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마의 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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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령
작품등록일 :
2019.04.01 21:32
최근연재일 :
2019.07.31 2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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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7.12 18: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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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0 장 - 타노아의 작은 일상들 - 8

DUMMY

천년의 세월동안 서로 영지를 맞대고 있던 아리오스가의 타노아와 루드간백작의 켈로스는 단 한 번의 분쟁도 없이 한 뜻으로 뭉쳐진 오랜 혈맹의 관계였다.

수도 로에나스를 중심을 북서부를 책임지고 있던 두 가문은 왕당파의 핵심 축이었으며, 그로인해 파이완이 공국을 세울 당시, 제일먼저 와해시키기 위해 노력한 지역도 이곳 두 곳일 수밖에는 없었다.

그나마 아리오스가문은 볼튼의 배신으로 인해 그 명맥을 이어 갈 수 있었으나, 켈노스의 루드간백작가문은 공왕군의 기습을 받아 모든 씨족이 멸문하다시피 한 상태였다.


그런 켈노스의 성 앞에 선 레이진의 감회는 너무나 남다를 수밖에 없었다.

켈노스의 성벽을 둘러보며 상념에 젖어 있는 레이진에게 루아가 다가갔다.


“제법 견고한 곳이죠? 어때요?”


“이곳에서 굳이 피를 볼 필요는 없어. 성 안의 영지민들도 아직 로에나의 지지세력들이 상당부분 남아있을 테고, 지휘부에 남은 자들이래 봐야 저 풀브로자작이라는 자만큼이나 어중이떠중이들만 남아있는 상황일 테니.”


레이진은 전술에 대한 사항을 모두 루아에게 맡긴 상태였다.

지금 상황은 책임감이 큰 만큼 부담을 느끼기에 충분했다.


다리가 끊어진 상태에서는 성문으로 직접 진격해 들어가는 방법은 생각할 수 없다.

그렇다고 무턱대고 성벽을 넘겠다고 다가가면 피해가 커지겠지.

적의 추정 병력이라고 해봐야 최대 2000명 오러기사도 없고 사기만 꺾을 수 있다면 쉽게 승리할 수 있을 것 같긴 한데···.


그녀가 뒤를 돌아보며 자신들의 병력을 살펴본다.

100명의 보병들이 열을 맞춰 서 있었다.

제법 눈빛들을 빛내고는 있지만, 사실 그녀가 보기에도 누군가에게 위압감을 안겨 줄 만큼의 기세는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루아의 눈가에 깊은 주름이 잡혔다.

레이진은 여전히 담담한 표정으로 성벽 위를 바라보고 있었다.


적어도 이 사람에게만큼은 무시를 당하고 싶지 않은데···.


일부러 자신을 놀리고 있는 것같기도 하고, 또 진지할 때는 한없이 진지해서 그런 치졸한 남자로는 보이지 않으니 감을 잡을 수가 없었다.


레이진의 시선을 따라 그녀도 성벽 위 지휘관으로 보이는 자에게 시선을 옮겼다.

성벽 위, 방호벽 사이로 언뜻 보이는 사내의 모습.

뾰족한 턱에 움푹 페인 볼, 깡마를 체구의 사내가 옆에선 기사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가겔이라고 했던가?

풀브로 자작의 말에 의하면 공왕의 시대에 갑자기 준남작의 작위를 입은 자라고 했다. 분명 이런 영지전의 지휘는 전혀 경험이 없을 터였다.

저게 변수지.

보통 저런 초보자들이 예측불허의 황당한 일을 저지르곤 한다. 그래서 그 변수를 빼놓고 생각할 수가 없었다.



켈노스 외성.

방호벽 사이로 몸을 숨긴 채, 날카로운 눈빛을 빛내며 적의 진지를 내려다보던 가겔이 입맛을 쓰게 다신다.

불과 보름 전, 왕성에서부터 찾아온 대규모의 지원병력이 머물렀던 곳이 켈노스였다.

다섯 대의 마차에 무시무시한 마법사들과 소드마스터라는 소문이 돌던 건장한 체격의 사내 그리고 수십 명의 오러기사들과 투박하지만 연륜이 느껴졌던 용병들.

그들을 이끌고 이곳을 떠난 풀브로자작군은 그러나 정말 단 한 명도 살아 돌아오지 못했다.

