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도와 패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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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등록일 :
2019.04.01 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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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2.09 2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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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0.18 0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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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쪽

34장 여름 해질녘 향기 3화 관점의 차이

DUMMY

3화 관점의 차이







‘무어라? 듣자 듣자 하니까 이 계집애가···!’


정도를 지나친 언사에 메이샤드가 제 성미를 참지 못한 채 벌떡 일어서려 했을 때였다. 파빈느의 말이 이어졌다.


“아무리 자세히 물어 정보를 모은다 할지라도 그건 ‘어제’의 상황일 텐데요. 사로잡으려 한 전령도 놓치고, 뜻밖의 기습으로 사상자까지 생긴 마당에 로크라테 군이 그 자리에 가만히 있겠어요? 당신이 그 부대의 지휘관이라면 거기에 며칠이고 계속 가만히 있으라 명할 건가요?”


맞는 말이었다. 저 멍청해 보이는 여자의 입에서 나왔다고 하기엔 생각외로 날카로운 통찰이 담긴 발언이었던지라 메이샤드는 화를 내다 말고 내심 허를 찔린 기분이었다. 그러나 그녀에 대한 평가를 어떻게 재조정하기도 전에, 파빈느는 느릿느릿 손을 들어 장식장 밑에 놓여있는 사기그릇을 가리켰다.


“저기요, 거기 물그릇 좀 가져다주시겠어요? 일어난 지 얼마 안 되어서 손목에 힘이 안 들어가네요.”


초면에 대화라고는 고작 문답 몇 마디를 섞어봤을 뿐인 생판 남에게, 심지어 두 번이나 소개받아 놓고도 이름조차 기억하지 못해 ‘저기요’라는 무례한 호칭으로 칭하면서까지, 잠이 깬 지 얼마 안 되어 손에 힘이 안 들어간다는 돼먹지 못한 핑계 아래 잔심부름을 시킨 파빈느는 태연히 미드프레드의 손에서 사기그릇을 받아들여 품 안의 고양이에게 내밀었다.


“우리 네루, 목마르지.”


레이스가 치렁치렁 달린 드레스 자락 속에서 고개만 빼꼼 내민 고양이가 물그릇 언저리에 고개를 박고 킁킁대더니 그릇 안에 앞발을 적시더니 제 주인만큼이나 얄미운 태도로 혀로 할짝거리기 시작했다. 고양이의 발은 작고 앙증맞고 사랑스러웠으나, 주인 탓인지, 메이샤드의 눈에는 그조차 곱게 보이지 않았다.


‘지금 감히 저 여자가 미드프레드 장군님께 고양이 따위가 마실 물그릇을 옮겨달라고 한 것인가.’


아무렇지 않게 무덤덤히 넘기는 미드프레드의 무던함이 기가 찰 지경이었다.


“그러면 공녀께서는 저희 형제가 용병으로 사병대에 합류하는 것을 허하시는 것입니까?”


미드프레드는 노틸라드의 사령관이며, 세레즈 전역이 흠모하는 전쟁영웅이었다. 비록 여왕이 포상으로 주겠다던 작위를 거부하여 아직 그의 공식적인 신분은 평민이었으나, 미드프레드는 이미 일개 소영주의 딸 따위에게 부림을 당할 위치가 아니었다.


자각은 한발 늦었으나, 가슴 속 깊숙한 곳에서부터 타오르는 분노는 선명했다. 하지만 그 얄미운 여자는 겉보기보다 눈치가 빨랐다. 메이샤드가 어떤 응분의 조치를 취하기도 전에, 그녀는 제 할 말만 쭉 늘어놓은 채 자리에서 일어났다.


“용병을 써본 적이 없긴 한데 지금으로서는 딱히 반대할 이유도 없네요. 계약 기간이나 계약금 같은 복잡한 문제는 전 잘 모르고, 귀찮게 생각하기도 싫으니 숙부님이랑 상의해주세요. 세부 조건 협의가 끝나면 하녀장에게 두 분을 연무장으로 안내해드리라고 말해놓을게요. 그럼.”


복장이 터질 만큼 말투는 느린 주제에 본인의 용건이 끝나자 누가 말을 붙일 새도 주지 않은 채 그녀는 벌떡 일어나 방을 나섰다. 파빈느가 떠난 뒤에 슐첸은 극구 사과했지만, 메이샤드의 기분은 별반 나아지지 않았다.


