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치 작업 중
정아가 한 손을 들어 올리자 좡허시 안에서 수만 마리의 악마종이 일제히 쏟아져 나왔다. 하늘 위에서 보니 개미들이 쏟아져 나오는 것처럼 보였다.
새까맣게 쏟아져 나오는 악마종 무리는 접근하고 있는 녹림의 무리와 충돌했다. 금세 난전이 벌어지고 삼만의 녹림 무리는 악마종과 뒤엉켜 처절한 혈투를 벌였다. 상대적으로 녹림 무리가 전투력은 월등하다.
대신 악마종은 죽음의 공포감이 아예 없는 생물이다. 오직 살육에 대한 요구만 존재하는 놈이다. 한 마디로 죽이라는 단순한 명령어만 들어가 있는 기계와 같은 놈들이다.
녹림 무리가 악마종을 대한 적은 거의 없다. 악마종은 중국의 서쪽에 분포하고 있고 녹림 무리가 장악하고 있는 동쪽 지역의 몬스터는 대부분 하위종이다. 그러니 악마종을 한 번도 보지 못한 사람이 대부분이다.
갑작스러운 요괴의 공격에 적잖이 당황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것도 그걸 것이 지금까지 상대해 본 요괴 중 가장 강했으니까. 그래도 악마종은 마인급의 전투력을 가졌다. 특히 레더 스컬의 압도적인 네 개의 팔은 면도날과 같은 날카로움과 송곳 같은 뾰족함을 지녔다.
무엇보다 악마종은 식육을 즐긴다. 녀석들의 이빨과 입은 사람의 살점을 물어뜯기에 최적화되어 있다. 놈들은 신체가 잘리고 목이 잘려도 물고 있는 것은 절대 놓지 않는다.
악마종의 경험이 거의 없는 녹림 무리는 혼란에 빠지기 시작했다. 녀석들이 머릿수로 밀어붙이면 우리도 머릿수로 대응하면 된다.
악마종은 어림잡아도 사오만은 될 것이다. 녹림 삼만과 완전히 뒤섞인 악마종은 지독한 광기를 뿜어냈다.
이제 시작일 뿐이다. 정아가 다시 한 손을 흔들자 수천에 해당하는 아크 데몬이 일제히 쏟아져 나왔다. 일천의 정예는 모두 아가문드를 손에 쥔 헌터 마인이 변한 노련한 사냥꾼들이다.
그들은 막힘 없이 녹림의 무리를 베어 넘기기 시작했다. 정아는 뒤를 돌아보며 고함쳤다.
"애들아 마음 놓고 싸워라. 너희들 실력을 보여줘."
"으와와"
"와!"
이천의 정크 보이들이 각자 무기를 손에 들고 달려 나왔다. 그들은 제운종을 펼치며 일제히 날아 올랐다. 장관이 아닐 수 없었다. 내가 보는 장면은 실시간으로 네크로폴리탄과 이모탈 시티 길드장에 중계되고 있다.
정크 보이들은 악마종을 상대하느라 정신없는 녹림 무리를 급습했다. 막싸움에는 역시 애들이다. 두려움이 없이 명령받은 것만 따르는 이 녀석들도 기계와 같은 애들이다. 내가 만든 아크 데몬은 죽음의 공포 따위는 애초에 없는 살인귀들이다.
인간이 이런 대규모 전투를 맞닥뜨리면 가장 먼저 죽음의 공포를 느끼고 온몸이 수축한다. 두려움이란 인간의 감정 중 하나고 그것은 이런 전장에서는 가장 필요 없는 감정의 축이다.
내게 종속된 아크 데몬은 감정이 거의 없고 오로지 명령을 완수한다는 사명감밖에 없다. 마인들끼리의 싸움은 매우 처절하고 지독하다. 숨통을 끊어 놓기 위해서는 검을 베거나 찌르거나 따위를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목을 잘라놓거나 뇌를 부수거나 심장을 짓이겨 놓아야 상대의 숨통을 끊어 놓을 수 있다. 그러니 그 잔인함이 상상을 초월한다. 팔다리 한쪽씩 잘라 봐야 소용없다. 상대에게 확실한 죽음을 선고하기 위해서는 보다 잔인해 져야 한다.
감정의 기복이 심한 자들은 손을 망설이게 마련이다. 인간을 이렇게 잔인하게 무참히 도륙 낸 적은 없기 때문이다. 중국놈들이 우리 땅에 들어와서 무엇을 저지를지 대부분 알고 있는 상태다.
