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자여, 왕이 되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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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bok2705
작품등록일 :
2019.04.01 1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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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1.04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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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8.07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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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43화: 진의[眞意] (1)

*본작은 역사적 고증보다는 상상의 비중이 더 큰 작품입니다. 참고해주시기 바랍니다. 이미 지난 시대를 배경으로 나올 수 있는 수많은 픽션 중 하나라고 생각해주시면 될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DUMMY

<망자여, 왕이 되어라!>

43화: 진의[眞意] (1)


‘천리군 총사령’은 수수께끼 같은 답변을 끝으로 더 이상 말을 꺼내지 않았다.


대성 또한 총사령을 따라 옅은 미소를 지으며 침묵을 지켰다.


마치 길가에서 우연히 만난 묵언수행자들이 마음속으로 대화를 주고받는 듯한 모습이었다.


물론 모양새만 그렇게 보일 뿐이었다.


실상은 침묵을 배경으로 벌어지는 첨예한 대립의 현장이었다.


두 남자는 속마음을 들키지 않기 위해 조용히 미소를 지었을 뿐, 자신들의 선택이 초래할 갖가지 경우의 수를 떠올리며 머리를 굴리고 있었다.


적어도 대성은 그렇게 생각했다.


‘대체 무슨 꿍꿍이이길래 저러는 거지?’


찰나라고 불러도 될 만큼 얼마 안 되는 시간이었지만, 대성은 마음속으로 수백 개가 넘는 상황과 대응 방안을 시뮬레이션하고 폐기하기를 반복했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하고 고민해봐도 뚜렷한 대응책을 떠올릴 수 없었다. 군벌 잔당이 앞세운 포병 전력은 기습이나 저격 같은 전략 따위로 저지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결국, 남은 선택지는 단 하나. 적성 세력의 수장이 내세운 제안을 따라보는 것이었다.


현재로써는 실패한 도박이 될지도 모르는 회담을 해보는 게 공동체의 붕괴를 피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그리고 이러한 현실이 대성을 더욱 괴롭게 했다.


‘처음부터 죽을 작정으로 달려드는 게 아닌 이상, 지금 전력으로는 어림 반푼어치도 없어.’


진의를 알기 힘든 인물과의 대화는 불확실성을 높이는 법. 시간도 얼마 주어지지 않은 마당에, 발생 가능한 리스크는 끝을 모르고 재생산을 거듭하고 있었다.


‘어쨌든 저 녀석과 대화를 해보는 수밖에 없는데··· 놈의 속마음을 알 길이 전혀 없단 말이지. 참···’


대성의 머릿속은 점점 복잡해졌다. 그는 애당초 만주를 유린하던 자들과 대화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한 적이 없었다. 말이 좋아서 대화이지, 그의 머릿속에 떠오르는 대화의 실상은 그저 회담을 빙자한 공갈과 협박의 장에 지나지 않았다.


더군다나 천리군은 불모지에서 마지막 기회를 찾고자 했던 조선인들의 바람을 무참히 짓밟고, 절망을 딛고 일어설 일말의 가능성마저 날려버렸던 자들이었다.


더불어 대성은 그 현장을 직접 봤었던 사람이기도 했다. 그런 그에게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는 것이란 매우 힘든 일이었다.


적성 세력의 수장이 스스로 나서 무기를 내던지고 군대를 뒤로 물리겠다고 호언장담해도 마찬가지였다. 지나칠 정도로 유화적인 제스처는 의심만 부추길 뿐이었다. 그것도 당장 포탄 세례를 받아도 이상하지 않을 상황에서···


‘잠깐.’


그 순간, 대성은 자신이 어느 순간부터 상황을 너무 안이하게 봤던 것이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왜 그 생각을 못 했지? 저놈이 총사령이라는 확실한 증거도 없잖어? 놈들에게 괜히 시간만 벌어준 게 아닐까···?’


뭔가 잘못되었을지도 모른다는 결론에 다다른 그는 총사령이 고개를 돌린 틈을 타 겉옷 안에 숨겨둔 권총집으로 손을 옮겼다.


그때였다.


[전 병력 기동 실시!]


적의 계략에 빠졌다고 생각한 것도 잠시, 조선인 부관의 우렁찬 외침과 함께 천리군 병사들이 서서히 뒤로 물러나기 시작했다. 약간 굼뜨다 싶던 병사들의 움직임도 각급 부대를 통솔하는 자들의 통제에 따라 점점 빨라졌다.


