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장판(1)
천문파에서 응원 소리가 갈수록 높아졌다. 다들 조금은 흥분한 상태인 모양이다. 그도 그럴 것이 겨우 열 번째 제자인 내가 무당 제자 서열 2위와 동등하게 대결하는 것을 보니 손에 땀이 나올 정도로 전율이 느껴진 것이다.
이 정도까지 했으면 체면치레는 충분히 한 것이다. 조금씩 뒤로 물러나자 도위량은 눈빛을 빛냈다. 이제 기회를 잡을 것으로 판단한 모양이다.
삼재검법이 더욱 매서워졌고 나는 연신 뒷걸음쳤다.
설인표는 답답하고 아쉬운 듯 의자의 팔 고리를 쳤다.
"혁이가 좀 더 다양한 무공을 배웠더라면 충분히 싸워 봄 직한데 가진 무공의 차이가 크구나."
나는 계속 뒤로 밀렸으나 검에 상처를 입고 싶지는 않았다. 검에 베이면 기분도 좋지 않고 찝찝하다.
기회를 살피다 살짝 거궐도를 손에서 놓았다. 나는 재빨리 뒤로 물러나 포권을 했다. 도위량은 급히 검을 멈추고 씨익 미소를 지었다.
"천문파 정소협의 무공이 이리 높은 줄 몰랐소. 천문파는 대단한 영웅을 두고 있구려."
천문파의 사람들은 크게 고함을 질렀다. 아마도 잘 싸웠다는 의미겠지.
나는 바닥에 떨어진 거궐도를 들어 올리고 다시 한번 갈채를 유도했다.
이 정도면 훌륭히 연극을 마친 셈이다. 설인표와 천문파의 사람들도 대단히 만족한 듯했고
설인표도 연신 칭찬 해 주었다.
"내 돌아가 당당주에게 한소리를 해야겠구나. 천문파에 돌아가면 너에게 진사진검도 가르쳐 주도록 하마. 배울 자격이 충분히 있어. 후일 천문파의 이름을 빛낼 영웅의 자질이 보이는구나. 하하"
하이고 이 양반 이렇게 좋아하는데 나중에 내 정체를 알면 까무러칠 거다. 몇 차례 경기가 더 진행되고 하백광의 차례가 돌아왔다.
학리인은 무대 위로 올라가는 하백광에게 말했다.
"전력을 다해 싸우는 것도 좋지만 상대의 흐름을 잘 읽고 그것에 맞춰 공방을 이어가도록 해라. 무작정 검만 휘두른다고 능사가 아니다."
나는 옳거니 하고 무릎을 쳤다. 학리인 사부가 내 가려운 곳을 시원하고 긁어 주었다. 물론 멍청이 하백광이 저 말의 뜻을 제대로 이해했기를 바란다.
상대의 이름이 불리자 하백광이 화들짝 놀랐다. 처음에는 그 이유를 몰랐다. 하백광이 왜 저런 난처한 표정을 짓는지.
"이놈 하백광 네 주제에 어떻게 여기까지 올라왔는지 모르겠지만 이번 판은 결코 쉽게 봐주지 않겠다."
상대는 심진기가 이끄는 석천도관의 다섯 번째 제자 진목운이다. 그의 이름을 듣는 순간 기억이 떠올랐다.
하백광이 연아사매에게는 진짜 잘 어울리는 사람이 있고 그가 진목운이다라고 말하는 것을 들은 기억이 있다.
하백광이 악마종 습격 때 목숨 걸고 유연아를 구한 일로 인해 연아가 하백광에게 관심을 보이자 눈먼 질투를 한 놈이 진목운이다.
특히 그날 그 자리에 있었으면서 마동자가 두려워 아무도 나서지 못하고 있는데 갑자기 하백광이 나타나 마동자와 싸웠고 연아사매의 잘린 팔까지 찾아 주었으니 단번에 주목을 받을 만했다.
그날 이후 하백광과 연아는 부쩍 가까워졌고 그것이 시기와 질투를 불러온다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이치다.