후에 풍문으로 들려온 소식으로는 왕국의 정예군들은 모두 목숨을 잃었다던가?

아리오스가의 새 영주가 검을 그을 때마다 휘몰아치는 검기에 열 명씩 목이 날아갔다는 둥, 온갖 마물들이 날뛰며 사람들의 사지를 찢어 발겼다는 둥, 하는 어딘가 비현실적인 이야기가 전해진 터라, 처음 아리오스성에서 군대가 출발했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정말이지 야반도주를 생각할 만큼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비록 입 밖으로 내뱉지는 못했지만, 옆에 선 기사 하일도 여차하면 백기를 들고 투항하자는 마음을 한 쪽 구석에 간직하고 이 자리에 나왔을 터였다.

그런데.

오늘 아침 아리오스의 군대라고 당도한 저 것들은 뭐란 말인가?


“참 내!”


기가 막혀 말도 나오지 않았다.


“정말 저게 단가? 뒤에 지원 병력이 따라오고 있는 건 아니고?”


기사 하일이 투구를 쓴 것도 잊은 채 머리를 긁으며 말했다.


“뒤에 병력은 하나도 없다는데요?”


확신의 찬 하일의 대답에 가겔의 표정이 더 구겨졌다.


“참 내!”


차라리 상대가 어마무시 한 기도라도 풍겨온다면 그냥 눈 딱감고 백기를 들어버릴 텐데. 이건 뭐···.

마치 어린애들이 전쟁놀이를 하자고 모인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저 아래 있는 자들의 면면을 보자면 가슴 한 켠이 서늘해지기도 하는 애매모호한 상황에 빠져버리고 말았다.

검은 갑옷을 입은 기사 하나와, 플레이트 갑옷을 입은 기사 둘. 그리고 백여 명의 보병들과 한 대의 마차.


“그러니까 저 마차가 보급품이란 말이지?”


“그렇다고 봐야죠.”


수레 한 대.


“참 내!”


그의 입에서 다시 혀를 차는 한탄이 흘러나왔다.

저래서야 싸움이 될 수 없다. 자신들이 문을 걸어 잠그고서 하루만 버티면 저들은 먹을 것이 떨어져 돌아가야만 할 터였다.


“어찌해야 할까요?”


하일이 가겔의 눈치를 살피며 물었다.


“지원 병력은?”


“확실하게 답을 준 곳은 배투아나 자작으로 내일쯤 500명 정도의 보병이 도착할 겁니다. 그리고 왕성에서는···, 사실 저희 전령도 아직 수도에 도착하지 못했을 겁니다.”


가겔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리오스의 군대가 타노아를 출발했다는 보고를 받은 게 어제 오후였다.

이리 빠르게 진격해 올 것이라고는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다.


가겔이 성 안, 광장 위로 고개를 돌렸다.

수십 명의 가죽 갑옷을 입은 자들이 무질서하게 앉아 병장기를 손보고 있었다. 누가 보더라도 훈련을 받은 정예의 병사들은 아니다.

그러나 그 누구도 무시할 수 없는 자들.

아리오스가를 토벌하기 위해 용병을 모집하던 중, 뒤늦게 모집소식을 듣고 찾아 온 용병들.

이미 토벌대가 출발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돌아가려는 자들을 급히 붙잡아 두었는데 그중 한 용병대가 유독 눈에 띠었다.


“파르텐용병대.”


파르텐이란 용병을 중심을 수 년 째 명성을 쌓아온 용병대였다.

50명 모두 전장에서 잔뼈가 굵은 자들이었고, 그 중에 대장 파르텐과 세 명의 의형제들은 무려 오러를 뿜어대는 검사였다.


수만 명의 영지민들. 이천여 명의 정예병과 오십 명의 용병. 그중에 세 명의 오러검사가 있다면···.


가겔이 다시 아리오스가의 진지를 향해 눈을 돌렸다.

옹기종기 모여 있는 백 명의 보병들이 어찌나 한심스러워 보이는지.


하루를 버티는 싸움이라면 누가 봐도 해볼만 하지 않은가?


그때 적진의 대형이 술렁이기 시작했다.




“시작 하자!”


레이진이 루아를 향해 심드렁한 목소리로 말했다.