그중에서도 가장 신속한 기동을 보여준 병사들은 전선에 배치된 모든 조선인의 신경을 곤두세웠던 포병들이었다. 그들은 중화기를 담당하는 병사들의 호위를 받으며 전선에서 빠르게 이탈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천리군 병력 전원이 대성과 조선인들의 시야에서 벗어났다. 비록 퇴각이라 불러도 될 만큼 완전히 물러난 것은 아니었으나, 적어도 대책 하나 세우지 못하고 당할 정도는 아니었다.


‘정말로 싸울 생각이 없는 건가?’


대성은 진지에 숨어있는 주민들과 수신호를 받아가며 천리군 병력의 이동을 면밀히 살폈다. 더불어 주민들에게 다른 길목으로 들어오는 병사들이 없는지 세밀하게 감시하도록 지시했다.


하지만 우회로를 통해 넘어오는 천리군 병사들은 아무도 없었다. 말을 타고 마을 입구로 다가오는 한 무리의 병사가 있었지만, 모두 빈손이었다.


그렇게 병력 이동이 거진 끝나갈 때쯤, 침묵을 지키고 있던 총사령이 마침내 입을 열었다.


[지금 저기 오고 있는 자들 보이나? 저들이 내 직속 참모들이야. 무장하지 않았으니까 괜히 건들지 말라고.]


[무슨 속셈인지는 모르겠다만··· 어쨌든 회담을 하고 싶긴 한가 보네.]


[이봐, 젊은 친구. 아직도 믿지 못하는 건가?]


[믿어야 할 이유가 없잖아. 여긴 그저 조선인들이 모여 사는 평범한 마을일 뿐이야. 너희 같은 군벌 세력과 엮일 이유가 없다고.]


[평범하다고?]


대성의 말에 총사령은 기가 막힌다는 듯, 헛웃음만 지었다.


[방금 한 말에는 도저히 동의 못 하겠군. 평범하다는 사람들이 무슨 군대마냥 주기적으로 사격훈련을 하고 밤마다 경계도 서나?]


[뭐라고? 그게 지금 무슨 소리야?]


[아닌 척 해봐야 소용없어. 나도 그동안 다 보고 들은 게 있으니까. 아무튼,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고, 어떡할 건가? 할 건가, 말 건가?]


***


회담은 마을 입구와 가까운 곳에 있는 공터에서 이루어졌다. 적진을 감시하기 위해 남은 이들을 제외한 나머지 주민들은 총을 둘러멘 채, 회담장 주변으로 삼삼오오 몰려들었다.


사실 말이 회담장이지 평소 쉼터로 쓰이던 널찍한 평상 위로 탁자 몇 개를 붙여 놓은 것에 지나지 않았다. 그만큼 급하게 성사된 회담이었기에 구체적인 의제도, 토의를 나눌 사안도 없었다.


어떻게 보면 회담을 제의한 세력, 천리군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흘러갈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애당초 회담이 목적이었다는 말은 사전 준비를 어느 정도 했다는 것과 같은 뜻이었다.


다만 상대방이 준비를 해왔다고 해서 조건 없는 우위를 차지한 것은 아니었다. 총사령을 포함한 천리군 대표단 전원은 회담을 극적으로 마무리 지을 결정적인 요소를 갖고 있지 않았다.


바로 무기였다.


회담장에 있는 사람 중, 무기를 소지하지 않은 이들은 천리군 대표단뿐이었다. 최후의 저항수단으로 쓸만한 작은 날붙이조차 없었다.


대성은 나무 탁자를 사이에 두고 마주 앉은 천리군 대표단을 보며 미국산 자동권총을 꺼내 들었다. 그리고 즉각적인 대응이 가능한 위치에 보란 듯이 올려놓았다.


그와 함께 합석한 마을 지도부도 대표단 눈에 가장 잘 보이는 곳에 총을 두었다.


마을 주민들 역시 언제든지 방아쇠를 당길 준비가 되어있었다.


옛 낙민 마을 학살에서 살아남은 주민들에게서는 전에 볼 수 없던 살기마저 느껴질 정도였다.


더불어 회담장으로부터 멀리 떨어진 곳에서는 대성으로부터 비밀 명령을 받은 주민들의 주도하에 돌발상황에 대한 대비까지 이루어지고 있었다.


대성과 마을 지도부는 회담이 결렬되거나 상대방의 일방적인 공갈, 협박으로 끝날 시, 적 지휘부를 즉각 처단하고 지휘체계가 무너진 적에게 기습공격을 감행할 계획이었다.


그렇게 각자의 비책이 마련된 가운데, 천리군 총사령를 필두로 조선인 공동체, 천리군 간 양자 회담이 시작되었다.


[얼추 준비된 것 같으니 시작하지. 정식으로 소개하겠소. 천리군 총사령 ‘한세걸’이라 하오.]


[정태준이다.]