진목운은 대결이 시작되자마자 단번에 삼재검법으로 매몰차게 하백광을 압박했다. 처음부터 삼재검법을 시전한 것은 빠르게 하백광을 제압하여 자신의 실력은 주변인들에게 알리고 연아사매의 관심을 끌기 위한 바램에서 나온 것이다.
날카로운 검초가 눈앞에서 휙휙 지나가자 하백광은 자신도 모르게 태청검법으로 막아냈다.
삼재검법은 매번 눈으로 보아 왔지 직접 받아 보는 것은 두 번째다. 도을사제가 엉겁결에 쓴 삼재 검법 이후 두 번째라서 하백광은 학리인 사부의 말대로 서두르지 않고 차근차근 대응했다.
단번에 하백광을 제압하려 했던 진목운은 기겁을 하고 입을 쩍 벌렸다. 격검이 이루어졌는데 하백광의 검과 부딪치자 무슨 쇠기둥을 때리는 것과 같은 충격이 전해져 왔다.
멋모르고 격검했을 때 하마터면 검을 놓칠 뻔했다. 그러면 온 동네 망신살은 제대로 뻗칠 것이 분명했다. 예전의 하백광이 아니다. 녀석의 태청검법을 두려울 정도였다. 갈수록 날카롭고 빨라지는데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오히려 삼재검법을 사용한 진목운이 수세로 몰리는 형세가 됐다. 그러자 팔성도관의 제자들이 일제히 함성을 지르며 하백광을 응원했다.
그 소리에 진목운은 점점 두려움을 느꼈다. 눈앞에 가당하지도 않게 생각했던 하백광이 점점 커지기 시작하면서 거대한 벽으로 다가왔다.
전투력에서 오는 차이가 검법을 가뿐하게 씹어 먹기 시작한 것이다. 하백광의 전투력이 500줄 때에서 왔다 갔다 하고 있는데 300줄 겨우 넘어설락 말락 하는 녀석이 하백광의 검을 제대로 받아 낼 수나 있을까 싶었다.
진목운은 지금까지 세 번의 대결에서 하백광과 싸우던 사람 모두가 검을 놓쳤던 이유를 이제야 알 것 같았다. 하백광의 검은 두려울 정도로 빨라졌고 검의 완력이 한번 부딪힐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무시무시할 정도였다.
심지어 사부 심진기와 연습 대련할 때도 이런 압박감을 느껴본 적이 없을 정도였다. 보는 사람은 그런 느낌을 받기 힘들지만 직접 싸우는 당사자는 고스란히 하백광의 힘을 몸으로 체험할 수밖에 없다.
심진기의 다섯 번째 제자로 삼재검법을 연마한 진목운은 처음부터 삼재검법으로 하백광을 제압해 망신을 주려 한 자신의 계획이 수포가 되고 오히려 수세에 몰리자 눈이 뒤집히기 시작했다.
본심은 아니었다 할지라도 살심이 솟구치기 시작한 것이다. 연아사매를 빼앗긴 것도 억울한데 시합에서까지 지면 영원히 구제 불능으로 빠지게 된다.
이빨을 우두둑 소리 나게 깨문 진목운은 무식하게 오롯이 태청검법만 휘두르는 하백광을 향해 독하게 검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검에 살기가 담기자 삼재검법의 위력이 살아나기 시작했다. 태청검법은 공격 일변도의 검법이 아녀서 실제 같은 능력에서 대결하면 삼재검법이 분명 한 수 위다.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검의 변화가 더욱 심하게 일어나자 이번에는 하백광이 화들짝 놀랐다. 태청검법을 무던히 펼치던 하백광이 상대의 검이 죽일 듯이 날아들자 깜짝 놀란 것이다.
학리인 사부의 말대로 상대와 공방의 합을 맞추면서 싸우고 있었는데 그것은 잘 먹혀 들어가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상대가 죽자살자고 덤벼 오자 그 균형이 일시에 무너지기 시작한 것이다.
