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 침공
스스로 함정에 빠진 것이다. 내가 두려워 길게 늘어져 오던 녹림 무리는 머릿수의 이점을 전혀 살리지 못한 결과를 초래했다.
그들은 우리의 과학력을 전혀 알지 못했다. 셈텍스로 순간 이동할 수 있는 그런 능력을 전혀 계산에 넣지 않았다. 마장기도 무공도 모르는 열등한 종족이라고 생각했을 뿐이다.
그러한 이미지를 심어 넣은 것은 금군 오명위이다. 그는 스스로 열등한 민족이라고 우리를 지칭하며 약탈과 방화를 저질러도 문제 될 것이 없으며 여자는 너희들의 차지다고 녹림의 무리를 부추겼다.
오랜 세월 명문정파와 마교의 눈치를 살피며 어깨를 움츠렸던 녹림의 무리는 마치 소풍이라도 나선 것 같은 기분으로 침략의 장정에 오른 것이다.
이 사실은 얼마 전 처리했던 저쟝성 항저우 채주 남문희의 머릿속을 헤집어 나온 정보다. 궁금한 것은 놈들이 우리 쪽 사정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는 것에 놀랐다. 마장기도 무공도 사용 할 줄 모른다는 정보는 어디서 나온 것일까?
하지만 그들은 무엇보다 큰 실수를 저지른 것은 두 가지다. 나라는 존재와 우리가 가진 과학력이다. 이 두 조합의 콤비네이션이 환상적인 결과를 끌어냈다.
칠만의 대군을 상대하기 위해 차근차근 준비했다. 네크로폴리탄 삼천의 마인 중 이천을 아크 데몬화 시켰으며 모든 마인에게 마장기 사용법과 무공을 가르쳤다.
거기다 삼천의 정크 보이까지 아크 데몬으로 각성시켰다. 비록 정크 보이가 아크 데몬으로 변한 거지만 순수 전투력은 재앙급 데빌 이상이다. 아무리 경험 많고 노련한 무림일지라도 전투력 차이는 쉽게 메울 수 없었다.
정크 보이도 경공을 펼칠 수 있고 장법을 쏘아 낼 수 있다. 비록 어설프긴 하지만 그 힘에서는 압도적인 패기를 보여주었다. 두려움 없이 기계처럼 덤벼드는 정크 보이의 모습은 서서히 공포로 다가왔다.
약은 놈들일수록 감정에 극히 치우친다. 놈들은 드디어 우리가 누군지 파악했다. 자신들이 하등 민족이라고 생각하고 침략하려 했던 바로 그 민족이라는 사실을. 자신들이 누구를 건드린 것인지 서서히 피부로 느끼기 시작했다.
최우신 팀은 다롄을 완전히 정리하고 오백의 정크 보이와 함께 녹림 무리의 후미를 쫓아서 신속히 다롄을 빠져나왔다.
후미 중간쯤에서는 탈혼수와 혁련광이 광란의 살육전을 펼쳤다. 아무리 녹림의 무리가 대단하다 해도 탈혼수에게는 어찌할 방법이 없었다. 이들도 멸살급 데빌에 대해서는 방법이 없는 모양이다.
탈혼수는 혁련광의 명령을 듣는 것은 아니다. 혁련광은 탈혼수의 천성인 살육을 마음껏 할 수 있도록 사냥감이 많은 곳으로 놈을 몰고 온 것뿐이다.
이곳과는 달리 선두조는 치열한 난전 상태였다. 더는 번천인도 사용할 수 없었다. 적과 아군이 완전히 뒤섞여 버렸기 때문이다.
한 놈이 정크 보이 심장에 검을 쑤셔 박으며 악을 써 댔다. 정크 보이는 무심한 표정으로 자신의 심장에 박힌 검을 움켜잡더니 힘으로 뽑아냈다. 놈은 마장기를 검에 올려 밀어 보지만 힘의 차이는 분명하다.
자신의 심장에 박힌 검을 뽑아낸 정크 보이는 완력으로 검을 반 토막 냈다. 놈이 기겁하며 뒤로 물러나자 재빨리 달려들어 녀석의 목을 양손으로 움켜쥐었다.
어찌나 완력이 세던지 녀석의 목은 금세 터져 나가고 척추가 으스러져 버렸다. 정크 보이는 무심히 녀석의 몸에서 머리통을 뽑아내 버렸다.
