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에 노래하다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판타지

별헤다
작품등록일 :
2019.04.01 23:43
최근연재일 :
2020.03.04 00:41
연재수 :
137 회
조회수 :
275,783
추천수 :
8,950
글자수 :
791,912

작성
19.11.13 14:05
조회
793
추천
26
글자
12쪽

31.입에는 꿀을, 배에는 칼을(1)

DUMMY

첨류산 일대는 평소 인적이 드물어 사람의 흔적을 찾아보기 어려운 곳이었다.

하지만 지금 이곳 첨류산은 이 땅에 있었던 그 어느 때보다 혼잡하고 시끄러운 상태였다.


“으아아악! 살려줘!”

“불,불좀. 꺼줘! 으으아아!”


강수호는 불길 사이로 뛰쳐나오는 적병 하나를 단숨에 베어버리고 호흡을 가다듬었다. 매캐한 연기로 인해 호흡에 상당한 지장이 있었기 때문이다.

무장인 자신도 이럴진데 다른 이들이야 말 할 것도 없었다.


“콜록. 콜록. 죽을 맛이구만.”

“그래도 저 안보다는 낫겠지.”


강수호가 불타고 있는 안쪽을 가리키자 민대식이 시선이 그리로 향했다. 그쪽에서는 여전히 쉴새없이 끔찍한 비명소리가 울려퍼지고 있었다.


“보급고에서도 불길이 올랐으니 적들이 향할 방향은 한 곳 뿐이야.”

“고야성.”


민대식의 말에 강수호가 나직히 대답했다.


“어떻게 할래.”


적들을 추격하겠냐는 물음이었다. 불길속에서 정신을 못차리는 적들을 상대하다보면 막대한 전공을 올릴 수 있을 것이었다.

하지만 강수호는 고개를 저었다.


“우리에게는 그것보다 더 중요한 일이 있지.”


적들의 증원이 오기 전에 최대한 많은 식량을 확보한 후 첨류산에서 이탈해야 했다. 적들에게 덜미를 잡힌다면 모든 게 끝이었다.


“보급고로 간다.”


...


“자네가 한백인가?”


한백은 불타고 있는 보급고의 정문을 넘어서 들어온 사내를 보았다.

남성다운 강렬한 인상을 가지고 있는 자였다.


“예. 무장대 대장 한백이라고 합니다.”

“반갑군. 하얀바람의 교위 강수호다.”


한백이 경례를 올리자 강수호가 가볍게 끄덕이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군량미를 보관해 놓은 창고 상당수가 여전히 불에 시커멓게 타들어가고 있었다.


“자세한 사정은 이미 저기 벽 부관에게 다 들었네. 시간이 많지 않으니 간단하게 묻지. 군량미가 얼마나 남은거지?”

“있던 것에 비하면 3분의1정도입니다.”

“···생각보다 더 적군.”

“적을 속이기 위한 최선이었습니다.”

“알고 있다. 무장대가 정말 북해를 위해 큰일을 해주었어. 내 이 일은 반드시 상부에 보고 하겠네.”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한백은 담담한 음성으로 대답했다.


“이제 어떻게 할 생각인가?”


강수호의 물음에 한백은 생각해 둔 바를 떠올리며 입을 열었다.


“저는 다시 공 당주의 보급대에 돌아갈 생각입니다. 아직 할 일이 남았거든요.”

“···무운을 빌지.”


강수호는 한백에게 더 이상 묻지 않았다.

그가 몸을 돌려 보급고 내로 들어온 병사들을 향해 외쳤다.


“최대한 빨리 물자를 선적하고 이곳을 빠져나간다!”

“존명!”


병사들이 신속하게 움직이는 것을 보던 강수호가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이 정도 군량미라도 건진 것이 천만다행이었다.

이 군량미가 반격의 열쇠가 되어 줄 것이다.


“교위님. 저는 이만 출발하도록 하겠습니다. 제 대원들이 걱정 되어서요.”


한백은 강수호를 보며 말했다.

무장대 대원들이 보급고를 탈출하던 귀령군의 병력에 섞인 채 고야성으로 향하고 있었다.

다행히 산길이니 자신의 속도라면 얼마 지나지 않아 따라잡을 수 있을 것이었다.


“그러도록 하게. 다음에는 제대로 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으면 좋겠군.”

“저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한백은 그렇게 대답한 후 몸을 돌려 보급고를 벗어났다.

