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탁
고개를 들어 도인을 바라봤다.
"이놈 숨어 있다고 모르고 있는 줄 알았더냐?"
"앗!"
내가 엎드려 있는 곳으로 불줄기가 쏟아졌다. 적의를 입은 사내가 휘두르는 거궐도에서 뿜어지는 화염 줄기다. 그 불길은 대단해서 스치기만 해도 식물 정도는 순식간에 재로 화했다.
단번에 이 화염이 보통 불이 아님을 알았다. 근처를 스쳤는데도 뜨거운 열기가 후끈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이 정도면 무림인은 그냥 녹일 정도로 고열이다.
천둥이가 뿜어내는 화염과 비슷했다. 천둥이도 데몬 프린스로 변한 첫째의 왼팔을 순식간에 녹이지 않았는가? 그와 거의 비슷한 화염이다.
나는 두 다리에 마장기를 채우고 공중으로 뛰어올랐다. 두 사람은 내가 숨어 있다는 것을 진작 알고 있었던 거였다. 나만 숨어 있겠다고 꼴값을 떨었던 모양이다.
다리 밑으로 불길이 쭉 훑고 지나가는데 시커먼 재만 남았다. 정말 지독한 화망이다. 위에서 내려다보니 마치 불타는 용이 한 마리 지나가는 모양새였다.
흰옷의 도인이 화룡도라고 부르더니 그 이름값을 제대로 하는 도였다. 제 이파가 왔을 때는 허공이라 피할 수가 없었다.
언노운이 바로 리엑티브 펄스 쉴드를 펼쳤다. 불길은 쉴드에 막혀 두 쪽으로 갈라졌다.
어마어마한 열기가 느껴졌다. 데빌 폼으로 이 정도 열기인데 다른 사람 같으면 살이 익을 정도였다.
리엑티브 펄스 쉴드로 막았기에 이 정도지 정면으로 받았다면 나 자신도 감히 장담 못 할 정도다.
"화룡도를 막아 내다니 무슨 보패냐?"
적의 사내는 고함을 치며 나에게 덤벼들었다. 녀석의 스피드는 지금까지 내가 경험했던 그 어떤 인간보다 빨랐다. 거짓말 보태면 한 줄기 빛처럼 쏘아져 왔다.
붉은 옷을 입었으니 붉은빛이 나에게 쏘아져 들어오는 기분이었다. 하늘에서 푸른 번개가 그와 나 사이에 떨어지고 다시 도인의 고함이 들려왔다.
"자네는 어서 가서 이 사실을 알리게."
나보고 하는 소리가 맞긴 맞는 것 같다. 나 외에 달리 사람이 없으니까.
내가 무엇 때문에 천문파 따위에 이 사실을 말해야 하나. 나를 천마인지 뭔지 지들끼리 결부 짖더니 보패로 공격까지 했는데.
오히려 이 재미있는 구경거리가 훨씬 구미가 당겼다.
검은 불기둥을 뚫고 적의 사내가 불타는 검을 휘두르며 다시 내게 덤볐다.
정말 무시무시한 속도다. 머리에 뿔이 있어 아크 데몬 정도 생각했는데 아크 데몬 따위 감히 이 자에 비교하면 발톱 밑의 때만도 안될 정도다.
【즉시 이블 폼으로 전환하기를 권고합니다】
적의 사내는 바로 내 앞에 와서 멈췄다.
"어느 문파의 사람이냐?"
"난, 그런 것 없는 사람이오."
적의 사내는 한동안 나를 뚫어지게 바라봤다.
상당한 미남자다. 나이를 판가름하기 힘들었다. 중년의 느낌도 나면서 수염을 깨끗이 정리했기에 더욱 나이를 가늠하기 힘들었다. 그렇지만 나이는 꽤 있어 보이기는 했다.
매우 잘 다듬어진 조각상이라고 할까. 그는 상당한 미남자였다. 그의 손에서 불붙은 검이 화르륵 소리를 내며 타오르고 있었다.
도인은 탈혼수를 상대하느라 정신이 없는 상태였다.
"우리를 보고도 놀라지 않다니. 너는 어디서 나타난 놈이냐?"
