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자여, 왕이 되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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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bok2705
작품등록일 :
2019.04.01 1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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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1.04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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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15 1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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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5화: 건드리지 말았어야 했다 (2)

*본작은 역사적 고증보다는 상상의 비중이 더 큰 작품입니다. 참고해주시기 바랍니다. 이미 지난 시대를 배경으로 나올 수 있는 수많은 픽션 중 하나라고 생각해주시면 될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DUMMY

<망자여, 왕이 되어라!>

85화: 건드리지 말았어야 했다 (2)


이이제이(以夷制夷).


오랑캐로써 오랑캐를 다스린다.


반란군과 같은 민족을 동원해서 반란군을 토벌한다.

토벌까지는 아니어도 최소한 이용은 해먹는다.


참모의 아이디어는 친일 성향의 조선인과 중국인을 반란군 토벌에 동원하자는 것이었다.


[애당초 식민지가 존재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제국에 최대한 많은 이익을 가져다주기 위해 있는 것 아닙니까? 그게 자원이든 사람이든 간에 말입니다.]


그러나 참모의 의견은 바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사단장은 사단의 현재 입지를 언급하며 선을 그으려고 했다.


[그건 우리 선에서 따질 문제가 아니야. 여기는 일개 야전 사단이야. 대본영이 아니라고.]


항일군을 토벌하기 위해 편성된 사단의 위상은 예전 같지 않았다.


관동군 사령부는 건질 것도 별로 없는 흑하대신 열하에 관심이 있었다.


정부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만주 지역 하나로 만족할 생각이 없었다.


정부는 오래전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이루지 못했던 대업, 중원 정복을 이루고자 했다.


흑하 전역에 대한 무관심은 예정된 절차였다.


이는 곧 당분간 별다른 지원을 받을 수 없음을 의미했다.


사단장은 그 점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당분간 병력 동원은 고사하고 지원도 제대로 못 받을 거야. 좀 더 현실성 있는 방안을 찾아보자고.]


사단장이 말했다.


그러나 참모는 물러서지 않았다.


[사단장님. 저는 공식적인 동원을 이야기한 것이 아닙니다.]

[무슨 말이야?]

[사단 선에서 끝낼 수 있을 정도로만 동원하자는 뜻입니다. 믿을 만한 놈을 추려서 써보자는 것이지요. 이전에 편성했던 정예부대를 말하는 게 아닙니다.]

[그럼 뭔데? 식민지인으로 구성된 특임대라도 만들자는 거야?]

[그렇습니다.]


농담 따먹기나 하자고 한 말은 아닌 것 같았다.


일개 반란군 따위에게 무너질지 모른다는 위기감.

입신양명은 고사하고 역사의 죄인, 무능한 인간으로 찍힐 것 같은 위기감.


참모의 눈빛에는 진심이 담겨 있었다.


그 역시 승리를 갈망하고 있었다.


사단장은 흐트러졌던 자세를 바로잡았다.


[어떤 식으로 하겠다는 거지?]

[사단장님이 말씀하신 그대로입니다. 조선인, 중국인으로 구성된 특수임무부대를 창설하는 겁니다. 사단과 협력하는 자발적인 무장조직으로 말이지요.]

[훈련은 우리가 시키고?]

[그렇습니다. 우수한 자원을 선발해서 최고의 군인으로 만들어낼 겁니다.]

[그다음에는?]

[적진에 잠입시킬 겁니다. 물론 그냥 잠입시키지는 않을 겁니다. 대원들은 당분간 대일본제국을 증오하는 지원병으로서 적과 함께 행동할 것입니다.]


대(對) 항일군 특수임무부대.


그들은 일제에게 부모를 잃은 자식으로서, 연인을 잃은 비운의 주인공으로서, 말로 표현하기 힘든 치욕을 당한 복수귀로서 항일군 속으로 들어갈 것이다.


[들어가면 일단 신뢰를 얻어야 할 텐데. 그렇다면 우리를 공격하는 임무에 투입될 수도 있지 않겠는가?]

[그렇습니다. 그 과정에서 몇 명이 죽을 겁니다. 하지만 대를 위해서는 소도 희생할 줄 알아야 하는 법 아니겠습니까?]


맞는 말이다.


항일군 수뇌부를 몰살시킬 수만 있다면 그까짓 병사 몇 명 죽는 것쯤이야 아무 일도 아니다.


특히 귀신 부리는 놈만 죽일 수 있다면.


그때는 백 명이 넘게 죽어도 상관없었다.


대성은 정확한 신상만 알려지지 않았을 뿐, 관동군 내에서 귀신 부리는 놈으로 유명인사가 된 지 오래였다.