손에 사정이 있을 수 없고 종속된 상태에서 명령 수행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장면이 벌어졌다. 장력으로 상대의 머리통을 날리는 애들은 거침이 없었다. 온몸에 뇌수가 튀어도 손을 멈추지 않았다.
지독한 살육의 광기가 모두를 휘감았다. 우리를 침공하려 한다는 것에 대한 분노가 어떤 것인지 주입해 놓았다. 아무리 종속되었다 해도 싸우는 동기와 의미를 부여해야 했다.
과거 오랜 역사를 통해 중국의 침입을 받아 왔고 용감히 맞서 싸웠고 훌륭히 퇴치했다. 고대 역사서를 통해 알 수 있듯 우린 이 민족과 수천 년에 걸쳐 치고받고 싸워 왔었다. 그러나 단 한 번도 중국이 우리를 점령한 사례는 없었다.
세상이 이렇게 변해도 중국놈들은 여전히 우리를 침공하려 했고 우리 또한 그에 맞서 싸운다.
나는 이미 이번 싸움에 큰 그림을 그려 놓았고 필승도 확신했다. 그들은 과학을 버린 대가를 충분히 맛보고 있다. 셈텍스를 이용한 장거리 순간 이동 기술은 전황을 우리 쪽으로 유리하게 만드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놈들이 마장기로 중국을 무협 세계로 만들이었지만 우리는 꾸준히 과학을 발전시켰다. 과학의 힘은 마장기 따위로는 넘보지 못할 엄청난 위력이 있다.
이 모든 것이 셈텍스가 있었기에 가능한 전법이었다. 흰둥이가 이리저리 뛰며 녹림 무리를 짓밟았다. 하늘 위에서 보니 하얀 덩치의 큰 개가 광분하여 돌아다니는 것을 보니 기도 안 찬다. 지금 흰둥이의 전투력은 멸살급 데빌인 탈혼수에 조금 못 미치는 정도다.
내 피를 마셨고 주인의 성장에 따라 같이 성장하는 기이한 보패의 능력 때문에 흰둥이의 전투력은 계속 증가하고 있는 상태다. 옆에서 정아는 아가문드를 휘두르며 녹림 무리를 도륙 내고 있었다.
이놈들 그 와중에 정아가 여자라고 정아에게 달려드는 놈이 수도 없다. 이것들은 큰 실수 하는 게 놈들은 정아의 성격을 전혀 모른다는 것이다. 솔직히 남자에게 지기 싫어하는 것도 있고 남자 보기를 벌레 같이 여기는 성격도 있어 나와 장인어른을 제외하면 남자는 거들떠 보지도 않는다. 그런 그녀가 내게 완전히 빠져 버린 것은 지금 생각해도 아이러니한 일이다.
나와 같은 침대에 눕기 전까지 남자 손 한 번 안 잡아 봤다는 그녀일 정도이니. 나는 공중에 떠서 이런 잡생각을 할 정도로 전황은 일방적이었다.
중간쯤에서 강희찬과 이현희가 늘어선 녹림 무리가 선두조에 합류하는 것을 저지하기 위해 치열하게 싸우고 있고 후미에서는 탈혼수와 혁련광이 치고 올라온다.
그리고 도망가거나 새는 녀석들은 최우신 팀과 오백의 정크 보이들이 소탕하며 후미에 따라붙는다. 계획은 완벽했고 또 생각대로 실현되었다.
슬슬 악마종의 숫자도 빠르게 줄어들고 있었다. 역시 녹림의 무림인은 무림인이다. 악마종을 도살하는데 슬슬 피치를 올리는 모양이다. 그리고 후미에서 행군하고 있던 만 명의 녹림 무리가 선두에 합류하기 시작했다.
전투는 생각보다 난전이었다. 어설픈 공격으로 상대를 완전히 죽일 수 없다. 사지를 자를 필요 없이 머리통이나 심장을 박살 내야 한다. 그것은 매우 힘겨운 작업이다. 아무리 높은 전투력을 가지고 있어도 한 놈을 완전히 죽이는데 상당한 시간과 공이 든다.
정크 보이들은 이런 작업을 한 적이 거의 없어 북쪽에서 악마종을 상대로 많은 연습을 했다. 그래서 그나마 이런 전투를 벌일 수 있다. 녹림 무리는 약삭빠르다. 경공을 이용해 재빨리 움직이면서 그 틈에 검을 펼쳐 낸다.
무공이 달리 무공이 아니다. 그리고 오랜 경험에서 오는 기법은 아크 데몬인 정크 보이를 상대할 만큼 대단한 위용을 보인다. 악마종의 수도 빠르게 줄어들고 있다. 지금은 우리가 완전히 승기를 잡고 살육을 벌이고 있지만, 후미의 녹림 무리가 빠르게 합류하고 있다.
