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ndemonium. Mammon's Tower(35)
언노운이 내 몸 안으로 들어온 지 수년이 지났다. 불안함의 기운 언노운이 가지는 느낌을 어느 정도까지는 공유할 수 있다.
좋지 않은 느낌. 우리는 이것을 예감이라고 한다.
'무슨 일이야? 기분이 좋지 않아.'
【정확한 원인은 알 수 없습니다. 불길한 기운이 느껴집니다】
'불길은 기운? 그게 무슨 소리지?'
【검색 중입니다만 각 층마다 차원을 달리하므로 검색에 많은 시간이 걸릴 것입니다】
'악마가 장난치기 시작하는 건 아니고?'
【검색이 끝나봐야 정확한 원인을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나는 위쪽으로 올라가는 데 집중한다.'
코너를 돌자 미로의 통로보다 넓은 공간이 나왔는데 뭉쳐 있던 오스트랄로피테쿠스는 우리를 발견하고 괴성을 질러 댔다.
"이 생기다만 원숭이들은 몬스터도 아닌 것 같고 왜 이리 허약해."
스콧은 총기를 난사하며 오스트랄로피테쿠스를 학살했다. 살아 있는 화석인류. 진화의 가장 큰 꼭대기에 있는 인류의 조상이다.
언 듯 원숭이처럼 보이지만 직립에 골반의 생김새가 원숭이가 아니라는 것을 확실히 말해 주고 있다. 일방적이다. 이그조틱의 무기에 속절없이 쓰러진다.
왜 죽여야 하지? 선공 몬스터이긴 하나 그 어떤 오스트랄로피테쿠스도 이그조틱에게 상처를 줄 수 없다. 악마는 무엇 때문에 오스트랄로피테쿠스를 여기에 데려다 놓았을까?
종교와 진화 그 둘을 한 공간에 배치하였다. 1층 에덴의 동산도 그러했다. 공룡까지 진화의 표본을 설명하는 것처럼 종교적 배경에 멸종된 화석 생명체까지···.
단순한 장난으로 이런 배치를 한 것인지 다른 의미를 부여했는지는 알 수 없다.
"하얀 놈."
누군가 오스트랄로피테쿠스 무리 중에 알비노를 찾아내고 외쳤다.
"게이트다. 마지막 유니크 몬스터야."
화망이 뿌려지자 주변에 있던 오스트랄로피테쿠스는 피떡이 되어 박살이 났다. 늘 느끼지만, 이들에게는 일말의 감정 따위를 기대하는 것은 사치다.
만약 인류 역사학 박사가 있었다면 고함을 치며 이들을 말렸을지도.
"열렸다. 게이트가 열렸어."
99층으로 올랐는데도 98층의 찝찝함이 가시지 않았다.
"이번에도?"
"네 이 층도 지도와는 전혀 관련 없습니다."
다만 이 층에는 물이 있다. 식수로 사용 가능할 만큼의 물이지만 물에 접근하기 위해서는 무장 해제를 해야 한다.
헬오어로 만든 그 어떤 것도 몸에 지니지 않아야 한다. 아니면 자신의 몸으로 주변 물이 주는 중력을 느껴야 할 것이다.
이번 층도 별 볼 일 없는 층이다. 게이트는 열려 있고 그쪽으로 이동하면 된다. 푸른 초원과 시원한 바람 백 층을 오르기 전 느껴보는 여유랄까라고 생각했지만 역시나 쉽게 보내 주지는 않는다.
갑자기 하늘 위로 새까맣게 화살 세례가 시작됐다. 크게 위협적인 무기는 아니었다. 주변에 떨어진 화살 하나를 주워 보니 조악하기 이를 데 없다.
언노운이 분석해 보니 화살 끝에 마비독이 발라져 있었다. 이그조틱이라도 한 5분 정도는 육체가 둔감해지는 정도다. 이것으로는 생명의 위협이 되지는 않는다.
위로 올라갈수록 몬스터가 더 강해져야 하는데 비실비실한 몬스터가 등장한다. 탑의 레벨은 일관되지 않는 모양이다.
