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로(1)
'어? 레서 데몬 치고 전투력이 높아 350이네.'
후쿠쿠마라고 하는 것을 보니 곰이 변한 레서 데몬류 같은데 상당한 마릿수다. 이들은 평균 전투력 280줄 정도인데 어떻게 싸울지.
갑자기 진형이 변한다. 이들은 잽싸게 이인 일조로 두 사람씩 짝을 이루더니 후쿠쿠마와 맞섰다. 오래전부터 이런 몬스터와 진중히 싸워 왔을 것이고 나름의 노하우를 터득했을 터.
후쿠쿠마가 공격해 오면 한 사람은 방어, 한사람은 대기하고 있다 공격하는 방식을 취한다. 역시 생각대로 후쿠쿠마의 무식한 공격성을 적절히 이용한 훌륭한 공방이다.
다 경험치에서 오는 것이겠지. 후쿠쿠마의 움직임을 보니 공경성향만 가득 찬 정신 나간 몬스터다. 지독한 공격성향 때문에 앞뒤 안 가리고 막무가내로 덤벼드는 스타일.
전투력은 높으나 개연성이 없는 막무가내 돌격이다. 놈이 휘두르는 앞발만 커버하면 빈틈투성이. 한 사람이 방어에 집중하고 나머지는 공격에 몰방한다.
검은 후쿠쿠마의 질긴 가죽을 충분히 헤집어 놓는다. 여기저기서 괴성이 울린다. 고통과 괴로움의 울부짖음이 사방으로 퍼진다.
내게는 와타나베가 붙어 있었다. 와타나베는 네게 등을 보이고 묻는다.
"류스케사마, 공을 선택하시겠습니까? 방을 선택하시겠습니까?"
와타나베와 바로 앞 후쿠쿠마를 보니 와타나베의 덩치의 딱 두 배에 달할 정도다. 후쿠쿠마 앞에서 와타나베는 아이처럼 보였다.
내 앞을 막아서고 있는 것을 보니 후쿠쿠마 정도는 충분히 자신 있다는 패기인지 아니면 진짜 내가 걱정되어서 그런 것인지 헷갈린다. 물론 후자일 경우는 없겠지만.
그사이 후쿠쿠마 서너 마리가 근처로 왔다. 나는 와타나베의 어깨 위에 손을 올려놓고 말했다.
"공방을 나눌 필요 있습니까? 혼자서 충분합니다."
이런 하급 몬스터는 오랜만에 상대한다. 나는 마인과 같은 데빌폼 일 때는 전투력 600줄이다. 별운검에 마장기를 올렸다. 김해 던전을 돌 때 기분이 난다.
그때는 몬스터 한 마리 한 마리 신중을 기해 잡았을 때다. 무사시의 이도류를 폼나게 휘두르던 그때의 기분이 되었다.
한동안 사용하지 않았던 스페이스 커터. 당시는 조금만 각도가 틀어져도 허공을 치곤 했었는데 지금은 보정할 필요도 없이 내가 원하는 장소를 베어낼 수 있을 것 같았다.
검을 당겨 턱 밑까지 끌어 올렸고 검은 허공을 향해 네 번 교차하며 휘둘러졌다. 달려오는 후쿠쿠마의 동선을 고려해 정확히 스페이스 커터를 날렸다.
네 마리의 후쿠쿠마가 동강나서 무너져 내렸다. 진득한 피 냄새. 난 완전한 네필림이다. 고로 내 몸의 반은 정확히 악마 성향을 가졌다.
이 악마 성향 때문에 악마종들이 내 명령에 복종하는 것이고 내가 만든 아크 데몬에 복종하는 것이다.
두 사람이 한 조가 되어 효과적으로 후쿠쿠마를 상대하고 있다고는 하나 마릿수가 마릿수 인지 상처 입는 사람도 하나둘 늘어나고 후쿠쿠마는 더욱더 포악해 지고 있다.