깜짝 놀란 하백광은 자신도 모르게 마장기를 끌어 올려 태청검법으로 맞대응했다. 검과 검이 부딪히자 진목운은 휘청했다. 하백광의 완력이 더욱 증가한 것이다. 그러나 하백광의 검은 멈추지 않고 계속 밀려 들어왔다.
"크윽"
진목운은 견디지 못하고 비명을 냅다 질렀다. 검을 든 자신의 오른팔이 싹둑 잘려 바닥에 떨어져 버렸다.
"중지. 승패가 났다."
그 소리에 하백광은 재빨리 뒤로 물러났다. 이번에는 제때 검을 잘 멈추었다고 판단했으나 바닥에 떨어진 진목운의 팔을 보며 기겁했다.
놀란 하백광이 뛰어가 팔을 주우려 하자 진목운이 고함을 질렀다.
"저리 비켜. 이제 나를 놀림감으로 만들 생각이냐?"
잘린 팔을 붙인 진목운은 얼굴이 붉으락푸르락 변하며 끓어 오르는 분노를 참지 못하고 하백광을 쏘아 봤다. 하지만 만인의 앞에서 이미 결과가 나버렸다.
특히 자리에서 일어나 손뼉을 치고 있는 연아를 볼 때 더욱 부아가 치밀어 올랐다.
돌아오는데 심진기 사부의 얼굴도 편치 않게 보였다.
"죄송합니다. 사부님."
"이놈 상대는 고작 열 번째 제자가 아니더냐? 아직 삼재검법도 익히지 못한 까마득한 후배에게 어찌 이런 추태를 보이는 것이냐?"
진목운은 부들부들 떨리는 살심을 주재하지 못했다.
"수행이 부족한 탓이렷다? 앞으로 일 년간 폐관 수련을 명하겠다."
"사, 사부님, 너무 가혹한 처사이십니다."
"닥치거라. 일 년도 부족한 모양이구나!"
진목운은 고개를 떨구고 이빨을 으드득 갈며 환호성에 휩싸인 하백광을 노려봤다. 모든 것이 저놈 때문이다.
"다섯째 저놈이 뭔데 팔이 잘릴 정도더냐?"
"풍영형 저놈 뭔가 이상합니다. 검의 압박이 무지막지했습니다. 이제껏 바보라고 놀림을 했었는데 저놈 뭔가 숨기고 있는 것이 분명합니다. 아니면 학리인 사부께서 몰래 감춰 두고 수행을 시켰을지도 모릅니다."
"허, 무엇 때문에 학리인 사부께서 그러한 일을 한단 말인가? 제자를 숨겨놓고 가르칠 이유가 없지 않은가? 운아우가 삼재검법까지 사용했는데 백광의 태청검법을 꺾지 못했다는 것은 그의 마장기가 운아우보다 강하다고 봐야 하지 않을까?"
"음, 하백광이 얼마 전까지 소청검법도 제대로 구사하지 못하는 반병신 같은 놈이었습니다. 그런데 그의 태청검법을 보십시오. 수십 년간 수련한 자보다 더욱 강하게 펼치고 있으니 저놈 지금까지 본심을 숨기고 있었던 것이 분명합니다. 학리인 사부께서 팔성도관의 위명을 높이려 숨겨놓은 제자가 분명합니다. 그렇지 않다면 제가 이렇게 당할 리가 없겠지요."
"운아우 부탁 하나 함세. 자네 대결자를 뽑는 자에게 다음 차례로 나와 하백광을 붙이도록 언질을 해 놓겠나. 내가 직접 운아우의 분함을 풀어 주고 놈을 제대로 망신 주겠네."
진목운의 눈에서 불똥이 튀었다.
"풍영사제가 그리 해 주신다면 감사합니다. 당장 조치하겠습니다. 꼭 하백광에게 먼지를 뒤집어씌워 주십시오."
두 사람의 대화를 듣고 있던 심진기는 아무런 제재를 하지 않았다. 그렇지 않아도 하백광 때문에 마음이 언짢은 터였다. 둘째의 열 번째 제자에게 자신의 다섯째 제자가 팔이 잘렸으니 기분 좋을 리 없다.