“네?”


멀뚱한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루아를 그 역시 잠시 멍하니 바라보다 무언가가 결정적인 생각이 떠오는 사람처럼 놀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아! 지금까지 전술을 짜고 있었던 거야?”


어이가 없어 진 루아가 차마 마땅한 할 말을 찾지 못하고 눈가만 찌푸렸다.

그런 루아를 잠시 바라보던 레이진이 루아를 향해 방긋 미소를 지어보였다.


“이번엔 루아가 할 일은 없어. 병사들하고 잠시 쉬고 있어.”


그리고는 터벅터벅 성벽을 향해 나아가기 시작했다.




적진을 바라보고 있던 가겔의 미간에 깊은 주름이 잡혔다.

온몸을 검은색 갑옷으로 덮은 기사가 말 한 마리를 뒤에 달고서 터벅터벅 앞으로 걸어 나온다.

아리오스의 새 영주가 검은 갑옷을 입고 싸웠다고 했지?

레이진을 바라보던 그의 시선이 그의 뒤 말 위로 향한다.

말 위에는 푸짐한 덩치의 중년인이 흔들리는 몸을 겨우 가누며 앉아있었다.


“저···, 저···, 자작님 아닌가?”


눈을 가늘게 뜨고서 잠시 말 위의 사내를 바라보던 가겔이 화들짝 놀라며 소리쳤다.


“맞습니다. 플브로 자작님이십니다.”




말을 끌고서 온갖 쓰레기들이 둥둥 떠 있는 성문 앞 웅덩이까지 다가 온 레이진이 말 위에서 참담한 표정을 지은 채, 성벽 위를 올려다보고 있는 사내, 풀브로에게 말했다.


“도개교를 내리라고 해.”


망연한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그에게 레이진이 턱짓을 보내며 재촉했다.


“어서!”


검은 투구 속에서 빛을 발하는 레이진의 눈빛에 잔뜩 주눅이 든 그가 위를 향해 소리쳤다.


“가겔! 자네 가겔이지?”


성벽 위에서 사내의 외침이 들려왔다.


- 자작님! 무사하셨습니까?


풀브로가 짜증이 섞인 목소리로 소리쳤다.


“가겔 아리오스가의 영주께서 오셨네. 성문을 열게!”


그러나 이번에는 제때 대답이 들려오지 않았다.

잠시 성벽 위의 움직임을 올려다보고 있던 풀브로가 조급한 목소리로 소리쳤다.


“아리오스 공작님은 소드마스터시네. 허튼 생각하지 말고 어서 문을 열게.”


그러나 여전히 아무런 반응이 없는 성벽 위.



“소드마스터?”


가겔이 잠시 대답을 미루고서 아래를 내려다 보고 있는데, 성벽으로 오르는 계단을 성큼성큼 걸어올라 온, 검은 털복숭이의 사내가 가겔과 같이 아래를 내려다보며 물었다.


“소드마스터라니? 누가 말이오?”


시선을 아래로 향한 채로 가겔에 재차 질문을 던지는 털복숭이의 사내는 파르텐용병대의 대장 파르텐이었다. 두 개의 거대한 은빛 도끼를 X자 모양으로 등 뒤에 매단 채, 당당하게 서 있는 그는, 이곳 전장에서 가장 거대한 몸집을 자랑했다.


“아! 파르텐님 저 검은 갑옷을 입은 자가 아리오스가의 새영주인데, 그가 소드마스터라는 소문이 있습니다.”


“소드마스터라니, 가겔남작께선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시오? 아리오스의 새 영주는 스무 살이라고 하더이다. 스무살에 소드마스터라니, 말도 안 되는 소리.”


“그렇지요?”


“이보시오. 만약 타노아에 소드마스터가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면 우린 이곳에 오지도 않았을 거요. 뭐, 스무 살 정도면 내단이 생성될 나이니 자기들 딴에는 아리오스가의 명성을 등에 업을 양으로 부풀려 소문을 퍼트리고 있는 것일 거요. 아리오스의 명성도 다 죽은 거지!”


그의 말에 조금은 용기가 생긴 가겔이 다시 물었다.


“어떻겠습니까? 저 정도의 병력입니다만.”


