화 옥좌란 20.01.11 134 6 9쪽
249 37장 붉은 바람 5화 대관식 직전, 흉몽 20.01.10 111 5 8쪽
248 37장 붉은 바람 4화 뿌리는 자, 거두는 자(회차변동) 20.01.09 128 5 8쪽
247 37장 붉은 바람 3화 왕자의 관용 20.01.08 148 7 10쪽
246 37장 붉은 바람 2화 잠 못 이루는 밤 20.01.07 180 8 8쪽
245 <제3부 다이레비드 공방전> 37장 붉은 바람 1화 기만책 20.01.06 133 6 8쪽
244 [외전] 세월 28 (끝) 20.01.04 129 5 10쪽
243 [외전] 세월 27 20.01.03 102 4 9쪽
242 [외전] 세월 26 20.01.02 102 5 9쪽
241 [외전] 세월 25 19.12.28 93 3 8쪽
240 [외전] 세월 24 19.12.20 101 4 8쪽
239 [외전] 세월 23 19.12.18 100 5 7쪽
238 [외전] 세월 22 19.12.17 105 4 9쪽
237 [외전] 세월 21 19.12.13 112 5 7쪽
236 [외전] 세월 20 19.12.11 104 5 7쪽
235 [외전] 세월 19 19.12.09 112 6 9쪽
234 [외전] 세월 18 19.12.06 110 6 8쪽
233 [외전] 세월 17 19.12.03 127 5 7쪽
232 [외전] 세월 16 19.11.30 113 5 7쪽
231 [외전] 세월 15 19.11.29 121 4 7쪽
230 [외전] 세월 14 19.11.28 118 4 8쪽
229 [외전] 세월 13 +2 19.11.27 113 4 9쪽
228 [외전] 세월 12 19.11.26 119 5 7쪽
227 [외전] 세월 11 19.11.25 123 5 11쪽
226 [외전] 세월 10 19.11.23 126 5 9쪽
225 [외전] 세월 9 19.11.22 114 5 7쪽
224 [외전] 세월 8 19.11.21 115 5 7쪽
223 [외전] 세월 7 19.11.20 124 4 7쪽
222 [외전] 세월 6 19.11.19 125 5 9쪽
221 [외전] 세월 5 19.11.18 140 5 12쪽
220 [외전] 세월 4 19.11.16 155 5 7쪽
219 [외전] 세월 3 19.11.15 152 5 12쪽
218 [외전] 세월 2 19.11.14 170 5 11쪽
217 [외전] 세월 1 -세느비엔느 여왕의 외전 19.11.13 197 6 15쪽
216 36장 선전포고 6화 무혈입성(2부 完) +2 19.11.12 233 7 11쪽
215 36장 선전포고 5화 백성들의 왕 19.11.11 178 8 9쪽
214 36장 선전포고 4화 태자의 대의 19.11.09 193 9 7쪽
213 36장 선전포고 3화 로크라테군의 대응 19.11.08 171 7 7쪽
212 36장 선전포고 2화 전서 19.11.07 192 7 9쪽
211 36장 선전포고 1화 항복 +2 19.11.06 183 8 8쪽
210 35장 붉은 숲 전투 6화 투항 권유 19.11.05 194 7 7쪽
209 35장 붉은 숲 전투 5화 공세 19.11.04 184 7 8쪽
208 35장 붉은 숲 전투 4화 매복 19.11.02 195 6 9쪽
207 35장 붉은 숲 전투 3화 유인 19.11.01 186 6 7쪽
206 35장 붉은 숲 전투 2장 작전과 신뢰 +2 19.10.30 206 8 8쪽
205 35장 붉은 숲 전투 1화 괴물용병 19.10.28 161 6 9쪽
204 34장 여름 해질녘 향기 6화 첸트로빌 공성군 19.10.25 195 5 10쪽
203 34장 여름 해질녘 향기 5화 전투 준비 19.10.23 312 5 8쪽
202 34장 여름 해질녘 향기 4화 요란한 출병 19.10.21 199 7 7쪽
201 34장 여름 해질녘 향기 3화 관점의 차이 19.10.18 180 7 7쪽
200 34장 여름 해질녘 향기 2화 백의종군 +4 19.10.16 202 7 9쪽
199 34장 여름 해질녘 향기 1화 아크레이드의 입장 19.10.14 183 7 9쪽
198 33장 흑운의 그림자 6화 급변하는 정세 19.10.11 187 8 8쪽
197 33장 흑운의 그림자 5화 미드프레드와 메이샤드 19.10.09 192 6 9쪽
196 33장 흑운의 그림자 4화 유훈 19.10.07 204 6 9쪽
195 33장 흑운의 그림자 3화 음독 19.10.04 200 7 8쪽
194 33장 흑운의 그림자 2화 번뇌 어린 선택 19.10.02 215 6 7쪽
193 33장 흑운의 그림자 1화 짬짜미 19.10.01 202 8 9쪽
192 32장 보이지 않는 싸움 8화 줄다리기 하 19.09.30 187 7 9쪽
191 32장 보이지 않는 싸움 7화 줄다리기 上 19.09.30 183 8 7쪽
190 32장 보이지 않는 싸움 6화 휘장 너머의 소녀 19.09.28 222 8 9쪽
189 32장 보이지 않는 싸움 5화 은밀한 초대 19.09.27 219 8 8쪽
188 32장 보이지 않는 싸움 4화 아비와 딸 19.09.26 206 8 12쪽
187 32장 보이지 않는 싸움 3화 커런스의 입장 19.09.25 189 8 9쪽
186 32장 보이지 않는 싸움 2화 공주의 선언 19.09.24 199 8 9쪽
185 32장 보이지 않는 싸움 1화 공주의 결단 19.09.23 243 8 7쪽
184 31장 풍운재자 6화 승부수 19.09.21 226 7 9쪽
183 31장 풍운재자 5화 태자의 특사 +2 19.09.20 232 8 7쪽
182 31장 풍운재자 4화 싸움준비 19.09.19 286 8 7쪽
181 31장 풍운재자 3화 해적이 된 초원의 아이 +2 19.09.18 245 8 11쪽
180 31장 풍운재자 2화 이이제이의 계책 +4 19.09.17 245 12 8쪽
179 31장 풍운재자 1화 혁자생존 +2 19.09.16 280 10 9쪽
178 30장 흐르는 별 7화 거절할 수 없는 청 +2 19.09.12 247 9 13쪽
177 30장 흐르는 별 6화 원유회 19.09.11 245 11 8쪽
176 30장 흐르는 별 5화 이면의 계책 +2 19.09.10 227 9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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