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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아라우카나
작품등록일 :
2019.04.01 15:03
최근연재일 :
2019.09.07 08:00
연재수 :
166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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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1,103,6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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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8.31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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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쪽

159화. 각성

DUMMY

마당에서 기세 좋게 소리치는 최 첨정. 우연인지 몰라도, 그 자리에 최 첨정의 얼굴을 아는 사람은 없었다. 다만, 정인지가 창 쪽으로 다가가 힐끗 내려다보며 말했다.

“저 치가 최 첨정인가...”

“아는 사람인가?”

김종서가 물었다.

“저하께 말씀만 들었사옵니다.”

“어떤 사람인가? 말이 통하겠는가?”

“지금까지는 아리송했사오나, 여기 나타난 것을 보니 역시 천하에 둘도 없는 악인일 겝니다.”


그렇지. 최 첨정 이 자식은 고문당하던 상황에서도 춘랑을 물고 늘어져서 저게 악인인지 아니면 이용당한 녀석인지 아리송하게 만들었던 놈이었지. 하지만 지금 저 꼴을 보아하니, 날 속인 거였어! 저 죽일 놈!

김종서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저 인간의 꿍꿍이가 뭘까?”

“아마도...”

정인지가 고개를 돌려 충녕을 바라보았다. 충녕이 흠칫 놀라며 책이 있는 가슴팍을 가렸다. 그들의 추측은 맞았다. 충녕이 칠요산을 가지러 올 것을 알아챈 성녕이 최 첨정을 파견한 것이었다.


김종서가 최 첨정을 향해 소리쳤다.

“우리는 도적이 아니다! 서로 오해가 있으니 섣부른 짓은 하지 말아라!”

“시끄럽다! 얘들아!”

최 첨정이 장정들에게 고개를 까딱했다. 그러자 장정들이 들고 있던 횃불을 별당에 던지려고 했다. 김종서가 놀라 소리쳤다.

“멈춰라! 우리는 이 댁의 손님이다!”

“...”

“참인지 거짓인지는 주인을 불러오면 알 터! 너희는 어서 주인마님을 불러오거라!”

“핫핫핫핫!”


최 첨정이 고개를 젖히고 웃었다. 왜 저래? 별당안의 충녕들이 어리둥절했다.

“이걸 어쩌나? 우리가 이 댁의 하인배들인줄 아셨나보지?”

“무슨 뜻이냐?”

“이 댁 분들은 지금 다들 얌전히 묶여 계시지.”

“!”

“자, 그 안에서 맥적구이가 되기 싫으시면, 어서 책을 넘기시지.”

“!”

최 첨정의 말은 놀라움의 연속이었다. 자신들이 뭘 하러 왔는지 정확히 알고 있고, 강중의 집 사람들도 잡아놓고 있다니? 대체 속셈이 뭐지?


“책만 넘겨주면 무사히 보내주겠다. 허나, 괜히 딴맘을 먹거나 책을 손상시킨다면 별당과 함께 다비시켜 주겠어!”

“너! 여기 계신 분이 누군지 알고 방자한 입을 놀리는 것이냐!”

“흐흐흐. 호랑이 이름도 모르고 굴에 들어왔겠소?”

“너...”

“하핫! 뒷감당이라면 걱정 마시오. 그러기 위해서 주인댁을 잡아 둔 것이니.”

“...!”

“만약 불행한 사태가 일어난다면, 여기 주인댁 사람들은 도둑을 잡으려다 별당을 불태우고 싸우다가 번진 불에 다 같이 죽었다고 하면 될 것이오. 우리야 유유히 걸어 나가면 그만이고.”


최 첨정의 속셈이 드러났다. 책을 넘기면 무사히 보내주겠지만, 책을 손상시킨다면 충녕을 죽이고 죄를 강중의 집안에 뒤집어씌우겠다는 속셈이었다. 이 철저하고 잔인한 플랜은 딱 봐도 성녕의 머리에서 나온 것이겠지.