뭐 딱히 도와주는 것은 아니고 그냥 심심풀이 몸풀기 정도라고 생각하고 움직여야겠다. 나는 후다닥 달려나가며 인정사정 볼 것 없이 검을 휘둘렀다.
후쿠쿠마 무리의 뒷자락이 나올 때까지 근 100m 미터는 달렸는가 보다. 거의 0.2초마다 한 번씩 스페이스 커터를 날렸는데 100m를 달리면서 수백 번 칼질했다. 마지막 무리 뒤로 나왔을 때 그제야 지나온 곳의 후쿠쿠마들이 와르르 무너져 내렸다.
간에 기별도 안 가는. 전투력 차이가 심하다 보니 식전 운동도 되지 않을 정도다. 별운검에 담았던 마장기를 내렸다. 이 정도면 이미 전투는 끝났다고 봐야 하겠지.
베니마루 일행들은 나머지 하쿠쿠마를 처리하고 주변을 살폈다. 내가 도륙한 후쿠쿠마를 보고 모두 놀라워하는 눈치다.
와타나베가 가장 먼저 내 곁으로 뛰어 왔다. 그는 경외의 눈빛으로 나를 보더니 고개를 숙여 보였다.
"정말 대단하십니다. 소문의 무장을 만나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소문의 무장? 그건 또 무슨 말입니까?"
"아닙니다. 헤헤, 제가 주책없이 나섰군요."
내 주변으로 사람들이 모두 뛰어왔다.
"대단하신 검법입니다."
"놀랍습니다. 도대체 어디서 오신 분이신지?"
"겐마님의 측근인 것이 분명한 것 같습니다."
히로시는 내게 고맙다는 표현을 하며 말했다.
"어떤 연유로 저희를 도와주시는 것인지 모르겠습니다만, 혹시 마카다마를 원하시는 겁니까?"
"아니오. 신켄에는 관심 없습니다."
"하긴, 신켄을 원하신다면 벌써 저희를 베었겠지요."
"도쿄에 가고 싶은데 괜한 시간을 허비할까 하여 나선 것뿐입니다."
풍신화로 도쿄에 후딱 날아가도 되지만 도쿄에서 네필림을 금방 찾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이들과 함께 함으로써 적을 두면 편하게 이들 무리와 접촉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살짝 도와준 것은 그런 이유에서다.
이들 사회에 쉽게 접촉하는 방법은 이런 식이 제일 좋다. 마인이라 힐링 팩터 또한 완벽하게 작동한다. 다친 사람들은 쉽게 상처를 치료했다.
"류스케사마가 아니었다면 꽤 고생했을 겁니다.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갈 길이 뭐니 서두릅시다."
시즈오카시에 도착하니 날이 어두워져 갔다. 날이 어두워도 마인의 시력은 상당히 밝다. 도시는 빛 하나 없는 어둠이 내려앉아 있지만, 달빛만으로도 불편 없이 움직일 수 있다.
"쉬어 가고 싶으나 워낙 중요한 물건을 가지고 있기에 보다 빨리 복귀하는 것이 여러모로 좋을 것 같습니다."
"그러는 편이 좋을 것 같습니다."
시즈오카시를 가로질러 달렸다. 나는 이어링에 잡힌 또 다른 마인의 위치를 살피고 약간 의구심이 뻗치기 시작했다.
지금 한 무리의 마인이 정확히 우리 쪽으로 접근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 움직임에 따라 같이 따라 움직이는 것을 보니 우리 위치를 정확히 파악하고 움직이는 것이다.
뭔가 수상쩍은 느낌이 든다. 선두의 히로스에게 따라붙었다.
"아자키를 잡기 위해 나온 사람들은 당신들이 전부입니까?"
"그렇습니다."
"도쿄 외에 무사들이 따로 이곳까지 오는 일이 많습니까?"
"음, 전문적인 수집꾼들이라면···. 그들은 일본 전역의 도시를 돌며 쓸만한 물건을 챙겨 옵니다. 도시마다 수집꾼들이 있습니다."