그것을 옆에서 가만히 지켜보던 민대식이 입을 열었다.


“특이한 사람이네. 지금까지 들어본 적이 없다는 것이 의외일 정도야.”

“당연한 소리군. 저 자는 3군단에 입대한지 얼마 되지 않았다.”

“뭐 좀 아는 거라도 있나봐?”


민대식의 물음에 강수호는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철융성 참사.”

“뭐?!”


민대식이 화들짝 놀라 강수로를 바라봤다. 철융성 참사는 3군단에 있는 사람 대부분에게는 금기시되는 단어였다.

그 사건으로 북해의 어머니라고 불리던 최 부인이 돌아가셨고, 수많은 북해의 유력인사들이 죽음을 맞이했기 때문이다.

3군단 내부에서는 그 사건을 치욕이라 여기고 언급하는 것을 대단히 꺼렸는데, 갑자기 강수호의 입에서 철융성 참사에 대한 이야기가 거론되었으니 민대식이 놀라는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저 자가 철융성 참사와 관련이 있다는 말이야?!”

“쉿. 목소리가 너무 크다.”


강수호의 제지에 민대식이 자신도 모르게 주위를 둘러보고는 목소리를 낮추었다.


“빨리 알고 있는 걸 좀 말해봐.”

“나도 잘은 모른다. 허나 저 남자는 대공 전하와 관련이 있는 자다.”

“헉!”


민대식은 헛바람을 들이켰다.

철융성 참사 때 몰살의 비극을 막은 것이 바로 이덕문 장군의 외손녀이자 제국의 황녀인 진수련 대공이라는 것을 대부분의 북해인들이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또한 그 사건을 계기로 진수련은 북해에서 가장 강력한 권한을 쥔 사람이 되었다.


“그렇다면 신양 대화제에서 대공전하를 탈출시켜 이곳까지 모시고 온 정체불명의 단체를 말하는 거군.”

“그래. 그 중 한명이겠지.”

“그 중에 엄청난 무력을 지닌 사내가 있다던데···, 혹시?”


민대식의 말에 강수호는 고개를 저었다.


“그거 아닐거다. 덩치가 산만한 중년인이라 들었거든.”

“그래? 아쉽네. 그 소문의 주인공을 한 번 보고 싶었는데, ···그런데 너는 어디서 그런 걸 다듣고 다니는 거냐? 나도 모르는 걸?”

“민 교위. 항상 귀를 열고 다니도록.”


강수호의 말에 민대식이 황당하여 입을 쩍 벌렸다.

다른 누구도 아닌 강수호에게 그런 말을 들으니 지금까지 인생을 헛산 것 같은 기분이 든 것이다.


얼빠진 민대식을 뒤로하고 강수호는 옛기억을 떠올렸다.

철융성 참사가 일어난 지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였다.

당시에 지금은 사령관이 된 신중모와 면담을 할 기회가 있었던 강수호는 그의 입에서 한 사내의 이름을 들었었다.

한백이라는 자가 귀곡의 귀살을 물리쳤다고.

그리고 그 이름을 대공에게 다시한번 듣게 되었을 때, 강수호는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정체불명의 무사 한백과 무장대 대장 한백이 같은 사람이라는 것을.

오늘 한백을 직접 보니 그 생각은 확신이 되었다.


‘무장에 오른 무사가 백인대장의 직위에 있다라···, 길인지 흉인지 아직은 알 수 없군.’


강수호는 잡생각을 끝냈다. 지금은 일단 눈앞에 있는 일에 집중할 때였다.


...


한백은 빠른 속도로 공민준이 병사들을 이끌고 도망친 곳으로 향했다.

다행히 한 시간 정도 지났을 때 그들을 찾을 수가 있었다.


“헉헉! 이 망할 놈의 숲! 도대체 어디로 가야할지 알 수가 없구나.”


공민준은 주위를 둘러보며 짜증섞인 목소리로 소리쳤다.

가뜩이나 날이 어두워지고 있는데, 화재와 그에 뒤따르는 연기로 인해 자신들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도 모를 지경이었다.


“별장님!”


한백은 몸에 잿가루를 조금 묻히고 약간 지친 표정을 지으며 공민준의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오오! 한 대장! 그렇지 않아도 자네가 통 보이지 않아 걱정을 많이 했어! 어디 갔다 온 건가!”

“난리통에 길을 잃는 바람에···, 죄송합니다.”