“책을 넘겨야 하나?”

김종서가 정인지를 보며 물었다. 정인지는 심각한 표정으로 생각에 잠겼다. 그 때, 충녕이 겁에 질린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책을 넘긴다고 살려준다는 보장이 있냐는...”

“허나 굳이 책을 원하는 것을 보면, 그렇지 않겠사옵니까?”

“책이 있어야 내가 이 오밤중에 여기 온 것이 설명이 된다는... 나를 태워죽이고 이 책의 잔해를 그 옆에 두면 완벽할 거라는...”

김종서와 정인지가 흠칫했다. 과연 충녕이 말한 대로였다. 이대로 그들을 태웠다간 칠요산도 완전히 불타버릴지도 모른다. 완벽한 사건 현장을 꾸미기 위해선 온전한 책을 나중에 적당히 그슬리기만 해서 충녕의 시체 옆에 두는 것이 베스트다. 그 책을 태종에게 보여준다면, 아들의 죽음이 납득이 되겠지. 다들 잊어버리지만, 이 뚱땡이는 썩어도 세종이라니깐.


“허면... 어쩌지요?”

“모른다는...”

내가 알고 있는 가장 머리 좋은 두 사람이 이 방에 있었지만 속수무책이었다. 김종서 또한 지략과 용력을 겸비한 인재였지만, 창밖의 최 첨정만 쏘아볼 뿐 방법이 없었다.

그 때, 장정 몇 놈이 와서 별당 밑에 무엇인가를 뿌렸다. 냄새가 금방 올라왔다. 기름이었다!

“나무와 종이, 그리고 기름이라. 세상 잘 타는 것 삼합이로구만! 핫핫핫!”

최 첨정이 크게 웃었다. 김종서가 소리쳤다.

“책을 넘겨준다면, 진정 우리를 보내주겠느냐!”

“속고만 사셨나~”


정인지가 발끈해 소리쳤다.

“네 놈은 어린 기녀들을 등쳐먹고 살았던 놈이 아니냐! 네 말을 어찌 믿으란 말이냐!”

“허! 소인에 대해 알고 계신 분이 계셨습니까? 이거, 송구스러워 어쩔 줄 모르겠사옵니다.”

“오늘 데려온 녀석들도 네 놈이 약점을 잡고 있는 놈들이겠지?”

“...”

최 첨정이 말없이 냉소했다. 잠시 별채를 쏘아본 최 첨정이 소리쳤다.

“자! 이제 잡담은 그만이요.”

그러더니, 작은 초를 하나 꺼내들고 거기에 불을 붙였다. 대체 뭘 하려는 거지? 하지만 김종서는 곧 그가 무슨 짓을 하려는지 눈치 채고 흠칫 놀랐다. 최 첨정은 기름이 흥건한 별당 아래 땅바닥에 초를 내려놓았다.


“저 초가 다 타기 전까지 결정하시우.”

최 첨정이 초를 놓고 물러나오며 소리쳤다. 딱 봐도 짤뚱막한 초가 다 타는데 얼마의 시간이 걸릴 것 같지 않았다. 김종서가 창에서 벗어나 정인지에게 말했다.

“어서 무슨 수를 내야하내.”

“뚫고 갈 수 있을까요?”

“수가 너무 많아.”

“만약, 대군만이라도 살릴 수 있다면...”

“그치만, 도망쳐도 이 뚱땡이가 담을 못 넘잖아!”

어리의 명치를 때리는 팩폭에 두 사람이 입을 다물었다. 충녕도 시무룩해서 고개를 숙였다. 어리가 그런 충녕을 보며 소리쳤다.


“야! 약을 먹어!”

“엥? 이라는...”

“먹으라고!”

“하, 하지만 이건 별 도움이 안 될 거라는...”

“상관없어! 먹어 봐! 뭐라도 해야 할 것 아냐!”

