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호점 오픈
정철웅은 편안한 미소를 지었다. 그의 풍채와 잘 어울리는 넉살 좋은 웃음이었다.
그는 시시콜콜한 이야기까지 주절주절하는 것을 즐겼는데 이야기를 하는 동안 내 담배 열 개피를 아작내놨다.
거기다 아직 커피조차 없는 동네라 입이 바짝 탔다.
"적당한 건물이 필요합니다. 요지에 위치하면 더 좋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건물 하나를 비워 놨습니다. 여의도역에 있는 좋은 건물 한 채를 깨끗이 청소를 해 두었습니다."
"아시다시피 이곳은 연합이지만 그 건물은 불사의 회람 자산으로 포함 시키겠습니다. 다시 말해 이곳의 규범과 통제를 받지 않고 저희 단독으로 운행하겠습니다."
"물론 그러셔야죠. 자치령에 뒤처지는 것은 싫거든요. 우리 식구들이 매우 뿔이 나 있는 상태라서 말이죠."
"네. 잘 알겠습니다. 우리는 형평성을 가지고 운영하지 않습니다. 자치령과 연합은 모두 똑같은 혜택을 받게 될 겁니다."
"그것 좋은 말이군요. 또 무엇이든 필요한 것이 있으시면 말해 주십시오."
"연합에도 서버를 구축해서 네트워크망을 개설할 생각입니다. EEA도 사용해야 하니."
"좋습니다.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이용하십시오. 이미 연합의 마인 전체가 이날이 오기를 손꼽아 기다리고 있었으니까요."
정철웅 사령관과의 이야기는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아예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하나부터 열까지 빈틈없이 맞아 떨어졌다.
"자치령도 같은 협의를 보았는데 제가 여기 온 이상 당분간 마인의 에덴 출입은 삼갔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그 약속도 해 드리리다. 우리는 에덴에서 마인 몇 명을 잃었기 때문에 매우 애통해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정철웅 사령관이 그 이후 어떤 이야기를 꺼낼지 짐작을 하고 미리 마인 공급에 관한 이야기를 풀었다. 자치령에서 석천 사령관에게 했던 이야기와 같은 내용이었다.
분위기가 이럴진대 무슨 역한 감정이 있어 자치령과 아웅다웅하는지 알 수가 없다. 백오십 년 동안 이들에게도 말 못 할 사정이 있었을 테니까.
여의도역은 매우 큰 공터를 가지고 있고 여러 곳으로 이어지는 도로의 중점에 있어 유동 인구가 가장 많은 지역이었다. 정철웅 사령관이 이미 내가 이곳으로 올 것을 잘 알고 있었던 모양이다.
처음 나를 안내했던 김희철이 계속 안내를 맡았다. 그는 외관이 갈색빛이 도는 큰 빌딩으로 나를 인도했다.
"이곳이 에덴을 위해 비워 놓은 건물입니다."
"이렇게 좋은 건물을 주시다니 분에 넘치는군요."
"저는 빨리 지점이 오픈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냄새나는 자치령에 숨어 들어가는 것이 고역이었거든요. 그러나 그 환상적인 음식은 잊을 수가 없습니다. 이거 아십니까? 연합의 사람들은 벌써 엘리시움 광석을 넘치게 준비해 두었습니다. 아가문드도 마찬가지고요. 하하."
"제가 여러분을 많이 기다리게 했군요. 진작 올 것 그랬습니다."
정철웅 사령관의 엄명으로 당분간 불사의 회람 건물에는 절대 마인이 출입하지 못하도록 했다. 고정식 게이트 공사를 하는 동안은 보안이 유지 되어야 했기 때문이다. 이호점으로 이동하는 게이트는 사흘 만에 설치가 완료되었고 네트워크 구성 인력과 이호점을 운영하기 위한 인력이 모두 연합으로 건너왔다.
불사의 회람에서 이호점 매니저 지원을 받았는데 최종적으로 선택된 헌터는 김영희 A급 헌터였다. 여성의 몸으로 매니저 일을 맡겠다는 당창 포부를 피력해 만장일치로 이호점의 매니저가 되었다.
자치령이 엘리시움 발전소를 건설하기 위해 이명우 박사를 납치한 데 반하여 연합은 마인 두 명을 불사의 회람에 보내 직접 기술을 전수 하고 자재를 공수받아 엘리시움 발전소를 지은 사례였다.
우리 기술자팀은 불안전한 엘리시움 발전소를 개량해 주고 전력망과 네트워크망을 보안 신설했다. 그 작업은 한 달 넘게 걸렸으며 연합의 마인은 우리가 무엇을 하던 지켜보기만 했다.
