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의 왕자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로맨스

헤르벤
그림/삽화
@L280_V6ER1
작품등록일 :
2019.04.02 00:09
최근연재일 :
2020.05.11 17:29
연재수 :
104 회
조회수 :
6,790
추천수 :
56
글자수 :
581,379

작성
19.07.09 2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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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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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7쪽

이방인(4)

DUMMY

그 기생충을 죽이는 방법도, 몸에서 분리해내는 방법도 없었다.

애초에 그런 건 베이즌의 망상 속에서나 존재했다.


베이즌과 남자가 챙겨갔던 퇴치 물품은 기생충을 잡기 위한 게 아니었다. 버튼 몇 개를 조작하면 막대기 끝으로 자주색 마력이 튄다. 문달이 손가락 끝을 그것에 대자 약간 따가웠다. 제국에 소속된 사람들이라면 응당 어린 돌연변이(정확히는 아직 문이 열리지 않은)를 제압할 무기를 공급받으며 이를 지니고 다닌다는데, 이 장난감이 아마 그것들 중의 하나일 것이었다.


먼저 달려간 카튼이 총을 쏴 상황을 제압했다는데, 베이즌은 이미 만신창이 된 후였다. 마을로 돌아온 병사들은 몇몇 사람들과 눈물의 재회를 했다. 그것은 문달에게 별다른 감흥을 주지 못해 그는 그들 곁에 정색하고 서 있다가 그것도 뻘쭘해져, 계획에도 없던 뒤처리를 도맡게 됐다. 그는 카튼과 함께 감염된 이들을 확인한 뒤, 그들이 변이되면 그들을 즉각 화형시키는 일을 맡았다. 그런 일은 그의 전문이었지만, 그들 중에 어린 녀석들도 있어서 그는 그것이 그다지 내키지 않았다.


다행히 상처를 입은 전부가 그렇게 전염된 것은 아니었다. 나무에 묶인 채로 제 부모를 부르던 데이지란 소녀는 발 쪽에 꽤 심각한 상처를 입었음에도 괴물로 변하지 않았는데, 이번 일로 절름발이로 살아야 하는 소녀를 보며 문달은 이번에 살아남은 것이 소녀의 인생에서 행운이 될지 장담할 수 없었다. 밤의 왕자도 변형이 일어나지는 않았다. 몸 구석구석에 구멍이 뚫린 채로 산송장이 돼 있던 베이즌은 새벽이 되자 그 익숙한 괴물로 변해 태양이 진 하늘을 향해 포효했다.


처음 발견했던 당시만 해도 피범벅이었던 카이건의 일기장은 흡혈귀처럼 피를 빨아먹기라도 했는지 멀쩡한 상태로 돌아와 있었는데, 몇 번을 시도해봐도 이미 열렸던 페이지들만 무적위적으로 펼쳐졌다. 이렇다 보니 베이즌은 새로운 페이지가 펴질 때마다 그 내용을 노트에 옮겨 놓았는데 그 노트가 피에 젖어 잉크가 번지고 피가 굳으며 종잇장들이 붙어버리면서 무용지물이 돼 버렸다.


문달은 그 환각을 만들어내던 마물과 조우했을 때 펼쳐진 것이라도 아쉬운 대로 읽어보았는데 ‘키스’라는 단어가 눈에 띄었다.


“설마......”


문달의 머릿속에서 그 마물과 키스하는 카이건의 모습이 생생하게 그려졌다. 그는 카이건이 정확히 누구인지 모르며 자신이 조우했던 그 창조술사가 과연 베이즌의 아버지가 맞는지에 대해 확신하지 못하고 있었지만, 누군가를 그 상황에 대입해도 역겹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그 단어를 생각하니, 그 붉은 입술이 떠올라 문달은 저도 모르게 그 자리를 박차고 일어섰다.


그와 뒤처리를 함께 한 뒤 잠시 쉬고 있던 카튼이 그 제국의 연구원이 마을에서 총살을 당하기로 결정됐다고 말하고 있던 찰나에 문달이 말했다.


“총알이 아깝지.”


카튼은 한숨을 쉬었다. 이젠 좀 쉬려 했는데, 아직 치워야 할 시체가 하나 남은 듯했다.


-


그들은 마을에서 얻은 말에 수레를 연결해 숲길을 지나고 있었다. 나무로 돼 외발이 달린 수레에는 그들이 숲을 지나오던 길에 잡았던 마물의 뼈와 베이즌이 뒤섞여 담겨있었다. 그들은 마물을 잡으면 가죽은 버리고 살코기를 구워 주식처럼 먹었는데, 문달이 구워준 고기를 먹고 로아는 그것을 그대로 뱉어버리고는 그제야 카블의 부재에 대해 대성통곡을 하기 시작했다. 뼈를 챙긴 이유는 다른 마을에 도착하면 약재상에 그것을 팔아 품값이라도 벌어볼 요량이었는데, 그 값이 그리 대단할 리 없었기에 수레가 없었다면 진작에 버렸을 것이었다.


