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미타
암미타
검은 수염의 암미타는 전형적인 이집션이었다.
"커피?"
"진짜로?"
"아님 말든가?"
"아니 더 좋은 최고의 커피를 가지고 있으니까 하는 소리지."
"그럼 그걸로 하지."
"우린 무한의 감옥에 갇혔는데 걱정 노?"
"대처 방안이 있지."
"하긴 이리 태평한 이유가 당연히 있겠지."
"아, 참고로 여기 차원은 공간 자체가 없어서 차원에 구멍도 뚫지 못해 알지?"
"기본 상식은 노, 노. 필요 없어."
"그럼 이야기가 쉽겠네."
"수확장 개박살 냈는데 어쩔?"
"하. 그런 수확장이 몇 개나 된다고 생각해?"
"하긴 차원에 걸쳐 셀 수도 없겠지."
"잘 알면서 뭔 수작질이야?"
"이집트의 신이 왜 게헤나를 들락거리고 있어?"
"각자에 필요한 사정과 루틴이 있는 법이지."
조금 전까지는 서로 죽일 듯하다가 갑자기 분위가 바뀐 것에 쉽게 적응이 되지 않았다.
눈앞에 있는 녀석은 이집트의 신이기는 해도 선악이 뒤섞인 특히 악의 성향이 강한 어찌 보면 악마라고 봐야겠지.
뭐, 이젠 크게 신경 쓸 정도도 되진 않으니까.
"넌 특별한 놈이니 저쪽에서 대단히 분주하게 움직이는 모양이더군."
"암미타 당신이 직접 이곳에 올 만큼?"
"나 정도도 피의 교단에서는 말단에 불과해. 물론 지휘부에 한해서지만."
ITB에서 커피 추출기와 최상품의 루왁 커피를 꺼냈다. 그리고 곁들일 과자 몇 개 하고 말이다.
"너도 차원을 이용하기 시작했구나. 신기한 놈일세. 아직 힘을 각성하지도 않았는데 어떻게 사용하는 법을 터득했지?"
"나에 대해 꽤 아는 척을 하는군."
"널 모르는 놈이 있나? 지금 온통 네 소문뿐인데···"
"지옥에서 소문이 나 본들. 조금 있다가 그곳 뒤집어엎으러 갈 생각인데 말이야."
"푸, 그러시던지? 이곳을 나갈 방법은 있고?"
"물론이지. 교단에서 날 테스트해 보라고 하던가?"
"요즘 분위기가 이상해서 말이야. 넌 우리가 생각하는 이상으로 본질을 향해 가고 있거든. 마치 누가 이끌어 주는 것처럼 말이지. 나그네가 여행하다 보면 잘못된 길로 들어설 때도 있어. 그런 과오를 거쳐야 진정한 여행길이 이루어지는데 넌 지금까지 잘못된 길로 들어선 적이 아예 없어. 마치 처음부터 모든 것을 알고 있는 것처럼."
"그거 칭찬인가?"
"그런 행동은 관심을 끌게 마련이지."
"호오? 충고인 건가?"
"충고할 처지는 아니지. 네가 한 참 설칠 때 뒤에서 구경하는 걸로도 벅찼거든."
다시 한번 느끼지만 난 인간의 탈을 쓰고 있는 거지만 실제는 악마도 어찌하지 못했던 괴물 중의 괴물이었다. 당시 지옥의 왕이었던 루시퍼조차 나를 통제하지 못해 쩔쩔 맺을 정도라고 하니까.
인간의 탈을 쓰고 인간 사회에 묻혀 살다 보니 나 자신이 얼마나 두려운 존재였는지 거의 망각해 버리고 있었다. 암미타는 아마 내 본신 때의 진정한 모습을 기억하고 그렇게 말하는 것일 테지.
"지금까지 잠잠하다가 왜 갑자기 내게 관심을 가지는 거지?"
"위쪽에서 하는 일인데···. 난 별반 관심도 없어. 세상이 이미 이렇게 된 것조차 싫증이 나 버렸거든. 관심을 쏟는 차원은 따로 있어. 그곳에서는 신으로서 아직 내가 할 일이 많아."
"근데 네가 게헤나에서 피의 교단 앞잡이로 있는데 천사들은 가만히 있는 거니?"