이들은 전투 소식을 듣고 경공을 펼쳐 전장에 속속 합류했다.
"3023, 대충 손해 안 보는 선에서 우리도 도움을 줘야 하지 않겠나? 뒤쪽부터 그래비티 포스로 누르자. 인당 적당히 10G 정도면 될 것 같군."
【대규모 범위 안에 그래비티 포스를 사용하시면 에테르의 소비가 큽니다. 시행하시겠습니까?】
"어쩔 수 없잖아. 구경만 하고 있을 수만은 없지? 마누라랑 애들이 목숨 걸고 피 튀기며 싸우는데 에테르 걱정해야겠어? 그냥 눌러 버려."
삼만의 녹림 무리 머리 위로 그라피티 포스 즉 가학 중력이 쏟아졌다. 인간이 받는 중력을 1로 쳤을 때 70kg의 몸무게가 순식간에 700kg으로 늘어난다. 이것은 그냥 움직이지 말라는 것이다.
하지만 에테르의 한계가 있고 그래비티 포스의 한계도 있었기에 모두 다 누른다는 것은 힘들고 뒤쪽에서 몰려드는 놈들을 향해 그래비티 포스를 발동했다.
"우왁."
"크, 뭐, 뭐냐?"
발이 모래사장으로 푹 박혀 들어가는 놈들이 비명을 내질렀다. 머리 위에서 거대한 바위가 짓누르는 느낌을 받은 것이다.
"으악"
"크아악."
악마종들이 이것을 놓칠 리 만무하다. 번개같이 덤벼들어 살을 찢고 이빨을 박아 넣었다.
"어래?"
나는 에테르가 빠르게 줄어가는 것을 느꼈다. 악마종이 달라붙으니 놈들에게도 그래비티 포스가 발동되어 버린 것이다.
"이러면 안 좋은데? 할 수 없지. 그럼 다른 방법으로 가야겠다."
그래비티 포스를 풀고 ITB에서 번천인을 꺼내 들었다. 하늘 위에서 번천인을 떨어 뜨리면 주변이 초토화되기 때문에 후미 쪽에 합류하는 녹림 패거리 위로 떨어뜨렸다. 번천인은 웃기는 게 도장 찍듯이 꾹꾹 내려찍으면 푸른 번개 줄기가 바닥으로 내리 꽂히는 원리다.
풍신화와 번천인의 조합이 매우 좋아 공중에서 내리꽂히는 푸른 번개를 피할 수가 없다. 또 범위 공격이라 번개가 내려꽂히는 반경 30m 안에 들어 있는 놈은 새까맣게 거슬려 버린다.
놈들의 무리 속에서 아크 데몬으로 변신하는 놈들이 속출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명령받기로는 네크로폴리탄에 돌입하기 전에 구전환단을 먹고 돌격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하지만 지금 받는 공격은 보통 공격이 아니다. 머리에 뿔을 단 괴물 같은 놈들이 요괴와 함께 공격해 오니 녹림 무리는 제정신이 아니었다.
손에 든 구전환단을 내려다보고 있는 놈은 쟝수성의 채주 도천지였다. 오명위의 명을 받아 녹림 최선두를 이끄는 채주였다.
"이런 일은 보고 받은 적도 없다. 도대체 어디서 나타난 놈들인가? 녀석들의 복장을 보니 중원인은 아닌 것 같은데? 설마 우리가 침공하려는 이국의 사람들인가?"
곳곳에서 울려 퍼지는 비명은 대부분 녹림의 사람들이 지르는 비명이었다.
"뭔가 잘못되어도 한 참 잘못됐어. 방주는 도대체 이 사실을 알고 우리를 침공하러 보낸 것인가?"
하늘에서 푸른 번개 줄기가 연신 떨어지며 폭발음이 사방을 진동시켰다. 도천지는 손에 쥔 구전환단을 움켜쥐었다가 고개를 흔들고는 입에 털어 넣었다.
그리고 온몸을 거꾸로 뒤집어 버리는 엄청난 고통을 느꼈다.
"으아아."
도천지 주위로 악마종이 몰려들어 이빨을 박아 댔다. 도천지는 초인과 같은 힘을 발휘해 장력으로 세슬로이드의 머리통을 날려 버렸다.
"크으,"
지독한 고통을 느끼고 몸을 가눌 수 없었지만, 고통에만 매달려 있기도 뭣했다. 괴물 같은 인간 한 명이 자신을 향해 득달같이 달려들었다.