하백광은 입이 헤벌쭉 벌어졌다. 이번에는 학리인 사부로부터 칭찬을 받았고 무엇보다 연아사매가 직접 일어나 손뼉까지 쳐 주었다.
몇 번의 대결이 끝나고 원래 이치대로 각 도관의 다섯째 제자 이하 중 살아남은 사람은 유일하게 하백광만 남게 되었다.
상위 제자만 남게 되었을 때는 무작위로 대상을 추첨하는데 하백광의 상대로 풍영도인이 선택됐다.
전풍이하 모든 팔성도관의 제자들은 탄성을 발했다. 하고 많은 상대 중에 하필 풍영도인이라니. 심진기의 제자 중 으뜸으로 꼽는 첫 번째 제자이며 장문 유현덕에게 직접 가르침을 받는 유일한 제자다.
학리인 사부마저 어쩔 수 없다는 듯이 고개를 흔들었다.
"풍아의 놀라운 발전이 나를 즐겁게 했구나. 너무 강한 상대를 맞이했으니 아까울 따름이다. 원 없이 싸우다 오너라."
하백광도 즐거운 마음으로 웃으며 이야기했다.
"네 사부님."
하백광도 자신이 상대할만한 상대가 아님을 직감했고 승패는 이미 난 거나 다름없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사부가 원 없이 싸우고 오라 이야기했으니 그렇게 하리라 생각했다.
드디어 하백광의 차례가 오고 이 대결은 많은 사람의 주목을 끌어냈다. 이미 승패는 결정 난 것이나 다름없지만 사람들이 기대하는 것은 풍영도인의 멋진 검술 솜씨와 어떤 검법으로 어떻게 하백광을 제압할 것인지 그것을 보는 재미가 있는 경기였다.
"풍영사형과 대결하게 되어 영광입니다."
하백광이 예를 차리며 인사를 해 오자 풍영도인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학리인 사부께서 몰래 훈련 시킨 녀석의 솜씨를 볼까?"
하백광은 고개를 꺄우뚱했다.
생각은 길게 이어지지 못했다. 풍영이 태청검법을 시전해 왔기 때문이다.
태청검법과 태청검법의 대결 진검 승부다. 같은 검법으로 대결하면 누구라도 뻔히 알 수 있을 것이다. 누구의 태청검법이 한 수 위라는 것이 금세 드러나기 때문이다.
풍영은 입이 떡 벌어졌다. 진목운이 당황하던 이유를 알았다. 하백광의 검이 보통이 아닌 정도가 아니라 자신의 팔목이 찌리 할 정도로 엄청난 힘이 느껴졌다.
뭔가 잘못되어 간다는 것을 느꼈다. 그는 사실 속으로 하백광 따위에게 팔이 잘린 멍청한 진목운을 비웃었다.
하백광의 검을 받아 보니 장난이 아님을 깨달았다. 진목운의 팔이 잘린 것은 하백광의 운이 아니라 실력이었음을 비로소 깨달을 수 있었다.
"우! 풍영사형의 태청검법이 뒤로 밀린다."
"이럴 수가!"
구경하는 사람들의 엉덩이가 들쑥 들쑥 들린다. 사람들은 완전히 두 사람의 대결에 혼을 빼앗겨 버릴 정도로 빠져들어 갔다.
전풍은 두 주먹을 마주 잡고 힘을 주고 있으나 그의 머리로서는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았다.
사람이 달라져도 하루아침에 어떻게 이렇게 달라 질 수가 있는 것일까? 하백광이 누구던가? 늘 자신과 함께 굳은 비난을 얻어먹고 다니는 막내가 아니던가?
소청검법조차 완성 시키지 못해 사형들과 연습도 같이 못 하는 신세이지 않았던가? 그런 그가 저토록 아름다운 태청검법을 펼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
다급해진 쪽은 풍영이었다.
학리인 사부가 한 그 한마디 말이 가장 충격적인 상황을 몰고 왔다.
'원 없이 싸우고 오너라.'
이 한마디에 심취한 하백광은 승패를 초월해 있는 힘 없는 힘 모조리 뽑아 올려 검을 휘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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