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쁜 풀은 빨리 자란다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판타지

완결

세렌디퍼
작품등록일 :
2019.04.01 20:14
최근연재일 :
2019.07.08 07:30
연재수 :
73 회
조회수 :
6,900
추천수 :
244
글자수 :
303,038

작성
19.06.07 07:30
조회
62
추천
3
글자
8쪽

감정의 방향

DUMMY

“그럼 왜 지훈 씨는 네가 나쁜 짓을 하지 않았다고 한 거야?”


“나쁜 짓이 아니라고 생각해서겠지.”


준연이 말을 돌리려는 것을 보고 수연은 좀 더 구체적으로 쐐기를 박았다.


“아냐. 너만 나쁜 짓을 하지 않았다고 했어, 그럼 그 말뜻은···”


준연은 두 손바닥을 펼쳐 보이며 수연의 말을 가로막았다.


“잠깐···됐어. 그래. 난 못 맞혔어. 하지만 계획에 가담했단 사실은 변하지 않아. 그 사람들을 죽이는 게 옳다고 생각한 순간부터 난 단원들과 한배를 탄 거야.”


“그게 또 다른 범죄를 저지를 이유가 된단 소리야?”


수연의 물음에 준연은 잠시 멈칫했다가 이내 말했다.


“그래서 널 돕겠다고···”


“알겠어. 넌 혼자가 되는 게 무서운 거야. 그런 거면 이해해. 나 같아도 친한 사람들 곁을 떠나고 싶진 않을 테니까.”


준연은 기가 찬다는 표정으로 수연을 보았다.


“뭐? 너 어떻게 그렇게 맘대로···”


수연의 발밑에서 두 가지 종의 나무줄기가 자라나 그녀를 움직이지 못하게 묶었다. 그녀와 준연은 말하는 동안 점차 목소리가 커진 탓에 백지가 그만큼 가까이 왔다는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백지는 수연을 당장 끝장내버리고 싶었지만, 정말 우연히도 그녀는 준연과 함께였다. 전에도 그가 등장한 탓에 수연에게 손대지 못했던 그는 이를 갈며 말했다.


“넌 항상 저 녀석을 이용해서 살아남는군. 비겁한 건지 운이 좋은 건지 모르겠어.”


“잠깐, 형, 지금 이럴 때가 아니잖아.”


준연이 그와 수연 사이를 막아섰다.


“이럴 때가 아니라고?”


“그래. 형도 우리 단원들이 결박된 걸 봤을 거 아냐? 저거 소나무 가지 맞지?”


백지는 그 날카로운 시선을 휴게실 바깥 복도로 돌렸다. 벽에 꼼짝 못 하고 달라붙은 연구원을 소나무 가지가 꽉 붙들어 맨 채였다.


“맞아. 도망친 게 아니었으면 좋겠군. 난 아직 그 녀석이 있어야 하는데! 젠장. 넌 여기 얌전히 있어. 그 꼬맹이랑 일대일로 마주치면 널 공격할지도 모르니까.”


그는 휴게실 문을 나선 뒤 문 앞을 자신의 식물 능력으로 잠갔다. 급하게 나선 바람에 창문은 단속하지 않았지만. 철저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수연이 식물 능력을 얻게 되어 창문으로도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모양이었다. 그녀는 수혈받은 직후여서 아직 겉으로 꽃이나 줄기가 돋아나지는 않았다. 그의 발소리가 멀어지자 수연과 준연은 우선 한숨 돌렸다. 준연이 결박을 풀 물건을 찾아온 방안을 뒤졌고 가위를 발견했다. 즉석식 먹거리의 포장지가 뜯기지 않을 때를 대비해 갖춰 둔 가위였다.


“전부 부러뜨리려 할 필요 없어. 그냥 내 팔 하나가 움직일 정도면 돼.”


