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체 실험장
생체 실험장
안에서 역한 냄새가 풍겨왔다. 방독면이 아니라면 괴로울 정도의 냄새다.
어둡지 않다는 것은 조명이 있다는 것인데 신기한 것이 그냥 전체가 밝다. 아주 밝은 정도는 아니고 해지는 저녁쯤의 밝기랄까?
빛을 내는 조명은 따로 없는 것 같은데 건물 안 전체가 그 정도 밝기를 유지하고 있다. 그 어디에도 빛을 내는 장치는 보이지 않는데 말이다.
언노운은 빛을 내는 원리를 바로 찾아냈다. 빛은 건물 위쪽에서부터 은은하게 내려오고 있었다.
밖에서도 회색빛 하늘에 구름 같은 것으로 덮여 있어 태양이 있는지조차···. 아, 빛이 있다는 것은 빛을 내려주는 항성이 있다는 소리지.
여기서부터는 나선형 계단이 위로 나 있다. 그 옆으로 에스컬레이터 같은 장치가 배아가 든 상자를 위로 쉼 없이 올리고 있었다.
이곳이 생체 실험장이라고 가정 할 때 아무것도 없는 행성에 실험장을 만들지는 않았을 거다. 지구처럼 기존의 생명체가 있는 행성이거나 아니면 생명이 충분히 생존할 자연환경이 있는 것이 훨씬 효율적이니 말이다.
이 행성도 분명히 골디락스 존에 위치한 행성일 거다. 이 행성의 온도가 극도로 낮은 이유는 지구보다 두 배는 두꺼운 대기가 항성의 빛을 차단하기 때문이다.
마음에 걸리는 것은 방사능으로 오염된 대지다. 언노운도 말했다시피 이건 자연적인 현상으로 만들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인공적인 외압이 작용했다는 것이다.
이 행성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수 없다. 단지 나는 초월체가 남긴 어떤 유산 속에 있다는 것만이 현실일 뿐.
나선 계단을 타고 오르자 위쪽 층의 복도가 모습을 보였다.
층이라고 구분 짓기에 애매한 것이 층이 딱딱 구분되어 이루어진 것은 아니다. 아래층에서는 천정이 거의 3층 높이에 해당했고 지금은 아주 낮은 천정을 가지고 있었다.
'위치 파악해.'
방독면을 쓰고 있어서 답답한 면이 없진 않다. 특히 좁아진 시야각은 상당한 불편을 주었다.
이어링에 생명체의 점등이 뜨기 시작했다.
아주 연한 초록색 그리고 진한 초록색
초록색의 점등은 대부분 공격 성향이 없는 생물을 뜻한다. 그것도 아주 연한 빛의 생물은 내 기준으로 보면 벌레 수준이다. 진한 색 같은 경우도 대동소이한데 공격 성향이 있더라도 전혀 위해가 되지 않는 수준이다.
붉은색이나 적대 관계에 어느 정도 전투력을 가진 녀석이라면 보라색 정도는 되야 거의 동급의 전투력 정도로 본다.
솔직히 나약한 인간의 몸을 가지고 있긴 하지만 보유 잠재력은 웬만한 2급 악마는 거뜬히 상대할 수 있고 천사와도 겨룰 수 있는 수준이다.
전투력으로만 계산하면 그렇지, 실제는 상당한 제약을 받을 수밖에 없다. 그건 내 몸 자체가 인간의 몸뚱이고 그간 조금씩 단련했다고 해도 지금은 모든 능력치가 한계점에 걸린 MAX 상태라는 것이다.
이젠 더는 코드 네임을 통해 레벨업 할 수 없는 처지에 이른 것이다. 천사는 물론이고 악마도 우주 공간에서 제약없이 행동할 수 있다. 그런 면에서 볼 때 인간의 육체는 거추장스럽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지금 이 행성에서도 마찬가지다. 방독면을 사용하지 않으면 온갖 유독 가스를 다 흡입해야 하고 폐가 망가지지 않도록 언노운이 바쁘게 움직여야 한다.
