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자여, 왕이 되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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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bok2705
작품등록일 :
2019.04.01 1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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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1.04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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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18 1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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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88화: 참수 작전 (3)

*본작은 역사적 고증보다는 상상의 비중이 더 큰 작품입니다. 참고해주시기 바랍니다. 이미 지난 시대를 배경으로 나올 수 있는 수많은 픽션 중 하나라고 생각해주시면 될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DUMMY

<망자여, 왕이 되어라!>

88화: 참수 작전 (3)


시간이 지날수록 만철반은 대담해졌다.


이는 부대에 대한 사보타주의 규모가 더 커졌음을 의미했다.


부대로 침입하는 개구멍의 개수는 날이 갈수록 늘어났다. 단순히 늘어난 것뿐만 아니라 더 교묘하게 위장되었고 단순 구멍에서 간이 참호, 창고로 바뀌어 갔다.


특전 대원들은 이제 주류 납품업자를 통해 작전 진행 상황이나 지시 사항을 전달받을 필요가 없었다. 대원 일부는 개구멍 근처에 상주하다시피 하며 만철반과 연락을 주고받았다.


관동군의 비밀 요원 교육은 이러한 사보타주를 가능하게 만든 일등공신이었다.


[어떻든? 잘 돼?]

[예. 대대장님. 근데 이 정도면 자재 많이 가져다 쓰신 거 아닙니까? 적들이 눈치채지 않을까요?]

[응. 그래서 창고는 당분간 건드리지 않으려고. 다행스럽게도 지휘부는 군수 쪽을 의심하고 있어.]

[내부 총질하는 동안에는 가만히 있는 게 상책이지요.]

[그러니까. 여하간. 이번 보급 물품은 주로 통신선 같은 전투 보조 물자로 구성되어있을 거야.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지 알지?]

[맡겨만 주십시오. 추정도 못 하게끔 해놓겠습니다.]


며칠 뒤.


통신 교관의 얼굴은 초상을 당한 사람마냥 어두웠다.


굳이 먼저 물어볼 필요가 있나? 만철반은 교관의 비위를 살살 맞춰가며 그가 먼저 입을 열기를 기다렸다.


교관은 만철반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휴··· 자네들은 지금 본인 수준이 어떻다고 생각하나? 실전에 투입될 수 있다고 생각하나?]

[아직 부족하다고 생각합니다. 부끄럽지만 천황 폐하의 은덕에 보답하기 위해서는 더 많은 노력을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아니야. 자네들은 지금 당장 실전에 투입되어야 해. 그래도 될 수준이야. 이렇게 반복 교육이다, 심화 교육이다, 하면서 시간 끌고 있을 때가 아니라고.]


통신 교관은 사단 본부로 오던 보급 부대가 습격당했다는 말과 함께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 한숨이 나올 수밖에 없겠지.


본인이 요청한 물품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을 테니.


물론 물품 자체는 만철반이 만든 개구멍 간이 비밀 창고에 안전하게 보관되어 있었다.


먼지 하나 묻지 않은 물품은 곧 특전 대원들에 의해 수신기로 재탄생했다.


***


그렇게 사단 본부의 각종 소식은 항일군의 귀로 조금씩 흘러들어 가게 되었다.


아니, 대부분 흘러들어 갔다.


특전 대대는 관동군 사단 본부가 예하 부대로 전달하는 통신문을 대부분 가로챌 수 있었다.


어느 부대가 어느 지점을 공격할 것인지.

어느 부대가 어느 지점으로 이동할 것인지.

어느 부대가 언제 보급을 받을 것인지.


흑하 전역의 관동군은 항일군의 손바닥 안으로 들어온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이번에 공격한 부대 어떻게 됐나? 성공했나?]

[실패했습니다. 도리어 역으로 당했답니다.]


[사단장님. 큰일 났습니다. 전방 부대가 숙영지 이동 도중 습격당했다고 합니다.]

[뭐라고? 피해 규모는?]

[워낙 갑작스럽게 당한 터라··· 괴멸에 가깝다고 합니다.]


[일부 보병 부대에 탄약 보급이 제대로 안 되고 있다고 하던데. 군수 참모 어떻게 된 거야?]

[그게··· 보냈는데··· 항일군에게 당했습니다.]

[또 당했다고? 장난해?]


지휘부의 분위기는 날이 갈수록 험악해졌다.


물론 관동군도 아주 바보는 아니었다. 패전이 거듭되면서 지휘부는 정보 유출을 의심하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뚫린 것 같습니다.]

[누가? 우리가?]

