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문난 잔치에 먹을 게 많다(2)
"소문의 젊은이하고 같이 뛰다니 영광이에요. 호호."
박수희라는 아줌마는 싹싹하고 다정다감했다. 남자들만 모인 칙칙한 팀보다는 그래도 여자 한 명 있고 없고의 차이에 팀 분위기 자체가 달랐다.
이성철, 차명철 두 사람도 다른 40대 아저씨들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가정이 소중하고 집안을 지키기 위해 오늘도 열심히 발품 파는 사람들.
지겹고 귀찮아도 꼭 안전하게 중하위권 던전만 돈다. 모험을 좋아하거나 도전 의욕이 고취된 부류와는 정반대의 그룹이다.
그런 생활 습관이 오래도록 헌터 생활을 지속하게 만드는 이유기도 하다. 어제 사망자 수는 28명 김해 던전에서만 벌어진 일이다.
레벨별로 이모탈 시티에서 지정한 던전이 있고 그런 맞춤형 던전만 다니면 크게 문제 될 것이 없다. 인간은 꼭 하라는 짓만 하고 살지는 않는다.
뭔가 해보고 싶고 도전해 보고 싶고 가진 장비를 업그레이드하고 싶어 한다. 그래서 종종 상위 던전을 찾다가 눈 뜨고는 보지 못할 험한 꼴을 당하기도 한다.
오늘 이 팀은 F등급의 던전 중에서 가장 난이도가 있다는 던전을 공략한다. 같은 F등급의 던전도 조금씩 난이도 차이가 있고 가장 낮은 던전과 가장 높은 난이도의 던전은 상당한 차이가 있다.
낮은 난이도는 혼자 돌 수 있을 정도고 반대로 높은 난이도는 팀을 이루는 게 정석이다. 나는 김해 던전의 E급 던전은 거의 다 돌아봤는데 오늘 가는 이 던전은 처음 가보는 것이다.
솔직히 D급 던전도 정복했던지라 큰 걱정은 하지 않았다.
오늘 저녁 기숙사 반찬은 뭐가 나올까?
물품 감정은 얼마나 올라왔을까? 라는 시시콜콜한 생각을 가지고 던전에 입성했다.
던전에 들어서자마자 조금 놀란 것은 분위기 때문이었다. 이곳은 개활지다. 약간의 그러니까 발목 정도 높이의 잡초가 무성한 어찌 보면 초원의 분위기까지 나는 곳이다.
그리고 또 한 가지 냄새.
풀냄새가 찐하게 풍겨오는 이곳은 던전이라기보다는 시골 풀밭 같은 분위기였다.
"와, 여기는 넓고 냄새도 좋네요."
"여기 첨인가 봐?"
"네 다른 E등급 던전은 거의 다 뛰어 봤는데 여기는 첨입니다."
"냄새 참 좋지?"
"그러네요. 꼭 한적한 시골 한편에 온 느낌입니다."
나는 언노운이 펼쳐준 맵을 점검했다.
엘리시움 광석은 다섯 군데 자생. 레벨에 비교해서 상당히 많은 양이다. 갈림길이 많지 않고 넓은 던전이라 거의 일직선으로 움직이면 충분할 정도였다.
"그럼 첫 번째 방향은 이쪽으로 잡고 갑니다."
"어머, 어떻게 알고 가는 거야? 나도 좀 가르쳐 주면 안 돼?"
"수희 이모 그건 저도 느낌으로 파악하는 거라. 하하."
박수희는 자신을 편하게 이모라 부르라고 했다. 물론 남편이 있는 아줌마다. 아들도 하나 있고 이성철과는 아카데미 동기고 차명철은 이성철의 단짝이었다.
이 세 사람은 자주 어울린다고 했다. 원래는 남편과 함께 다녔는데 늘 사소한 거로 말다툼이 심해 가끔은 서로 떨어져 사냥한단다.
