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자여, 왕이 되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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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bok2705
작품등록일 :
2019.04.01 11:28
최근연재일 :
2021.01.04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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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4.29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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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1쪽

21화: 폭풍 전야 (2)

*본작은 역사적 고증보다는 상상의 비중이 더 큰 작품입니다. 참고해주시기 바랍니다. 이미 지난 시대를 배경으로 나올 수 있는 수많은 픽션 중 하나라고 생각해주시면 될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DUMMY

<망자여, 왕이 되어라!>

21화: 폭풍 전야 (2)


“오늘은 뭘 구하러 온 게 아니야. 처분하려고 온 거지.”


“처분하겠다고? 뭘 처분하겠다는 건데?”


창성은 만식과 대성을 쓱 훑어보았다. 두 사람을 바라보는 창성의 눈길은 의심스럽기만 했다.


아무리 봐도 돈이 될 만한 물건은 없었다.


그때 대성이 탁자 위에 술병을 조심스럽게 올려놓았다.


“뭐야, 이거 낙민 마을 사람들이 만드는 술 아니야? 만식이, 맞지?”


창성은 술병을 보며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렇다네.”


“그렇다고? 허허··· 장난치지 말고. 진짜 어떤 건가?”


“이거 맞네. 이게 우리가 처분할 물건일세.”


창성은 술병 하나를 처분해달라는 전우의 말을 믿기 힘들다는 눈치였다.


그러나 만식은 눈 하나 깜빡하지 않았다.

대성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런 두 사람을 보는 창성은 황당한 기분이 들 수밖에 없었다.


“그··· 상당히 당황스러운데. 무슨 백사라도 담그셨어?”


“그보다 더 귀중한 것들을 담았죠.”


대성이 대답했다.

그리고는 탁자 모서리에 술병을 냅다 내리쳤다.


“확인해보시죠.”


그는 윗부분이 박살 난 술병을 창성에게 내밀었다.


“흠··· 일단 술은 아닌 모양이군.”


술이 아닌 걸 알았음에도 창성의 반응은 전과 별반 다를 바 없었다.


그는 기대감이라곤 하나도 느껴지지 않는 눈빛으로 병 속을 들여다보았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창성은 눈을 한 번 크게 뜨고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잠깐만 기다리게.”


그는 가게 한구석에 놓인 선반에서 자그마한 도구 몇 개를 들고 왔다. 그렇게 감정 작업은 한참 동안 이어졌다.


그런 창성을 말없이 지켜보던 만식은 그가 감정 도구를 내려놓기 무섭게 결과를 물었다.


“어때? 제값 받을 수 있겠나?”


“참··· 알차게도 모았군. 그간 왜 안 보였나 했더니, 이것들 때문이었어?”


“그렇다고도 할 수 있지.”


“뭐 밀수꾼 노릇 하는 놈이 할 말은 아니다만, 만식이 자네까지 이리될 줄은 몰랐군··· 역시 요즘 세상살이가 쉽지는 않은 모양이야.”


창성은 안타깝다는 듯이 옛 전우를 바라보았다.

그러자 만식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자네가 생각하는 그런 방식으로 얻은 게 아니네.”


“아니라고? 그럼 어디 왕릉이라도 탐험했나?”


“이 친구가 설명해줄걸세.”


만식이 대성을 가리켰다.

하지만 창성은 뒷이야기를 들으려 하지 않았다.


“괜찮네. 굳이 시간 들여서 얘기해줄 필요 없어. 난 어차피 물건만 팔면 그만이니까. 오랜만에 돈 좀 만질 수 있겠군.”


“그 정도인가?”


“내가 왜 왕릉 타령을 했겠나? 차라리 잘 됐어. 어차피 분위기도 안 좋겠다, 여행이나 갔다 와야지.”


“무슨 여행? 어디 가려고?”


“블라디보스토크.”


“뭐? 자네 지금 소련에 가겠다는 건가?”


“누구는 가고 싶어서 가는 줄 아나? 이 정도 처리하려면 내가 직접 발로 뛰는 수밖에 없다고.”


창성이 말했다. 그도 별로 가고 싶어 하지 않아 하는 눈치였다.


하지만 대성은 그런 창성을 보며 불현듯 불길한 예감이 들기 시작했다. 그는 그간의 침묵을 깨고 창성에게 질문을 던졌다.


“저기, 왜 하필 소련으로 가시는 거죠?”


“왜, 안되는 이유라도 있나?”


“그 나라는 사치품 같은 거 싫어하잖아요. 자본가를 배격하고, 사유재산을 금지하는··· 그게 그놈들 특성 아닌가요?”