[재수가 없었다고 하기에는 너무 딱딱 들어맞지 않습니까?]

[그럼 보안을 더 강화하도록 해.]


관동군 대부분은 설마 하는 마음이었지만, 명령에 따로 이의를 제기하진 않았다.


그렇게 관동군은 암호 체계를 새 패턴으로 교체했고 통신 시간도 바꾸었다.


하지만 부질없는 짓이었다.


‘금일. 통신 참모 전방 부대 시찰 예정. 사단 본부와 거리가 먼 부대임. 사살하기 좋은 기회로 보임. 사살 요망.’

‘확인.’


쾅!


[누가 죽었다고? 통신 참모가?]

[그렇습니다···]

[빌어먹을! 통신 참모만 혼자 갔던 것도 아니잖아. 다른 사람들은?]

[···..]

[망할··· 전 부대에 대기 명령 내려. 사령부에서 새 인원 올 때까지 공격하지 말라고 해.]

[알겠습니다.]

[하···]


사단장은 집무실 책상에 머리를 박았다. 그리고는 한동안 일어나지 않았다. 아니, 못했다.


통신 참모의 죽음은 만철반의 교육에도 큰 영향을 끼쳤다.


사격 교관은 침울한 얼굴로 만철반 대원들에게 책을 나눠주었다.


[소식은 다 들었겠지. 다나카 교관은 부상당한 통신 참모님을 버리지 않고 끝까지 지켰다. 그 충성심을 잊지 말도록 해라.]

[절대로 잊지 않겠습니다.]

[내가 방금 나눠준 책은 다나카 교관이 전에 사두었던 거야. 그의 유품이나 다름없는 물건이니 항상 소중하게 여기도록. 알겠나?]

[알겠습니다.]


***


통신 교관이 죽으면서 통신 관련 이론 교육은 무기한 연기되었다. 그것도 말이 연기지, 사실상 중단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중단된 교육 과정은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암호학 교육도, 이중 첩자 노릇을 위한 특수 교육도 모두 중단되었다.


급하게 생각하지 말아야 한다고, 항일군 수뇌부의 완전한 붕괴를 위해서는 더 멀리 봐야 한다고 말하던 사단 지휘부는 사라진 지 오래였다.


코너에 몰린 사단 지휘부한테 멀리 볼 여유 따위는 없었다.


마음이 급해진 사단 지휘부는 만철반을 최대한 이른 시일 내에 투입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교육 과정도 그것에 맞게 바뀌었다.


[모두 잘 들어라. 실전 투입이 멀지 않았다. 본 교관이 보기에 너희는 지금 당장 투입되어도 상관없어. 그럴 만한 능력이 있으니까.]

[감사합니다. 자만하지 않고 더 열심히 하겠습니다.]

[여하튼. 실전 투입이 멀지 않았으므로 지금부터는 실전에 맞는 교육을 중점적으로 가르치도록 하겠다. 너희의 적은 누구지?]

[동양의 평화와 번영을 무너뜨리려는 반란군 무리입니다.]

[놈들을 무너뜨리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죽여야 합니다. 이 땅에 다시는 뿌리를 내리지 못하도록 말살해야 합니다.]


교관을 만족시키는 방법은 매우 간단했다. 입을 험하게 놀리는 것이었다.


입을 험하게 놀릴수록 만철반에 대한 교관의 신뢰는 더욱 깊어졌다. 요 며칠 항일군에게 엿을 잔뜩 먹은 사단 지휘부도 마찬가지였다.


같은 조선인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화풀이를 할 것 같던 참모들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하기야 조선인을 그렇게 욕하는데 뭐라고 할 것인가? 동료를 잃은 참모들은 가짜 친일파를 보며 도리어 마음의 위안을 얻는 듯했다.


살상 교육은 속성으로 이루어졌다. 만철반이 초보 행세를 하지 않은 덕분이었다.


교관과 지휘부는 흠잡을 데가 없는 만철반의 동작을 보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그래. 저놈들이라면 할 수 있을 거야.]

[맞습니다. 사단장님. 저것 좀 보십시오. 대검 찌르는 모습부터 뭔가 다르지 않습니까?]

[다르지. 다르고말고. 조금만 견디자. 조금 있으면 반란군 수뇌의 머리통이 전리품으로 들어올 거다.]


그렇게 사단 인사 전원이 행복 회로를 돌리는 가운데, 살상 교육도 마무리되었다. 딱히 흠잡을 곳이 없었던 만큼, 재교육이나 보충 교육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살상 교육이 끝난 날, 교관은 제자들의 단점을 지적하는 대신 말없이 앰풀을 나눠주었다.