"그럼 시즈오카시에도 수집꾼이 있는 모양이죠?"
"아마도 그럴 겁니다. 그들은 전국 도시를 뒤져 쓸만한 물건을 도쿄로 가져오죠."
"아자키의 일은 다 알려졌습니까?"
"그럼요. 베니마루가 완전히 뒤집혔습니다. 천황의 물건을 손댄 것만도 중죄인데 그걸 훔쳐 달아났으니 한 손 잘리는 것으로 끝나진 않을 겁니다. 신몬님이 대단히 화가 나셨으니 참수 명령을 내릴 수도 있습니다."
"그럼 마카다마의 도난 사실이 알려졌을 거고 그것이 얼마나 중요한 물건인지 알려진 이상 이번은 좋은 기회가 아닐까요?"
"맞습니다. 마카다마를 노리는 놈들이 없다고는 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쉬지 않고 달리는 겁니다. 신몬님에게 마카다마를 전해드릴 때까지 절대 안심할 수 없는 상황입니다."
"음, 이걸 노리는 놈들이 이미 시즈오카에서 기다리고 있는 것 같습니다. 우리가 나타나자 놈들이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뭐라고요? 어떻게 그 사실을 알고 계십니까?"
"제가 가진 특별한 능력이라고 말해 두지요. 이대로 계속 가면 놈들이 우리를 포위 할 겁니다."
히로시는 손을 들고 신호를 보내 일행을 멈춰 세웠다.
"무슨 일인가 히로시?"
세모턱의 야마다가 달려오며 외쳤다.
"누군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것 같아."
"그래? 설마 마카다마를?"
"그럴 확률이 높아. 모두 모여 진형을 짜."
우리가 멈춰 서자 그들도 멈췄다. 놈들은 어떻게 우리 위치를 정확히 알고 있는 걸까?
'3023, 우리 쪽 인원 모두 검색해 봐, 뭔가 나올 것 같은데?'
【검색합니다. 검색 소요 시간 3분 28초】
"정말 누가 있다는 것 맞아? 이런 깜깜한 밤에 아무런 기척도 없는데 어떻게 알아?"
"큐스케사마가 그렇게 말씀하셨다. 저분이 빈말을 하실 분은 아니니 확실하다고 봐야지."
【여기 있는 사람 중 한 사람과 아이폰이 연결되어 있습니다. 발신 상태이며 이는 위치 추적을 할 수 있습니다】
'그래? 그럼 그놈이 배신자란 말이군. 우리 위치를 노출 시키고 있었어. 어쩐지 도시 들어오기 전부터 그쪽 움직임이 수상하긴 했어. 그놈 표시해봐.'
나는 히로시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히로시는 난처한 표정을 짓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이어링에 표시된 사람 쪽으로 걸어갔다. 히로시에게 그자를 손가락으로 가르쳤다.
"저놈이 확실합니다."
히로시는 검자루에 손을 가져간 채로 그 자에게 다가갔다.
"야마시타, 네 이놈!"
히로시의 돌연한 외침에 야마시타라 불리는 사내는 깜짝 놀라 뒷걸음쳤다.
"저놈을 잡아라."
"무슨 일입니까?"
"뭣해 저놈을 잡으라니까."
히로시의 말에 주변에 있던 사람들이 야마시타를 움켜잡고 허리에 차고 있는 검을 풀러 냈다.
"갑자기 이게 무슨 횡포요?"
"횡포라고?"
히로시는 그의 봇짐을 뒤적였다.
"무슨 일입니까? 왜 내 짐을 뒤지는 겁니까?"
봇짐을 뒤적이는 히로시에게 말했다.
"송신음은 그의 품에서 나고 있는 것 같은데···."
그 말에 히로시는 벌떡 일어나 야마시타의 가슴 섶을 뒤적였다. 그리고 뭔가를 끄집어냈다.
아이폰의 화면은 커져 있었고 그것을 살펴보던 히로시의 얼굴이 구겨졌다.
