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ndemonium. Mammon's Tower(215)
데이몬(6) - 아름다운 폭발 그리고 끝없는 순환
경험은 인간의 적응력을 높여 자연이나 타 외력에 저항하는 힘 또는 정복 능력을 높여 준다.
수십 번의 싸움은 상대의 빈틈을 발견하게 했고 효율적으로 제압할 수 있도록 했다.
큰 부담감이 제거된 지금 사기 마저 높다. 무엇보다 양질의 드랍 템으로 업그레이드된 무기는 처음 이곳에 도착했을 때보다 1.5배는 강력해진 상태였다.
특히 가장 돋보이는 위력을 발휘하는 것은 XM214 마이크로건이다. 분당 4천에서 8천 발을 쏟아붓는 이 괴물 앞에서 견딜 수 있는 것이 없다.
물론 5.56탄의 위력과 사거리 부족이 문제겠다고 말할 수 있지만, 지금같이 좁은 계단을 두고 이루어지는 근거리 전투에는 사거리 부족은 문제 되지 않았고 위력이 약한 부분은 관통 +2 이상의 옵션이 붙은 관통탄이면 3cm의 헬오어 강판에 바늘구멍을 뚫을 정도였다.
보통은 삼각대에 거치해서 쏘는 고정식 병기다. 5.56탄이라도 분당 쏟아내는 위력에 순간 반동이 100kg에 달한다. 평범한 인간이 제어할 수 있는 반동 수준이 아니다. 당연히 이그조틱은 평범한 인간이 아니기에 무리 없이 다를 수 있었다.
특히 범용성 좋은 5.56탄은 아무리 쏟아부어도 마를 일이 없을 정도로 넘쳐났다.
그들은 죽음에 대한 두려움에 사로잡혀 전력을 다하지 않았을 뿐. 그 두려움이 해결되자 정말 미친 듯이 밀고 올라갔다.
꼭대기까지 밀고 올라갔을 때 오웬이 외쳤다.
"16분 59초 남았습니다."
"Oh! Good."
"hurry up!"
상층부에 XM214을 든 스켈레톤 3마리는 오웬이 살짝 고개를 내밀자 망설임 없이 탄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오웬은 이들을 어떻게 처리할지 이미 알고 있다. 계단 밑에 대기하고 있던 인원에게 신호를 주자 여섯 명이 고폭 수류탄을 일제히 안으로 던져 넣었다. 큰 폭발음과 함께 불기둥이 머리 위로 뿜어져 나왔다.
폭발이 가라앉기도 전에 리안과 제임스를 포함한 수십 명이 일시에 상층부로 뛰어들었다. 그들은 폭발에 휘청이는 거너들을 재빨리 제압하고 순식간에 상층부를 평정했다.
파비앙이 스톰트루퍼를 질질 끌고 가운데 돌탑으로 다가갔다. 카운터의 시간은 9분 10초에 9초로 떨어지고 있었다.
무려 9분이나 남은 여유 있는 상황이었다. 처음 도전에서 두 시간이나 모자란 것에 비하면 크나큰 발전이었다.
사망자 하나 없이 더욱이 부상자 하나 없는 완벽한 승리였다. 이들은 지금 그 승리를 만끽할 자격이 있는 셈이다. 그들 모두의 눈빛이 파비앙에 고정됐다.
파비앙은 주위를 한번 훑어보더니 축 늘어진 스톰트루퍼의 손을 들어 올려 버튼을 찍어 눌렀다.
버튼은 쿡 소리를 내며 쑥 밀려 들어갔다.
그 순간
스톰트루퍼의 몸에서 검은 연기가 나더니 모래성이 무너지는 것처럼 순식간에 와르르 무너져 내렸다.
"진흙으로 빚어진 것 원래의 진흙으로 돌아가리라."
크리스의 말에 넋 잃고 바라보던 사람들이 후딱 정신을 차렸다.
스톰트루퍼는 한 줌의 흙으로 사그라졌다. 그런 것으로 보아 정상적으로 작동했다는 것을 알수 있었다.
"게이트는?"
리안은 주변을 살폈으나 게이트는 보이지 않았다. 흩어져 찾을 필요도 없이 뻔한 공간이라 몇 차례 주변을 확인했으나 게이트는 생성되지 않았다.
사람들은 하나둘 나를 바라보기 시작했다.
