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의 왕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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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르벤
그림/삽화
@L280_V6ER1
작품등록일 :
2019.04.02 00:09
최근연재일 :
2020.05.11 1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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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5.19 2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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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마실의 개(2)

DUMMY

카스와 몇 발치 떨어진 총잡이는 오줌을 지리지 않은 게 용할 만큼 얼굴이 창백해져 있었다. 그는 곱슬거리고 억센 갈색 머리에 연노란 눈동자를 가진 청년이었다. 카스는 전체적으로 평범한 외양에 얼이 빠져나간 그의 특이한 눈동자를 보며, 저 남성이 자신과 같은 부류의 존재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거의 인간에 가깝다고 하더라도 아주 약간은 자신 같은 자들의 피가 섞인 사생아가 아닌가 싶었다.


사실상 라마실이 카스를 구원하지 않았다면 그도 돌연변이 수용소나 어느 교배시설에 끌려갔을 것이며 운 좋게 귀부인의 눈에 띠여 정부가 됐다 해도 저딴 사생아를 만드는 일에 일조했을 것이었다. 대부분의 인간 피가 섞인 혼혈아들이 그렇듯 저 멋모르는 청년은 아무런 능력도 없으며 육신도 인간의 것인 듯 나약해보이기 그지 없었고 그런 생각을 하니 카튼은 그가 더욱 역겹게 느껴졌다.


자주색을 배경으로 짙은 푸른 선이 그려진 카스의 눈동자는 짐승과 마물의 것처럼 인간의 눈과는 다른 묘한 기류를 뿜어냈으며 검게 그을린 근육질의 탄탄한 몸에 짧게 자른 파란 머리카락은 아무리 그가 파르마카흐의 의복을 입고 있어도 그를 고대족처럼 보이게 했고 그건 사실이었다.


고대족이란 동남 파르마카흐의 영토에 예속된 검은 산맥의 일부에 살아가는 수많은 이름 없는 종족들을 동시에 일컫는 말이었는데, 파르마카흐인들은 그 원시족들의 영토를 그들의 국경으로 치부하면서도 그들을 다른 왕조로부터 되레 지켜주며 여러 가지 협상과 교역품을 나누기까지 했었다. 그러나 서북과 동등한 위치에 있던 동남이 블러드문이란 끔찍한 괴물을 필두로 한 안단카이의 군대에게 무릎을 꿇으면서 그들은 검은 산맥에 대한 권한을 붉은 악마들에게 넘겼었다.


어쩌면 당연하게도 붉은 악마들은 카스의 고향을 인간 광산이라 부르며 숲을 불태우며 수많은 고대족을 학살하거나 노예로 끌고 갔다. 그들은 노예사냥을 불법화했던 제국과의 협상을 통해 고대족을 사고파는 행위를 합법화시켰는데, 그들의 논리에 따르면 고대족은 인족이 아니며 인간의 탈을 쓴 짐승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그 증거로 그들은 고대족이 사용하는 특이한 언어와 기괴한 외형을 거들먹거렸는데 제국의 법관에게 막대한 뇌물을 먹였는지 그 말도 안 되는 주장은 통과됐었다. 각지에 고대족을 위한 경매장이 합법적으로 개설됐으며 실상 그곳에서는 그들의 주장에 따라 짐승인 고대족뿐 아니라 몰락가문의 자제들이나 마법사의 기질을 가진 아이들까지 끼워 팔았었다. 그렇게 노예사업은 안단카이의 주된 국가사업으로 부상했었으며 파르마카흐의 땅으로 수많은 사냥꾼들이 몰려들었었다. 아니지, 현재도 그랬다.


‘고대족이 마물이었다면 그리 열성적으로 사냥꾼들이 달려들지 않았을 텐데.’


하지만 그들을 그저 매도할 수도 없는 것이 만약 카스도 사냥꾼일을 한다면 돈이 별로 되지 않는 마물보다는 인간들에게 더 관심을 가질 것이었다.


막 말을 시작했을 때 사냥꾼들에게 잡혀 경매장에 팔렸던 카스는 그런 자질구레한 고향의 향수와 원한에 치우치는 나약한 인간으로 성장하진 않았다. 단상에 올라가 알 수 없는 언어를 하는 인간들의 구경거리가 됐던 달갑지 않던 기억의 영향으로 그는 그때의 두려움을 양분삼아 오로지 강해지기 위해 살아갔었는데, 경매장에서 낯선 인간들에게 둘러싸였던 그는 도살장의 고기가 된 기분이었으며 그때의 기억이 여전히 생생했다.