[언제 이름 들어보나 했더니 좋은 이름이구먼. 솔직히 예상 못 했어. 여기저기 전해오는 무용담만 들었을 때는 연륜이 좀 있는 줄 알았거든. 그런데 이렇게 젊을 줄이야.]


[나도 천리군 구역까지 소문이 퍼질 줄 몰랐어. 어쩌다 그렇게 구체적으로 당신 귀에 흘러들어 갔는진 모르겠지만 말이야.]


[하하하, 내가 좀 이것저것 조사해보는 걸 좋아해서 말이지. 뜬소문이라고 해서 무조건 뜬소문으로 끝나는 법은 아니거든.]


천리군의 새로운 지휘관, ‘한세걸’은 자칫하면 벌집이 될 수 있는 상황에서도 미소를 잃지 않았다. 그 역시 대성만큼은 아니었어도 상당히 젊은 축에 속했다. 넉넉하게 잡아도 삼십 대 초중반··· 한강에 몸을 던질 적의 대성과 비슷한 연배로 보이는 외모를 지니고 있었다.


그러나 한세걸은 대성이 지금까지 만난 어떤 리더보다도 많은 일을 해낸 인물이었다.


[본격적으로 얘기를 나눠 보기 전에 이것부터 좀 물어보자. 언제부터 우리 마을을 감시해온 거지?]


[감시라고 하기엔 좀 그렇고. 어쨌든 꽤 됐어. 천리군을 좀먹던 늙다리들을 내칠 때부터 정보를 수집했으니까.]


[쓸데없이 공을 많이 들였던 모양이군.]


[쓸데없는 행동이라 하긴 힘들지. 천리군의 후계자를 저세상으로 보낸 장본인들 아니신가?]


한세걸의 마지막 한 마디에 조선인 공동체 지도부는 자기들도 모르게 격양된 반응을 보였다. 대성은 애써 티를 내지 않으려 했지만, 다른 이들의 반사적인 표정 변화나 몸의 움직임까지 일일이 통제할 순 없었다.


뜬소문도 허투루 넘기지 않는다는 한세걸의 말은 사실이었다.


그는 군수창고나 방공호 같은 비밀 시설을 제외한 조선인 공동체 내 방호시설 대부분에 대해 어렴풋이나마 알고 있었다.


회담이 시작됨과 동시에 무기를 들쳐 메고 모여든 마을 주민들은 가능성 큰 추측 내지 정황 정도로 끝날 뻔한 그의 정보를 확실한 사실로 완성해주었다.


[놀고먹느라 바빴던 늙다리들은 떠돌이 상인들의 대화를 귀담아듣지 않았지. 애당초 그들과 만날 생각도 안 했겠지만. 하지만 난 아니었어. 군수물자만 다루던 팔자다 보니 만나지 않을 수가 없었거든.]


[······]


[그리고 궁금하기도 했어. 한때 후계자로 불렸던 놈의 시체조각을 수집하면서 문득 들었던 생각이었지. 다른 건 다 산산이 조각났는데, 어째서 기관총만 증발하듯이 사라졌을까? 아무래도 이 고생 저 고생하면서 힘들게 구한 물건이다 보니 더 관심이 가더라고.]


[근데 그게 왜 우리 마을에 있다고 생각한 거지?]


[뜬소문이 그렇게 났으니까. 누군가 상인에게 자랑했겠지. 친분이 쌓인 다음에는 술도 같이 나눠 마시면서 어디에 뭐가 있다고도 말했을 것이고. 난 그저 그들의 말에 귀를 기울였을 뿐이야.]


[만약에 잘못된 정보라면 어떡하려고? 지나가는 사람이 몇 년 후에 일본이 무너진다고 말해도 믿을 거야?]


[미안하지만 나도 헛소리는 구분할 줄 알아. 여기 있는 참모들도 마찬가지고.]


[······]


[물론 이 땅에서 일본놈들이 사라지는 것만큼 좋은 일은 없겠지만. 여하간, 자네가 지금까지 만났던 구제불능들은 이제 어디에도 없다고 보면 돼.]


천리군 대표단을 향해 날아오던 마을 주민들의 욕설은 어느새 사라져 있었다. 주민들은 무용담을 자랑하느라 바빴던 사람이 자신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고개도 제대로 들지 못했다.


하지만 대성은 주민들을 탓할 생각이 없었다. 정보 유출은 어느 시대에나 있던 사고였으니까. 이미 적군에게 정보가 흘러들어 간 상황에서 책임 소재를 따지는 일은 중요치 않았다.


잠시 후, 대성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그럼 이제 어쩔 셈이지?]




잘 부탁드립니다.


작가의말

늦게 올려서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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