"나는 이곳 사람이 아니오만. 우연히 지나가는 길에 소란스러움이 이끌려 오게 된 것뿐이오. 저 노인네가 적건문이나 천문파에 알리라고 고함을 쳤지만 내 알 바 아니오. 그들은 오히려 나를 천마라고 떠벌이며 공격한 자들인데."
"천마? 네놈이?"
"거참 이놈 저놈 하지 마시오. 천문파의 천수진인인지 뭔가 하는 사람이 일방적으로 나를 천마라고 몰아붙인 거지 나는 천마가 아니오."
"당연히 그렇겠지. 천마는 이 세상에 오로지 나 혁련광뿐이다."
나는 그제야 적의 사내가 천마임을 알았다. 그렇게도 천마 때문에 고생했는데 바로 그 천마가 눈앞에 있는 것이다.
"당신 때문에 내가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소. 천문파의 미친놈들이 나를 천마라고 우기더니 당신을 한 번도 보지 못한 모양이오? 당신과 나는 전혀 다른 사람인데 말이오." "그들이 왜 너를 천마라고 오해했지?"
"난들 알겠소? 아, 당신 머리에 그 뿔. 솔직히 그 때문에 오해를 샀다고 짐작은 하고 있소."
"뿔? 네놈 머리에 뿔이 어디 있느냐?"
"거참, 첨 보는 사람한테 이놈 저놈 하지 마시오. 나는 정동혁이란 이름이 있소."
"그래, 정가야 네놈은 정말 간이 배 밖으로 나온 것인지 아니면 두려움이란 의미를 모르는 거냐?"
천마 혁령광은 자신을 당당히 마주 하는 나를 무척 신기한듯한 눈빛으로 보고 있었다. 만약 천문파나 적건문의 인물이 이 자리에 있었다면 똥오줌을 싸 갈기고 벌벌 떨었을 것이다.
그만큼 그들에게 천마 혁련광의 존재는 대단한 것이다.
천마는 허공에서 탈혼수와 사투 중인 도인을 바라봤다.
"태을진군이 애를 먹는구나. 저놈을 여기까지 끌고 오느라 고생한 보람이 있었어."
"태을진군? 저 도인이 태을진군이요? 곤륜십이대선과는 무슨 관계요?"
천마는 더욱 호기심 가득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봤다. 그리고 슬쩍 왼손을 휘둘렀는데 나는 단번에 장력이 날아온다는 것을 느낌을 알 수 있었다.
즉시 쇄심장을 일으켜 받아쳤다.
"웃!"
팔이 빠개질 고통이 엄습해 왔다. 즉시 마장기를 둘러 고통을 가라앉혔다.
"후후, 천문파의 무공인 쇄심장을 사용하는 것을 보니 네 놈 입이 얼마나 거짓으로 덮여 있는지 알겠구나."
"쇄심장까지 알아보니 대단한 식견이오만. 이 쇄심장은 당주 한 명이 펼치는 것을 보고 즉시 배웠을 뿐이외다."
"풋, 푸하하. 쇄심장은 내가 십 년 전에도 경험해 본 적이 있는 무공이다. 쇄심장에 내력을 담는 것은 정통적으로 오랜 기간 수련을 통해 숙달돼야 가능하지. 한번 본다고 흉내 낼 정도의 무공이 아니지."
우리 두 사람이 서로 마주 보고 이야기하는 사이 태을진군과 탈혼수는 조금씩 멀어지고 있었다. 나는 그쪽도 궁금했다.
"하여튼 난 거짓말은 못 하는 성미이니 방금 나한테 공격한 수법의 명칭이 어떻게 되오?"
"파천수라장의 일식이다. 내가 방금 사용한 장법에는 내력을 거의 담지 않았다. 네놈의 진위를 알아보기 위해서였다."
"잠깐만 기다려 보시구려. 3023, 업로드 해줘."
나는 머릿속에 들어온 파천수라장의 일식을 떠올렸다. 정공인 쇄심장과는 전혀 상반된 기의 흐름이다. 이건 마장기를 역행해서 내야 하는 것으로 쇄심장과는 정반대의 흐름이다.
"파천수라장이라 독특하군. 쇄심장의 흐름과는 정반대의 흐름이라 상당히 까다로운 무공이오."