“어째서 공녀님의 마차가 출병 준비하는 곳에 같이 있는 것인지···.”

“그야 공녀님이 상비군을 지휘하실 거니까요.”

“그 여자···, 아니 공녀님이 정말로 이 부대를 지휘한다고? 그거 그냥 하는 말이지? 아니면 아크레이드는 장수가 전혀 없는 거야? ”


메이샤드가 충격을 받은 기색으로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뇌까렸다. 아무리 신분을 감추고 있다고 백의종군 중이라 해도 그렇지, 이렇게 왕국 모든 병사들의 흠모의 대상인 미드프레드 장군님도 버젓이 계시고, 어렸을 때부터 온갖 전장에서 산전수전 다 겪은 저도 있다. 아무리 장수가 모자라다 할 지라도 눈을 뜨고 졸고 있는 듯한 인상의 그 맹한 여자의 지휘를 받게 되다니, 그는 돌아가는 사태를 믿을 수가 없었다.


“공녀님은 칼을 잡기에도 버거워 보이시던데. 제 동생보다도 어려 보이고 말입니다. 주제넘은 언사일지 모르겠지만, 아직 연약한 소녀에게 너무 과중한 부담을 지우는 건 아닌지 우려가 되네요.”

“그건 저의 공녀님을 모르셔서 하는 말씀이세요. 금발을 휘날리며 수많은 이들을 승리로 이끄시는 모습은 그야말로 전장의 여신이라 할 만한 기개가 아닐 수 없지요!”


메이샤드는 두 번이나 지척에서 문제의 공녀를 만났지만 그 여자가 기나긴 금발을 휘날리며 전선의 선두에 설 수 있을 만한 인물이라는 생각은 도저히 할 수가 없었다.


“그 뛰어난 지략은 또 어떻고, 공녀님의 지혜로움은 흡사 빛과 지혜의 신인 밀레아르드의 총아라 할 만하지.”

“정말 전투 지휘도 직접 하시는 겁니까?”


의구심이 드는 건 미드프레드도 마찬가지인 모양이었다.


“부대마다 백부장님이 계시지만, 영지의 군사적 전략적 계책은 거의 다 공녀님께서 내세요. 그러니 직접 지휘한다고 봐도 별다를 바 없는 셈이죠.”


참모장 같은 위치인가, 그런 것치고는 부대를 일선에서 직접 이끄는 지휘관보다 작전 계획을 입안하는 공녀에 대한 지지와 신뢰가 더 크고 단단한 것이 퍽 특이해 보였다. 본디 참모란 공적이 눈에 드러나는 자리가 아니기 때문이었다.


“너희들도, 그 공녀님이 계획한 전투에 참여한 적 있어···?”

“그럼! 지난 전쟁에서 흑림 유격전하면 이 근방 사람들은 모르는 이가 없을 정도인걸? 정말 대단했지. 전쟁의 신인 마르스 그 자체였다니까.”


메이샤드는 속으로 레이스와 꽃으로 치렁치렁하게 장식한 마차를 타고 현신하는 전쟁의 신이 어딨냐고 툴툴거렸지만, 영내 사병들에게 절대적인 신망을 받고있는 파빈느를 공연히 흠집 내어 갓 동료가 된 이들의 빈축을 사지 않을 만큼은 이성적이었다. 그래도 제 불만을 완전히 꾹 눌러 삼킬 순 없었는지 결국 미드프레드의 귓가에 대고 겨우 들릴 만큼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형님은 믿어지세요? 아까 그 여자가 저런 찬사를 받을 만큼 재능 있는 인사라는 게···.”

“네 생각보다 괜찮은 점이 있는 모양이지.”


미드프레드가 피식 웃으며 하는 말에 메이샤드는 공연히 입술을 삐죽였다.


“진짜 영웅은 따로 있는데, 남부 구석에 오니 별 것이 다···.”

“메이.”


미드프레드의 눈빛이 엄해지는 걸 본 메이샤드는 조금 기가 죽어 변명하듯 읊조렸다.


“들으면 들을수록 구라 같아서 그래요. 저는 파빈느란 여자가 동명이인이라 생각할래요. 당최 눈으로 보기 전엔 믿을 수가 있어야죠.”


직접 경험하여 두 눈으로 보고 느끼기 전에는 파빈느란 여자의 잠재 능력 따윈 절대로 믿을 수 없다고 메이샤드는 생각했다.