찔렀던 심장의 상처는 무섭도록 빠르게 회복되었다. 이것이 아크 데몬으로 변한 정크 보이의 전투력이다. 정크 보이들은 힘으로 무식하게 밀어붙였다. 아크 데몬을 완전히 죽여 놓기 위해서는 목을 자르거나 심장을 회복 불가능할 정도로 파괴해야 한다.
그러지 않고는 아크 데몬을 죽일 수 없다. 비명이 사방에서 울려 나오고 지옥의 아수라판이 따로 있는 게 아니었다. 녹림의 무리는 뭘 하는지 모르고 학살되어 갔다.
시간이 지나고 점점 머릿수의 이점도 사라지고 맨 선두는 일방적으로 밀리기 시작했다. 상황의 불리함을 느끼고 구전환단을 삼키는 놈도 있었지만 변신하기도 전에 대부분 때려 잡혔고 요행이 변신 했다 해도 치명적인 결함 때문에 정크 보이의 상대가 되지 않았다.
변신한 놈들은 정아에게 죽은 도천지처럼 마장기를 사용하거나 무공을 사용하려 했지만, 전혀 운기가 되지 않으니 기가 막힐 노릇이었다. 비록 신체적으로는 훨씬 막강해졌으나 갑자기 싸움 방식이 바뀌어 버리니 적응하기도 전에 사냥감이 되어버렸다.
정크 보이가 이 정도인데 일천의 헌터 마인이 변한 아크 데몬의 전투력은 무시무시했다. 진정한 살인 기계라고 봐도 무방했다. 거기다 전원이 아가문드를 장착하고 있으니 이건 천명 모두가 보패를 든 거나 마찬가지다.
던전용 무기는 아예 비벼볼 대상조차 되지 않았다. 검과 검이 부딪치면 백에 백 녹림 무리의 무기는 결딴이 났다. 싸움이 되려야 될 수가 없는 상황이다.
네 명의 채주 중 푸졘성의 강길량은 일찌감치 나에게 죽었고 쟝수성의 도천지는 정아에게 목이 잘렸고 저쟝성 남문희는 모든 정보를 내게 넘기고 뇌가 타서 죽었다. 남은 것은 산둥성 채주의 홍위뿐이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녹림의 대가리 금군 오명위는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다. 나는 근처 녹림 무리 중 가장 강한 마장기를 뿜어내는 몇몇을 처리했지만 아쉽게도 오명위는 없었다.
번천인도 사용하기 어려워지자 지상으로 내려와 반월륜과 별운검을 뽑아 들고 가장 마장기가 높은 놈들을 골라 처리했다. 그들은 녹림 오황에 못지않은 실력을 갖췄지만, 내 상대는 될 수 없었다.
일방적으로 밀리기 시작하자 그제야 놈들도 무엇이 잘못되어 감을 느꼈다. 처음에는 만만히 여겼다. 자신들은 거의 삼만에 육박하는 인원이고 상대는 기껏해야 일만도 안되는 병력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문제는 요괴에 있었다. 우리가 데리고 온 악마종은 놈들이 생각하는 하류 요괴와 수준이 달랐다. 거의 마인급에 해당하는 전투력을 가진 요괴가 사만 가까이 됐다. 이놈들이 먼저 달려들어 녹림의 무리에 혼란을 일으킨 후 우리 아크 데몬이 선두부터 차례차례 처리하기 시작했다.
아침부터 시작된 전투는 치열했다. 참혹한 지옥의 모습이 현세에 재현된 것처럼 잘린 몸뚱이와 머리통이 사방에 뒹굴었다.
"안 되겠다. 모두 후퇴하라. 저놈들 보통 사람이 아니다."
"괴물들이야. 우리는 도저히 상대가 안 돼."
녹림 무리 속에서 퇴각하려는 움직임이 보였다. 힘의 격차를 느낀 무리는 동요하기 시작했고 우리는 이것을 기회로 더욱 거세게 몰아붙였다.
"애들아. 뒤처지지 마라. 인당 못해도 열 마리 이상은 때려잡아라."
정아는 이모탈 시티 출신인 정크 보이를 지휘했다. 나는 정크 보이가 그녀의 말을 듣도록 종속의 힘으로 정크 보이들에게 명령해 놓았다.
별운검으로 세 명의 목을 동시에 허공에 띄우며 고개를 끄덕였다. 생각외였다. 언노운과 몇 번이나 전투 상황을 시뮬레이션했었다. 그리고 확실한 승기를 잡기 위해 혁련광과 탈혼수 까지 끌어들이는 초강수를 뒀다.