‘그리고 그녀를 만났지.’


정략혼으로 만난 약혼자의 손에 이끌려 그런 곳에 처음 왔던 라마실이 그를 샀는데, 대부분의 귀족아낙들이 미소년을 사들여 침실로 부르는 것과는 다르게, 그를 훈련장으로 데려와 창술과 검술을 가르치고 제 곁에 뒀었다. 카스가 몇 번의 출정으로 전쟁에서 두각을 드러내며 여러 공을 세우면서 라마실은 그에게 자유를 줬다. 그날 카스는 그녀에게 왜 자신을 그곳에서 데려왔는지 물었는데, 그건 그가 그녀에게 처음으로 한 질문이었다.


이에 그녀는 다른 겁에 질린 어린 녀석들과는 달리 독기를 품은 그가 마음에 들었었다고 솔직하게 말해주었다. 독기라, 그는 그저 살기위한 처절한 의지를 품고 살아갔던 것에 불과했건만. 사실 독기라는 단어와 어울리는 건 카스보다는 라마실이었다.


그녀는 동남의 재건을 위해서 그 어떤 짓이든 했고 그것이 설령 그들을 망하게 한 서북이나 안단카이와 협력하는 일이더라도 그녀는 망설이지 않았다. 또 독하게도 그들을 왕이라 부르며 침략자에 불과한 안단카이의 귀족을 남편으로 받아들이기까지 했었다. 물론 라마실은 뒤에서 그 남성을 독살한 계획을 세웠었지만 그전에 카스가 그를 죽였었다. 동남의 주인에게조차 오만하게 굴며 카스를 모욕하던 그 남성을 카스가 죽이자 라마실은 이를 덮어주며 그에게 칭찬까지 해줬기에 그 일을 계기로 카스는 그녀와 자신 사이에 뭔가 특별한 게 있다는 착각까지 했었다.


물론, 라마실이 그를 전사로써 총예하는 건 사실이었지만 그녀는 카스를 도움이 되는 전력 정도로만 보았다. 그럼에도 자유민이 된 카스는 그녀를 향한 구애는 포기한 채 여전히 그녀의 곁을 머물길 선택했고, 이젠 그저 그녀가 자신을 쓸모 있게 여겨 그녀의 곁에 있을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만족할 수 있었다.


‘그래, 내가 필요 없어진다면 그녀는 분명 날 버리겠지.’


지루하기 그지없던 임무에 약간 흐트러진 모습까지 보였던 카스는 스스로를 닦달하며 침입자를 향해 비수를 휘두르려했지만 그 순간 총을 맞았던 어깨로 갑작스러운 통증이 몰려오며 무기를 놓치고 말았다.


“크아아악!”


혈관 마디마디가 타오르는 고통에 카스는 자신도 모르게 무릎을 꿇고 비명을 내질렀고 왼손으로 상처부위를 감싸자 총탄이 박힌 구멍에서 붉고 가는 마력들이 뿜어져 나왔다. 그는 그런 와중에도 다른 손으로 무기를 집어 들었지만 그것도 버거워 손에 들린 무기가 부들부들 떨렸다.


“총탄에는 장난질칠 줄 몰랐어?”


삼지창에 목이 걸려있던 악마는 그 광경을 보며 즐겁게 웃으며 두손으로 그를 결박하던 창의 손잡이를 잡아 뽑았는데 그 순간 그의 손가락 사이로 카스를 공격하는 마력과 닮은 힘이 흘려 나왔다. 그 붉은 눈의 괴물은 한 손으로 가볍게 카스의 무기를 들어 그것을 그의 목을 겨누며 물었다.


“다시 묻지, 너희가 리고인을 죽였나?”

“모른다, 이 개자식아!”


뒤늦게 탄을 뽑아보려고 상처부위로 손을 집어넣은 카스가 간신히 말했는데 그의 노력과는 다르게 그 붉은 마력은 멀쩡하던 그의 왼손까지 덮쳐와 그를 더욱 고통스럽게 했다.


카스는 정말로 리고인에 대해서는 알지 못했지만 그가 버티자 악마는 일부로 그를 고문할 요량으로 창을 쥐지 않은 손을 오므렸다 폈고 마력이 이에 반응하듯 그의 몸 구석구석을 파고들며 태우다가 사라지고, 다시 나타나길 반복했다.