자치령과 마찬가지로 연합도 이모탈 시티는 반드시 지켜져야 할 인류란 자원의 마지막 보고로 여기고 있다. 마인은 도태되어 사라지지만 인간은 탄생이라는 섭리 아래 존속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마인이 강력한 힘을 동원해 이모탈 시티를 건드리지 않는 것도 상호 침략 불가침 협의를 했다지만 그것은 단지 서면 적인 놀음에 불과할 뿐이고 실질적으로도 이모탈 시티는 보호되어야 할 존재로 인식되어 있었다.
그들은 오리지날 인간이 신기한 듯 며칠을 관찰하다 똑같은 모습에 바로 실증을 느낀 모양인지 그 이후로는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정크 보이 이백 명이 이호점에 왔을 때 나는 올망졸망한 그들의 얼굴을 보고 어찌 웃음이 나던지 한참을 미소 지었다. 녀석들은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지 못해 무엇을 해야 할지 눈 빛 속에 걱정이 한가득 들어 있었다.
김영희는 그런 정크 보이들을 능숙하게 다뤘다. 정크 보이들은 며칠 만에 김영희를 친근한 누님처럼 믿고 따랐다.
그리고 며칠 동안 내 주위를 계속 따라 다니며 연합의 모든 것을 가르쳐 준 김희철을 부지배인으로 영입했다.
석 달이 다 되어 갈 때쯤 네크워크망도 거지는 완성이 되었고 엘리시움 발전소의 개량으로 효율이 50%나 상승했다.
이호점으로 자재들이 속속 도착했고 작은 사고 하나 없이 모든 일이 계획대로 너무 술술 잘 풀렸다. 연합의 마인은 언제 오픈 하는지 넌지시 물어보는 사람들이 늘어갔다.
김영희와 김희철은 식당을 먼저 오픈 하기 위해 분주하게 움직였다. 이백여 명의 정크 보이들은 기대와 희망을 품고 분주히 움직였다.
나는 임페리얼 테크노트리아로 넘어왔다. 그곳에는 장인어른부터 주두의 십자가 김의천 추기경, 이터널 엘리시움의 소드 마스터 김철의 모습도 보였다. 사대 길드 수장이 모두 임페리얼 테크노트리아에 모인 것이다.
"네크로폴리탄에 구축한 서버의 연동은 확실히 믿으시겠지요? 그들의 일거수일투족을 확실히 감시할 수 있지 않습니까? 연합의 서버도 활성화되었으니 이제 가만히 앉아 석천 사령관이나 정철웅 사령관의 사소한 이야기까지 모두 감청할 수 있게 되질 않았습니까?"
"그건 매우 잘한 일이라 생각하네. 놈들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파악할 수 있게 되었으니"
"솔직히 여러분에게 이 정도 서비스를 제공할 이유는 전혀 없습니다. 제가 여러분에게 이런 혜택을 드리는 대신 여러분도 저에게 어느 정도의 권한을 부여해 줬으면 합니다."
"구체적으로?"
이들은 네크로폴리탄에 모든 신경을 집중시키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모탈 시티는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새로운 규정을 만들려 하고 있다.
나는 그 사실을 알기 때문에 무슨 일을 진행하던 이들에게 선보고를 해주고 자문했다. 내가 가장 어리기도 했고 내 행동이 이들의 눈 밖에 나서는 곤란했기 때문이다. 물론 이들이 무서워서가 아니다. 단지 귀찮은 일을 만들 이유가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마인 인구 유지에 관한 내용이죠."
김철은 나를 노려보듯이 직시하며 말했다.
"정동혁 회장 나는 자네의 끝없는 능력이 솔직히 두렵네. 인간이 아니라 신의 능력을 갖추고 있다고. 그 능력을 올바른 일에 써 주기를 바라네."
"신의 능력이 아니고 악마의 능력일 수도 있죠."
"재수 없는 농담은 사양하네."
소드 마스터 김철은 경기라고 들린 듯이 활짝 놀라했다.
그런데 아쉽게도 그것은 사실이었다. 신의 능력을 가진 것이 아니라 악마의 능력을 가진 것은 명백한 사실이니까.
"여러분은 지금까지 전혀 몰랐던 하우레스 라인의 존재도 알았습니다. 그 라인에는 우리 이모탈 시티 전체를 없애 버릴 수도 있는 신적인 존재가 머물고 있다는 사실을요."
"신이 아니고 악마겠지."
김의천 추기경은 묵주를 매만지며 말했다.
"황당하게도 그 악마 덕분에 이모탈 시티가 보호받을 수 있었어."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사실 마인이 북쪽의 몬스터를 안정적으로 막고 있어서 우리는 더 안전해 질 수 있는 거죠. 솔직히 데빌이라도 한 마리 이곳에 나타난다면 우리는 방어할 수단이 없을 겁니다."
그 말은 진실이며 모두의 마음속에 담겨 있는 불온한 그림자의 한 단편이었다.
"그래서 자네는 네크로폴리탄에 인간 공급을 재개할 생각인가?"