"차원마다 달라. 몇 개의 차원에서는 서로 협력하는 관계이기도 하지."
"신도 차원마다 달리 존재하지 않아? 만약 이 차원에서 네 존재가 지워진다면 다른 차원의 암미타도 없어지는 건가?"
"전혀. 음, 그건 사람의 믿음에서는 오는 것이니까. 차원마다 암미타가 존재한다고 할 수 있지만 여기 네 앞에 있는 암미타는 다른 차원에서의 암미타와 같은 암미타야. 이곳에서 사라진다고 해서 내 존재가 없어지는 것은 아니지."
"악마를 완전히 끝장내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구나."
"그건 천사도 마찬가지지. 이 우주가 무너지지 않는 한 영원히 지속될 존재들이니까. 우리에게 사라진다는 개념 자체가 없으니."
"그건 나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다른 차원의 나도 있을 테니까. 이 차원에서 나를 이용하지 못하면 다른 차원의 나를 이용할 수도 있겠지?"
"그건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야. 차원을 넘나드는 것은 균형을 깨뜨리는 것이다. 우주에는 자연스러운 섭리가 유지되어야 해 그 틀을 깨면 모든 것이 엉망이 되니까."
"여기 온 목적이 무어지? 나와 힘겨루기하러 온 것은 아닐 테고···."
"조금 전에 말했잖아···. 네 행동이 그들의 관심을 끌기 시작했어. 그리고 왜 한번도 잘못된 길로 가지 않는 걸까? 내가 던진 주사위는 단 한 번도 육 이외 숫자가 나온 적이 없이. 죄다 육만 나오잖아. 신경이 안 가는 게 더 이상하지 안 그래?"
암미타의 표정이 묘하다. 마치 내 속내를 들여다보는 듯한 눈빛이었다.
"모노스 테리움이 움직이니 바빠지기 시작했다 그건가? 그럼 왜 대 놓고 나를 돕지 않는 거지?"
"거기에는 말 못 할 사정이 있어. 너를 반기는 놈들만 있는 것은 아니니까."
"이용하려 하면 먼저 진심을 보이라고."
"아직은 때가 아니지. 단지···."
"단지?"
"네가 너무 길을 잘 찾아가고 있다는 것이 걸려서···."
"아하, 누가 나를 돕고 있는지 그놈을 알고 싶다 이거군."
"느낀 점을 보고하라는 것이 내 임무 중 하나니까···."
"누가 날 도와주겠어? 확실히 돕고 싶다면 내 본신이 있는 곳을 말해주던가?"
"루시퍼가 숨겨 놓은 곳은 루시퍼 외에는 알수가 없지."
"졸개들은 주둥이 잘만 털고 다니더구먼. 루시퍼는 왜 내가 본신을 찾는 것을 알면서 말해주지 않는 거지? 쓸데없는 가면을 왜 모으는 거고?"
"그는 네가 아직 준비되어 있지 않다고 판단해서 그런 거다."
"음, 내가 생각해도 아직 지옥을 깨부술 힘은 부족하다고 할 수 있지."
"네가 분명한 목적을 가지기 전까지 본신을 찾는 것에 대부분 반대하고 있어."
"그렇겠지. 지금 본신을 찾으면 너희 전부를 갈아 마실 테니까."
"풋, 천사 몇 마리에 둘러싸여 반항도 제대로 못 한 네 녀석이 할 말은 아닌 것 같군."
【조심하십시오. 암미타는 당신의 심연을 꿰뚫어 보는 마법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대처해야 하지?'
【송과체를 비활성화 시켰습니다】
'그걸로 된 걸까?'
【송과체를 활성화하지 않으면 인간의 기억을 읽을 수 없습니다. 나노봇으로 가짜 데이터를 흘리고 있습니다】
"그렇게 들여다보지 않아도 돼. 쓸만한 정보는 없을 테니까."
"그의 말이 사실이군."
"누구?"
"너를 지켜보는 놈이 있어. 아라스테어의 본신을 부쉈더구먼. 놈은 영원히 이 차원에서 자신의 존재가 지워졌다. 넌 인간의 몸뚱이로 어떻게 그런 힘을 낼 수 있는 거지?"
