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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룡림
작품등록일 :
2019.04.01 11:25
최근연재일 :
2019.05.12 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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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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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5.07 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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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쪽

Daydreamer(2)

DUMMY

그날 밤, 유현은 어머니를 집으로 보내고 아버지의 침대 맡에 머물렀다. 인적이 뜸해지는 시간이 되자 유현은 엘릭서를 꺼내 아버지의 입에 조금씩 흘렸다. 안의 내용물이 절반쯤 들어갔을 때 아버지의 눈꺼풀이 조금씩 떨렸다. 그는 곧 기침을 하며 몸을 뒤틀었다.


“쿨럭, 쿨럭, 커헉.”


“아버지, 아버지!”


유현은 엘릭서를 먹이던 것을 멈추고 아버지가 침대 밑으로 떨어지지 않게 어깨를 붙들었다. 손이 닿자 아버지는 눈을 뜨고 유현을 올려다보았다.


“뭐야, 쿨럭. 유현이냐?”


“아버지. 정신이 드세요?”


“정신이 드냐니 뭔 소리야. 여긴 어디냐?”


아버지는 주변을 둘러보고는 입고 있는 환자복을 더듬었다.


“기억 안나세요? 집에서 쓰러지셨었잖아요.”


“쓰러져? 내가? 바보 같은 소리. 이렇게 기운이 넘치는데.”


유현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는 침대 위의 아버지를 부둥켜안았다.


“감사해요, 아버지. 무사히 돌아와 주셔서.”


“사내자식이 남사스럽게 뭐하는 거냐? 야, 임마. 이것 좀 풀어봐. 유현아.”


“무슨 일이야. 잠 좀 잡시다, 거.”


두 사람이 내는 소음에 주변 사람들이 짜증을 냈다. 소란이 일자 간호사가 다가와 안을 들여다보았다. 그녀는 눈치 없이 소리를 질러대는 아버지를 보며 유령을 본 것 같은 표정이 되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유현은 아버지를 부둥켜안은 손을 풀지 않았다. 자기도 모르게 뺨 위로 눈물이 흘렀다.


‘이 행복이 언제까지나 지속되었으면.’


유현은 말없이 속으로 그렇게 되뇌었다.


-그리고 그 행복은 하루, 아니 정확히 아침이 되었을 때 끝났다.


“거 왜 퇴원을 안 시켜준다는 거요? 사람 무사한 거 봤으면 됐지 뭐가 더 필요하다고.”


아버지는 의사를 상대로 고함을 질렀다.


“회복하신지 얼마 안 되셨잖아요. 추가적인 검사가 필요합니다. 언제 다시 안 좋아질지 모르잖아요.”


“아버지, 의사선생님 말씀대로 해요. 하루이틀 더 있어서 나쁠 거 없잖아요.”


유현은 필사적으로 설득하는 의사를 거들었다. 솔직히 엘릭서의 효과가 정확히 얼만큼 작용했는지 알아보고픈 마음이었다.


“시끄럽다. 니가 뭘 안다고 그래. 유현이 넌 저리 빠져있어. 이런 놈한테 무슨 검사를 받는다고 그래? 내가 마누라한테 들으니까 재수술하라고 했다면서? 환자 상태도 제대로 모르는 치가 괜시리 자존심만 세우는 게지.”


의사가 입술을 굳게 다물고 아버지를 노려보았다. 속에서 욱하고 뭔가가 치민 것 같았지만 환자 앞이라 참는 모양이었다. 유현은 주변의 시선이 부끄러워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이 새끼, 이 봐라? 니가 노려보면 어쩔 건데? 내가 못 배운 것 같으니까 무시하는 거야, 뭐야? 내가 이래뵈도 박정희 대통령하고 악수도 해 본 사람이야. 니 비선실세라고 알아? 비선실세!”


“아이, 여보. 그만해요.”


“그만하긴 뭘 그만해.”


아버지는 팔을 붙들며 말리는 어머니의 손을 뿌리쳤다. 어머니는 중심을 잃고 쓰러졌다. 유현은 쓰러지는 어머니를 부축하며 전날 초린이가 했던 말을 곱씹었다.