내 생각에도 약을 먹는 것이 이 상황에 딱히 도움은 되지 않을 것 같은데. 하지만 어리가 무서운 충녕을 협박했다.

“너! 그 약 안 먹으면 내가 걷어 찰 거야!”

“윽! 알았다는! 알았다는!”


충녕이 약병을 꺼내들었다. 그리고 숨을 급박하게 들이마셨다. 충녕은 비장했지만, 정인지와 김종서는 별 기대를 하지 않고 바깥의 상황을 주시하고 있었다. 충녕이 살기등등한 어리를 한 번 쳐다보더니, 약병의 봉인을 풀고 약물을 입안으로 털어 넣었다.

“어때?”

멍- 한 표정으로 굳어있는 충녕을 보며 어리가 물었다. 충녕은 고개를 갸웃했다. 이게 뭐지? 뭐지? 하는 표정이었다. 그러다가 갑자기 악! 소리를 질렀다.

“악! 매워! 매워! 이게 뭐냐는!”

충녕이 쓰러져서 바둥거렸다. 처음에는 매워서 입을 헉헉 거리더니, 이젠 배를 잡고 뒹굴었다.


“아프다는! 아프다는!”

“괘, 괜찮아?”

어리가 걱정을 해 줄 정도였으니 상당했나보다. 정인지와 김종서도 화들짝 놀라 충녕에게 달려왔지만, 방도가 없었다. 충녕은 아픈 배를 잡고 끙끙거렸다.

“맵다는! 아프다는!”

“큰일이다!”

정인지가 충녕을 살펴보곤 놀라 창 쪽으로 다가가 최 첨정을 향해 소리쳤다.

“어서! 의원을 불러라!”

“하이고, 조금 있으면 비단 이불에 기녀도 불러달라고 하시겠소?”

“너 이놈! 지금 여기 계신 분이 뉘신지 알고 이러는 것이냐!”

“에에에! 그만! 더 이상 말했다간 촛불이고 뭐고 바로 불을 질러 버릴 거니까!”


최 첨정이 갑자기 옆에 있던 놈의 횃불을 뺏어 흔들었다. 그의 협박에 정인지의 말문이 막혔다. 다시 김종서보고 물었다.

“방법이 없는 것 같습니다. 일단 책을 넘기지요.”

“그게 최선이겠지.”

김종서가 고개를 끄덕이고 책을 꺼내기 위해 충녕의 품에 손을 댔다. 그러자 갑자기 충녕이 그의 손목을 콱! 하고 잡았다.

“대군!”

“섣부른 행동을 하지 말라.”

김종서가 흠칫 놀랐다. 쓰러져 눈을 감고 신음하던 충녕이, 어느새 눈을 날카롭게 뜨고 그의 손목을 꽉 잡고 있었다.


다시 일어난 충녕의 분위기가 완전히 변해있었다. 세종대왕 모드를 처음 본 두 사람이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지 몰라 어리둥절했다. 어리만이 두근두근 거리며 기대하는 표정이 되었다.

“악인과 타협할 순 없는 법이다. 책은 넘겨주지 않는다.”

“대군... 모, 몸은 괜찮으십니까?”

“형님이 주신 약이 신통하구나.”

충녕이 약병을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약이 뭐였냐고? 뭐긴 뭐야. 그냥 엄청 매운 엑기스였지. 이 시대 와서 보니까, 조선 사람들은 매운맛을 잘 몰랐더라고. 우리 조상 맞어? 김치도 허연색이고. 매운맛은 정말 찾아보기 힘들었어. 하긴 고추도 없고. 마늘도 많이 안 쓰이고. 그래서 내가 수라간 상궁 한 명에게 부탁해서 그나마 있는 재료를 가지고 만들 수 있는 가장 매운 맛을 만들어 달라고 했지. 내가 살짝 맛 봤는데, 좀 매운 비빔면 소스 정도? 역시 고추 없이 매운맛 낸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더라고. 그래도 이 시대 사람들에게 조금 맛보게 하니깐, 다들 파이어닭비빔면 먹은 외국 유튜버 만큼 방방 뛰던데? 매운맛이 익숙지 않아서 그런지 속도 아프다고 난리를 피우고. 그래서 이 정도면 독이라고 뻥칠 수 있겠다 싶었지.