"뭐, 어떻게 하다 보니 그렇게 된 거지."
"차원을 부숴버릴 정도의 능력은 일품 악마도 쉽지 않은 일이야. 물론 내가 힘을 보탰지만, 너의 힘으로 차원이 붕괴한 거지. 그 힘은 어디서 얻은 거지? 우리 쪽에게서는 준 적이 없어. 달리 말해 권능은 아니고 순수한 네 힘이라고 보는 것이 옳아. 자 그럼, 여기서 의문점 한가지. 어떻게 인간의 몸이 그 힘을 견딜 수 있을까? 이건 루시퍼도 이해 못하는 부분일 거다."
"글쎄. 난들 알수가 있나?"
"그리고 네 지식. 누가 가르쳐 준 것도 아닌데 돌아가는 상황을 너무 잘 이해하고 있어. 마치 옆에서 누가 속삭여 주는 것처럼 말이지."
"그런 놈이 있으면 좋겠구먼."
암미타는 나를 직시했다.
"내가 인간을 얼마나 접해 본 것 같은가?"
"세상 모든 다양한 인간을 경험해 봤을 테지?"
"물론! 길거리를 배회하는 아무 쓸모 없는 맨발의 거지부터 머리에 금관을 쓴 영웅이라는 자까지···."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은?"
"넌 규격 외품이라 불리지. 인간처럼 순수한 영혼은 없지만 담겨 있는 그릇은 인간 본연의 나약한 신체다. 그것이 너를 천사로부터 숨겨올 수 있었던 가장 완벽한 피난처였던 거고. 대신 그에 따른 제약은 고스란히 받아야 했지. 우리는 때를 기다렸다. 아마겟돈을···."
"아마겟돈이라. 이집트의 신이 성서의 내용을 믿는 거야?"
"존재하는 것은 부정될 수 없다. 이미 그 징조도 시작된 거다."
"지금 세상은 아마겟돈 그 이상이지. 인간은 곧 멸종 될 거잖아."
"그렇다고 생각하는가? 네 능력이라면 아담과 이브를 이 세계로 다시···."
"무슨 소릴 하고 싶은 거야?"
암미타는 잠시 말을 멈췄다가 다시 이어갔다.
"네 능력이라면 차원을 넘어 영혼을 이 세계로 데려올 수 있다는 거지. 전 우주에서 오직 너만이 할 수 있는 일이야."
"아담과 이브? 내가 무슨 전지전능한 신도 아니고 그런 일을···."
"할 수 있지. 루시퍼를 너를 빚기 위해 희생한 것이 어마어마했거든."
'녀석이 하는 소리는 무슨 소리야?'
【본신을 찾으면 다른 차원으로 이동할 수 있고 그곳에서 순수한 인간을 이곳 차원으로 점프시킬 수 있다는 것입니다】
"아하. 지금은 번식이 안 되니까 나더러 다른 차원에서 번식할 수 있는 인간을 납치해 오라는 이야기인가?"
"그건 아주 중요한 이야기 중에 하나야. 너라면 이곳에 새로운 낙원을 만들 수 있어. 천사가 관여하지 않는 낙원 말이지."
"말은 똑바로 하자. 낙원이 아니고 살아있는 지옥이겠지. 그리고 내가 뭐 하러 그딴 일을 해? 차라리 리셋하고 천지창조라도 다시 할까?"
"아서라. 네 능력으로는 아직 별은 만들지 못해."
암미타의 눈빛에는 거짓이 담겨 있지 않았다.
"지금 한 말이 모두 가능한 범위 내라는 거군."
"당연하지. 하지만 넌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아. 그걸 반대하는 놈도 상당히 많고."
"너희들 날 이용해서 도대체 무얼 하려는 거야? 정말 이 땅에 낙원이라도 만들 참이야."
"아. 조금 전 이야기는···. 예를 들면 이라는 거고 널 어떻게 이용할 건지는 위쪽에 있는 분들이 알아서 하는 거니까. 난 거기까지는 신경을 쓸 짬밥은 되지 않아."
"왜 이런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하는 거지. 내 기억을 뒤져 봐도 아무 의미가 없을걸."
암미타의 표정이 묘하게 변했다.