마을을 떠나온 지 이틀 만에 눈을 뜬 베이즌이 몸을 일으키자 마물의 뼈들이 덜커덩 부딪치며 온갖 요란한 소리가 이어졌다. 청년은 눈을 뜨자마자 마을에서의 일을 물었다. 소년의 시간은 그때에서 멈춰버렸겠지만 다른 일행들은 그 일을 애써 잊었던 차였기에 그들은 잠시 대꾸하지 않았는데, 카튼이 무거운 입을 떼려는 순간에 문달이 그것을 가로채 말했다.


“제가 불로 태웠습니다.”


문달의 말을 정확히 이해하지 못한 베이즌이 푸른 눈을 끔뻑거렸고, 카튼과 로아는 입에 추라도 단 듯 침묵을 지켰다.


합리적인 결과를 위한 필연적인 희생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소년은 문달이 생각하기에 어리석었다. 그의 방식은 끝없이 걸림돌이 생길 것이며 안 좋은 결과만을 불러일으킬 것이었다. 또 그런 식으로 살아가는 그는 이 세상에서 영원한 이방인으로 남게 될 것이었다. 문달은 자부했다. 자신이 그 일을 맡았으며 베이즌이 의식불명 상태에 있었다면 그렇게까지 마을에 막대한 피해가 생겨나지 않았으리라. 그것은 단순히 문달이 그보다 강하기 때문에 그런 것은 아니었다. 그였다면 막스를 묶어두는 것이 아니라 죽였을 것이며, 그들을 살릴 수 있다는 죄인의 유혹에 속아 넘어가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 희박한 확률 노름에 제 목숨을 걸지 않는다. 그라면 결코.


“.........그 기생충을 요.”


그런데 자신은 왜 저리 말하는 걸까.


“깊숙이 전이가 일어났던 분들은 몸을 회복하는 데에 시간이 꽤 걸리겠지만, 대부분이 낮은 전이 단계에 있어서 일이 그렇게 어렵지는 않았습니다.”


왜 소년이 자신처럼 변하기를 두려워하는 것일까.


베이즌은 그제야 살짝 웃었다. 그에 대한 미안함 때문인지 그것도 이내 꺼졌지만, 그 순간의 기쁨을 결코 감추지 못했다.


“역시, 카론님은......”


그가 자리에서 일어나면서 수레 안의 뼈들이 다시금 귀찮은 소리를 내면서 그의 귓전을 자극했다.


삐걱. 삐걱. 삐거덕.


그것이 왜인지 그 거리의 사제가 줬던 물건이 내던 소리와 닮았다.


그 자는 그것을 문달에게 넘기며 그 물건이 오만한 아스트라를 잡을 유일한 약점이라고 속삭였지. 그 말에 헛웃음을 치던 문달은 그것을 안트로에게 장난감이라고 줬었다. 그러고는 잊었는데. 베이즌의 눈을 보면 그자가 떠오른다. 그와 같은 파란 눈을 가진 남자는 피투성이가 된 하얀 사제복을 입었고 있었으며 제국의 국경을 넘어오던 차였다. 그 남자는 분명 창조 술사였다. 청년도 마찬가지고. 제 눈으로 베이즌의 눈동자가 리고인의 죽음을 먹고 은색이 되는 걸 빤히 봤으면서. 그 남자가 카이건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건 지나치게 비생산적인 염려에서 기인한 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문달은 확신했다. 오늘도 자신이 그에게 죽음을 먹고 자라는 마법사에 대해 말해주지 못하리라는 것을.


작가의말

예상과 다르게 이방인이 길어졌네요...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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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 그 악마의 과거(9) 20.02.19 54 0 17쪽
101 그 악마의 과거(8) 20.02.05 50 0 16쪽
100 그 악마의 과거(7) 20.01.20 61 0 13쪽
99 그 악마의 과거(6) 20.01.04 54 0 13쪽
98 그 악마의 과거(5) 19.12.22 60 0 12쪽
97 그 악마의 과거(4) 19.12.01 69 0 12쪽
96 그 악마의 과거(3) 19.11.23 62 0 13쪽
95 그 악마의 과거(2) 19.08.21 72 0 17쪽
94 그 악마의 과거(1) 19.08.14 73 0 16쪽
93 마법사와 주술사(6) 19.08.05 112 0 10쪽
92 마법사와 주술사(5) 19.08.02 61 0 8쪽
91 마법사와 주술사(4) 19.07.30 66 0 7쪽
90 마법사와 주술사(3) 19.07.26 78 0 10쪽
89 마법사와 주술사(2) 19.07.23 73 0 7쪽
88 마법사와 주술사(1) 19.07.19 96 0 10쪽
87 저놈 죽이고 천국가겠습니다.(2) 19.07.16 137 0 11쪽
86 저놈 죽이고 천국가겠습니다.(1) 19.07.13 127 0 9쪽
» 이방인(4) 19.07.09 87 0 7쪽
84 이방인(3) 19.07.05 86 0 8쪽
83 이방인(2) 19.07.02 65 0 8쪽
82 이방인(1) 19.06.29 84 0 8쪽
81 마녀의 숲(5) 19.06.25 81 0 9쪽
80 마녀의 숲(4) 19.06.23 67 0 11쪽
79 마녀의 숲(3) 19.06.01 77 0 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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