그 소리를 들은 혁련광의 얼굴에 처음으로 놀라는 빛이 떠올랐다. 내가 한 소리가 정확히 파천수라장의 요점을 꿰뚫은 소리였다.
"설마 내 앞에서 파천수라장을 흉내 낸다고는 하지 않겠지?"
"설마요. 그럼 갑니다."
나는 장심을 가슴 앞으로 당겼다가 힘차게 밀었다. 순간 혁련광의 얼굴에 당혹한 기색이 일었다.
"윽!"
지독하게 묵직한 암경이 내 팔을 타고 들어왔다. 내가 파천수라장을 날리자 혁련광도 파천수라장으로 맞받아친 것이다.
"정말이구나. 네놈 한번 본 무공을 정말 흉내 낸다는 것이냐? 그럼 이것은 어떻냐?"
혁령광은 이번에는 알게 모르게 재빠른 기술로 손가락을 퉁겼는데 정말 총알같이 뭔가 날아왔다. 언노운이 즉시 리엑티브 펄스 쉴드를 쳤다.
'탕' 소리와 함께 쉴드 전체가 흔들릴 정도의 충격이 전해졌다.
"이놈 이것은 무공이 아니구나. 화룡도의 불길도 이것으로 막았더냐? 그것은 어떤 보패냐? 태을진군과 어떤 사이냐?"
"아니 이곳 사람들은 제멋대로 오해를 하는 것이 특기요? 오늘 두 사람을 처음 본 것이외다. 또 나를 천문파의 인간들처럼 천마라고 몰 듯이 몰지 마시구려. 그리고 이건 보패가 아니고 당신에게 설명해 줘도 알아듣지 못할 거요. 그리고 방금 날린 것은 무엇이라 하오?"
"혈적지라는 무공이지. 다른 것은 흉내 낸다 할지라도 감히 이 혈적지 만은 흉내 내지 못할 것이다. 이것을 익히려면 보통 수련으로는···."
천마 혁령광은 말을 하다 말고 머리를 틀었다. 내가 쏘아 보낸 혈적지가 아슬아슬하게 뺨을 스친 것이다. 그의 얼굴에 실핏줄이 잠깐 보였다가 금세 사라졌다.
그는 입을 닫았다. 진심으로 나를 바라봤다. 그는 천마다. 사대문파의 무림인이 이름만 들어도 똥오줌을 싸 갈길 정도로 대단한 악마라고 소문이 자자한 놈이다.
실제로는 그렇지 않았다. 내가 보건에 그도 그냥저냥 한 인간일 뿐이다. 단지 그 강함이 타의 추종을 불허할 뿐이지.
둘이 노가리를 까는 사이 태을진군이 탈혼수의 머리 방향을 돌리는 데 성공했다. 천마 혁련광이 내게 정신이 팔린 사이 태을진군이 탈혼수의 화를 돋우는 데 성공한 것이다.
"네놈 진짜구나."
"말했잖소. 거짓말 안 한다고 그날 천문파의 당주 셋이 나를 공격했고 그때 쇄심장과 대환장을 배웠소. 그리고 천수진인이 내게 대수인과 항마복호장을 날렸는데 그것도 배웠소. 며칠 전 만난 천수진인의 외동딸인 모영이란 아가씨에게 천수장을 배웠고 오늘 천마인 당신에게 파천수라장과 혈적지를 배운 거요."
혁령광은 나를 주시하더니 말했다.
"지금 태을진군보다 네 놈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너는 오늘 나를 만난 것이 천추의 한이 될 날이구나. 나는 네 능력을 보고 널 살려 둘 생각을 접었다."
"나도 그럴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소. 나를 살려두면 무엇을 하던 당신 계획에 방해가 될 것이 분명하다는 생각이 삭 들지 않았소?"
"정가야, 네놈이 천하에 둘도 없는 기재라는 것은 인정한다. 그래서 너는 더욱더 죽어줘야만 한다."
"정가라니 참 듣기 푸근한 소리외다."
난 다음 말을 이을 수 없었다. 태을진군과 탈혼수가 코앞까지 다가왔다.
"비록 무공을 흉내 낸다고는 하나 내력 차이가 클뿐더러 너는 결코 나를 넘지 못한다. 그 이유는 지옥에 가서 염라에게 물어보아라."