당하는 이는 그게 더욱 고통스러웠기에 카스는 저 악마에게 농락당할 바에는 차라리 그 자리에서 혀를 깨물어 버릴까하는 충동까지 들었다. 만약 그의 뒤에 시끄러운 겁쟁이와 라마실의 물건만 없었다면 카스는 정말로 그렇게 했을 것이다.


언뜻 보기에는 실오라기 같기도 하면서 실제로는 불같이 뜨거우며 불완전한 형태를 띠는 악마의 힘은 서서히 카스의 어깨를 덮쳐 나무가 가지 치듯 혈관을 따라 온몸으로 퍼졌지만, 그를 죽일 생각은 없는지 심장 주위는 피해 움직였다.


그 마력이 그의 목을 파고 머리까지 올라오며 카스는 정신이 혼미해졌고, 그런 그의 목깃을 잡아 악마가 그를 질질 끌고 갔다. 그는 본래부터 그럴 생각이었는지, 고민도 없이 라마실의 물건이 담긴 유리관으로 향했다.


그의 손에 이끌려 시체처럼 질질 끌려가는 카스는 어떻게 하면 이 악마에게서 그녀의 물건을 지킬 수 있을지 고민했지만 도무지 방법이 없었다. 일단 소파에 앉아 몸을 잔뜩 웅크리고 있는 카로스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을 것 같았으며 그것에 대해 털어놓지만 않으면 다행이었다.


그가 일단 저 녀석부터 죽여 입을 닫게 만들어야지 않을까 생각하던 찰나 창밖으로 날아든 거대한 회색새가 눈에 들어왔다. 괴물에 가까운 덩치에 눈이 오싹하게 붉은 그 새는 라마실이 부리는 것이었는데 그것의 위협적인 발톱에는 사람이 들어갈 만한 크기의 나무관이 들려있었다.


‘관이 왔어.’


카스는 약간은 희망적인 생각에 빠져 카로스가 입을 함부로 놀리기 전에 그를 향해 비수를 던졌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상태를 너무 과대평가했는지, 그가 떨리는 손으로 던진 무기는 카로스의 옆을 스치고 지나가 소파에 꽂혀버렸다. 이에 몸을 웅크리고 있던 카로스는 소파에서 떨어지며 그 무기를 던진 게 악마라는 착각에 그에게 간절히 무릎을 꿇었다.


“우린 리고인에 대해선 몰라, 그것과는 상관없다고! 그건 그냥 네 누이가 키우는 마물일 뿐이야!”


그제야 악마는 잊고 있었던 카로스를 쪽을 바라보았고, 카스는 욕을 몇 마디 중얼거리다가 정신을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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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3 그 악마의 과거(10) 20.03.05 52 0 11쪽
102 그 악마의 과거(9) 20.02.19 54 0 17쪽
101 그 악마의 과거(8) 20.02.05 50 0 16쪽
100 그 악마의 과거(7) 20.01.20 61 0 13쪽
99 그 악마의 과거(6) 20.01.04 54 0 13쪽
98 그 악마의 과거(5) 19.12.22 60 0 12쪽
97 그 악마의 과거(4) 19.12.01 69 0 12쪽
96 그 악마의 과거(3) 19.11.23 62 0 13쪽
95 그 악마의 과거(2) 19.08.21 72 0 17쪽
94 그 악마의 과거(1) 19.08.14 73 0 16쪽
93 마법사와 주술사(6) 19.08.05 112 0 10쪽
92 마법사와 주술사(5) 19.08.02 61 0 8쪽
91 마법사와 주술사(4) 19.07.30 66 0 7쪽
90 마법사와 주술사(3) 19.07.26 78 0 10쪽
89 마법사와 주술사(2) 19.07.23 73 0 7쪽
88 마법사와 주술사(1) 19.07.19 96 0 10쪽
87 저놈 죽이고 천국가겠습니다.(2) 19.07.16 137 0 11쪽
86 저놈 죽이고 천국가겠습니다.(1) 19.07.13 127 0 9쪽
85 이방인(4) 19.07.09 86 0 7쪽
84 이방인(3) 19.07.05 86 0 8쪽
83 이방인(2) 19.07.02 65 0 8쪽
82 이방인(1) 19.06.29 84 0 8쪽
81 마녀의 숲(5) 19.06.25 81 0 9쪽
80 마녀의 숲(4) 19.06.23 67 0 11쪽
79 마녀의 숲(3) 19.06.01 77 0 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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