사실 도박이었어. 충녕의 세종대왕모드는 덕후의 인격 속에 봉인되어 있었잖아? 그게 정신을 잃으면 잠깐 나타났다가 사라지곤 하는 거지. 허나 요새 충녕은 세종대왕 모드로 생활하길 무의식중에서 바라고 있는 것 같고, 그 봉인을 풀려면 작은 플라시보 효과만 있으면 되지 않을까 생각했던 거지. 그렇다고 함부로 독을 쓸 수도 없고. 세종대왕 되기 전에 이 뚱땡이 마지막으로 골탕한번 먹여 보고 싶기도 하고. 그래서 매운맛을 고른 거지.

좋아, 도박이 성공했나 보네.


매운 것을 먹고 실컷 땀을 흘린 충녕이 상쾌하면서도 위엄 넘치는 표정으로 정인지에게 물었다.

“저 최 첨정이라는 자에 대해 아는 대로 말해보라.”

“대, 대군.”

그 때, 냥- 하면서 웬 빠돌이 고양이 한 마리가 충녕의 얼굴로 달려들었다. 그리고 충녕의 얼굴에 자신의 머리를 들이밀고 비벼대었다. 다들 깜짝 놀라 고양이를 붙잡으며 소리쳤다.

“대군!”

“괜찮으십니까? 아니, 이 고양이가 갑자기 왜 이래?!”

“방울아!”


...

...

준냥 이 썩을 놈이. 때와 장소를 못 가리고! 세종의 숨덕이었던 준냥이가 충녕이 각성하자마자 정신을 못 차리고 달려든 것이었다. 준냥이가 어리에게 꼬리를 붙잡혀 겨우 떨어졌다. 정인지가 한숨을 돌리며 말했다.

“말씀드리는 것은 어렵지 않사오나, 시간이...”

그러자 어리의 품에 잡혀있던 준냥이의 표정이 변했다. 갑자기 냥! 하며 반대편 창으로 튀어나가더니, 몰래 별당 아래로 내려갔다. 그러더니 촛불로 살금살금 다가가 훅! 하고 불을 꺼버렸다. 최 첨정의 패거리들은 아무도 눈치 채지 못했다. 다행히 김종서가 그것을 보고 최 첨정의 시선을 잡아두기 위해 말을 걸었다.


“좋다! 책을 넘기겠다!”

“자알 생각하셨소!”

“헌데, 책을 넘기면 우리의 목숨은 보장하는 것이 확실한가!”

“거 참, 아직도 모르시겠소? 댁들이 흥정할 처지가 아니야!”


김종서가 최 첨정에게 말을 걸면서 손을 뒤로 빼서 정인지를 향해 진행하라는 듯 빙글빙글 돌렸다. 정인지가 고개를 끄덕이고 화급히 충녕에게 최 첨정에 대해 아는 대로 말했다. 일을 마친 준냥이가 별당 안으로 돌아와 은근 슬쩍 충녕의 품에 안겼다. 충녕이 정인지의 말을 들으며 준냥이를 안고 쓰다듬어 주었다. 준냥 인생 최고의 순간이었다.


한 편, 김종서가 시간을 끌고 있다는 것을 알아챈 최 첨정이 뭔가 이상하다고 느끼고 바닥을 쳐다봤다. 촛불이 꺼져 있는 것을 발견한 최 첨정이 분노해 소리쳤다.

“끝이다! 이제 끝이야! 다비 시켜주마!”

“잠깐!”