"야마시타 이놈. 누구의 밀정이냐? 왜 우리 위치를 노출 시켰냐?"
조금전까지 당당하던 야마시타의 얼굴이 흙빛이 되었다.
"으, 말할 수 없다."
"목숨이 아까운 줄 모르는구나."
히로시는 검을 야마시타의 목에 가져다 대었다.
"흥, 내가 아무리 밀정이라고 하나 엄연한 베니마루의 사람이다. 그리고 난 베니마루를 배신한 것은 아니니 네가 나의 목숨을 취할 권한은 없다."
세모턱 야마다가 끼어들었다.
"히로시 진정해 그의 말은 사실이다. 그를 해하게 되면 오히려 네가 베니마루의 규율을 어긴 것이 되어 버려."
나는 이때가 기회다 싶었다.
"잠깐 그를 조사해 볼 수 있겠습니까?"
히로시는 야마시타의 목에 댄 검을 회수하며 내게 고개를 살짝 숙여 보였다.
나는 야마시타의 머리 위에 손을 얹었다.
"무얼 하는 거냐?"
"별거 아니야. 네 머릿속을 좀 들여다 보려고 하는 것뿐이다. 3023, 심층 다이브 진행해."
【알겠습니다. 심층 다이브 진행합니다】
이참에 일본의 역사와 현존 세력들 그리고 그들의 관계와 혹시라도 사슴뿔 네필림에 관한 정보가 있는지 이놈 머릿속을 완전히 뒤집어 볼 생각이다.
'용량이 크면 다운로드해 둬. 나중에 천천히 살펴야겠다.'
【알겠습니다. 저장용 나노봇에 다운로드 하겠습니다】
"알아냈습니다. 이놈은 카이사쿠의 첩자입니다."
히로시는 몹시 화가 난 표정을 지었다.
"야마시타 이놈. 네놈은 아자키와도 어느 정도 친분이 있지 않았냐? 그런데도 카이사쿠님의 지시를 받았단 말이냐?"
"어쩔 수가 없었다. 요즘 같은 세상에 기회란 쉽게 오는 법이 아니지."
"다시는 내 앞에 얼굴 내밀지 마라. 놈을 놔줘."
야마시타는 주변을 둘러보더니 재빨리 달려 어둠 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이들은 쉽게 사람 생명을 취하지는 않는 것 같다. 중국이나 예전의 나였다면 배신자는 단칼에 베어 버렸을 거다.
"저놈을 놓아주면 다시 이쪽으로 검을 들이댈 텐데요···."
"베니마루의 규율이 있습니다. 절대 같은 동료에게는 검을 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지금 접근하는 무리는 베니마루가 아닙니까? 카이사쿠도 베니마루의 사람인데?"
"아마 로닌을 이용했을 겁니다. 그분도 규율을 아시는 분이라 베니마루의 사람은 이용하지 않았을 겁니다."
그 와중에 야마시타의 정보가 이어링 창에 계속 떠올랐다.
'3023, 대화를 판단해서 그에 부합되는 정보만 띄워, 그리고 내가 질문할 때만 정보를 보여줘.'
【알겠습니다】
히로시는 야마시타의 아이폰의 전원을 꺼버렸다.
"이미 늦었습니다. 그들은 이 주변을 포위하기 시작했습니다."
와타나베는 내 얼굴을 바라보면서 신기한 듯 말했다.
"류스케사마는 어떻게 그리 잘 아십니까? 마치 다른 세상을 보는 것처럼 말씀하십니다?"
"상대의 기척을 읽을 수 있는 능력이 있습니다. 무사들은 이렇게 붉은 기를 흘리고 다니지요. 집중하면 이 붉은 기를 감지할 수 있습니다."
"호오? 그렇습니까? 저도 배울 수 있습니까?"
"와타나베, 류스케사마를 그만 괴롭혀 한가롭게 잡담을 하고 있을 때가 아니야. 모두 준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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