그 팔 하나를 움직일 수 있게 하는 데에도 수십여 분이 흘렀다. 오른팔이 자유로워지자마자 수연은 손을 입에 맞춰 수련 줄기를 나무줄기 사이사이에 넣고 조금씩 틈을 만들어 빠져나왔다. 수연은 무사히 빠져나왔다. 그녀는 나오자마자 준연에게 말했다.


“아까 얘기 말이야.”


수연은 그가 어떤 얼굴을 하는지 가만히 들여다보았다. 그는 그녀가 계속 얘기할까 봐 겁이 나는 듯했다.


“네가 말한 것처럼 내가 맘대로 말할 건 못 되는 것 같아. 대신 날 도와주기로 했던 약속은 지켜. 첫 번째로, 여기서 개발했다는 백신을 구해야 돼. 두 번째로는 본관에 가서 두 애들을 데려와야 해. 한 명은 이정, 12살 남자애고, 다른 한 명은 한이, 8살 여자애야.”


“이정? 그 애라면 아까 항, 아니 모루랑 떠났어. 둘이 동갑이래. 친해 보여서 놔뒀는데.”


수연은 내심 이정의 행보에 대해서는 마음이 놓였다.


“그럼 한이에게 가자.”


“안 가.”


한이가 뒷짐 진 채 돌처럼 서서 고집을 부렸다. 수연은 힘이 쭉 빠졌다. 한이를 데려오려고 본관 사람들에게 들키지 않도록 그녀가 있는 초등학교 저학년 전용층에 올라온 것이다. 그녀를 데려올 일이 아니었으면 굳이 그럴 일 없이 바로 나무뿌리 왕국으로 직행했을 터였다.


“난 여기 남을래.”


“왜···무섭지 않아? 어른들을 전부 죽인대.”


“하지만 어른만 괴물이 되었는걸. 우리, 아이들은 모두 무사할 거야.”


한이는 말하며 수연을 동그란 눈으로 올려다보았다. 수연은 무릎을 꿇어 그녀의 눈망울을 보았다. 한이의 눈빛은 순수하고 맑았다. 그 안에서는 티끌 한 점조차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였다.


“어른만 괴물이 된 건 어른들이 다 나빠서래. 그래서 우리가 다 쳐부수고 우리만의 세상을 만드는 거야.”


수연은 겨우 여덟 살밖에 안 된 어린아이 입에서 그런 무시무시한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는 사실을 믿을 수가 없었다.


“모든 어른들이 나쁘지는 않아. 물론 못된 어른들도 있지만 착한 어른들도 있어.”


“아냐! 내가 아는 착한 사람은 다 어른이 아니었단 말이야. 언니도 어른이 아니잖아. 도환 오빠도 어른이 아니고! 정 오빠도! 백지 오빠가 저번 연설 때 그랬어. 매해 백 명도 넘는 애들이 가까운 어른에게 살해당한대. 한 해 동안 죽은 아이들 수가 백지 오빠네가 지금까지 몇 년 동안 죽인 나쁜 어른의 다섯 배도 넘는댔어.”


한이는 백지의 말을 정확히 암기하고 있었다. 그녀는 그만큼 그의 연설에 감명받았었다.


“어른들은 우릴 죽이는데, 왜 우린 어른들을 죽이면 안 돼?”


수연이 한이의 갑작스러운 질문에 답을 찾는 사이 한이 뒤에 서서 망을 보던 준연이 그녀에게 슬쩍 눈짓했다. 슬슬 빠져나가는 게 좋겠다는 의미였다. 그녀는 1분 정도 더 시간을 끌며 적절한 말을 찾으려고 했다. 그녀를 설득시킬 수 있는 말을. 하지만 결국 수연은 한이의 어깨를 토닥여주는 것밖에 할 수 없었다. 준연은 그녀가 지하로 가는 게 가장 위험 부담이 적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들이 지하로 내려가는 동안 수연은 저도 모르게 마음이 급해져 이따금 그녀의 속도에 맞춰 그녀를 안내하던 준연을 추월하기도 했다.