"그렇게는 하지 않을 생각입니다. 저는 나름대로 계획이 있습니다. 아직 실행 단계가 아니라 다음에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그들의 과학력을 계속 높여 주면 혹 그들이 다른 마음을 먹지 않는다는 보장을 어떻게 하나?"
"셈텍스 공급은 완전히 중단되었지 않습니까? 저희도 셈텍스 공급만은 절대 하지 않을 생각입니다. 하우레스 라인을 통과한다는 보장도 없으니 셈텍스만 통제한다면 문제 될 것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나는 아무래도 그들이 성장하는 것이 두려워."
"네크로폴리탄이 자치령과 연합으로 나뉜 것은 오히려 잘된 일인지도 모릅니다. 그들로부터 상호 침략 불가침 조약을 받았습니다. 어느 한쪽이 침공하는 일은 벌어지지 않을 겁니다. 그들은 서로 견제하고 있기 때문이죠. 우리로서는 큰 이점입니다. 그리고 여러분은 이제 네크로폴리탄의 사정을 여기서 대화 한마디 놓치지 않고 감청할 수 있지 않습니까?"
"여하튼 그쪽 일은 자네를 완전히 의지할 수밖에 없어. 신중하게 행동해 주게."
"물론입니다. 그래서 사소한 일 하나하나까지 여러분에게 선보고 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리고 이건 다른 문제인데. 회색 도시는 이미 포화 상태야. 노인 인구의 처리 문제는 너무 골치 아파. 이모탈 시티는 인구 문제로 골머리를 계속 앓고 있어. 각성자가 아닌 노멀은 솔직히 이모탈 시티에서 추방하는 법안을 통과시켜야 할지도 몰라."
"불사의 회람에서 한가지 방안을 모색하고 있습니다."
묵묵히 있던 박민혁 총수가 입을 열었다.
"거제권에 관한 일인가?"
"이호점까지 개업한다면 엄청난 양의 엘리시움 광석이 쏟아 들어오게 되죠. 그리고 엘리시움 자생지의 생산량도 최고조에 달합니다. 그럼 던전으로 빠지는 헌터를 필드 토벌에 이용할 수 있습니다. 저는 거제도 토벌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김철도 고개를 끄덕였다.
"거제도라면 노멀들의 도시를 세울 수 있는 충분한 용지가 될 수 있어. 거제도만 탈환 하면 노멀의 인구 증가를 감당할 수 있을 걸세. 거제도 토벌이 시작되면 우리도 적지 않은 힘을 보탤걸세."
"이터널 엘리시움의 전사들이 참여한다면 몇 달은 수월하게 앞당길 수 있을 겁니다."
박민혁은 팔짱을 끼고 눈을 살짝 감았다.
"거제도를 탈환 한다면 그곳에 엘리시움 발전소를 건설하도록 하겠네. 그럼 도시의 기능을 충분히 할 거야."
"여러분만 믿고 저는 네크로폴리탄에 집중하겠습니다."
***
밖이 시끄러웠다. 아니 시끄러운 정도가 아니다. 어디 있다가 몰려나왔는지 마인이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창밖으로 고개를 내민 김영희는 한숨을 푹푹 내쉬었다.
"저 사람들 다 받는 것은 무리입니다."
"자치령의 소문을 듣고 기대감이 상승한 탓입니다."
김희철 부지배인도 표정이 말이 아니었다.
"이거 폭동이라도 날 기세인데요? 통제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입구부터 난리가 날것입니다."
지금 이호점 개점을 눈앞에 두고 있다. 9시 정각! 오픈을 알리는 시간은 점점 다가오고 있다. 이호점은 일호점에 비해 이백석 규모로 식당을 늘였고 정크 보이도 백 명을 더 충당시켰다. 연합은 자치령과 비교하면 약 오백 명이 더 많다.
서로 먼저 입장하겠다고 몇 시간 전부터 입구에 매달리다시피 모여든 것이다. 차라리 줄을 섰으면 그것으로 좋았을 것이다. 차례로 입장시키면 되니까. 하지만 지금은 난장판이었다. 서로 들어가겠다고 밀치고 아우성을 치고 있으니 말이다.
나도 이 사태를 지켜 보고 있었다. 전혀 통제가 안 되는, 말 그대로 아비규환이었다.
"김영희 지배인 준비는 다 됐지?"
"네, 내부적으로는 문제없습니다. 다만 들어오는 분들이 문제죠."
"할 수 없네. 순번표를 돌리자고. 순번표 대로 입장시킬 수밖에 없어."
김희철은 고개를 흔들었다.
"순번표를 제대로 나눠 줄 수나 있을까 걱정이 되네요."
그렇게 해서 기대감으로 무너져 버릴 것 같은 이호점이 오픈됐다.
Comment ' 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