갑자기 별당의 창문에서 뭔가가 우르르 쏟아져 나왔다. 놀란 장정들이 급히 물러섰다. 질끈 눈을 감았던 그들이 쏟아진 것의 정체를 파악하고 눈이 휘둥그레졌다.

“돈이다!”

“으, 은자다!”

“패물이다!”


장정들이 우르르 달려들어 그것들을 집기 시작했다. 다들 손이 부족한지 횃불도 놓고 허둥지둥이었다.

“이놈들아! 뭐하는 짓이냐!”

최 첨정이 고래고래 소리쳤다.

“뭐긴. 너는 사유고연(事有固然)이란 말도 못 들어봤느냐? 사람들이 아침 시장에 몰리고 저녁 시장에 없는 이유는, 그들이 아침을 좋아하고 저녁을 싫어하기 때문이 아니다.”

그 북새통에 어느새 충녕이 내려와 있었다. 최 첨정이 깜짝 놀라 아무 말도 못했다. 장정들도 놀라 물러섰다. 충녕이 그들 앞에 다가가 말을 마쳤다.

“저녁 시장에는 물건이 없기 때문이지.”

“뭔 개소리야!”

“너도 이제 저녁 시장이 되었다는 소리다. 궁금하면 맹상군을 읽도록.”


별당의 마당이 조용한데, 어디서 준냥이가 오르가즘 느끼는 소리가 들렸다. 장정들 사이에 충녕의 카리스마는 대단했다. 충녕이 바로 앞에 있어도 잡기는커녕 꿈쩍도 하지 못했다. 김종서와 정인지도 별당의 계단에서 멍- 하니 그 모습을 쳐다보고 있었다. 충녕이 최 첨정을 보며 날카롭게 물었다.

“어찌해서 별당 안에 어떤 사람이 있는지 밝히기를 꺼려했느냐?”

“뭐?”

“정 주부가 내 정체를 밝히려 하자 급히 협박해 막았겠다? 그 말뜻은 무엇이겠느냐. 네가 데려온 이 녀석들이 내가 누군지 알면 동요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해서였겠지.”

“여봐라! 어서! 어서 불을 던져라! 이 녀석을 죽여!”

“어디 해 볼 테면 해 보거라! 나는 조선의 삼왕자 충녕 대군이다!”


횃불을 들고 있던 장정들이 왕자라는 말에 깜짝 놀랐다. 과연, 이 녀석들은 최 첨정이 껀수 있다는 말에 끌려온 녀석들이었다. 아마 죽은 이화관 문지기 현복이 같은 녀석들일 거다. 일이 무사히 끝났어도 자기들이 왕자를 죽였는지 끝까지 몰랐겠지. 아니, 성녕의 손에 몰살당하지 않았을까?

어쨌든 충녕의 말에 아이고- 소리를 지르며 무릎을 꿇고 엎드리는 녀석들이 나타났다. 그리고 대부분은 엉거주춤한 자세로 서로의 눈치를 보고 있었다.


그 와중에 녀석들이 떨어트린 횃불에 의해 기름에 불이 붙었다. 그리고 불은 곧 별당으로 번졌다. 계단에 서 있던 김종서들이 놀라 급히 마당으로 내려왔다. 하지만 등 뒤에서 별당이 불에 타고 있는데도, 충녕은 꼼짝도 하지 않으며 장정들에게 소리를 질렀다.

“아직도 머리를 들고 있는 녀석들은 어찌 죽고 싶은 게냐?”


충녕이 노한 것을 억누르는 목소리로 외쳤다. 왕자란 사람의 뒤에선 불이 활활 타오르고, 그에 지지 않을 정도로 타오르는 안광, 그리고 위협적인 목소리. 나머지 녀석들도 도저히 버티지 못하고 바짝 엎드렸다. 이제 일어서 있는 것은 몇 놈 되지 않았다.