지금도 피부 호흡을 통해 그나마 부족한 산소를 공급받지 않으면 이 행성에서 움직임에 상당한 제약을 받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여러모로 인간의 육체는 상당히 나약하다. 반대로 아스트랄계는 너무나 환상적이지만 영혼을 담고 있는 육체의 한계는 실로 미약하지 않을 수 없다.
복도 같은 곳은 금방 끝이 났고 다시 커다란 광장 같은 곳이 펼쳐졌다. 광장이라고 표현해서 구조물이 없는 것이 아니라 수많은 장비가 가득하여 있었다.
단지 시각적 범위가 넓다는 의미로 광장이라고 사용한 것이지 내부는 빼곡한 그 무엇들로 가득 차 있었다. 그 무엇이라는 것은 아주 작은 크기의 생명체가 어떤 기계 장비에 매달려 있는데 매달린 것은 긴 타원형 알처럼 생겼고 그 안에 차렷 자세로 서 있는 생명체가 있었다.
아까 벽 사이에서 본 것들과는 다른 정상적인 모습이다. 인간과 아주 흡사했는데 신체에 두 팔과 두 다리가 달린 이족이라 직립보행이 가능한 생명체였다.
얼굴의 생김새를 제외하면 인간과 완전히 똑같다고 할 수 있다. 눈에 보이는 것만 비교하면 피부가 전혀 달랐다. 이건 뭐랄까 지구에서는 비교 대상이 없을 만큼 끈적하고 미끈한 느낌? 양서류의 피부는 또 아니다. 생각보다 거칠고 두껍게 보이니까.
만져본 적이 없어서 강도는 어느 정도인지 파악이 되지 않는다. 몸에 털은 하나도 없고 생식기도 없다. 다만 남녀 구분은 어느 정도 할 수는 있어 보였다.
손가락 발가락이 모두 다섯 개인 것은 인간과 아주 흡사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기형이 아니었다. 벽 사이에서 본 기형들이 이 생명체와 같다는 것은 금방 알 수 있었다.
아마 돌연변이 일 듯싶었다. 인간도 간혹 잘못된 운명을 지니고 태어나는 돌연변이가 있으니까. 더욱이 여기는 생체 실험장이고 하니 돌연변이들이 훨씬 많을 거라는 생각이었다.
생각보다 엄청난 수였다. 알처럼 매달린 장치들이 이 광장 안을 빼곡히 채우고 있으니까. 언 듯 보기에도 수만은 넘어 보였다.
인상을 찌푸리게 만든 것은 역시나 이 알들 속에 들어 있는 액체다.
마치 자궁 안의 양수를 생각케 만드는 이 액체가 무엇인지 알기 때문이다.
언노운의 말로는 효율적이다. 에너지 낭비 없는 재생산 방식은 그 어떤 문명에서도 꼭 필요한 기초 공정의 하나라고 판단한다.
주렁주렁 매달린 알들은 컨테이너 벨트 같은 곳으로 이동하고 있었다. 안에 들어 있는 생명체는 무어라고 부르는지조차 모르지만 벌써 제법 자라 서너 살 정도의 아이 모습이었다.
내가 인간이라 선입견을 품은 것인지 모르지만, 대상의 얼굴은 상당히 그로테스크한 모습이다. 콧구멍 대신 작은 구멍 두 개에 입은 없고 꼭 마스크를 쓴 모양에 귀도 없다. 단지 두 눈의 위치만 인간과 그나마 흡사했다.
컨테이너 벨트로 옮겨져 일렬로 길게 이동하는 모습을 보고 여기가 무슨 공장인가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컨테이너 벨트를 따라 이동하니 다음 층으로 올라가는 문이 나타났다.
문은 열 방법이 없어 구멍을 내고 위로 올라갔다.
고강도 금속이라고 하지만 로블룩스의 검 앞에서는 상대가 되지 않았다.
그리고 다음 구획에서 이루어지는 것을 보고 망연자실할 수밖에 없었다.
여기서 진한 녹색으로 표기된 예의 그 난쟁이들을 보았는데 역시나 가슴에 머리가 박힌 놈들이다. 작은놈들은 150cm 정도의 키를 가졌는데 언노운의 말로는 생체 갑옷을 입고 있다고 한다.