대성이 말했다.

상세하게 탐구해본 적은 없었지만, 적어도 역사책으로 접한 소련은 그랬다.


간단히 말해, 부를 추구하는 사람이라면 소련에 갈 이유가 없었다. 그래서 불길한 예감이 든 것이었다.


그런데 창성의 입에서는 뜻밖의 대답이 튀어나왔다.


“음··· 어린 친구가 어디서 뭘 대충 주워들은 모양인데··· 진실은 잘 모르는구먼.”


“네?”


“자네, 공산당 놈들이 사치품에 얼마나 환장하는지 모르지?”


“아··· 그랬군요···”


대성은 제대로 몰랐다는 듯, 대충 얼버무렸다. 물론 정말 몰라서 그런 것은 아니었다. 그는 재물에 환장한 공산당에 대해서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원래 못하게 할수록 더하고 싶은 법이야. 그런 의미에서 공산당 간부들은 최고의 고객이지. 어디서 구해왔는지 물어보지 않거든.”


대성은 동감한다는 의미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그쪽에 아는 조선사람도 많고. 여하간. 만식이, 어떻게 했으면 좋겠나? 제값을 치르려면 시간이 좀 걸릴 듯한데."


“나보다는 얘하고 이야기하는 게 좋을 걸세.”


“이 아이하고? 왜?”


“얘가 얻은 거니까.”


만식은 협상 권한을 대성에게 넘겨주었다.

곧 대성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이렇게 하죠.”


“어떻게?”


대성은 미리 적어왔던 구매품목을 창성에게 주었다.


“여기서 살 수 있는 물건이 있고, 없는 물건이 있습니다. 각각의 경우에 맞게 값을 나눠서 치러주시면 되겠습니다.”


“흠··· 자네 말대로 여기서 구하기 힘든 물건이 몇 개 보이는군. 항구에 가야 구할 수 있겠는데.”


“그런 물건들은 현물로 구해주시면 됩니다. 대신 아저씨 몫을 더 챙겨드리도록 하죠.”


“허허, 젊은 친구가 당돌한 게 요즘 애들 같지 않구먼. 근데 자네와 그렇게 어울려 보이지는 않는데.”


“곧 어울리게 될 겁니다.”


대성이 말했다.


***


대성과 만식은 시장에서 구한 물품을 짐마차에 실었다.


동시에 대성은 목책 방벽에 배치된 민위군 병사들의 수와 주요 방어 시설들을 미리 기록해두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렇게 볼일을 다 봤을 즈음, 창성이 다가와 물었다.


“다 챙겼나?”


그의 물음에 대성과 만식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출발하지.”


입구를 지키고 있던 민위군 병사들은 들어올 때와 같이 일행을 막아섰다. 하지만 처음처럼 오래 막지는 않았다.


창성 덕분이었다.


“우리 지켜주시느라 이렇게 불철주야 고생하시는데, 몸에 좋은 거라도 사 잡수십시오.”


병사들은 창성이 내민 뇌물을 군말 없이 받아들였고, 검문 시간은 비약적으로 짧아졌다.


"괜히 바보짓 했네요. 좀만 더 바치면 뭘 갖고 나가도 봐줄 것 같은데."


대성이 함박웃음 짓는 병사들을 힐끗 돌아보며 빈정거렸다. 그러자 창성이 말했다.


“돈맛을 본 것도 있지만, 자네가 처음부터 무기를 갖고 있지 않았기 때문에 쉽게 보내준 거야. 너무 얕잡아 보지는 말라고.”


“주의하겠습니다. 그나저나 소문이 사실이면 어떻게 되는 겁니까? 정말 전면전 하는 겁니까?”


“소문이 아니라 사실이야. 내가 괜히 자네 마을에 머물게 해달라고 부탁했겠나? 조만간 붙는다고.”


“그렇군요.”


“그러고 사이좋게 공멸하겠지.”


“그러진 않을 것 같은데요. 한 놈만 죽겠죠.”


“이래서 농촌에서만 지내면 안 된다니까. 내가 웬만하면 물주한테 뭐라 안 하는 성격이긴 한데···”


철저한 고객 우선주의를 추구하는 사람답게 창성은 말하기를 잠시 망설였다. 하지만 옛 전우가 눈에 밟힌 모양인지, 이내 말을 꺼냈다.


“후··· 잘 들어. 그 무기 모으고 이런 거 말이야. 좋은 의도인 건 알겠는데, 적당히 해야 할 거야.”


