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자여, 왕이 되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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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bok2705
작품등록일 :
2019.04.01 11:28
최근연재일 :
2021.01.04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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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16 1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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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86화: 참수 작전 (1)

*본작은 역사적 고증보다는 상상의 비중이 더 큰 작품입니다. 참고해주시기 바랍니다. 이미 지난 시대를 배경으로 나올 수 있는 수많은 픽션 중 하나라고 생각해주시면 될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DUMMY

<망자여, 왕이 되어라!>

86화: 참수 작전 (1)


‘만주 철도 특수시설 건설 연수반’.


이른바 만철반은 대(對)항일군 특수임무부대를 가리키는 암호명이었다.


대성을 비롯한 조선인 출신 특전 대원들은 철도 건설 연수반 학생으로서 여러 가지 교육을 받았다.


물론 철도 건설과 관련된 교육은 하나도 없었다.


연수반 교관도 철도 분야와 하등 관계없는 사람이었다.


굳이 있다고 하자면 남만주 철도 수비부대에서 복무한 정도?


연수반 교관은 나름대로 엄격한 사람이었다. 그는 다듬어지지 않은 원석을 보석으로 만들기 위해 무던히 애를 썼다.


적어도 자기 딴에는 그랬다.


[너희 모두 소싯적에 거친 삶을 살았다고 들었다. 총도 다뤄봤나? 하진로. 자네가 말해봐. 총을 쏴 본 적이 있나?]

[있습니다.]

[어쩌다가?]

[사업 관련해서 생각이 달랐던 몇몇과 갈등이 일어난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 좀 쏴 봤습니다.]


좀 쏴 본 게 아니라 많이 싸봤지. 지겨울 만큼.


하지만 지금은 자신의 옛 무공을 자랑하는 시간이 아니었다. 대성은 스트리밍 서비스에서 봤던 범죄 드라마 내용을 적당히 각색해서 들려주었다.


이를테면 남미 마약왕을 다룬 드라마라든가, 트럭 운전사로 시작해서 마피아 고위직까지 올라갔던 사람의 이야기라든가.


본래 드라마라는 게 어떤 특징을 갖고 있는가? 굉장히 극적이지 않은가?


교관은 약간 놀란 눈치였다. 그러나 대놓고 표현하지는 못했다.


명실상부 대일본제국의 군인이자, 그 군인들을 양성하는 교관이었으니까.


교관은 놀라움을 애써 감추며 자기 할 말을 이어갔다.


[에헴···! 나름대로 총을 쏴 본 모양이군. 하지만 착각하지 마라. 사격은 방아쇠만 당긴다고 끝나는 게 아니야. 그냥 쏘는 것과 전문적으로 배우고 쏘는 건 근본이 달라. 명심하도록.]

[예. 알겠습니다. 명심하겠습니다.]


그렇게 첫날부터 사격 이야기를 줄기차게 늘어놓았지만, 정작 실사격 훈련은 없었다.


교관은 온종일 사격 이론에 대해서만 떠들었고 일본군의 무기 개발사와 현황에 대한 잡설만 열심히 늘어놓았다.


친일파로 행세하는 것보다 지겨운 이야기를 들어주는 게 더 고역이었다.


***


이론 교육은 계속 이어졌다.


특전 대원들은 관동군이 전쟁 수행 의지가 있는지 의심했다.


그럴 만했다.


당장 항일군이 언제 쳐들어올지 모르는 마당에 이론만 주야장천 가르치고 있으니.


물론 기초를 다지는 것만큼 좋은 교육방법은 없었다.


하지만 그것도 때와 장소가 있는 법이었다.


당장 수능을 며칠 앞두고 알파벳을 배우고, 집합을 배울 수는 없지 않은가?


관동군은 이상하리만큼 이론과 사상 교육에 집착했다.


특히 사상 교육이 가관이었다.


그놈의 천황 찬양은 하루에 몇 번을 해대는지. 만세삼창 하는 것만으로 상체 운동을 할 수 있을 정도였다.


물론 눈과 귀를 가리고 듣는 사람한테는 이것만큼 편한 교육이 없었다.


그저 큰 목소리로 대일본제국 만세와 천황 만세를 외치기만 하면 됐으니까.


목소리가 클수록, 팔이 천장을 뚫을 정도로 높이 올라갈수록 교관들은 더 좋아했다.


그 상황에서 헬조선 레퍼토리만 조금 가미해주면?


그야말로 금상첨화가 따로 없었다.


그냥 조선인 앞에서는 더없이 차갑고 무서웠던 관동군도 친일파 조선인 앞에서는 부드러운 신사요, 믿음직한 후원자였다.