"식인종이죠. 정확히 말하면 식인 피그미족이랄까"
"식인 피그미?"
제임스의 말에 언노운이 정보를 띄웠다. 피그미족은 아프리카의 현생 인류 중 하나다. 신장이 어린아이만큼 작다. 그리고 원래 식인종은 아니다.
"운이 좋아서 여기 서너 번 정도 와 봤는데 자기들끼리 싸우고 잡아먹고 그래."
"지들끼리요?"
"여기 몬스터랄까 이놈들은 두 부족이 있어. 서로 싸우거든. 사상자가 발생하면 파티하는 날이지."
무슨 소리인지 알 것 같다.
"우리는 그냥 뭐랄까 초대받지 않은 불청객일 뿐이야. 싸움을 구경한 적도 있었어."
키가 작아 풀숲에 가려서 보이지도 않는데 화살만 끝없이 날아온다.
"제기랄. 이것들이!"
팔뚝에 화살이 박힌 한명이 욕지거리하면 화살을 뽑아낸다. 화살이 날아오는 방향을 향해 총기가 불을 뿜는다.
"허공에다 삽질하지 말고 단숨에 밀어붙여. Advancing fire"
파비앙의 말에 이그조틱은 앞으로 달리며 전진사격을 실시했다.
나는 천천히 걸었다. 내 바로 뒤 좌측에 오웬이 우측에 퍼시벌이 묵묵히 따르고 있다. 다행인 것은 이 두 사람 덕분에 귀찮고 냄새나는 악마 새끼가 가까이 오질 못했다.
어느 정도 걸어가니 사살된 피그미족의 시체가 보였다. 전형적인 흑인의 모습이지만 마르고 키는 120cm정도 밖에 되지 않았다. 얼굴만 아니라면 아이라고 착각해도 될 정도였다.
"입고 있는 가죽옷을 봐라. 저건 상대 부족의 피부로 만든 옷이다."
"원래 피그미족은 식인과는 전혀 관계없는 부족입니다."
"관계있든 없든 이 탑의 피그미는 식인을 한다. 그것이 중요한 요소지. 옛날 아프리카의 피그미족이 그렇다고 한들 우리와는 상관없는 정보다."
"하긴 그렇네요."
다행히 드랍 아이템이 98층과 달리 현대식 무기류가 드랍됐다. 이그조틱은 부족한 탄약을 챙겼다.
"여기서는 AK-47은 귀찮을 거야. 7.62 탄약이 잘 나오지 않거든."
"그렇지 않아도 쓸만한 무기 나오면 바꿀 생각입니다. 화력은 좋은데 부가적인 워리어 플렛폼을 장착하기 쉽지 않네요."
오웬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무기는 상징적인 것보다 범용적인 것이 훨씬 효율이 높다. 그만큼 부수적인 파츠도 다양하니 성능 개조에 이상적이지. 대부분이 나토 표준 화기를 선호하는 이유다. 너처럼 러시아제 무기는 범용성이 떨어져."
오웬에 말에 나는 잠시 웃음을 지었다.
"한때 지구상에 가장 많이 존재했던 총기인데 범용성이 떨어진다는 말이 우습네요. 무기 조병창도 아니고 탑에서 몬스터 사냥하면 아이템으로 드랍 된다니 황당하지 않습니까?"
"처음에는···. 인간의 환경 적응력이 뛰어 난다고 하지 않나. 세계가 바뀌고 바뀐 세상에 적응하다 보니 이젠 무감각해 졌어."
"사용할 수 있는 것은 뭐든 사용한다. 이 세계의 원칙에 대해 분석하고 연구하는 것은 교황청의 두뇌들이 할 일이지. 우리는 최전선에서 뛰어다니는 군인일 뿐이야. 그런 잡생각을 가져봤자 전투력만 떨어져. 죽여야 할 적이 눈앞에 있다는 것만으로 벅찬 현실이야. 어떻게 효과적으로 제거하느냐만 생각하면 돼."
퍼시벌의 말에 웃으며 답했다.
"그럼 저에 관해서도 관심을 끄는 편이 좋겠군요."