“왜요. 마적이 아니꼽게 볼까 봐서요?”


“마적이었으면 이런 말 안 하지. 나도 마적이나 장햑량이 여길 계속 지배했으면 아무 말 안 했을 거야.”


“일본군을 말씀하시는 거군요.”


“그래! 그놈들이 가만히 있을 것 같나? 그 자식들은 만주가 자기네들 땅이 아니었을 때도 수시로 넘어와서 우릴 죽이고 다녔다고.”


창성은 생각도 하기 싫다는 듯, 몸서리를 쳤다.

대성 역시 학창시절에 배운 내용을 떠올렸다.


독립군에 호되게 당한 일본군은 그에 대한 보복으로 만주에 사는 조선인을 수없이 학살했었다. 그때는 창성이 말한 대로 만주국이라는 꼭두각시 정권이 수립되기 전이었다.


물론 만주국이 세워졌다고 달라진 건 없었다. 나름대로 2등 시민 대접을 받았다고는 하나, 조선인은 사실상 노예나 다름없었다. 그리고 이에 불응하는 조선인은 여전히 학살 대상이었다.


그 시기에 이뤄진 학살은 입에 담기도 힘들 정도로 잔인했다. 대성은 창성이 우려할 만하다고 생각했다. 경험은 결코 무시할 수 없는 법이었으니까.


하지만 대성은 그보다 더 값진 정보를 알고 있었다.

바로 조상들이 모르는 역사였다.


"일본놈들은 마점산 토벌이 끝나는 대로 여길 손보려 할 거다. 민위군과 천리군은 아마 이번 전쟁으로 망하게 될 거야."


“······”


"그러니까 자네도 적당히 해, 적당히. 괜히 긁어 부스럼 만들지 말고."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일본놈들이 그런 작은 일에 신경 쓰겠습니까?”


“신경 쓸 거다.”


“글쎄요··· 장학량이 열하(熱河)에서 아직도 위세를 떨치고 있는데, 적어도 내년까지는 신경 안 쓸 거예요.”


대성이 말했다.


“그 이후에 좀 사리도록 하죠. 아니면··· 다른 선택을 할 수도 있고요.”


“뭔 소리를 하는 거야··· 됐다. 난 물건만 처리하면 그만이니까 마음대로 해. 대신, 내가 머무는 기간에 사고는 치지 마라.”


“걱정하지 마십시오.”


대성은 걱정하지 말라는 뜻으로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창성은 그게 더 걱정되었던 모양이었다.


“만식이, 자네가 애 좀 잘 관리하고 그래. 이럴 때 어른이 나서야 하는 법이라고.”


“너무 걱정하지 말게.”


“여하간. 백산 마을에서 보도록 하자고. 그때 보세.”


창성은 중간 기착지를 앞두고 다른 길로 빠졌다.


***


대성과 만식은 중간 기착지에서 하루를 더 머물렀다.


단지 하루만 지났을 뿐인데, 중간 기착지의 분위기는 한층 더 심각해져 있었다. 중간 기착지 주민들은 민위군과 천리군의 전면전 발발을 기정사실로 여기고 있었다.


숙소 주인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는 대성과 만식에게 하루 동안 벌어졌던 일을 말해주었다.


“민위군이 와서 총을 전부 거둬갔다니, 그게 정말이오?”


“사실이오. 실제로 뺏긴 사람이 한둘이 아니라오. 그래도 성씨 총은 내어주지 않았으니 안심하시오.”


“정말로 전쟁을 벌일 생각인가···”


“마을에 돌아가는 대로 총부터 잘 숨겨놓아야 할 거요. 자기네 영향권에 있는 마을은 다 도는 것 같더구먼. 어쨌든 백산도 민위군 구역 근처 아니오?”


대성과 만식은 날이 밝기 무섭게 숙소에서 나와 백산으로 향했다.


만주 벌판을 제집 마당처럼 구석구석 누비는 마적 특성상, 백산에 찾아오지 않으리라는 보장은 없었다.


그리고 백산에 있는 수많은 총기와 탄약을 그냥 두리라는 보장은 더더욱 없었다.


‘혹시 몰라서 철저히 숨겨놓으라고 했지만, 만에 하나 교전을 벌이기라도 한다면···’


그렇게 한참을 달린 끝에, 지평선 너머로 백산 마을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다.


해는 분명 중천에 떠 있었다.


그 말인즉슨, 모두가 한창 일을 할 시간이라는 뜻이었다. 하지만 마을은 왠지 모르게 적막감만 감돌고 있었다.




잘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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