부부 맞벌이는 이모탈 시티에서 흔한 일이다. 대부분 남자가 벌기도 하지만 상당수 여성이 이렇게 맞벌이로 돈을 번다.
박수희는 정신계 각성자로 조작 능력자라고 한다.
보통 대부분 정신계는 자연의 원소 데미지를 에테르와 조합하여 공격한다. 냉, 화, 풍, 전, 그리고 여기에 조작계가 있다.
조작계는 염력 따위로 물건을 움직이는데 임페리얼 테크노트리아에서 만든 마공수(魔工獸)를 다루는 사람들이 바로 조작계다.
김해 던전을 왔다 갔다 하면서 많은 헌터를 봤는데 개중에 기계 짐승을 데리고 다니는 헌터가 있다. 이들이 조작계로 임테 길드에서 생산한 마공수(魔工獸)를 사용하여 전투를 치른다.
마공수(魔工獸)는 마공학 전문 길드 임테에서 만든 기계수다. 오직 조작계 능력자의 염력을 통해서만 움직이는 일종이 펫 또는 소환수 개념이다.
가격도 천차만별이고 비싼 놈들은 비싼 만큼 그 값어치를 한다. 조작계 능력자는 자신의 마공수를 업그레이드시키거나 강화하는데 모든 것을 바친다.
헌터군중에서 가장 유지비가 많이 드는 직업으로 일위를 조작계를 꼽는다.
강화를 위해 전 재산을 때려 박는 사람도 적지 않다. 강화 잘된 마공수는 같은 등급의 헌터를 웃돌기도 한다.
한번 레벨 개화한 헌터는 다시 렙업 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만큼 어렵지만, 마공수는 돈만 있으면 얼마든지 강화가 가능하다.
박수희는 ITB에서 마공수를 꺼냈다. 가까이서 보니 더 멋지다. 거대한 호랑이를 닮은 기계 마공수다. 동력은 소유자의 염력과 고농축 에테리움 광석이다. 이놈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엘리시움이 상당히 많이 소비된다.
이래저래 돈 먹는 기계라는 푸념을 듣는 것도 이 녀석이다.
특수 탄소강으로 제작된 강철 발톱과 강철 이빨은 웬만한 오크 정도는 충분히 찢어발긴다.
여기에 강화하면 다양한 옵션을 붙일 수 있다.
원거리 무기인 에너지 런처나 에너지 탄을 쏘아 내는 머신건을 장착할 수도 있다.
다만 소유자의 염력 레벨에 따라 움직일 수 있는 덩치가 제한된다. 결국, 자신에 맞는 정도의 수준에서 강화가 가능하다는 이야기다.
"멋지지? 이름이 호떡이야."
"호떡요? 좋고 좋은 이름 놔두고 왜 호떡입니까?"
"호호, 울 아들이 지어줬어."
이 근사한 놈의 이름이 호떡이라니 언발란스다.
이성철은 방패를 든 전형적인 탱커고 차명철의 무기도 색다르다. 그는 부메랑을 결합한 활을 사용한다. 이 활도 임테 길드 작품인데 화살 대신 엘리시움의 에테르를 응집시켜 발사한다.
상당한 관통력을 가지고 있으며 엘리시움만 있으면 계속 사용이 가능하기에 신체 각성자들 중 원거리 무기를 원하는 사람들에게 가장 이상적인 무기다.
난이도가 있는 던전인라 그런가? 첫 몹이 오크다. 그것도 분대 단위로 튀어나왔다.
이성철과 호떡이 어글을 잡고 차명철이 원거리 딜을 넣으며 차분히 차분히 격파하며 앞으로 나갔다.
"여긴 오크 나라라 불린다. 그 정도로 오크가 버글버글하지. 저놈들이 너무 떼거리로 나오기 때문에 팀이 아니면 공력이 불가능한 던전이다."
이성철이 커다란 방패로 몸을 가리며 전진했다. 지금까지 많은 아저씨하고 던전을 뛰었는데 이렇게 크고 멋진 방패를 들고 있는 헌터는 처음이었다.