"물론 그러고 싶어. 다만 적인지 아군인지 파악을 하고 난 다음에···."
"적이라면 이들을 모두 데려왔겠습니까?"
"지도는 네 머릿속에 있지? 그리고 이곳은 수많은 수수께끼가 널린 곳이다. 어쩌면 그 수수께끼를 풀기 위해 우리가 필요한 것일 수도."
"맘대로 생각하세요. 두 분은 전직 CIA 요원이시라고?"
"누구한테 들었는지 모르지만, 과거의 직업일 뿐 지금은 탑을 오르는 사람들과 같은 군인일 뿐이다. 유럽은 지독한 포화 속에 매일 수많은 사상자가 발생한다. 이곳에서 시시덕거리고 있을 순 없어. 우리가 해내야지 유럽을 구할 수 있다."
"롱기누스의 창이 전쟁을 끝낼 수 있다고 믿습니까?"
"나야 모르지. 윗선에서 그렇다고 하니까 그것에 희망을 두는 것이지."
"곧 백 층에 오르겠네요."
"횟수로 치면 3년 정도 그곳에 머물렀을 거다. 이 탑이 666층이라고? 웃기는 소리. 그 세월 동안 할 수 있는 것은 다 해 봤다. 그 어떤 비밀도 존재하는 않는 곳이다. 백 층에 반드시 롱기누스의 창이 숨겨져 있을 거다. 그 위치만 알아내면 돼."
"지도는 제 머릿속에 있으니 올라 보면 알게 되겠지요."
그리고 얼마 가지 않아 피그미족 촌락에 당도했다.
"저기."
망원경을 바라보던 파비앙이 말했다.
게이트는 피그미 촌락 중 가장 깊숙한 곳 신전처럼 세워진 돌탑 위에 열려 있었다. 제단처럼 생긴 사각형 기초 위로 나 있는 계단을 타고 올라야 한다. 작은 피라미드형 건물인데 꼭대기는 평평했고 그 가운데 게이트가 열려 있었다.
촌락의 피그미 숫자는 대략 못 잡아도 이천은 될 듯하다. 우리 숫자를 고려하면 1:20의 수치다.
"예전에 비하면 거저먹기네. 보통 두세 명씩 몰려 다닐 때는 저곳을 돌파하기 무척 까다로웠는데 이 인원이면 부족을 몰살시켜도 되겠다."
리안의 말 그대로다.
"그럼, 단숨에 돌파하는 거로."
파비앙이 부대를 집결시키고 주위를 피력한 다음 촌락 안으로 진입했다. 피그미는 상당히 예민하다. 즉 선공 몬스터 중에서도 적 인식 범위가 상당히 멀다. 어느 방향으로 접근해도 50m 이내로 들어오면 즉시 적의 존재를 알아차린다.
활과 창, 검이 주 무기다. 그중에 활이 특징이다. 그래봤자 이그조틱의 상대는 아니지만.
지옥에서 올라온 몬스터답게 확실히 오스트랄로피테쿠스보다 사악한 기운이 느껴졌다.
무리 중에서 사격하지 않는 사람은 나와 오웬 퍼시벌뿐이다. 나는 이그조틱 사이로 걸어 들어갔고 오웬과 퍼시벌은 역시 좌·우측에서 뒤따른다.
그때 제법 많은 수의 화살이 날아들었다. 마구잡이로 쏘다 보니 확률상 몇 발은 내게도 떨어졌다. 인셉션 필드를 펼치니 화살은 모두 튕겨 나갔다.
"일종의 베리어 인가? 묘한 기술인데 탄도 막을 정도?"
"아뇨. 이놈은 물리적 방어력은 한계가 있어요. 주로 원소 공격에 특화된 베리어라."
"아시안은 그런 기술을 쓰나? 아니면 자네만의 특수한?"
"궁금한 것이 많으시군요."
"정보란 것은 많으면 많을수록 좋지. 기회가 생기면 놓치지 않고 정보를 모아야 해."
"CIA식 사고방식인가요?"
"후후, 과거일 뿐이라고 했잖아."
"절 호위하듯 감시하는 스타일도?"