아버지가 쓰러졌다는 소식에 터럭만큼이라도 좋아하는 마음이 있었다면, 아마 아버지의 이런 성격 때문이었을 것이다.


아버지는 옛날부터 그랬다. 모든 상황을 자신이 판단하고 통제하지 않으면 성에 차지 않았다.


이런저런 소란 끝에 결국에는 퇴원 결정이 내려졌다. 아버지는 어머니의 부축도 뿌리치고 보무도 힘차게 집으로 향했다. 그 뒤를 피로에 찌들어 쇠약해진 어머니가 죄인처럼 뒤따랐다.


유현은 퇴원 수속을 마치고 진이 빠져서 병원 벤치에 앉았다. 그는 주머니 속을 뒤져 남은 엘릭서 한 병을 꺼냈다. 안에는 아버지를 치유한 기적의 약물이 찰랑거리고 있었다. 누가 치료해준 지도 모르고 자신의 건강을 과시하며 주변을 깎아내리는 아버지를 겪으니 짜증밖에 남지 않았다.


“그거 뭐예요?”


유현은 앳된 아이의 목소리에 고개를 들었다. 휠체어에 앉은 어린이가 유현이 손에 쥔 엘릭서를 보고 있었다. 빼빼마른 몸은 환자복 속에서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거기에 머리는 모자로 가렸지만 틀림없이 대머리.


“부모님 어디 계시니?”


“잠깐 화장실 가셨어요.”


유현은 주위를 둘러보았다. 실제로 소년에게 관심을 기울이는 사람은 없었다. 얼마나 병원에 오래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아이는 병원의 풍경과 완벽하게 동화되어 있었다. 유현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음······이것도 인연인가. 너 줄게.”


유현은 소년을 향해 약을 내밀었다. 아이는 얼굴을 찡그렸다.


“뭔데요, 불량식품이에요? 엄마가 모르는 사람이 주는 건 받지 말랬어요.”


“보통은 그렇겠지. 근데 넌 아냐. 기대수명이 몇 년 남았니?”


“그걸 아저씨가 알아서 뭐하게요?”


사실 아이는 기대수명이 뭔지도 잘 모를 만큼 어렸지만 유현이 패드립 비슷하게 친 건 느꼈는지 나오는 소리가 곱진 않았다.


“내가 너한테 악의가 있어서 나쁜 걸 먹였다고 치자. 에······넌 죽겠지. 하지만 아픈 치료는 안 받아도 될 거고. 너네 부모님은 날 잡아서 보상금을 받게 될 거야. 난 감옥에 갈 거고 손해배상도 해야 되겠지. 부모님은 그걸로 네 병원비를 좀 벌충하실 테고. 안 그래?”


여러모로 무리가 많은 논리전개였지만 분위기에 설득된 탓인지 아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반대로 내가 좋은 걸 먹였다면? 그럼 뭐 좋은 거지. 아무 일도 없는 거야. 넌 맛있는 거 먹어서 좋은 거지. 어린이들 중에 모르는 사람이 주는 걸 가장 적극적으로 받아먹어야 할 사람이 있다면 그건 아마 너 같은 애들일 거다. 로우 리스크, 하이 리턴. 이해됐지?”


유현은 아이의 손에 엘릭서를 쥐어주었다. 아이는 유현의 말에는 반신반의 했지만 햇빛에 비쳐 갈라지는 엘릭서의 색이 너무 예뻐서 눈을 떼지 못했다.


“미안하다, 오래 기다렸지?”


소년은 엄마 목소리를 듣고 고개를 들었다. 주위를 살펴봤지만 유현은 떠나고 없었다.


“뭘 보고 있었니, 울 아들?”


엄마는 여느 때처럼 울음이 섞인, 하지만 아들을 위해 억지로 명랑하게 꾸민 목소리로 상냥하게 물어왔다. 아이는 우물쭈물하다 무릎에 덮은 담요 속으로 자연스럽게 손을 집어넣어 엘릭서를 숨겼다.