보통 둥글고 왼팔에 간단히 착용 가능한 소형 방패를 선호하는데 이성철은 몸의 반을 완전히 가리고도 남을 만큼 커다란 사각 방패를 사용했다. 중세시대 기사를 방불케 하는 모습이었다.
그리고 그가 어글을 잡는 데는 확실히 뛰어났다. 지금까지 만난 탱커형 헌터 중에서는 가장 어글을 꼼꼼하고 확실히 잡았다.
호떡의 활약은 두말할 필요 없다. 앞발 강타 한방으로 오크 한 마리는 정도는 그대로 즉사시킬 정도다.
거기에 튀거나 빠지는 몹은 차명철이 확실히 잡아낸다. 이 파티 정말 결속력이 대단하다. 한두 번 굴러 본 사람들이 아니다. 솔직히 E급 중에서도 최상위의 헌터들이다.
내가 길잡이 외에는 할 일이 없을 정도다.
첫 번째 자생 엘리시움 근처에 왔을 때다.
[공간 왜곡 현상이 포착되었습니다. 스캔합니다]
나는 시크릿 챔버라도 나온 건가 설렜다. 그러나 언노운이 가리킨 것은 이상한 문양이 적힌 사각형 평평한 돌판이었다.
"이게 뭐지?"
[맵 상에 표시된 다섯 개의 지점에 공간 왜곡이 발견되었습니다. 일종의 퍼즐과 같습니다. 분석 중입니다. 5분 10초 소요]
"잠시 여기 좀 살펴보고 갈게요."
"왜 뭔데 그래?"
"이 돌조각이 좀 눈에 밟혀 서요."
[분석 완료. 다섯 개의 돌 상판에 표시된 문양이 정방향을 향하도록 위치시키십시오]
손으로 힘껏 돌려 보니 돌아간다. 나는 언노운이 가르치는 방향으로 문양의 위치를 틀어 놓았다.
첫 번째 자생 엘리시움 광석에 도착하니 내 칭찬을 해가며 함박웃음을 짓는다. 몬스터를 잡아서 드랍 되는 엘리시움 보다 광석은 길드에서 몇 배는 더 쳐준다. 같은 무게라도 자생 쪽이 몇 배는 비싸게 치부된다.
다시 오크 떼거리와 마주쳤는데 나는 정말 구미가 당겨 안절부절못했다. 무슨 구미냐 하면 각성도를 사용해 보고 싶은 욕구 때문이다.
재버워크의 각성도에 스킬 바람 소리 까지 담아 놓았다. 그리고 무사시의 니텐이치류 검법까지 있으니 한 번 휘둘러 보고 싶어 손이 다 떨릴 정도였다.
혹시나 이들에게 민폐를 끼칠까 하며 참고 있었지만, 손은 계속 각성도의 손잡이를 주물럭거렸다.
일부러 슬금슬금 몹 쪽으로 붙었다. 오크들은 떼거리로 몰려 나와서 두 사람이 감당하기에는 조금 벅찰 지경이 되자 슬슬 옆으로 새는 오크가 있었다.
나는 기다렸다는 듯이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각성도를 뽑아 들었다.
'스릉' 소리를 지르며 검집을 빠져나오는 각성도의 소리에 잠시 전율이 일었다.
근육이 움찔하는 게 진짜 검이란 게 이런 거라는 것을 말해 주는 것 같았다.
난 단 일합에 검을 내리쳐 오크를 반으로 쪼개 냈다.
와, 개작살. 베는 게 아니라 그냥 툭 하고 썰린다. 손맛이 그냥 끝내준다.
나는 완전히 심취해서 팀원이 뭐라 하든 신경 쓰지 않고 오크에 근접으로 붙었다.