“됐네, 됐어. 살았으면 된 거지. ···혹시 한 대장, 우리가 어느 방향으로 가야 하는 지 알고 있는가? 영 방향을 잡을 수가 없구만.”

“제 마지막 기억으로는 저희 부대가 서쪽으로 향한 것 같습니다.”

“서쪽?”

“예. 그쪽에 고야성이 있으니 아마 공 당주님께서도 그쪽으로 향하셨을 겁니다.”

“그, 그렇겠군! 자네가 있어서 정말 다행이야. 자네가 없었다면 내 이리 살아 있지도 못했겠지.”


공민준이 자신의 목 주위를 쓸어내리며 말했다.

난리통에 보급고 수비 병력들을 제대로 수습하지 못하여 지금 자신의 곁에 남아 있는 이들은 300여명 정도가 다였다.

이 상태로 적의 부대를 만난다면 꼼짝없이 죽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좋으니, 최대한 돌아서 가는 것이 좋겠네.”

“동의합니다. 어둠을 틈타 조용히 이동하도록 하겠습니다.”

“자네만 믿겠네.”


...


다음날 아침이 되어서야 공민준은 본대에 합류할 수 있었다.

본대는 화마와 북해군에 도망쳐 달아나느라 꼴이 말이 아니었다.

거진 2만의 병사를 이끌고 출정했던 공찬혁의 병력은 화마와 어둠, 그리고 하얀 바람의 공격으로 인해 거진 반 이상이 사라져 있었다.

공민준은 그 모습을 보고 침을 꿀꺽 삼켰다.

그의 종형에게 좋은 소리를 듣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이런 바보같은 놈을 봤나! 보급고 하나 제대로 지키지 못하고 무얼 했단 말이냐!”


공민준은 들려오는 노성에 몸을 움츠렸다.

공찬혁이 그를 보며 죽이겠다고 길길이 날뛰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적들이 보급고 내부로 침투해와 어쩔 수가 없었···습니다.”

“그걸 말이라고!”


슝!


공민준의 얼굴 옆으로 무언가가 날아가 바닥에 떨어졌다.

먹다 남은 뼈다귀였다.

뼈다귀에는 여전히 살점들이 붙어 있었다.

고개를 숙이고 있던 공민준의 얼굴에 모멸감에 차올랐다.


“대체 방비를 어떻게 했길래 그 놈들이 보급고 안으로 들어와 불을 지른 것이야! 그냥 지키기만 하면 되는 것이 그렇게 어렵더냐? 이제 어떡할 샘이냐. 다행히 군량미를 보관한 창고에 불이 붙었다고 하니 놈들이 자승자박을 한 꼴이 되었지만···.”


공찬혁의 목소리에는 분노와 아쉬움이 가득 담겨 있었다.

그도 그럴것이 막대한 군량미를 눈 뻔히 뜨고 빼앗기게 되었으니 이미 그것들을 자신의 것이라 생각하고 있던 그의 입장에서는 손해가 막심했던 것이다.


“여기 한 대장이 아니었다면 살아있지도 못했을 겁니다.”


공민준이 어떻게든 종형의 시선을 돌리고자 곁에 서 있던 한백을 언급했다.

공찬혁의 성난 시선이 한백을 향했다.


“그래. 이 띨띨한 놈보다는 자네가 더 설명을 잘하겠지. 대체 어떻게 된 일인가. 설명해 보게.”


한백은 송구스럽다는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당주님이 병사들을 이끌고 떠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보급고 내부에 엄청난 화재가 일어났습니다. 분명 내부에 내통자가 있었던 것이 틀림 없습니다. 저는 그 사실을 바로 별장님께 알리고 적들이 들이닥치기 바로 직전에 겨우 별장님을 모시고 보급고에서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눈뜨고 코를 베였구나···. 놈들의 목적이 처음부터 우리를 보급고에서 끌어내려는 것임을 깨달았어야 했는데.”


공찬혁이 땅을 쳤다.


“안에, 안에 있던 군량미들은 어떻게 되었지? 설마 적들의 손에 넘어간 것은 아니겠지?”

“화재가 크게 일었으니 아마 적들이 멀쩡한 군량미를 손에 넣을 수는 없었을 겁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별장님.”


한백의 물음에 공민준은 서둘러 동의를 표했다.


“제가 다 확인했습니다! 적들이 얻을 것은 잿가루밖에 없을 겁니다.”