저런 어린애 손에 피를 묻히게 되기 전에 빨리 수를 찾아야겠어.


수연은 생각했다. 지하로 내려가기 직전 계단 중앙에서 감시원들이 돌아다니는 게 보이자 계단에서 해당 층으로 이어지는 문 뒤로 숨은 뒤 수연을 불렀다. 감시원들의 모습이 사라질 때까지 현관 쪽으로 시선을 고정한 채 기다리며 준연이 작게 말했다.


“아까 한 말을 곰곰이 생각해 봤어.”


그는 망설이다 대답했다.


“네 말이 맞는 것 같아. 이 애들은 내가 어머니 때문에 힘들 때 같이 있어 준 가족 같은 애들이야. 끝까지 백지단 계획에 동참하지 않으면, 난 그 애들을 저버리는 거나 다름없다고 생각해.”


준연이 솔직히 털어놓자 수연은 자신도 본심을 조금 말하기로 마음먹었다.


“실은 나도 ‘나쁜 어른들을 죽인다.’는 발상 자체는 꽤 멋있다고 생각했어.”


준연이 현관에서 시선을 떼고 그녀를 보았다.


“그래도 모든 어른이 그렇지는 않을 거야. 당장 나도 4년 뒤면 어른이 되는걸. 나, 그렇게 나쁘진 않잖아?”


수연이 장난스럽게 질문 조로 말하며 미소를 짓자 준연은 고개를 끄덕였으나 이내 말했다.


“하지만 이 애들은···날 좋아해.”


“그래, 그렇지만 너라면 어디에서나 사랑받을 거야. 나도 널 만난 지 얼마 안 됐지만 벌써 좀 좋아졌으니까.”


그녀는 웃으며 준연의 팔을 토닥였다.


“그래서 이제 어디로 가면 돼? 감시원들은 이제 없는 것 같은데.”


“어? 어···주차장 쪽으로···”


준연은 얼빠진 표정으로 다시 앞장서서 수연을 안내하기 시작했다. 그는 자신의 귀가 붉게 달아오른 것을 그녀가 알아채지 못하길 바랐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나쁜 풀은 빨리 자란다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월~금 아침 7시 30분 연재합니다. 19.04.08 110 0 -
73 외전 - 죽은 이의 이야기 19.07.08 103 1 9쪽
72 에필로그 19.07.05 83 2 8쪽
71 살아줘 19.07.04 70 2 9쪽
70 화승총(花勝銃) 19.07.03 66 2 8쪽
69 모두 모이다 19.07.02 81 2 7쪽
68 그들의 싸움 19.07.01 277 2 9쪽
67 내막 19.06.28 78 2 8쪽
66 비밀 선물 19.06.27 70 2 8쪽
65 행운은 적에게 19.06.26 68 2 10쪽
64 각자 행동하다 19.06.25 65 2 7쪽
63 심장에는 혼자만 19.06.24 75 2 9쪽
62 꼭대기로 19.06.21 112 2 8쪽
61 맹수 19.06.20 70 2 7쪽
60 어느 편 19.06.19 82 2 9쪽
59 민우 19.06.18 66 3 8쪽
58 거대한 나무로 19.06.17 94 3 8쪽
57 준비 19.06.14 87 3 8쪽
56 합작 19.06.13 82 3 7쪽
55 협박 19.06.12 76 3 7쪽
54 지키기 위한 선택 19.06.11 86 3 7쪽
53 1+1=? 19.06.10 48 3 7쪽
» 감정의 방향 19.06.07 63 3 8쪽
51 살인 동기 19.06.06 65 3 8쪽
50 녹음 19.06.05 63 3 8쪽
49 완성 19.06.04 62 3 8쪽
48 영웅 19.06.03 70 3 9쪽
47 다른 비밀? 19.05.31 57 3 9쪽
46 나쁜 풀은 빨리 자란다 +1 19.05.30 72 3 9쪽
45 위로와 소망 19.05.29 60 3 10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