가슴 정중앙에 박힌 머리통은 상당히 컸다. 가슴에서 거의 삼분의 일 정도나 되는 비정상적인 크기다. 알에 들어 있는 생명체와는 완전히 다른 구조의 생명체다. 이놈은 눈과 입, 코는 물론 심지어 귀도 있었다.
가끔씩 자기들끼리 뭐라고 이상한 소리는 내는 것을 보니 언어를 구사하는 것 같기도 했다. 놈들은 제 할 일에 집중하여 근처에 내가 있어도 전혀 알아차리지 못했다.
ITB에서 네루이루의 반지를 꺼냈다.
망각의 마천루에서 VVIP으로 제공됐던 아이템인데 바로 원하는 모습으로 변신할 수 있는 기능이 있는 반지다. 이 반지를 착용하면 원하는 모습으로 변신할 수 있다.
망각의 마천루에서 변신할 때 사용한 것이다. 여기에다 내 기본 기술인 피부가압중압체를 사용하면 네루이루의 단점을 보완할 수 있다.
네루이루의 변신 반지는 상급 악마를 속이지는 못한다. 피부가압중압체는 원래 피부의 세포를 단단하게 경질화 시켜 외부의 물리적 데미지를 완화하는 기술인데 이것도 MAX 상태에 더는 업그레이드 불가 기술에 들어갔지만 대신 피부를 움직여 원하는 모양으로 바꿀 수 있는 능력을 갖췄다.
이것은 외형만 바꿀 뿐이어서 기라든지 내부를 꿰뚫어 보는 자에게는 별 소용이 없는 스킬이다. 그런데 네루이루의 반지는 외형은 속임수지만 내부의 능력을 속일 수 있는 마력이 내재하여 있어 피부가압중압체와 궁합이 아주 좋았다. 피부가입중압체는 말 그대로 내 피부만 변형시키기에 장착하는 장비들은 모두 그대로다.
하지만 네루이루의 반지는 외형을 변형시키는 것이 아니라 일종의 환영과 같이 속임을 주로 하는 것이기에 본질은 그대로인 상태에서 타인의 눈에 전혀 다른 모습으로 비치는 방식이다. 그래서 장비나 무기 등도 전혀 다른 모습으로 보이도록 할 수 있다.
서로 장단점이 있는 것이다. 지금 난쟁이로 변신 할 때는 피부가압중압체 보다는 역시 네루이루의 반지가 훨씬 효과가 컸다.
난쟁이 모습으로 변신해서 은근슬쩍 그들 틈에 끼어들었다. 솔직히 이곳이 초월체가 만든 지식의 산물이라는 생각에 과격한 행동보다는 이곳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호기심이 더 컸기 때문에 귀찮은 일을 할 대가가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난쟁이들의 언어는 전혀 모른다. 언노운도 생소한 외계어를 해독하는 데 상당한 시간이 필요했기에 지금은 그냥 눈칫밥 보는 것이 한계다.
다행히도 이들은 동료를 크게 인식하지 않고 자신이 해야 할 일에만 집중하고 있었기에 그들 틈에 무난하게 섞일 수 있었다.
참으로 부산하게 움직인다. 조금도 쉬지 않는다. 손에는 기이한 장치를 장비하고 있으며 필요에 따라 장비를 교체하는 것 같다.
이들은 악마도 몬스터도 아닌 유기적인 세포 구조를 가진 완벽한 외계 생명체다. 나는 외계인과 함께하고 있지만 먼젓번에도 말했듯이 오티우르스 사건도 있고 해서 외계인에 대한 거부감은 딱히 없는 것 같다.
변신하니 숨을 필요도 없고 대놓고 딴짓해도 딱히 이상한 눈으로 보는 놈도 없는 것 같다. 컨테이너 벨트를 따라 이동해 보니 이놈들이 벨트에 붙어서 뭔가 주사기 같은 것을 들고 알에다 다른 액체를 투여하는 것 같다.
언노운은 그것이 유전적 변이를 촉진 시키는 것이라고 했지만 기술이 지구의 과학과는 달라 정확한 분석은 어렵다고 한다.
딱 보니 알에 들어 있는 것은 일종의 실험체들이고 이 난쟁이 같은 놈들은 이곳을 관리하는 즉 노동력을 제공하는 것 같다.