“···그렇다면 다행이군. 가장 중요한 것은 적들의 손에 군량미를 넘기지 않는 것이었으니까 말이지.”


공찬혁이 그제야 화가 조금 풀린 얼굴로 말했다.


“고 별장! 고야성까지 얼마나 남았나?”


공찬혁이 선두에 서 있던 고준을 향해 소리쳤다.


“아마··· 반나절 정도면 도착할 것 같습니다.”

“반나절이라. 내 인생에 그렇게 오래 굶어보는 건 처음일 것 같군.”


공찬혁이 피로한 목소리를 했다.


“꼴도 보기 싫으니 내 눈에 안 뛰는 곳에 가 있거라.”


공찬혁의 말에 공민준은 살았다는 표정을 지으며 뒤로 물러났다.


“그나저나 건정후가 떠난지 반나절도 안 되어서 이런 일이 벌어졌으니 내가 면목이 없게 되었군.”


공찬혁의 말에 옆에 가만히 서있던 한백이 입을 열었다.


“그 애송이에게 굳이 사실대로 말할 필요 있겠습니까?”

“음? 그게 무슨 소리인가. 한 대장.”


공찬혁이 한백의 말에 살짝 놀랐다는 표정을 지었다.

거침없이 주연 건가의 소가주를 향해 애송이라고 부르는 패기를 가지고 있을 줄은 몰랐기 때문이다.


“적들의 수가 5천이 아니라 5만명이라고 하면 저들도 인정해주지 않겠습니까. 저희는 5만의 대군에 맞서 싸우다 수적 열세에 밀려 간신히 보급고를 태우고 물러난 것으로 하면 되지 않겠습니까.”

“오오! 그런 좋은 생각이! 한 대장, 자네가 없었다면 정말 어쩔 뻔 했는가. 자네가 바로 내 장명제일세!”

“하하. 과찬이십니다.”


한백은 한시름 놨다는 표정을 짓는 공찬혁을 바라보며 빙긋 미소를 지었다.


작가의말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3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하늘에 노래하다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연중 공지 +7 20.05.10 570 0 -
공지 대륙 전도 +2 19.04.11 3,144 0 -
공지 작품에 대한 궁금증, 불만이나 개선점을 이야기해주세요! +11 19.04.09 2,053 0 -
137 33.노병은 죽지 않는가(4) +7 20.03.04 524 21 14쪽
136 33.노병은 죽지 않는가(3) +3 20.01.06 699 21 14쪽
135 33.노병은 죽지 않는가(2) +1 20.01.04 500 24 14쪽
134 33.노병은 죽지 않는가(1) +2 20.01.01 544 21 16쪽
133 32.날조(2) +3 19.12.29 590 21 13쪽
132 32.날조(1) +2 19.12.28 555 21 14쪽
131 31.입에는 꿀을, 배에는 칼을(5) +2 19.12.27 537 18 13쪽
130 31.입에는 꿀을, 배에는 칼을(4) +2 19.12.26 545 22 13쪽
129 31.입에는 꿀을, 배에는 칼을(3) +3 19.12.19 623 22 13쪽
128 31.입에는 꿀을, 배에는 칼을(2) +3 19.11.26 767 28 13쪽
» 31.입에는 꿀을, 배에는 칼을(1) +3 19.11.13 794 26 12쪽
126 30.초명보급고(4) +2 19.11.09 777 28 13쪽
125 30.초명 보급고(3) +3 19.11.01 802 27 12쪽
124 30.초명 보급고(2) +1 19.10.24 812 24 13쪽
123 30.초명 보급고(1) +2 19.10.23 774 27 15쪽
122 29.발발(3) +5 19.10.18 848 24 13쪽
121 29.발발(2) +1 19.10.17 805 26 14쪽
120 29.발발(1) +4 19.10.14 880 26 14쪽
119 28.추적(5) +2 19.10.07 909 32 13쪽
118 28.추적(4) +4 19.09.27 997 32 14쪽
117 28.추적(3) +4 19.09.23 959 39 14쪽
116 28.추적(2) +1 19.09.21 939 34 12쪽
115 28.추적(1) +12 19.09.14 1,093 35 12쪽
114 27.대회의(8) +5 19.09.12 1,025 37 13쪽
113 27.대회의(7) +7 19.09.04 1,192 36 13쪽
112 27.대회의(6) +5 19.09.02 1,098 39 12쪽
111 27.대회의(5) +9 19.09.01 1,129 36 12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