뒤늦게 켈노스에 도착한 파르텐은 아리오스토벌군이 패했다는 사실만을 알고 있을 뿐, 자세한 내막은 알지 못했다.


“저들에게 패했다고? 대체 얼마나 허약한 자들로 토벌대로 편성 한 것이오?”


뭔가 자세히 설명하려던 가겔이 말을 잃고 입을 다물자, 그 모습을 바라보던 파르텐은 혀까지 차며 고개를 저었다.

하긴 제국황제의 통일전쟁이 벌어지는 이 시국에 파이완 공국 같은 소국에서 무슨 제대로 된 영지전이 이루어지겠는가?


자신을 무시하는 파르텐의 거만한 행동에 기분이 조금 상하기는 했지만, 따지고 보면 그만큼 자신이 있다는 소리.

가겔이 성벽 위에 가득 차있는 이천 명의 병사들을 바라봤다.

손에 무기들을 들고서 지금이라도 당장 뛰어 들어 요절을 낼 듯 눈을 빛내고 있는 병사들의 모습이 더없이 든든해 보였다.


비록 이들을 제외한 다른 주민들은 아리오스 공작에 대한 향수로 인해 그에게 영지를 내주는 것을 바라고 있는 자들도 있겠지만.

만약 여기서 아리오스의 병력을 몰아내는 공적을 세운다면 이곳 켈노스의 영주는 자신이 될 수도 있었다.

당장 영주가 된 듯 입가에 만족스러운 미소를 그린 가겔이 결심한 듯, 아래를 향해 소리쳤다.


“아리오스의 가주는 들으시오. 이렇게 아무 언질도 없이 쳐들어와 사람을 난처하게 하는 것이 무슨 예의 없는 행동이오. 그대의 선조들에게 부끄럽지도 않소?”


- 야! 이 미친놈아!


성벽 아래에서 풀브로 자작의 목소리가 들려왔지만 못들은 척 무시하며 가겔이 다시 소리쳤다.


“우리는 공왕의 시민이다. 이번 일은 너그럽게 용서해 줄테니. 타노아로 물러나 다시는 이곳 근처에는 얼씬도 하지 마라!”




가겔의 외침을 들은 풀브로가 새하얗게 탈색된 얼굴로 중얼거렸다.


“저 미친놈.”


저놈은 나를 버리려고 작정했구나.

성안에는 부인과 어린 자식들까지 있었다.

옆에서 지켜본 아리오스공작의 성정은 악하지 않았다. 잘만하면 가족들과 고향으로 내려가 살 수 있는 선처를 베풀어 줄지도 몰랐다. 그 문턱까지 잘 왔건만.

저 멍청한 놈이 일을 그르치고 있었다.


“공작님! 제게 시간을 조금만 주십시오. 저자를 설득시켜보겠습니다. 저 천둥벌거숭이같은 놈을···.”


풀브로 자작의 얼굴을 잠시 바라보던 레이진이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좋아! 10분의 시간을 주지. 만약 저자를 네가 설득한다면 너의 소원을 하나 들어 주겠어. 하지만 저자를 설득하지 못하면 넌 죽게 될 거야.”


마른 침을 꿀꺽 하고 삼킨 그가 각오를 다진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다급하게 말 위에서 뛰어내렸다. 두 손이 묵인 상태인 그가 말에서 뛰어내렸으니 그의 몸은 내팽개쳐진 듯 사정없이 바닥을 굴렀다.

얼굴을 긁었는지 이마에서부터 볼따구니까지 흘러내린 피가 바닥으로 뚝뚝 떨어져 내리고 있었지만 신경도 쓰지 않는 듯,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서 앞으로 달려 나가며 소리쳤다.


“가겔 이 멍청한 놈아! 문을 열라고 지금 네놈 하나 때문에 모두가 죽게 생겼단 말이다.”




고래고래 고함을 지르고 있는 풀브로를 내려다보며 가겔이 소리쳤다.


“자작님! 조금만 기다리십시오 제가 구해드리겠습니다.”


- 무슨 병신같은 소리야 그냥 생각이란 걸 하지 말고 문을 열란 말이다. 소드마스터가 지금 네 앞에 있단 말이다. 무슨 말인지 모르겠느냐? 이 등신머저리야!”