"어쩔수 없어 몸에 밴 습관이니까."
"여차하면 절 쏘시겠습니다?"
"상황이 그렇게 된다면 주저하지 않으리라는 것은 확실하다고 말해 두지."
"저도 마찬가지란 걸 말씀드리죠. 그리고 제 뒤에서 총구 겨누는 거 기분이 살짝 좋지 않네요."
-팟
"앗!"
"이런!"
두 사람은 화들짝 놀랐다. 그도 그럴 것이 무언가 번쩍했는데 들고 있던 소총의 총신이 반으로 잘려 버린 것이다.
"제 뒤를 따라오는 것은 뭐라고 하지 않겠습니다만. 제 뒷덜미에 총구 들이대지 마세요."
두 사람은 순식간에 잘린 총신을 내려다보며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다.
"이거 강화한다고 얼마나 반복 사냥해서···."
"하, 그동안의 노력이 물거품이 되었어."
두 사람은 무엇이 자신의 총신을 잘랐는지 보지도 못했다. 단지 무언가 둥그런 물체가 자신의 앞으로 빠르게 지나쳤다는 정도만 의식하는 것 같았다.
"너무 하는군. 이런 무기 구하는 것 흔하지 않아. 얼마나 고생해서 얻은 무기인데."
오웬이 투덜거리자 내가 말했다.
"그러게 사람 뒤통수에다가 총구를 겨눕니까?"
"자네 생각보다 강한 사람이군. 우리 둘, 아니 여기 이그조틱 정도는 간단하게 제압할 수 있지?"
"어휴. 그냥 가요. 알아봤자 대비할 수도 없을 텐데. 그냥 입 다물고 제가 시키는 대로 하면 돼요. 의심해 봤자 답이 없을 겁니다. 그냥 말할게요. 당신들이 평범한 인간이라면 저는 신입니다. 지금 딱 그 정도 차이입니다. 아시겠어요?"
오웬과 퍼시벌은 다시 내 뒤를 따랐다.
"자네의 진정한 목표가 무엇인가?"
"이 탑에서 일어나는 어떤 일을 기다리는 거요."
"롱기누스 창이 아니고?"
"그건 부수입 정도라고 말해 두죠."
"롱기누스 창은 교황청이 바라는 물건이네."
"파비앙에도 말했습니다만, 제가 찾아도 롱기누스 창은 교황청에 드릴 거라고."
"그럼 안심이군."
"그러니까. 저에 관한 관심은 이제 끝내시죠. 두 분이 착 붙어 다니니 다들 이상하게 보잖아요."
"이상할 것 없어. 자네도 생각해 보라고 가장 위험하고 의심스러운 자 곁에 붙어 있는 것이 가장 안심할 대응방법이라고 어쩔수 없잖아."
"총신 자를 때 피할 수 있었습니까? 만약 같은 방법으로 두 사람 목을 치면요?"
"그러지 않을 거라고 확신해. 그런 말을 한다는 것 자체가 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지. 우리에게 겁을 주려고 그런 말을 해 봤자. 통하지 않아. 너무 뻔한 수거든."
"마음대로 하세요. 하지만 총구 방향은 제 쪽으로 향하게 하지 마세요. 제가 실수라도 해서 여러분 손목까지 잘라 버릴지 모르니."
"그건 조심하겠네. 시범 케이스에 휘말리고 싶지는 않으니까."
"생각이 빠르시네요. 자 올라가죠. 백 층으로···."
화약 냄새 피 냄새가 짜증이 났다. 신전의 계단으로 올라가자 여기저기서 수많은 화살이 날아왔지만, 인셉션 필드를 뚫지는 못했다.
총소리가 길게 메아리치고 화살 맞은 이그조틱 몇 명이 욕지거리하면서 수류탄을 던졌다. 그냥 대충 휙휙 던져도 100m 이상 날아갔다.
파비앙은 마지막까지 게이트 앞을 지키며 파비스를 난사했다.
드디어 그들이 원하는 백 층에 올랐다. 전체 지도부터 띄웠다.
"여기는?"
"아뇨, 일치하지 않아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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