도천지는 이를 악물고 뒤로 신형을 날려 공격을 피해냈다. 그러나 아크 데몬으로 변한 정크 보이의 속도는 재앙급 데빌을 훨씬 웃도는 스피드였다. 거기다 제운종이라는 무당의 경공을 펼치니 도위명은 순식간에 따라 잡혔다.
헛바람을 집어삼킨 그는 자신의 주특기인 배산도해의 장법으로 달려드는 아크 데몬을 후려쳤다.
'퍽' 소리와 함께 튕겨 나간 아크 데몬은 다른 녹림 무리 속으로 휩싸여 떨어져 나갔다.
"크으"
내장이 다 녹아내리는 기분이 들었다. 그러나 점점 단전에서 알 수 없는 힘이 솟아오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관자놀이가 매우 가려워서 긁었는데 손가락에 무언가 걸렸다.
뿔이 솟아오르고 있었다. 조금 뒤 고통은 서서히 가라앉고 온몸에서 엄청난 힘이 뿜어져 나오왔다.
"후, 이것이 구전환단의 힘인가? 이제 놈들과 동등하게 싸울 수 있겠다."
"동등은 개뿔. 네 놈이 이곳의 두목이냐?"
완전히 변신한 도천지의 앞으로 뛰어내린 사람은 박정아였다.
"이런 계집년이? 네년은 중국인이 아니지?"
"그렇다. 네놈같이 더러운 종자들과는 차원이 다른 격을 가진 사람이지."
"쓰레기 노예국 출신이 감히 내 앞에서 주둥이 놀리다니 다시는 그 입을 놀리지 못하게 혀를 뽑아 주마."
박정아의 아미가 꿈틀했다. 그녀는 뿔에 거치적거리는 머리칼을 움켜잡더니 뒤로 넘겼다.
"제길 그 뿔은 더럽게 못생겼군. 추악한 자식."
도천지는 경공을 펼치고 박정아를 향해 날아들었다. 쟝수성을 다스리는 녹림 네 명의 채주 중 한 명이며 녹림방 서열 삼위에 이를 정도로 막강한 무공을 가진 자였다.
그러나 마장기가 모이지 않았다. 마장기는커녕 경공도 전개되지 않았다. 완력은 엄청난 것을 느낄 수 있고 단전에서 알 수 없는 힘이 치솟는 것은 분명한데 마장기가 전혀 모이지 않았다.
다만 아크 데몬의 가진 엄청난 스피드 덕분에 경공에 못지않은 속력은 냈다. 그러나 상대는 자신보다 전투력도 월등하고 마장기에 무공까지 겸비한 고수란 것을 도천지는 깨닫지 못했다.
속도를 내며 날아오는 도천지를 향해 정아는 대수인을 날렸다. 갑자기 변한 몸 때문에 제어를 할 수 없었고 마장기도 모이지 않으니 방어도 할 수 없었다.
-퍽
"크윽, 대수인!"
도천지는 원래 천문파의 제자였다가 자신의 제자를 강간하고 도망쳐 녹림에 투신한 전력이 있는 놈이었다. 그러니 천수진인의 대수인을 알아본 것이다.
"네년이 어떻게 천수진인의 대수인을 사용하는 것이냐?"
"천수진인의 대수인은 나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 사용하는 것이야. 새삼스럽게 뭘 놀라나?"
"이국의 년이 어떻게 우리말을 유창하게 하지 너희들의 정체는 무엇이냐?"
"먼저 가 있는 놈에게 물어봐 귀찮게 하지 말고."
박정아는 일직선으로 쏘아 들어왔다.
"제운종?"
역시 명문정파 출신인 도천지는 박정아가 사용하는 경공을 알아보았다.
그리고 박정아의 손에 들린 아가문드가 기이한 궤적을 그리며 날아들었다. 무엇보다 놀라운 것은 그녀의 스피드다 구전환단으로 아크 데몬으로 변한 도천지가 눈으로 좇기도 버거울 정도의 속도였다.
그녀의 손에서 펼쳐지고 있는 것은 삼재검법이었다.
"이런 제기랄."
도천지는 자신의 주특기인 배산도해를 펼쳐 내려 손을 내밀었으나 마장기가 모이지 않아 빈손만 내민 꼴이 되어 버렸다.
"앗, 그만, 살···."
하늘 위로 붕 떠오른 머리통을 박정아는 축구공 차듯이 걷어차며 침을 탁 뱉었다.
"애들아 속도가 느리다. 빠르게 밀어붙여라. 다들 오늘 저녁 편히 먹자."
그녀의 고함에 화답하듯 정크 보이들은 괴성을 지르며 날뛰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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