사상 교육이 진행될수록, 사상 교육에서 더 높은 점수를 딸수록 만철반에 대한 관동군의 불신은 눈 녹듯이 사라져 갔다.


[처음에는 자네들의 정신 상태를 어떻게 개조해야 하나 고민했는데, 쓸데없는 걱정이었구먼. 하진로 자네의 말이 옳았어. 조선은 그저 출신이었을 뿐이었군.]

[감사합니다. 더 열심히 해서 천황 폐하께 누가 끼치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밑에 있는 놈들이 딱 자네들 반만 따라가면 좋을 텐데. 몸만 일본인인 놈들이 적지 않으니 원.]


교관들은 급기야 자국 병사까지 비하하기 시작했다. 그만큼 만철반 대원들의 연기는 정말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


교관들의 의심은 얼마 지나지 않아 대부분 사라져버렸다.


만철반 대원들을 볼 때마다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못했던 마지막 FM의 눈빛도 어느 순간 부드러워졌다.


사상 검증을 성공적으로 마친 만철반은 그렇게 관동군의 한 일원으로 받아들여졌다.


그와 함께 여러 제한도 풀렸다.


교관들은 만철반을 데리고 부대 이곳저곳을 돌아다녔다.


일본 뽕과 실전 감각, 두 마리 토끼를 한 번에 잡으려는 의도였다.


[자, 이게 바로 군수창고다. 안에 있는 총기들 보이나?]

[예. 보입니다.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 모습을 보니 역시 대일본제국은 다르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 오직 대일본제국의 우수한 공업 생산력만이 저 정도 수량을 감당할 수 있지. 너희도 이제 저 총을 자주 만지게 될 거다.]

[천황 폐하의 은덕이 담긴 무기를 손에 쥐게 되다니. 그야말로 가문의 영광입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하하하. 기세가 좋구먼. 그나저나 자네 일은 어떻게 할 건가? 후임자라도 있나?]

[믿을 만한 놈으로 한 명 박아 뒀습니다. 물론 임무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고요. 제가 일하기 싫어서 놀러 간 줄 알 겁니다.]

[어쨌든 생업도 있는데 고생하네.]

[대일본제국을 위한 일인데 고생이라고 할 게 뭐가 있습니까? 목숨 바칠 각오로 임하겠습니다.]


손발이 오그라드는 아첨이 계속 이어질수록 교관의 입꼬리는 높이 올라갔다.


동시에 관동군 사단의 지형지물 정보도 빠르게 빠져나갔다.


***


만철반은 이론 교육이 어느 정도 끝난 다음에야 총을 만질 수 있었다.


사격 초보를 연기하는 일은 그야말로 고역이었다.


마음에도 없는 친일파 행세는 난이도를 논할 축에도 끼지 못했다.


[하나만 알아 둬라. 적, 정확히 말해 항일군을 이루는 세력 중 하나는 우리보다 훨씬 좋은 총기를 사용한다. 알겠나?]

[예. 알겠습니다!]

[인정하기는 싫지만, 놈들은 최정예 부대야. 장담컨대 아무나 선발하진 않을 거다. 단순히 우리를 싫어하고 증오한다는 이유로 선발하지 않을 거란 뜻이야.]


사격 교육은 나름대로 강도 높게 이루어졌다. 순수한 관동군 병사가 보기에는 혹독하다고도 할 수 있었다.


그러나 특전 대원이 보기에 전장에서 별 도움이 될 것 같진 않았다.


정신력에 집착한 훈련은 말만 번지르르할 뿐, 속 빈 강정 소리 듣기 딱 좋은 수준이었다.


[이 바둑돌 보이나?]

[예. 그렇습니다.]

[지금부터 제군들의 총구 위에 이 바둑돌을 올려놓겠다. 사격할 때 집중하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는 시간이 될 거야. 절대 떨어트리지 말도록. 알겠나?]

[예. 알겠습니다!]


이따위 헛짓거리를 생각할 시간에 무기 연구나 더 할 것이지.


바둑돌 따위를 올리지 않아도 뚫릴 머리는 뚫린다.

바둑돌을 떨어트리지 않을 정신력과 집중력을 가졌다 한들, 무기가 형편없으면 성과도 형편없게 된다.


만철반 대원들은 속으로 헛웃음을 지었다.


그리고 비웃기라도 하듯 바둑돌을 몇 번씩 떨어트렸다.


물론 계속 떨어트리지는 않았다.


그들은 교관의 인내심이 바닥날 때쯤에 맞추어 결과물을 보여주었다.


처음부터 잘하는 것보다 못하다가 잘하는 게 효과가 더 큰 법.


사격 교관은 만철반 대원들의 노력을 보며 정신력 타령을 아끼지 않았다.