막상 싸움이 시작되고 보니 전투력의 차이가 정말 컸다. 그리고 심리적인 요인이 완전히 압도적이었다. 조금 전 본 정크 보이처럼 검에 심장이 뚫려도 당황하지 않고 상대를 제압하는 모습을 보았을 때 진정한 악마를 보는 것 같은 기분이 들 정도였다.
그에 비해 감정에 흔들리기 시작한 녹림 무리는 한번 흔들리자마자 사기는 바닥을 치고 희희낙락했던 분위기는 온데간데없고 절망의 표정을 짓기 시작했다.
"우리가 무얼 건드린 거야?"
"놈들은 우리가 올 줄 알고 이미 대비하고 있었는데 방주는 이 사실을 알고 있는가?"
"채주님들은 어디에 계십니까? 어서 이 사실을 알려야 합니다."
"놈들은 괴물이다. 상대가 되지 않습니다."
여기저기서 들리는 비명은 그들의 결속력이 붕괴하는 소리였다. 악마종의 수는 사만에서 이만으로 줄었지만, 녹림 무리도 그 와중에 일만이 사라졌다.
놀라운 사실은 우리 아크 데몬에서는 사망자가 거의 나오지 않았다는 것이다. 나는 전투 중에 정아가 걱정이 되어 정크 보이 몇 명에게 명령을 내려 그녀를 보호하라 했지만, 솔직히 그럴 필요는 없어 보였다.
그녀가 휘두르는 지네 발같이 칼날이 달린 아가문드 채찍은 두려운 위력을 뿜어냈다. 녹림 패거리는 물론 아군도 함부로 그녀 곁에 붙어 있기 힘든 상황이었다. 날아오는 채찍에 녹림 무리 서너 명이 검을 들어 막으려 했으나 검과 채찍이 부딪치자 검은 산산이 터져 나갔고 무시한 채찍은 그대로 녹림 무리를 헤집어 놓았다.
채찍은 검과 뼈를 동시에 박살 내며 허공에다 육편을 뿌려 댔다. 그녀의 눈동자에는 경멸감이 가득 담겨 있었다. 자신이 여자라고 덤벼드는 녹림 무리의 눈빛에서 진득한 욕정을 느낀 정아는 완전히 이성을 상실할 정도로 화가 난 상태였다.
그녀는 인정사정 볼 것 없이 눈앞에 걸리는 것은 무조건 찢어 놓았다. 그녀의 옆에서 천둥이 또한 괴력을 선보였다. 녀석은 앞발로 적을 찍어 누르고 입으로 놈의 머리를 물어 뽑아내 던져 버렸다.
천둥이의 방어력은 이미 탈혼수급에 올라 있었다. 무림인의 던전 용 무기로는 천둥이에게 상처를 입힐 수 없었다.
전세는 숫자가 적어도 승기를 잡는 것이 중요하다. 한번 승기를 잡으면 더욱 가속도가 붙는다. 네크로폴리탄의 헌터 마인들은 그동안 숨죽여 당하기만 했던 울분을 모두 터트려 냈다. 그동안 악마종의 남침에 대해 얼마나 많은 동료가 희생되었으며 하루하루 언제 죽을지 모르는 삶의 연속이었다.
이제는 그런 삶을 영원히 떨쳐 버릴 수 있었다. 악마종이 남침해 온다 한들 이제 그들을 제어할 수 있으니 죽음의 공포 속에 살아야 할 이유도 없어졌다. 이 중국놈들만 처리하면 이들에게는 새로운 삶이, 새로운 역사가 열리게 될 것이다.
그들은 모두 나를 신으로 여겼다. 그 모든 힘을 나에게서 받았고 종속이 되는 순간 나는 그들에게 신으로 숭상받게 되었다.
내가 선두에서 싸우자 나를 보호하려는 듯이 수많은 헌터 마인들이 내 주변으로 몰려들었다. 나를 향해 덤벼드는 녹림 무리가 있으면 헌터 마인이 먼저 달려들어 놈을 찢어 놓았다.
그렇게 되다 보니 오히려 마음 놓고 싸울 수도 없었다. 후미에서 아직도 녹림 무리가 들러붙고 있었다. 이들은 긴 행렬을 이루고 있으니 계속 인원이 보충되는 상황이었다.
우리는 놈들을 계속 밀어붙이는 상황이고 놈들은 뒤로 물러나면서 후미에서 행군해 오는 사람들은 어찌 된 영문인지 모른다. 단지 큰 싸움이 나고 있으니 신나게 적을 죽이겠다는 사악한 표정으로 난전에 뛰어들었다가 금세 그 표정은 절망으로 변해 갔다.