이성철은 그냥 근육 힘으로 무식하게 휘두르는 게 다이지만 나는 완전히 무예를 펼치는 거다. 검의 곡선이 우아하고 때로는 날카롭게 돌아간다. 내 몸의 형태로 하나의 사무라이가 현신한 것처럼 완벽한 자세를 뿜어냈다.
베고 치고 찌르고 또 베었다. 너무나 심취해 주변의 오크가 없어진 것도 몰랐다.
"우와 멋지네. 움직임이 정말 아름다워."
수희 이모가 손뼉을 치며 감탄했다.
"어이, 동혁이 너는 서폿이야. 무리하지 마라. 네가 다치면 곤란해."
"하하, 죄송합니다. 이 정도는 저도 충분히 처리할 수 있을 것 같아서."
진짜 서폿은 지루하다. 이런 멋진 손맛을 두고 뒤에서 구경만 하고 있어야 하니.
두 번째 엘리시움으로 가는 길에 석판이 또 하나 나왔다.
나는 언노운이 가르쳐 준 대로 석판의 문양을 돌려 맞췄다.
두 번째 자생 엘리시움을 먹고 안쪽으로 더 들어가니 진짜 오크 나라라고 했던 이유를 알 만큼 오크들이 쏟아져 나왔다.
이번에는 나도 일선에 서서 각성도를 휘둘렀는데 진짜 손맛은 느껴본 사람만이 알 수 있다고 말할 정도로 사람을 휘어 감았다.
베는 것이 사람이 아니고 몹이다 보니 불쾌한 감정도 없었고 도덕적 불안감도 없었다.
세 번째 석판과 네 번째 석판은 자생 엘리시움 광석과 많이 어긋나 있어 루트를 어떻게 짜야 할지 고민이었다.
"저기 이 석판 말이죠. 뭐가 재미있는 게 있는 것 같은데 석판을 찾아보면 어떨까요? 아니면 엘리시움 다 캐고 한번 볼까요?"
세 사람은 이구동성으로 외쳤다.
"엘리시움"
나는 방향을 세 번째 엘리시움 광석으로 잡았다. 그동안 하나가 점등이 꺼진 거로 봐서 누군가 캐낸 모양이다.
세 번째와 네 번째 엘리시움을 완전히 독식한 우리 팀은 나를 안고 춤이라도 출 기세였다. 그만큼 자생 엘리시움의 값어치는 월등하다. 여기서 몹을 잡고 나온 엘리시움을 다 합해도 자생 엘리시움 하나만도 못하니 말을 할 필요가 없다.
나는 팀을 데리고 네 번째 석판에 다다랐다. 언노운이 지도에 표시해준 석판의 위치를 보니 딱 오각형 모양이었다.
나는 어렵지 않게 그것이 어떤 도식을 그린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것은 오망성이었다.
마지막 다섯 번째에 이르러 나는 숨을 죽이고 문양을 맞췄다. 그때였다.
지면이 지진을 만난 것처럼 크게 흔들리더니 먼 곳에서 새하얀 기둥이 떡 하니 모습을 보였다.
"저기 봐요!"
박수희가 가리킨 곳에서 새하얀 빛줄기 기둥이 하늘 위로 뻗어 나가며 우뚝 서 있었다.
"일단 한 번 가봐요."
우리 팀이 도착했을 때 빛기둥은 찬란한 빛무리를 뿜어내며 서 있었다.
빛기둥의 지금은 2m 가까이 되어 보였다.
"뭡니까?"
"그게 뭐죠?"
"아까 지진 같은 거 무엇 때문입니까?"
우리 주변으로 다른 팀도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다.
[오크 킹 소환 42분 28초 전입니다]
"응?"
나는 언노운의 말을 듣고 탄성을 질렀다.
"이봐! 저 빛에 페어링을 해봐. 오크 킹이라고 나오는데?"
한 헌터가 외치자 서로 빛줄기에 페어링했다.
-오크 킹 소환 40분 10초 전
"오크 킹!"
"오크 킹이다. 오크 킹!"
헌터들은 깜짝 놀라 서로를 쳐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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