그러자 픽픽! 소리가 나더니, 그때까지 서 있던 몇 놈이 윽! 윽! 하는 소리를 내며 그대로 주저앉듯 쓰러졌다. 엎드려 있던 놈들이 힐끗 쓰러진 놈을 보고 힉! 하며 비명을 질렀다. 이마에 젓가락 같은 화살이 박힌 채 절명한 것이었다.


충녕은 연노를 소매에 가린 채 발사했기 때문에, 패거리들은 대체 무슨 조화로 그들을 죽였는지도 몰랐다. 부하들이 죽는 꼴을 본 최 첨정이 이제 새파랗게 질려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충녕이 그를 향해 천천히 다가갔다.

“네 놈은 순진무구한 소녀들을 꾀어 기녀를 만들어 주겠다 하여 겁탈을 일삼고, 그것을 약점 잡아 온갖 더러운 짓을 해 왔다. 그도 모자라 권력의 개가 되어 이젠 살인 방화까지 일삼고, 감히 나라의 왕자를 시해하려 했다.”


충녕이 최 첨정의 코앞까지 왔다. 방금 전까지 나불대던 최 첨정이 하얗게 질려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충녕은 힐끗 그가 허리춤에 차고 있는 칼을 보고 눈썹을 찡그렸다.

“감히, 갑사도 아닌 것이 도성 안에서 함부로 칼을 차고 다녀?”

“대, 대군- 살려 주십시오! 저는 그저 위에서 시켰을 뿐이옵니다!”

“누가?”

“그... 그것이...”

“성녕이냐?”

최 첨정이 흠칫 놀랐다. 그가 당황한 틈을 타 충녕이 잽싸게 그의 칼을 뽑아들었다. 그리고 그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어차피 돈으로 모은 오합지졸들. 너만 죽으면 흩어지는 것이 당연하겠지.”

최 첨정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충녕은 그가 질려있는 틈을 놓치지 않고 소리쳤다.


“네 놈의 죄! 살려둘 수 없다!”

충녕의 칼이 가로로 번뜩였다. 최 첨정의 목이 날아갔다.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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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 160화. 맹세 19.09.01 201 7 15쪽
» 159화. 각성 +2 19.08.31 221 9 17쪽
158 158화. 책 도둑 +2 19.08.30 265 7 14쪽
157 157화. 2막의 끝. 19.08.29 219 6 15쪽
156 156화. 이별 +2 19.08.28 227 7 15쪽
155 155화. 초무강이 2 +2 19.08.27 213 6 15쪽
154 154화. 난전 19.08.26 205 5 14쪽
153 153화. 오케이 +2 19.08.25 209 8 16쪽
152 152화. 각다귀 : 파리목 각다귀과. 흔히 수컷 모기라고 알려져 있다. +2 19.08.24 218 8 1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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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 150화. 어그로 올타임 넘버원인 직업은? +2 19.08.22 242 6 14쪽
149 149화. 콩가루 형제들. +4 19.08.21 241 6 15쪽
148 148화. 언제까지 어깨춤을 추게 할 거야. +2 19.08.20 227 7 16쪽
147 147화. 불확실성. +2 19.08.19 246 6 17쪽
146 146화. 메이저리거. +2 19.08.18 249 7 16쪽
145 145화. 밀리전의 어원은 불란서 아이니? 19.08.17 231 7 16쪽
144 144화. be the reds. 19.08.16 228 6 14쪽
143 143화. 습격 +4 19.08.15 229 6 16쪽
142 142화. 내가 지킨 것들. +2 19.08.14 243 9 15쪽
141 141화. 밑천 없는 도박. +4 19.08.13 251 6 14쪽
140 140화. 출국금지. +2 19.08.12 302 10 14쪽
139 139화. 적의 적은 친구. 적의 적의 적은? +2 19.08.11 269 8 13쪽
138 138화. 민가 운명의 날 +4 19.08.10 274 5 1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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