[거봐! 집중하니까 안 떨어지잖아. 사격도 결국 검술과 같은 거야. 집중력, 정신력이 필요하지. 하고자 하는 의지만 있으면 무엇이든지 다 할 수 있다. 잘 새겨듣도록.]

[예. 알겠습니다!]

[정신력 다지기 연습은 당분간 계속할 거다. 그렇게 정신력을 기른 다음, 실사격 연습을 시작한다.]


대체 무슨 자신감으로 시간을 끌어대는 것일까?


혹시 사전에 눈치채고 뒤통수를 날리려는 게 아닐까 하는 불안감마저 생길 지경이었다.


그 정도로 교육은 느리게 진행되었다.


물론 관동군이 보기에는 되려 빠른 편일지도 모른다.


정신력이 하루아침에 만들어지는 것은 아닐 테니 말이다.


그러나 현실은 정신력 따위를 운운할 만큼 여유롭지 않았다.


만철반으로 선발된 대원들이 휴가나 다름없는 시간을 보내고 있는 지금 이 순간, 다른 특전 대원들은 전장을 휘젓고 있었다.


그들이 세운 전공은 ‘보리스 옐친’ 유통 업자가 남긴 암호문으로 낱낱이 보고되었다.


사격 교관이 바둑돌 타령을 하는 동안, 특전 대대는 사령부에서 보낸 보급 부대를 습격하고 군용 철도를 폭파했다.


그 과정에서 나온 부산물은 고스란히 항일군 수중으로 들어왔다.


그런데도 교관과 지휘부는 바둑돌과 정신력 타령만 열심히 했다.


멀리서 볼 때는 그저 웃기기만 한 촌극이었는데 가까이서 보니 이렇게 화가 나는 일이 없었다.


심지어 적이 벌이는 바보짓이었음에도.


대성은 항일군의 승리가 멀지 않았음을 확신했다.


***


첫 번째 실사격 훈련이 이루어진 날.


만철반은 딱 중간 정도의 성적을 냈다.


뒤처지진 않았지만, 딱히 앞서가지도 않은 성적에 사격 교관은 못내 아쉬움을 드러냈다.


[조금만 더 잘 쐈으면 완벽했을 텐데 아쉽군.]

[죄송합니다! 정신을 더 가다듬고 쏘도록 하겠습니다!]

[아니야. 죄송할 것까진 없어. 신병들에 비하면 자네들은 정말 우수한 편이야. 정식 절차를 밟고 들어온 놈들이 더 개판이니 참··· 군대 꼴이 어떻게 돌아가는 건지.]

[뼈를 깎는 노력을 하겠습니다!]


만철반은 비단 사격 교육만 받은 것이 아니었다.


비밀 임무를 수행하기 위한 교육도 이루어졌다.


이는 특수임무부대 생활에서 그나마 건질만 한 것이었다.


아니, 굉장한 수확이었다.


[깃발 들고 할 말 다 전하고 다 털리고 하던 시대는 한참 전에 지났다. 이제는 더 진보된 방식으로 싸워야 한다. 그래야 이길 수 있다. 무슨 말인지 알겠나?]

[예. 알겠습니다!]

[그럼 지금부터 암호에 대해 알려주겠다. 총구에 바둑돌 올리는 것보다 이게 더 어려울 거야. 그러니 정신 바짝 차리도록.]


암호 담당 교관은 편견에 가득 찬 사람이었다. 그는 조선인과 중국인은 일본인과 피부색만 같을 뿐, 훨씬 열등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인지 만철반 대원들을 가르치는데 갖은 공을 들였다. 한 번 설명하고 끝날 내용도 두세 번씩 설명하고 필기까지 꼬박꼬박 시켰다.


필기를 제대로 했는지 안 했는지 검사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거의 웬만한 족집게 과외 교사, 1타 강사 뺨치는 수준이었다.


통신 교육도 암호 교육 못지않았다. 만철반은 항상 때려 부수기만 하던 일본군의 통신체계에 대해 굉장히 자세히 배울 수 있었다.


만철반은 교관들이 마음에 들어 할만한 행동과 말발을 보여주며 일본군의 지식을 빼냈다.


그리고 특전 대대에 조금씩 흘려주었다.


교육이 진행될수록 만철반의 행동반경은 더욱 넓어졌다.


더불어 만철반에 대한 관동군의 인식도 많이 바뀌었다.


그렇게 만철반은 관동군 속으로 녹아 들어갔다.




잘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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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 후기 +24 21.01.04 1,552 46 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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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8 207화: 해방 (2) +5 21.01.01 1,922 53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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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6 205화: 결전 (4) +3 20.12.30 1,463 42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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