작가의말

다음주 월요일에 또 뵙겠습니다. 한주가 참 정신없이 지나가네요.

제목 수정이후 조회수가 뚝 떨어진 거 같아 마음이 아프네요.


환절기 감기 조심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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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9 [외전] 청혼 이후 下 20.02.05 136 4 8쪽
268 [외전] 청혼 이후 上 - 미드프레드의 이야기 20.02.03 125 2 7쪽
267 [외전] 청혼 下 20.02.01 97 4 7쪽
266 [외전] 청혼 中 20.01.31 121 3 7쪽
265 [외전] 청혼 上 - 브라우웰&미드프레드 이야기 20.01.30 126 4 7쪽
264 39장 이삭줍기 7화 악우 20.01.29 140 5 8쪽
263 39장 이삭줍기 6화 베케이노의 기다림 20.01.28 125 5 8쪽
262 39장 이삭줍기 5화 자금의 출처 20.01.27 119 4 11쪽
261 39장 이삭줍기 4화 희소식 20.01.24 123 4 7쪽
260 39장 이삭줍기 3화 다시, 시작 20.01.23 128 3 8쪽
259 39장 이삭줍기 2화 태자가 던져놓은 포석 20.01.22 133 3 7쪽
258 39장 이삭줍기 1화 귀환 20.01.21 124 4 7쪽
257 38장 적의 적 7화 적의 적을 사용하는 법 下 20.01.20 130 5 8쪽
256 38장 적의 적 6화 적의 적을 사용하는 법 上 20.01.18 135 5 8쪽
255 38장 적의 적 5화 전쟁이란 늘 최악의 상황을 가정하는 20.01.17 135 7 8쪽
254 38장 적의 적 4화 자리가 사람을 만드는가 +2 20.01.16 141 6 10쪽
253 38장 적의 적 3화 아직은 버릴 수 없는 패 +2 20.01.15 130 6 8쪽
252 38장 적의 적 2화 공짜가 아닌 성의 20.01.14 117 7 7쪽
251 38장 적의 적 1화 늦은 선물 20.01.13 128 5 8쪽
250 37장 붉은 바람 6화 옥좌란 20.01.11 134 6 9쪽
249 37장 붉은 바람 5화 대관식 직전, 흉몽 20.01.10 111 5 8쪽
248 37장 붉은 바람 4화 뿌리는 자, 거두는 자(회차변동) 20.01.09 128 5 8쪽
247 37장 붉은 바람 3화 왕자의 관용 20.01.08 148 7 10쪽
246 37장 붉은 바람 2화 잠 못 이루는 밤 20.01.07 180 8 8쪽
245 <제3부 다이레비드 공방전> 37장 붉은 바람 1화 기만책 20.01.06 133 6 8쪽
244 [외전] 세월 28 (끝) 20.01.04 129 5 10쪽
243 [외전] 세월 27 20.01.03 102 4 9쪽
242 [외전] 세월 26 20.01.02 102 5 9쪽
241 [외전] 세월 25 19.12.28 93 3 8쪽
240 [외전] 세월 24 19.12.20 101 4 8쪽
239 [외전] 세월 23 19.12.18 100 5 7쪽
238 [외전] 세월 22 19.12.17 105 4 9쪽
237 [외전] 세월 21 19.12.13 112 5 7쪽
236 [외전] 세월 20 19.12.11 104 5 7쪽
235 [외전] 세월 19 19.12.09 112 6 9쪽
234 [외전] 세월 18 19.12.06 110 6 8쪽
233 [외전] 세월 17 19.12.03 127 5 7쪽
232 [외전] 세월 16 19.11.30 113 5 7쪽
231 [외전] 세월 15 19.11.29 121 4 7쪽
230 [외전] 세월 14 19.11.28 118 4 8쪽
229 [외전] 세월 13 +2 19.11.27 113 4 9쪽
228 [외전] 세월 12 19.11.26 119 5 7쪽
227 [외전] 세월 11 19.11.25 123 5 11쪽
226 [외전] 세월 10 19.11.23 126 5 9쪽
225 [외전] 세월 9 19.11.22 114 5 7쪽
224 [외전] 세월 8 19.11.21 115 5 7쪽
223 [외전] 세월 7 19.11.20 124 4 7쪽
222 [외전] 세월 6 19.11.19 125 5 9쪽