사단장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적의 목을 칠 특임대라···’


참모의 제안은 나름대로 괜찮아 보였다.


조직은 지도자의 영향을 많이 받을 수밖에 없다.


지도자가 능력이 있다면 더더욱.


능력 있는 지도자의 부재는 곧 조직의 붕괴를 불러일으킬 것이다.


성공만 한다면 지금까지 받았던 모든 질책을 커버하고도 남을 포상을 받을 수 있다.


그뿐이랴, 리스크도 그리 크지 않다.


참모가 제안한 동원 인원은 매우 적다. 게다가 정규 병력도 아니다.


그저 사단과 협력 관계를 지녔던 무장단체일 뿐. 실패하더라도 없던 일처럼 덮어버리면 그만이다. 그럼 상부의 추궁도 피할 수 있겠지.


곱씹을수록 참모의 계획은 나쁘지 않은 듯했다.


다만 의문점이 하나 있었다.


사단장이 물었다.


[그나저나 대원은 어떻게 모집하려고? 동네방네 모집 공고를 붙여놓을 건 아니잖아.]

[당연한 말씀을. 비밀스럽게 모집할 겁니다. 근래 알게 된 사람 중에 적당한 인물이 있습니다.]

[그게 누군데? 자네와 연을 맺을 조선인이나 중국인은 없을 텐데.]

[하하하. 왜 없습니까? 이렇게 좋은 걸 납품하는 조선인이 있는데.]


참모가 탁자에 놓인 보드카를 가리키며 말했다.


[최근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몇 번 있었는데. 얼마 안 산 놈치고 발이 굉장히 넓더군요. 자기 옛 조국에 대한 반발심도 엄청나고요.]

[조선을 싫어한단 말이야?]

[일가친척이 힘겨루기에 휘말려서 모조리 몰살당했답니다. 아시지 않습니까? 그 자식들 반역 한 번 일으켰다 하면 가족까지 다 잡아 죽이는 거.]

[그래. 들은 적 있지.]

[그런 사람이 꽤 많다고 합니다. 가족은 다 죽고 재산은 다 뺏기고 만주로 쫓겨나듯이 넘어온 사람들 말입니다.]


참모가 음흉하게 웃었다.


모든 걸 다 잃은 사람들.


그런 사람들에게 정해진 조국은 없었다.


잃은 걸 되찾아주는 국가가 곧 조국이요, 누리지 못한 걸 누리게 해주는 자가 곧 주인이었다.


전공이 코앞에 있다.


사단장 역시 참모를 따라 입꼬리를 올렸다.


[그 자식들. 원하는 것만 주면 뭐든지 다 하겠네? 조선에서 떵떵거리게 살게 해준다고 하면 되려나?]

[될 겁니다. 저와 연이 닿은 그 납품업자가 먼저 그런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옛날 야만적인 체제로 돌아가려는 놈들 다 잡아 죽이고 싶다고요.]

[그렇단 말이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한 번 만나보시겠습니까?]


참모가 물었다.


사단장은 주저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


며칠 뒤.


관동군 사단 통제 구역 어딘가.


눈발이 휘몰아치는 가운데, 사단 참모들은 손님맞이에 분주했다.


다만 성대하게 준비하지는 않았다.


굳이 바깥에 드러낼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손님맞이는 은밀하게 이루어졌다.


사단장은 어둑한 방에서 참모가 오기를 기다렸다.


똑똑.


[사단장님. 군수참모입니다.]

[들어와.]

[예.]


끼익···


문이 열림과 동시에 군수참모와 한 남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남자는 사단장을 보자마자 허리를 굽혔다. 얼마나 심하게 굽혔는지 머리가 땅바닥에 닿을 정도였다.


남자는 그 자세로 한참을 있었다. 그런 다음 어설픈 억양이 담긴 일본어로 자신을 소개했다.


[인사드립니다. 하진로라고 합니다. 만나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소련까지 넘어가서 귀한 술을 구해온 사람이 누군가 했는데, 자네였군. 조선인이라고?]

[혈통만 따지면 그렇습니다. 하지만 마음만큼은 천황 폐하의 충성스러운 신민입니다.]

[하하하. 요즘 조선 젊은이들답지 않게 기세가 좋구먼.]


사단장은 남자의 첫인상이 마음에 들었는지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일단 앉지. 긴히 나눌 이야기가 많아서. 시간 되지?]

[사단장님께서 친히 불러 주셨는데 없는 시간도 만들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영광으로 생각하겠습니다.]

[참 보기 드문 친구야. 다른 조선인과 다르게 예의범절이 몸에 배어 있군.]

[감사합니다.]


남자는 사단장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허리를 한 차례 더 숙이고는 자리에 앉았다.