권능의 눈으로 주변을 살폈으나 내 눈에도 걸리는 것은 없었다. 다만 가운데 카운터 다운이 멈춰진 돌탑에서는 여전히 권능이 뿜어 올려지고 있었다.
카운터 다운은 8분 52초에 멈춰져 있었다.
"권능이 흐르는 것으로 보아 정상 작동하는 것은 분명합니다만, 다른 곳은 아무런 느낌도 없습니다. 권능이 나오는 것은 오직 이 탑 같은 구조물뿐입니다."
파비앙과 오웬은 구조물 주변을 돌며 다른 특이점이 있는가 찾았지만 단순한 돌탑에 불과할 뿐이다. 누구나 알수 있는 배꼽 높이의 붉은 버튼 하나. 정면에 디지털 화면 같은 곳에서 카운터 다운이 시작되고. 이미 몇 번이나 이 돌탑을 부숴봤기 때문에 어떤 구조인지 알고 있었다.
한 시간 동안 주변을 모래알에서 바늘 찾는 기분으로 수색했지만, 성과는 없었다.
"저기 주인님은 모든 층을 다 올라 봤지요? 601층의 구조는 어떻게 되어 있는지 기억나세요. 제 기억에는 아마도 게이트가 열리지 않는 것은 위층과 관련이 있다고 생각해요."
"위층이라? 가만있어 봐."
이어링에 저장된 데이터에 601층을 띄웠다. 예전에 전체 층을 점검할 때 이어링에 녹음해 놓았었다.
"응? 뭐지?"
601층의 화면은 시커먼 암흑이었다. 녹화 시간도 10초 정도뿐이었다.
"그때는 권능으로 볼 수 없었으니까 그렇다고 쳐도 지금 보니 조금 이상한 걸? 후딱 확인하고 올 테니 기다려 봐."
1층으로 내려가서 게이트 타고 601층에 올랐다. 그러나 역시 암흑뿐이었다. 랜턴도 소용없었다. 빛까지 먹어 버리는 지독한 암흑이었다. 처음에는 랜턴이 작동되지 않은 줄 알았다. 그러나 빛은 단 한 올도 흘러나오지 않았다. 어둠이 빛까지 집어삼키는 것 같았다.
그때 왜 10초 정도밖에 녹화하지 않은 이유를 이제 알 것 같았다. 여기는 공기 즉 산소가 아예 없었다. 이어링을 조작해 대기 성분을 살펴보니 모든 성분이 제로로 찍혔다.
권능의 눈으로 주변을 살폈지만,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냥 암흑 딱 그것뿐이었다. 바닥은 딱딱한 금속. 즉 헬오어 그 자체였다.
여기가 중앙이라면 50m를 움직이면 벽이 나올 것이다. 예측은 정확했다. 50m 정도 움직였는데 벽이 나왔다. 그렇다면 여긴 구현이 안 된 탑의 기본 본질 속이라는 것이다.
가로세로 100m 높이 15m의 직사각형 상자 안이라는 것이다.
"아직 구현 전인가? 아니면 특별한 뭔가가 있어야 하나?"
손으로 벽을 더듬다가 고개를 갸웃했다. 어보미네이션을 잡을 때 외벽을 통해 이 탑의 기본 골조를 봤는데 빛까지 삼키는 암흑은 없었다. 그때와 다른 점은 이 지독한 암흑뿐이다. 권능의 눈으로 보고 있기에 대충 버티고 있는 것이지 이그조틱이라면 눈까지 어둠에 집어삼켜 버릴 정도였다.
손가락으로 벽을 톡톡 쳐 보았지만 무려 소리조차 나지 않았다. 항마복호장으로 힘껏 벽을 때렸는데 작은 소리 하나 나지 않았다. 완전 무음의 세계. 그래 이 적막감은 내 숨소리, 심장 뛰는 소리, 발걸음 소리가 나지 않아서 느꼈던 감각이었다.
'희한한 곳이군. 돌아가서 파니에게 물어봐야겠네.'
귀환석을 꺼내 다시 1층으로 내려갔다.
600층으로 와서는 풍신화를 신고 탑의 꼭대기까지 날아올랐다. 10시간 타임의 거리지만 이렇게 날아오르니 3분밖에 걸리지 않았다.
파니에게 조금 전 상황을 설명했다.
"그 암흑은 태초의 암흑일 거예요. 인간들이 말하는 빅뱅이 시작 되기 전의 어둠이죠. 빛조차 존재하지 않는 무려 시간조차 존재하지 않은 곳이라 공간 개념도 없을 거예요. 소리와 공기도 없을 텐데···."