사실 기계가 해도 될법한 일을 따로 이 개체가 하는 이유는 모르겠다.
이들도 생명체라 노동력을 내기 위해서는 에너지가 필요할 거고 입이 있으니 무엇이든 먹을 것이 필요할 것인데 왜 이런 불편을 감수하고 이런 난쟁이를 부리는 것인지 모르겠다.
건물 안 기계들은 매우 정확히 움직이며 오차율도 거의 없이 완벽한 상태였다. 내가 문을 부수든 말든 신경도 쓰지 않는다. 그저 제 할 일에만 집중할 뿐이다.
'이놈들 지능이 미개한 거냐? 아니면 다른 이유라도 있나?'
【본능만 활성화 되어 있으며 다른 개성적인 성향은 완벽히 말살되어 있습니다】
'감정이 아예 없다는 것인가? 그럼 저 행동은 그저 순순한 본능에 기인한 거란 말이지?'
【그렇습니다. 주변의 환경에 대한 인식능력이 전혀 없습니다】
'그럼 명령한 대로 움직인다는 것은 기계와 다른바가 없잖아?'
【완벽한 기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아니 이상하군. 그런 바에야 기계를 쓰지 생식 능력이 필요한 생명체는 왜 쓰는 거지?'
【특별한 이유가 있을 것 같습니다. 위층으로 올라가서 좀 더 조사해 봐야겠습니다】
부서진 문을 지나 나선형 계단을 올랐다. 사실 이곳은 엄청난 넓이를 자랑하는데 대부분 마스크맨 제조와 관련된 시설뿐이다.
이번 계단은 상당히 높았다. 층이라고 해야 하나 다음 레벨에 오르기 위한 계단의 수는 계속 늘어간다.
'음? 무슨 소리가 들리는데 비명인가?'
앞을 가로막은 문을 잘라내고 안으로 들어섰다.
'문의 두께도 늘었어. 거의 1m 이상인데···.'
일단 소리가 들리는 쪽으로 갔다. 지금까지 구조는 대부분 비슷비슷했기 때문에 헤맬 염려는 없었다.
기이한 소리는 마치 누가 입으로 손을 막아 비명을 못 지르게 막는 것 같은 답답한 소리였다.
이곳은 따로 문이 없다. 층을 오르는 큰 문 외에는 모든 시설은 개방적이었다.
저 코너를 돌면 넓은 광장이 나올 거란걸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었다.
"우어엉, 우어어어, 우어어어"
답답한 소리가 코너 안쪽에서 계속 쏟아져 나왔다.
호기심 속에 코너를 돌자 눈 앞에 펼쳐진 것은 아주 밝은 빛이 쏟아지는 곳이었다.
역시나 분주한 난쟁이들은 중앙 둥그런 벨트 컨베이어 위에 놓인 알 같은 것을 잘라 내고 있었다. 그 안에는 거의 성인의 모습을 한 마스크맨이 들어 있었다.
난쟁이가 알을 가르자 안에서 붉은 액체가 쏟아져 나왔고 그것은 컨테이너 양옆 배수구로 모여들어 흘러나갔다. 알에서 막 튀어나온 마스크맨은 제대로 일어서지도 못하고 허우적거렸다.
난쟁이 두 명이 이리저리 살펴보고는 바닥으로 끄집어 집어 던졌다. 그러자 뒤에서 대기하고 있던 다른 난쟁이 두 명이 허우적거리는 마스크맨을 손수레 같은 것에 태워 잽싸게 중앙 기계로 가서는 그 위에 올려놓았다. 마지 접시 모양의 쟁반 같은 기구였다.
그러자 위에서 회전하는 톱날 같은 것이 내려오더니 허우적거리는 마스크맨을 갈아 버리기 시작했다.
몸이 갈리는 순간 '우어어, 우어어' 하는 답답한 비명이 터져 나왔다. 입이 없어서 제대로 된 비명을 못 질러 괴이한 소리가 났다.
아까부터 들리던 그 소리가 바로 이 소리였다. 몸이 갈리는 것도 천천히 갈리다 보니 그 고통에 괴롭게 소리쳤던 것이다.
그러나 말거나 난쟁이들은 제 할 일에 정신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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