그렇게 대성은 하진로라는 친일파로 위장한 채 관동군 사단장과 마주했다.


‘설마 했는데 진짜 먹힐 줄이야. 어지간히 급했던 모양이군. 하긴 얼굴을 보니 그럴 만한 것 같기도 하다. 아주 맛이 갔네, 맛이 갔어.’


사단장은 대놓고 표현만 하지 않았을 뿐, 굉장히 조급해 보였다.


성과를 내야만 한다는 보이지 않는 올가미가 그의 목을 조르고 있었다.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겠네.’


예상은 빗나가지 않았다.


사단장은 보드카가 담긴 술잔을 비우자마자 본론을 꺼냈다.


[하진로라고 했지? 듣자 하니 발이 꽤 넓다고 하던데. 지역에서 한 가닥 한다는 놈들과 자주 일한다면서?]

[그렇습니다. 오랫동안 형제처럼 지내왔습니다. 모두 같은 경험을 공유하고 있기 때문이지요.]

[집안이 풍비박산 난 경험 말인가? 정치 싸움에 휘말려서?]

[예. 조부께서는 근대화 개혁을 적극적으로 찬성하셨습니다. 아버지도 마찬가지였고요. 하지만 일이 잘 안 풀리고 말았지요.]

[시대에 뒤처진 사람들이 발목을 잡았군.]

[비단 저의 발목만 붙잡은 것이 아닙니다. 조선의 모든 신민, 나아가 대일본제국의 발목까지 붙잡고 있습니다.]


원래 이렇게 거짓말을 잘하는 편이었나?


아첨이 기본 옵션으로 탑재된 거짓말이 아무렇지도 않게 흘러나왔다.


사단장은 딱히 의심하지 않는 듯했다. 아니, 할 생각도 없어 보였다.


절박함이 그의 눈을 가린 것인지, 아니면 술과 필로폰이 정신을 송두리째 잡아먹은 것인지.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었다.


어쨌든 상황은 대성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대성은 존재하지도 않는 집안 이야기를 꺼내며 자국혐오 성향을 강하게 드러내고 어필했다.


그가 내세운 ‘하진로’라는 조선인 주류 납품업자는 그야말로 을사오적에 버금가는 매국노요, 친일파가 되기 위해서라면 골수까지 내어줄 극성 친일파였다.


하진로의 친구들도 마찬가지였다.


차이슬, 이처음, 주세백.


대성이 만들어낸 가공의 친구 역시 하진로에 버금가는, 아니, 더 악랄한 악인이었다.


그들은 동포를 기꺼이 조센징이라고 멸시할 수 있었다. 이는 기본 설정이었다. 조선인 특전 대원이 연기하게 될 이들은 이름과 성까지 갈아버릴 수 있었다.


모두 일본식으로 말이다.


대성은 책과 뉴스, 인터넷에서 봤던 친일파의 모든 전형을 버무려서 자신을 포장했다.


사단장은 그런 대성을 보며 감탄을 금치 못했다. 하인 쳐다보듯 하던 눈빛도 어느새 죽마고우를 만난 눈빛으로 바뀌어 있었다.


[사람들 모으는 데 얼마나 걸리겠나?]

[얼마 안 걸립니다. 그렇게 만들 거고요. 천황 폐하를 위해 기꺼이 목숨을 바칠 수 있는 놈들만 골라서 데려오겠습니다.]


면접은 어렵지 않았다.


그저 매체에서 보던 친일파의 행태를 적당히 섞었을 뿐인데, 사단장은 일개 조선인에게 사단 본부도 보여주고 저녁 식사까지 대접했다.


더불어 모집 기간까지 듬뿍 얹어주었다.


그만큼 기대가 크다는 방증이겠지.

그만큼 벼랑 끝에 몰렸다는 뜻이고.


[그럼 그날 보도록 하지.]

[예. 사단장님이 보여주신 신뢰에 반하지 않도록 제 모든 열정을 다 바치겠습니다.]


대성은 적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전투 수행 능력과 배경을 모두 갖춘 대원을 선발했다.


일본군의 극악무도한 짓으로 인해 연인을 떠나보내야 했던 자.

간도에서 벌어졌던 학살 현장에서 간신히 살아남은 자.


모두 일본군에 대한 복수심 하나만으로 지금까지 살아온 자들이었다.


친일파 행세? 일도 아니었다.


그들은 일본군의 목을 칠 수만 있다면 무슨 짓이든 할 수 있었다.


대성은 주어진 시간 동안 대원들에게 역할을 부여하고 철저히 교육했다.


그리고 사단장 앞으로 데려갔다.


면접은 길지 않았다.


특전 대원들은 그렇게 관동군 특수임무대원이라는 두 번째 신분을 얻게 되었다.




잘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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