221 [외전] 세월 5 19.11.18 140 5 12쪽
220 [외전] 세월 4 19.11.16 155 5 7쪽
219 [외전] 세월 3 19.11.15 152 5 12쪽
218 [외전] 세월 2 19.11.14 170 5 11쪽
217 [외전] 세월 1 -세느비엔느 여왕의 외전 19.11.13 197 6 15쪽
216 36장 선전포고 6화 무혈입성(2부 完) +2 19.11.12 233 7 11쪽
215 36장 선전포고 5화 백성들의 왕 19.11.11 178 8 9쪽
214 36장 선전포고 4화 태자의 대의 19.11.09 193 9 7쪽
213 36장 선전포고 3화 로크라테군의 대응 19.11.08 171 7 7쪽
212 36장 선전포고 2화 전서 19.11.07 192 7 9쪽
211 36장 선전포고 1화 항복 +2 19.11.06 183 8 8쪽
210 35장 붉은 숲 전투 6화 투항 권유 19.11.05 194 7 7쪽
209 35장 붉은 숲 전투 5화 공세 19.11.04 184 7 8쪽
208 35장 붉은 숲 전투 4화 매복 19.11.02 195 6 9쪽
207 35장 붉은 숲 전투 3화 유인 19.11.01 186 6 7쪽
206 35장 붉은 숲 전투 2장 작전과 신뢰 +2 19.10.30 206 8 8쪽
205 35장 붉은 숲 전투 1화 괴물용병 19.10.28 161 6 9쪽
204 34장 여름 해질녘 향기 6화 첸트로빌 공성군 19.10.25 195 5 10쪽
203 34장 여름 해질녘 향기 5화 전투 준비 19.10.23 312 5 8쪽
202 34장 여름 해질녘 향기 4화 요란한 출병 19.10.21 199 7 7쪽
» 34장 여름 해질녘 향기 3화 관점의 차이 19.10.18 180 7 7쪽
200 34장 여름 해질녘 향기 2화 백의종군 +4 19.10.16 202 7 9쪽
199 34장 여름 해질녘 향기 1화 아크레이드의 입장 19.10.14 183 7 9쪽
198 33장 흑운의 그림자 6화 급변하는 정세 19.10.11 187 8 8쪽
197 33장 흑운의 그림자 5화 미드프레드와 메이샤드 19.10.09 192 6 9쪽
196 33장 흑운의 그림자 4화 유훈 19.10.07 204 6 9쪽
195 33장 흑운의 그림자 3화 음독 19.10.04 200 7 8쪽
194 33장 흑운의 그림자 2화 번뇌 어린 선택 19.10.02 215 6 7쪽
193 33장 흑운의 그림자 1화 짬짜미 19.10.01 202 8 9쪽
192 32장 보이지 않는 싸움 8화 줄다리기 하 19.09.30 187 7 9쪽
191 32장 보이지 않는 싸움 7화 줄다리기 上 19.09.30 183 8 7쪽
190 32장 보이지 않는 싸움 6화 휘장 너머의 소녀 19.09.28 222 8 9쪽
189 32장 보이지 않는 싸움 5화 은밀한 초대 19.09.27 219 8 8쪽
188 32장 보이지 않는 싸움 4화 아비와 딸 19.09.26 206 8 12쪽
187 32장 보이지 않는 싸움 3화 커런스의 입장 19.09.25 189 8 9쪽
186 32장 보이지 않는 싸움 2화 공주의 선언 19.09.24 199 8 9쪽
185 32장 보이지 않는 싸움 1화 공주의 결단 19.09.23 243 8 7쪽
184 31장 풍운재자 6화 승부수 19.09.21 226 7 9쪽
183 31장 풍운재자 5화 태자의 특사 +2 19.09.20 232 8 7쪽
182 31장 풍운재자 4화 싸움준비 19.09.19 286 8 7쪽
181 31장 풍운재자 3화 해적이 된 초원의 아이 +2 19.09.18 245 8 11쪽
180 31장 풍운재자 2화 이이제이의 계책 +4 19.09.17 245 12 8쪽
179 31장 풍운재자 1화 혁자생존 +2 19.09.16 280 10 9쪽
178 30장 흐르는 별 7화 거절할 수 없는 청 +2 19.09.12 247 9 13쪽
177 30장 흐르는 별 6화 원유회 19.09.11 245 11 8쪽
176 30장 흐르는 별 5화 이면의 계책 +2 19.09.10 227 9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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