분통이 터져 그러했겠지만, 그의 과격한 언사는 오히려 가겔의 심기를 건드리는 꼴이 되었다.


“언제나 희생은 따르는 법.”


가겔이 주위의 병사들을 바라보며 소리쳤다.


“궁수대 모두 장전!”


그의 말에 활을 든 수백 명의 병사들이 활에 화살을 메겼다. 그 와중에도 풀브로의 외침은 계속해서 들려왔지만, 누구도 가겔의 말을 거역하는 자가 없었다.


“일대만 검은 기사를 조준해라!”


궁수들 중 백 명의 정예만을 따로 뽑아 편성한 부대.

아리오스영주만을 노리라고 했지만 자작과의 거리는 불과 수 미터 남짓, 백여 발의 화살을 피할 수는 없을 터였다.


발사!”


지체하지 않고 내리는 그의 명령 한마디에 성벽 위에서 쏘아진 화살들이 하늘을 덮었다.

어느새 풀브로의 곁으로 다가온 레이진이 하늘을 바라보며 낮은 목소리로 읊조렸다.


“실패! 목숨으로 책임을 져야 하는 거 잊지 않았지?”


말을 마친 레이진의 신형이 화살비가 쏟아지는 하늘 위로 날아올랐다.


탓!


마치 화살들이 레이진을 피해가는 것처럼 화살비사이로 날아든 레이진이 나아든 화살 중에 하나를 딛고서 더 높이 날아올랐다.

마치 거대한 새처럼 하늘로 쏘아 올려 진 레이진의 신형이 성벽보다 더 높이 올라 아래를 굽어 본다.


켈로스성 위에서 그 모습을 바라보던 모든 이들이 하늘 위로 고개를 쳐든 채로, 입을 다물지 못했다.


“뭐, 뭐야?”


가겔도, 그 옆에서 두 개의 도끼를 꺼내 든 파르텐용병대장도 너무 놀라 자신도 모르게 뒷걸음질을 치며 물러섰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공중에서 검을 빼든 레이진의 신형이 빠르게 가겔을 향해 날아왔다.


슥!


하늘 위에서 아리오스공작이 검을 휘두른다.

그와 동시에 자신의 머리카락과 옷자락들이 강한 기파에 사정없이 펄럭거렸다. 자신도 모르게 두 눈을 감고 주춤하며 뒤로 물러서던 가겔이 어느 순간 걸음을 멈추었다.

가겔의 앞에 내려선 레이진이 손을 뻗어 가겔의 머리카락을 움켜쥔다.


흡!


가겔의 입에서 작은 신음이 터져나왔지만 그것도 잠시.

잠깐의 정적이 흐른 후, 가겔의 몸이 붉은 피를 쏟으며 바닥으로 쓰러졌다.

단, 레이진이 뻗은 손에 잡힌 가겔의 머리만은 그대로 남아 마치 핏물이 묻은 공처럼 레이진의 손에서 대롱거리고 있었다.

그 섬뜩한 모습에 할 말을 잃은 기사들과 병사들이 얼어붙은 듯 움직임을 멈추었다.


“자! 지휘관이 모두 죽었다. 모두 병장기를 내려놓고, 성문을 열어. 그리고 부서진 다리를 놓아라!”


낮지만 어찌된 영문인지 저 끝에 있는 병사의 귀에까지 쏙쏙 박혀 들어오는 목소리.


텅! 텅!


두 개의 은빛 도끼가 바닥으로 떨어졌다.

털복숭이의 사내가 제일 먼저 몸을 낮추고 자리에 엎드렸다.

곧, 여기저기 병사들이 내려놓는 무기들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그 모습을 흡족한 얼굴로 바라보던 레이진이 성 밖으로 고개를 돌렸다.


“어라?”


아래를 내려다보던 레이진이 인상을 구기며 혀를 찼다.


“하여간 저 양반··· 쯧.”


바닥을 덮은 화살들 속에 몸을 잔뜩 웅크린 채 벌벌 떨고 있는 풀브로. 그리고 그의 앞을 가로 막고 선 베네크가 검을 빼들고서 위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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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9 제 10 장 - 타노아의 작은 일상들 - 1 +1 19.06.29 817 2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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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7 제9장 - 반격을 시작할 때 - 9 +2 19.06.25 798 17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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