"응, 공기가 없어서 숨도 쉴 수 없었어. 참는 데까지, 참았지만···."
"이상한 것은 아니에요. 악마들이 어떤 공간을 만들 때 가장 베이스로 깔아 두는 거거든요. 음, 뭐랄까 순순한 곳, 오염되지 않은 공간이죠. 그곳은 그 어떤 물질도 존재하지 않기에 처음 사용하는 사람이 무엇을 설치하든 그 사람 마음대로 제어할 수 있다는 것에요. 빛이 없으니 빛을 만들어 넣기 쉽고 반대로 어둠도 만들어 놓기도 쉽죠. 그곳에 있는 것은 어둠이 아니거든요. 공간이 없는 곳이죠."
"그래? 바닥과 외벽의 헬오어 금속의 느낌은 있던데 촉감은 살아 있나?"
"으흠, 그건 경계점을 만진 거고요. 그곳에서 빅뱅이 일어나면 차원이 생성되죠. 악마는 그렇게 새로운 차원을 구현해요."
"그럼 세상을 만들기 전이라는 말인가?"
오웬의 말에 파니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래요. 아직 빅뱅이 일어나기 전이라는 거죠. 빅뱅이 일어나면 새로운 차원이 열릴 거예요."
"지금까지 경험한 적이 없는 독특한 방법이네. 빅뱅이라? 저것과 관계 있을 테지? 빅뱅이 언제 시작된다는 건가?"
"그야 당연히 자정이죠. 이 세계는 모두 자정에 리셋이 되죠? 이 층도 리셋이 되는 그 순간 아마도 게이트가 열릴 거예요."
"그렇다면 그때 위층도 새로운 세계가 생성된다는 건가?"
"네 그런 구조일 거예요. 여기서 게이트가 열리는 순간 위층은 악마가 설계한 대로 구현 될 거예요."
"그런가? 그럼 자정까지 기다려 보지. 이제 오전 10시네."
자체 정비가 떨어졌다. 나와 파니는 오랜만에 요리 삼매경에 빠져들었다. 어제 나치에게 항상 차려 주었던 식자재도 남아 있고 하니 카피너로 복사해서 다양한 요리를 만들었다.
물론, 이미 요리된 요리 자체를 카피너로 복사하면 간단하지만, 요리라는 것은 모름지기 만드는 정성이 들어가야 맛이 배가 되는 법이다.
간만에 만찬이 벌어졌다. itb에 조립식 회의 테이블이 왜 들어있는지 몰랐지만 그걸 꺼내 복사하니 그럴싸한 긴 테이블이 만들어졌다.
식사를 하는 중에 나는 나치에 관한 이야기와 더불어 외벽에 구멍을 뚫던 어보미네이션을 없앤 것 악마와 계약한 것. 그리고 브릔힐드에 관한 이야기를 했다.
이그조틱들은 먹고 듣는 것에 열중하느라 아무도 말도 하지 않았다.
"저만 계속 떠드는 것 같네요. 식사하는데 이런 이야기를 해서 소화가 안 되겠네요. 하하."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소화불량이란 단어는 잊어버린 망각의 단어네요."
리안은 스테이크를 우물우물 씹으면서 말하는데 눈으로는 그 맛에 감탄사를 수도 없이 날리고 있었다. 기가 막힐 것이다. 이런 고기의 맛을 감히 상상이나 했을까.
처음에는 귀찮을까 봐 될 수 있는 한 음식은 절대 선보이지 않았다. 한번 맛보면 수시로 음식 차려라고 요구해댈 것이 뻔했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아도 매일 똑같은 육포만 씹고 있으니 진수성찬을 쉽게 맛보면 당연한 것으로 여길 테니까.
하지만 지금 내 위상은 너무나 올라가 버렸고 처음 나를 담배자판기로 여기더니 지금은 그 누구도 내게 와서 담배 구걸은 하지 않는다.
네필림이라는 소리를 들어도 감이 오지 않더니 이젠 내 전투력이 어느 정도인지 경험했고 또 교황청이 그렇게 바라던 롱기누스의 창을 양도한다고 했으니 그들은 나를 믿지 않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아마 오웬은 내가 없을 때 팀원을 모아놓고 분명 한 소리했을 것이다. 절대 내 비위를 거스르거나 짜증 유발하는 행동은 하지 말라고 말이다. 오웬은 이미 내 성격을 파악했고 대화할 때도 실수하지 않으려는 모습이 그대로 눈에 보였다.