“응, 아무 것도 아냐.”


“그래. 기다려줘서 고마워.”


엄마는 휠체어 손잡이를 잡고 천천히 병원을 향해 밀었다.


“의사쌤이 그러는데 오늘은 조금 아플 수도 있데. 하지만 잘 참을 수 있지? 엄마는 울 아들이 제일 자랑스러워.”


아이의 표정이 굳어지고 몸의 떨림도 심해졌다. 엘릭서를 쥔 손에 꼭 힘이 들어갔다. 아이는 체념하듯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아, 오늘도 좋은 일했다.”


나무 뒤에 숨어서 상황을 지켜보던 유현은 아이가 멀어지자 밝은 기분이 되어 그늘 밖으로 나왔다.


“쓸 데 없는 짓을 했군.”


벤치에 앉아 표지를 검은 가죽으로 마감한 성서를 보는 여자가 건조한 목소리로 말했다. 길고 검은 머리카락이 폭포수처럼 흘러내려 완전히 얼굴을 가리고 있었다. 유현은 걸음을 멈추고 여자 앞에 섰다.


“지금 나한테 말한 거요?”


“그래.”


유현은 잠깐 여자를 내려다보다 훗 하고 웃으며 몸을 돌렸다.


“아지매, 남 일에 오지랖부리다 꼰대 만나면 큰 일 나요.”


“오지랖 걱정은 네가 해야 할 거다, 계정자.”


여자의 말에 버스정류장으로 향하던 유현의 발걸음이 딱 멈췄다. 유현은 잘못 들었는지 귀를 의심하면서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그녀는 고개를 들어 유현을 응시하고 있었다. 말라붙은 시체의 죽은 눈동자 사이에서 지네가 기어나왔다. 유현은 자기도 모르게 뒷걸음질 쳤다. 그는 허리춤을 더듬어 철퇴를 찾다가 집에 두고 왔다는 것을 깨달았다.


“당신 누구야?”


“자기가 모시는 신도 못 알아보다니, 실망이군. 나는······나인 자다. 내 제단에 신앙의 맹세를 하고 내 신성을 나눠받았던 것을 기억하는가?”


유현은 손을 들어 눈을 비볐다. 주변을 돌아보다 다시 벤치를 보았다. 여자는 사라지지 않고 그 자리에 있었다.


“아냐, 그럴 리 없어.”


여자는 고개를 갸웃하며 순수한 흥미를 드러냈다.


“혹시 이름이 베드로인가? 이 책에서 세 번쯤 자기 신을 부정하던데.”


유현은 식은땀을 흘리며 몸을 돌렸다. 그는 병원 밖을 향해 무작정 뛰기 시작했다. 정류장에 가까워졌을 때 버스 한 대가 때맞춰 정차했다. 유현은 어디로 가는 것인지 묻지도 않고 무작정 버스에 뛰어올랐다. 바람 빠지는 소리와 함께 버스 문이 닫히고 버스가 곧 출발했다. 유현은 숨을 몰아쉬며 버스 손잡이를 잡았다. 창밖으로 멀어지는 병원을 보았지만 따라오는 것은 없었다. 유현은 소매로 이마에 맺힌 땀을 훔쳤다.


좌석에 앉은 승객들의 평온한 일상 풍경이 유현을 안심시켰다. 그는 비틀거리며 아직 자리가 남은 맨 뒷좌석으로 향했다. 그리고 버스 구석자리에 무너지듯이 주저앉았다.


“이제 조금 진정이 되나?”


여자의 목소리에 유현은 고개를 들었다. 차 안의 모든 사람들이, 앉은 자리에서 몸을 돌리지 않고 고개만 180도 돌려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아줌마, 여고생, 노약자석의 할아버지, 앞좌석의 어린이까지. 그들은 병원에서 만난 여자처럼 시체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


심지어는 운전기사도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유현은 부들거리는 손을 들어 올려 천천히 앞을 가리켰다.


“전방주시······운전······부탁드립니다.”


솔직히 시체보다 뒤 보면서 엑셀 밟는 기사 아저씨가 더 무서웠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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