손가락 마디 하나보다도 작은 앰풀에는 정체를 알 수 없는 물질이 담겨 있었다.


교관이 말했다.


[청산가리다. 항상 품 안에 간직하고 있도록 해라.]

[알겠습니다.]

[만에 하나 너희 신분이 노출되면··· 주저 없이 사용해라. 그냥 입에 넣고 깨물면 돼. 많이 고통스럽겠지만, 오래가진 않을 거다.]

[명심하겠습니다.]

[물론 너희가 적을 먼저 처치한다면 이야기가 달라지겠지.]


교관은 자살용 청산가리에 이어 암살용 청산가리 앰풀도 나눠주었다.


사단 지휘부는 가능한 한 모든 수단을 동원해서 항일군 수뇌부를 무너뜨리고자 했다.


독살도 그중 하나였다.


[너희는 놈들과 상당 기간 같이 지낼 것이다. 우리는 너희를 최정예로 키웠다. 이 말이 무슨 뜻인 줄 아나?]

[적의 중심부에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다는 뜻입니다!]

[맞아. 어쩌면 황금 같은 기회가 올지도 모르지. 반란군 수괴가 한자리에 모인다거나.]

[제 목숨을 바치는 한이 있더라도 기회를 잡겠습니다.]


교관은 별다른 말을 남기지 않고 조용히 막사를 나갔다.


청산가리 지급은 작전 시행이 멀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했다.


대성은 주변에 사람이 없는 걸 확인한 뒤, 막사 화장실에 마련해놓은 비밀 통신기로 향했다.


그리고는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지금부터 참수 작전을 시작한다. 각자 배정받은 위치에서 지정받은 인원과 함께 대기하도록.]

[알겠습니다.]


***


특수임무를 앞둔 만철반에게는 전보다 더 많은 자유시간이 주어졌다.


물론 말만 자유시간이었을 뿐이었다.


만철반은 자유시간을 허투루 낭비하지 않았다. 그들은 알게 모르게 부대로 들여왔던 비밀 무기들을 정비하고 품속에 넣었다.


대성은 그런 대원들을 둘러보며 마지막 점검을 했다.


“폭탄 설치할 때 항상 앞면하고 뒷면 확인해라. 볼록하게 나온 앞면이 적을 바라봐야 해. 반대로 놓으면 큰일 난다.”

“주의하겠습니다.”

“탄약 확인했어?”

“확인했습니다. 이상 없습니다.”

“나머지 장구류는?”

“확인했습니다.”

“좋아. 출발하자. 시한폭탄 설치 인원만 빼고 전부 나가. 살아서 만나자.”


만철반, 아니, 특전 대원들은 구렁이 담 넘어가듯 막사 밖을 조용히 빠져나왔다.


사단 본부는 흑하 전선의 모든 관동군을 책임지는 최상급 부대답게 삼엄한 경계를 자랑했다.


경계병들은 사단장의 보이지 않는 시선에 부담감을 느끼며 경계를 게을리하지 않았고, 순찰병들은 언제 어디서 간부를 마주칠지 모른다는 마음가짐으로 경내를 돌았다.


그뿐이랴. 본부 안에는 장갑차도 있었다.


제아무리 날고 기는 특전 대원이라도 요술봉 없이 장갑차를 상대할 순 없었다.


장갑차가 제대로 움직인다는 전제하에 말이다.


불행하게도 관동군 병사들은 밤 귀가 무척이나 밝은 지휘부를 모시고 있었다.


예민한 지휘부는 수면 중에 장갑차가 돌아다니는 걸 절대로 허락하지 않았다.


항일군이 매일같이 설친다고 하지만, 그래도 명색이 관동군 사단 본부인데. 행복 회로로 인해 이성이 마비된 지휘부는 경계병과 순찰병만으로도 자기 목숨을 충분히 지킬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이는 병사들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아무리 그래도 사단 본부인데. 마주쳐봤자 누구겠는가?


병사를 어떻게든 엿 먹이려는 악질 간부이든가, 추위에 벌벌 떨며 고통을 분담하는 가련한 순찰병 동료겠지.


이런 동병상련의 심정 때문인지 순찰병들은 유독 경로가 겹치는 다른 순찰병들을 반갑게 대했다.


그게 누구인지도 모른 채.


명색이 관동군 사단 본부인데. 귀신이 여기까지 들어오지는 않을 거야.


모두가 그렇게 생각했다.


그러나 일본군 잡는 귀신은 생각보다 아주 가까운 곳에 있었다.




잘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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