"브릔힐드는 나치의 성녀로 불리지만 그녀도 네필림이니 이번 기회에 잘 가르쳐 볼 생각입니다. 나치의 총통인 구스타프는 브릔힐드의 힘을 제어하기 위해 그녀의 정신연령을 상당히 낮춰 놓았습니다. 제대로 된 교육은 전혀 받지 못했고 그저 총통의 말이 세상의 진리인 것처럼 믿도록만 훈련받아 왔습니다. 그녀는 유럽의 이그조틱을 적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만. 앞으로 그녀가 무슨 말을 해도 받아쳐서는 안 됩니다. 쉽게 말해 정신연령이 조금 낮다고 생각하면 됩니다."
"모두 새겨들어라. 브릔힐드를 자극하지 말라는 이야기다. 그녀 앞에서는 농담 따위도 하지 말아라."
이제 왜 그녀를 데려오냐 따위의 의구심도 말하지 않는다. 이들은 내가 하는 일에는 왜? 라는 의구심을 없앤 것이다.
"아, 윌리엄도 같이 있을 건데 녀석은 생각이 아직 어립니다. 고뇌의 사제들이 워낙 오냐오냐하고 키워서 상하 구분도 못 하는 데다가 분위기 좀 많이 타는 녀석이죠. 이전에 파니에게 찝쩍대는 걸 봐서 잘 아실 겁니다. 하지만 근본은 순수한 녀석이니 알아서들 잘 대처 하세요."
네필림 다섯을 모았다. 앞으로 두 명만 더 찾으면···.
"601층의 미션을 끝내고 나면 우리 세 명은 남아서 데이몬을 처리할 생각입니다."
"데이몬은 쉬운 상대가 아닙니다."
"쉽다고 생각 해 본 적은 없어. 네필림 세 명이 덤비면 어찌 할수 있겠구나 싶어. 이제 네필림도 슬슬 악마와 본격적으로 전투를 해 봐야 할 것이니 경험 차원에서도 상당한 도움이 될 거야."
"악마를 처리한다는 말은 씁쓸하지만, 저도 돕겠습니다."
"아니, 괜히 나서지 말아. 너는 팀과 같이 움직여. 윌리엄이 능력을 발휘하면 은총이 난무 할텐데 네 몸은 견딜 수 없어."
"제 몸은 은총을 견딜 수 있게 특화되어 있으니 걱정하지 마세요."
"특화는 무슨 특화? 윌리엄이 가까이 오면 부들부들 떨면서. 됐으니 너는 빠져. 그리고 팀원들 챙기는 거나 확실히."
"허어, 악마를 때려잡는데 악마보고 보디가드라니 참."
리안의 말에 파니의 눈썹이 매섭게 꿈틀거렸다.
"계약자의 명령을 수행하는 것이지. 지키고 싶어서 지키는 것은 아니란 말이다. 리안 마녀의 주술을 경험해 보고 싶다면 언제든 환영이다. 고통의 세례 못지않은 지옥을 경험시켜줄 수도 있어."
"아뇨, 아뇨. 실언입니다. 실언."
리안은 기겁하면 손사래를 쳤다.
시간은 흘러 점점 자정이 가까워져 간다.
"자, 다들 긴장을 풀지 마세요. 위층에 무엇이 기다리고 있는지 모릅니다. 도착하면 빠른 상황 판단으로 환경 인지를 최우선으로 할 겁니다."
"제발 게이트가 열리기를···."
리안은 기도하는 자세를 취하며 돌탑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10초 뒤 자정입니다."
다들 경험상 백 단위 바로 다음 층이 어떤 층인지 알고 있다.
201, 301, 401, 501 모두 인간이 거주하는 곳으로 게헤나와 이어진 차원이라 악마가 수시로 드나들 수 있는 차원이다. 그리고 이 탑에서는 마지막 차원이다. 무엇이 기다리고 있을지 아무도 모른다.
"열린다."
오웬의 말에 사람들의 시선이 한곳으로 모였다. 돌탑 뒤로 정확히 게이트가 열렸다.
"빙고!"
모두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저와 파니가 먼저 갑니다. 가자. 파니."
나는 게이트를 향해 몸을 던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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