"어떻게 그 사실을 알고 있는 거지?"
"글쎄. 나도 알수가 없어."
"넌 시간을 너무 빨리 되돌리려 해. 급히 먹은 음식은 쉽게 체하는 법이지."
"체해도 내가 체하는 거니까 네가 걱정할 일은 아니잖아? 그렇지?"
"인간의 탈을 쓰고 있는 이상 그런 말할 처지는 아직 못되지."
"날 떠보려고 왔는데 소득이 없어서 어쩐다?"
암미타는 처음으로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좋은 커피라고 하더니 쓰네."
"원래 좋은 커피가 쓴 거야."
"잠깐만 기다려. 입에 더 맞는 걸 가져오지."
암미타는 일어나 뒷문으로 들어갔다.
【차원 뒤틀림이 발생했습니다】
'이집트의 신이라는 작자도 구라까고 도망가는군.'
짐작했던 바다. 놈은 나를 시험하기 위해 무한의 감옥으로 끌어 들인 것이고 그건 나를 싫어하는 악마의 입김이 작용했다는 거다.
'하긴 너의 존재를 알지 못하니 내가 가진 능력도 이해 범위를 넘어서는 수준이겠지.'
놈들은 언노운의 존재를 전혀 모른다. 순전히 이 힘은 언노운에 의해 얻은 것이니 더더욱 놈들은 의구심에 고개를 젓게 된 것이다.
세상 모든 비밀을 알고 있는 악마도 언노운의 존재는 전혀 알지 못한다. 언노운은 권능도, 신성력도, 차원도 아닌 순수한 인간의 과학이 만든 결정체이기 때문이다.
과학은 신이 먹지 말라 했던 금단의 열매 즉 지혜의 열매를 먹을 결과물이다.
정신적 아스트랄계를 기준으로 인간은 만들어졌다. 하지만 그들은 정신적인 내면의 진리보다는 눈에 보이는 욕망의 잔재인 과학을 선택했다.
그 산물의 결정체가 바로 언노운이다.
'시간의 흐름은 어떻게 되지?'
【이곳은 시간 자체가 존재하지 않습니다. 모든 것이 정지된 무의 세계입니다】
'즉 우리 시간으로 일 년을 있던 수천 년을 있던 내가 사라진 시점 그 상태인 거네?'
【이론상 그렇습니다. 이곳을 벗어나는 순간 접하는 곳에서 다시 새로운 시간이 시작됩니다】
'결국 난 아주 큰 아이티비에 들어온 것과 같구나.'
【차원 구조가 와해 되기 시작합니다】
이 커피숍은 암미트의 권능으로 만들어진 작은 차원이다. 암미타가 사라지자 그의 권능이 서서히 붕괴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곳은 빛과 어둠조차 존재하지 않는다. 어둠이 존재하지 않는 곳이니 어둡다고 표현할 수 없지만 사실 까만색이다. 내가 호흡하는 소리조차 들리지 않으며 뿜어내는 이산화탄소조차 곧 증발해버린다.
무한의 감옥이라는 말이 적절하게 어울리는 곳이다. 한 번 발생한 에너지는 영원히 멈추지 않는다. 암미트와 싸우면서 폭발한 차원 에너지가 계속 나를 밀어내고 있다.
마치 빅뱅에 의해 우주가 팽창하며 은하가 우주의 중심에서 계속 멀어지는 것과 같이 말이다.
'여기서 뭘 하든 어차피 돌아가면 내가 튕겨 나간 그 시점으로 돌아간다는 거지?'
【그렇습니다】
'지금 돌아간 암미타가 뮤턴트를 몰살시켜도 나와는 이미 별개의 차원이네.'
【그렇습니다. 차원 분기는 암미타가 돌아간 순간 발생했습니다】
'그럼 망설일 필요가 없네. 우리 차원으로 돌아가자.'
【역추진 에너지를 발산합니다. 충격에 대비하십시오】
'넌 모든 걸 진즉에 알고 있었던 거지?'
-쾅
- 작가의말
검사 했는데 다행히 몸살 감기였습니다.
그냥 생각 없이 주말 푹 쉬었습니다.
지금은 완전히 회복 했습니다.
그 동안 많이 빠졌는데
열심히 달려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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