상대가 그냥 사람이 아니라 모두 천마와 같은 괴물들이었기 때문이다. 무섭게 밀기 시작했다. 도로 위에 잘린 시체 조각은 모두 녹림의 무림인뿐이다. 악마종들은 피 냄새에 이끌려 잘린 살점을 씹으며 만찬을 즐긴다.
악마종에게 악마라는 명칭이 붙은 이유는 놈들이 세상에서 가장 좋아하는 먹이가 바로 인육이기 때문이다. 악마가 달리 악마가 아니다.
보통 녹림 무리가 본 중국의 요괴는 인간을 공격하긴 하지만 식인행위는 거의 하지 않는다. 이 잔인한 모습은 우리는 늘 봐왔던 모습이라 담담하지만, 녹림 무리는 단번에 공황에 사로잡혔다.
조금 전까지 옆에서 웃고 떠들던 놈들이 통째로 요괴에게 먹히는 모습은 가위 충격으로 다가왔다. 그러나 그것에 신경 쓸 틈이 없다. 정크 보이 아크 데몬이 기계처럼 덤벼 왔기 때문이다.
"우왁."
"크아악."
산발적인 비명이 이어지며 녹림 무리는 점점 머릿수가 줄어들기 시작했다. 머릿수 이점도 사라지고 승기가 완전히 우리에게 넘어온 지금 선두는 아예 일방적인 도살이 시작됐다.
나머지 사만의 인력도 무사하지 못했다. 다롄시에서 몇천 명이 죽어 나갔고 나머지 만 명 정도는 탈혼수와 혁련광이 잡아 놓고 있고 그 위 일 만은 이현희와 일천의 정크 보이들이 그리고 강희찬과 일천의 정크 보이들도 행군 중이던 녹림 무리를 옆구리에서 급습해 치열한 난전을 벌였다.
산둥성의 채주 홍위는 날랜 경공을 펼치며 도로 위를 달렸다. 그의 등 뒤에서는 탈혼수와 혁련광이 난리를 피우고 있었다.
"저 괴물에는 상대가 되지 않으니 모두 피해라. 앞선 사람을 따르라."
공격이 통하지 않자 탈혼수를 버리고 경공을 펼쳐 앞으로 내달렸다. 혁련광은 휘파람을 불며 탈혼수를 움직였다. 탈혼수의 이동 속력도 장난이 아니다. 거대한 체구는 한 번 움직일 때마다 수십 미터씩 앞으로 나아갔다.
채주 홍위는 얼마 가지 않아 앞에서 큰 전투가 벌어지고 있음을 알았다. 행군하는 무리를 습격한 이현희 팀이 녹림 무리와 치열한 사투를 벌였다. 그녀는 한 마리 사신에 버금가는 무위를 뿜어냈다.
"저건 오구검! 저년은 누구냐?"
채주 홍위는 그녀가 사용하는 검이 보패 오구검인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홍위? 찾았다. 산둥성의 채주 홍위구나!"
"네놈은 누군데 나를 아는 것이냐?"
"예전 무당 출신인 하백광이란 사람이오."
"무당? 네놈들은 명문정파의 사람들이냐?"
"미안하게 됐소만 그것은 먼저 간 사람들에게 물어보시오."
하백광은 짤막하게 대답하고 제운종을 펼쳐 일검을 찔러 왔다.
홍휘는 하백광의 머리에 솟은 뿔을 보고 얼굴을 찡그렸다.
"명문정파의 사람이 언제 천마와 결탁을···."
그의 말을 더는 이어지지 못했다. 하백광의 검이 묘한 변화를 일으킨 것이다.
"그, 그것은 현천검법! 무당 장문인만 알고 있다는 그 검법을 어찌 네가?"
홍휘는 다급히 검을 펼쳐 막아 내려 했으나 하백광이 들고 있는 검 자체가 이미 보패인 목청검이었다.
"아욱!"
명색이 녹림방 서열 2위에 해당하는 무공을 지닌 홍휘였지만 이상한 비명을 지를 수밖에 없었다. 목청검의 검기가 자신의 허리 사이를 지나가 버렸고 상하 반신이 분리된 채 바닥을 뒹굴었다.
"으, 어떻게 이런 일이."
검의 속도가 일반 무림인이 휘두르는 속도와 아예 차원이 달랐다. 검이 움직이는 속도가 자신이 눈 껌벅이는 속도보다 빨랐다. 막고 피하는 것은 꿈도 꿀 수 없는 속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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