천마 혁련광이 제대로 무위를 올리자 그가 디디고 선 땅거죽이 밑으로 푹푹 꺼졌다. 정말 무시무시한 위력이다. 그 상태로 파천수라장을 때리면 상대는 조각이 날 것이다.
그래 그는 조각낼 생각을 가지고 그것도 쌍장으로 나를 후려쳤다. 그러나 천마와 나 사이에는 리엑티브 펄스 쉴드가 이미 펼쳐져 있었다. 이것은 투명한 방어막이기에 눈으로 볼 수 없으며 특히 마장기등의 기로 만들어진 방패가 아니다 보니 천하의 천마라 할지라도 눈치를 챌 수 없었다.
그가 제대로 날린 파천수라장을 견뎌낼 수 있을까? 물론이다. 이미 언노운이 계산을 끝내 놨다. 나는 그저 웃고만 있으면 그것으로 충분.
-쾅
엉청난 소음과 함께 천마는 뒤로 훨훨 날려가듯이 밀려 나갔다. 그것은 나도 언노운도 예측하지 못한 것인데 강한 힘이 부딪치면 그 힘에 비례하여 반발력이란 것이 있기 마련이다.
리엑티브 펄스 쉴드는 글자 그대로 차원 에너지에서 발행하는 고반응 펄스파로 집약된 차원 방패다. 고반응 집약체다 보니 충격을 흡수하는 것이 아니라 받은 충격 대부분을 튕겨 내는 성질이 있었다,
자신이 최대의 힘으로 날린 파천수라장의 반발력이 고스란히 전해진 것이다. 그래도 천마다 보니 즉시 충격을 해소하고 신형을 바로 잡았다.
태을진군은 하늘 위에서 탈혼수를 유도하면서 나와 천마 혁련광 사이에서 벌어지는 일련의 대결을 모두 지켜 보고 있었다.
나는 아직 변신도 하지 않았다. 언노운이 이블 폼을 권유했으나 변신하지 않고 있었다. 실제로 데빌 폼에서 어느 정도 천마의 공격을 버틸 수 있는지 알고 싶었기 때문이다.
지금 이 상태만 하더라도 언노운이 측정한 값은 거의 맥스였다. 나는 변신을 하든 무엇을 하든 경험치가 쌓이면 무제한으로 계속 능력치가 업그레이드되고 있음을 알았다.
특히 마장기를 이용할 줄 알면서 그 능력은 폭발적으로 향상되었다. 천문파의 무공을 흡수하고 사용할 때마다 경험치가 대폭으로 상승했다.
태을진군도 나를 관심 있게 보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자신도 껄끄러워하는 천마를 뒷걸음치게 했다는 것은 예삿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나는 싱글싱글하며 천마 혁련광을 바라봤다.
"이놈 정가놈아. 네놈의 정체가 무엇이냐? 어디서 그런 힘과 보패를 얻었지? 곤륜십이대선이 공동전인을 한 명 키운다고 하더니 그것이 너였더냐?"
"허, 참 아까부터 이야기했는데 또 혼자 달리시네. 난 오늘 두 분을 처음 보는 거요. 당신이 천마라는 것도 조금 전에 들었고 저기 하늘을 날아다니는 태을진군이란 사람도 오늘 처음 봤다니까! 이쪽 동네 사람들은 왜 이리 사람 말을 못 믿는 거요?"
나는 더는 말을 잊지 못했다. 태을진군이 끌고 온 탈혼수가 시뻘건 혀를 날름거리며 나를 노려봤기 때문이다.
- 작가의말
으, 제가 무얼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이거 빨리 접으려고 생각하는데 사실 구상해 놓은 것은 반밖에 오지 않았으니...
이대로 가다가는 400편도 넘을 것 같고.....
미치겠군요...
이대로 끌고 가는 거 완전 시간 낭비 같긴 한데......
와....
어찌 해야 할지...
중단 하고 튀려니 내 자신에게 지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
이 세계의 모든 비밀, 주인공의 출신 비밀. 언노운이 들어 온 비밀, 이 세계가 이렇게 된 이유, 그리고 이 세계를 변화 시키려는 주인공의 선택 등...
할 이야기가 선더미 같은데... 미친...
너무 재미 없게 써버려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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